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한국 |
현장에서 미래를 제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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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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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권두언
이 성 백
연구위원장
작년 말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한국사회의 위기를 주제로
강좌를 기획한 적이 있다.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심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던 터이라, 제안을 받아들여 나도 한 강좌를 맡았다.
기획한 사람이나 나나 ‘대박’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강좌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정작 강의를 하러 가보니 앉아있는 사람들은 열댓 명
남짓이었다. 강단에 서서 첫마디로 이 강좌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수강하는 사람이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을 꺼냈더니, 한
사람이 불쑥 “다른 사람들은 한국사회가 위기라고 느끼지 않는
모양이지요”라고 한 마디 하였다. 물론 이 사람은 별 생각 없이
반농담으로 지나치듯 한 말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게 맞는
이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당연시하고 있었는데, 이게 잘못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속으로 물어보고는,
‘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아직 별로 위기를 느끼고
있지 않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별 것도 아닌 일로 나만 공연히 심각해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객관적으로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해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그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사람들이 전혀 위기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상황에 새해 벽두부터
덕담은커녕 한국사회가 망해가고 있다는 불길한 소리만 늘어놓는
것이 솔직히 별로 마음이 내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개인으로서는 여러 가지로 걱정이 앞서 이 자리를 빌어서나마 몇
마디 넋두리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사회에 하수상한 일이 벌어졌을 때 “망조”가
들었다는 표현을 쓴다. “망조”란 말 그대로 “망할 징조”를
말한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돌아다보면 그야말로 망조 아닌 것이 없다. 옷로비 사건, 각종
‘게이트’, 난장판 정치권, 등등 이루 열거하기가 힘들다. 매일
연이어 터져 나오는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에 국민들은 환멸을
느끼다 못해 이제 환멸을 느끼는 데에도 면역이 되어버렸다.
IMF 사태 이후 한국경제는 계속 나빠지고 있다. IMF체제를 다른
나라보다 일찍 ‘조기졸업’한 것을 현 정권은 마치 망해가고
있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 양 최대 치적의 하나로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그러나 그것은 억지로 졸업장만 탄 것에
불과할 뿐이고, 위기를 초래한 발병원인을 치유한 것은 조금도
아니다. 도리어 현 정권이 추진한 경제 구조조정이란 것이
우리나라의 경제 체질을 강화하기는커녕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IMF체제를 조기에 졸업한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현 정권이
경제에 망조가 들게 한 데에 크게 책임이 있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모든 국민이 고통을 분담해야한다는 미명 하에 정리해고를
강행하여 많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그러나 현 정권은
노동자들에게 생존의 터전을 박탈하는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면서, 정작 경제를 살리는 실질적인 경제 개혁에는
게을렀다.
재벌 개혁은 흐지부진하더니 어물쩡 넘어가 버렸고, 나라 경제의
사활이 걸렸다고 하던 이른바 “벤처산업”은 막대한 정치자금
조달과 정치인의 개인적 축재를 위한 도구로만 이용되었다.
벤처기업가는 기술 개발을 통해서 기업을 키우기보다는 정치권과
유착하여 정치권력의 비호아래 주가조작 등의 각종 비리수법을
통해 돈을 벌어들였고, 정치권은 이렇게 벌어들인 돈의 일부를
벤처기업으로부터 대가로 거두어들였다. 한국의 벤처는 정치권의
“앵벌이”에 불과한 것이다. 아직까지도 언론에 주요
기사거리가 되고 있는 각종 게이트들은 벤처기업과 정치권의
신종 정경유착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거대한 비리의 일부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요즈음 신문에는 경기가 바닥을 쳤고, 경기가 호전되어 올
경제성장률이 3%가 될 것이라는 기사가 눈에 띤다. 올해가
선거가 있는 해라 선거를 위한 민심수습용 기사란 의혹은 일단
접어두고, 설사 실제로 경기가 나아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순전히 우연적인 요인들에 의한 것에 불과하고, 경제가
구조적으로 개선된 데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몇 해 동안
경제적 양극화는 계속 심각해지고 있다. 높은 실업률은 수그러들
줄 모르고,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얼마 전 통계에
따르면 IMF 이후 부유층 10%만 돈을 더 벌었고, 그 나머지 90%에
해당하는 국민들의 실질소득은 줄어들었다. 경기가 혹
나아진다고 하더라도, 그 수익의 대부분은 부유층 10%에게
돌아갈 것이 뻔한 일이다.
현 정권 하에서의 경제개혁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논리와 현
정권과 넓게는 정․관계를 포함한 정치권의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정치논리의 ‘절묘한’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경제를 구조적으로 더 망쳐 놓았다. 특히 경제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주체로서 정치권이나 재계는 목전의 정치적, 경제적
이권을 챙기는 데에만 골몰하고, 경제개혁에 진정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경제만 망조가 든 것이 아니라 정치 또한 망조가 들었다. 여당과
야당 사이의 끊임없는 소모적 정쟁, 실리에 따라 정치적 신념도
없이 왔다갔다하는 기회주의적인 철새 정치인들, 심지어
정치권에 신선한 젊은 피를 수혈한다는 이른바 386세대 출신의
한심한 꼴 등, 모든 국민은 정치인들의 그 엄청난 ‘치적들’을
누누이 보아왔기 때문에 여기서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국민들 중 많은 사람은 벌써 이민을 떠났어야 했다. 지난 선거
때에는 만일 누가 당선되면 나는 한국을 뜰거야라고 했던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이 말대로라면 벌써 내 주변에서만도
여러 사람이 이민을 떠났어야 했다. 나 또한 이민을 가야할
뻔했다. 386세대의 어떤 한 친구가 대통령에게 넙죽 절에서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 나는 그런 그의 추태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작년 어느 지역 보궐 선거에 이 친구가 다시
후보로 나왔다. 그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 친구가
당선되면 이번엔 내가 이민 갈거야’라고 했다. 다행히 그는
낙방했고, 나는 남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올 대선을 앞두고
다시 걱정이 앞선다. 아마도 지난 총선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떠나야만 할 것이 아닌가?
정치권에서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찾을 수 없는가? 그래도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정치윤리를 지키는 양심적인 정치인이
하나라도 없는가? 설령 이런 사람이 있다하더라도 그는 정치권을
바꿀 힘이 없다. 나라의 개혁에 앞장서는 것이 정치의 본분이다.
그런데 정치권이 먼저 개혁되어야 할 실정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구조적으로 썩어있기 때문에, 정치권은 스스로 개혁할 힘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적인 정치인이라고 한다면, 그
정치권의 물에서 떠나야 한다. 까마귀들이 노는 데에 백로는
가서는 아니 된다고 일찍이 우리 성현들이 가르쳐주지
않았는가?
교육입국임을 자처해오던 대한민국에 교육마저 망조를 보이고
있다. “교실이 파괴되었다”고 야단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수업이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학은 대학대로 취업을 위한 사설학원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진짜 이민이 유행이다. 우리 아이들만은 끔직한
교육현실 속에서 배우게 할 수 없다고 짐을 챙겨 교육이민을
떠나고 있다.
망조는 그 외에도 사회의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언론도
썩었다. 그렇지만 이쯤으로도 한국사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나의 생각이 결코 나만의 공연한 우환만은 아니라는 것이 충분히
설명되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어느 일간지에 한국이 망해가고
있다는 칼럼이 실린 적이 있다. 번뜩 눈에 띠어 보았더니 어느
보수적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대학교수가 쓴 글이었다. 그는
한국사회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사회적 지표들을 들어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런데 그는 위기의 책임을 현 정권의
개혁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서 보수적 논객으로서의 그의
면모가 드러난다. 현 정권의 쓸데없는 개혁이 나라를 망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결론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은 그가 생각했던 대로 그리 간단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과연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 해결책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이른바 한국에서 사회적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과 사석에서 대화를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런 저런 사례들을 들면서 사회적 위기의 심각성을
토로하고, 그 책임이 이른바 사회적 지도층이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나의 주장에 대해 이들의 반응이란
것이 “너나 잘해”라는 단 한마디였다. 어처구니가 없어 더
이상 대꾸할 의욕마저 잃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한마디에 모든 문제가 잘
표출되어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풀어보면 이른바
우리나라의 사회적 지도층에 속하고 있는 사람들은 잘 할래야 잘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재계, 정계, 관계 할 것 없이 우리나라의
사회적 지도층은 비리의 연줄로 구조적으로 서로 엮어져 있다.
심지어 사회정의를 수호한다는 검찰마저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국민의 정부”라는 현 정권도 이러한 기득권 층의
일부에 불과하다. 현 정권은 집권기간 동안 “국민의 정부”가
아니라 기득권 층의 한 부분임을 입증했다. 한국사회 위기의
원인은 현 정권을 포함하여 군사독재와 졸속 근대화 과정에서
출현된 구조적 비리로 얽혀 있는 이른바 사회적 지도층에 있다.
이들에게는 이른바 사회적 지도층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도덕적
지도력마저 찾기 힘들다. 이들은 나라를 생각하기에 앞서
기득권을 유지, 확대하려는 사적 이익에 함몰되어 있다. 심지어
나는 과연 이들이 한국을 조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일 때가 많다. 외화도피, 고급빌라 구입,
2세들의 미국 국적 소유 등 여러 기사를 지상에서 볼 때마다
이들의 조국은 미국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떨칠 수가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는 시로 존경받던 민족시인이
사망하였을 때, 신문에 크게 실린 장례식 공고를 보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후손들은 모두 미국시민이 되어 있었고,
그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미국에서 ‘귀국’했다는 것이다. 한
조각 심장만으로라도 가야 할 고지가 다름아니라 미국이었단
말인가?
한국사회의 위기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른바 사회적 지도층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은커녕, 스스로를 개혁할 만한 능력도 갖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대통령을 새로 뽑는 해이다. 모든 후보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나라를 국난에서 구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미 누가 되든 그 사람이 그 사람임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위를 쳐다보지 않고, 밑으로부터의 개혁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밑으로부터의 새로운 민주적 정치세력이
등장해야한다. 이 세력만이 진정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으며,
한국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이 세력의 주체적 형성에는
노동자와 민중, 그리고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앞장 설 수밖에
없다. 이미 노동․민중 운동 진영 내에서 이런 정치세력
형성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데 눈을 돌리지 말고, 여기를
바라보자. 밑으로부터의 진정한 민주적 정치세력의 형성에 함께
참여하자. 오직 이것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며, 바로
여기에 한국의 미래가 있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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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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