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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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5 17:12:25
박성인
[박태주] 동전의 다른 한 면은 노동운동의 미래를 가리킨다
동전의 다른 한 면은 노동운동의 미래를 가리킨다
- 박승옥씨의 ‘노동운동 위기론’에 대한 단상
(박태주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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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옥 민주화운동기업사업회 연구소 수석연구원이 ‘한국 노동운동 종
말인가 재생인가, 노동운동 끝났는가’라는 글을 통해 현 단계 노동운동을 적나라
하게 비판했다.
노사저널은 박씨의 주장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충분하게 논쟁해 볼만 가치가
있다고 판단, 앞으로 ‘노동운동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난을 만들어 노동운
동의 미래를 고민하는 활동가들의 글을 실을 예정이다. 반론과 재반론이면 더
욱 좋을 듯하다. 풍부한 논쟁을 통해 노동운동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
기를 희망한다. <노사저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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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반병의 진실

위스키가 반병이나 남았는지, 반병이나 먹었는지는 표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같은 반병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삼각산이 되었다가 애기 업은 부아악
(負兒岳)이 되기도 하지만 버티고 있는 것은 하나의 북한산이다. 오랜만에 노
동운동에 대한 깊숙한 내공과 유려한 말솜씨가 어우러진 한편의 글을 읽는다.
1992년 여름 노동운동의 위기를 들고 나섰던 박승옥씨가 달걀 한 꾸러미만큼
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같은 메뉴를 들고 나섰다. “노동운동, 종말인가 재
생인가”(당대비평, 가을호)가 그것이다. 적어도 박승옥씨에 의하면 그때부터
의 위기가 조금씩 모양새를 달리하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노동운
동이 변하지 못하였는가 아니면 바라보는 사람이 변하지 못하였는가?
먼저 질타의 대상은 비정규직에 대한 노동조합의 무관심이다. 대기업 노조의
‘더 많이’ 주의가 노동운동에 파고드는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노조마
저 착취자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노동운동하는 분들은 펄쩍 뛸
소리겠지만 도덕성의 상실이 이처럼 극적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산별
노조를 향한 노력도 배부른 기업별 노조의 변형인데다 전투주의는 노동조합을
우리 사회의 ‘왕따’로 이끄는 지름길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그가 ‘근본에
서부터 대담한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내용은 전태일 정신으로의 복귀이며
생태적 대안의 흡수이며 폭력의 지양이다. 거창하게 제기된 문제에 비해 다소
추상적이고 싱겁기도 하지만 이 글로서는 그렇다.

미풍이나마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어

기득권의 달콤함에 빠진 노동조합이 비정규직과 영세기업 노동자들을 착취하
고 있다? 벌침을 맞은 것처럼 아리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나 빈사
의 지경에서 허덕이고 있는 노동운동만이 그 허물을 뒤집어써야 하는가? 성장
지상주의가 빚은 경제의 양극화, 기업의 단기적인 인력관리정책과 불합리한 하
도급 구조, 이를 방치한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면죄부를 받아도 마땅한
가? 게다가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의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까지 대기
업 노동자들이 일차적으로 책임을 질 일인가? 물론 노동조합이 이러한 문제에
관심이나 가졌느냐고 물을 수 있다. 노조 규약으로 비정규직의 노조설립을 가
로막는가 하면 그들의 노조가입조차 불허하고 심지어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의 투쟁에서 구사대 역할까지 맡았다면 이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비정규직에 대한 관심이 모자랐던 건 사실이지만 관심이 싹트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막 대궁이 내밀고 나서는 어린 싹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
다. 선지자는 사건의 규모가 아니라 사건의 의미, 그 미세한 떨림을 볼 줄 알
아야 한다. 사회공헌기금의 조성, 비정규직을 대신한 단체협약의 체결, 연대임
금과 산업별 최저임금의 설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이들을 조직하기 위한 노
력 등.
물론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악어의 눈물’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
러나 조급한 나머지 그 봉오리가 언제 장대같이 커서 그늘을 드리겠느냐고 비
판할 일은 아니다. 어떻든 봉긋 내민 어린 꽃망울에 삭풍한설을 막아주는 일
이, 물을 주고 애정도 덩달아 같이 주는 일이 지금 할 일은 아닐까?  
산별노조의 움직임에 대해 나는 매우 긍정적이다. 기업별 노조야말로 노동운동
의 모든 악덕을 낳는 ‘판도라의 상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업원 의
식, 자기중심주의, 공장밖에 대한 무관심, 물질주의 등이 그 속에 갇혀있던 악
덕의 항목들이다. 이제 그 판도라의 상자에 되돌릴 수 없는 균열이 가고 있는
걸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물론 박승옥씨의 지적대로 산별전환이 힘없는 노동
자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기업별 노조의 확대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걸 한꺼번에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러한 노력들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산별과 기업별 노조는 조직대상을 달리한다. 기업별 노조는 직장을 중심으로
결성되지만 산업별 노조는 해당 산업을 조직한다. 여기에서 비정규직이, 영세
기업 노동자가 예외로 되지는 않는다. 다만 비정규직은 조직이 쉽지 않다는 사
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비정규직의 조직화가 한국 노동조합의 낮은 조
직률을 극복할 수 있는 마지막 ‘처녀지’라는 사실을 의식 있는 노동운동가
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국 노동운동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낮은 조직률이
아니던가. 그 분들의 노력을 이처럼 중동무이한 채 ‘똑바로 해라’를 되뇔 필
요까지 있을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는가? 물론 비정규직과 한솥밥
을 먹는데 대한 정규직 조합원의 피해의식과 불안을 하루 만에 바꿔놓는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지난 해 현대자동차 노조가 비록 금속노
조 가입은 부결되었지만 조합원의 찬성률이 60%를 넘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
되어 있다.

전투성 과다가 아니라 전투성 상실이 문제

‘전투적 경제주의’라는 경향에 대해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부정적이다. 그런
데 여기에서 비판의 대상은 투쟁지상주의이지 투쟁 자체는 아니다. 노조는 투
쟁을 먹고 자라는 나무이기도 하다. 더욱이 “상대방이 없어져 주기를 바라는
당사자”앞에서 노조가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란 너무도 좁았다는 걸 알고 있
지 않은가? 오히려 문제는 노동조합이 최소한의 전투성조차 상실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일수가 3년 연속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
하는 게 아니다. 솔직히 물어보자. 굳이 지하철 노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제
대로 파업이라도 조직할 수 있는 노조가 몇 개나 되는가? ‘파업할테면 해 보
라’는 사용자들의 오만한 자신감을 우리는 봐오고 있지 않은가.
노조가 사회적 여론을 등에 업기는 커녕 가슴에 안고 싸워야 하는 상황은 사실
이다. 고립무원의 외톨박이가 된 게 노조의 전투성 때문일까? 노조가 시민권
을 얻지 못하고 온 동네에서 ‘왕따’를 당하는 이면에는 노조 탓도 있을 것이
다. 그러나 부자언론이 지배하는 언론이나 ‘법대로’를 외치는 사용자와 정부
의 동맹이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정말이지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채 남
의 눈에 있는 티만 찾아낸다고 할 것인가? 전투성은 적어도 오늘의 노동운동에
서는 절제되어야 할 미덕이 아니라 잃어버린 향수 같은 것이다. 잘디 잔 싸움
의 연속이 아니라, 걸핏하면 총파업을 외치는 ‘양치기 소년’이 아니라, 우
리 사회를 재조직할 수 있는 노조의 힘을 말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 사회의 개혁을 원한다면 우리는 강한 노동조합을 필요로 한다. 사회
적 파트너십도 강한 노조가 없으면 도루묵일 뿐이다. 강한 노조라는 건 그리
어려운 용어가 아니다. 높은 조직률, 단호한 전투성, 넓은 시야가 그것이라면
지금 한국의 노동운동은 그 어느 것도 자기의 것으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게 차라리 문제이다.
영세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의 임금이 낮은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대기업의 임
금이 너무 높은 것이 문제인가도 의문이다. 일전에 영향력 있는 한 노동운동가
가 대기업 임금동결론을 편 적이 있다. 대기업 임금이 높아 비정규직의 임금
이 낮다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인 셈이었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여
그들의 임금을 높이는 적극적인 발상은 생략한 채 자본가들의 논리를 되뇌는
것은 아쉬움이었다. 가령 노동소득 분배율을 보라. 우리는 아직도 60%를 턱걸
이하는 수준이지만 이른바 선진국은 70% 수준을 턱걸이하고 있지 않는가? 사회
복지가 형편없는 상황에서 임금이 우리의 삶의 질에서 갖는 규정력을 뻔히 알
고 있지 않은가? 임금수준과 삶의 질이 분리될 수 있다는 축소지향적 발상은
적어도 노동운동의 동네는 아니다. 노동조합이 도덕재무장단체나 공익단체도
아니지만 더더구나 이슬만 먹고사는 수도승들의 집합체도 아니다. 문제는 임금
에, 그것도 자기 임금에만 결박당한 채 넒은 세상을 잊고 있다는 점이다.

생태주의 넘어 세상의 큰 판을 읽어야

노동운동이 우물 안만 들여다보느라고 넓은 세상을 잊어버렸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만 그 내용과 폭이 문제라면 그것은 한국사회에 대한
전망과 비전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자. 오늘날 경제위기
의 주범은 외국자본이 지배하는 금융기관과 초우량 대기업들이고, 이들이 추구
하는 주주이익극대화라는 단기주의이고, 그 결과 거대한 투기장으로 바뀌어버
린 한국경제가 아닌가?
재벌조차 적대적인 M&A(기업인수합병)에 쫓겨 경영권 방어에 급급한 나머지 사
회적 책임은커녕 투자조차 방기해버린 게 현실이다. 금융기관이 단기이익에 급
급한 나머지 가계대출에 올인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은 어디 가서 돈을 빌려
고용을 창출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릴 것인가?
정부정책 역시 헤매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과 사회
통합을 화두로 내걸었지만 이를 구체화시킬 청사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다. 노동조합이 놓치고 있는 지점도 바로 여기이다.
나는 박승옥씨가 주장하는 사회발전적 노동운동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정
치를 정치가에게 맡겨두기에는 정치가 너무나 중차대한 일이라는 건 드골의 말
이던가! 노동운동이 사회세력과 연대하여 사회개혁에 나서야 한다. 여기에는
여성운동이나 평화운동, 소수자 운동, 통일운동까지 포괄한다. 생태적 대안운
동은 하나의 지류일 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도 이제 우리 사회를
설계할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좁은 시야를 전형적으로 내보이는 건 사회적 대화와 관련한 민주노총
의 태도이다. 시야가 좁으면 조급해진다. 막상 들어가야 할 때는 다 놓치고 뒤
늦게 지도부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겠다고 서두른 것도
가관이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고민의 지점마저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사
회적 대타협은 위기에 몰린 우리 경제의 마지막 구원투수이다. 여기에서 핵심
은 사회적 대화기구의 상도, 대화의 전제조건도 아니다. 무엇을 의제(agenda)
로 삼을 것인가이다. 물론 합의는 교환의 형태로 나타나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
리 사회의 비전과 전망을 이해당사자들이 합의하는 일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정부의 공공성 강화, 그리고 노조의 생산성 제고노력이
세계화의 거친 풍랑 속에서 하나의 방향타 구실을 할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보
고 있다. 무너진 집터에서 반지를 주울 게 아니라면 노사관계의 ‘사소한’
몇 가지 이슈에 목숨을 걸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화두는 빈곤이고, 차별이며, 불평등이며, 사회적 배제이다. 노사
문제는 문제의 영역에서조차 밀려나고 말았다. 그 요체는 일자리 만들기이며,
노동시장에서의 격차해소이며, 사회안전망의 정비이다. 문제는 정부가 그러하
듯이 노동조합 역시 단편적인 정책이나 노력은 있지만 큰 그림을 그리지는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근본주의가 사태의 점진적인 해결을 방해하기도
한다. 가령 비정규직에 대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나 파견직의 철폐가 그것이
다. 이것이 억지가 아니라면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투쟁력도 빈약한 판에 정
책역량조차 바닥을 드러낸다면 그야말로 게도 구럭도 죄다 잃고 말 것이다.  

의도하지 않는 결과가 아쉽지만

모자라는 것과 없다는 것은 다른 표현이다. 노동운동을 새롭게 싹틔우려는 아
픈 노력을 외면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미래를 외면하는 일이다. 더욱이 누군가
가 지적하였듯이 노동운동에 대한 진한 애정이 오히려 노동운동에 대한 쓰라
린 비난으로 이용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깝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12
년 전처럼 되풀이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외부에서만 ‘불났다’고 외쳐왔는
데 이제는 내부에 눈 밝은 사람이 있어 ‘불났다’고 외쳐주니 외부에서 부채
질하는 것은 그야말로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노동운동에 대한 애정이 때로
는 이처럼 뒤틀려 전달되는 수도 있구나, 느낄 뿐이다. 왜 진작 이를 몰랐을
까? 오랜만에 좋은 글을 읽고 짧은 소견을 밝힌다. 대부분의 지적에 동의하면
서도 동전의 다른 면을 놓치고 있다는 아쉬움을 전한다. 그곳에는 노동운동의
미래가 어린 숨을 팔딱이고 있다.


# 이 글은 노동전문 주간지 <노사저널> 제675호(2004.9.20)에서 보실 수 있습
니다. 이번 호 기사는 9월14일(화) 오후 인터넷 홈페이지(www.nosanews.com)
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179
 [사회연대기금] 야누스의 얼굴, ‘연대기금’ 창궐의 배경과 전망  

 운영자
2004/07/08 12080
178
 [사회공헌기금]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는 출발은?  [1]

 운영자
2004/07/08 22529
177
 [노동운동위기논쟁] 2004년노동운동위기관련논쟁자료-참고바랍니다.  

 박성인
2004/09/11 36788

 [노동운동위기논쟁] [박태주] 동전의 다른 한 면은 노동운동의 미래를 가리킨다  

 박성인
2004/09/15 15786
175
 [노동운동위기논쟁] 2004노동운동위기논쟁2-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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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9 15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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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합의주의] [펌]네덜란드, 20만 노동자시위-사회적합의주의의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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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3 16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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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운동위기논쟁] '한국 노동운동 혁신을 위한 10대 명제'(김형기)와 그 비판(조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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