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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3 21:07:32

박성인

[조홍준]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 도입의 역사와 교훈,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 도입의 역사와 교훈

조홍준(울산의대 교수)
[민주노동당 홈페이지]2005.07.19.

2000년 우리 나라를 뒤흔들었던 의사파업 당시, 의사사회는 반대자를 '의료사회주의자‘라고 공격하였으며, 이 ’의료사회주의‘의 대표를 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들곤 했다. 사실 영국의 NHS는 서구사회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무상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한 최초의 예이며, 기여에 따라 자격이 부여되는 보험원칙에 기반하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국가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최초의 포괄적인 보건의료체계였으며,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는 국가 중에서 집단적으로 보건의료를 제공하는 최초의 국가였다. 그러나 많은 의사들이 증오해 마지않는 영국 NHS에 대해서는, 특히 도입 역사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자본주의의 원조인 영국에서 왜 가장 ‘사회주의적’ 의료제도인 NHS가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이 사회주의적 제도의 도입은 노동계급의 승리이며, 의료전문직의 패배인지, NHS 형성과 시행은 의료전문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등.

1. NHS 도입 이전의 영국 의료제도와 의료이용

NHS 형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NHS 이전의 의료보장제도와 국민의 의료이용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19세기 중엽 영국의 의료이용

19세기 중엽에는 환자의 진료비 지불능력에 따라 진료장소가 결정되었다. 중산층이나 고소득자는 자신의 집에서 진료비를 지불하고, 전문의(Royal College of Physician이나 Royal College of Surgeon의 회원)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덜 부유한 사람은 일반의(general practitioner)에 의해 진료를 받았으며, 노동계급이나 가난한 사람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당시 병원은 환자를 격리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에 병원보다 가정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더 좋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선진료나 구빈법(poor law)에 의해서 자선병원(voluntary hospital)이나 구빈원(workhouse)에서 진료를 받았으며, 특히 workhouse는 복잡하고, 침상이나 타월 등을 공유하고, 음식이 형편없었다. 자선병원은 workhouse 보다는 상황이 나았으나 병원 입원은 곧 죽음을 의미했으므로 많은 사람이 입원을 꺼렸다.
노동계급은 일정 금액을 1주마다 내고 일반의의 외래진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노동계급의 절반 정도가 가입하였고, 여자와 어린이, 만성질환을 앓는 사람은 제외되었다. 구빈법 적용자는 구역의료담당관(District Medical Officer)에 의해 진료를 받았으며, 자선병원 외래를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진료수준은 구빈법에 의한 workhouse 보다 낫지 않았다.
이 당시에는 노동계급이나 가난한 자들이 겪는 의료이용의 불평등이 건강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당시의 의학수준이 매우 낮아서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이후 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의학기술의 발달로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였다. 특히 정교한 의학기술을 사용하는 병원진료비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로 인해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진료비의 일부를 부담하게 되었다.

1911년 국민건강보험(Natonal Health Insurance)의 도입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노동계급에 대한 1차의료서비스는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먼저 의료서비스의 질이 낮았고, 환자가 우애조합(friendly society)이나 메디칼클럽(medical club)에 가입하지 못한 경우 복잡한 병원외래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NHI의 도입으로 빈곤선 이상의 노동자는 무상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 NHI는 연 소득이 250 파운드 이하인 노동자에게 일반의에 의한 의료서비스와 상병급여를 제공하였다. NHI의 재원 조달을 위해 노동자가 주당 4페니, 고용주가 3페니, 국가가 2페니를 지불하였다.
NHI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행정조직의 측면에서 중앙기구에 의해 통합된 행정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2만여개의 공인조합(approved society)과 보험위원회에 의해 분산적으로 운영되어 효율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했다. 적용대상의 측면에서 일부 직종의 노동자만 포함하고, 부양가족을 적용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국민의 일부만 혜택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의 가입을 강제하지 못하여,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 적용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실업급여수준이 상병급여수준 보다 높아서 노동자는 환자로 진료를 받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적용수준의 측면에서 전문의와 병원서비스가 제외됨으로써 충분한 의료보장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재정조달의 측면에서 국가의 재정지원이 적었으며,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동일한 보험기여금을 내도록 되어 있어 소득재분배 효과가 없었다. 아울러 NHI 적용을 받는 환자의 서비스가 진료비를 자신이 내는 환자에 비해 더 낮다는 증거도 있었다.
그러나 NHI는 국가가 노동계급의 건강을 위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영국 최초의 시도로 보다 포괄적인 제도로 전전하기 위한 첫 단계라는 의의가 있었으나, 보험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기여를 해야 하며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통한 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2. NHS의 내용

1) 행정조직

NHS의 행정조직은 병원당국(Hospital Authority), 지방보건당국(Local Health Authority)과 실행위원회(Executive Council)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그림 1). 당초 노동당 정부의 보건부장관인 베번(Aneurin Bevan)은 이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려 하였으나(즉 일반의의 진료서비스와 공중보건서비스는 지방보건당국이 담당하고 병원은 지역병원당국이 담당하도록), 각 이해집단의 반발로 이를 관철하지 못하고 복잡하고 효율이 떨어지는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중 병원당국은 일반병원을 담당하는 Regional Hospital Boards와 교육병원을 담당하는 Boards of Governors로 구분되어 있다. 영국을 14개의 region으로 나누고(14개의 regional hospital boards), 각 region은 1,000병상 정도를 포함하되, 정부정책 적용에 책임을 지며, 전반적인 전략계획, 예산통제, 전문의 임명과 같은 의무를 지게 하였다. 교육병원은 국유화하되 행정은 분리하도록 하였다(16개의 boards of governors).

베번 제안의 핵심은 병원의 국유화(nationalizaion)와 지역화(regionalization)이었다. 이는 보건의료의 사회적, 지리적 형평성 달성에 필수 불가결하다고 판단되고, 의료전문직과 자선병원의 반대를 피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되었다.

당시 영국에서 병원의 국유화가 가능하게 된 배경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당시 영국 병원의 대부분은 자선병원과 지방정부 운영병원이며, 이들은 서로 경쟁하거나 대립하였다. 자선병원은 1930년대까지는 모금한 기금으로 재원을 확보하였으나 이 재원은 전체 수입의 20-30%에 불과하였고, 이 때문에 지불능력이 있는 환자에게서 진료비의 50%를 부과하였다. 2차대전 발발로 자선병원은 전쟁사상자를 위한 응급병상을 운영하여 정부로부터 대규모의 재정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자선병원은 스스로 생존이 어렵게 되었고 이는 국유화가 가능하게 되는 필요조건이 되었다.
1938년 2차세계대전을 앞두고 전국적인 병원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때 당시의 산만한 병원체계로는 전쟁으로 인한 의료요구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국가에 의해 전국적인 응급의료망이 구축되었으며 여기는 지방병원과 자선병원이 모두 포함되었다. 이 경험은 병원과 서비스의 복잡한 연계망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확산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지방정부(local authority)에서 제공하던 서비스(모자보건, 조산서비스, 가정방문, 가정간호, 가정지원사업, 예방접종 등)는 146개의 지방보건당국(Local Health Authority)이 계속 제공하도록 하였다.

일반의, 일반치과의 등의 독립된 자영자 서비스(Independent Contractor Service)는 지방보건당국에 소속되지 않고, 과거 NHI의 보험위원회(Insurance Committee)를 이어 받아 140개 실행위원회(Executive Council)가 담당하도록 하였다.

2) 기능과 재원

NHS에서 제공되는 의료서비스는 크게 일반의서비스, 병원서비스, 공중보건서비스로 구분할 수 있다.

가. 일반의 서비스

이것은 독립적 계약자인 일반의, 일반치과의, 약제서비스 등으로 구분된다. 일반의는 월급제가 아닌 인두제로 진료비를 보상받으며, 어떤 지역에서나 개원을 할 수 있었다. 모든 국민은 일반인의 진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나. 병원 및 전문의 서비스

환자는 일반의의 의뢰에 의해서만 병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으며, 모든 병원서비스도 무상이었다.

다. 공중보건 서비스

지방보건당국은 모자보건서비스, 가정방문 서비스 등의 서비스를 무상으로 환자에게 제공하였다.

NHS는 베버리지 보고서의 핵심 정신인 보편성(모든 사람에게 이용 가능), 포괄성(예방과 치료서비스를 모두 포함한), 무상(의료이용시 환자의 부담이 전혀 없는) 원칙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재정부담은 대부분 중앙정부예산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사회적 형평성 보장, 누진적 조세부담과 소득재분배라는 사회주의적 원칙 때문으로 설명되었다. 무상의료는 대중뿐만 아니라 전문가집단 내에서도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는데, 베번은 이 제도가 ‘최소한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나 ‘최상급 수준’의 치료를 평등주의의 원칙하에 제공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3. NHS 형성 배경 : 계급투쟁인가 의료제도의 합리화인가?

1946년 11월 영국 노동당 정부 하에서 NHS법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1948년 7월 5일 제도가 시행되었다. 모든 국민에게(universal) 포괄적인 서비스(comprehensive)를 무료로(free) 제공하는 의료체계가 도입된 것이다.

NHS의 형성에 대한 입장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바로(Vicent Navarro) 등 맑시시트의 견해로 노동계급의 요구나 또는 그들의 급진화에 대한 반응(또는 양보)으로 NHS가 도입되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의료부문 자체의 합리화 필요성에 의해 NHS가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나바로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에서는 192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경제 침체의 결과로 실업이 증가하고, 공적지출은 감소하였으며, 따라서 노동계급은 점차 호전성을 띄게 되었다. 이는 노동당과 노동조합평의회(TUC:Trade Union Council)로 하여금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도록 하였으며, 이런 급진적인 요구는 의사단체에 큰 위협이 되었다. 그래서 영국의사협회(BMA)가 이런 위협에 대응하여 의료서비스체계의 재조직에 대한 계획을 준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바로는 NHS의 도입을 사회주의적 대안의 위험에 대해 국가와 의료전문직의 대응, 그리고 전쟁 중 노동계급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한다.
도얄(Lesley Doyal)은 나바로와는 조금 다른 견해를 주장한다. 영국이 양차 세계대전 사이 기간 동안 이윤율의 위기(crisis of profitability)와 정치적 안정의 문제(problem of political stability)를 겪고 있었고, NHS는 전후 노동과 자본간 관계 정립의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노동운동이 NHS의 구체적인 형태까지 결정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NHS의 최종형태는 국가와 기존의 이익집단(자선병원, 공인조합,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의료전문직 등)간 협상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견해는 의료부문내부의 재정적 조직적 문제를 해결이 NHS 성립의 주요 배경이라는 것이다(Walters, 1980).

이들은 당시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보건의료서비스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NHS가 논의되고 결국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월터tm(Walters)는 나바로의 주장이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즉 1930년대와 40년대에는 파업이 빈번하지 않았으며, 1920년대나 30년대에는 NHS에 대한 노동당이나 TUC 등의 구체적인 요구도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노동당이나 TUC의 요구는 NHI의 근본적 개혁이 아닌 개선과 적용 확대를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1920년대와 30년대의 주요 잇슈는 공인조합(approved society)간 급여 차이에 관한 것이었다. TUC의 전국위원회에서 공인조합의 국유화 요구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한번도 총회를 통과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공인조합은 노동자 자율적으로 운영되므로 이를 국유화하면 관료제의 영향을 받게될 가능성을 더 두려워하였다. 이밖에도 NHI의 문제점인 상병급여와 실업급여간 차이, 비육체노동자에 대한 보험적용확대 등이 주요 잇슈였다. 1940년대가 되어서야 TUC는 근본적인 의료개혁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정부 주도의 활동(베버리지 위원회)에 대한 반응의 성격이 많다. 또한 TUC는 이 문제에 관해서 사회주의적 의료제도를 제안한 사회주의자의사협회(SMA: Socialist Medical Association) 보다는 보수적인 BMA와 협의를 시작하였다.
노동당에서도 1930년대 초반까지는 전반적인 의료개혁이 잇슈가 된 적이 없었다. 이때도 SMA가 토론을 촉발하였다. 1943년이 되어서야 노동당은 SMA의 정책을 받아들였다. 이때 노동당의 주요 정책내용은 health center와 병원의 조직책임을 민주적으로 선출된 regional health authority가 담당하고, 서비스 재원은 세금으로 조달되고, 이용시 무료이어야 하며, 의료전문직은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선병원의 독립성은 당분간 유지되지만 결국은 local authority의 통제하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러나 노동당이 이런 결정을 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의료제도의 개혁에 관한 논쟁에 큰 공헌을 하지 못했다.

의료전문직이 논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의사들은 임상적 자율성의 훼손 등을 이유로 NHS에 반대하였고 따라서 사회화된 의료(socialized medicine)는 전문가의 자율성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꼭 그렇지 않다. 실제 1920년대에서 1940년대에 걸쳐 영국의 의료전문가들은 국가의 개입의 확대를 제안하고 이것이 자신의 이익을 제한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부는 국가의 개입 강화를 ‘전체주의적 악몽’이라고 반대하였으며, 일부는 일관되지 않은 태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다수 의료전문직은 국가의 개입이 기술적 자율성(autonomy of technique)에 위협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NHI 도입 이후 많은 의사가 재정적인 혜택을 누렸으며 BMA도 이 제도의 확대를 바라고 있었다. 따라서 의사들은 국가 개입의 확대가 전문가로서의 기본적인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영국 의사가 NHS 도입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한 것은 제도의 원칙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조건’과 ‘소득수준’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의료전문직 대표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은 것’이 반대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당시 의료전문직 내부의 의견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는데, 가장 보수적인 의견은 BMA의 의견이다. BMA는 NHI를 모든 국민에게 확대하는 것을 지지하였는데, 네 가지 원칙은 첫째, 진료는 예방과 치료를 모두 포함해야 하며, 둘째, 환자는 자신이 선택하는 일반의의 진료를 받아야 하고, 셋째, 전문의 진료는 일반의의 의뢰에 의해서만 이루어져 하며, 넷째, 여러 서비스간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급진적인 안은 SMA에 의한 것이다.

결국 영국 의사들은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지 않았다. 왜 이들은 국가의 개입을 받아들였을까?

의료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상황 즉, 불충분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시설, 재정적 제한, 사적환자의 진료비 부담의 어려움, 계약진료의 불충분성, 일반의, 전문의, 병원간 영역 분쟁, 개원에 요구되는 많은 재원 등은 전문직으로서의 의사의 이해관계를 저해했다. 전문가 집단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영국에서는 보건분야에서 사적 이해관계가 거의 성립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민간의료보험은 드물었고, 지역적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전문직이나 국가 모두에게 압력집단이 되지 못했다. 또한 이들은 국가 차원에서 의료서비스의 조직과 재정에 어떤 책임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보건부문에서 기획 기능을 가진 것은 국가밖에 없었으며, 게다가 NHI의 경험으로 보건부문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의사의 이해관계에 위협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오히려 NHI가 전문직의 재정적 이해관계를 개선했기 때문에 NHS는 의사의 재정 상황을 더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전문직이 1943년 정부 계획에 반대한 것은 이런 주장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 정부안에 대한 광범위한 반대가 있었지만 이는 특정한 세부 내용에 국한되었고, 반대의 강도가 예상보다 강력하지 않아서 전국적인 파업을 조직하지는 못하였다. 당시 전문직은 의료의 사회주의화 ‘자체(per se)’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이 정책의 일부 내용과 정책이 형성되는 ‘방법(manner)’에 반대한 것이다. National Health Service Act는 전문직의 의견 투입 없이 통과되었다. 전문직이 계획과정에서 배제된 이상 전문직의 반대는, 국가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수단으로 중요한 협상전략이 되었다.

어떤 견해가 옳은가? 맑시스트적 분석은 노동당과 노동조합이 구체적인 NHS의 형태를 만들기 위한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거나 이를 만들어가지 못한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합리화 이론은 왜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전반적인 사회복지 개혁 계획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노동당 정부에서 완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약점이 있다. 영국에서 의료보장제도를 포함한 사회복지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아마도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와 자본의 주도적인 노력에 의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선 노동당과 TUC를 비롯한 노동세력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한계는 NHS의 핵심적인 정책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지 못하고 이해집단에 의해 제도가 왜곡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예를 들어 단일화된 행정체계를 만들지 못한 것, 의사의 월급제 요구를 관철하지 못한 것, health center를 중심으로 일차의료서비스와 지역사회서비스를 통합하지 못한 것, 사적의료 제공을 중지시키지 못한 것 등은 당시 노동계급의 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NHS 도입의 단기적 영향

NHS 도입은 국민, 언론, 정치가 모두의 찬성을 받았다. 보수적인 신문인 이코노미스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NHS의 도입으로

“행정에서의 사회주의와 진료에서의 개인주의가 공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It was possible to combine 'socialism in its adminstration with individualism in its practice')

NHS 도입 이후 의료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2년간 의료비 지출은 예측치를 크게 넘어섰다. 결국 재무부는 개인이 진료비를 부담하도록 하도 NHS 예산에 상한선을 두는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2년 정부가 소집한 Gillebaud 위원회에 의하면 NHS 내부에 낭비요인이 없으며 오히려 좋은 질의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따라서 본인부담금을 부과할 근거가 없고, 오히려 병원의 현대화와 지역사회케어의 확대를 위해 추가적인 재원의 투입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실제 1950년에서 1964년까지 NHS의 지출은 평균 2.5% 증가하였는데 이는 같은 기간의 경제성장률 2.3%와 비슷한 수준이며, 서구 다른 나라의 의료비 지출 증가율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NHS는 병원 서비스가 핵심이며 일부 비판자는 NHS를 국가병원체계(National Hospital Service)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NHS 예산에서 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도입 초기의 54%에서 1975년에는 70%로 크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일반병원과 교육병원 행정의 분리, Regional Hospital Authority와 Health Management Committee간 관계의 모호함 등으로 포괄적인 지역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차의료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도슨(Dawson) 보고서에서 제안한 일차의료서비스와 지역사회서비스를 health center에서 통합하려는 계획은 정치적인 이유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health center가 활성화되지 않음으로써 일차의료와 지역사회서비스는 현대화되지 못하고 병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다. 이는 보건부와 일반의간 관계를 악화시켜 NHS에서 중요성이 커진 일반의와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 냈으며 이는 향후 NHS 발전에 장애가 되었다.
NHS는 기존의 의료서비스 제공의 불평등을 개선하기보다는 유지하고 영속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건강상태가 가장 나쁜 지역에서 가장 나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었다(inverse care law). NHS 시작과 더불어 좋은 병원과 풍부한 서비스는 런던 근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으며 병원서비스가 가장 나쁜 지역은 과거에 낙후된 지역인 중공업 지대였다. 일반의의 지역적 불균형 분포를 개선하려는 베번의 시도도 BMA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일반의의 불균등 분포도 지속되었다.
NHS의 도입은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제도이었지만, 기존에 존재하는 보건의료자원과 서비스의 격차를 개선하지는 못했다. 이는 NHS 도입 이후에 사회계급간 건강수준의 불평등이 확대되는 이유의 하나가 된다. 자원의 절대적 부족이 이런 문제의 원인의 하나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원이 니드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으며, 효과적으로 사용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5. 영국 NHS 제도 도입이 주는 시사점

누가 NHS의 승자인가? NHS는 전국민에게 무상으로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임에는 틀림없으나, 이 제도는 치료 위주, 병원 위주의 제도이며, 공중보건서비스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따라서 NHS의 승자는 전문의, 의료기구 생산자, 제약산업 이며, 공중보건분야와 의료서비스의 사용자가 패자이다(Doyal, 1983)

NHS는 자본주의 사회의 외딴 섬인가? NHS는 ‘무상의료’라는 것 이름 때문에, 그리고 ‘병원의 국유화’ 때문에 보험 방식으로 의료보장을 제공하는 서구의 다른 나라와 완전히 다른 의료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다르다. 그러나 서구 대부분의 나라는 공공의료기관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본인이 부담하는 진료비가 거의 없다. 즉, 이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따라서 NHS에서 국유화와 무상의료는 당시의 의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대안 속에서 선택되어진 것이다. 물론 이런 제도를 가능하게 한 노동세력의 힘이 뒷받침 된 것은 사실이나, 이 과정에서 의료전문직의 임상적 자유가 대부분 보장되었으며, 이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도 크게 침해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의료제도의 형태 결정이나 제도 운영, 우선 순위 결정에서 국민의 참여가 크게 확대되지 않았으며, 의료정책 결정과정에서 국가와 의료전문직간 코포라티즘적 결탁이 지속되었다는 점에서도 NHS를 자본주의 사회의 아주 특별한 제도로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NHS 형성 과정에서 영국 의사전문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문직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당시 SMA에 속한 한 의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기다리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정치가들이 갑자기 깨어나서 패널 체계(국민의료보험제도)와 같이 불완전하고 소화가 되지 않은 안을 강요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려면 다가오는 것을 알아보고 공공의 의견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여 변화가 왔을 때 의학과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제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Doyal L. The Political Economy of Health. Pluto Press Ltd, London, 1983.
- Klein R. The New Politics of NHS. 3th ed., Longman Group Ltd, London, 1995.
- Walters V. Class Inequality and Health Care. Croom Helm Ltd, London, 1980.
- Webster C. The National Health Service. A Political History.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98.
- 심재호. 영국 의료보장정책의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NHI와 NHS를 중심으로. 한국의료보장연구. 청년세대, 1989.

○ 1920년 의료 및 관련 서비스에 관한 정부 협의회(The Government's Council of Medical and Allied Services): Dawson 보고서 : health center를 기초로 한 포괄적이고 단일한 보건의료서비스 계획권고

○ 1942년 거국정부는 사회보험 및 관련서비스에 관한 보고서( A Report for Social Insurance and Allied Services), 즉 베버리지 보고서 발간. 이 보고서는 빈곤, 질병, 무지, 불결, 실업 극복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국가의료서비스에 대한 제안을 담고 있음.

○ 1944년 거국정부는 NHS에 대한 백서를 발표하여 의료전문인 및 정당과의 토론에 들어감.

- 두 가지 원칙: 포괄적인 서비스와 무상의료
- 완전히 새로운 조직화가 아닌 점진적 접근방식, 보수당과 노동당의 관점을 화해시키려는 시도, 다양한 이익집단의 반대 최소화, 주요 정책 딜레마(국가 책임 정도, 지방정부의 범위와 규모, 자선병원에 대한 정부 지원, 의사결정에서 공적이 책임과 전문가 참여간 조정, 병원과 일반의 서비스의 통합 방법, 일반의 서비스의 현대화 방안)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
- 대부분의 이해당사자가 백서에 대해 불만을 표시함.

○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7월 노동당이 압도적인 지지로 집권함. 베번(Aneurin Bevan)이 보건주택부장관에 임명됨.

○ 1945년 10월 베번이 새로운 제안

- 국가가 책임지는 단일한 병원서비스체계를 제안: 자선병원과 지방병원을 국가적 서비스로 전환하고, 전반적인 재정을 중앙으로 전환
- 국유화는 모든 사람에게 통일된 표준에 가까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더 유리하다고 주장
- 전문의집단의 지지를 얻기 위해 교육병원을 보건부 직속으로 하고, 사적병상을 허용
- Central Health Services Council에 의사의 참여를 보장(다른 직종을 불허)
- 일반의 가 Central Medical Board에 소속되어 국가소속의사가 되거나, 지방정부에 직접 고용되는 위협을 제거

○ 1946년 12월 NHS Bill이 상정됨.

○ 1947년 의료전문직이 NHS 법안에 반대하였고, 베번과 BMA가 협상에 들어감.

○ 1948년 2월 BMA는 회원 전체 투표에서 75%의 지지로 NHS 안에 대해 반대를 결의함.

○ 1946년 5월 의사의 임상적 자율성 보장, 월급제 철회, 사적 의료에 대한 보장 등의 의사들의 요구조건을 베번이 받아들여 협상이 타결되어 BMA는 반대를 철회함.

○ 1948년 7월 5일 NHS 출범

	[김문성] 사유재산권 규제가 필요, [다함께]60호	박성인	2005/07/23

[이기수] 한 부동산 투기꾼의 고백…“2000만원 종자돈으로 300 억원 벌어” , [이코노미스트지]

박성인

2005/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