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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연대와 국제연대, 시민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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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5 23:4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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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정연 |
[너부리] 가랑비에 옷젖듯 각개격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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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에 옷젖듯 각개격파
| 잡기장 2006년 03월 09일 10:25 |( -_-)-b
붉은사랑님의 [오늘 여성노동자의 날] 에 관련된 글.
지금 진행중인 스크린쿼터수호투쟁은, 예컨대, 알엠이나 나루, 슈아같은 독립영화 여성 감독들이 제작하는 영화들에, 돈은 덜/안되지만 분명코 좋은 영화들(예컨대 영화제를 열심히 따라다녀야만 만나게 되는 그런 영화들)에 의무 상영일수를 주자는 이야기는 없다.
정규직/비정규직을 이간질시키는 자본의 농간이 너무나 잘 관철되고 있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정규직이 내일의 비정규직'이 되는 내일의 현실이 빤히 보여도, 그래서 점점 '정규직이 소원인 세상'이 되는 중이다 보니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를 얻어내기란 참말로 쉬운 일이 아닌갚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필요에 따라서만, 대상으로 동원될 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외롭고 힘겹고, 무시되기만 한다.
붉은 사랑의 글이 통렬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처럼, 여성들은 겁나게 남성위주의 '민주노동'투쟁/정치한다는 '세력'에게 표를 동원해주는 '대상'이상이 아닌 갚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모든 측면에서 여성들이 성적으로 대상화되듯이, '민주노동'정치질에서 여성은 '표'라는 형식으로 대상화 된다. '표'라는 형식이 아니면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넷 블질을 하다보니, 진보넷 블로그에 독립 영화 여성 감독들이 꽤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요짐 스크린쿼터를 둘러싸고 계속 반대투쟁이 진행중인데,
비정규직 노동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스크린쿼터를 수호함으로써 지켜지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스크린 쿼터 수호 투쟁은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에 대한 반대 투쟁과 반드시 연결되어야 할 텐데도 그렇지 않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 축적의 황금알은 영화, 미디어 산업이다.
그렇지만 '우리' 영화에 속하는 영화들은 대체 어떤 종류일까? '국민'들이 '우리 영화'의 '표'로만 동원되는 이 투쟁/상황에서, 나는 그 '우리'가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또 '우리 영화'에 속하는 영화들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물어본다.
지금 진행중인 스크린쿼터수호투쟁은, 예컨대, 알엠이나 나루, 슈아같은 독립영화 여성 감독들이 제작하는 영화들에, 돈은 덜/안되지만 분명코 좋은 영화들(예컨대 영화제를 열심히 따라다녀야만 만나게 되는 그런 영화들)에 의무 상영일수를 주자는 이야기는 없다.
여성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독립영화들, 돈 안되지만 훌륭한 영화들을 배격하는 '민주노동', 권리투쟁 운동들은 다 자본의 농간에 놀아난 다음, 자신들 역시 산산이 각개격파 당하고 말 것이다. 한 마디로, 자기보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 무시하고 억압하다가, 자기들도 그렇게 될까바 온통 불안에만 떠는동안, 자본과 권력의 각개격파는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진행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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