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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2 17:13: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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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인 |
 [장시복] 좌파 공황이론의 새로운 부활은 어떻게 가능한가? [월간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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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공황이론의 새로운 부활은 어떻게 가능한가?
장시복 서울대 경제학부 강사
[월간 말] 229호,
고성장과 저인플레이션이 결합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성장을 해온 미국의 신경제가 절정에 다다른 1998년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돈부시(R. Dornbusch)는 미국경제가 앞으로 영원히 호황만 누릴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미국 경제는 향후 몇 년 동안 불황을 겪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불황을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현재의 호황을 지속시킬 수단들을 갖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불황을 겪지 않을 것이다. 이 호황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1970년대 초 세계 자본주의가 심각한 공황에 들어서기 직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사뮤엘슨(P. Samuelson)도 세계경제가 고성장을 구가하며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렇게 말했다. “경기순환은 죽어 없어졌는가? 마치 현대 의학이 소아마비와 천연두를 인간생활에서 추방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현대 경제학도 경기순환이라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병을 영원히 치유하였는가?…경제학은 금융·재정 정책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작은 규모의 경기후퇴가 장기간의 대규모 불황으로 전개되는 것을 저지시킬 수 있다.”
공황 없는 세계에 관한 말잔치
경제가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시기에 경제학자들은 항상 확신에 찬 어조로 자본주의가 더 이상 골칫거리와 같은 공황을 겪지 않으면서 발전해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역사는 항상 이러한 경제학자들의 예측을 비웃어 왔다. 자본주의 경기순환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경제활동이 갑작스럽게 중단되는 공황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 것이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공황에 당황한 경제학자들은 경쟁하듯이 공황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 특별한 설명을 내놓았다. “1990년대 초 공황은 1980년대의 부주의한 대부의 결과였다.” “1980년대 초 공황은 1970년대 후반 과도한 정부지출의 결과였다.” “1970년대 중반 공황은 석유 가격의 급격한 인상과 베트남전쟁과 관련하여 인플레이션을 야기한 재정충당의 결과였다.”
딱딱하고 어려운 경제학 이론을 현란하게 구사하면서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한 예측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솔직한 자기반성을 하기보다는 과거의 문제를 제시하며 공황의 원인을 권위 있게 해석하는 자신들 본연의 지위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들은 공황의 충격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제안들을 수도 없이 세련되게 제시했다. 역사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이 반복되는 일상과 같다고 말하며.
끊임없이 공황에 시달리는 세계경제
경제학자들의 확신에 찼던 주장과는 달리 세계경제는 끊임없이 경제 불안에 시달려 왔다. 이것은 1970년대 이후에 나타난 세계 공황의 목록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여기서는 몇 가지 주요한 세계적인 공황의 사례를 들어 보도록 하자.
1973년 10월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석유위기가 촉발하고 1974년 여름 전 세계는 공황에 빠졌다. 1974~75년 공황에서 각국의 공업생산 감소율은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 이후 가장 컸다. 미국의 공업생산은 1973년 11월~1975년 4월의 17개월 동안 13.8% 감소했고, 서독은 1973년 12월~1975년 5월의 26개월 동안 12.3% 감소했으며, 영국은 1973년 10월~1975년 5월의 19개월 동안 11.0% 감소했고, 일본은 1973년 12월~1975년 2월의 14개월 동안 21.4 % 감소했다. 공황은 투자의 붕괴로 시작되어 이율 하락을 가져왔다.
1980년대 들어 전 세계는 또 다른 경제 불안에 휩싸였다. 우선 1980년대 초반 이자율 상승, 선진국의 경기 후퇴, 미국 달러 가치 상승 등이 결합하여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신흥공업국가들에서 외채위기가 발생했다. 1982년 8월 멕시코가 외채 지불을 포기하고 상환 조건 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멕시코의 외채 지불 포기는 남미의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어 원리금 완전 상환포기, 끊임없는 재협상, 지불 유예 또는 채무불이행의 상황에 빠져버렸다.
이 결과, 남미에 대부하는 일로 분주했던 주요 선진국의 은행들 다수가 위기에 봉착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진국과 주요 은행들은 상환 조건 협정의 일환으로 안정화 및 조정 계획을 통해 경제를 긴축시키고 개방과 민영화를 요구했다. 그 결과, 수입 감소로 이자와 원금을 갚을 수 있는 국제수지 잉여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외채국의 경제성장률은 하락했으며 선진국의 외채국에 대한 수출이 크게 감소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세계 경제는 불안정에 빠지게 되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세계 경제는 1987년 10월 19일 뉴욕증권시장에서의 갑작스러운 주가 붕괴로 다시 한번 술렁이게 되었다. 이날 다우공업 주가는 22.6% 폭락했는데, 1929년 10월의 주식시장 공황을 훨씬 능가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상장 주식의 시가 총액이 나흘 동안에 2조 8,000억 달러에서 1조 9,000억 달러로 감소했다. 또한 이러한 뉴욕증권시장의 격변에 영향 받아 런던과 도쿄의 증권시장 주가도 나흘 동안 각각 22%와 18%나 폭락했으며, 홍콩의 증권시장은 10월 20~26일 폐쇄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도 세계 경제는 경제 불안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야 했다. 1980년대 말 경기가 과열되었던 일본은 1990년대 초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붕괴로 시작하여 10년 동안 경기후퇴와 디플레이션, 실업과 도산의 증가, 금융불안이 해결되지 못했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으로 기록될 일본의 장기 불황은 세계 경제의 금융 불안을 강화하고 생산 위축을 가져왔다.
1990년대 들어 세계 경제의 불안을 가장 심각하게 반영한 것은 1997년 동아시아의 외환공황이다. 1997년 2월 지속적인 평가절하 압력을 견디지 못한 태국은 자국의 화폐인 바트화의 방어를 포기했고, 이에 따라 바트화는 대폭락했다. 바트화의 대폭락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로 빠르게 전파되었으며 10월 이후에는 한국, 홍콩, 대만으로까지 확산되면서 동아시아에 유례 없는 경제공황을 야기했다. 동아시아 전체로 확산된 경제공황으로 1997년 8월 태국, 10월 인도네시아, 12월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긴축정책과 구조조정정책을 실시했고 생산의 위축, 기업 도산과 실업, 막대한 공적 자금의 투입 등 심각한 경제 위축을 경험했다. 이외에도 세계 경제는 1998년 9월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 1998년 11월 브라질의 IMF 구제금융 요구, 2001년 아르헨티나의 모라토리엄 선언 등 끊임없는 불안정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까지 1970년대 이후 나타난 세계적인 공황만을 본다면 자본주의는 공황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며 공황이라는 두통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처방전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이론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해법이 제시되었지만 공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좌파 공황이론의 새로운 부할
신고전학파 이론에서 공황은 외부 충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시장 균형을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케인즈주의 이론에서 공황은 정부의 반주기적 정책을 통해 미세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으며 설령 공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개입을 통해 단기에 해결할 수 있는 과제로 여겨진다. 따라서 공황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황을 단순한 균형으로부터의 이탈로 보거나 정부 정책의 실패로 보는 견해는 주기적인 경기순환은 인정하지만 공황을 부정하는 논리로 연결되기 쉽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류 경제학자들이 호황을 구가하는 시기에 공황이 사라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좌파이론은 본질적이고 제거할 수 없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특징으로 공황을 설명한다. 이들에 따르면 공황은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자본운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 내재한 것이며 이윤율 저하와 자본운동의 갑작스런 중단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다시 말해 이들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생산에 내재하는 모순을 표현하는 공황은 자본주의적 확대과정의 일시적 단절과 이 단절된 확대과정의 재복구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이론에서는 끊임없이 공황이 발생하는 세계 자본주의를 분석하는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공황을 세계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는 좌파이론은 하나의 단일한 설명을 제공하기보다는 공황과 이윤율 저하, 공황과 과잉생산, 공황과 과소소비, 공황과 불비례, 공황과 노동과 관련한 과잉 축적 경향의 관계를 해명하는 다양한 공황이론을 발전시켜 왔다. 특히 이들은 자본주의 경기순환 및 이윤율의 주기적 운동과 관련된 주기적 공황을 해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에 따라 1960년대에는 과소소비 이론이 좌파이론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으며 1970년대에는 이윤율 저하경향이 정통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그런데 좌파의 공황이론은 세계 자본주의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공황의 경향을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기는 하지만 공황을 통해 자본주의가 새롭게 변화하는 현실을 설명하는 데에는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1945년 이후 세계 자본주의가 ‘장기호황’을 경험하면서, 자본주의가 주기적인 공황으로 경제 불안을 겪기는 하지만 공황이 극복된 이후 안정을 되찾게 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에 대해 좌파 공황이론은 무기력했으며 1970년대 이후 세계 자본주의가 장기불황에 들어서게 되자 이를 해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따라 좌파 공황이론은 최종적인 자동붕괴는 아닐지라도 장기침체나 축적모델에 입각해서 분석하는 ‘구조적 위기’를 설명하는 데 노력함으로써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려했다. 다시 말해 과거의 주기적인 공황의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보다는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인해 발생한 세계 자본주의의 장기침체가 좌파 이론의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좌파이론이 해명해야 하는 당면 과제는 자본주의가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유지되는 이유였으며 “축적모델의 구조적 틀이 어떻게 하여 점점 더 모순적인 방식으로 발전해 가며 어떻게 구조적인 위기로 전환하는가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모든 주기적 순환에서 발생하는 공황은 구조적인 위기가 일시적으로 만들어내는 공황으로 축소되었으며 모든 과제는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찾는 데 집중되었다.
이와 관련한 이론은 우선 이윤압박론의 형태로 제시되었다. 이윤압박론은 호황기에 노동력 부족이 발생하거나 노동조합 세력의 증대로 임금이 상승하여 이윤몫이 하락하기 때문에 이윤율이 하락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노동에 대한 초과수요에 따른 자본축적은 단지 단기에 이윤압박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장기간의, 체계적인 경기침체를 일으킬 수 없으며 경제투쟁에서의 노동의 승리는 상대적으로 국지적인 경향이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힘에 의한 이윤의 감소가 세계경제를 위기에 빠뜨릴 정도로 전면적으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윤압박이론과는 달리 브레너(R. Brenner)는 자본의 국제적 경쟁을 통해 1970년대 이후 장기침체의 원인을 설명했다. 브레너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장기침체는 전후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한 일본과 독일 같은 후발 선진국이 기술개발에 의한 저렴한 상품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미국과 경쟁하게 되고 이에 대응하여 미국이 투자를 다른 산업으로 적절히 이동하지 못하고 가격경쟁을 통해 일본과 독일의 경쟁을 극복하려 했고 이에 따라 과잉생산과 과잉설비가 재생산되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또한 브레너에 따르면 과잉생산과 과잉설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환율조정을 통해 미국 제조업의 상대비용을 줄이려 했기 때문에 이윤율 하락이 일본과 독일로 확대되어 장기침체가 지속되었다.
이러한 브레너의 주장은 커다란 논쟁을 일으켰다. 브레너를 옹호하는 입장은 1970년대 장기침체에 대한 연구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는 탁월한 저작이며 좌파의 논리적 오류를 반박하는 ‘명쾌한 분석모형’으로 묘사했다. 반면 브레너의 연구에 대해 반박하는 입장은 브레너의 연구가 기존의 연구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며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많은 오류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레너를 둘러싼 찬반논쟁은 누가 옳고 그르냐의 차원을 넘어서 좌파 공황이론의 새로운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공황이론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하여
그러나 지금까지 구조적인 공황을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좌파 공황이론의 새로운 부활을 가져왔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왜냐하면 구조적인 공황을 설명하는 이론은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를 해명하는 데 필수적인 세계화나 신자유주의, 초국적 금융자본의 운동을 세계 자본주의의 공황과 연관지어 해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구조적인 공황이론은 공황의 산물로 세계화, 신자유주의, 초국적 금융자본의 운동을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세계 자본주의 공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론적이고 역사적인 해명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의 이론은 금융부문이나 외환부문과 세계 자본주의 공황의 연관성을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하고 금융부문이나 외환부문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 문제는 좌파 공황이론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판단된다.
또한 주기적인 공황과 구조적인 공황의 연관을 이론적으로 해명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과제이겠지만,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전개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주기적인 공황과 구조적인 공황의 연관을 해명하려는 시도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주기적인 공황을 구조적인 공황이 일시적으로 만들어 내는 공황으로 축소함에 따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 나라들의 주기적인 공황의 고유한 특성이 무시되고 축소,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는 공황과 관련한 특성을 해명해야 하는 과제와 함께, 좌파 공황이론은 마르크스 방법론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공황의 구체적인 분석을 확보하는 문제, 특히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을 실증적으로 해명하는 문제, 공황이론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함의를 새롭게 변화한 세계 자본주의에 적응시키는 문제 등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오던 문제들을 해명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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