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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투쟁을 중심으로 펼쳐진 기아투쟁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쟁점: 정규직과 비정규직(1) 기아차 화성공장 투쟁 속에서

현장에서 미래를  제114호
백철현

쟁점: 정규직과 비정규직 (1) 기아차 화성공장투쟁 속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중심으로 펼쳐진 기아투쟁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백철현 / 전국노동자정치협회 회원




전국전선에 찬물을 끼얹은 기아노조의 총파업 찬반투표 부결

11월 23일 기아에서 개최된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쟁취! 민주노총 총파업 찬반투표 총회 는 총원대비 47.9% 투표 대비 56.2%로 부결됐다. 조합원 총회는 전체 재적 조합원 대비 과반수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기아노조는 총회 결과가 부결인지 가결인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를 못하고 있고 일순간 기아 현장은 혼란과 아수라장이 되었다.
금속노조는 “1,500만 노동자들이 민주노조 4번 타자의 화려한 부활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면서 “정권과 자본의 ‘노동자 죽이기’에 맞서 민주노조를 구해낼 4번 타자인 금속노동자. 그리고 현대·기아차 조합원들을 전국의 노동자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살리고 민주노조를 지켜낼 역사적인 투쟁으로 9년 전 겨울 민주노조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길 기대하면서 말입니다”라면서 기아에서의 가결을 열망했다.
결국 민주노조 4번 중심타자의 역할을 수행해야할 현자는 선거일정을 이유로 찬반투표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고, 기아는 부결돼서 총파업 전선에 찬물을 끼얹었다. 전국적인 투쟁전선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고 있고, 비정규직 사업장들이 총파업을 만들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4번 타자 기아의 부결은 혼자만의 3진 아웃이 아니라 주자들마저도 더블 아웃 시켜버린 결과를 초래했다.
기아노조는 일단 민주노총 전체 찬반투표 결과에 따라 총파업 유무를 결정하겠다고 하지만 적들 앞에 자신들의 약점을 그대로 노출시켜버렸다. 민주노총 비대위가 이미 기간제 관련한 양보안을 제시하면서 총파업 투쟁을 사회적 합의주의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기아의 부결은 ‘현장 동력 약화’를 근거로 한 교섭주의를 더욱 정당화시킬 것이다.
기아의 부결은 정규직 조합원들의 현장의 침체와 보수적인 정서가 원인인가?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기아 현장을 침체로 몰아가고 조합원들을 보수적으로 몰아가는가? 현장 내 노동자들은 불균등하다. 노조의 투쟁 일정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선진적인 조합원 층이 있는가 하면 몸 사리고 대단히 보수적인 조합원 층도 있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정서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조합원들은 지도부의 투쟁의지, 조합과 자본의 힘의 역관계 등에 따라 대단히 빠르게 변모하기도 한다. 조합원 개개인들의 경우도 고정적으로 선진층, 보수층으로 나눌 수도 없다. 선진적 조합원들의 경우에도 자신들의 고용조건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구조조정 등의 현안문제가 없으면 투쟁의 전면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보수적 층의 조합원들의 경우에도 자신의 고용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현안문제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투쟁에 동참하기도 한다. 이러한 객관적인 조건을 넘어서 투쟁에 항상적으로 임한다면 그것은 평조합원이 아니라 의식적인 활동가일 것이다.
기아노조는 “하반기 투쟁목표는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쟁취이다”며 출근투쟁을 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투쟁을 외면하고 허공에 대고 외치는 연대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진실성을 가질 수 없다. 구체적인 사안에서 구체적인 연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아노조는 기아비정규직지회가 투쟁을 할 때 구체적인 연대를 회피하고 사사건건 비정규직 투쟁을 가로막았다.
9월 28일 비정규직 투쟁에 용역깡패가 투입되고, 10월 7일 노동조합은 이른바 ‘자살총회’를 강행하여 투표인 대비 38.5%, 총원대비 32.5%로 부결됐다. 이번에 기아노조가 권리보장입법 총파업 투표를 개최하자 11월 21일 기아 자본은 화성 공장장 부사장인 조남홍 명의의 유인물에서 “또다시 생산현장이 혼란에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지난 10/7일 비정규직 관련 총회 시 현장의 입장은 분명했습니다. … 지난 8월 이후 두 달이 넘도록 우리는 비정규직 불법 파업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혼란과 손실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급기야 지난 10월 7일 ‘원하청 공동투쟁 관련 총회투표’를 실시했고, 이에 대한 현장의 정서와 입장은 ‘더 이상 현장이 혼란에 빠져서는 안된다’란 것이었습니다.”라며 부결을 선동했다.
용역깡패 투입 이후 현장의 엄청난 충격과 분노를 뒤로 하고 다음 날 대의원대회에서 일방적으로 총회결정을 내린 뒤 ‘자살총회’를 할 결과가 재차 부결이라는 지금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기아, 현대차 같은 대공장 정규직 노조에게 더 이상 계급성, 연대성, 민주성으로 상징되는 ‘민주노조’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될 것이다. 대신에 조합주의 노조가 이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 될 것이다. 이러한 노조 집행부들은 정규직 중심의 폐쇄성(여기서 정규직 중심이라는 말이 이들이 자본에 대항하여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철저하게 대변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이들은 비정규직과의 계급적 단결을 회피하는 수단으로서만 정규직의 정서, 정규직 중심을 이야기한다)과 반연대성을 정치적 특징으로 한다. 조합주의 집행부들의 또 하나의 고유한 특성은 노동자민주주의를 절차적 민주주의로 전락시켰다는 점이다.
조합주의 집행부에 의해 노동자 대중의 집단적 의지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조합원 총회는 대중들의 보수적 정서를 조장하고 여기에 기대서 투쟁을 회피하는 수단이 돼 버렸다.
비정규직 투쟁을 얼마나 자신의 문제로 받아 안느냐의 유무가 오늘 날 민주노조냐, 선진 활동가냐를 가르는 시금석이다. 기아자동차 내에서 정규직 노조의 조합주의는 비정규직지회의 출범과 투쟁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폭로됐다. 기아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은 과거 아시아자동차(현 광주공장)에서 투쟁이 벌어지고 이후 광주공장에서 가장 먼저 비정규직노조가 만들어졌으나 명맥을 유지 못하고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기아 화성공장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업체별 투쟁과 기아 비정규직 현장투쟁단을 통해 3년 동안의 투쟁을 거친 뒤 올해 6월 비정규직 지회를 설립하면서 전면적인 노조 차원의 투쟁을 전개하게 됐다.
기아비정규직지회는 8월 26일 금속연맹 지침을 근거로 정치총파업을 전개했다. 정규직노조는 이날의 정치총파업에 불참했다. 기아비정규직 지회는 정규직노조가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독자적으로 파업을 전개하여 전면적으로 화성공장을 멈췄다. 이날의 독자파업에 대해서 비정규직 지회는 ‘대중파업 원년’이라는 말로 감격을 표시했다. 노조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도 어려운 극단적인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독자파업이 성공한 뒤 조합원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표시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멸과 멸시, 사회적 냉대, 자신에 대한 자학을 넘어 이제는 “정규직이 못한 파업을 우리가 해냈다”라는 성취감을 표현했다. 지회 조합원들이 독자파업을 전개하여 화성공장을 마비시킨 뒤 조립라인을 순회하자 정규직 조합원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정규직의 정서 뒤에 서서 연대를 회피하는 노조의 주장이 빈말임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아래로부터의 굳건한 연대는 용역깡패 투입 이후에 두 번째로 나타난다.
이 날의 독자적인 ‘대중파업’을 근거로 비정규직 지회는 주 2회의 6시간 파업을 전개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원하청 자본의 대대적인 탄압, 정규직 노조의 연대회피와 노골적인 압박 등 안팎에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하청연대회의의 마(魔)의 3원칙과 비정규직 독자파업

현대자동차에서 ‘공동결정, 공동투쟁, 공동책임’ 이라는 3원칙으로 시작된 원하청연대회의는 기아에서도 똑같이 적용됐다. 그런데 원하청연대의 상징인 3원칙에 대해서 기아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마(魔)의 3원칙이라고 한다. 고립적이고 취약한 조건에서 활동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규직과의 공동투쟁, 단결의 장이 만들어졌는데 정작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이를 자신들의 일을 망치고 재앙을 가져오는 마로 표현한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현실의 모순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실제 정규직노조는 이 3원칙을 근거로 비정규직지회의 독자투쟁을 통제하고 가로막았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지회는 이 마의 3원칙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때로는 의존하고 기대하기고 하고 때로는 자신들을 억누르는 원하청연대회의의 취약한 틈을 비집고 독자파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물론 원하청연대회의는 현장조직이나 그 속에 포함된 정규직 선진 활동가들을 통해 정규직노조를 투쟁으로 견인하는 역할을 통해서 대체인력투입과 구사대 폭력을 막아내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정규직노조는 현대자본의 유례없는 호황이라는 조건 덕에 현자 수준의 합의로 추석 전 타결이라는 예정된 수순을 밟고 있었다. 이 때문에 기아노조는 부분파업 정도의 파업은 했지만 기아에서 관례화된 퇴근파업으로 일관하면서 자본과의 관계를 치명적인 대립관계로 몰아가지 않았다. 이에 반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죽느냐 사느냐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자본으로서도 일정 정도 타협적 수준을 마련할 수 있는 정규직과의 관계에 비해 비정규직 투쟁은 자신들의 이윤축적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묵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기아노조에게 비정규직지회 투쟁은 자본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임협을 마무리하려는 데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현대자동차 이상욱집행부에게 있어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과 열사투쟁이 임단협을 마무리 하는데 최대의 걸림돌이었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실제 기아비정규직 노조가 독자파업을 벌일 때 화성지부 명의로 나온 유인물을 보면 기아노조가 얼마나 비정규직 투쟁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화성지부는 “노조는 비정규직 사업만 하는 게 아닌데 비정규직 사업에 집중하느라고 노조의 일상사업이 마비됐다. 임협을 잘 치렀는데 비정규직 투쟁 때문에 노조의 지도력이 거의 무너졌다”(이 부분은 기억에 의존해서 썼기 때문에 내용적으로는 맞지만 문맥이 똑같지는 않다)라는 내용으로 노골적으로 비정규직을 비난하기도 했다.
원하청연대회의 관련한 10월 6일 기아노조 함성소식을 보자!
기아노조는 비정규직 지회의 독자파업을 비난하면서 “하지만 노동조합은 기존 원하청 연대회의 속에서 결정된 3원칙을 준수해 갈 것이다. 원청 노동조합의 이러한 고민에도 불구하고 3원칙을 무시한 독자적인 비정규직 지회의 파업이 계속된다면 연대의 책임은 앞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3원칙 속에 결정되어진 연대투쟁은 연대책임 하에 노동조합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할 것이나 이를 넘어선 행동은 서로를 힘들게 하는 사태를 낳게 될 것이다.”라고 은근히 압박했다.
자본은 몇 차례의 비정규직 파업이 전체 공장을 마비시키자 비정규직 투쟁의 거점이자 구심인 신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신성은 자본의 외주화로 인해서 하청업체가 된 사업장으로 조립라인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사업장이었다. 자본은 자신이 만들어 낸 신성업체 노동자들로부터 복수를 당한 것이다. 이미 현장에서는 정몽구가 공식석상에서 신성을 반드시 깨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자본은 정규직노조의 임협 기간에는 부분적인 공격은 가했지만 전면전인 도발은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9월 15일 정규직노조가 임투 잠정합의안을 가결하자마자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원청자본은 수백 명의 구사대를 동원해서 차량돌진과 물대포를 쏘며 신성을 침탈했다. 이 투쟁으로 정규직, 비정규직 31명의 노동자들이 업무방해, 폭력혐의 등으로 원청에게 고소를 당했다. 지회가 원청의 침탈에 맞서 거점인 신성을 사수해내자 원청자본은 이제는 신성물량을 밖으로 빼돌려서 조립라인으로 직접 투입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때부터 지회전술은 대체인력에 의해 지회 조합원들이 부품을 조립하는 1라인에 부품이 투입되는 것을 저지하고 조립거점을 사수하는 것으로 변했다.
기아 원청 자본은 급기야 10월 31일부로 신성을 계약해지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지회는 25일 전격적으로 조립라인 시트공정을 잡고 기습적인 파업에 들어갔다. 지회는 26일 본관 앞 항의집회 일정을 유인물로 배포해서 원청의 관심을 밖으로 돌려놓고 25일 8시 반경 야간조 때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 날 파업은 전술이 새나갈까 봐 미리 쟁대위의 위임을 받아서 조합원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임원 차원에서 결정을 내린 파업이었다. 이에 대해 정규직 노조는 사전 논의 없는 파업으로 자신들의 위상에 치명타를 입었다면서 ‘돌출행위’, ‘돌발행동’으로 기습파업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25일 기아차 노조 화성지부는 “노동조합은 화풀이 대상도 아니고 필요하면 찾고 필요 없으면 무시하는 대상도 아니다”라고 이번 사태에 대해 당혹감을 표시하면서 “노동조합은 다시 한번 정규직 노동조합이 완전하게 무시당한 이번 기습파업에 대하여 강한 유감을 표현하며 앞으로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동으로 살 수 있는 길을 가기 위해 공동결정 공동투쟁 공동책임의 3원칙을 준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독자적인 돌발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라고 협박했다.
라인점거 3일 째 화성 지부에서는 “10월 27일 라인 중단 장기화에 대한 피해는 당사자인 우리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중단에 다른 피해를 줄이고자 노동조합에서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 잘못된 판단으로 계속해서 장기화로 이루어 졌다면 원청과 하청 모두가 자포자기하는 길로 갈 것이 자명할 것입니다”라는 원청자본의 하수인임을 자처했다. 기아화성지부는 조반장까지 동원하여 조립라인을 공격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파업라인 바로 옆을 지나가며 지회의 파업을 비난하는 유인물을 버젓이 뿌리고 다녔다.
계약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명줄을 끊는 행위다. 원청자본은 신성계약해지 발표와 더불어 나머지 7개 업체에 대해서도 계약해지를 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31일로 계약해지가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기아노조는 이에 맞서는 아무런 투쟁계획을 제출하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회의 독자파업은 너무나 정당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기아노조는 신성계약해지와 관련된 협상에 들어가는 전제조건으로 지회가 먼저 라인점거를 풀 것을 요구했다.
결국 지회는 계약해지에 부담을 느낀 조합원들의 대대적인 조합탈퇴와 거점사수 인원의 이탈, 정규직노조의 노골적인 압박, 조여 오는 구사대 협박에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라인점거를 풀고 이후 신성분사 안을 수용하였다.
이렇게 비정규직 지회의 결정적인 투쟁의 순간마다 공동투쟁이라는 이름의 3원칙은 투쟁의 발목을 잡고, 투쟁을 회피하는 근거로 이용됐다. 화성공장을 방문하여 지회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가지는 자리에서 기아노조 남택규위원장은 “정규직노조가 이미 임협을 끝냈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를 가지고 파업을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정규직노조가 한편에서는 비정규직 투쟁을 가지고 공동파업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투쟁, 공동결정을 얘기한다면 그것은 지회가 아예 독자적인 투쟁을 벌이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 원하청연대회의는 때로는 지회의 독자파업과 이를 엄호하는 선진활동가들과의 관계를 통해 비정규직 투쟁의 방어막이 되기도 했으나, 조합주의 집행부에 의해 투쟁을 압살하고 그러면서도 조합원들한테는 공동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관료적 작태를 숨기는 장막이 되기도 했다. 이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하여금 마(魔)의 3원칙으로 불려지게 된 사태의 진실이다.

용역깡패 투입과 대중의 역동성에 눌려버린 선진 활동가

비정규직 지회의 투쟁은 기아 채용비리, 부품도난 건 등 죽어 있는 현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선진 활동가들은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면서 정규직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비정규직과의 연대의 정당성을 설득해나갔다. 정규직노조는 이에 대해 정규직 조합원들의 보수적 정서를 근거로 연대를 회피했다. 그런데 위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용역깡패 투입은 조합원들의 보수적인 정서가 설령 있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국면에서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비정규직의 투쟁에 대해 원청자본은 구사대를 동원한 대체인력 투입이 번번이 가로막히자 드디어 9월 28일 가스총과 핼맷으로 군대처럼 무장한 용역깡패를 현장에 투입했다. 정규직노조는 용역깡패 투입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만을 냈을 뿐 용역깡패가 공장문을 들어오고 식당에서 활보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용역깡패는 급기야 그날 저녁에 비정규직 지회 파업을 깨기 위해서 수백 명이 현장을 침탈하여 주먹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쏘고, 볼트와 의자를 집어던지는 난동을 부렸다. 이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던 정규직 노조간부와 정규직 선봉대 동지들이 부상을 입었다.
기아노조 역사상 공권력조차도 한 번도 현장을 침탈하지 않았는데 용역깡패의 현장침탈을 겪은 정규직 조합원들의 감정은 착잡함과 허탈함, 이를 사전에 막지 못한 집행부와 깡패를 불러들인 자본에 대한 분노로 뒤엉켰다. 조합원들의 마음은 요동쳤다. 이로 인해 정규직조합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를 가로막던 벽이 일순간에 무너지면서 이제는 공동운명체라는 집단의식이 형성되었다.
“조합원 동지들! 깨진 것은 제 얼굴이 아니라 바로 이곳 현장입니다”라는 정규직 선봉대의 선동과 함께 곧바로 조립1라인은 멈춰버렸다. 이어서 정규직 비정규직 공동집회를 개최하고 곧바로 조립2, 3라인을 세우자 공동대오는 순식간에 2천여 명으로 불어났다. 정규직노조는 이러한 공식 노조를 재끼고 진행되는 사태의 불을 끄고자 본관에 가서 긴급하게 원청자본과 협상을 개시했다.
정규직 비정규직 공동대오는 본관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분노한 투쟁 대오는 파이프와 몽둥이로 무장하고 본관을 치고 들어가려 했다. 이럴 때 정규직노조는 중간에 서서 싸움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마이크를 지부간부에게 빼앗기자 사태의 주도권은 삽시간에 지부간부들이 쥐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 명의 용역깡패들이 본관 옆문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상황은 또 급변하여 용역깡패를 잡기 위한 추격전이 벌어졌다.
이후 화성지부장은 사태해결을 약속하면서 무장을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한 정규직 대의원은 “그날 상황은 누가 먼저 짱돌을 드느냐 였다. 잠시 망설이고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상황은 정리되는 국면으로 돌입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말했다. 분노에 차서 대중들의 역동성과 투쟁성이 최고조로 발휘될 때 활동가들은 사태를 주도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날 투쟁은 비공인파업으로 몰아가면서 최고조의 격돌과 긴장, 통제되지 않는 국면으로 몰아갔어야 했다. 노조가 중간에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고 본관을 치고 들어가서 봉쇄하고 점거를 했어야 한다. 결국 이후 무장을 해제하고 본관을 점거하는 선으로 노조와 정리하고 나자 본관로비 점거에는 소수의 정규직 활동가들과 지회 조합원들만 남았다. 이때부터 사태의 주도권은 공식 관료 지도부인 정규직집행부로 넘어갔다.
정규직노조는 다음 날 대의원대회를 열어서 용역깡패 투입 문제를 안건으로 논의했다. 남택규위원장은 몇 시간 동안 논란만 벌이다가 대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0월 7일 조합원 총회 결과에 따라 파업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입장을 통보하고 회의를 종료해 버렸다. 9월 28일 용역깡패 투입 이후 조합원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원청자본과 협상으로 사태를 무마시키는데 9일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10월 2일 현장공투를 포함하는 중앙 현장 제조직 의장단 회의는 정규직노조의 일방적인 총회결정에 여러 가지 입장이 뒤섞여서 혼란을 겪고, 향후 공권력, 용역깡패, 대체인력의 현장침탈과 고소고발 발생시 전 조합원 즉각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내용의 새로운 총회 개최를 요구하는 조합원 서명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7일 총회에 대한 현장 제조직의 입장이 가결인지 부결인지를 헷갈려 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 열린 10월 7일 ‘노동탄압 분쇄와 원하청 공동투쟁 승리를 위한 조합원 총회’는 부결됐다.
43년 기아노조 역사상 초유의 사건과 이후 드라마처럼 전개된 원하청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연대로 촉발됐던 투쟁은 관료주의 집행부가 조장한 총회 부결로 인해 정규직조합원들이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외면하는 근거와 수치로 악용됐다.
이 투쟁을 볼 때 대중의 역동적인 투쟁은 때로는 관료주의 집행부가 쳐놓은 그물망을 과감하게 찢어버리기도 하고, 이렇게 빠르게 급변하는 사태에 선진 활동가들이 오히려 뒤쳐지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역동적인 투쟁을 선두에서 이끌면서 투쟁의 방향과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면 대중의 분노는 쉽게 식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도 아울러 확인했다.
비정규직 지회 간부나 정규직 선진 활동가들이나 노조질서에 갇혀서 익숙해져 있다 보니까 정규직노조 집행부를 밀어젖히고 과감하게 치고 나가서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렸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더 첨예하게 전개되고 대중투쟁이 급격하게 분출할 때 대중들은 지금 시기 노조 중심의 틀을 과감하게 넘어서 공장위원회나 평의회라는 대중투쟁기관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상황은 언제 우리 앞에 주어질지 모른다. 그럴 때 빠르고 긴박하게 전개되는 사태를 주도하지 못하고 상황의 포로가 된다면 이 대중투쟁기관은 자본가 권력에 의해서 한순간에 박살나버릴 것이다.

해결할 수 있는 과제

기아비정규직 지회는 대공장 비정규직노조 처음으로 단체협약 59개 조항, 부칙 4개 조항에 달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기아비정규직 지회는 계약해지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신성의 3개 업체로의 분사를 수용했다. 2, 3차 노동자들은 단체협약 적용에서 제외됐다. 단체협약은 여전히 미흡하고 지회가 약화되면 언제든지 그나마 쟁취한 단체협약이 깨질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각성한 활동가층은 여전히 취약하기만 하다. 비정규직 지회는 이번 투쟁을 통해서 원청과의 실질적인 교섭으로 사용자성을 인정받는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원청자본의 완강한 태도로 인해 사내하청 업체대표들과의 집단교섭에 머물러야 했다. 따라서 신성 계약해지 문제는 정규직노조가 자신들이 지회에 던진 요구안을 가지고 대리교섭을 했다. 원청자본과 정규직노조가 하청업체의 고용문제를 가지고 대리교섭을 하는 객관적인 조건 때문에 비정규직 지회의 자주성, 독자성은 끊임없이 침해를 당했다.
이번 글에서는 비정규직 지회의 투쟁에 대해서 따로 평가하지 않았다. 지회의 투쟁은 객관적인 자본의 힘과 대비되는 주체 역량의 한계라는 조건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할 지점이 많이 있다. 비정규직 지회조차도 정규직노조에 고질적으로 남아 있는 조합주의라는 벽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다.
기아 비정규직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오늘 날 비정규직 투쟁은 단순히 비정규직투쟁의 의미를 훨씬 넘어섰다. 비정규직 투쟁은 조합주의, 관료주의에 찌들어 있는 남한 민주노조 운동을 계급적으로 바꿔내는 활력소가 돼야 한다.
기아 현장에서 전개되는 투쟁은 앞으로 원하청연대회의가 어떻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진정한 공동투쟁기구로 발전할지, 이제 막 제 발로 서서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존의 관료적 질서에 물들지 않고 선진 활동가와 손잡고 현장을 노동자의 해방의 거점으로 만들어갈지 등등 우리에게 수많은 과제를 남겨주고 있다. “역사는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제시한다”고 했다. 기아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과제는 우리에게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2005-11-30 18:33:31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0&no=1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