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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6 11:40:06
고양이
소백산 3부
역시 인간의 기억은 퇴행한다.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작년엔가 지리산에 갔다오고 우리 중앙위원 동지가 올린 지리산 산행기에 고무받아 나도 올려보려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도보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도보 여행기도 13일 중 2일치만 써놨다.
같이 간 친구는 벌써 '현미'에 3회에 걸처 13일간의 여행기를 다 토해냈는데...
기억을 더듬어 벌써 반년도 후딱 지나버린 여행기를 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메모만을 보면서 말이다.
여튼 소백산 산행기 3부를 쓰기 전에 끄적 끄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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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을 잃어버려 결과적으로 앞서 가던 나와 최초동행인은 주변 눈꽃 경치에 취해서 계단을 올랐다.
정상까지 나 있는 계단이었다.
올라가보니 3군데에서 올라오는 모든 길이 계단으로 되어 있다.
워낙이 산림 훼손이 많이 되어 계단을 만들어 훼손된 곳의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조치였다.
나의 최초동행인 말하길...
"이런 교육을 어려서부터 시켜야지 다 망가진 뒤에 이렇게 하면 어떻해."하며 불쾌감을 드러내신다.

예전에 올랐던 비로봉인데
언젠가부터 정상에 봉우리의 이름이 쓰여 있는 바위 앞에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가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기다렸다가 사진도 한장 찍고 했을텐데...
전체 6명 중 4명이 먼저 정상을 올랐다.
보이질 않는 은숙 선배...
그리고 주희도 보이지 않는다.
일단 오겠지 생각하며 4명이 돌아가며 디카에 얼굴을 박아 넣는다.
그때 나의 최초 동행인의 머리카락 한올한올이 눈을 맞아 백발이 된 것을 발견했다.
예술 사진을 찍네 마네 하며 디카를 들이댔다.
결국 한 장 찍어주고...

한 십여분 부산스럽게 정상에서의 기쁨을 만끽하고
시야가 구름에 가렸지만 크게 심호흡도 한번 해주고...
함께 올라왔던 나 빼고 두명의 여성이 화장실 가고 싶다며 하산을 시작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두 명 다는 아니었고 한 명이 그랬다.
그래서 유일하게 함께 온 남성동지가 보이지 않는 두 명을 기다리기로 했다.
순간 '나만 놔두고 간다'고 난감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 거를 신경 쓸 겨를이 없이 하산을 한다. 그만큼 급했던 게지.

내려가는 데 예전에 있다고 생각했던 대피소가 없다.
아마 이 길이 예전 그 글이 아닌가벼~
계속 가도 숨어서 일을 볼만한 장소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때 한 무리의 아줌마들이 우리를 유심히 보신다.
"여자 맞지? 남잔가?"
"뒤에 사람도 여자야!"
그렇게 안도를 하신 후 바지를 내리신다.
그것도 등산로에서...
서로 서로 막이를 해주면서 볼 일을 보시는 걸 옆으로 하고 내려갔다.
아 저런 방법도 있구만... 부러버라~

또 한 무리의 아저씨 아줌마들...
사발면에 물을 붓고 아침을 드시려는 모습이다.
우리가 가까이 갈 무렵 사발면이 뒤집어지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속으로
에고 아까워라...

어느 순간 나의 최초 동행인은 보이질 않는다.
아름다운 풍광에 넋이 나가 화질이 썩 좋지는 않은 자신의 카메라폰으로 이것 저것 찍어대신다.
친구와 나는 일단 부지런히 내려간다.
그러다 우측에 바위도 적당하고 산사태 방지 침목을 3단으로 박아 놓은 곳을 발견했다.
거기에 우리의 해우소였다.
앉았다 일어나니 눈 속에 크레바스가 생겼다.
눈으로 덮어도 다시 먹는다. 정말 크레바스같다. ㅋㅋ

그제서야 한 숨 돌리고 있는데 위에서 "옥순아~"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의 최초 동행인 목소리다.
"라면 먹어~"
배가 고픈 까닭에 씩씩대며 나와 친구는 다시 되짚어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니 아까 사발면을 엎으셨던 무리가 있는 곳까지 갔다.
거기엔 나의 최초 동행인이 변죽 좋게 사발면 한그릇을 얻어 드시고 계셨다.
셋이 돌아가면서 국물도 마시고 발 밑을 보니 과메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
"우와~ 과메기다..."
"아니, 서울 아가씨들이 과메기도 아네..."하며 신기(?)해 하신다.
그러시면서 직접 사다가 말린 것이라고 얇게 저며진 과메기를 키친타올 한 장 한장에 포개서 가져오셨다.
정말 배도 고프고 지난 노힘 연대의 밤에 나왔다던 과메기를 못 먹은 것을 생각하며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아주머니 한 분이 접시에 과메기를 다시 채워주시고...
계속 김에다 싸서 먹고... 멕여주고 하는 데...
우리의 또 다른 일행이 온다.

나중에 최초 동행인에게 들은 말
그 분들이 "아니 아가씨 혼자 이렇게 산행을 하네."하며 관심을 보이셨단다.
"배 안 고파?"하시길래 말은 안하고 불쌍한 표정으로 고프다는 고개짓만 했단다.
"사발면 하나 남았는데 먹겠어요?" "네... 근데 다른 일행이 있는데..."
"그래요? 그럼 불러요. 그래도 의리는 있네"
그래서 그 이후 들린 말이 위에 쓴 "옥순아~"였다.
아저씨들 신이 나셔서 함께 나의 고풍스런 이름을 부르시더란다.
나도 듣기는 들었다.

그랬는데 다시 또 다른 일행이 온 것이다.
순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시다.
근데 은숙 선배가 안 보이신다.
이십분이나 위에서 기다려도 안 오길래 내려왔단다.
주희가 기다리며 기다리며 같이 오려는데 '먼저 가라'고 짐짓 짜증(?)을 내길래 그냥 와버렸단다.
여활모 방에 길을 잘못 들어 그녀가 천동계곡으로 하산하다가 다시 올라오며 겪은 일들이 있으니 참고하시길...

"그래. 일단 과메기라도 먹어..."
그 순간 은숙 선배에 대한 걱정은 온데간데 없고 과메기에 집중해서 또 한 접시를 먹고 말았다.
그런 우리 땜에 하산 여장을 준비하시는데 애로가 보이자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쓰레기 담을 비닐봉투를 선물하고 추위에 얼어붙은 물티슈도 몇 장 드렸다. 그리고 귤도 3개.
그렇게 푸짐한 식사에 고작 드린 것이라고는 비닐봉투, 물티슈, 귤이었다.

은숙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불통이다.
그때 윗 쪽에 낯익은 복장과 외모를 가진 한 명이 내려온다.
"은숙 선배 맞아요?"
그렇단다.
주린 배를 채워주신 분들이 먼저 길을 떠나시고
우린 은숙 선배를 맞이했다.
천동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고...
땀을 그렇게 흘렸는데 소피가 마려웠다는 얘기...
정말 힘들어 죽겠다는 얘기...
우리는 그에 '이제 이은숙도 몸이 다 했구나. 언니는 소백산하고 궁합이 안 맞나봐.'란 얘기로 화답했다.

나의 최초 동행인은 은숙 선배가 온 것을 보고는 먼저 출발했다.
걸음이 느려 먼저 출발해도 추월당하신다.
담배 타임을 갖길래 나도 뒤를 따랐다.
역시 추월당하셨다.
하산 길의 경사가 급하긴 했어도 소백산 정상에 오르는 최단코스라 그런지 더 그런 것 같았다.
왼쪽으로 우리가 올랐음직한 능선이 눈에 들어오고, 하산길 양편으로 멋진 소나무들이 늘어 서 있다.
그때 암수 한몸인양 한 줄기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런 소나무에서는 풍겨지는 기가 대단하다.
기분인가?
나의 최초 동행인 또다시 카메라폰을 들이대신다.
내려오는 중간 중간 몇 번을 미끄러지시기도 했단다.
앞에서도 썼듯이 화장실 갈 맘은 급한데 '아무데나 인간의 냄새를 풍길 수 없어 더더욱 발길을 재촉하다가 당한 일'이었다.

내려와 하산주로 마신 소백산 검은콩 동동주의 맛이 정말 좋다.
몇 병 사간다고 생각한 나의 최초 동행인은 결국 잊고서 출발했다.
가는 차 안에서 안타까워 하는 한 숨이 차 천장을 뚫는다.
누구라도 소백산 갈 일이 있다면 꼭 한 잔 마셔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렇게 신년 산행을 마치고 왔다.
2003년도 태백산 산행에서처럼 추워 미칠 지경은 아니었다.
그때의 고통을 나름 동지도 기억하고 있으리라...
그때보다 훨씬 비싸서 좋은(잃어버린 줄 알았던 것을 찾음) 방풍/방수/방한 복을 입고 움직여서 그나마 덜한 고통이었다.
그래도 야간산행이라 덤으로 얻은 것은 아주 가까이서 선명하게 또렷한 북두칠성을 봤다는 거다.

산행 휴우증으로 두 무릎이 작살나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한 삼일 동안 무릎 보호대를 하고 다녔다.





   산행계획 알려주셈~ [4]

요꼬
2006/02/09

   소백산

leeus
200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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