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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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3 17:50:49
leeus
[2000.10.6]노동시간단축어떻게?...
노동시간 단축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나?
- 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 5일 근무를 향해!

이은숙(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기획실장)


1. 시작하는 말


90년대 들어서는 가장 크게 지난 98년부터 우리 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97년 경제위기와 함께 도래한 대량실업 사태와 그것을 심화 내지는 은폐화시키면서 전개된 구조조정 반대투쟁 과정에서 이 요구가 전면화된 것이다.
민주노총을 필두로 하여 노동자 쪽에서는 현재 '1주 40시간, 주 5일 근무제'를 목표로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이러한 요구는 무엇보다도 90년대 중반 이후로 격렬해지고 있는 자본측의 유연화 공세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것은 사회적 생산력 발전의 성과를 노동시간단축을 통하여 재분배함으로써 이 사회의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노동자와 민중의 실질적인 생활 향상을 추구하는 전망을 담고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현재 우리사회의 과제로 등장한 대량실업 해소의 유력한 방안의 하나이자 노동자간 차별을 철폐하는 중요한 하나의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선 노동자들의 요구는 현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자본간 시장확보 경쟁이 극을 달리고 있는 현대자본주의하에서 갈수록 노동조건이 차별화되고 실업·반실업 노동자층이 누적적으로 증대됨으로써 전체적으로 노동조건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논의는 점차로 설득력을 더해왔다.
그러나 자본측은 여전히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비용 증대를 가져와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자본측은 일상적으로 임금삭감과 생산성증대에 최대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만이 자본측의 이윤을 보장시켜주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그러한 자본측의 관심과는 전혀 상반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2000년 9월에 "앞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법정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보자면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싸고 최근 수년간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 투쟁과 논의들의 연장선에서 하나의 성과처럼 보인다. 그리고 법정 노동시간의 단축이 이제 바야흐로 현실화될 수 있을 것 같은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노동시간 단축의 내용이 아니고 오히려 상반되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는 고스란히 자본측의 유연화전략의 일환으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동시간 단축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그 효과가 손상되지 않고 의의를 획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노동시간 단축의 방향과 의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먼저 그 점에 대하여 살펴보고, 다음으로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방향을 검토하면서 노자간 쟁점이 정부안에 어떻게 각색되어 있는지,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다룬 다음,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과제를 추출하고자 한다.


2. 노동시간 단축의 방향과 의의


현 시기 노동시간 단축의 필요성과 의의는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로, 갈수록 악화되어 가고 있는 노동자와 민중의 생활조건을 개선할 필요성에서 찾아질 수 있다. 특히 오늘날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세계적으로 한편에서는 자본의 과잉축적이 다른 한편에서는 상대적 과잉인구의 누적이 심화되어 부의 양극화가 전면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노동자와 민중의 생존권을 방어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사회적 과제를 이루고 있는 이 시기에 노동시간의 단축은 자본측의 논리와는 정반대의 맥락에서 노동자·민중의 생존과 민주적 권리를 확보해 나가는 하나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현 시기 노동시간 단축의 필요성은 위와 같이 세계적으로 적용되는 일반성을 가지고 있다.
둘째로, 같은 맥락이지만 좀 더 들어가서 말하자면, 현 단계에서 자본논리 일변도로 전개되고 있는 사회의 재구조화에 대한 새로운 모색의 필요성 속에서 그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지금까지 축적된 '사회적 부' 내지는 생산력발전의 성과를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위치지울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운동을 그런 맥락에서 전개하는 것은 자본의 '경쟁의 원리'에 의한 사회가 아니라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의 원리'에 의거하는 사회로의 진보의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현 시기에 자본측은 자본축적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유연성'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측의 '유연화' 논리는 노동조합운동의 개량화 및 체제내화, 노동자운동의 분할과 정치적 무력화, 노동조건의 전반적 하락과 그것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간 구직경쟁의 가속적 촉발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지금 국내외 독점자본은 경제개방, 자유화, 유연화 등을 주장하며 구조조정을 전개시키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핵심적으로 고용유연성과 임금유연성을 추구하고 있다. 노동시간에 대한 유연성은 그 일환으로 병행되고 있고 그 제도화 형태가 '변형노동시간제'이다. 고용유연성에서는 노동자 파견과 정리해고제, 임금유연성에서는 성과주의적 임금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한 '유연성'들은 노동자와 민중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첫째, 일차적으로 노동조건의 개선을 추구하는 노동조합운동 등 노동자·민중 운동은 자본의 이윤을 압박하므로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지 않는 한 인정할 수 없다는 것. 둘째, 자본이 요구하는 데 따라 노동자와 민중의 일정 부분은 '상대적 과잉인구'로 존재할 것, 즉 실업·반실업층으로 항상 남아서 취직경쟁을 벌여서 자본측이 노동조건을 악화시켜도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순응할 것. 그럼으로써 셋째, 자본이 자기재생산을 할 수 있는 이윤율을 보장할 조건을 만드는 것, 즉 노동조건의 저하와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실업상태와 고용상태를 오락가락하면서 불안정한 생활조건을 감내하는 것.
우리나라에서 지난 97년부터 98년에 걸쳐 변형노동시간제, 정리해고제, 파견노동제 등이 법제화 된 것은 자본측의 그러한 논리가 관철된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고 있듯이 위와 같은 법들이 채택되는 것과 동시에 각 기업들은 감원과 정리해고에 힘을 받게 되었다.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를 줄이고 신규채용시 정규직보다는 다양한 형태로 비정규직을 채용하였다. 그 결과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현재 최소한 70%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비정규직 중에서도 상시적 고용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일시고 및 일용고 형식의 비상시고적 고용계약자들의 비율이 크게 높아지게 되어 비정규직 노동자 내부에서도 노동조건의 분할과 하락이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점들은, 현재 정부 통계에 잡히고 있는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상시고의 비율이 50% 이하로 떨어지고 임시·일고 등 비상시고의 비율이 오히려 53%에 가까워지고 있는 등 상시/비상비 비율이 역전된 것에서도 일부 드러나고는 있지만, 정부통계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현상을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본질적으로 자본의 '경쟁원리'가 초래하고 있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기본적으로 그동안 축적된 사회적 부를 재분배함으로써 노동자와 민중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그 생존권을 보장할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야만적인 경쟁의 원리를 인류의 진보를 위해 노동자계급의 연대와 단결의 원리로 대체시켜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축적된 사회적 부를 사회화시키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현 시기의 생산력 수준에 맞는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 인상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거기에 소요될 재원은 국가가 조성하여 충당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노동시간의 단축의 결과는 1인당 1일 노동시간이 실질적으로 짧아지는 것이어야 한다. 각자가 자신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노동시간 단축은 첫째로, 노동자와 민중의 필요노동시간, 즉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생활수단을 확보할 수 있는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고 스스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시간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현실에서는 고용노동자의 노동을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경감시키고 상대적 과잉인구로 일자리 주변을 배회하면서 노동자간 구직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지위로 떨어져 있는 실업·반실업 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를 의미한다. 동시에 둘째로, 자본의 이윤추구 논리에 의하여 다종다양하게 분할되어 있는 노동자 내부의 각종 차별 근절과 노동조건의 전반적인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 셋째로, 사회적으로 타인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불로소득자들의 비중이 줄어들고 노동의 보편화가 가능해지며 동시에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독재를 종식시킬 수 있다.
위와 같은 의미에서의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의 양적인 길이뿐만 아니라 질적인 길이도 줄여야 한다. 노동시간의 질적인 길이는 노동강도를 말한다. 만일 노동시간이 하루 8시간에서 하루 7시간으로 단축된다고 할 때 그와 동시에 노동강도가 대폭 강화되게 되면 노동시간의 실질적인 단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노동강도의 강화는 노동자의 노동력 지출이 더 늘어나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노동시간의 양적인 길이가 줄었어도 새로운 노동자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시간의 양적인 길이가 줄어들어도 노동강도가 강화되면 노동자가 일하는 데서의 노동력 지출은 짧아진 시간 속에서 더 많이 이루어져서 노동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노동자 건강을 훼손시키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보면 소위 말하는 고용창출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되는데, 그 이유는 기존의 일감을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새로운 노동자에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강화시킴으로써 기존의 노동자로 커버해버리기 때문이다.
동시에 노동시간 단축은 전국적/전산업적으로 동시에 적용되는 방향에서 일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요컨대 전국/전산업을 포괄하는 법정노동시간의 단축과 함께 그 적용범위 및 시기가 통일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 방식이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가 자본측의 유연화 논리로 귀착됨으로써 노동조건의 저하, 나아가서는 노동자와 민중의 삶의 피폐화로 이어지는 악순환고리를 끊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별 내지는 부문별로 시차를 두거나 기업규모별로 시차를 두는 등의 차등 적용은 그 기간 동안 자본측이 노동조건을 저하시킬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더욱이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는 전체 노동자와 민중의 삶에 고루 혜택을 주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비정규직까지 포괄하는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동반상승되는 조건이 충족될 때 노동시간 단축은 비로소 그 의의를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3.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전개와 쟁점


우리나라에서 노동시간 단축운동이 직접 대중적 투쟁 요구로서 등장한 것은 87년 대투쟁 이후의 일이다. 87년 대투쟁 당시 노동자계급의 두 가지 핵심적인 요구는 '노동악법 철폐'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적 권리확보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철폐'를 중심으로 하는 생존권 확보였다. 이것은 "노동 해방과 평등세상 건설"이라는 슬로건으로 압축되어 1990년 1월 건설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에 의하여 노동자계급의 주된 지향점으로 자리잡았다.
87년 대투쟁 당시 그러한 노동자들의 요구는 1989년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하여 주48시간에서 주44시간으로 법정노동시간이 단축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당시에 그 법은 적용범위와 시기를, 300인 이상 사업장을 기준으로 하여 3년이라는 경과기간을 두어 "단계적"으로 정함으로써 적어도 고용노동자의 80% 이상이 3년 동안 적용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는 적어도 변형노동시간제와 정리해고제 및 노동자파견제 등이 인정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법정 노동시간의 단축은 노동조건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가 있었다.
그로부터 10여년 후인 90년대 후반기에 들어 현단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 문제는 1주 40시간제 실시이다. 그런데 지금은 변형노동시간제 등 자본의 유연화전략을 지원하는 각종 제도들이 법적으로 인정되어 있다. 이를테면 박정희 정권때 존재했던 변형노동시간제의 경우 전두환정권때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영삼정권때 부활된 것이고, 김영삼정권때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으로 적용유예시켰던 정리해고제가 김대중정권에 의하여 즉시적용될 수 있게 되었다.
앞에서도 간략하게 언급하였지만, 현단계에서 자본측은 전면적인 유연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정부는 그러한 자본측의 논리를 소위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강화 논리를 통하여 옹호할 뿐만 아니라 노동정책 및 경제정책의 핵심점으로서 수용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 점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구조조정 정책과정을 통하여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싸고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은 역시 노동자계급과 자본측이다. 기본적으로 노동자쪽은 단축하자는 것이고 자본측은 단축반대를 기조로 한다. 자본측은 일견 "검토하자"는 입장을 내고는 있으나 단축반대기조가 폐기된 것은 아니다.
쟁점의 핵심은 임금과 이윤문제이다. 적용대상과 범위 및 적용시기 등도 문제가 되고 있으나 그것도 결국은 임금을 적게 줌으로써 이윤을 늘리고자 하는 자본측과 임금 등 노동조건을 악화시켜서는 안된다는 노동자쪽 논리가 그러한 쟁점들의 배경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기본 축으로 해서,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싸고 있는 각종의 논쟁점들이 첨가되고 있는데 이하에서는 그 점을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 방안들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의 방안에서 핵심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가 연간 단위의 노동시간 단축을 적용범위와 시기에서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을 밝히고 있는 점인데, 그것은 자본이 현시기에 요구하고 있는 노동자의 시간'유연화'와 노동자의 임금'절감'이 노동시간단축과 관련한 정부정책의 핵심목표임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연간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시간기획에서 사용자에게 더 높은 수준에서 더 많은 유연성과 재량권을 부여하게 된다. 그래서 자본측은 기준노동시간을 1일 노동시간보다는 주당 노동시간을, 주당 노동시간보다는 월간 노동시간을, 월간 노동시간보다는 년간 노동시간을 더 선호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본측의 재량권, 즉 이윤의 근원이 되는 부불노동시간 즉 잉여노동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고자 하는 의욕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연간 단위로 노동시간 단축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는 것은 자본측이 시간유연화를 추구할 가능성을 한껏 높여놓는 하나의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의 근거는 민주노총 등 노동자 운동에서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시간 노동'인데 그 원인이 되는 점들을 내용상으로 상당히 호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장시간 노동의 큰 원인 중 하나인 초과노동시간 문제에 대해 시간외 노동 상한을 낮추거나 휴일 휴가 사용을 의무화한다는 등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데서 우리는 그 점을 잘 볼 수가 있다. 여기에서 정부는 마치 임금(돈) 문제를 문제삼지 않고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일견 임금문제와 무관하게 일체 임금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있지만, 그 내용은 실은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시키면서 자본측의 임금부담을 경감시키는 방안이다. 그럼으로써 정부는 기실 자본측의 임금삭감 논리를 수용하고 있는데, 그 점을 중립자적 외양을 통해 숨기고 있다. 요컨대 정부가 초과노동시간 등 장시간 노동의 원인을 노사양측 모두의 책임이라면서 정부 자신은 마치 중립적인 제3자의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은, 장시간 노동이 원천적으로 인건비를 줄이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자본측에 의하여 주어진 문제라는 점을 은폐하면서 자본측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노동시간을 실질적으로 단축하는 지름길은, 노동시간의 길이 그 자체를 안팎으로 줄여야 한다. 현재 1일 8시간 기준인데 그것을 1일 7시간 혹은 7시간30분으로 줄임과 동시에 그 줄어든 시간이 노동강도 강화나 생산성 향상으로 인하여 자본측이 의도하는 잉여노동시간의 증대로 귀결되게 해서는 안된다. 그 결과로서 주당 몇시간 노동이라는 것이 상정되어야 할 것이다.
중단기적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현실에서 일차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실업해소와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목표는 하나로 통합되는데, 한국사회 현재의 일하는 사람들 전체의 노동조건 개선이 그것이다. 물으나마나 대량실업과 비정규직 확대는 노동자 전체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객관적인 조건으로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둘러싸고도 논쟁점이 형성되어 있다. 그다지 정식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논의의 전개과정에서 이른바 '고용창출형 구조조정'을 위해서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논리가 제출된 바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주제를 가지고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정당성을 설명하고자 하지만 '고용창출형 구조조정'이라는 것은 노동자가 추구할 목표라고 하기 어렵다. 그것은 그 자체가 형용모순이거나 정부의 논리와 다를 바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의미는 이미 국가 및 기업의 경쟁력 강화논리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 때문이다. 그 논리에서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에 대하여 '인원감축형 구조조정'으로 규정하고 이를 '고용창출형 구조조정'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이 기본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되고 있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더 문제는 그러한 정부의 논리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 논리이다. 정부는 노동시장이 한껏 유연해져야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고용창출형 구조조정' 주장은 이런 의미에서 자본의 '유연화' 전략에 대한 아무런 대응이 되지 못한다. 더욱이 그러한 유연화 전략으로 인하여 노동조건이 전반적으로 하방이동하고, 또한 세계적인 자본간 경쟁에서 한국자본이 경쟁력 우위를 차지하여 시장을 더 많이 차지하여 판매처를 대폭 확장함과 동시에 거기에 내다 팔 상품의 생산지를 한국으로 해서 국내 노동자를 더 많이 고용해야만 달성될 수 있는데 그 가능성은 전세계적으로 격화된 자본간 시장쟁탈전 속에서 국내 독점자본이 국내 노동조건보다 더 낮은 비용만 있으면 되는 다른 나라로 생산을 이전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관철될 때만 주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지금 조건에서 그런 불확실한 가능성을 점치면서 노동자계급에게 현재의 실업사태나 급속한 비정규직화를 감내하라고 설득할 수는 없다. 지난 3년 동안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고용창출형 구조조정'이라는 것은 자본측의 경쟁력우선 논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형용모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이 '고용창출형 구조조정'의 맥락에서 제출되는 노동시간 단축 주장은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일차 관심이 아니라 구조조정이 일차관심이 되어 있는 점이 결정적으로 정부 및 자본측과 같은 맥락에 서 있는 점을 역으로 증명시켜주고 있다.


4. 맺는 말: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과제


그렇다면 지금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이 사회의 현실 속에서 노동시간은 어떻게 단축되어야 할까?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현재 법제도를 마련하는 국면에 와 있지만 앞에서 간략히 살펴 보았듯이 무수한 쟁점들이 가로놓여 있고 그 핵심에 노동자쪽과 자본측간에 사회를 바라보는 눈에서부터 목표, 방식, 내용 등의 화해할 수 없는 입장차이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될 지, 과연 노동시간 단축 그 자체의 법제화는 가능할 지 아직까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노동자운동이 추구하여야 할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목표를 보다 분명히 하고 그 방안들을 마련하여 나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앞에서 제기하였듯이 노동시간 단축은 현실에서의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재기획하는 것임과 동시에 미래 사회를 열어갈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으로서의 의의를 충분히 살려나가는 방향에서 1일 노동시간의 단축을 기본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관련하여 몇 가지를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이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우선, 변형노동시간제와 정리해고제 그리고 파견노동제를 철폐하는 요구를 동시에 제기할 과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들이 법으로 강제되고 있는 한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는 자본측으로 귀속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변형노동시간제 등 자본측의 유연화 논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을 폐지하여 나가는 연장선에 노동시간 단축운동이 놓여져야 한다.
둘째, 첫째항의 맥락과 이어지지만,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현재 자본측이 요구하고 있는 '유연화'와 '구조조정'을 거부하는 차원에서 조직될 필요가 있다. 소위 '민주적 구조조정'이니 '고용창출형 구조조정'의 연장선에서 논의되는 노동시간 단축이란 그 결과가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로 귀결될 수 없다.
셋째, 노동시간의 길이는 1일 8시간에서 그 이하로 단축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 시간기획은 사람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일과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1일은 24시간이다. 노동자는 그 이상으로 하루를 가지고 있지 않다. 노동자뿐 아니라 다른 모든 계급이 마찬가지다. 왜 노동자의 하루가 일주일 단위로 짜여져야 되는가? 1일 8시간 쟁취를 위해 투쟁하였던 19세기 노동자들에게서 그래서는 안된다는 기본 교훈이 이미 제기되어 있는 상태다. 노동자는 하루 8시간 일하고 8시간 휴식을 취하고 8시간 잠을 자야 된다는 것이 그 당시 8시간 쟁취투쟁의 정신이었고, 그때의 생산력 수준이 그것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20세기초 케인즈는 이미 계산했다고 한다. 20세기말에는 노동자들이 1주 28시간 정도만 일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실제로 계산하고 있지는 않지만, 마이크로 전자혁명에서 시작된 현대의 과학기술혁명으로 인하여 주28시간 노동도 자본측에게 엄청난 잉여노동시간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주5일제근무'를 주장할 때도 경계할 점이 있다. 1일 노동시간이 만일 자본측의 요구에 의하여 10시간일 때도 있고 7시간일 때도 있게 되는 변형노동시간제 하에서는 주당 평균 기준노동시간이 40시간이라고 해도 노동자에게 노동시간단축으로 인한 건강한 삶의 권리가 보장되기 어렵다. 따라서 1일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한 노동시간 단축운동이 보다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넷째,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경쟁력 논리'를 대체하는 노동자의 '연대의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현실에서 적용범위 및 적용시기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비정규직을 포함하여 전체 노동자에게 노동시간 단축의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노동시간 단축의 혜택은 노동자와 민중에게 귀속되지 못할 것이다. 특히 그 폐혜는 미조직부문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노동자간 분할과 내부 계층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며, 그로 인해 노동자 중에서도 유력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 못한 층, 이를테면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상대적으로 더욱 열악한 수준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자본측의 움직임 속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자본간 경쟁의 과정에서 독점자본의 거대규모화가 계속 추진되고 있는데, 그로 인해 대규모 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한 절대다수의 노동자가 그러한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사회적 생산력 발전의 결과물이 실업·반실업 인구의 누증으로 되어 나타나는 현실을 지속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임과 동시에 새로운 사회전망을 세워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여기에 노동시간 단축운동이 하나의 사회운동으로서 크게 자리잡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사회적 시간의 재구성을 동반할 것이다. 그 방향이 어떻게 잡혀나가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사회의 진보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결정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노동조건이 훼손되는 차원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도모되고 있다면 그것은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와 민중을 기만하는 것이 되며 실질적으로 노동시간의 단축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미래는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하나의 유력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2000.10.6.)


김영선 (2004-12-23 18:02:02)

감사합니다. 오늘 밤까지 올려주신다고 했는데,ㅎㅎ
다음에는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선생님께서 하시는 팀? 모임이
송년회이후 조기에 다시 성사되었으면 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김영선(culmin@hanmail.net)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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