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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복지를 넘어서 민중의 복지로

현장에서 미래를  제72호
남구현

쟁점연구

자본의 복지를 넘어서 민중의 복지로


남 구 현
연구위원





지난 10월 26일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동사회단체가 대거 참여하여 민중의 복지, 노동권 생활권 쟁취를 위한 한마당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비정규직노동자, 장애인, 실업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취약하고 주변화된 불안정 노동자들의 문제가 전면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최대의 피해자들로서 우리 사회의 다수를 이루고 있으나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김대중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생산적 복지의 이름 아래 복지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적 권리가 전 국민의 이름으로 확대되었다거나, 복지의 수준을 높여 삶의 질을 높였다고 선전해 왔으나,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자의 55%에 이르며, 이들의 70~80%가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유연화되어 불안정하기는 하더라도 일단은 일자리를 가지고 일정한 고용관계 아래 놓여져 있는 노동자들이 이렇게 된 마당에 실업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지난 호에 이미 소개된 바가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그 행사에서 주장된 내용들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자본주의, 계급 투쟁 그리고 복지
무엇보다도 흔히 개량주의로 간주되어 오던 복지가 민중의 복지라는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제기됨으로써, 복지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복지가 공격을 당하면서 이전에 복지를 개량주의라고 비판하던 좌파들이 이제는 노동자 투쟁의 성과물로서 복지를 사수해야한다고 주장하게된 것인데, 이러한 변화는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다. 1980년대 역사적 반동이래 복지국가적 발전에 제동이 걸리고, 복지 삭감이 시도되면서 이제 복지는 지난 시기 투쟁의 결과물로서 사수되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게 되었다.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적 축적전략이 풍미한 이래 내부적 군살빼기와 지구적 차원으로의 모순의 외화 결과 어느 나라고 예외 없이 노동자 민중의 노동 및 생활 조건이 악화되면서 그 과정에 복지에 대한 요구가 전면화되었으며 노동자 민중 투쟁이 격화되면서 복지에 대한 시각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어떠한 면에서는 복지제도가 19세기 말이래 서구에서 전면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고, 2차대전 후 소위 복지국가적 발전과 함께 지금의 형태로 확대되면서 이미 이를 여러 가지 차원에서 이론적으로 명확히 해야 할 필요성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민중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정책의 발전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사회적 권리의 확대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사회적 영역에서의 계급투쟁은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 전략에 비추어 어떻게 위치지워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흔히 시장 실패와 국가가 나서서 이를 해결한다는 관점만 가지고서는 답을 구할 수 없다. 문제의 해결이 되지는 않은 채 시장의 효율성을 지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시장 맹신주의와 마치 국가가 담당하면 공익성이 확보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국가 물신주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국가 실패와 시장 실패를 되뇌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국가의 공익성은 항상 왜곡되기 마련으로, 국가는 마치 사회의 일반적 이익을 대변하는 것 같은 외양을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 균열이 표현되어 사회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지배자, 자본의 이익이 주도적으로 관철된다. 거꾸로 시장은 효율적인가? 시장의 무정부성에 더해서 여기에서도 오직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이해가 주도적으로 관철됨으로써, 끝없이 위기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자본주의적 시장이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모순에 대한 해석, 계급론, 국가론, 개량적 투쟁의 전략과 전술,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전략에까지 이어지는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쟁점들과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쟁점들에 대해 모두 답을 구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일단 지난 시기의 세계사적인 변화로부터 아래와 같은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 십년간의 복지국가/사회국가적 발전이 사회적 영역에서의 국가의 활동의 확대에 대한 해석의 문제를 제기하였다면, 지난 80년대이래 이십여 년간의 복지국가 해체과정은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복지국가적 발전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자본주의 틀 내에서는 GNP의 20~30% 정부지출의 50% 정도에서 사회적 지출은 일종의 한계점에 도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수치는 순수 경제학적으로 정확히 수치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오히려 사회적 정치적으로 다시 말하자면 계급간의 힘관계에 의해 규정된 수치라고 볼 수 있다. 전 사회적 잉여가치의 분배라는 점에서 볼 때 복지는 자본이 이윤으로 가져가는 부분을 제외하고서는 형태만 다를 뿐이지 임금과 마찬가지로 노동자가 가져가는 부분으로서 기본적으로는 어떤 계급이 더 많이 가져가는가 하는 것은 오로지 계급간의 힘관계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지적되어야 하는 점은 한번 확대된 복지 역시 자본의 위기 상황에는 끝없이 공격당하며, 되돌려 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80년대이래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복지가 극적으로 후퇴한 것은 아니고 단지 2차대전 이후의 발전 속도에 제동이 걸린 상태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리하여 마치 복지 그 자체에 괴력이 있어서 한번 도입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소위 불가역성테제도 주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은 계급간 세력관계에 의해 되돌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합리적인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중적 투쟁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이미 왜곡되거나 협소한 형태로 도입이 될 뿐 더러 한번 도입된 제도도 되돌려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어떻게든 제도를 일단 확대만 해놓고 보면 된다는 관점의 한계는 분명하다.


2. 생산적 복지: 신자유주의 축적전략의 동반자
무엇보다도 지금의 현실은 지난 시기의 역사적 과정의 결과물이라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노동유연화는 지난 시기 96/97년 노동법 개정 투쟁의 한계가 결과로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정리해고 2년 유예를 받아들이고 98년도에는 그나마 유예조항을 삭제하는데 동의함으로써 지난 몇 년간 전국적으로 지속되어 대우자동차로 이어지는 대량실업 사태가 피할 수 없게 되었다면, 근로자 파견제의 도입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우리가 이러한 역사성 속에서 지금의 상황을 돌이켜 볼 때, 96/97년 당시 노동시장 유연화는 어쩔 수 없는 대세라는 주장이 현실론으로 제기되었으나 이는 잘못된 현실론이었음이 분명해졌다. 몇 년간의 과정이 지나면서 모순이 커져 이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전면화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도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내는데 일조하였다. 우리는 당시에 정리해고를 받아 들여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제고함으로써 고용을 창출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안전망의 창출에 정책의 중심을 실을 것인가 하는 양자 택일의 문제처럼 논쟁이 제시되어졌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고용창출론자와 사회적 안전망론자 사이의 논쟁은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논쟁이었고, 논쟁의 구도 자체가 이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한 문제제기를 봉쇄하는 장치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현실에서는―마치 화해할 수 없는 적대자인 것처럼 논쟁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대규모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전개되면서 동시에 그것의 보조장치로 사회적 안전망이 도입되었다.
지금 논의되는 생산적 복지는 고용 창출론과 사회적 안전망론의 서로를 필요로 하는 불편한 동거의 결과로, 시장 만능론과 맹목적 사회적 안전망론의 합작품이다. 일종의 형용모순으로서 생산적이 고용 창출론이라면 복지는 사회적 안전망론이 결합한 것으로, 생산적 복지에는 복지권이 전국민으로 확대되었다고 주장되는 한편 경제논리에 따른 생산적 형태의 복지가―즉, 구제가 아니라 자활, 복지보다는 노동―동시에 강조되고 있다. 어정쩡한 동거이니만큼, 그때마다의 무게 중심에 따라 한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고, 지금은 생산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이다. 이야기되어지기로는 마치 경제위기 극복이 잘 되고 민주적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되니까 이제 그 성과를 바탕으로 생산적 복지를 도입하자고 주장되지만, 사실은 경제위기 극복전략으로서 위기를 노동자 민중의 부담으로서 돌파하려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전개하면서 그것의 결과로 증폭된 모순을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자본의 생산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생산적으로 땜질한다는 것이 그 실체인 것이다.
단군이래 최대의 개혁이라는 수사와 함께 거대한 팡파르를 울리며 진행된 이 땜질의 실상은 생산적 복지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생산적 복지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기초생활 보장제도 실시 1년이 지나면서 현 정부가 모든 국민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성과를 보자.
전국민 확대? 제도가 도입된 1년을 계기로 대상자가 149만명에서 151만명으로 증대하였다는데 새로 도입된 조건부수급자 4~5만명을 빼면 기존에 받아 오던 생활보호대상자는 오히려 줄어들었음을 볼 수 있다. 이미 지적했듯이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함께 국민연금, 산재보험,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의 전국민 확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55%을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70~80%가 사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볼 때, 경제위기 이래 어쩔 수 없이 증가된 부분을 제외한다면 사회보험 및 공적 부조의 모든 영역에서 오히려 포괄 대상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급여 수준의 향상? 1인당 급여 수준이 14만 1천원에서 18만 2천원으로 확대되어 관련 예산이 2조 3,321억원에서 2조 7,923억원으로 증대되었다고는 하나, 그간 기업 하나를 살린다고 수십조원씩 투자하고 헐값에 매각하는 것과 비교할 때 또는 1인당 수천억씩에 달하는 각종 비리자금, 도피 자금과 비교해 볼 때에도 전국민을 대상으로 제도가 확대되면서 고작 4천 6백억원 정도가 증액된 것은 너무나 인색한 인상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활? 1년간 4,500명의 자활 성공사례가 보고되어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나, 같은 시기에 대규모로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과 비교한다면 이 역시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일하겠다는 의지에 불타고 있는 노동자들을 사업장 별로 수천명씩 자르고 있는 마당에 무슨 자활사업인가?
그나마 땜질형의 이러한 제도의 확대 자체도 졸속으로 무리하게 확대됨으로써 각종 병폐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4대 보험이 확대되고 통합 될 때마다 문제가 되었던 지역의 자영업자 소득산정의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없이 계속 남아 있는데, 이는 4대 보험의 재정위기로 뿐 아니라 조세 정의의 기본이 무너짐으로써 분배정책적인 정당성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150만에 달하는 기초생활 보장 수혜자의 재산 및 소득조사를 통해 부정 수급권자를 밝혀낸 실력과 의지를 볼 때 소득산정의 문제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소득산정 위원회가 아무 활동도 없이 2년여만에 소리 없이 사라진 것이나, 해외 도피한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은닉 재산을 밝히는데 1년 여의 기간이 걸린 것을 볼 때, 자영업자와 자산가들의 재산 조사가 힘든 이유는 진정 계급적인 이유에서 일 것이다. 정부 당국과 관변 학계에서는 고부담 저급여 체계와 전달체계의 효율화 문제가 이구동성으로 만병통치약처럼 등장하나, 국가 부도의 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는 지금의 사회보장제도의 문제는 사소한 제도 내 개선의 수준에서 해결될 수 없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연관되어져 있다.
3. 새로운 전망의 모색
앞에서의 논의를 바탕으로 복지에 대한 몇 가지 시사점을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주체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 새로운 차원에서 계급적 관점을 견지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예컨대 정규군, 산업예비군, 빈민으로 구성되어 있던 노동자 빈민 계급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래 정규군과 산업예비군 사이에 광범위한 비정규직 노동자층을 양산해 내었는데, 계급적 관점에서 본다면 정규직의 이해를 위해 다른 부분이 피해를 본다든가, 빈민에 대한 복지대책을 강화하기 위해 정규직이 피해를 본다든가 해야할 문제가 아니다. 계급적 관점에서 본다면 정규군 비정규군과 산업예비군, 그리고 노동 무능력자를 포함한 빈민 등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피지배계급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대부분의 사회보장제도에서 지역 주민, 또는 다양한 이익집단의 형태로 등장하는 중간계급과의 연대전략으로 확대될 수 있다. 직장과 지역, 또는 의사, 한의사, 약사와 환자가 대립할 것이 아니라 거꾸로 자본과 지배층과의 대립 속에서 그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노동자 민중의 노동권, 생활권을 쟁취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생산적 복지는 이때 자본 축적에 유리한 형태의 복지, 즉 자본의 복지인 바, 이를 민중의 복지로 대체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지금의 모순은 지난 시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물로서 우리의 투쟁의 한계 역시 이에 표현되어 있다고 볼 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피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축적전략의 한 형태로서 사실은 신자유주의만 극복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신자유주의적 축적 전략에 대해 사민주의적 축적전략이 해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장 만능주의와 국가주의, 고용 창출론과 사회적 안전망론은 마치 서로 대립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공존하면서 자본의 위기극복과정에 동참해 왔고, 그 귀결은 노동자 민중의 노동조건 및 생활조건의 악화였다. 이러한 유사 대립적 공존은 최근의 생산적 복지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복지를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서, 즉 전 사회적 관점에서 배치해야한다. 지난 역사에서 볼 수 있었듯이 무조건 복지만 발전하면 그만이라는 복지만능주의적 관점에서 복지를 개혁할 때, 복지는 고작해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보완물에 그치게 된다.
변화를 주도할 새로운 사회적 주체의 형성, 계급적이고 역사 사회적인 관점에서의 노동자 민중의 노동권, 생활권 쟁취 투쟁이 가능할 때에, 우리는 자본의 시혜주의와 국가의 온정주의를 넘어서, 지금의 모순이 다른 형태로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이 지양되고 새로운 사회가 건설되는 과정의 단초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01.12.5) 한/노/정/연

2001-12-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0&no=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