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은숙
◎ 작성일:2000.07.30(일)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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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론'을 이렇게 생각한다
1997.4.12
작년 하반기,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나돌고 있는 '경제 위기설'은 본질적으로 다음 두 가지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한국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지배세력의 현재 상황이 '위기'적 상황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이고, 또 하나는 그들이 '경제위기'를 강조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사회적/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하는 이데올로기적 공세의 문제이다. 이 두 가지는 결국 하나의 문제임에 분명하다. 현실의 정세는 노동과 자본의 세력관계에 의하여 규정되기 때문에, 그리고 경제과정도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경제위기설'은 본질적으로 그 경제를 주도하는 세력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경제위기를 강조하면서 이득을 보는 세력도 그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주도하는 지배세력만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외의 '국민'이 다종다양한 형태로 현실의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위기설'이 나올 때마다 전국민이 긴장하게 된다. 이유는 위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경기침체, 경제불황'이 실생활에 영향을 주고, 그러한 틈을 비집고 '위기론'이 견고하게 달라붙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가 불황기일 때 지배세력의 '경제위기설'은 일순 '여론'의 힘을 받게 된다.
현실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설 때 특히 강하게 유포되는 이러한 '경제위기설'은 기실 자본의 축적 위기 혹은 자본의 이윤율 하락 문제와 관련되어 있지만, 이러한 성격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숨겨져 버리고, '경기불황'을 나타내주는 각종 지표들만이 표면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불황 지표'들을 앞세우고 자본의 이데올로기로서 '경제위기론'이 현상하는 것이다. '이윤율 하락' 경향이 심각해지고 있다면, 자본은 가령 지금까지 이윤100을 가져갔다면 80만을 가져가는 일을 감수하고, 나아가 나머지 이윤의 나머지 일정부분을 사회에 환원하여 경제 전체를 부양할 수 있는 투자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그리하여 경기순환의 흐름을 전체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에 기여하도록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세계경제는 바야흐로 '미친듯이' 특히 독점자본간 경쟁의 논리(이른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가 지배하고 있고, 그 와중에 한국의 경제를 좌우하는 독점자본이 끼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자본은 '위기'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 '위기'냐 아니냐를 논할 때 관변기관에서 뿐만 아니라 관변기관이 아닌 곳에서도 대부분 '이윤율'이 아니라 '경기불황의 지표들'(이를테면 성장률, 국제수지 등등)을 동원하고 있다. 그 지표들에 대한 해석의 차이와, '위기'에 대한 개념적 혼선이 있지만, 요즘 '경제위기론'을 둘러싸고 논의되는 내용들은 대부분 이러한 경기불황의 지표들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을 통해 보면 한국경제는 현재 '불황기'에 처해 있다. 국제수지가 악화되어 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수출 주종 품목(이를테면 반도체)의 수출경쟁력 상실 등 '국제경쟁력'이 '악화'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논리적 귀결은 한국경제는 '위기'라는 것이다. 이렇게 나오게되는 '위기론' 속에는 따라서 어느 세력이 '위기'를 외치고 있는지, 그 '위기'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낸 것인지, 그 '위기'의 책임은 어느 세력이 우선 담당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극히 불분명하다. 그저 '경제가 위기니까 각계각층의 전국민이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대의 아닌 대의만이 난무하게 된다. 여기에는 노동자는 물론이고 국민 전체를 동원하고자 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적 목표가 숨겨져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실의 경제상황이 '불황'이고 순환적인 '경기침체기'라면, '경기침체기'를 맞아 자본이 지금까지 획득해갔던 이윤이 100이라고 할 때 이제는 80 이상은 획득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본에게 '이윤율 획득'에서의 '위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때 자본이 취하는 태도를 보면 우선 즉각적으로 노동자의 임금에 대한 공격부터 시작한다. '고임금' 때문에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거나, 노동시장이 너무 '경직'돼서 인력이 부족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못해 '비효율'이라거나 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이윤율(흔히 기업의 수익률이라고도 이야기되는데) 하락은 감수할 수 없다. 노동자가 임금 요구를 자제하고 일만 더욱 열심히 해서 생산성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니냐, 혹은 전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것이나 진배없다.
'경제위기론'은 현재 지배세력이 전국민에게 가하고 있는 엄청난 폭력이 되고 있다. 지난 3월에 개정된 노동관계법이 정부와 자본의 '경쟁력 강화' 논리를 관철시키면서, 이 폭력은 제도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하다못해 '평범한' 보통 학자들도, "정부와 재계가 '경제위기론'을 너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국민 전체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 현재 한국경제의 상황을 다소 오용될 소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객관적인 지표를 통하여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고, '자본의 이윤획득'에서의 '위기'인지 아닌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세계경제의 흐름과 현정부의 경제정책 및 자본측의 전략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국민 전체의 삶의 수준을 촛점으로 하여 불황기에 대한 전혀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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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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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4] '경제위기론'을 이렇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