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함께 춤을 세상만사 |
현장에서 미래를 제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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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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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함께 춤을
이영민 / 철도 노동자
수첩
이상한 관리자가 있었다. 철도 관리자들이 그렇듯, 위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다했다. 죽는 시늉을 하는
것이 신앙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수첩에는
특별기도를 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어느 여승무원이 그에게 불려 올라갔다. 사실은 같은 층에 있는
자기 사무실로 부른 것이지만 누구나 “불려 올라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일 모레 있는 집회에 꼭 참석해야 하나?”
“네.” “그럼, 해고사유가 될 텐데.” “집회 참석하는 게
해고사유가 되나요?” “되고 말고. 계약서 7조 2항에 그렇게
나와 있잖아.” “그래도 저는 집회에 참석해야 합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그동안 도와준 분들을 생각하더라도 꼭 갈
겁니다.”
“성경에 보면 간음한 여자가 있었는데 죄 없는 자 있으면 돌로
쳐라.”하는 이야기가 있지. “......” 그 여승무원은 기가
막히기도 하고, 어이도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나는
여승무원들을 위해 늘 기도를 해요.” “....” “보라구.
이렇게 수첩에 다 적어 놓았잖아?” “......” “하여간 집회에
참석하면 해고할 테니 알아서 해요.” 금방 자기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다고 하고, 해고를 하겠다고도 하니 여승무원은 어안이
벙벙했다. 계약직은 소속장들에게 채용과 해고권한이 있다. 실은
그 관리자의 전임 관리자가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여승무원들이
데모를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 사람이 자기 목을 지키기
위해 그랬는지, 아니면 그 해괴한 신앙 때문에 그랬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교회에 다니는 사람치고 데모에 대하여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었으므로. 그 교회는 여의도에 있다고
한다.
근로감독관
여기 근로감독관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무지하게 말이
많다. 체불임금 때문에 찾아온 노인네를 붙잡고 두 시간 동안
설득을 하더니 끝내 화해를 붙이기로 합의했다. 커피도 타주고
인생 상담도 해주고 “돈 없으면 자식들도 우습게보고 손자들은
더 우습게 본대요.” 은근히 공갈도 치고. 결론은 그만한 직장이
없으니 그럭저럭 다니라는 것이다. 사명감에 불타는 감독관을
보면서 ‘저렇게 열심히 일하다 쓰러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될 정도였다.
또 한사람은 친절하다. 말이 없고, 꼭 해야 할 이야기만 한다.
그런데 그 꼭 해야 하는 이야기란 것이 이런 것이다. “아,
그렇지 않아도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괄호 안은 상대방
이야기를 추측해서 끼워 넣기를 해본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고. (왜요? 또 무슨 문제가 있어요?) “아, 사람을 한명
소개시켜 주려고 그랬지.” (사람? 무슨 사람?) “전에 사람
필요하다고 했잖아요? 그거 말고도 한번 만나야 하는데.”
(그러게 말예요. 오늘은 어때요?) “음, 오늘은 조사를 하고
있는데 아마 다섯 시면 끝날 거요.” (그럼, 끝나고 나서
저녁이나 같이 먹지요.) “그러지 뭐, 그런데 왜 검찰에서는
종결을 짓지 않는 거야?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만나서
의논하지요.) “그러지, 뭐. 그럼 저녁에 봐요.” 그런 통화를
들으며 나는 이렇게 추측했다. 음, 이 작자가 부당노동행위나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사장하고 짬짜미를 하는구나.
그밖에도 뭔가 있는 게 틀림없구나.
그는 내 앞에서 그런 식의 통화를 쉴 사이 없이 해치웠다.
그러면서 나 하고는 꼭 해야 할 이야기도 아껴가며 하는 것이다.
“아, 그래요. 제가 자료를 꼼꼼히 들여다보지 못해서....”
“아, 그랬던가요? 하도 정신이 없어 아까 한 이야기도 잊어
먹었네요.”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상대하기 편한 사람인지 알 수는 없다.
한사람은 너무 피곤하고, 한사람은 뒤가 좀 켕길 것 같다.
우리 곁에 왔던 부처
성철스님 일대기를 읽었다. 헌책방에 갔다가 ‘우리 곁에 왔던
부처’라는 책을 주웠다. 10년 동안 눕지도 않고 참선을
했다하니 상상할 수 없는 경지이다. 그런 것은 책을 보기 전에도
신문, 방송에서 많이 떠들었던 것이고.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스님이 어느 암자에서 오매불망 참선을 하고 있을 때
일이다. 성격이 하도 급하고 불같다 보니 시자(시중드는 스님)
두 사람이 모두 도망을 쳤다. 그런데 성철 스님이 삶은 보리만
드시다가 쓰러질 뻔 했다는 것이다. 그때가 속세 나이로 사십
정도일 때이다. 밥은 물론 반찬까지 만들어야 하고, 빨래와
청소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경지이다.
밥하는 것은 하찮고 참선하는 게 워낙 중하니까 그랬던
것일까.
또 한 가지. 어떤 재벌 부부가 성철 스님을 친견하러 와서 그
유명한 삼천 배를 했다. 부처 앞에 삼 천배를 하지 않으면
누구도 스님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스님은 재벌이 하려고 했던
모든 시주를 거절했다. 대신 “근로자들에게 자비심을 베푸시오.
근로자들이 부처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공양하시면 됩니다.”
재벌 부부는 비로소 후련한 얼굴이 되었다. 재벌 부부가 기쁜
마음으로 하산했다는 감동적인 실화인데 그들은 스님 말씀대로
했는지, 또 그 재벌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하다.
성철 스님은 또 “마르크스를 기독교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실은 전기 작가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성철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 평등한 세상이란 것이 가능한
게 아니다. 힘없는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여 뭉쳐 싸우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세상은 오지 않는다. 사람의
근기가(바탕이) 그렇지 않다.” 내가 옆에 있었으면 방망이로
머리통이 깨지더라도(큰 시님이 할! 소리만 외치면 나는
대가리가 깨지는 것이다.)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부처님 가신지
2,549년이 지났는데 불국토가 왔습니까?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신 뒤 세상이 조금이라도 자비로워졌습니까? 도대체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비하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평등하고는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마라. 중국의 유명한 백장선사가
하신 말씀이라 한다. 아랫 스님들이 “큰 스님이 그렇게
무리해서 일하시면 안 된다.”고 호미를 감추었더니 하루를
굶었다고 한다. 참 훌륭한 스님이다. 노동자라면,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수 없으므로 그런 것을 몰라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에서 전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 간부에게 일일부작(一日不作)이란 어떤 의미일까?
고공농성
경찰청 고용직 노동조합 동지들이 고공농성을 하는데 “나는 늘
바쁜 사람이니까.” 하고 마음에만 두고 지낸다. 잠깐 들렀다가
다른 일하러 금새 돌아온다. 진압을 당한 뒤 동영상을 보다가 두
사람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슬프다. 노동자가 싸우는 데는
평정심을 가질 수 없다. 특히 경찰청처럼 거대하고 악랄한
상대방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 안 가 몸도 상하고 마음까지
상하게 된다. 세월이 지나고 잊혀질 것도 같지만,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뭐 그랬지.” 하고 웃을 수
있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복직하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싸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억울함, 분노, 서러움...
노동자의 투쟁이 그런 이유만 있다면 나중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의연함, 자긍심, 그리고 인간적인 성숙....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 우리 현실은 너무 각박한 것 같다.
조직대상 네 명
비정규직 동지를 따라 전철역을 순회했다. 조직대상은 네 명,
그중에 두 명을 만났다. 소식지를 전해주고, 노동조합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신이 나서 주고받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현장을 자주 가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 회의, 행사,
간부들만 참석하는 집회, 현장에 지침주기 등 하는 일도
없으면서 늘 일에 치어 산다. 비정규담당이지만 정규직과 관련된
일로도 신경과 시간을 빼앗긴다. 관료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내가 바로 관료다.
순회 도중에 철도매점 노동자 몇 사람을 만나고, 역으로 전출 간
여승무원 세 사람을 만났다. 한결같이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철도매점 아주머니에게 캐러멜을 한 갑 얻고,
아저씨에게는 음료수를 두병 얻었다. 여승무원 출신
한사람에게는 커피를 얻어먹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표를 파느라
정신이 없어 인사만 했다. 미안한 생각이 들어 현장순회를
도맡는 동지들에게 저녁을 사 먹였다.
3조 2교대의 실상
100년 만에 24시간 맞교대에서 벗어난 철도 노동자들의 실상을
보았다. 여성 계약직 노동자가 인대를 다쳐 목발을 짚었는데
비번 날 정거장에서 그냥 얼쩡거리고 있다. “아니, 왜 퇴근을
안하시구.” “퇴근했다가 바로 출근해야 하는 걸요.” “이런,
그렇다고 퇴근을 안하다니.” “그런 사람들 많아요.
야야(夜夜근무: 야근다음에 다시 야근, 09:00에 퇴근하여
19:00에 출근한다.)때는 사무실에서 그냥 쉬던지 가까운 산에
갔다 오는 사람도 있지요.” "..........” 다리를 다쳤는데
공상처리를 하지 않았다. 본인은 별 말이 없고, 관리자에게
물어보니 공상하면 무재해가 깨지니까, 그냥 치료비를 대줄
예정이라 한다. 관리자는 성격도 좋고, 괜찮아 보이는 인상이다.
아직도 현장에서는 공상을 마음 놓고 신청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당연히 공상처리를 하라고 해야 하는데도
조심조심 말을 못하는 게 안타깝다.
기다린다.
본부장이 출장을 다녀오다가 서울역 계약직 노동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서울역 매표원들은 계약직도 있고 외주업체에서 파견한
노동자들도 있다. 서울역에서 워낙 오랫동안 농성을 한 탓에
미안해서 인사나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투쟁도 좋지만
8개월을 계속하면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노릇이니까. 음료수 한 병하고 피로회복제 알약을 하나씩 주고
인사를 하는데 표정이 별로 밝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막판에
“노동조합하고 함께 싸워서 정규직이 되자구요. 제가
앞장설께요.” 했더니 비로소 웃었다고 한다.
젊은 노동자가 계약직이 되어 차별받는 것을 좋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도 그들이 싸우지 못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그들이 세력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력화가 된다 함은
동료들을 서로 알아야 하고, 모두 싸울 뜻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고, 특히 정규직이 싸움에 우호적이라는 것이 확인될
때를 말하는 것이다. 철도처럼 점점이 흩어져 근무하는
현장에서는 아무리 우리들이 “차별을 철폐하자. 정규직을
쟁취하자.”고 말하고 유인물을 뿌려도 허공에 외치는 메아리가
될 뿐이다. 아마 거친 땅에 계속해서 내는 밑거름이 될 수야
있겠지.
둘째, 계약직 노조활동을 극력 방해하고 탄압하는 경영진의 방침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입사할 때 계약서에 “(노조활동 등)
집단행동을 하면 곧바로 해고하겠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
명예훼손을 해도 해고 사유고, 근무가 태만해도 해고사유가
된다. 노동자의 기본권이라는 노동 3권은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하고 현실에서는 더욱 남의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셋째, 별문제는 아니지만 이들은 많은 경우 아는 철도사람의
사람의 소개에 따라 입사한 사람들이다. 싸움이 붙었을 때는
모르지만 조직사업 초기에는 중요한 장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언젠가 이들이 싸울 날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한번 싸우기 시작하면 나 같은 간부들이 몸을 사릴 만큼
치열하고 끈질긴 투쟁을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때 몸
사리지 않고, 진정시키지 않고, 은근히 말리지 않으면 다행이라
할 것이다. 그날을 기다린다.
왼손잡이와 조합주의
왼손잡이들끼리 모여 토론회를 벌인다. 우리 사무실이
왼손잡이들 사무실로 소문이 나고(꼭 그런 것도 아닌데) 이층
공간이 쓸 만하다고(공짜인 게 쓸 만하겠지. 커피나 녹차,
생수도 공짜로 주고) 왼손잡이들이 많이 모여든다. 이런 날,
사무실에서 무엇인가 끼적거리고 있으면 시비가 많다. “토론회
참석안하고 뭐 해?” (이 말이 하고 싶었겠지. “임마, 너는
왼손잡이 아니여?”) “나는 왼손잡이가 아니라네.”(나는
그렇게 결론도 못 내면서 공리공론하는 게 싫은 사람이라네. -
이런 말을 했다가는 당장 고립되고 말 것이다.)
토론회 중간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토론회 끝났어?
진득하게 있지 못하고 왜 자꾸 들락거려?”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서 그래. 벌써 여덟 시간째 하는데 결론이 안나.”
“어이구, 하여간 대단한 왼손잡이들 하고는. 나는 그래서
왼손이 싫어.” “그럼, 너는 오른손잡이냐?” “아니, 오른손도
안 해.” “나는 그냥 조합주의자야.” “자알 한다.”
조합주의라는 말을 함부로 쓰다가 혼쭐이 났다. 토론회에 참석한
후배 한사람을 몇 년 만에 처음 보게 되었다. “형은 당에
가입안해요?” “(그런 개떡 같은 당에는 가입) 안 해.” “왜
안해요?”(노동자가 정치세력화해야 하는데,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안되는 거야. 너도 이제는 후진 간부가 다 되었구나.)
“음(에이, 귀찮아.), 나는 조합주의자야.” “아니, 요즘은 왜
그렇게 조합주의자가 많아요? 물어보면 다 조합주의자라구
그러네.” “......” (에이, 조합주의자는 아닌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반성을 했다. 내가 후배에게 함부로
말을 했구나. 그냥 민주노동당은 사민주의 정당 아니냐?
사민주의는 자본주의를 인정하자는 거 아니냐? 십중팔구 영국의
블레어나 브라질의 룰라처럼 갈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특히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계급정당도 아니고 계급
연합정당이라고 그러구, 계급적인 관점이 아니라 민족주의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다 장악해버리지 않았냐? 그러면
민주노동당은 남아프리카의 ANC(민족회의)와 같다고 생각하냐?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노동자 당원을 주체로 생각하냐? 표나
몰아다 주는 사람들로 생각하지.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에이, 노동자
정치세력화 하자는데 그 무슨 골치아픈 소리는...” 이럴 것도
같고, 진지하게 토론해서 얻을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얼버무렸던 것이다. 얻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고 잃는 것은
무난한 관계일 때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차이도 인정하고, 무난한 관계도 유지하는 사람들도 몇몇 있지만
그 친구는 너무 오랜만에 만났던 것이다. 그리고 토론회 중간에
잠깐 쉬는 시간이니 머리 아픈 이야기를 할 시간도 없었던
탓이었다. 그래도 마음에 없는 조합주의 이야기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민주 노동당은 마음에 안 들어.”
했어도 될 일이 아닌가. “나중에 더 이야기하지 뭐.” 하면 될
것을. 아무래도 내가 요즘 너무 냉소적이 된 것 같다.
냉소적이라 하면 전망을 가지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요즘
운동판이 하도 수상하니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기껏해야
고집으로 버티는 것이고 낙관적이거나 따뜻한 말 한마디 거들지
못하게 된 것일까?
토론회가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뒷풀이도
참석하지 않고 도망친 탓이다. 하여간 이래저래 한심한
저녁이었다.
덧붙임 - 신영복 선생의 새 책 ‘강의-나의 고전독법’을
읽다보니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화목하지 못한다.”(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子路」)는 구절이 눈에 띈다. 논어의 한 구절이라 하는데
왼손잡이들이 새길만한 경구라고 생각했다.
구세대
회의를 하는데 ‘스타크래프트’ 대회를 노동조합에서
주관하자고 한다. 매우 관심이 높을 것이라면서 빅히트를 칠
것이라 한다. 당연히 반대했다. 아니, 무슨 노동조합에서 그런
대회까지 여냐? 그게 노동조합 조직 강화에 무슨 도움이 되냐?
그러나 의외로 반대하는 사람이 적다. 할 수도 있는 거지.
개별적으로 게임하는 것보다 노동조합에서 조직적으로 하면
당연히 도움이 되지. 그런 선입견을 버리라 한다. 마냥 반대할
일이 아니라서 가만히 있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한즉 “나는
이제 구세대다. 몸은 몰라도 정신은 늙었다. 이렇게 분위기가
다를 수 있나.” 비감한 생각이 들었다. 꼭 세상 변했는데 수십
년 전 훈장을 달고 돌아다니는 구닥다리 옛날 할아버지가 된
기분이다. 연전에 박 아무개인가 하는 전직 혁명가가 (요새는
시인이라 하지만) “휴대전화기 TTL 광고를 보고 감명
받았다.”하여 픽 웃은 적이 있는데 이게 그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스타크래프트’나 ‘카트 라이더’같은
것에 관심을 가질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TTL 따위는 아직도
관심 밖이다. 그런 따위에 감명을 받으면 오히려 주책바가지가
될 뿐이다. 하여간 구세대이기는 한데 과연 언제까지
대중운동판에서 간부를 할 수 있는 것인지.
걱정스러운 새 사장
새로 부임한 사장은 아무래도 만만찮은 사람인 것 같다. 오늘 모
일간지 전면 인터뷰에서 사장은 걱정 많은 노조간부들에게
새로운 걱정거리를 안겨 주었다.
그는 첫째, 매우 현실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 “정부에서 특별한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철도는 적자상태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2012년 흑자전환?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정부에서
철도에 대한 지원을 늘려라. 투자도 늘려라. 그러면 우리도 할
일을 알아서 하겠다.” 노동조합이 그동안 계속 주장해온 것을
그는 앞장서서 외치고 있다. 계속 이런 식이면 그가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 붙일 때, 조합원의 심리를 장악하는데 다만 시간이
필요할 것만 같다.
둘째, 그는 정중동의 자세로 때를 기다리고 있다. 노동조합을
파악하는데 골몰하는 것인지, 절대로 자극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그는 “내부의 구조조정보다
잠재력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하겠다.”고 하여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심리를 달래주었다. 단체교섭에서 상견례를 할 때도
그는 매우 신사적이었다 한다. 현실적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장단점을 제대로 알고 대처할 것만 같다. 그는 아직까지 철도에
와서 설치거나 요란스러운 모습을 보인 일이 한 번도 없다. 만약
그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노력을 다했는데도 어쩔 수 없다.
뼈를 깎는 모습으로 희생을 분담하자.” 이렇게 나올 시기가
언제쯤 될 것인지.
셋째, 그는 핵심간부들부터 차근차근 조직을 장악하려는 것
같다. 처음 부임하면 ‘사장의 경영철학’이니 뭐니 하며
요란하게 설치기도 하고 ‘현장경영’이니 뭐니 하며 관리자들을
달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법인데, 현업에서는 사장이 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대신 그는 핵심간부들을 모아 ‘워크숍’인가
뭔가를 하며 차츰 그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넷째, 그는 유연하다. 그가 워크숍을 통해 마련한 조직 개편안을
시행하려다 노동조합에서 반대하자 현업에 대하여는 뒤로 미루어
두었다. 자존심을 생각하여 밀어붙이기 십중팔구인데 그는
이쪽의 허점을 노리는 것 같다. 때를 기다리는 것인지.
그 외에도 그는 “철도에 뼈를 묻으러 왔다.”는 태도로
집중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거물 정치인이니까 그냥
대충하다 가겠지.” 하는 판단을 비웃는 것이다. 우리가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위기의 순간에 단호한 결단을
한다던지, 상황에 몰려도 강인한 뚝심으로 버틴다던지 하는 것
정도이다. 만약 그런 정도의 인사라면 정말 앞날이 걱정스럽다.
“사회보험노조가 겪는 일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 노동조합의 준비는 과연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
군자 개
“사람의 눈으로 개를 판단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면 “너는
좋겠다. 개한테 그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니.” 하고 비웃을
것이다. 우리가 사무실에서 키우고 있는 개 ‘얼룩이’ - 사람이
함부로 붙인 이름에 불과하지만 - 는 아무래도 도인의 풍모가
있다. 이놈이 밖에 나가 동네 개하고 어울리려 했다. 내가 워낙
평범한 개만 이야기하니까 이놈(동네 개)도 그렇고 그런 줄
알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족보는 모르겠는데 원래 썰매를 끌던
종자라고 한다. 이놈이 가뜩이나 더워서 환장하겠는데 웃기게
생긴 얼룩개가 와서 장난을 거니 순간적으로 확 돌아 버렸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얼룩이는 목덜미를 물렸는데 무려 삼십초
동안, 놓지 않고 흔들어 댔다고 한다. 살점이 움푹 떨어져
나가고 피를 줄줄 흘려서 모두들 걱정을 했다. “저놈 언제
된장을 바르나.”하고 늘 우습게 알던 간부조차 “개병원에
데리고 가봐야 하지 않을까?”하고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걸
말린 사람이 바로 나다. “내버려 둬. 개들이 흔히 싸우는 거지.
저놈은 상한 것도 막 주워 먹어서 회복도 빠를 거야. 깨끗한 척
하는 놈보다 생명력도 강하고 저항력도 훨씬 세지.” 이렇게
잘난 척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얼룩이는 아픈 내색도 하지 않고(낑낑거리거나
응석을 부리는 등) 밥을 주면 밥을 먹고, 여전히 늘어져 낮잠도
자고, 오줌이 마려우면 밖에 나가 싸고 돌아오는 것이다. 모두들
감탄했다. “참, 그놈 무던하네. 저렇게 초연할 수 있다니. 꼭
도인 같아.” 그렇다. 얼룩이가 개니까 우습게 보는 것이지 만약
사람이 그런 행동을 보였다면 군자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얼룩이는 지금도 에어컨 밑에서 쿨쿨 낮잠을 자고 있다.
목덜미에 난 상처는 어느새 아물었다. 얼룩아, 니가 사람보다
낫다. 너는 잠잘 데만 있고 먹을 것만 있으면 세상 걱정할게
없지 않느냐? 사람들은 왜 그렇게 가진 놈이 더 가지려 애를
쓰고, 가난한 놈들 것을 하나라도 더 빼앗지 못해 안달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고 소모품처럼 이용만 해먹으려
하는데, 너는 그 썰매 개한테 물리고도 초연하게 바깥을 나돌아
다니니 니가 바로 군자다. 이개야. 먹을 것을 보고도
허겁지겁하지 않고, 사람에게도 전혀 아부할 줄 모르는 얼룩 개.
하도 기특해서 한 번 더 지면을 버린다.
사람이 죽어도 이제는
사정을 잘 몰라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현대 자동차 운동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리가 고착된 느낌이다. 연전에 비정규
위원장이 연행된 사건도 그렇고, 비정규직이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데 임투를 끝내 버리는 것도 그렇다. 이런 일들은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네가 아는 게 뭐 있다고 함부로 재단하느냐? 사정을 모르면
잠자코 있어라.”는 말을 들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위원장 연행이나 이번 임투를 끝낸 일은, 그 사실만 놓고도
충분히 판단할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투쟁이 정규직 노조의 임단투
조기타결에 힘을 실어 주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도 비정규직
투쟁은 고립된 채 지리멸렬하고 있으니, 87년 이래 고난을 뚫고
헤쳐 온 노동조합 운동이 최소한의 가치관조차 잃고 표류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일까?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는 임단투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현안으로 다룰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조합원 대중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하여 그토록 무관심하고 분리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대중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설득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있었던 것일까?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제 정권과 자본의 노동자 분리전술에
완전히 포섭된 것일까? 이런 노동자들의 상태에 대하여 정규직
노조 지도부가 설득할 최소한의 자신감이나 의지를 잃고
비정규직 상황을 그냥 방치했던 것은 아닐까? 불길한 의문들을
지울 수가 없다.
노동조합 운동이 이익집단의 밥그릇 챙기기가 아닌
계급운동이라면 이런 일을 계속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규직 노조의 지도부들은 조합원 대중의 상태나 현실에
영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상태나 현실에
안주하거나 영합하면 더 이상 운동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이 전부 아니라고 해도, 그리고 당장의 현실이
첩첩산중이라 해도 가야 할 길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죽어도 제도언론의 관심만큼도 싸움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을
보며 운동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늑대와 함께 춤을
한국노총하고 민주노총하고 통합을 추진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어, 그럼 우리는 철산노(철도산업노조의 약칭이다. 전형적인
어용노조)하고 통합해야 하게?” “잘한다. 그럼
민택(민주택시)은 전택(전국택시노조연맹)하고 결혼해야 하네.
공공연맹하고 항운노련하고 통합하고, 민주버스는 자노련하고
통합하고, 좋겠네.” “둘이 통합하면 독자노조라도 해야지. 난
한국노총은 이가 갈려. 노총 깡패들한테 두들겨 맞은 생각만
하면 치가 떨려.”
2000년에 철도는 어용세력과 전쟁을 치렀다. 조합사무실을 놓고
세 번이나 치고 박으며 육박전을 벌여야 했다. 그때
한국노총에서 두 번이나 깡패를 동원하여 조합원들을 폭행했다.
한번은 조직 총동원령을 때렸다가 내부 반발로 취소한 일도
있다. 그 뿐이랴? 어용세력이 경상북도 울진군에 도망가서
대의원대회를 치를 때는 버스 세대로 깡패를 동원해서 순진한
시골 경찰들까지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노총 깡패들에게
각목으로 두들겨 맞아 팔이 부러진 사람도 있고 코뼈가 주저앉은
사람도 있다. 신선대, 우암부두의 화물운송노조 지부를 깰 때
동원한 깡패들이 철도에 그대로 왔던 것이다.
그게 불과 5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끕”들은 통이 커서
그런지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그냥 집회나 몇
번 같이하고 밥이나 술도 몇 번 같이 먹고, 그러면 다 통 큰
단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긴 5년 전에도 상반기에는 노조민주화를 놓고 육박전을 하고,
하반기에는 민주노총하고 한국노총하고 공공연대투쟁을 한다고
온통 쑈를 해서 순진한 사람 열 받게 한 일도 있다. 그때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하니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던 공공연맹, 민주노총의 망신을 벌써 잊었던 말인가?
잊었겠지. 바로 몇 달 전 일도 까먹는데 5년 전 일을 뭐 하러
기억한단 말인가. 조합원들도 뻔히 알았던 일을(어용세력이
총파업한다고 하면 믿을 조합원이 누가 있나?) 모른척하며 온갖
수사로 총파업, 연대투쟁을 외치던 개망신을 또 당하고 싶다는
말인가?
며칠 뒤 ‘한국노총하고 통합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믿는 활동가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기에는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끕들이 너무 열렬히 사랑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유명 연예인들 마냥 “아직 결혼계획이
없다.”고 부인해도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언젠가는
하겠지. 뭐, 양쪽 집안에서 반대가 있으니까 시간을 벌자는
것이겠지. 사랑의 힘을 누가 말려. 둘이 도망쳐서라도 함께 살
테지 뭐.” 이런 생각밖에 안드는 것이다.
만약 나 같은 소수 불평분자들이 반대하면 어떻게 할까?
모르겠다. 길거리에 내버리고 자기들끼리만 짝짜꿍하며 사이좋게
살지, 아니면 “어른들 하는 일에 속 썩이지 말고 잔말말고
따라와.” 하며 한바탕 두들겨 팰지도 모른다. 둘이 합치면
살림도 늘어나겠다, 온 동네에 큰소리치며 살 수 있겠다,
식구들도 늘어나겠다. 그런데 의붓자식 하나가 반대한다고 그런
결혼을 마다할 리가 있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용들하고 쑈를 함께 할 수는 있다.
잠깐 생떼를 쓰거나 어리광을 부릴 수는 있다. “우리 동네에서
잔치를 벌인다구. 그렇다면 우리는 구정물을 끼얹어 주마.”
이런 식으로 깽판을 칠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자본가들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한 싸움을 벌일 수는 없다. 그런 싸움은
노동자들만이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집안에도 이제 투사들이 적잖이 생겼다 한다. 개천에서 용
나고 조준구네 집안에도 꼽추 아들 같은 사람 하나는 있는
것이다.(조준구는 박경리의 ‘토지’에 악당으로 나오는
인물이다.) 그러나 요새 투사연하는 자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닌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았다면 이런 말이 나올 리가
없다. 아, 왕년에 투사 아니었던 사람이 누가 있나? 몇 년 전에,
혹은 십 년 전에 반짝한 것을 가지고 우려먹을 것이면 지금
노아무개도 투사라면 투사이다. 우리 사장(철도공사)도 투사고,
근로복지공단 아무개 이사장도 투사고, 전부 다 날렸던
투사들이다. 그 투사들은 우리보고 이렇게 비웃고 있다. “야,
왕년에 그 정도 안 해 본 놈이 누가 있냐. 내가 너희들만 했을
때는 목숨 걸었다 이거야.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이거야. 함부로
까불지 마. 이것들이 순 폼만 늘어 가지고.”
한국노총과 통합한다는 것은 순진한 처녀가 제비족과 함께 춤을
추는 것과 같다. 바꿔 말하면 순진한 양이 늑대와 함께 춤을
추는 것이다. 순진한 양은 늑대와 놀아나는 순간, 더 이상 양이
아니게 될 것이다. 늑대의 뱃속으로 들어가든가 종족을 바꿔서
늑대가 되던가,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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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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