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맵의 본질과 노동운동의 대응방향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5 |
현장에서 미래를 제1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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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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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5
로드맵의 본질과 노동운동의 대응방향
선지현/ 한노정연 연구원
로드맵의 본질과 노동운동의 대응방향
얼마 전 노무현의 국회 시정연설에서 발표된
국민대통합연석회의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노무현은 ‘정부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스웨덴, 네델란드처럼
각계각층이 힘을 모아 당면한 경제사회적 의제들을 다루자’며
이를 통해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국민소득 2만불의
시대로 나아가자고 말하고 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노사정위원회가 무력화되는 국민대통합연석회의’라며
노사정위원회 관계자들의 우려를 담아 보도를 하고 한나라당은
‘연정제안’의 아류라며 비판적 성명을 내놓았다. 이미
‘대통령자리까지도 내놓을 수 있다’는 힘없는(?)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줄 세력도 많지 않거니와 그 의도도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누구도 선뜻 이 제안을 환영할 리
만무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이 제안은 너무도 명백하다.
지난 2년간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되었던
사회적합의주의 공세가 2005년에는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것은
‘양극화’이고 ‘안정적인 노사관계’이다. 여기에 자본만이
아니라 시민단체, 종교단체, 전문가, 정당까지 모두 참여하자고
하니 정권의 편을 3-4배쯤 늘리는 것이다. 입을 모아 노동계를
‘이기주의’집단으로 매도하고 ‘사회양극화가 이토록 심각한데
노동계도 뭔가 양보를 해야 한다’고 할 판이다. 사회적합의주의
공세는 이렇게 이름을 달리하며 노동자의 목을 죄어 오고 있다.
2003년 9월 [노사관계 선진화방안(이하 로드맵)]이 발표되자
언론은 일제히 ‘파업도 자유롭게, 해고도 자유롭게’라는
타이틀을 달아 로드맵을 선전했다. 전자는 직권중재 폐지 등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사용자 대항권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로드맵은 ‘파업은 못하게, 해고는 자유롭게’가 더 적당하다.
그러나 로드맵은 이 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용자 대항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전면적 노자관계의
재편안을 포함하고 있고 거기에는 복수노조-산별노조체제를
대응하는 자본과 정권의 전략이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그리고
그 본질은 바로 ‘자본과 정권의 관리통제가 용이한 협력적
노자관계’로의 재편이다. 이 글에서는 로드맵 내용의 문제점을
항목별로 다루기보다는 정권과 자본의 재편전략이라는 점에서
로드맵이 미칠 영향들을 중심으로 다룰 것이다.
1. 왜 재편전략이라고 말하는가?
-로드맵이 현장에 미칠 영향들
얼마 전 언론에 ‘로드맵은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당정합의내용이 보도됐다. 열린우리당 이목희
국회의원은 ‘노사정간 논의를 통해 합의되는 부분들부터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선별처리’가능성을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면 올 11월 투쟁에서
로드맵은 빠지게 될 것이다. 더욱이 선별처리를 한다고 하니
노동자들의 저항이 큰 사용자 대항권 문제나 정리해고 유연화
같은 문제는 당장 처리되지 않을 가능성도 더욱 커진다. 이렇게
되면 핵심은 복수노조 교섭창구 문제와 노조전임자 문제로
사안이 좁혀질 가능성이 높은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로드맵을
이목희나 당정이 말하고 있는대로 보게 되면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기 십상이다. 앞서 말했던 대로 로드맵은
복수노조-산별노조체제를 대비하는 정권과 자본의 총체적인
재편전략이다. 따라서 복수노조 교섭창구문제나 노조 전임자
문제로만 이것을 접근하게 될 경우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놓치고 갈 수 있다.
1) 작업장 조직 약화를 겨냥한다.
로드맵의 기본기조는 △노사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최소화
△유연화고 안정된 노동시장 구현 △근로계층간 격차 완화이다.
이 중에서도 [노사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최소화] 기조는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는 데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도 ‘파업은 가장
최후의 수단’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는 당연히도
자본의 입장에서 ‘노사관계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시키는 위한
것이다. 복수노조 체제 출범을 계기로 자본은 가장 최소의 비용,
즉 파업을 없앨 수 있는 방안을 정권과 자본의 관리와 통제가
용이한 노사관계로 재편해내는 것을 핵심적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복수노조와 산별체제를 이들이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로드맵에서 산별노조-복수노조 체제를 대비하는 내용은 크게 ▶
유급전임자수 제한(전임자 임금지급금지 조항 원칙적 유지) ▶
복수노조의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 노동조합과 대립적인
노사협의회 구성 도모(무노조정책 옹호) ▶ 3년 협약체제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우선 대표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 조항
명문화를 통한 노동조합 조직의 약화이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명문화(또는 대폭 축소)는 특히 산별노조 하에서
작업현장 단위의 노조활동 약화로 노조조직을 와해시키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산별노조는 기본적으로 중앙집중의
운영방식을 택하고 있다. 재정과 인력이 집중되기 때문에
현장단위 활동가들은 거의 없거나 소수에 그친다. 여기에
전임자금지는 치명적이다. 그것이 단계적 금지이건 아니건 별로
상관없다. 그냥 현실에서 보면 되지 않는가. 최근 규모가 작은
단위일수록 노조간부들이 없어서 허덕대고 있는 상황이다.
전임자 문제를 놓고 노사 간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업장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전임자임금지급 금지 조항은 단위 현장에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여기에 로드맵이 제출하고 있는
[노사협의회 강화]와 결합된다면 작업장단위 노조조직은 그 존재
의의를 상실할 수 있게 된다. 총자본이 노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단위현장에서 노동조합활동이 전무해지는 그 빈자리를
노사협의회 강화로 치고 들어오겠다는 것이다.
작업장 단위의 노조조직이 와해되었을 때 산별노조는 투쟁력을
상실한 채 소수 전임자와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관료화의
가능성이 증폭되고 이는 자본의 통제가 쉬운 노자관계 형성으로
귀결되는 것은 사실 너무 뻔한 귀결점이다.
둘째, 기업별 복수노조 교섭구조의 문제이다. 총자본은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대신에 기업단위 교섭구조에 대해 교섭창구
강제적 단일화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안으로 과반수
대표제, 비례대표제 등을 안으로 제출하고 있다. 이는 복수노조
하에서 일차적으로 교섭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이다.
단일화를 전제로 하게 되면 자본은 교섭을 해태할 수 있는
기간과 범위를 넓게 가질 수 있게 된다. 또한 여전히 노동조합을
‘파괴할 대상’으로 보는 자본의 인식정도를 볼 때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한 자본에 의한 제2, 제3노조는 쉽게 예상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악행이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복수노조 허용과 더불어 ‘평등권
보장’의 문제이다. 조직률 11%에 불과한 현실에서 90%에 달하는
미조직노동자에 대한 실질적 평등권의 핵심은 바로 노동3권의
보장이다. 그리고 소수노조에 대한 실질적 노동3권의 보장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권과 자본은 ‘교섭비용
최소화’ 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효력의 평등적
적용’을 ‘평등권’의 전부인양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강제적 창구단일화를 통해 자본이 노리는 것은 교섭비용을
최소화시켜내고 노조탄압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동시에 단일화
방안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산별체제를 염두에 둔 방안이기도
하다. 현재 로드맵에서 검토되고 있는 것은 산별노조 산하
지부까지 창구단일화를 하는 것이다. 자본은 기업별노조이던
산별노조 산하 지부이던 상관없이 무조건 기업단위 강제적
창구단일화를 하고 주장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산별중앙교섭-지부보충교섭 구조를 갖고 있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지부 보충교섭으로 제반 노동조건에 대한 합의를
구체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부 보충교섭권은 사실상 박탈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단위에서 다수노조는 산별에 포함되지 않고
소수노조만 산별에 결합되어 있을 때 소수노조의 보충 교섭권은
박탈된다.) 대각선교섭, 공동교섭 등으로 이루어지는 지부
보충교섭은 ‘단일화’에 가두어져 실제적 효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고 교섭권 자체의 박탈은 단체행동권의 제약내지
무력화로 귀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소수노조의 노동 3권이 제약되는 것은 물론이고
제도화된 산별교섭 조차도 중앙교섭을 제외하고는 작업장 수준의
교섭(보충교섭 포함)과 투쟁을 제약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작업장에서의 노조조직을 약화시키고, 노사조직을
강화하려는 자본과 정권의 노사관계 재편 가능성에 대한
문제이다. 로드맵은 노사협의회법 개정을 통해 노사협의회
기능을 강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이것이 복수노조-산별노조
체제와 맞물려 노사조직인 노사협의회로 작업장 조직을
대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상해 보자. 작업장
단위의 노동조합은 교섭과 쟁의권의 상실로 그 활동력을
잃어버린 채 산별노조로 집중되고 노사협의회가 이를 대체한다면
자본은 노사협의회를 최대한 강화시켜 작업장 수준의 노조조직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노사협의회를 통해 가능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전임자 축소 문제, 기업단위 교섭
강제적 창구 단일화 등과 결합되어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여기에 노사협의회에서의 협의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면 할수록
뻔히 보이는 결말은 작업장조직의 약화이다.
2) 파업권을 제도적으로 제약(≒무력화)한다.
현재에도 파업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아니
내용적으로 본다면 절대 다수의 비정규노동자들, 영세노동자들은
단결권조차도 항상 위협받고 있다. 여기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자성’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 3권을
보장받고 있는 노동자수를 보면 절대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 대항권 문제는 ‘대공장-정규직’만의 문제라고
이해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로드맵 교육을 하다보면 현장
노동자들이 곧잘 ‘노동 3권은커녕 노동조합도 만들지 못해서
허덕인다. 로드맵은 정규직-대공장 조직노동자의 문제’라는
답변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노동3권이 보장된 대공장
조직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격이 전면화 될 만큼
노동조합운동은 약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말하고
있는 ‘노동기본권’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하게 하겠다는 자본과
정권의 의도가 명백한 것이기도 하다.
우선 교섭대상에 대한 문제이다. 로드맵은 교섭대상을 이익분쟁
외에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문제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권리분쟁과 인사경영상의 문제를 교섭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이에 대한 교섭요구와 투쟁은 모두 불법으로 규정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단협파기, 부당노동행위 등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권리분쟁에 대한 노동자들의 대항권을 법적으로 차단함으로써
노동조합 활동 영역을 법적으로 축소시키고 있다. 파업을
하더라도 임금, 근로조건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권은 노동자들을 ‘자신들의 임금과 근로조건만을
위해 투쟁하는 이기주의 집단’으로 매도하면서 법적으로는
‘임금, 근로조건에 한해서만’ 파업을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모순적이다.
둘째,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파업에 대한 사용자 대항권을
강화시키고 있다. 공공부문의 경우 파업예고를 의무화해야하고
파업에 돌입할 경우 최소업무 유지의무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대체근로가 합법화되고 신규채용도 가능해진다. 여기에 파업이
지속되어 파행이 빚어진다고 판단되면 복귀명령을 할 수 있고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응해야만 한다. 더욱이 필수공익사업장의
대상을 확장함으로써 기존 직권중재 대상사업장보다 확대되어
로드맵이 적용된다. 로드맵이 제출하고 있는 필수공익사업장
대상은 기존 직권중재 사업장에다가 은행, 사회보험, 우편,
방송업무 등과 더불어 망산업에 포함되는 간접적 업무
전체까지도 포함함으로써 파업권이 제약되는 분야는 매우 넓다.
이는 파업의 효력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설사
합법적으로 파업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 파업이 정말 ‘최후의
쟁의수단’이었는지를 입증해야만 한다. 자본은 파업시 대체근로
투입을 민간사업장에도 확대적용하자고 하고 있다. 설사 이번
로드맵에서 공공부문으로 제한된다고 하더라도 이 제도는
민간사업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리고 제도화된 법이
확대되는 것은 쉽게 예상되는 부분이다. 결국 파업권이라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며 ‘업무상의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가 되는 것이다. 파업권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3) 자본의 노동조합 활동 탄압을 법적으로 정당화한다.
로드맵은 합·불법을 불문하고 공세적인 직장폐쇄를
합법화시키고 있다. 현재에도 대자, 기아, 엔텍, 하이닉스 등
직장폐쇄로 인해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해고되거나 해고 위협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세적 직장폐쇄라는 것이 뭔가.
법적으로 노동조합 활동탄압을 정당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 제도 도입,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 삭제 또는 완화 등 이 모든 것은 사용자가
노동조합탄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기제이다. 정권에서는
손배가압류 제도를 엄격하게 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지만 손배가압류 제도도 법적으로 합법화시켜주면서 제도적
보완을 한 것뿐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제도가 과연 어떻게 현상화 될
것인가이다. 이는 대다수 비정규,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비정규사업장,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노조탄압이
참으로 악랄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을 봐왔다. 현재 진행되는
노조탄압을 보라. 대부분 비정규, 중소영세 사업장들이다.
자본과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분출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감안할 때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활동 조건이 열악한 절대 다수의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노동3권과 생존권
보장이다. 그러나 로드맵은 절대 다수의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탄압을 제도적으로 정당화시켜주고
있다. 단순히 정규직대공장조직노동자만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러한 현실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서 로드맵은 정규직-대공장조직 노동자만을
겨냥하고 있다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4) 정권의 지배개입을 강화한다.
노자관계에서 정부개입은 노동자들에게 득보다는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악질 자본들의 법을 초월한 탄압에 대해 정부
개입은 시정명령이나 벌금 부과 정도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정부 개입은 노동 3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는가에 대한 국가차원의 예방과 사후의 강력한 제재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오히려 정권은 자주적 노동조합활동에 대한 지배개입을
강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주성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쟁의행위찬반투표에 대한 개입(투표 시기 또는 유효기간 설정),
긴급조정시 쟁의금지기간 60일로 확대, 상급단체 및
대기업노조의 재정투명성 제고방안 도입 등은 국가권력의
지배개입권을 제도화하려는 것이다.
5) 유연화의 제도적 완성을 꾀한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정리해고 완화이다. 정리해고 남용을 막기
위한 부분적 장치마저도 사실상 없앤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정리해고제를 전면화하겠다는 것이 본질이다. 실제 올해 초
규제위원회에서 정리해고 사실상 전면 허용안이 제출되었고,
자본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에서 ‘긴박한’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도산 절차 중 정리해고를 전면 자유화 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미 자본은 1998년 정리해고제 도입
이후 마음대로 정리해고를 해왔다. 그리고 정리해고제 남용을
막는다는 조항은 현실에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자본은 그 조항마저도 사실상
무력화시킴으로써 유연화를 제도적으로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로드맵은 임금유연화까지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제출된
내용에서는 통상임금, 평균임금의 개념 구분과 평균임금
산정기간의 확대 정도를 담고 있지만 전체 기조에서는
임금체계의 단순화, 유연화 기조 하에 임금피크제 도입 등 향후
과제를 함께 제출하고 있다. 즉, 현재 로드맵 이후 임금유연화를
제도적으로 정비하고 있는 준비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당해고에 대한 금전보상제도 도입 문제이다.
자본은 이미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한 다양한 대응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징계, 해고이다. 이를 통해 자본은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는 등 탄압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해고자 복직은 교섭-쟁의대상에서 제외하고 거기에
부당해고에 대해서도 금전보상제도를 도입하여 자본의 해고를
통한 노동조합 활동 탄압을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2. 정권과 자본의 재편전략에 맞선 노동운동의 대응방향
1) 현재 제기되고 있는 노동(조합)운동의 대응전략에 대해
노동(조합)운동 위기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지면서
노동조합운동의 장단기 과제들이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들은 몇 가지 지점에서 심각한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적으로 양노총 통합을 통한 이른바 1국 1노총 건설이다.
노동운동의 대표성 위기를 진단하면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통합을 통해 대표성의 위기와 복수노조 등의 혼란을 극복하자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고 민주노총은 최근에
한국노총과의 상설적 연대체 구조를 만들자는 계획까지 제출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주장은 민주노조운동의 정통성과 역사를
말하기 이전에 이미 로드맵의 본질을 간과한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로드맵 이전부터 있어왔고 그 논자들에 의해 다시
회자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로드맵에 대한 대응전략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양노총
통합은 로드맵의 대응전략 될 수도 없거니와 그 본질은 사실상
노동조합운동의 투쟁성, 자주성, 민주성의 탈각이다.
앞서서 서술했지만 복수노조-산별체제에 대한 자본의 전략은
작업장 노조조직의 무력화이며, 관리통제가 가능한 노사관계로의
재편이다. 양노총 통합은 정권과 자본의 전략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지 결코 현실을 극복할 대안이 될 수 없다.
혹자는 산별건설로 이를 극복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산별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발상으로까지 확대된다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현실에서 산별노조는 많은 고민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앙집중성이 가져다주는 용이함도 있지만
반대로 현장 단위의 투쟁력을 약화시키는 치명적인 약점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약점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확인되는 것처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산별노조는 전 계급의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단위 현장의 교섭권과 투쟁력만을 빼앗는 것으로
현상화되고 있다. 산별노조라고 말하지만 실제 더 큰 기업,
업종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으로 제한되는 산별노조의 투쟁은
현재의 산별 건설 방식으로는 절대 다수의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권과 자본이 겨냥하는
작업장 노조조직을 지켜내지도 못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어떤’ 산별인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교섭구조의 확보라는 대안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는
2004년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구조를 둘러싼 비판에서 충분히
확인되고 있다. 정권과 자본이 사회적 교섭구조를 통해
관철하고자 하는 것은 핵심적으로 유연화의 제도적 완성과
사회적 합의주의의 정착이다. 이는 정권과 자본의 공공연한
발언에서도 확인되고 있는 사실이다.
2) 대응방향에 대한 몇 가지 의견
첫째, 협조적 노자관계를 거부하는 계급적
노동(조합)운동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난 몇 년의 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은 실로
모호해졌다. 자주성-연대성-민주성-변혁지향성이라는
민주노조운동의 이념과 정체성은 한편에서 총자본으로부터
공격(대공장-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 이기주의 운동), 또
한편에서는 우리 내부의 잘못된 관행으로 무너지고(인사비리)
있다. 동시에 이러한 흐름을 타고 총자본의 공격내용을 일정부분
수용하면서 ‘변화’, ‘국민에게 지지받는 노동운동’을 말하는
세력들도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노동(조합)운동은 자기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총자본은 이렇듯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
흔들기부터 총체적으로 노사관계를 재편함으로써 자본종속적
노자관계로의 이행을 급속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운동 대응 역시 매우 총체적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정체성을 재복원-구축하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지향과 이념이 변혁적-계급적 노동(조합)운동이라는
자기중심성과 연대성, 민주성, 자주성의 기본 정체성을
현장에서부터 제대로 세워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노동3권 쟁취를 위한 노동자투쟁이 전면화 되어야 한다.
로드맵의 전략은 노동조합운동이 양적으로 확대된 현실로부터
출발한다. 노동조합운동을 일반화시켜내는 대신에 그 영향력과
범위를 총자본의 관리통제 범주 안에 두겠다는 것이 로드맵이다.
따라서 그 자본이 쳐놓은 테두리를 넘어서는 투쟁, 실질적인
노동3권이 전체 노동자들에게 보장되는 투쟁을 전면화 시켜내야
한다. 여기에서 노동 3권은 비정규직 문제, 사용자 대항권은
공공부문의 문제, 복수노조는 대공장의 문제, 전임자는
영세노동자들의 문제 등으로 구분하여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저들의 의도가 우리 내부에 관철되는 것과 같다. 이 문제를
하나로 모아내는 것은 바로 노동 3권 투쟁을 전체노동자의
투쟁으로 단일하게 모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전면적 투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이 속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3권
쟁취투쟁은 매우 핵심적인 문제이다. 미조직-비정규직의
조직화는 산별건설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투쟁과정을
통해 결과로 조직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셋째, 복수-산별노조체제에 대한 대응은 ‘계급적 단결’의
방향이어야 한다.
일차적으로 비정규투쟁을 전체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여전히 비정규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되고
있는 현실을 타파하지 않는 한 정권과 자본의 전략을 막아낼 수
없다. 유연화의 제도적 완성을 꾀하고 있는 정권과 자본은 분할
공세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한 공세를 깨지 못하는
조건에서의 대응전략은 아무리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아무런 힘을 가질 수 없다.
현실은 여전히 이러한 분할구도를 깨지 못한 채 오히려
종속되어가고 있다. 지금은 계급적 단결의 방향 하에서
노동자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가장 관건적인 문제이며 모든
활동은 여기에 집중되어야 한다. 산별 문제 역시 이러한
방향하에서 본격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모두가 산별을 말하고
있다. 산별만능론이 전체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문제다’로만 제기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넷째, 전국투쟁전선은 단위현장의 투쟁력 복원과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비정규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열사의 행렬이 멈추지 않고
있다. 열사투쟁은 전국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금새 사그라지고
만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분노와 절규는 높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위현장의 투쟁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업을 해도 10만을 넘어서지 못하고 또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상황, 대공장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으면
투쟁전선구축은 불가능한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불가능하다고만
할 것이 아니다. 로드맵의 본질은 너무도 명백하지 않은가.
민주적 노사관계 재편안을 만들어 교섭을 통해 뭔가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은 일반 노동자대중도 갖고 있지 않다.
핵심적인 문제는 단위현장의 투쟁력을 복원해내는 것이다. 2월
임시국회 상정, 전임자와 복수노조 문제를 먼저 처리하겠다는
소식에 조직화를 미룰 것이 아니라 ‘로드맵 전면폐기,
총파업’을 명백히 하는 단위현장의 조직화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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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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