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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김대중 정권 그리고 ‘파시즘화 경향’

현장에서 미래를  제69호
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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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 일/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 정치학


신자유주의, 김대중 정권 그리고 ‘파시즘화 경향’



1. ‘파시즘론’의 부활
최근 파시즘이라는 용어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일상의 파시즘’,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논의들이 제기되면서 여기저기에 파시즘이라는 개념이 붙어 다닌다. 심지어 ‘페니스 파시즘’이라는 조금은 낯선 제목의 책자들이 서점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파시즘이라는 용어가 한국사회에서 광범위한 관심을 끌었던 시기는 지난 80년대이다. 당시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이론적, 실천적 근거를 구축하기 위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한국자본주가 점하는 위상과 ‘성숙도’, 그 상부구조로서의 국가권력에 대한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는 일련의 논의 속에서 이 개념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상부구조로서 ‘종속파시즘’ 혹은 ‘신식민지파시즘’이라는 개념들이 제출된 것도 바로 이 때였다. 특히 이 시기 논쟁은 독점자본주의 국가형태로서의 파시즘을 탈식민지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집중되었다. 그 가운데 의미 있는 반론은 서구 파시즘의 등장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적 지지기반으로서의 대중운동이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개념을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오류라는 주장이었다. 따라서 파시즘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며 ‘군부독재’ 혹은 ‘권위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실하다는 것이었다. 최장집, 「한국국가형태 변화에 대한 이론적 고찰」, ꡔ경제와 사회ꡕ(1989/여름) 참조.
이에 대해 파시즘 논의의 핵심은 그것의 물적 기반을 규명하는 것이라는 점, 탈식민지 자본주의의 불균등한 발전 과정에서 내재화된 종속성, 혹은 신식민지성은 사회경제적으로 대중동원의 물적 기반을 취약하게 만든 요인이었고 바로 이것 때문에 군부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는 반비판이 제기되었다. 김세균,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 ꡔ사회비평ꡕ6(1991); 송주명, 「신식민지파시즘론의 테제들」, ꡔ경제와 사회ꡕ(1989/겨울); 이성형,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주요쟁점에 대한 재검토」, ꡔ사회평론ꡕ(1991/7) 등을 참조.
즉, 파시즘의 종별적 발현형태에 주목해야 된다는 지적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논의는 더 진전되지 못하였다. 87년 6월항쟁 이후 종속적인 군부파시즘의 후퇴와 자유주의적 정치개방이 이루어지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최소민주주의로부터 출발하는 ‘민주화이행론’이 소개되면서 파시즘이라는 개념은 주변화되었다. 그 결과 이승만 정권기부터 노태우 정권기까지 ‘민간’, 혹은 ‘군부’라는 접두어가 붙기는 하였지만 대체로 이들 모두는 ‘권위주의’로 규정되었고 이에 따라 파시즘이라는 개념은 점차 잊혀져 갔다. 그러다가 요사이 이 개념이 다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가권력의 성격에 대한 역사, 이론적 규정과 그것의 실천적 적용이라는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혹은 ‘일상’의 파시즘이라는 형태로 출현하였다. 체제로서의 파시즘은 막을 내렸으나 여기저기 일상의 관계 속에서 파시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ꡔ당대비평ꡕ 8호(1999/가을)와 9호(1999/겨울) 등을 참조.
그것은 ‘전체주의적' 심성과 위계질서를 구조화하는 언어생활에서, 끊임없이 규율권력을 내화시키는 교육현장에서, 남녀간의 관계에서, 군사적인 노동문화와 회사조직 등에서 의연히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의 파시즘’은 우파는 물론 과거 이에 대항했던 좌파 안에서도 동일하게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논의들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음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호소력이 있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본질적 한계를 내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논의들이 ‘체제로서의 파시즘‘과 ’일상의 파시즘‘을 구분하는 ‘이분법’에 기초하고 있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체제로서의 파시즘이 마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파시즘’이 여전히 시민사회의 제반 영역에서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논의에서 설정하듯 체제로서의 파시즘을 국가라는 거대권력의 문제로 본다면, 파시즘은 이른바 이 ‘거대권력’으로서만 작동하는가? 하지만 이러한 범주의 논의들은 ‘체제로서의 파시즘’―거대 권력―과 ‘일상의 파시즘’―미시권력―이 한 사회의 총체적 재생산을 위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작동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알튀세(L. Althusser)가 교회, 학교 등 시민사회의 ‘사회화 기제들’을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 포함시킨 것은 그것을 둘러싼 이견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미를 이해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루이 알튀세, ꡔ아미엥에서의 주장ꡕ, 솔, 1991, pp.88~94 참조.
특히 파시즘은 국가권력이 억압기구들을 전면에 배치하여 직접 시민사회의 모든 생기 있는 숨구멍을 막아버리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 양자의 관계는 더욱 공공연하게 밀착되어 있다. 따라서 ‘일상의 파시즘’이 의연히 관철된다면, 그것은 시민사회가 거대권력인 파시즘의 짙은 그림자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하였거나 혹은 그 경향성이 재차 심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이 사회의 민주화가 아직 요원하거나 혹은 재반동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민주화의 공고화’가 진척되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현재의 사회정치적 상황 속에서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일상의, 우리 안의 파시즘론’과 관련,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논의가 대중을, 그리고 80년대 운동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오류와 한계를 노출하였지만, 파시스트체제에 비타협적으로 투쟁한 진보운동세력을 ‘우리 안의 파시즘’, ‘일상의 파시즘’이라는 개념으로 비판한다는 점이다. 거대권력으로서의 파시즘은 마감했는데 여전히 이들은 그 파시즘의 주술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개적 독재체제’인 유신체제와 신군부파시스트 권력의 주체 세력들은 이른바 거대권력으로서의 파시즘이 마감한 후, ‘문민정부’이래 3당합당과 DJP연합으로 새로이 태어나 ‘건전한 극우 사회정치세력’으로 존재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대중과 좌파는 아직도 그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일상의, 혹은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항, ‘진지전’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에 완고히 자리잡고 있는 ‘일상의 파시즘’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것이 비록 어렵고 지리한 시간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이 논의들이 주장할 때, 그것은 마치 그람시(A. Gramsci)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논의들은 그람시를 적절하게 적용하거나, 그것을 넘어 나아가기보다 오히려 후퇴한다.
그람시는 시민사회에서의 ‘진지전’을 통한 헤게모니의 획득과 이른바 ‘기동전’의 대상인 거대권력, 즉 국가의 재구성 문제를 결코 분리시켜 보지 않았다. 나아가 이 문제들을 ‘역사적 블록’으로서의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문제와 연결시켜 다루는 것 또한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순한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자’가 아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람시는 한편으로 파시즘과 투쟁하고, 다른 한편 코민테른의 ‘조합주의적 노선’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면서도,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역사성을 혼동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일상의 파시즘론’은 이것을 혼동하고 있다. 아니 ‘생산력주의’, ‘국가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들 양자의 역사적 차별성을 무화시킨다. ‘근대의 산물’인 파시즘과 스탈린체제로 상징되는 ‘전체주의’에 대해 동일한 규범적 판단에 이르렀다 해도, 중요한 것은 그것에 대한 혐오 그 자체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 체제들의 상이한 작동메카니즘에 주목하는 것이다. 양자의 역사성에 대한 혼동, 즉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혼동은 단지 아우슈비츠에서, 혹은 ‘수용소 군도’에서 인간 자체를 말살하고자 했던 반이성의 야만성만을 보게 할 뿐, 그것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발생하였는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눈감게 한다. 왜냐하면 이 논의들은 ‘미시적인 것’에 주목하고자 하면서도 이 미시적인 관계들이 거시적 사회관계 및 구조, 그것의 응집된 표현인 국가와 맞물려 재생산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일상의 파시즘론’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북한을 ‘민족 스탈린주의’로, 남한을 ‘시장 스탈린주의’로 자연스럽게 규정하기에 이른다. 즉, ‘일상의 파시즘’에 몰두하는 동안 자본의 공개적 독재 체제로서의 파시즘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전체주의론’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 파시즘과 ‘국가사회주의’를 동일한 현상 지표를 통해 보려고 한 프리드리히(C. J. Freidrich)와 브레진스키(Z. K. Brzezinski)류의 전체주의론이 담지하고 있는 비역사성과 그 정치적 의미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파시스트권력에 대항했던 진보운동세력의 오류 또한 ‘좌익소아병’이라는 개념에 의해 비판되기보다 ‘일상의 파시즘’이라는 개념에 의해 비판된다. 왜 이처럼 비역사적인 논의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들의 ‘자유스러운 계몽적 심성’이 80년대 급진좌파운동을 규범적으로 비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그리고 탈냉전이후 더욱 지배력을 지니게 된 신자유주의의 모토, 즉, ‘세계체제에는 안과 밖이 없다.’라는 테제에 과도히 억눌려 있기 때문이다.


2. 신자유주의: ‘시장합리성을 내세운 자본의 공개적 독재’
모두에서 ‘일상의 파시즘’ 혹은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그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것 때문은 아니다. 또한 한국사회에 강하게 착근되어 있는 생산현장에서의 유혈적 노동통제, 군사적 문화마인드, 가부장주의 등등에 대해 눈감아버리자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과거 80년대 좌파나, 그리고 지금의 좌파를 비판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형태로든 국가와 시민사회를, 혹은 ‘체제로서의 파시즘’과 ‘일상의 파시즘’을 분리하려는 인식과 태도는 기존의 모든 권력을 전복하겠다는 이들 스스로의 주관적 의지와는 무관하게, 결국 ‘이분법’에 빠져, 그것에 동조하는 자기모순적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이 논의들이 시민사회 안의 ‘일상의 파시즘’을 문제시하고 ‘다차원적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동안 오히려 신자유주의에 추동된 거대권력으로서 국가의 ‘파쇼화 경향’ 혹은 ‘경찰국가화’가 우려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현실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80년대와 달리, 파시즘이라는 개념이 무차별적으로 호명되는 동안 이미 마감되었다고 선언된 국가의 파시스트화 경향은 그 작동의 가장 본질적 목표인 자본의 재구조화와 관련,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관심과 대응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일상의, 우리 안의 파시즘론’이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산재되어 있는 억압과 불평등을 노출시켜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논의가 그 의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거기에서 멈추지 말고 시민사회 내의 ‘미시적인 네트워크’―지역주의, 가부장주의, 학연 등 연고주의, 군사적 문화마인드 등등―를 끊임없이 호명하는 국가권력, 보수 혹은 극우사회정치세력들의 반동화 경향에 주목해야 한다. 즉, 이 미시적 관계들이 거대권력과 긴밀히 맞물려 재생산되면서 이 사회를 질식시키고 있는 현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이 파편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래도 세계체제에는 밖이 있다’라는 인식과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파시즘은 단지 권력에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순응’하는 이런저런 형태의 ‘대중운동’ 혹은 그 흔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집단적 심성과 동일시될 수 없는, 그리고 ‘전체주의’와는 그 역사성을 달리하는 ‘자본의 공개적 독재체제’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인식 위에 있을 때만이 파시즘이라는 개념의 남용, 혹은 그것의 한 측면만을 부풀려 희화화시키는 오류를 줄일 수 있다. 파시즘에 접두어를 붙여 외연을 확대시키다 보면, 그 핵심은 희석되고 결국 이 개념은 아무런 이론적, 실천적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어휘로 전락하게 될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국가의 억압성이 신자유주의를 매개로 증폭되고 있는 현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지하듯이 신자유주의는 60년대말 전후 자본주의의 장기호황이 마감되면서 시작된 세계자본주의의 만성적 위기, 특히 실물경제와 유리된 금융자본의 급속한 팽창 및 그것을 뒷받침한 정보통신과학의 발전을 조건으로 등장, 확산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위기의 원인을 포디즘(Fordism)과 사회조합주의에 기반한 ‘복지국가’에 돌렸다. 구동구권의 해체와 ‘시장사회주의’를 내건 중국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로의 ‘수렴’이 본격화되면서 더욱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재생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표면상 시장원리의 전면적 복원을 내세웠는데, 그것은 복지국가의 근간인 노자간 타협체제, 그것의 제도적 표현인 ‘사회조합주의’의 해체를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공세의 핵심대상에는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이, 그리고 주변에는 복지국가에 의존했던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약자들이 포함되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의 목표가 단순히 시장질서의 복원 그 자체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즉, 모든 사회문제와 갈등의 원인을 노동자의 ‘계급이기주의’, 일하지 않는 연금수혜자들의 ‘나태’, 그리고 이들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보호’에서 비롯된 취약한 경쟁력에 귀속시키는 신자유주의는, 생산력 지상주의를 내세우며 기존의 모든 사회관계를 분절, 파편화시키고 이른바 시장에서 관철되는 적자생존의 원칙을 모든 영역에 강제하고자 한다. 자본에 대한 자유화, 규제 완화 및 폐지, 민영화, 대외개방화, 그리고 노동에 대한 ‘유연화’ 등은 이러한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 신자유주의가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는 ‘국가개입 배제’ 혹은 ‘최소정부’ 등을 요구하지만, 이것은 국가개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매개로 기존의 제반 사회관계를 자본이 압도하는 지형으로 재편성하고 이를 통해 자본의 가치실현 위기를 해소시키고자 하는 ‘국민적 수사’일 뿐이다. 따라서 그 슬로건 속에 감추어진 진정한 비밀은 국가개입의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내용과 형식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의 지배 아래서 국가권력의 정치적 반동과 억압은 하나의 경향성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공세적 조치들의 진정한 목표가 사회관계의 재편성에 있다고 할 때, 외견상 시장을 겨냥한 이들 조치들 또한 단순히 사회경제적인 문제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회관계에는 이미 계급, 계층간 모순과 갈등의 표현인 정치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공세는 생산현장에 구조화된 자본 우위의 비대칭적 노자관계를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현장 민주주의’를 축소, 제약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표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조치들은 노동자들을 다양한 존재상황에 처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단결을 저해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이것이 실업 혹은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등이 함축하는 정치적 의미이다. 나아가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공세는 개별 생산현장을 넘어, 기존의 노자간 협의기구 혹은 사회적 협의기구들의 권한을 약화시키거나 유명무실하게 만듦으로써 노동자 혹은 사회적 약자들이 한 사회의 재생산을 위한 중요한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제약, 봉쇄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 결과 ‘시장합리성’의 확산에 비례하여 ‘세계화된 과두지배엘리트들’의 사회경제적, 정치적 결정권은 더욱 확대되고 이와 반대로 노동자, 민중은 더욱 소외되면서 민주주의는 매우 협소한 영역에 형식적인 것으로 남게 된다.
바로 이러한 상황은 일국적 혹은 세계적 수준에서 전개되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첨예한 양상을 띨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기존 정당들의 관료화 경향에 더하여 제도의 수준에서조차 민주주의의 기제가 더욱 축소, 약화됨으로써 소외된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은 거리에 서게 되고, 국가는 억압적 국가기구들을 동원하여,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이 비제도적인 ‘현장의 정치’를 강력하게 진압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선구자 대처에게 붙여진 ‘철의 여인’이라는 별칭은 영국 광산노동자들의 저항에 대한 신자유주의 국가권력의 무차별적 진압을 상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지난 7월 이탈리아의 G8 정상회담에 맞추어 전개된 반세계화 시위 과정에서 이탈리아 경찰의 토끼몰이식 시위진압과 고의적 총격으로 인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도 단지 우연성의 표출이 아니라 이른바 ‘시장의 합리성’ 뒤에 감추어진 신자유주의의 야만성이 적나라하게 표현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신자유주의의 지배 아래서는 세계화된 거대 자본, 소수 선택된 개인의 욕망과 권위는 최대한 보장받을지언정, 노동자,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더불어 살고자 하는 개별적, 집단적 노력의 ‘숭고미’는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것으로 치부되면서 오히려 전면적으로 배제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자유주의는 바로 ‘냉전의 적자’이며 민주주의에 조종을 울리는 또 다른 야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70년대 이후 구조화된 자본의 만성적 위기와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조건이 착종되면서 등장한, ‘합리성을 내세운 또 다른 형태의 자본의 공개적 독재체제’이다.


3. 김대중 정권, ‘민중주의 신화’의 몰락과 ‘파시스트화 경향’으로의 경도
김영삼 정권 이래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97년 외환위기를 경과하면서 확대되었고 이러한 양상은 이른바 ‘국민의 정부’임을 내세우는 김대중 정권 아래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특히 이 와중에서 한국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차지하는 ‘중위 수준의 위상’으로 인하여,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의 불황에 따른 모순전가와 신흥 ‘후후발국가들’의 ‘따라잡기(catch up)’ 성장전략의 대상이 됨으로써, 가치실현의 어려움에 직면하고 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노동자, 민중에 대한 자본과 국가권력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합리화하는 구실이 되고 있다.
물론 97년말 외환위기의 와중에 등장한 김대중 정권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을 내세우고 ‘서민을 위한 정치’를 표명하였을 때조차도, 말 그대로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이러한 반민중적 상황의 도래를 예견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정책지표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신자유주의 안정화, 개방화 프로그램의 전폭적인 수용을 전제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권에 거는 대중의 기대 또한 적지 않았는데, 그것은 ‘좌파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상징적 인물로서 김대중이 차지하는 민주화운동에서의 영향력과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는 기본적으로 71년 대통령선거 이후 유지되어 온 김대중의 민중주의―이것은 ‘대중경제론’, ‘국가연합 통일방안’ 등으로 나타났으며 이에 대한 정치적 지지의 슬로건이 바로 ‘비판적 지지’이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부합이라도 하듯 김대중 정권 또한 출범에 즈음하여 ‘개발독재’의 폐악을 일소하기 위해 ‘국가개입 축소’ 및 시장원리의 도입을 통한 경제구조개혁, 재벌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 등을 천명하였고, 다른 한편,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매개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 그 위에서 ‘노사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 초기,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이러한 정책기조가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기대를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개혁의 전면에 ‘근대합리성의 구현’이라는 모토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민운동 내부에서 신자유주의 반대에 대해 유보적이거나, 혹은 신자유주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반대의 최소한의 이유는 ‘근대합리성의 구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이 사회의 미래를 ‘자본의 공개적 독재’로 끌고 가고자 하는데 있다. 이광일, 「현단계 시민운동의 딜레마와 과제」, ꡔ황해문화ꡕ29(2000/겨울) 참조.
종속적 독점자본주의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구조화된 ‘비합리성’, 특히 파시스트권력과 독점자본이 융합되어 강제된 정경유착의 폐해, 문어발식 경영, 재벌총수 1인의 전횡, 부당 내부거래 등은 합리성과 배치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추진된 일련의 경제구조 및 재벌개혁은 기본적으로 자본의 합리성 제고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 대중의 ‘반재벌 정서’, 특히 외환위기의 ‘주범’으로서의 재벌에 대한 대중의 빗발치는 비판과 맞닿아 있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대중의 지지 제고로 이어졌다. 물론 이러한 정책방향은 외환위기의 책임을 재벌과 파시스트권력 양자의 동맹구조에 돌림으로써, 정치자금 조달 등으로 인해 이러한 구조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했던 김대중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치적 효과 또한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대중의 지지’가 아니라 이와 같은 비합리성이 단지 시장 그 자체 내에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비합리성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시장 그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이후 구조화되어 시장의 기저에서 그 비합리성을 지속적으로 재생산시킨 비대칭적 사회관계―반민주적인 관계―에 있었다. 따라서 합리적 시장질서의 도입을 통해 과거 개발독재의 폐해를 일정 정도 해소시키고자 한다면, 그것은 민주화 조치와 병행될 수밖에 없었고 그 핵심은 불평등한 비대칭적 사회관계의 완화에 있었다. 따라서 개혁은 이러한 관계의 표현인 법적, 제도적 제약들을 최소한의 ‘민중참여적 기제’로 변화시키는 것에 두어져야 했다. 그리고 이 때, 민주주의의 핵심은 무엇보다 ‘유혈적 테일러주의’의 착취대상이며 보수독점의 정치구조 하에서 소외되었던 노동자, 민중의 기본권과 정치적 시민권을 인정하는 것에 있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만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이라는 모토와 협의기구로서 노사정위원회 등은 최소한의 존재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은 이러한 맥락에서 개혁을 풀어나가기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시장합리성이라는 표피적 현상에 집착하였다. 따라서 비대칭적 사회관계의 해소라는 민주주의 본연의 과제는 사라지고 오히려 생산력 지상주의에 입각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라는 맥락에서 노동문제에 접근하였다. 이것은 과거 김영삼 정권이 ‘개별적 노사관계법’의 개정을 통해 관철시키려 했던 ‘노동의 유연화’라는 목표를 다시 전면에 올린 것이었다. 즉, 97년 총파업으로 유보된 신자유주의 노동개혁이 외환위기와 그것의 극복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복권된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방향은 국가의 억압성 제고와 관련, 매우 중요한 문제를 발생시켰는데, 그것은 서구 복지국가들과 달리, 종속적 독점자본주의화와 개발독재 아래에서 이른바 ‘사회적 안전망’은커녕 무권리에 시달렸던 노동자, 민중들을 ‘시장의 독재’가 압도하는 상황으로 내몰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여 이들은 ‘개발독재’의 유산과 신자유주의로부터 오는 이중의 고통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와중에서 정리해고를 포함한 각종 ‘유연화 조치’―이 조치의 핵심은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배적 생산방식의 유지와 그것의 보완을 통한 생산성 제고에 목표를 둔 ‘유연적 테일러주의’(flexible Taylorism)에 있다.―로 실업자 수는 증가되었고 노동자들의 삶은 급속히 피폐화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재벌의 소유집중은 ‘외환위기 재벌책임론’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보다 강화되었고, ‘내부책임론’의 압도 속에 ‘위기의 책임’을 면제받은 초국적 해외자본은 오히려 ‘합리성의 전형’이라는 훈장을 수여받으며 국내경제에 대한 지배를 제고시켰다. 특히, 국내 주요 은행 및 산업에 대한 국제금융자본의 지배력은 급속히 심화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국가 기간산업인 공기업―한국전력, 한국통신 등―의 해외매각을 포함한 민영화가 노동자들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추진되었다. 국가기간산업의 유지는 시장의 법칙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최소한의 ‘공공선’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부문이라는 점에서 이 부문의 사적영역으로의 이전 시도는 노동자, 민중의 삶의 질을 더욱 악화시켰으며 이것은 민영화 자체를 모든 문제의 열쇠로 보는 신자유주의 발상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외환위기이후 노동자, 민중들의 고통전담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100조 이상의 자금이 공적자금이라는 명목으로 투입된 금융시장은 이른바 실물경제의 침체 및 부실과 맞물려 여전히 그 불투명성의 끝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로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약속한 ‘장미빛 미래’는 실종된 채, 한국사회는 ‘위기관리의 위기’ 속에 ‘20 대 80의 사회’, ‘두개의 국민’이 존재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김대중 정권과 자본은 구조조정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4대 부문 구조조정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 민중에게 가해지는 부담과 고통이 언제 완화될 지 모르는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저항 또한 그치지 않고 있다. 바로 이것이 현재 김대중 정권으로 하여금 경찰, 검찰 등 억압적 국가기구들을 동원,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배제, 탄압하게 하는 객관적 요인이다. 김대중 정권은 민주노총을 노동문제 해결의 진정한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노사정위원회가 유명무실화된 지는 이미 오래다. 다른 한편 지난해 롯데호텔노조와 사회보험노조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권력 행사에 이어, 올해에도 부평 대우자동차 노조의 합법적 조합활동에 대한 탄압, 울산 효성물산의 구사대폭력 방조, 그리고 레미콘 노동자 농성의 불법진압 등에서 보이듯 개별현장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의 수위 또한 높이고 있다. 이것은 의약분업 실시과정에서 의사, 약사 등 기득권세력의 집단이기주의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미 있는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유동성 위기에 처한 현대에 스스로 강조한 ‘시장의 원칙’을 적용하기보다 차별적, 비일관적 정책집행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책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태도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것은 김대중 정권 초기 제시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이라는 국정지표가 지닐 수 있었던 상대적으로 유의미한 해석과 실천이 그 수명을 다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 결과 71년 대통령선거이후 김대중 지지의 근거였던 민중주의는 이제 역사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 이와 관련, “IMF위기가 없었다면 김대중 정권의 등장은 자유주의 우파에서 자유주의 좌파로, 또는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사회적 자유주의로의 정권이동으로 평가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갑우, 「자유주의, IMF위기 그리고 국가형태의 변화」, ꡔ경제와 사회ꡕ 40호(1998/겨울), p.132.
이와 같은 상황은 기존의 신자유주의 전략 위에서, 김대중 정권이 대중의 자발적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정책카드가 거의 소진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최근 ‘주5일 근무제’에 대한 김대중 정권의 가시적인 태도변화 또한 ‘외환위기’ 직후부터 전개된 노동운동의 요구와 투쟁의 산물이지만, 다른 한편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궁여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해석의 설득력은 이 제도에 대한 김대중 정권의 부분적인 태도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전되지 않고 있는 노자간 비대칭 사회관계와 그 이면에서 조장되고 있는 국가의 ‘파시스트화 경향’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바로 이와 같은 모순적 양상이 노동자, 민중들에게 가해진 최근의 무차별적 폭력 행사와 맞물리며 김대중 정권의 ‘파시스트화 경향’, ‘경찰국가화 경향’에 대한 우려를 제고시키고 있는 것이다.


4. ‘반신자유주의 다수자연대’의 구성
현 단계 김대중 정권을 파시즘 체제로 규정하는 것은 적실하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노동현장에 대한 억압성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 또한 간과되어서도 안 된다. 물론 이러한 경향성은 김대중 정권의 주의주의적 의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점하는 한국자본주의의 위상, 헤게모니 분파로서의 국내독점자본의 반동적 성격, DJP연합으로 상징되는 권력블록의 내부구성, 그리고 이들과 노동자, 민중들과의 세력관계 등이 총체적으로 반영된 결과이다.
그런데 문제는 권력의 억압성, 폭력성이 결코 약한 것이 아닌데도, 그 심각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이른바 정치적 개방과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일정 정도 보장되는 상황에서, 국가의 억압이 전체 사회를 대상으로 행사되기보다 불균등하게,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같은 공세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추동되는 것인 만큼, 그 핵심대상은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이다. 따라서 부평 대우자동차 노조의 예가 보여주듯 노동자들의 합법적 활동조차 국가권력에 의해 무력화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활동의 적법성을 인정해 준 법원의 판결 또한 아무짝에 쓸모 없는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항의와 문제제기는 한 때의 일회성 분노로 반복하여 표출될 뿐, 그러한 억압성의 근원에 대한 재고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작년 롯데호텔 쟁의에 대한 폭력적 진압이후 확대된 집회와 항의에도 불구하고 노동현장에 대한 국가의 야만적 억압은 끊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일상의, 혹은 우리 안의 ‘파시즘론’ 등이 회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응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국가의 ‘파시스트화 경향’, 혹은 ‘경찰국가화’의 근원은 국가권력과 단절되어 대중의 심성에 자리잡고 있는 ‘일상의 파시즘’ 때문이 아니다. 대중은 그것이 최소한의 인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라는 점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양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차원적 영역에서의 민주주의 실현, 반권위주의를 이야기하면서도 이른바 시대의 징표를 담지하는 핵심영역의 설정을 회피하는 인식과 실천들이 거대담론에 대한 비판과 맞물리며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의 말하는 핵심영역은 여타 나머지 영역의 지위를 결정하는, 따라서 모든 권위가 그 곳으로 집중되는 ‘위계적 사다리’의 최고 정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사회의 착종된 모순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는 영역을 말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지배 아래에서, 노동자계급, 사회적 약자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사회경제적, 정치적 상황은 더 이상 회피하고 눈감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 가해지는 억압의 심화는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자본의 원활한 재생산을 위해 일차적으로 노동운동에 집중되는 권력의 ‘테러’는 그것이 초동단계에서 제어되지 않는다면―이것은 곧 사회관계의 점차적인 반동화를 의미한다―결국, 이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그 위협의 수준을 확대, 심화시킬 것이다. 과거 파시스트체제와 비교해, 국가권력의 억압기제가 영역에 따라 불균등하게 행사됨에도 불구하고 핵심영역에 가해지는 집중적 공세에 일차적으로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신자유주의 반대 다수자연합’의 구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최근 ‘공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현장에서 무차별 행사되는 폭력은 한편으로 기존의 노자간 사회관계를 더욱 반동적 관계로 재편하여 자본의 가치실현을 수월하게 하고자 하는, 다른 한편으로 탈식민지사회에 취약한 ‘근대 합리성’의 실현이라는 모토를 매개로 소수 지배세력의 세계화된 품위유지를 위해 나머지 다중의 최소한의 인간적 삶조차도 자본에 종속시키고자 하는, ‘자본의 공개적 독재체제’인 신자유주의에 의해 추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노/정/연

2001-08-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3&no=11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