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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2 17:18:45

박성인

[정지상] 일본, 1990년대 이후 사실상 핵 능력 보유, [월간 말]229호

일본, 1990년대 이후 사실상 핵 능력 보유

정지상 자유기고가
[월간 말]229호

1940년 일본 군부는 니시나 요시오 박사에게 원자폭탄 개발을 지시했다. 니시나 박사는 도쿄대 이화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원자폭탄 개발 계획을 극비리에 추진, 원자폭탄의 재료인 우라늄235를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우라늄은 독일에서 잠수함으로 대량 수입됐다. 그러나 미군의 공습으로 이화학연구소가 파괴되자, 실험은 전력과 우라늄 공급이 용이한 흥남으로 옮겨서 계속됐다. 드디어 1945년 8월 12일 새벽 흥남 앞바다속 폭발실험이 성공했다. 하지만 피폭과 소련군의 참전으로 일본의 항복은 확실해졌고, 당일 소련군은 북으로 진주했다. 일본 연구진들은 소련으로 잡혀갔고, 흥남의 원폭개발시설은 소련군이 접수했다. 이후 관련 인력과 시설을 통해 소련은 본격적인 핵 개발을 하게 된다.

일본은 세계 3위의 핵 발전설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첨단 핵기술도 선도하고 있다. 또 핵 발전 능력의 대폭적인 확대와 핵연료주기의 자립화 장기계획도 추진 중이다. 이미 60년 전에 핵실험 경험이 있는 준 핵보유국으로 90일이면 얼마든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나라다. 일본의 핵정책 중 논란이 되고 있는 건 플루토늄 이용계획이다. 일본은 핵에너지 이용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석유의존도를 낮춘다는 명목으로 2010년까지 85톤의 플루토늄을 생산, 이용하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이를 위해 일본은 고속증식로와 플루토늄 우라늄 혼합연료의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고, 플루토늄을 대량 반입하며 대규모 국내 재처리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플루토늄은 평화적 목적으로 생산됐다해도 쉽게 핵폭탄 제조용으로 바뀔 수 있어 우려를 낳는다.

일본, 이미 60년 전에 핵실험 경험

현재 일본의 핵정책은 에너지 자원으로서 원자력 개발이용이라는 경제적인 측면과 핵 억지력을 확보하여 외부 위협에 대해 일본의 안전을 보장하며 스스로 핵개발을 통하여 군국주의로 나가려는 군사적인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원자력이용 장기계획으로 핵연료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의 이용, 신형전환로 개발 및 상용화 등 핵에너지 이용의 자국화, 자립화를 추진해왔다. 군사적 측면에서 일본 핵정책의 근간이 되는 것은 미일안보조약, 비핵 3원칙이라 할 수 있다. 동서냉전이 첨예화됐던 1950년대 초 미국과 일본은 안보조약을 통해 군사동맹을 체결했다. 이 군사동맹의 핵심은 외부 군사위협에 대해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여 일본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정부는 2003년 후쿠다 관방장관의 발언처럼 ‘일본도 핵을 가져야한다’는 구상으로, 미일동맹에서 벗어나 스스로 핵 보유가 가능한 일반군사 국가를 꿈꾸고 있다. 최근 일본 핵정책은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핵에너지의 상용화를 적극 추진하고, 첨단 핵기술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다음은 외부 핵공격이나 대규모 재래식 공격 위협에 대해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며, 이를 위해 미일동맹을 가능한 공고히 유지하는 것이다.

원자력산업은 일본의 장기적 에너지안보 차원에서뿐 아니라 첨단과학과 기술 개발, 응용을 통한 산업발전과 국제경쟁력 제고의 원동력이 된다는 면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분야다. 현재 일본의 원자력 기술, 장비, 서비스 등은 안전성과 효율성 면에서 첨단을 달리고 있으며, 세계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또 상업용으로 개발된 원자력기술은 필요에 따라서 군사적인 이용이 가능하다. 특히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기술, 선박용 소형원자로 개발, 기타 첨단 원자력 기술개발은 일본이 핵 이중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다. 사실 패전국 일본은 스스로 평화헌법을 채택하여 무력사용에 대한 주권국가로서 권리를 포기하고 군사력 보유를 금지하였으며, 자국의 안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1952년 체결된 미일안보조약으로 맺어진 양국 간 동맹의 핵심은 미국의 핵우산이다. 일본은 독자적인 군비를 갖추거나 핵무기 보유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미 핵우산과 관련하여 미일 양국 간 공식적으로 핵무기의 배치나 반입 등에 대해 정해진 바는 없었으나, 미국이 일본 내에 핵무기를 반입할 경우 제도적으로 일본정부와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규정했다.

미국에 의존한 핵기술의 한계

그러나 일본은 미국 핵잠수함의 기항을 묵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곧 사실상 비핵 3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1970년대 말 소련의 군비증강,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미소대립이 첨예화하고 극동에서도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부각되자, 미 핵우산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미 핵우산이 일본 평화헌법이나 비핵정책에 위배되는가보다, 과연 일본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해줄 수 있는가, 또는 미국의 안보 공약을 신뢰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초점이 옮겨졌다. 그래서 현재 일본은 자기 힘으로 핵개발과 보유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농축우라늄의 70%를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고, 핵관련 기술 서비스의 대미의존도도 높다. 미국은 이러한 위치를 이용하여 자국의 핵확산방지 정책에 따르도록 일본에 요구하였고 일본은 이를 수용해 왔다.

핵확산금지조약은 핵보유국이 비핵국에 핵무기나 핵무기 제조기술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여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할 목적으로 미국과 소련이 중심이 되어 1966년 제안되었다. 일본의 입장에서 NPT는 군사안보적인 측면 뿐 아니라, 핵에너지 이용과 관련하여 중대한 이익이 걸린 문제였다. 일본 정책결정자들은 일본이 미국 핵우산의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불확실한 동북아 안보환경에서 단지 미소간의 데탕트 분위기에 편승하여 25년간 핵무기개발 가능성을 포기한다고 약속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일본정부가 NPT를 반대하거나 핵옵션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물론 NPT는 가입 후에도 일정 절차를 거쳐 탈퇴가 가능하지만 그 결과 나타날 정치 외교적 반향은 일본의 국익에 매우 부정적일 것임이 명백한 것이었다. 일본정부가 NPT를 본격 논의하면서 조약의 경제적인 의미도 주요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자원이 빈곤하고 석유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핵에너지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원자력 산업을 활발히 육성하고 있었다. 일본으로서는 NPT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과 독자적인 원자력산업 육성을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NPT 모범국 일본

당시 일본정부 내에서 조약의 서명에 비교적 전향적이었던 것은 외무성이었다. 외무성은 일본이 추구하고 있는 군축정책의 관점에서 NPT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또 일단 NPT에 서명한 후 비준하기 전 조약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일본이 국제사회의 의혹을 받지 않고 외교적인 고립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미 국무부는 일본의 NPT 가입을 촉구하기 위해 일본에 농축우라늄의 판매를 계속할 것이며, 일본이 독자적으로 상업용 핵개발을 추진하고 농축 및 재처리시설을 건설하는 것도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은 1976년 NPT를 비준하고 1977년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의 핵정책에 대한 여타국가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고,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함으로써 자국의 안보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며, 일본의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다. 지금도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엄격히 받고 있으며, 자국의 핵시설을 국제적인 감시체제에 완전히 공개하여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핵관련 수출에 비해 일본은 거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다. 일본은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대규모의 핵 외교팀을 가동하여 평화 이미지를 구축하고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실용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플루토늄 과잉생산 비축은 핵무기 확산방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과거에는 발전용 플루토늄은 군사목적으로 사용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상업용 플루토늄 제조가 용인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기술수준은 원자로용 플루토늄으로 핵폭탄을 제조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본도 단시일 내에 그러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군사용과 상업용 플루토늄의 구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모든 플루토늄은 핵무기제조에 사용될 수 있다. 평화적 명목으로 비축된 플루토늄을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하는 것은 이 물질을 보유하고 있는 자의 의도에 달려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의도와 관계없이 플루토늄의 다량 비축은 장기적으로 중대한 안보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는 영국과 프랑스에 맡겨 온 핵연료 재처리 작업을 일본 내 재처리시설이 완공되는 2006년부터 국내에서 소화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은 핵무기 1000여기 제조에 필요한 양에 해당하는 5t의 분리된 플루토늄을 매년 추가로 확보하게 된다. 현재 일본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는 50여기로 연간 1000t의 사용 후 핵연료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오모리 현에 짓고 있는 제2의 재처리 공장이 2006년 가동되면 이 중 800t 정도가 재처리돼 매년 5t의 플루토늄을 추가로 생산하게 된다. 아오모리 공장의 용도를 변경하면 핵무기용 고농축 우라늄(HEU)도 생산할 수 있다.

실리외교를 통해 확보한 핵능력

일본은 핵개발의 목적이 오직 평화적인 원자력에너지의 이용을 위한 것임을 일관되게 주장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사실상 핵무장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자와 기술을 갖고 있는 준 핵보유국 상태이며, 단시일 내에 대대적인 핵무장을 실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일본의 군산복합체는 인공지능 컴퓨터, 신소재, 전기·전자, 우주·항공, 선박·잠수함 건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무기의 운반수단이나 전역감시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이 있다.

그동안 일본은 군사적인 측면에서 미 핵우산에 의존한 안전보장, 비핵 3원칙, 핵확산반대 등을 통해 일관된 핵정책을 견지해 왔다. 이같은 정책기조로 일본은 실리적인 핵외교를 구사하여 핵무기 확산에 극히 민감한 미국의 견제와 일본의 군사력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를 극복하고 현재와 같은 수준의 원자력 산업과 핵능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일본정부는 핵개발은 오직 에너지자원 이용차원의 평화적 목적이며 절대로 핵무장 의사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실리를 극대화하는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본 원자력발전은 안전성과 폐연료처리문제 등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일본 원전이 안고 있는 대표적인 고민거리는 폐연료 처리문제다. 일본정부는 그동안 프랑스와 영국으로 폐연료를 보내 처리해왔으나 최근 폐연료를 더 이상 해외로 보내지 않기로 했다. 또 다른 쟁점은 일본 후쿠이 현 쯔루가시에 있는 고속증식로 원형로인 몬주(文殊) 건설 운전을 둘러싸고 국가와 주민 사이의 갈등이다. 이 사건은 20년이 지나 주민 패소로 막을 내렸고, 10여년 동안 가동이 중단됐던 일본의 고속증식로 몬주는 다시 가동됐다. 지난 5월 30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고속증식로 몬주 주변 주민 32명이 낸 ‘고속증식로 설치허가 무효 확인 소송’의 상고심 공판에서 주민승소 결정을 내렸던 2년 4개월 전의 나고야 고등법원의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주민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1983년 일본 정부로부터 건설허가를 받은 고속증식로인 몬주는 원자력 발전 과정에서 생성된 플루토늄을 그대로 다시 원료로 재이용하는 원자로로 1985년 주민들은 ‘일반 원자력 발전소보다 사고 위험성이 높다.’며 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었다. 실제로 1995년 12월 고속증식로 몬주에서 나트륨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나서 지금까지 가동이 중단되어 왔다. 건설허가가 나온 1983년 당시 일본 정부는 꿈의 원자로로 부르며 차세대 에너지원의 하나로서 고속증식로 실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원자로용 격납용기 옆 나트륨 냉각 배관실에서 시운전 중 열을 터빈에 전달하는 배관온도계가 부러져 액체 나트륨이 대량으로 새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때까지 6천억 엔 이상이 투입된 일본 정부의 대형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사고 은폐 의혹으로 사업단 간부가 자살까지 하는 등의 파문이 확산돼서 결국은 가동이 중단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일본은 원자력 발전을 하면서 이론상으로는 원료보다도 더 많은 플루토늄을 생산한다는 꿈의 원자로로 불리는 고속증식로 사업에 한층 탄력을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아오모리 현 롯카쇼무라의 플루토늄 재처리공장 가동과 더불어 핵병기의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을 주축으로 하는 핵연료 재활용 정책의 추진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몬주는 1995년의 나트륨유출 화재 사고 후, 약 10년간 가동이 정지되어 있다. 그리고 운전 재개를 위해 개조 공사를 진행시킬 것이지만, 세계 어디서도 10년 동안이나 정지해 있다가 운전을 재개한 예는 없다고 한다. 경수로보다 위험하고, 경제성도 보장되지 않고, 핵병기 확산에 직결된다고 하는 고속증식로에 미래는 없다는 것이 중론으로 세계 각국은 고속증식로 개발을 폐기하고 있는 것이 현 추세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역행하며 허가취소가 나서 발전이 중단되었던 핵발전소를 다시 가동하는 저의는 무엇일까. 현재 일본 핵 정책을 동북아 국가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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