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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0 21:3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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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인 |
 [노동자정치신문] 자본주의 체제를 “갈아엎어야” 농민해방이 온다, 창간9호, 2005.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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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를 “갈아엎어야” 농민해방이 온다
<노동자정치신문>창간9호, 2005.11.02.
사실 노동자계급에게는 수입농산물이 싸다
“아무리 노력해도 턱없이 값싼 수입농산물 가격을 따라잡을 수 없음을 알았고, 더욱이 우리의 작은 농토는(평균1.3ha) 대수출국의 1/100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수입농산물은 여기저기 범람하였고 나와 우리 친구들은 이를 피해 이 작목 저 작목으로 틈새를 찾아 다녔지만, 그러나 항상 그 틈새에서 도망 나온 다른 동료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WTO에 전달한 고 이경해 농민열사의 공개서한 중에서)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한다. 공짜는 아니더라도 대형 할인점에서 초특가 ‘떨이’ 과일을 사기 위해 전쟁 같은 줄서기를 하면서도, 단지 ‘싸게 샀다’는 이유로 몇 십 분을 신나서 얘기하는 것이 우리네 노동자 가정이다. 여기저기서 웰빙이라던가! 우리도 몸에 좋다는 유기농산물을 먹고 싶다. 사실 눈 한 번 질끈 감고 간혹 무리를 해서 좋다는 먹거리 한 번 먹을라치면 값싼 먹거리 먹을 때보다 왜 그리 속이 불편한지.
이번에 열릴 국회에서 WTO 쌀 협상 비준안이 통과된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대번에 아내가 하는 얘기가 “쌀값 싸지겠네”란다. 맞는 말이다. 각종 “공과금이 얼마씩 올랐네”, “시장에 나가면 만원으로 살게 없네”하는 불평에 익숙해진 노동자들에게는 어찌 보면 수입농산물이 대거 들어와서 생활물가가 싸지면 그저 좋은 것이다.
이런 노동자 살림의 저편에서는 지난 9월 10일 농민대회처럼 “우리 쌀 지켜내라”, “쌀 협상 파기하라”는 목소리가 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성과 상여금을 준다며 업무평가를 할라치면 노동자들끼리 이미 자본가들이 정해준 떡고물을 더 받기위해 기를 쓰고 경쟁한다. 제 살 파먹기다.
수입 농산물이 더 싸게 들어온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노동자들과 이 때문에 매년 농약 먹고 자살하는 농민들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보일 수도 있다.
노동자와 농민은 더 싼 농산물 값으로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가? 대공장 노조가 이해관계를 절충하기 위해 나서서 단협에 사내 식당 재료를 우리 농산물로 써야 한다고 백날 요구한들 노동자와 농민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직 자본주의의 경쟁의 법칙이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생존권의 파괴에 맞서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국가에 맞서서 굳건하게 하나로 투쟁할 때만이 ‘진정으로’노동자와 농민은 서로의 경쟁을 멈출 수 있다.
농민은 자신의 염원과 다르게 왜 동요하는가?
노동자는 더 싼 임금으로, 농민은 더 싼 자신의 농산물 값으로 고통 받고 있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 이외에 그 어떤 생산수단도 가지지 않고 생산수단을 소유해서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자본가들에게 고용되어 착취당한다.
“노임은 노동자에 의하여 생산된 상품 속에 들어 있는 노동자의 몫이 아니다. 노임은 자본가가 일정한 양의 생산적 노동력을 사들이는 데 사용하는 기존 상품의 일부분이다.”(맑스, 「임노동과 자본」)
“자본가는 똑같은 양의 타인의 노동으로 보다 많은 양의 교환가치를 사들였지만, 그렇다고 노동에게 더 높은 액수를 지불한 것은 아니다.”(같은 책)
노동자의 노동력은 그 자체가 생산비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생산비를 낮추려 임금을 더 적게 주거나, 또는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를 높이면서 상대적인 잉여가치를 더 많이 가져가려 한다. 자본가는 이래저래 임금비용을 낮추려 한다. 노동자는 자신이 가진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에 애초 투자한 자본보다 항상 더 높은 이윤을 남겨야 하는 자본주의와 근본적으로 공통점이 없다. 그래서 때로는 노동계급의 개량주의 상층이 투쟁을 교란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이 사회를 변혁시킬 투쟁의 주체이다.
한편 농민은 자신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농을 제외한) 대부분의 농민은 이 생산수단을 가지고 시장에 자신의 생산물을 내다팔더라도 사실상 노동자의 생활수준이나 더 열악한 생활수준에 머문다. 농민은 자신의 생산물 가격이 높길 바라지만, 전 세계적으로 농업생산물 가격은 계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자본주의 생산의 법칙이 농업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농업 독점자본에 의한 발전된 농업기계의 사용과 효율적인 농업생산 방식의 적용, 농업에서의 규모의 생산 등으로 농업생산성이 현저하게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농업 생산물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노동시간이 현저하게 단축되어 개별 농업생산물의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그러나 남한의 대부분의 소농은 전세계 농업 독점자본의 발전된 생산력과 생산방식, 대규모 농업경영을 따라잡지 못하고 전근대적인 농업생산을 답습하고 있다. 전세계 농업 독점자본이 만들어낸 수입 농산물의 가격하락은 남한 소농이 생산한 농업 생산물의 가격을 점점 더 하락시키도록 만들고 있다. 수입 농산물이 대대적으로 들어오게 되면 남한의 대부분의 소농은 생산비보다 낮아진 농업생산물의 가격하락으로 인해 파산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농민은 자신의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그 결과물을 통해서 시장에서 ‘높게’ 평가 받고자 한다. 노동자계급과 달리 농민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의 이해관계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을 소유한 소부르주아로서 농민의 개인적인 염원과 달리 자본주의는 농민으로 하여금 자본가의 삶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농민을 절망에 빠뜨린다. 이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은 항상 농민을 동요하게 만든다.
여기에 자본의 세계화와 이에 따른 세계적 차원의 생산성 향상, 가격 경쟁은 농민에게도 ‘안락한’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투쟁의 길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은 우리 농산물 지키기, 식량안보를 외치면서 소유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매여 국가에 더 나은 협상을 원하고 있지만, 자본가들에게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대변할 국가가 필요할 뿐이다. 자본의 이윤 논리 앞에 ‘우리 것’, ‘국산품 애용’은 한낱 상품 판매를 위한 선전용 수사여구에 불과할 뿐이다.
농민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보다 안정적인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할수록 농민은 자신이 진정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남한 자본주의 자체가 현재의 농민을 몰락시키고, 길거리로 내모는 것을 본성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쌀 협상 비준안, FTA(자유무역협정) 등 농업 개방은 남한 자본과 국가의 요구다
이번 비준안의 내용만 봐도, 쌀의 관세화 유예 연장기한을 10년으로 하고, 쌀의 의무 수입물량을 2014년까지 8%로 확대하기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의무수입 물량의 최대 30%까지 시중 판매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쌀을 수입해 직접 시중 판매하는 방식이 아닌, 쌀을 원료로 하여 가공한 제품만 판매해 왔다. 이 외에 캐나다의 완두콩, 유채류 관세 인하, 아르헨티나의 가금육, 쇠고기 수입위험 평가 실시, 중국의 사과, 배, 체리, 리찌, 롱간 등 5개 과일에 대한 수입 위험 평가 실시가 합의되었다.
남한 자본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철강, 반도체, 자동차 등에 대한 WTO 참가국들의 관세 인하 등이 더 수지에 맞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는 남한의 농업에 대한 개방을 추진하는 것이다. 지난 한-칠레 FTA를 비롯한 각국과의 FTA에서도 남한 자본은 경쟁력을 가진 산업부문과 경쟁력이 없는 농업부문을 항상 맞바꿔 치기 해왔다. 그렇다고 남한 농업을 완전히 포기하고 내버려 두는 것도 아니다.
농업경영의 기본구조는 젊은 경영주를 중심으로 규모화와 전문화가 진전되고 있고, 농사 형태나 작목의 선택이 대내외적인 여건에 따라 경쟁력 있는 분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음 … 5천만 원 이상의 대규모 판매농가의 비중이 ‘95년 0.9%에서 2.2%로 증가하였음 … 농가의 경지 경영규모는 3ha 이상의 대규모 경지 경영농가가 증가.(통계청,‘농어업총조사’, 2001)
이렇게 남한 자본가 국가는 세계 농업자본과의 경쟁 격화라는 환경 속에서 대다수 소농을 파멸로 몰아넣으면서 남한 농업을 경쟁력 있는 대자본 중심으로 재편하여 자본주의적 독점 강화를 촉진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04년 12월 31일 현재, 농업법인은 5,492개로 2003년에 비해 1.1% 늘어났다.”(통계청, ‘농가경제조사’)
예를 들면 이미 수입개방이 가장 진전되어 있는 축산업 쪽을 보면 몰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농업자본가의 성장을 빠르게 성장시켜왔다. 축산을 위주로 하는 농가는 “72,000가구로 전체농가의 5.2%를 차지하며, 95년의 절반수준으로 감소하였으나, 축산농가의 사육규모는 대폭 확대”되었고, “축산 위주 농가는 타 분야에 비해 젊은 경영주 층이 많으며, 농축산물 판매금액 규모도 영농 분야 중 가장 높아 전업화 경향이 뚜렷”하다. 또한 남한 농업 전체적으로도 “판매금액 5,000만 원 이상인 대규모 판매 농가는 31,000가구로 5년 전(13,000가구)보다 2배 이상 증가”했고, 이 중 “27.9%는 경지규모가 5.0ha이상이며, 영농형태별로는 축산이 38.3%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논평처럼 ‘사대주의 외교’가 본질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의 세계화가 남한 자본의 철저한 이해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밀실협상(중국의 5개 과일과 아르헨티나의 쇠고기는 정부에서 알리지 않다가 추후 알려진 비준안의 밀실협상), 이면합의, 협상력의 부재를 성토한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국회에서 국정조사, 비준안 거부, 식량자급률 40%(현재 25.3%) 법제화를 주장하면서도 비준안 폐기, FTA 폐기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 협상들을 통해서 남한 총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챙기고 대규모 농업자본 중심으로 재편하려 하는 데 민노당은 농민을 파멸로 몰아놓는 자본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가 아닌, 남한 자본가 국가에게 더 능수능란한 협상력을 요구하는 것뿐이다.
민주노동당은 농업개방이 남한 자본과 국가의 이해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와 이를 능동적으로 조직하는 국가 철폐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그 결과 각각 드러나는 문제에 대한 ‘현실성 있는’ 정책대안을 중심으로 자신의 소부르주아적 정치를 표현하고 있다. 농민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안주하려 할수록 점점 더 자신의 몰락을 지켜볼 수밖에 없듯이, 민주노동당은 민주적 구조개혁에 따른 농업문제, 농민의 생존권에 대한 ‘방책’이 실패하게 됨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적 세계화, 농업의 독점화가 문제의 본질이다
농가의 경우 1970년 전국 557만 6천 가구 중에서 258만 7천 가구(46.4%)였지만, 1980년에는 796만 9천 가구 중 215만 5천 가구(27%), 1990년에는 1,135만 가구 중 176만 7천 가구(15.5%), 2000년에는 1,431만 2천 가구 중 138만4천 가구(9.7%)로 줄어들었다.(통계청, 농가경제조사 2003～)
남한 자본가 국가는 해방 이후, 농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경제개발계획’으로 자본주의의 발전을 추구해 왔다. 남한 자본가 국가는 저곡가 정책으로 노동자의 노동력의 재생산비를 낮춰서 저임금을 합리화했고, 이것은 다시 농민의 파산을 초래했다. 그리고 남한 자본은 농촌을 떠나온 몰락한 농민으로부터 저임금의 노동력을 충원해왔다. 그나마 농촌에 남아 있는 농민들은 농가부채에 시달리면서 지속적으로 생존권이 파괴당했다. 이는 국가의 비호 아래 산업자본이 축적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농업부문에서는 자본의 성장이 소농 중심으로 고만고만하게 유지되어 온 과정이기도 하다.
과거 97년 경제공황 이전에도, 남한의 산업자본은 WTO(세계무역기구)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던 관세인하, 외국인 주식소유 비율 확대, 공기업 민영화 및 해외자본 유치 등에 대해 ‘시기상조’를 들어 미적거렸다. 그러나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97-98년 대공황을 거쳤고 이 과정에서 남한의 시장은 급속하게 개방되었다. 그리고 이 경쟁과정에서 남한 산업자본은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구조조정, 경쟁력 강화를 해왔던 것이다. 그 결과 남한의 독점자본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경쟁력을 가져가고 있다.
농업부문에서의 자본의 세계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계 자본 간의 경쟁 격화는 단지 산업자본 영역뿐만이 아니라, 농업을 포함한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남한 농업자본은 세계 경쟁에서 너무 뒤쳐져 있으며, 이미 대규모화한 독점 농업자본이 형성되어 있는, 미국, 칠레, 캐나다, 호주 등의 농업자본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남한에서 농업 자본가들이 급속하게 늘어났지만, 평균 2～3억 원의 자본 출자와 8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수준에 그쳤다.
몰락하고 있지만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는 소농민들은 자기 밭뙈기 농사와 함께, 다른 농업자본가의 소작농을 하거나, 공장취업을 하는 등의 겸업농가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상 소농민들은 이미 상당부분 반(半)노동자화 되어 있다.
남한 농업은 세계적 차원의 생산성에 비교하여 낙후된 생산성의 격차를 급격하게 좁힐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다수 농민은 몰락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소농민의 몰락을 더 폭력적으로 진행시킬 것이다. 동시에 남한의 농업자본 독점화는 더욱 급격하게 진행될 것이다. 남한의 농민은 이 자본주의적 경쟁에 의해 몰락하지 않기 위해, 소자본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투쟁이 진정 농민해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현재 농민이 겪고 있는 생존권 위기의 본질을 명확하게 직시해야만 한다.
이번의 쌀시장 개방 문제에서도 농민의 생존권 박탈의 본질은 바로 자본주의적 세계화와 이에 따른 세계적 차원에서의 농업 경쟁력 강화를 요구받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현재 농민들의 투쟁은 바로 자본주의 체제와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본주의 국가를 향해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투쟁은 바로 반자본주의 투쟁일 수밖에 없다. 못 살겠다며 양파농사, 고추농사를 갈아엎는 것을 넘어서, 자본주의 체제를 갈아엎어야 한다.
결국 지금처럼 농민이라는 뭉뚱그려진 세력으로서가 아니라, 농업노동자, 겸업노동자로 통칭되는 반농민-반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만이 농민해방을 위한 유일한 길일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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