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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엥겔스원전읽기(수) 세미나/연구팀 > 기초세미나 > 맑스엥겔스원전읽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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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8 19:38:33
혜윤
프랑스 내전 첫번째 초고 세미나 다시합니다!
글이 안 올라와있네요.
11월이 다들 바쁘신줄은 알지만, 이번주에는 꼭 참석하셔서 활발하게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브뤼메르 18이하다가 갑자기 프랑스내전이 나와서 맥락이 이해가 안가는 분들을 위해 어느 논문에 나와있는 상황설명 아래에 약간 올립니다. 그럼 수요일에 꼭 뵙지요!

<꼬뮌이 나오기 전까지...>
1869년 선거에서 위기에 직면했다가 이듬해 국민투표에서 자신을 얻은 루이 나폴레옹은 보나빠르트 국가의 위신을 단번에 만회하고자 보불전쟁은 시작, 그러나 1870년 9월 2일의 스당에서의 프랑스군의 항복으로 제 2 제정은 붕괴되었다.
프러시아 군대가 파리의 문전을 위협하는 이러한 긴급상황에서 파리의 민중은 그 대표들로 하여금 방위정부를 선포케 하였다. 또한 프러시아 군대로부터 파리를 방어하기 위하여 파리민중들은 무장을 시작하였고 시정부군의 국민방위군에 등록하였다. 1871년 1월 28일 프랑스와 독일간의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파리의 혁명적 동요에 위험을 느낀 베르사이유정부의 반동적 수반 띠에르는 파리를 무장해제 할 군사적 행동을 취할 필요성을 느꼈고 3월 18일 국민방위군의 대포탈환을 목적으로 파리의 몽마르트 야습을 전개. 이는 계급전쟁, 즉 내전의 선포였다. 그러나 기습작전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고, 빠리에서 3월 28일 빠리꼬뮌이 선포되었다.



   [참고사항] 프랑스 내전관련 역사요약

임덕영
2004/11/30

   맘 아픈 팀장이 팀원들에게 전합니다.

최경희
200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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