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은숙
◎ 작성일:2000.07.30(일)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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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동 무임금' 입법화가 지닌 문제
지난 3월10일 국회에서 재개정된 새 노동법에는 '사용자는 파업기간 중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하고, '파업기간 중 임금'을 관철하기 위한 쟁의는 금지하며, 위반할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이라는 처벌 규정이 들어가 있다. 이른바 '무노동 무임금' 조항이다. 이 '무노무임'이라는 것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폭발적인 노동조합 결성과 파업의 확산, 그리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건설로 이어진 80년대 후반기 이래 정부와 자본측이 노조활동의 활성화에 대응하여 내놓았던 것이다. 이것은 88년 당시 일부 사업장에서 사용자측이 파업기간 중 임금을 통상적인 임금으로서 지급하지 않고 상여금과 특별수당으로 대치하여 지급하면서 급격하게 쟁점화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자본측이 공식적으로 '무노동 무임금'을 하나의 '원칙'이라며 들고 나온 것은 89년 하반기다. 노동부는 89년 10월17일 '무노동 무임금'을 "법제화 또는 관행화 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하였고, 12월9일의 '경제장관회의'를 거쳐 90년 1월29일의 '노동부 전국기관장회의'에서는 지침으로서 이를 적용하도록 지시했다. 정부의 이러한 공식적 방침을 등에 업고 자본측도 이를 '경영계 지침'으로서 공식화하게 된다. 즉 전노협 건설에 매진하고 있던 노동조합운동의 움직임 속에서 자본측은 89년 11월에 '전국경제단체협의회'(경단협)를 결성했는데, 이때 경단협은 지침으로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 경영·인사권에 대한 노조배제 방침'을 고수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런데, '파업기간 중의 임금 지급'은 해방 이후 87년까지 정부와 자본에 의해 관행화되어왔던 것이다. 즉 첫째, 역대 정권들은 경제정책으로서 완강히 '저임금정책'을 추구해 왔고, 둘째, 노조운동을 이승만 정권 때는 국가보위법, 박정희 정권 때는 유신 긴급조치, 그 이후에는 국가보안법 및 집시법, 일반 형법, 노동관계법 개악 등으로 계속 억압하고 짓눌렀으며, 노동조합비 상한선 규정과 노동조합의 기금모금 규제 등을 통해 원천적으로 노동조합의 활동과 재정적 자립을 봉쇄하여 왔다. 그 결과 노동조합은 파업기금은커녕 노조전임자 임금이나 조합원 후생복지비도 조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오면서, 87년 이전까지 정부는 노조전임자의 보수를 사용자가 지급하도록 오히려 권장해왔으며, 파업기간 중의 임금에 대해서도 사용자가 지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생활이 보장되지 못하는 낮은 임금수준과 노동력의 부족(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70년대를 거치면서 산업화 초기단계의 노동력 부족기를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노조활동과 노조의 재정자립을 차단한 정부의 억압적 노동정책으로 인해 노조는 파업기금을 조성할 수 없었고, 고용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자가 파업기간 중 임금을 지불했던 것이다.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것은 말그대로 '노동하지 않으면 임금이 없다'는 것이다. 임금이 '노동력의 대가'라는 상식을 다시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그것이 '원칙'이라면 왜 87년 이전에는 들고 나오지 않았을까? 그것이 87년 이후 이렇게 쟁점화하게 된 것은 명백히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에 기인한 것이다. 즉, 노동자들의 폭발적인 파업과 노조운동 활성화로 인해 그 이전까지는 죽어 있던 '노동3권'이 투쟁의 힘으로 살아나게 되면서 임금수준의 향상, 사회적 정치적 의식의 각성, 민주노조의 전국적 조직화를 쟁취하게 되자 다시금 억누를 필요를 느끼게 된 때문이다.
'파업기간 중 임금지급 의무가 없다'고 법에 명시된 '무노동 무임금' 논리는 사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현재 기업별 노조로 조직되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결국은 노조활동을 옥죄겠다는 명시적 표시인 것이다.
어쨌거나 88년부터 일부 적용되기 시작한 소위 '무노무임'은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노동부 지침과 경단협 지침을 들이밀면서 개별 사업장에서 사용자들은 '무노무임'을 '원칙'이라고 우기기 시작하자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대응하였다. 이로 인해 파업은 장기화하고 악화되었다. 어떤 사업장에서는 조합원총회에 대해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했고, 어떤 사업장에서는 단체협약이 체결된 다음에 조합원총회에 무노동무임금을 적용하려다가 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받아 이를 철회하기도 했다. 대부분 '무노동 무임금'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저항 때문에 변칙적으로 특별 보너스나 '생산장려금' 등의 명목으로 파업기간 중 임금을 보전해 주었다. 결국 '원칙'이라고 하여 '지침'으로 강제하려던 무노동무임금이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별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게 되자 정부와 자본측은 이를 법으로 명시하여 강제하고자 했고, 결국에는 이번 노동법에서 그 의도를 관철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파업시 대체근로를 허용한 점이라든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 등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된다. 결국 노조활동과 노동3권의 명백한 제약조항들로서 87년 이후의 노동운동 과정에서 정부와 자본의 의도를 무력화시켜온 내용들을 이번에 모두 정부와 자본측의 의도대로 법제화한 것이다. 따라서 3당이 합의하여 노동법개정안은 통과시켰지만 이것은 명백한 개악이라고 간주되고 있으며, 노동법개정투쟁이 이제는 새로운 국면에서 다시 시작되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과제로 남았다. 이번 노동법에 대해 노동계가 임단투 과정에서 대대적인 '노동법 불복종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은 이번 법개악 과정에서 볼 때 거의 필연적인 귀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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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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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무노동 무임금' 입법화가 지닌 문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