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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5 08:23:06
이은숙
http://blog.jinbo.net/neoburi/?pid=228
http://blog.jinbo.net/leeus/?pid=113
그람시: 스튜어트홀-너부리의 선물이에염
안녕하세요?
지난번 뒤풀이에서 잠깐 만났었죠?
그날 그람시 얘기허던 거 생각나서 좋은 글이 나타났길래 얼렁 퍼왔어여~
그람시 공부하시는 데 만빵 도움이 됐으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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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홀이 본 그람시| 글읽기 2006년 04월 14일 15:49 |

by 너부리
[너부리블로그가기]

"가치있는 이론이란 붙잡고 씨름해야만 하는 이론이다."

"나는 나의 이론적 작업들이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실로, 이론이란 남들을, 기존 체계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불편하게 하지 않고서는 기존의 체계들과 가치들을 다시 생각해 볼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 스튜어트 홀

Stuart Hall, "Gramsci's Relevance for the Study of Race and Ethnicity," in Stuart Hall: Critical Dialogues in Cultural Studies.  Eds. David Morley and Kuan-Hsing Chen (Routledge, 1996)

I. 그람시, 그는 누구인가. 그를 어떤 지반에서 평가해야 하는가.

   그람시는 20세기의 사회적 관계들에 더욱 적합한 이론틀을 제공하긴 했지만, 그의 이론적 작업은 일반적인 사회과학인 것은 아니다.  그의 이론적 공헌은 기존의 (맑스주의) 이론들과 문제들을 현실적합성있게 복잡화시키면서 기존의 사회 이론들의 적합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데 있다. 정말이지, 그람시는 '일반 이론가'는 아니다. 그는 이탈리아 정치 풍경에서 정지적 지식인이었고 사회주의 행동가였고, 역사유물론의 잣대안에서 작업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이론적 공헌은 맑스주의 지반 위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람시는 소위 정통 또는 맑스주의라는 의미에서의 맑스주의자는 아니었음을 기억하자. 그는 정통/고전/속류 맑스주의 이론이 현대세계에서 우리가 맞닦뜨려온 복잡한 사회 현상들을 적합하게 설명하지 못했던, 개념들을 발명해냄으로써 진정하게 '개방적인' 맑스주의를 실현했다.

   그람시의 작업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었고, 이를 위해 이론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종종 너무나 구체적이거나 역사적으로 지나치게 특수하고 기술적인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그람시의 개념들은 역사적 구체성의 차원에서 작동하며, 맑스주의와 그람시의 관계는 역사적으로-구체적인 기술성(記術性)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람시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1891년 사르디냐에서 태어났는데, 사르디냐는 이탈리아 대륙과 '식민지' 관계에 있었다. 그의 급진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사상은 사르디냐 민족주의의 맥락속에 있었다. 후에 튜링 지방으로 이사한 후, 튜링의 노동운동에 깊이 관여하면서 그는 소시적의 민족주의를 버리게 된다. 하지만 농민문제와, 계급과 지역적 요소들의 복잡한 변증법의 문제는 계속 붙잡고 있었으며, 산업화와 근대화 중인 이탈리아 북부와 저개발 종속적인 농업적 남부를 나누는 분할선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남부 문제'에 대한 논쟁을 벌였고, 평생 남북의 종속과 불균등한 관계, 도시와 시골의 복잡한 관계, 농민과 프롤레타리아, 봉건적 및 산업 사회의 구조들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또한 계급 관계에 의한 분할 선이 지역적 문화적 민족적 차이에 의해서 더욱 복잡해진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1923년에는 이탈리아 공산당 창립 발기인이 되는데, 1차 대전 후에 그는 튜링 노동계급의 정치에 전적으로 투신하게 된다. 이를 통해 그는 유럽의 '공장' 노동자들의 가장 발전된 층들을 속속들이 인식하게 된다. 사회당 기관지의 사설가로 활동하면서도, 그는 정치 행동 및 구체적으로 다른 종류의 투쟁을 결합할 수 있는 조직의 전략들과 형태들을 지속적으로 숙고하였, 특수하게 '모던'한 이탈리아 국가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상이한 사회계층들 사이의 복잡한 연합과 관계들을 발견할 수 있는 기반은 무엇인가에 대해 몰두했다. 지역적 특수성, 사회적 동맹, 국가의 사회적 기초라는 문제들에 대한 몰두는 그람시의 작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1920년대 초반에 그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정당', 그리고 소련에 기반을 둔 코민테른의 압박에 맞서는 이탈리아의 국가 상태에 특수한 발전의 경로를 밝히는 문제를 개념화하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다. 20년대 후반에는 점증하는 파시즘의 위협에 의해 그의 이론적 천착이 틀지워진다.

II. 경제환원론에 맞서서...

   그의 이론적 작업은 고전적 맑스주의의 경제주의와 환원론에 대한 엄밀한 공격이다. 경제주의란 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유일한' 결정 구조로 보려는 이론적 접근법이다. 경제주의는, 사회구성체의 다른 모든 차원들이 단순이 다른 절합 수준에서 '경제적인 것'을 단순히 반영하며 각자가 다른 것을 결정하거나 구조화하는 힘이 없다고 본다. 즉 한 사회구성체의 모든 것을 경제로 환원하며, 다른 형태의 사회 관계들이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경제에 상응한다고 개념화한다. 경제는 '최종 심금에서 결정적'이라는 맑스의 언급을 경제가 즉각적으로 최초, 최종, 게다가 중간 심급 마저 결정한다는 환원적 원칙으로 단순화시켜 변질시켜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결정을 기계적 기능으로 단순화시키면서 한 사회의 상이한 차원들 사이의 모든 중개를 두리뭉실하게 넘어간다. 알튀세 식으로 말하자면, 경제주의는 사회구성을 모든 수준의 절합이 서로 상응하며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구조적으로 투명한 '단순한 표현적 총체성'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경제환원론, 경제결정론은 제 2 인터내셔날에서 정전화된 정통 맑스주의와 쌍둥이 사이이다. 경제주의의 치명적 문제는, 다른 형태의 사회적 차별화, 예컨대 사회적 분할, 인종간, 민족간, 성간의 모순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차원을 개념화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람시는 고전적 맑스주의 전통에서 정전화된 경제주의에 맞섰다. 「현대의 군주」에서 그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국면을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를 논하고 있다. 일방적 결정의 경제환원론 대신에, 그는 '세력 관계들'의 분석에 기초해서 한 국면의 발전에서 '다양한 계기들 또는 차원들'을 구별하는 것을 겨냥한다: "특정 역사 시기에 활동적인 세력들이 제대로 분석되고 그들 사이의 관계들이 결정된다면, 정확하게 드러나야만 하는 것은 구조와 상부구조의 관계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경제 환원론은 도덕적 설교와 인간됨됨이라는 끝없는 문제를 생산할 뿐이다." 그것은 "종교에서처럼 미리 결정된 목적론에 대한 신념을 지니고서, 자연법칙과 비슷한 역사발전의 객관적 법칙들이 존재한다는 강철같은 신념"에 기초해 있다

   그람시가 경제환원론에 맞섰다면, 그는 어떻게 한 사회구성체에 대한 보다 적합한 분석을 수행했을까? 알튀세는, 한 사회를 특징지우는 기본적인 형태의 경제 관계들을 지칭하는 '생산양식'과 '사회구성체를 구분했다. 사회구성체란, 사회들은 상이한 수준들(경제, 정치, 이데올로기적 심급들 등)의 절합이 상이한 조합속에서 이루어진 (단순한 반영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복잡하게 구조화된 총체성들임을 지칭한다. 그래서 한 사회구성체에는 한 개 이상의 생산양식이 조합될 수 있다. 상이한 수준들의 절합이라는 복잡한 구조화야말로 '생산 양식'과 더욱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구성체'라는 개념의 차이를 구성한다. 사회구성체(사회구성체에서 상이한 사회적 실천들이 중층결정된 복잡한 관계)라는 개념은 바로 그람시가 말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람시는 무엇보다 사회 또는 "생산력의 발전 정도" 내에 있는 근본적 구조, 즉 객관적 관계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면, 이 객관적 관계들이 역사발전이라는 전체 형태에 가장 근본적인 한계와 조건을 설정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이러저러한 발전에 우호적일 수 있는 주요선들이 발생한다. 다음으로 그람시는 사회에 깊숙이 박힐 상대적으로 장기지속적인 '유기적인' 역사의 흐름과 간헐적이고 즉각적이며 거의 우연적인 흐름들을 구분한다. 그래서 시기구분은 분석에 있어서 핵심 측면이 된다. "시기구분은 한편으로는 구조와 상부구조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다른 편으로는 유기적인 발전 운동과 국면적인 운동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하는 변화중인 빈도의 간극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렇게 역동적인 역사분석틀을 세운 다음 그람시는, 정치 사회 투쟁과 발전의 실제 지반을 구성하는 역사적 세력들 (세력 관계들)의 운동 분석으로 나아간다. 이 분석에 있어서, 그는 한 편의 다른 편에 대한 절대적인 승리나 한 집합의 세력들이 다른 집합으로 총체적으로 흡수된다는 식의 견해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불안정한 균형"이란 개념을 사용하면서, "세력관계들이 이러저러한 경향에 우호적인가 불리한가"하는 문제를 들고 나온다. 중요한 것은 항상 세력관계에서의 경향적인 균형이다.

   그람시는 '세력관계들'을 상이한 계기들로 차별화하여 구분한다. 물론 이런 계기들간의 필연적인 목적론적 진화를 가정하지 않고서. 우선 상이한 사회세력들의 위치와 입장을 정하는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정치적 계기, 즉 "동질성, 자각, 다양한 사회계급들의 조직의 정도"를 살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소위 "계급 단일성"은 결코 선험적인 것으로 가정되지 않는다. 계급들이란, 고통의 존재조건을 공유하면서도, 상충되는 이해관계로 분할되고, 실제 역사구성의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분리되고 파편화된다. 그래서 계급의 '단일성'이란 필연적으로 복합적인 것이며, 구체적인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 실천의 결과로서 생산되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헤게모니의 계기가 있다. 헤게모니란 순수하게 경제적인 연대의 한계를 초월하여 다른 종속 집단들의 관계들을 아우르고 사회전체에 스며들고, 경제적 정치적 통일성 뿐아니라 지적 도덕적 통일성까지 야기하는 것이다. 특수한 역사 블록의 헤게모니를 구성하는 것은 바로 지배집단의 이해관계를 다른 집단의 일반적 이해들과 국가의 존속과 연결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기적 통일성도 구체적인 투쟁의 결과들을 보장하진 않음을 기억하시라. 따라서 "오직 정치만이 조작과 운동의 가능성을 창출한다."

   좀더 자세히 말해보자. 우선, 헤게모니란 한 사회의 존속에서 매우 특수하고 역사적으로 구체적이며 시간성을 띠는 계기이다. 사회로 하여금 구체적인 구성체 또는 사회집단들이 연합한 지도력 하에서 사회 스스로 새로운 역사적 의제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정도의 통일성은 드물게 달성될 뿐이며, 이러한 안정기는 영원히 지속될 리가 없다. 즉 헤게모니에 자동적인 것이라곤 없다. 적극적으로 구성되고 실정적으로 유지되어야만 한다. 위기란 분열의 시작을 표시한다. 둘째로 헤게모니의 다차원적인 성격을 보아야 한다. 헤게모니는 한 전선에 의해서 구성되지도 유지되지도 않는다. 헤게모니는 상이한 '입장들' 전체에 대한 지배의 정도를 나타낼 뿐이다. 지배란 그 성격상 단순히 부과되는 것도 지배적인 것도 아니다. 지배란 대중의 실제적 동의를 얻어냄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헤게모니/지배란 사회를 전체적으로 가로지르는 사회적 도덕적 권위를 심도깊게 설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도력이 발휘되고 지적 정치적 경제적인 집단적인 의지의 표방이 사회전체에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권위이다. 셋째로 헤게모니의 시기를 초래하는 것은, 지배집단이 아니라, 역사적 블록이다. 역사적 블록이란 개념은, 분석의 결정적 수준으로서의 계급에 대한 비판적 개념이긴 하지만, 계급 전체를 통일된 역사적 행위자로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무대에 올리진 않음을 기억하시라. 한 역사적 블록에서 주도적인 요소들은 지배적인 경제계급의 한 부분(예건대 산업자본 보다는 금융, 국제 자본보다는 민족 자본)일 것이다. 이 블록 내에 하위 피지배 계급들이 존재한다. 이 계급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은 특수한 지도력 하에서 그 역사적 블록을 공고하게 하는 보편화시키는 제휴를 날조해냄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므로 각각의 헤게모니 구성체는 자신만의 특수한 사회적 구성과 형태를 지닌다. 이 얼마나 지배계급을 개념화하는 상이한 방식인가!

   이렇게 이론적으로 복잡하고 풍부한 분석의 함의는, 1) 유기적 위기의 순간에 결정적으로 되는 실제 사회 정치적 세력은 단일하고 동질적인 계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적 구성을 지닌다는 점; 2) 통일성의 기초는 자동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 생산양식의 위치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점; 3) 정치 투쟁의 실제적 형태들은 광범위한 사회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 즉 사회를 계급 대 계급으로 분할한다기 보다는 엄청 광범위한 적대전선들을 극단화시킨다는 점이다. 사실, 현대 세계에서 민족적 인종적 투쟁들에서 실제 투쟁의 장은 종종 이런 식으로 복잡하고 차별화된 방식으로 극단화되지 않던가.

   후기 글에서 그람시는 '계급 제휴'로부터 헤게모니의 개념을 확장한다. 1) 헤게모니는 모든 계급의 전략들에 적용될 수 있다. 2) '지배하는' 계급과 '지도하는/이끄는' 계급의 차이가 있다. 지배와 결합은 특정한 한 계급의 사회에 대한 우월성을 지탱시킬 수 있다. 지배는 동의를 얻어내는 것보다는 접착 수단에 지속적으로 의존한다. 한편, '지도력'도 접착적인 면을 갖긴 하지만, 지도력은 동의를 얻어내고 부차적인 이해관계를 설명해주고 그러한 접착/동의를 대중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서 실행된다. 헤게모니는 경제 및 행적 분야에서만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도덕적 윤리적 지적인 지도력 모두를 아우른다. 이러한 조건하에서만 장기적인 역사적 프로젝트 (예컨대 근대화라던가 국가 정치의 기초를 변화시키는 것)가 역사적 의제에 효과적으로 상정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그람시는 지배/지도력, 접착/동의, 경제협동/지적 도덕적 협조의 구분을 전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헤게모니 개념을 확장하고 있다.

   여기에 국가/시민 사회라는 구분이 하나 더 있다. 「국가와 시민사회」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그는, 모든 것이 한 전선 및 투쟁의 한 순간에 집중되는 '전면전'과 다양한 전선을 가로지르는 '진지전'을 구분한다. 1917년은 전면전이 성공적이었던 마지막 사례이다. 이 구분은 동과 서라는 구분과 관련되는데, 여기서 동과 서란, 동유럽과 서유럽, 러시아 혁명 모델과 산업화된 자유 민주주의 서방에 적합한 정치 형태들 간의 관계를 지칭하는 은유이다. 또 동이란 혁명 전의 러시아의 상황 즉 오래 지체되고 있는 현대화, 팽창한 국가 기구 및 관료, 상대적으로 미발달한 시민 사회, 및 공고한 대중 동의를 지닌 사회와 서방 세계 즉 대중 민주주의 형태, 복잡한 시민 사회, 그리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통해서 대중의 합의를 국가를 위한 합의의 기초로 공고화하는 서구의 구분: "러시아에서 국가는 모든 것이며 시민사회는 원시적이다. 반면 서방에는 국가와 시민 사회간에 적합한 관계가 존재하는데, 국가가 흔들릴 때 견고한 시민 사회구조는 곧장 드러난다."

   역사적 이행 및 국가와 시민 사회. <국가와 시민사회>에서그람시는, 서방의 조건들이 현대 정치 장의 점진적인 특징이 됨에 따라, 진지전이 전면전을 대체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서방은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 부상중인 형태의 국가와 시민사회, 그리고 이 둘간의 새롭고 더욱 복잡해진 관계를 창출하면서 새로운 지반의 정치를 대표하게 된다). 이렇게 시민 사회가 즉각적인 경제적 요소의 파국적인 침입에 저항하는 더욱 복잡한 구조가 되는 더욱 '발전된' 사회에서, 시민 사회라는 상부구조는 현대전의 참호체계와 같은 것이 된다. 그람시는 이러한 한 형태의 정치에서 다른 형태로의 이행을 역사적으로 기초한다. 이러한 이행은 1870년 이후 서방에서 일어났으며, 그것은 유럽의 식민 팽창, 현대의 대중 민주주의의 출현, 국가의 조직과 역할의 복잡화, 시민적 헤게모니의구조와 과정에 대한 전례가 없는 설명들과 동일시된다. 여기서 그람시가 지적하고자 한 것은 사회적 적대들의 다양화, 즉 권력의 분산이다. 권력의 분산은 헤게모니가 국가라는 강화된 도구를 통해서 배타적으로 유지되는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으며, 오히려 시민사회의 관계들과 제도들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시민사회의 자발적 연합, 관계 제도들은 효과적으로 정치의기술, 진지전의 전면에서 참호요 영구적인 요새가 된다. 이제 국가는 지배계급의 접착 도구로 환원될 수가 없다. 그람시는 근대 시민 사회 형성의 복잡성을 강조하면서도 근대국가 형성의 평행적 전개를 논의한다. 그람시에 따르면, 국가는 더 이상 단순히 행정적이고 접착하는 기구가 아니다. 국가는 "교육적이고 구성적"이다. 모든 국가는 "대중이 생산력에 상응하는 특수한 문화적 도덕적 수준에 이르도록 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윤리적이다." 즉 현대 국가는 도덕적이고 교육적인 지도럭을 발휘한다. 국가는 계획하고 재촉하고 선동하고 달래고 처벌한다. 현대 국가는, 국가를 지배하는 사회적 세력들의 블록이 그 지배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곳에, 그리고 지도력과 권위에 의해서 피지배자들의 적극적인 동의를 얻어내는 곳에 존재한다. 그래서 국가는 헤게모니 구성에 핵심적인 혁할을 하게 된다. 이제 국가는 한방에 쟁취하거나 무너뜨려야할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상이한 전략들의 초점이 되어야만 하는 근대사회의 복잡한 구성물이다. 왜냐하면 국가 자체가 상이한 사회적 집단들의 경합이 이루어지는 곳이므로. 여기서 이러한 국가 개념은 종종 단순하고 지배적인 국가 권력모델을 가정해 온 '포스트식민주의 국가' 개념을 재정립하는데 유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데올로기, 문화, 소위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물들과 지식인의 역할 을 보자. 그람시도 처음에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 개념을 받아들였다. 즉 이데올로기란 "실제적인 행위를 산출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 문화적 움직임, 종교, 신념이 되는 철학"이다. 이런 개념 정의에 그람시는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기능 면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공식화한다: "문제는 이데올로기가 접착하고 통일시키는 전체 사회 블록의 이데올로기적 통일성을 지키는 것이다." 여기서 그람시가 이데올로기의 철학적 핵심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항상 <유기적> 이데올로기들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왜냐면 그것들이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상식에 관여하면서 "인간 대중을 조직하여 인간이 자신들의 입장이며 투쟁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획득하는 지반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변별적인 두 층으로 구성된다. 한 이데올로기의 일관성은 그것의 특수화된 철학적 설명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적 일관성이 그것의 유기적인 역사적 효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한 이데올로기가 유기적으로 역사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철학이 대중들의 실천적이고 일상적인 의식 또는 대중적 사고에 들어가 변화시킬 때이다. 대중들의 일상적 의식은 상식이라 일컬어지는 바, 상식은 일관적이지 않고 대게 모순적이고 파편적이며 흔히 수시대에 걸친 진리 또는 전통적 진리라 한다. 그러나 사실 상식이란 역사,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상식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상식이 인민 대중의 실천적 의식을 실제적으로 형성하는 개념들과 범주들의 지반이기 때문이다. 즉 당연시되는 지반 말이다. 나아가 상식은 민중의 미래, 대중적 신념들을 창조한다. 따라서 그 자체로 물질적인 세력들이다.

   따라서 상식은, 헤게모니를 창출하는데 필수적인 지적 윤리적 통일성을 유발하는 광범위한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필요로 한다.  이 투쟁은 제도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예컨대 시민 생활의 다른 영역들처럼 종교는 기구를 필요로 한다. 종교는 발전, 변화의 구체적인 과정, 투쟁의 구체적인 실천들을 위한 구체적인 지점을 점유한다. 이처럼 "상식과 고차원의 철학 사이의 관계는 정치에 의해서 확보된다." 이러한 과정의 주요 작인들은 물론 문화적 교육적 종교적 제도들, 가족, 정당이다.

   제도의 문제까지 나오다 보니 이데올로기의 주체 문제 가 안나올 수 없겠다. 그람시는 미리 주어진 통일적인 이데올로기적 주체 개념(예컨대 올바른 혁명적 사상을 지닌 프롤레타리아)을 거부했다. 의식의 다층적인 성격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 현상이며 '자아'와, 한 사회의 문화적 지반을 구성하는 이데올로기적 담론들 사이의 관계의 결과물이다. 그람시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세계관과 말로 또는 생각으로 수긍되는 개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의식의 모순들에 주목하였는바, 이 복잡하고 파편적이며 모순적인 의식 개념은, 전통 맑스주의의 '허위 의식'에 비하면 진일보라 하겠다.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항상 집단적이고 사회적임을 인식한 그람시는 이데올로기 장의 필연적인 복잡성과 상호담론적 성격을 인정했다. 모든 것에 스며있는 단일하고 통일적이며 일관적인 '지배이데올로기'란 없다. 이제 분석의 대상은 '지배적인 관념들'이 아니라 차별화된 지반으로서의 이데올로기 분석, 이데올로기들의 접합점과 단절점, 요컨대 이데올로기의 복잡한 앙상블 또는 담론적 형성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 이데올로기적 흐름들이 퍼뜨려지고 왜 이 분산의 과정에서 어떤 선들을 따라 어떤 방향으로 분열되는가이다."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내용 또는 기능으로 축소될 수 없다. 관념들은 "형성, 산종, 설득의 중심에 있다." 관념들은 각 개인의 뇌에서 자생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관념들이란 그 성격상 구조적이고 인식론적이다. 관념들은 시민사회와 국가의 제도들 내에서 물질성을 유지하고 물질적인 것으로 변화된다.


III. 우리는 그람시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1. 역사적 특수성의 강조: 동질화를 깨기

2. 결정의 중요한 차원으로서 <민족적> 성격에 대한 강조와 <지역적> 불균등성에 대한 강조: 인종주의와 인종주의적 시련과 구조들은 사회구성체의 모든 부문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영향은 침투적이지만 불균등하다.

3. 계급과 인종의 상호관계에 대한 비환원적 접근법: 자본주의 사회 체제 내에서 '후진' 부문을 통합하는 차별적인 방식과 지역적 특수성과 불균등성에 대한 통찰을 가능하게 함.

4. 계급 주체의 비동질적 성격 및 단순한 개념의 통일성에 대한 문제화: 이것은 어떻게 생산수단의 소유와 착취와 관련된 착취 형태에 종속된 한 계급 내에서 인종적 차이가 경제적 정치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적대들의 집합으로 구성되는가를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5.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차원들 간의 상응을 가정하지 않음: 비상응의 정치적 결과에 대한 강조. 경제가 아닌 다른 차원들의 상대적 자율성에 대한 인식.

6. 지배/지도의 구분, 국가의 교육적 역할, 그 이데올로기적인 성격, 헤게모니 전략의 구성에 있어서 국가의 입장, 국가와 시민사회의 구분: 국가와 관련하여, 인종적 계급 투쟁에서 국가는 배타적으로 접착적이고 지배적이고 공모적인 방식으로 꾸준히 정의되어 왔는데, 그람시의 이러한 유연한 이론적 도구는인종주의적 실천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전화시킬 수 있으며, 인종적으로 구조화된 사회 구성체에서 소위 '시민 사회'에 있는 제도들과 과정들에 대한 보다 진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7. 사회발전에 있어서 문화적 요소들의 중심성, 모순된 형태의 상식: 문화란 실천, 표상, 언어,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의 관습들이 서 있는 실제 지반이라는 것. 상식은 대중적 헤게모니 구성을 위한 중요한 장소가 되며,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투쟁과 실천의 대상이자 목적이 된다.

8. 이데올로기장: 동질적 비모순적 개념으로 이데올로기와 의식을 정의함으로써 축소되어온 인종주의를 더 이상 그렇게 분석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

박오현중 (2006-04-15 11:22:19)

감사합니당~*
sadsda (2010-01-29 17: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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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오 그람시 부분 세미나 진행 상황 및 예정 [21]

박오현중
2006/04/21

   오늘 세미나 다음주로 연기합니다. [1]

박오현중
200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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