[연구총서 6]: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안태정 지음


발행: 2002년 2월 9일

가격: 20,000원

신국판 487면

도서출판 현장에서 미래를

 



▪저자 서문 중에서


이 땅의 자본주의의 역사가 100여 년을 훌쩍 넘어섰지만 21세기에 접어들어선 오늘날처럼 ‘자본시대’ 또는 ‘자본주의시대’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시대는 없었다.

자본시대란 어떠한 시대인가. 그것은 생산수단, 즉 산업자본이나 금융자본을 사적으로 소유한 극소수의 자본가계급이 대다수의 노동자와 민중을 억압하고 그들의 노동 생산물을 착취하는 자본 지배시대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자본시대란 우리 사회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분단하여 또는 이른바 ‘10 대 90의 사회’라는 양극단으로 분할하여 자본과 자본주의국가가 노동자와 민중을 지배하고 수탈하는 시대를 일컫는다.

이렇게 자본과 자본주의국가가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억압과 지배, 착취와 수탈을 합리화하고 강화하는 논리는 우승열패․적자생존․약육강식 등의 사회 진화론적 ‘정글의 법칙’이다. 승자․적자․강자로서의 그들은 ‘정글의 법칙’인 경쟁력 논리를 교육현장과 노동현장, 그리고 신문과 방송 등을 통하여 금과옥조처럼 나팔분다. 이러한 야만적인 사회 진화론적 경쟁력 논리는 자본과 자본주의국가가 ‘자본증식’이라는 그들의 존재목적을 달성하고, 나아가 자본시대를 유지․연장하기 위하여 동원하는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 역할을 한다.


그러면 자본시대의 역사학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그것은 정치경제학에 자본가계급의 정치경제학과 노동자계급의 정치경제학이 있듯이, 역사학에도 부르주아 역사학과 프롤레타리아 역사학이 있다. 계급사회에서 초(超)계급적 성격의 학문은 없다. 자본시대의 경우 초계급적인 외양으로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자본 지배시대라는 현상을 유지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부르주아 학문의 일종에 불과하다. 부르주아 역사학은 자본시대의 영속화라는 역사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자본가계급의 역사 연구자들이 부르주아 역사학을 수행하는 것은 그들의 사회적 존재 조건과 계급의식의 반영으로서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노동자계급에 속하는 지식 노동자들의 일부가 부르주아 역사학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이다. 그들은 어떠한 자들인가. 우선 그들은, 노동자와 민중의 노동 생산물을 착취하고 수탈한 부의 일부를 자본과 자본주의국가로부터 분배받는 대가로 자본시대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순응․영합하고 나아가서 그것을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퍼뜨리는 자들이다. 다음에 그들은 오늘날의 자본시대도 과거의 노예제시대나 봉건제시대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로서 역사 발전의 올바른 노선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역사시대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역사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며 그 원동력은 노동자와 민중의 노동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실천활동 자체라는 점을 무시하고 있는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올바르지 못한 역사시대인 자본의 시대를 넘어선 내일의 올바른 역사시대인 노동자와 민중의 시대의 도래를 부정하고 오늘의 자본 지배시대를 역사의 ‘종말’로 보는 그릇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부르주아 역사학은 부르주아지들이 전사회적인 지배계급이 되기까지의 역사발전 과정에 대해서는 ‘진보적’으로 매우 드라마틱하게 서술해 낸다. 그러나 자본 지배시대가 확립된 이후부터 부르주아 역사학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또는 ‘10 대 90의 사회’로 분할되어 대다수 노동자와 민중의 빈곤이 심화되고 정신과 육체가 고통으로 마멸되어 가도 그것을 문제상황으로 보지 않는다. 부르주아 역사학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인 ‘사회적 분단상태’가 극복된 현재적 요구로서의 대안적인 ‘새로운 사회’를 전망하는 역사의식을 도저히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지배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지들 자신의 청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역사학의 관점에서는 현재적 상황으로서의 ‘사회적 분단상태’야말로 그들의 내적 속성으로서의 ‘정글의 법칙’인 사회 진화론적 경쟁력 논리가 작용하여 나타난 지극히 당연한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역사학은, 예컨대 허구적인 상상의 공동체인 소위 ‘민족의 분단상태와 민족의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유달리 강조한다. 마치 이것만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도 된다는 듯이 온갖 화려한 수사로써 반역사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역사의식에는 자본의 지배체제, 즉 사회를 자본과 노동으로 분할하여 자본이 노동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적 분단상태’를 공간적으로 확장하려는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이와 같이 부르주아 역사학은 현재의 노동자와 민중의 삶의 피폐는 자본 지배체제 때문이라기보다는 민족 분단체제 등과 같은 다른 무엇들 때문이라고 호도하여 노동자와 민중의 자본 지배체제에 대한 투쟁의 방향을 교란시킨다.

그러면 자본시대의 노동자계급의 역사학은 어떠해야 할까. 우선 위에서 말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통한 자본의 축적과 그것을 존재목적으로 삼는 자본 지배시대의 영속화를 꾀하고 있는 부르주아지들의 야만성과 올바르지 못한 역사의식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변화하는 작동방식과 내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한편 노동자들의 일상 생활 뿐만 아니라 자본과 자본주의국가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크고 작은 투쟁의 사례들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본과 노동으로 ‘분단된 사회’를 노동자로 ‘통일된 사회’로 재구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론을 개발해내어야 한다. 그야말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와 같이 노동자계급의 역사학은 자본의 시대를 지양하고 노동의 시대를 건설하는 일에 복무해야 한다.

새로운 역사시대로서 노동시대는 어떠한 사회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노동의 보편화가 이루어진 사회, 자연 친화적인 생산력의 발전과 일인당 노동시간이 대폭적으로 단축된 사회,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활동을 위한 충분한 시간 주권이 확보된 사회, 연대와 협동․자율과 자치의 논리로 작동되는 사회 등을 말한다. 요컨대 노동시대의 사회란 ‘각 개인들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사람들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결사’, 즉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노동자 연합사회’라고 볼 수 있다. 21세기인 오늘날처럼 이러한 노동시대를 열기 위한 물질적 전제 조건이 구비되어 있었던 시대는 없었다. 그러나 역사의 주체로서의 노동자계급의 대부분은 여전히 자본시대를 극복하고 노동시대를 구현하기 위한 계급의식적 투쟁의지를 가지고 조직적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날의 노동자계급의 역사학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머리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목차

 


서론
 

제1장  8.15 직후 노동자계급의 동태


제2장  전평의 결성과 성격


제3장  전평의 조직활동과 문화운동


제4장  전평의 반파쇼민주주의 세력들과 연대


제5장  전평의 자본과 국가에 대한 계급정치


제6장  전평의 대안체제 수립지향


결론

 


한노정연(KILSP):
labor95@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