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와 노무현정권 |
현장에서 미래를 제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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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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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87년 체제’가 그 마지막 격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미FTA' 추진을 둘러 싼 격돌이 그것이다. 그것이 ‘87년
체제’의 격돌인 이유는 1987년 이후에 누적되어온 한국사회의
모순 구조가 전면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87년 체제의
‘마지막’ 격돌인 이유는, 이 격돌의 결과 한국 사회는 87년
체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이 격돌이 언제까지 어느
심연에 이르기까지 진행할 지 아직은 세세하게 전망할 수 없다.
다만 7월 한미FTA 2차 협상을 둘러싼 찬반진영의 대립은 그
마지막 격돌의 ‘첫 출발’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6월 워싱턴에서의 1차 협상 이후에, 노무현 정권이 한미FTA 협상
강행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향해, “한미FTA는 우리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며 “어떤 국민적 저항과 방해가
있더라도 이 협상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일갈했을 때, 사실
노무현 정권은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87년 체제와
결별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그 선언은 겉으로는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승부수로 보이지만, 87년 체제의 필연적인 귀결이기도
하다.
그 첫 출발은 무엇보다 ‘주권’과 ‘민주주의’를 둘러 싼
대립과 격돌로 표현되고 있다. “‘4대 선결조건’ 내주기와
한미FTA 협상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식의, 한미FTA를 주도하고
있는 정부 관료들의 파렴치한 ‘거짓말과 말바꾸기’는 더 이상
거론할만한 가치조차 없다. 국민을 민주적 토론과 의사결정
주체가 아닌 ‘홍보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40억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들인 광고를 통해 한미FTA의 필요성만을 강변하는
모습에서는 오히려 노무현 정권의 설득력 없는 초조함과
조급함만을 느낄 뿐이다.
노무현 정권은 ‘협상내용의 공개’와 ‘국민적 토론과 합의의
절차’라는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 요구마저 거부함으로써
광범위한 국민적인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도대체 이런
중대한 협상을 국민들에게 상의 한마디 안하고, 협상 체결 뒤
3년 동안 그 협상문을 공개치도 않는 것이 명색이 민주국가에서
이뤄질 수 있는 행위인가? 미국과의 신용만 중요하고 국민의
동의와 신뢰는 헌신짝보다 못하다는 것인가?”라는 항변은
그러한 분노의 정당한 표현이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의 훼손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항변에
대해 노무현 정권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올바른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국민들의 지지를 잃는다고 해도 길게 보면
역사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고 “찬반이 다 있지만
개방한 역사가 성공했다”라는 주장으로 버틴다. 한미FTA 추진이
어떤 정치적 꼼수가 아니라 ‘역사의식’에 바탕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변한다. 대통령의 역사인식을 따라잡지 못하는 국민들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청와대의 밤’도 있음을 호소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 정책이 올바르면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1차 협상의 내용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 그것도 한국
정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미국 협상단과 미 의회의 자료를 통해서
- 미국과 FTA를 맺었던 멕시코와 캐나다 등의 사례가
소개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범국민운동본부를 중심으로 한
한미FTA 반대진영의 헌신적인 투쟁과 폭로에 힘입어, 한미FTA가
단순한 ‘자유’무역협상이 아니라 초국적 자본에 의한
‘경제통합협상’이며, IMF 외환위기 때 보다 수십 배는 더 큰
제2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전면화이며, 나아가 한국의 주권과
실질적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 뿐인가? 한반도와 한반도를 둘러 싼 동북아의
정치경제적 구도와도 긴밀하게 연관된 사안이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한미FTA가 미칠 영향을 둘러 산 경제적 이해타산은 더
이상 논란거리도 아닌 것이다.
한국 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세계 최대의 미국 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동북아 중심국가가 되기 위해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서 ---. 노무현 정권이 때에 따라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면서, 또 스스로도 헷갈려하면서, 한미FTA를
추진하는 이유와 정당성에 대해 수다스럽게 강변하지만, 그것은
주관적인 바램이거나 추상적인 전망일 뿐이다. 한미FTA의 구체적
내용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면 - 협상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조금밖에 들여다 볼 수 없지만 -, 그것이 미칠 파급력은 IMF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한미FTA는 IMF외환위기가 10번 터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빈말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것은 노무현 정권이 주관적으로 희망하듯이
바람직한 방향에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FTA에 의한 공공영역의 사유화 내지 전면적 상품화
과정은 사회경제적 정책을 독자적으로 입안할 수 있는 정당성
기제로서의 민주적 정치위임의 심대한 손상을 초래” 최형익,
‘한미FTA, 공화국 민주주의의 위기’, [진보평론] 28호, 2006.
여름호, 233쪽.
할 것이다. 나아가 미국식 FTA는 관세나 무역이 초점이 아니라,
경제행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규제, 정책, 제도, 관행을
바꾸는데 그 초점을 두고 있는데, 이른바 “신이슈로 알려진
무역관련 지적재산권(TRIPS), 무역관련 투자(TRIMS),
서비스교역(GATS), 특히 투자에 관한 장은 '주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따라서 한미FTA가 체결되면, “우리 사회의 요구와 필요에
기초를 두어야 할 정책결정의 자율성은 치명적으로 제한받게 될
것이며, 우리 사회가 가진 제도⋅문화⋅인적 조건의
비교우위에 바탕을 둔 자체적인 생산체제의 유지와 발전이
어렵게 될 것이다. 이 문제가 한미 FTA 정책이 가져올 가장
위험한 결과이다.” 최장집, ‘한국경제와 한국민주주의를
버리려는가’, <프레시안> 2006.06.04.
이런 주권과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협의 결과는 양극화의 심화,
구조조정에 따른 노동 유연화의 강화, 노동3권의 훼손 등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즉 실질적 민주주의의 후퇴로 귀결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밤잠조차 자지 못하면서 역사의 진전을 고민하는
‘유능한’ 청와대만은 아니다. 한미FTA를 둘러싼 첫 번째
격돌과 대립은 소위 국민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국회의
무능력’ 또한 어김없이 드러내 보여주었다. 물론 과거 국회의
모습을 볼 때 새삼스럽게 더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노무현
정권의 한미FTA 추진과정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국회는
철저하게 자신의 역할을 방기했다. 여야를 통 털어 한미FTA
추진을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히는 사람들은 ‘통상절차법’을
발의한 41명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6월 23일 '국회
FTA포럼'이 주최한 '한미 FTA협상 점검과 향후 대응전략'
세미나는 한미FTA 추진과정에 대한 견제는커녕 한미 FTA 체결을
지원하기 위한 대대적인 여론몰이 방편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한미FTA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떠나, 국회가 보여준 모습은
‘무능력’ 그 자체였고, 한미FTA를 추진하는 정부 관료들조차
국회의 무능함에 기가 막혀 했을 정도였다. 주권과 민주주의의
위기는 한미FTA에 따른 외부적 위협 이전에 국회의 무능하고
무기력함 때문에 먼저 오고 있다. 그 위기가 아직은
‘의회’민주주의만의 위기라는 점이 다행이면 다행일 뿐이다.
‘실질적’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의회 밖에서 민중
스스로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 3각 동맹, 재벌(초국적 자본)-친미 경제관료-조중동
노무현 정권의 한미FTA 추진은 찬성과 반대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계급정치 지형을 새롭고 독특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재편해 나가고 있다. 한미FTA를 둘러 싼 대립 속에서 형성되는
계급지형과 특징이, 그리고 그 승패 여부가 ‘87년 체제’
이후의 한국 사회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규정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지형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재벌(초국적 자본)과
친미 경제관료, 그리고 조중동으로 이루어진 ‘한미FTA
삼각동맹’이다. 이미 초국적 기업화한 한국의 재벌들은 시장을
둘러싸서는 미국의 자본과 경합관계에 있으나, “한미FTA를
지렛대로 구조조정의 새로운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즉 한미FTA로 인한 관세 철폐가 가져다 줄 가격인하
효과보다, 오히려 구조조정을 통한 인건비 절감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한미FTA에 적극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고,
최대의 수혜자가 될 것이다. “가변자본(노동)에 대한 총자본의
글로벌 네트워킹의 한 고리” 이해영, [낯선 식민지,
한미FTA](2006. 도서출판 메이데이), 75쪽.
로서 한미FTA를 추진하는 것이다. 경제5단체는 이미 지난 2월
10일 기자간담회 열고, “한미동맹관계 강화와 미국시장
내에서의 경쟁력 제고 등 FTA 체결이 한국 경제구조를
선진화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한미FTA의 추진 주역은 소위 ‘모피아’라고 불리면서, 이번
한미FTA 협상을 주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재경부와
통상교섭본부의 친미 친자본 관료들이다. 이들 가운데
협상대표단은 “국적만 한국이지 몸과 마음은 이미 미국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이미 미국식 삶의 양식에 익숙한
자들이고,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으며, “공직에서 퇴임하면 금융기관이나 로펌으로
옮기고, 거기서 고위관료로 돌아오는 회전문 구조를 바탕으로
강력한 충성도와 개인적 능력을 발휘하면서 오랜 세월 한국
경제를 주물러 온 지배엘리뜨” 윤태곤, ‘심상정 의원 인터뷰 -
내가 겪은 모피아들은 유능한 확신범들’, <프레시안>
2006.06.15.
들이다. 이들은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동안 자칫 게토화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만,
한미FTA를 통해 지위를 복원하고 강화해 나가고 있다.
한미FTA 추진과정에서 형성된 독특하고 새로운 지형이 노무현
정권과 조중동의 관계이다.
조중동 보수언론의 경우, “한·미 FTA 협상 이후
‘국정브리핑’이 조·중·동과 대연정 이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노무현 정권의 한미FTA 추진에 대해 적극 지지하고
추동하고 있다. 조중동은 한편으로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좌절감을 교묘히 파고들며 이반을 부채질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FTA 추진을 비롯하여, 재벌과 외국투기자본을
위한 신자유주의의 확대발전, 노동계를 탄압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대노동정책, 그리고 외교안보적으로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에서는 노무현 정권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특히
조중동 보수언론은 “이번이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일 뿐 아니라, 방송을 손아귀에 넣을 기회로
보고” 한미FTA 추진에 적극 찬성하고 있다.
이처럼 재벌(초국적 자본)-친미 경제관료-조중동이라는
한미FTA의 삼각동맹에, 그 정치적 대변자이자 집행자로서 노무현
정권이 자임하고 나섰다. 출범 초기에 소위 ‘민주화 개혁’의
1차 대상이었던 세력들과 한미FTA를 매개로 동맹을 맺은 것이다.
이는 87년 체제의 최대의 정치적 수혜자인 ‘민주화 개혁’
세력이 신자유주의 친미친자본세력에 완전히 굴복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노무현 정권은 이를 거꾸로
이해하면서 자신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5월31일 지자체 선거에서 참패 이후, 당권을 장악한 소위
‘김근태’ 의장을 중심으로 한 열린우리당 내 개혁파도 이
한미FTA 삼각동맹의 구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당권 장악
직후에 ‘한미FTA 신중론’과 ‘서민경제의 회복’을 최우선으로
내세웠지만, 6월 말 노무현과의 회동에서 서민경제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칠 한미FTA의 추진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말았다. 이를 두고 혹자는 “무능한 민주파의 마지막
에피소드”라고 조롱까지 했다.
이러한 조롱과 지지기반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한미FTA 추진을 강행하고 있다. 한미FTA의 추진
속에서 작년에 노무현 정권이 제안했던 ‘대연정’을 내용적으로
실현해 나가고 있다. ‘경제판 대연정’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FTA 추진이 가져 올, 자신에 대한 지지기반의 이탈은
물론 국민적인 저항이라는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보다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정세에서 삼각동맹의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하면 지배계급 내부의
주도적 분파로 설 수 없다는 점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만약 이 경제판 대연정에 성공하면 이를 정치판 대연정으로까지
진전시켜낼 수 있다고 판단할 지도 모른다.
어차피 차기 정권을 내주면 차기 정권에 의해서 한미FTA가
추진될 것이고, 이왕 한미FTA 추진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조금
피를 묻히더라도 임기 중에 처리하는 것이 훨씬 더 얻을 것이
많다고 판단할 것이다. 한미FTA를 주도적으로 타결하여 지배계급
내부의 주도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 일시적으로 지지층이
이탈하고 저항이 있더라도 지배적인 분파의 유지는 물론 차기
정권의 재창출에도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승부수이고, 87년
체제와의 결별 선언인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국민들의 지지를 잃는다고
해도 길게 보면 역사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말은
이렇게 해석되어야 한다. “이 정치적 승부수에서 이길 수
있다면, 그래서 지배계급 내부의 주도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나아가 다시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면, 그 때 역사는 승자의
편이 될 것이다”라고.
한미FTA 추진 과정에서, 노무현 정권과 한미FTA 반대진영간의
격돌과 대립의 과정에서 어부지리로 그 정치적 성과를 주어 담는
세력이 있으니, 바로 한나라당이다. 5.31. 지자체 선거에서의
압승은 그 단적인 표현이다. 사실 한나라당이 집권당이었으면,
한나라당이 재벌(초국적 자본)-친미 경제관료-조중동이라는 3각
동맹을 이끌고 한미FTA를 적극 추진해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한미FTA를 적극 추진해 나가는 이상, 즉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정확하게 짚어내어 알아서 척척
해나가고 있으니” “손 안대고 코를 푸는 격으로 권력을
잃었어도 권력을 잡은 것이나 진배없는 결과를 보따리 채 얻고”
아찌, ‘노무현 정권은 개혁 빙자한 신자유주의 정권’,
<대자보>2006.06.30.
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이 한미FTA를 적극 추진해 나가도록
뒷받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로 인한 책임은 회피하면서,
“가만히 앉아서 표정 관리나 하고, 지지자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좌파 운운하며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는 척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한미 FTA는 단순한 하나의 정책이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변화를 부르는 정책기조인데, “엄청난 부작용을 몰고 올
외부쇼크 요법을 노무현 정권이 대신 써준다 하니 한나라당
처지에서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을 대신해주고 욕도 대신 먹는데 반대할
일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어부지리는 일시적일 뿐이다. 한미FTA에
대한 국민적 저항과 투쟁의 진전은 더 이상 이러한 떡고물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한미FTA를 둘러 싼 대립과 격돌이 그들이
관망하면서 즐길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진전될 때,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승부수에 흡수되든지 아니면 정치적으로
가장 애매하고 무의미한 세력으로 전락할 것이다.
‘제2의 6월 항쟁’의 재현?
한미FTA를 둘러 싼 계급정세의 변화는 확실히 ‘제2의 6월
항쟁’을 예고하는 듯이 보인다. 국민적 반대와 저항이
확산되면서 신자유주의 지배분파의 일부는 동요하고 이탈하고
있다. 소위 ‘참여 정부’ 출범 이후 비판적 지지자로서 역할을
해왔던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한미FTA 추진을 계기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창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소위 ‘노빠’들의 일부도 “노무현 대통령을 밟고 갈 때가
왔다. 대통령에게 다 뒤집어씌우고 국면을 돌파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 정권을 중심으로 한 한미FTA 삼각동맹에 맞서는 국민적
반대와 저항의 중심에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가 있다. 지난 3월 28일 270여개의 노동자민중단체,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출범한 범국본은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대중조직이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보건의료, 문화예술, 언론 및
미디어, 여성, 환경, 인권 등 광범위한 시민단체까지 결합시키고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나아가 김영삼 정권의 문민정부 출범
이래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부문이 하나의 이슈를 중심으로
결집한 것은 97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후 처음” 서동만,
‘전략적 유연성 - 한미FTA의 정치지형’, <프레시안>
2006.06.07.
이라 할 정도로, 범국본은 광범위하게 한미FTA반대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범국본’을 중심으로 한 국민적 저항이 확산되고 거세어질수록
‘한시적 협상 이후 중단론’, ‘차기 정권 이관론’ 등
간접적인 반대 입장들도 조금씩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소위 ‘민주화 개혁’세력이 한미FTA 반대진영이 아니라 한미FTA
삼각동맹진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그 대립의 내용이 ‘호헌 철폐, 직선제 개헌’이
아니라 ‘한미FTA 저지’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그리고 그
중심에 자유주의적 보수야당이나 재야명망가들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등의 기층 대중조직이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7월
서울에서의 2차 협상을 앞둔 두 진영의 대립은 외형적으로는
20여년 전, 87년 체제를 낳았던 ‘6월 민중항쟁’의 서막을
연상시킨다. 사실 이미 ‘범국본’에서도 ‘제2의 6월항쟁’이
될 것임을 예고한 바도 있다.
20여 년 전 정치적으로 고립될 데로 고립됐던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던진 마지막 승부수가 ‘호헌’이었듯이,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14%와 12%로 전락한 노무현 정권이 던진
마지막 정치적 승부수가 '한미FTA'이다. 20여 년 전에도 ‘호헌
철폐’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국민들은
‘범국민운동본부’를 구성하여 결국 6월 민중항쟁을
이끌어냈듯이, 지금 한미FTA를 반대하는 세력들도 부문별
공대위와 지역 공대위를 바탕으로 ‘범국본’을 결성하여
‘제2의 6월 항쟁’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범국본이
이야기하는 ‘제2의 6월 항쟁’은 아직은 한미FTA를 강행하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경고의 성격을 갖는다. “한미FTA협상을
즉각 중단하라”고 하는. “한 판 붙어보자”식의 무모한 정치적
승부수를 즉각 거두라는 경고이다.
그런데 역사는 되풀이 되지만 똑같이 되풀이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한미FTA를 둘러싼 계급지형이 외형적으로는 ‘제2의 6월
항쟁’을 예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20여 년 전의 6월
항쟁처럼 그대로 재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20여 년 전의 6월
항쟁은 신군부의 기만적인 ‘6.29.선언’에 말려, 민주주의
투쟁을 ‘절차적 민주주의(직선제 개헌)’에 한정시키고,
노동자민중의 실질적 민주주의 쟁취투쟁으로까지 진전시켜
나가지 못했다. 그것은 6월 민중항쟁 주체의 계급적 한계를
반영한 것이었고, 그 한계로 민중투쟁의 정치적 성과를 고스란히
보수 야당과 소부르주아 재야명망가들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그리고 그해 12월 대선에서 다시 권력을 합법적으로 신군부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물론 이어진 7~9월 노동자대투쟁이 6월 항쟁의
성과를 이어받으면서 민주주의투쟁을 실질적으로 더 진전시켜
내긴 했으나, 노동자들의 투쟁이 신군부에 맞선 민주화투쟁에서
정치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해내진 못했다.
지금의 한미FTA를 둘러 싼 계급지형은 20여 년 전의 그것과는
다르다. 요구가 ‘절차적 민주주의’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들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사회경제적⋅실질적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문화예술, 언론 및 미디어, 여성, 환경, 인권
등 광범위한 세력이 직접적이고 첨예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한미FTA저지투쟁에 결합하고 있다. “한미FTA 협상 강행이냐
협상 저지냐”를 둘러싸서 갈등하고 있지만, 국민 전체의 경제적
삶이 걸린, 즉 한국 경제와 사회의 향방이 걸린 사활적
사안으로, 이렇게 표현이 가능하다면 ‘6월 민중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이 결합’된 방식의 계급투쟁으로 진전될 것이다.
아니 이렇게도 표현이 가능하다면, ‘87년의 투쟁과 96~97년
총파업투쟁이 결합’된 방식의 계급투쟁으로 진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범국본은 ‘협상 저지’를 위해 광범위한 세력이
결집하고 있지만, ‘협상 저지’라는 점에서 공통의 이해기반을
가질 뿐, 이후의 정치적 전망에 대해서는 동의기반이 취약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 투쟁동력에 있어서도 농민과 영화인들,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일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뿐, 아직
노동자들이 대중적으로 투쟁의 전면에 나서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범국본이 갖는 이러한 한계가 곧바로 한미FTA 투쟁의
발전을 제약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범국본은 ‘한미FTA
협상 저지’에 광범위한 기층대중조직과 시민사회단체를
결집시키고, 그 투쟁을 상층 일부의 투쟁에서 대중투쟁으로
진전시켜 나가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역사적인 소임이다.
한미FTA 투쟁의 정치적 진전을 어떻게 이뤄나갈 것인가는
정치조직의 몫이다. 민주노동당이나 민중연대가 이 계급투쟁의
정치적 지도력으로 서나갈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이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뚜렷한 좌파의 정치적 대안이 형성된 것도
아니다. 민주노동당이든 민중연대든 변혁적인 좌파진영이든 이
투쟁 과정 속에서 계급대중의 정치적 지도력으로 서나갈 수 있을
지 검증될 것이다. ‘제2의 6월 항쟁’이되, 6월 항쟁의 한계를
돌파해 나갈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 검증될 것이다.
‘정치적 승부수’가 제기한 현실
앞에서 한미FTA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87년 체제의 마지막
격돌’이라고 했다. 그 첫 출발이 ‘주권’과 ‘민주주의’를
둘러 싼 대립과 격돌로 표현되고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한미FTA
강행은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승부수라고도 했다.
여기서 우리는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정치적 승부수가 왜 87년
체제의 마지막 격돌로 드러나고 있는지, 그것이 정치적으로
함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주권’과
‘민주주의’를 둘러 싼 계급대립과 격돌을 한 단계 더 진전시켜
나갈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3년 만에 비극적 종말에 이른 노무현
‘개혁’정권이 직면했던 현실과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해법은 다르겠지만 그 현실이
진보진영⋅변혁진영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왜 노무현 정권이 지지자들의 이탈과 국민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한미FTA에 올인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의 유산과 다른 한편으로는
2002년 월드컵 열기와 인터넷의 발달이라는 성과로, 그리고
지역주의 정치구도의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출범한 노무현 정권은
단지 그 유산과 성과만을 이어받은 것은 아니었다. IMF
외환위기를 불과 4년만에 극복(?)하는데 기여한 카드 경기부양과
벤처캐피탈이라는 거품, 구조조정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조건과
상황도 상속받았다. 그리고 “정치적 불안과 사회경제적
신정세에 대한 자본의 불만인 투자거부” 역시 상속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유산을 상속받았다고 해서, 사회적 양극화와
대중빈곤을 심화시킨 노무현 정권의 책임이 전가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소위 ‘민주화 개혁’ 세력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이라고 하는 자본운동에 대해 자신의 입장이 없었다. 그
결과 모든 경제정책은 기존의 경제관료들에게 맡겨졌다. 혹자의
비판처럼, “정권은 잡았으되 곳간 열쇠와 부엌살림은 계속
한나라당 집사에게 맡기는 '청와대 하숙생' 신세”였던
것이다.
이후 노무현 정권은 한편으로는 ‘금융 규제완화’와
‘관료부양경제’를 주축으로 한 거품 경제를, 다른 한편으로는
개방화와 구조조정, 노동유연화를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를
전면화시켜 나갔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기업의 내부 유보금을
유인하려는 기업도시⋅관광도시⋅혁신도시 등
신개발주의와 행정수도 수도이전 등 정부의 ‘건설경기 주축
부양경제’ 시도가 맞물려 전국의 부동산값을 폭등시켜 거품
경제를 극대화”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공세의 결과 사회적
양극화와 대중빈곤을 심화시켰다. 최근 사회적으로 쟁점화된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도 사실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인 것이다.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생산적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미래 성장동력의 준비'로 사용하지 않고, 아파트와 부동산과
증시에 쏟아 부어 ‘자산가치 폭등’만 초래한” 전형적인
‘금융 신자유주의 경제운영 모델’ 속에서 “‘저금리’는 사실
‘경기’를 부양한 게 아니라, ‘자산가치의 폭등’만을 부양”
깊은 생각, ‘노무현과 비판적 지지론⋅국민전선론의
최후’, <대자보> 2006.06.24.
하게 됐다. “공적자금과 외평채와 통안증권 정부 빚 230조원.
부동산과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가계와 개인 빚 500조원. GDP의
약 8배 이른다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 캐나다를 7번인가 살 수
있다는 부동산 가격 총액. 막대한 '외평채'를 투입하여 '미래
세대의 빚'으로 수출대기업의 '이익'을 보장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환율의 급락, 여기에 ‘백만장자 증가율 세계
1위’, ‘비정규직 노동자 증가율’ 또한 세계 최고 수준,
양극화의 속도와 수준 역시 세계 최고”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과 민주화 개혁세력은 집권 3년 만에 자신의
‘무능함’의 결과로 이런 경제적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적 현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는
‘거품경제의 붕괴 위기’요, 다른 하나는 ‘사회적 양극화와
대중빈곤의 심화에 따른 저항의 폭발 가능성’이다.
한미FTA 추진이라는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승부수’는 바로
이런 현실에서 던져진 것이다.
“외부 충격에 의한 내부의 체질 개선”은 바로 한미FTA라는
외부적 충격을 통해 이러한 위기를 일거에 돌파해 나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정치적 오류와 정책적 무능력을 은폐하면서, 한미FTA
추진에 화려한 수사를 갖다 부친다. “외부충격에 의한 우리
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중국과 인도의 추격에 대비해서,
북미 사장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서, 한미경제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
여기에 역사의식과 국민에 대한 믿음까지 덧붙인다. “오늘도
배외주의가 우리 민주주의의, 소위 민족주의의 기치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되도록이면 멀리 역사의 인과관계를 내다보면서
하나하나 해 나갔으면 좋겠다” “개방하고 교류했던 나라는
망한 나라도 있고 흥한 나라도 있지만 개방을 하지 않고
교류하지 않은 나라 중에는 흥한 나라가 없다. 개혁과 개방에
있어서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에 대한 믿음은
역사적으로도 가능한 것"이라고.
그렇다면 한미FTA 추진을 정치적 승부수로 던질 수밖에 없었던
노무현 정권이 직면한 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품 경제의
붕괴 가능성’과 ‘사회적 양극화와 대중빈곤의 심화’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권은 한미FTA 추진을 ‘한국경제의 생존의
문제’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정치적 함의는 무엇인가?
이는 주권과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출발한 한미FTA를 둘러 싼
대립과 갈등이 필연적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생존’에 대한
전망의 문제로 진전될 수밖에 없음을 뜻하며, 노동자민중의
생존권투쟁도 이제는 ‘반자본’의 정치적 전망과 불가분하게
결부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한미FTA저지투쟁의 깃발 위에 ‘노무현 정권퇴진’이라는 구호를
새겨 넣는 것은 지금 정세에 너무도 당연하고, 또 필요한
일이다. 이미 과거에 노무현을 지지했던 세력들조차 이렇게
분노하면서 노무현에 대한 탄핵을 외치고 있다.
“막대한 희생을 지불했던 햇볕정책을 한나라당에게 선물로
준다는 정략적 발상으로 원점으로 돌려버린 죗과. 단군 이래
최고의 부동산투기를 조장한 죗과. 국헌을 무시한 이라크
침략파병을 하고도 미국에게 아무런 가시적 댓가를 얻어내지
못한 무능. 굴욕적인 대미외교. 노무현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는 발언이 명백히 보여준 재벌만세의 경제정책.
‘구멍가게는 사라져야한다’는 노무현의 망발이 구체적으로
보여준 극단적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양극화고착. ‘호남이
변해야 영남도 변한다. 전라도가 내가 좋아서 찍어줬나 이회창이
싫어서 찍어줬지’하는 신지역주의를 조장하면서 민주당을
확실한 지역정당으로 고착시키며 그나마의 민주세력을
사분오열시키며 한나라당의 정치적 입지를 굳건히 지탱해 준
죄악. 이제 그것도 모자라 신자유주의 완결판인 한미 FTA를
치적용으로 전시하려고 올인. 이런 사람을 탄핵안하면 탄핵이
헌법상 존재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노무현의 죗과’, <대자보> 2006.06.08.
그러나 우리는 ‘노무현 퇴진’이라는 구호 다음에 무엇을,
어떠한 정치적 전망을 덧붙여야 하는가? 한미FTA 저지투쟁의
과정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노무현과 민주화 개혁세력이
직면했던 ‘거품 경제의 붕괴 가능성’과 ‘사회적 양극화와
대중빈곤의 심화’에 우리는 어떤 대안을 제기할 것인가? 이
투쟁 속에서 ‘개혁과 진보’를 넘어서는, 유능하고 비전 있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가? 우리의
‘정치적 승부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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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31 17: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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