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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총파업

현장에서 미래를  제62호
원영수

국/제/노/동



아르헨티나 총파업
- 신자유주의적 IMF 지배체제에 맞선 노동자투쟁


원 영 수
국제기획실장





97년 세계를 뒤흔든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충격파가 채 가시지도 않은 지금, 한국은 다시 경제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외에도 미국경제의 전반적 하강국면 속에서 사회적 폭발성을 가진 지역이 바로 라틴 아메리카와 남미화하고 있는 러시아와 동유럽이다.
특히 남미의 경우, 80년대 급격한 경제위기의 폭발, 그리고 협상에 의한 군부의 퇴각과 민주화(?), 이를 배경으로 한 사회변혁적 좌파세력의 합법화와 체제내화, 더 나아가 전통적인 민중주의 정치와 개량적 중도좌파의 신자유주의로의 수렴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IMF와 세계은행의 직접적 지배체제가 라틴 아메리카 노동자-민중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두가지 소식
이런 상황에서 신문보도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현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두 가지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1월 26일자 ꡔ노동일보ꡕ는 아르헨티나에서 폭발한 총파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략히 보도하였다.

아르헨티나 대규모 총파업
델라루아 정권의 긴축정책 등에 항의 고속도로봉쇄 학교휴업 등 전역 마비상태

아르헨티나 노동자 수백만 명이 24일 세금 인상과 봉급 삭감 등 정부의 혹독한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이틀째 대규모 총파업 시위를 계속했다. 시위대는 타이어를 불태우며 도로와 고속도로 곳곳을 봉쇄해 아르헨티나 전역에 마비 상태가 계속됐다.
이로 인해 각급 학교는 물론 수송, 에너지, 금융, 보건 등 대부분 업종이 휴업상태에 들어갔으며 아르헨티나 국민의 최대 관심사인 축구경기도 시위로 인해 열리지 못했다. 특히 북동쪽의 차코 지방에서는 시위대에 의해 장시간 다리가 봉쇄된 것에 격분한 사람이 총을 발사해 시위대 1명이 죽고 다른 1명이 부상했다. 정부는 이번 시위와 관련해 전국적으로 34명이 연행됐다고 밝혔다.
이번 시위는 봉급 삭감, 세금 인상, 15%에 달하는 실업률 등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페르난도 델라루아 대통령이 추가 긴축정책을 펼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촉발했다.
델라루아 대통령은 향후 5년간 정부지출을 동결하고 정년을 연장하는 등 연금제도를 개정하겠다고 지난주 발표해 노동자의 반발을 초래했다.
23일 시작된 이번 시위는 24일 병원, 철도, 정유, 금융 분야 등 아르헨티나 최대 규모의 노조들이 파업에 가세하면서 시위대 규모가 수백만 명으로 늘어났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24개 지역에 대규모의 경찰 병력을 배치하고 진압에 나섰다.
[부에노스 아이레스=AFP연합]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외의 주요 신문들은 새로운 국제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진단하기 시작했고, 12월 20일 경에는 외환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 정권이 IMF로부터 약 400억 달러의 긴급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다고 보도하였다.

아르헨티나 IMF관리체제 연장 배경
민영화할 국영기업조차 없다 텅빈 금고 떠넘긴 전정권부터 경기침체 델라루아 정권 IMF처방 따른 긴축재정 실패 채무불이행선언․달러공용화 설에 경제악화 실업률 18%에 이르는 고통 … 노동계 총파업!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 미주개발은행(IDB) 등 다국적 금융기관들로부터 긴급수혈을 받게됨으로써 아르헨티나 경제의 IMF관리체제가 연장됐다.
7년째 계속되는 IMF관리체제에서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쳐 온 아르헨티나로서는 재정형편 상 당장 내년으로 상환만기가 되는 153억달러의 외채 원리금을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그렇게 되면 살인적인 인플레와 민중폭동 에 시달리던 80년대의 악몽이 재연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또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의 주회원국으로 브라질과 멕시코에 이어 중남미의 3위 경제 대국인 아르헨티나 경제가 무너질 경우 브라질과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메르코수르 회원국들의 경제 역시 막대한 타격을 입는 등 도미노 현상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IMF가 아르헨티나 지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IMF를 주채권 금융기관으로 앞으로 3년동안 연차적으로 아르헨티나에 제공될 차관은 397억 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페르난도 델라루아 대통령의 중도좌익 연정 출범과 함께 ‘장미빛 전망’을 낳았던 아르헨티나 경제가 이처럼 1년만에 주저앉은 이유는 전정권의 유산에서 비롯된다.
카를로스 메넴 정권 당시 아르헨티나 경제는 한때 성공적인 민영화 사업과 무역수지 흑자, 적극적인 외자유치 등으로 호황을 맞는 듯 했으나 아시아의 경제위기와 주요 수출대상국인 브라질의 불황 등 여파로 곧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메넴 정권 말기부터 시작된 침체현상은 결국 지난해 말 재정적자 규모를 71억 달러 가량으로 키워놓은 채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델라루아 정권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더 이상 민영화할 국영기업체마저 없이 빈 국고를 넘겨받은 델라루아 정권은 IMF의 권고대로 세금인상과 공공부문 근로자 임금삭감, 연금지급 축소, 5년간 재정지출 동결 등으로 경제난 해결을 모색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어쨌든 별다른 대안이 없던 델라루아 정권이 일련의 초긴축정책을 강행하자 18%에 이르는 공식실업률 등 경제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노동계가 메넴 정권 때보다 더욱 강경하게 총파업을 벌이면서 사회위기는 가중됐다.
결국 채무불이행 선언설과 중도사퇴설 등 지옥 문턱까지 이르렀던 델라루아 정권은 지난 달 하원이 내년도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2.4% 수준인 70억 달러선으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긴축예산안을 승인하자마자 IMF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신문보도를 통해 전해지는 아르헨티나의 상황은 그야말로 신자유주의적 처방의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신문보도는 저널리즘의 교묘한 현실왜곡과 얄팍한 비노동자적 논리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에 대해 몇가지 사실을 비판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먼저, 현재의 위기가 전정권의 유산이라는 논리는 완전한 자가당착이다. 1980년대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 이후 집권한 메넴 정권은 비록 페론주의 정당이었지만, IMF의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민영화할 기업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의 무자비한 민영화와 탈규제,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한 유연화 공세와 노동법 개악기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 결과 1999년 선거에서 메넴 정권은 전통적 중도좌파세력인 급진당이 주도하는 범중도좌파세력인 동맹(Alliance)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사실, 메넴 정권의 몰락은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 민중주의(populism)인 페론주의(Peronism)의 신자유주의로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와 그로 인한 페론주의의 정치적 파산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중주의의 신자유주의로의 수렴에 대한 심판으로서 아르헨티나 민중이 선택한 루아 정권 역시 메넴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틀을 극복하기는커녕, 극심한 경제위기의 압박 속에서, 다시 IMF의 품속으로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들어 5월과 6월, 그리고 이번 11월에 있었던 아르헨티나 노동자계급의 총파업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사회적 위기를 가중”시키는 무차별적 저항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정치적 맥락 속에서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메넴 정권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페론주의적 공식노조의 협력이 가져온 결과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 새로운 투쟁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민영화에 대한 노동조합의 협력과 그 결말
메넴 정권의 신자유주의정책은 국영기업의 민영화, 재정긴축, 노동유연화로 집약되며, 페론주의와의 역사적 유착에 기반한 공식노조의 경우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관점에 선 투쟁보다는 민중주의적 전통에 따른 기존의 친정부노선을 고수하였다. 그 결과,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조합주의(corporatism)에 기반한 단체협약은 대부분 개별화되었고, 다양한 형태의 유연화, 특히 고용의 유연화, 비정규직화의 경향은 가속화되었다.
메넴 정권 하에서 통신과 석유, 전기, 교통, 가스와 수도 등 거의 모든 공공부문이 민영화되었으며, 그 대부분은 미국과 서유럽, 칠레 등의 초국적 독점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결국 민영화와 유연화는 동전의 양면이었고,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장시간노동, 시간외 노동, 변형 노동시간, 노동강도 강화 등으로 나타났다. 이런 와중에서도 민영화에 대해 노동조합이 협력했던 대표적인 사례로서 전력산업의 경우를 살펴보자.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일대에 전력을 공급했던 국영전력회사 SEGBA는 1992년 이후 수도권 7개 구역별로 분할민영화의 길을 걸었으며, 그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약 5년에 걸쳐 희망퇴직과 강제퇴직 등의 형태를 통해 50퍼센트 이상의 인력을 감축하였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1일 7시간 노동제에서 8시간 노동제로 복귀, 잔업수당의 폐지, 비정규직 고용 등 전형적인 유연화공세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전력 노동자연맹 FATLyF, 약칭 Luz y Fuerza)은 분권화된(decentralized) 단체협약에 대처해야 했으며, 동시에 인원감축으로 인한 조합원의 급격한 감소와 그로 인한 조합비 감소로 인한 조직적-재정적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은 새로운 재정수입원의 확보였다: 민중주의적 유착의 유물인 재정자원을 동원한 새로운 사업, 예를 들어, 새로운 보험사업, 노동자 휴양시설의 사설호텔로의 변신 등. 그러나 그 결과는 관료적 노동조합의 조합원대중으로부터의 재정적-조직적 자립이었으며, 라틴 아메리카판 실리적 조합주의(business unionism)를 통한 생존이었다.


노동조합의 분열과 노동자 대중투쟁의 새로운 고양
루아 정권의 노동법 개악에 저항한 5월 파업, 공공부문 임금삭감과 정리해고에 저항한 6월 9일의 24시간 총파업에 이어, 지난 11월 24일의 36시간 총파업은 약 2주년 피켓라인에서 한 실업노동자가 살해되면서 촉발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기악화에 위기를 느낀 델라루아 정권이 IMF의 압력 아래서 노동법 개정, 5년간 예산동결, 공무원 임금삭감, 및 세금인상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면서, 전국적 총파업으로 확대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투쟁의 흐름은 메넴 정권 하에서 정부와의 유착으로 비난받았던 공식노동조합인 노동총동맹(CGT)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작년 2월 CGT 주류파의 신자유주의적 경도와 정부유착을 비판하면서 CGT에서 탈퇴한 이탈파, 그리고 1992년 CGT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중심으로 조직된 아르헨티나 노동자동맹(Confederacion de Trabajadores Argentinos, CTA), 그리고 90년대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직접행동으로서 도로봉쇄투쟁을 주도하는 새로운 그룹인 전투적 계급투쟁적 운동(Combative Classwar Movement, CCC) 등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사실 11월 총파업의 경우도 CGT 이탈파와 CTA가 36시간 총파업을 선언하자, CGT가 뒤늦게 합류함으로써 노동자 총파업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르헨티나 노동자와 민중일반이 메넴 전정권과 델라 루아 현정권 하에서 지속되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전면적 저항에 나서고 있는 계급투쟁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식노조인 CGT가 진정한 자기혁신 속에서 노동운동의 민주적, 계급적 발전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워낙 강력한 대중투쟁의 동력 속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면적 반대투쟁만이 최소한의 조직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는 지도부의 판단 때문에 투쟁에 동참하지 않았을까?
사실, 지구상에서 한반도의 대척점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노동자계급의 상황은 2001년 겨울 한국 노동자계급이 직면한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어설픈 경제주의 논리와 밀실야합으로 민영화의 칼날을 비켜나가려는 관료적 노동조합 지도부 또는 노동조합 내 중앙파 경향에게 그들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한/노/정/연

2001-01-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0&no=9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