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정치자금의 사태 분석 |
현장에서 미래를 제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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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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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
초점
정세초점
안기부 정치자금의 사태 분석
김대중 정권의 통치전략의 위기, 지배계급의 갈등
최 경 희
연구위원
1. 김대중 정권의 통치전략의 위기
2001년은 김대중 정권이 집권 3년째를 맞는 해이다. 1997년을
통과하는 시점에서 등장한 김대중 정권은 그 이행과정과
통치방식에 있어서 이전 정권과 차별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부르주아 정치이론적 차원에서 볼 때 김대중 정권의
등장은 한국에서 민주적 공고화의 성공사례가 된다. 즉 파시즘적
군부독재에서 탈군부, 민간정권으로의 이행, 그리고 오랜
야당경험을 한 세력이 집권당이 되었다는 그 사실은, 군부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민주적 정치체제로의 변동에 초점을 맞춘
민주화 이행․공고화론에 입각해 볼 때 정확한 적용 사례가
된다. 이에 김대중 정권은 이전의 군부독재, 또는 3당 통합으로
권력을 창출한 김영삼 정권과는 다른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으며 시작되었다. 둘째, IMF 관리체제, 소위
국가부도사태라는 초유의 국가적 위기(?) 사태, 즉 지배계급
스스로도 통치의 위기를 느끼는 미증유의 상황 속에서 김대중
정권은 등장하였다. 김대중 정권은 집권 초반기에 ‘민주적
시장경제’라는 청사진을 내세워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개혁’이 소위 한국이 나아가야 하는 길인양
말하며 국민대중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셋째, 김대중 정권은
2년의 통치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관철했고,
국민대중은 그 구조조정의 부정적 징후, 즉 민중들의 생존권
위협(고용불안, 실업, 가정파괴)이 현실적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김대중 정권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 판단을 어렵게 했던 것은 바로 집권당 차원에서
‘복지’, ‘통일’, ‘인권’ 문제를 정치의제화하였다는
사실에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복지’, ‘통일’,
‘인권’이라는 정치적 의제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관철시키는 하나의 과정적 요소이자 반대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갖는 부정적 반응을 무마 또는 ‘시선 바꾸기’를
위한 정치의제로서 활용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정권 창출의
특수한 상황과 통치방식은 김대중 정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판단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물론 지금 현실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개혁’을 하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망한다는
이데올로기적 선전은 계속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1년 김대중 정권이 수행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결과는 정치․경제적으로 어떠한가? 바로
김대중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결과에 따른
정치․경제적 위기로부터 역규정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가지 차원으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지배계급내의 갈등의
증폭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민중의 저항이다.
노동자․민중은 ‘정리해고제 반대’, ‘구조조정 저지’
등을 내걸고 수많은 투쟁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아직 현실운동
차원에서 ‘반김대중 반신자유주의’에 대한 명확한 정치적
판단과 투쟁이 가시화되어 나타난다고 볼 수는 없다. 본고는 이
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논외로 하고자 한다. 다른 하나는
지배계급내의 갈등의 증폭이다. 그렇다고 지배계급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원칙적으로 반대해서 갈등이 양산되었다고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반대로 야당으로서 한나라당은 집권 여당이 2년간
수행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결과에 따른 정치․경제적
위기를 정치적 기회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정세가 구조적 모순의 발현이라고 했을 때, 현재 지배계급내의
갈등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과하면서 집권당의
통치위기로 나타나는 지배계급내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2. 안기부 정치자금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
김대중 정권은 직감하였을 것이다. 즉 이렇게 통치하다가는
정권재창출이 요원하다는 것을 직감하였다고 판단된다. 16대
총선 이후 김대중 정권은 국민적 지지가 약화되었다는 사실에
위축되었다. 아무리 ‘통일’과 ‘노벨 평화상 수상’ 이라는
저강도 드라이브를 쓴다고 해도 생존권 위협 속에서 현실을 사는
노동자․민중들의 마음을 달래기는 쉽지 않았다. 노벨
평화상을 받고 국내 정세를 추스리려고 했던 김대중 정권은 내부
당의 정비를 마치고 아마 밤세워 고심하고 또 고심했을(?)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 선택한 정치적 전술은 ‘자민련’
살리기였다. 교섭단체로서 자민련의 위상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의원 꿔주기’ 전술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 전술의 야심은
무참히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집권여당의 의도가 아닌,
우국충정의 마음에서 개인적으로 내린 판단에 따른 정치적
행보였다고 하지만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관행이 존재하는 부르주아 정치판에서조차
이러한 특단의 조치는 판을 뒤엎는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수는 김대중 정권의 위기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자민련과의 공조체제를 회복하지 않는다면 집권당으로서
이 ‘정치․경제적 위기’를 돌파하기가 요원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집권당의 실수(?)를 좌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항시 차기 정권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야당으로서는
이러한 김대중 정권의 실수를 자기의 기회로 만들려 했고,
이것은 그들 본연의 자세이다. 이러한 역공세는 김대중 정권의
도덕적 위기감으로 번졌다. 보수적 관점에서 한국정치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정말 이것은 아니다’라는 판단들을
거침없이 제기하게 되었고, 국민여론도 심상치 않았다. 이에
집권여당은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 시기에 ‘안기부 정치자금’이 폭로되었다. 96년 15대
총선과 95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에게
157억원을 전달하였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국고수표를
인출해 총선에 살포하는 안기부 예산 횡령사건, 즉 국고를
사적인 목적으로 남용했다는 사실이다. 소위 안기부라는
국가기구가 공적자금을 집권여당의 선거자금으로 활용하였다는
내용은 국민적 감정을 부추기는 데 제대로 사용되었다.
한나라당은 ‘특검제 도입’과 ‘김대중 비자금설’로
응수하였다. 한나라당은 “한나라당의 재산이 수십년간 공식적
후원금과 재정위원들의 노력에 의해 공개적으로 형성된 환금성이
없는 부동산이 대부분이지만, 민주당의 재산은 부끄러운 검은
돈이 수십년간 DJ 개인에게 흘러 들어가서 형성된 현금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하면서 1,200억원대를 DJ 일가가 관리해 온
만큼 특검제를 도입하여 제대로 수사하자고 반격했다.
그러나 한달여 동안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의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안기부 정치자금사태의 종결은 어떠한가? 김기섭
전안기부 운영차장이 1월 5일 구속되었고 단독범행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지어졌다. 검찰도 이 사건을 ‘안기부 예산횡령
사건’이라고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돈의 출처와 성격에 대한
어떠한 수사도 없이 즉, 예산항목 집행과정에 대한 설명과
물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사건을 종결지었다. 일개 안기부
운영차장이 소위 국고라고 말하는 돈 157억원을 개인적
충성심으로 횡령했다고 하는 결론은 삼척동자도 믿지 않을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와 같은 결론은 지배계급내에
존재하는 ‘부패의 구조적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먹고
먹히는 관계, 그리고 모든 진실이 밝혀졌을 때는 현재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적 타격을 받는다는 사실은, 말로써는 ‘특검제
도입’이니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니 검찰의 재수사’니
하면서 떠들어대지만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여당과 야당은 갈등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지배블럭내의 갈등의 일상은 항상 신문의 토픽감이다.
그것도 굉장히 매일 다른 의미에서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신문을 읽는 독자는 어느 쪽이 더 선한가, 어느
쪽이 더 올바른가,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도록 조작한다.
바로 이렇게 매일 벌어지는 지배블럭내의 외형적 갈등의 표현은
체제를 유지하는 본질적인 힘인 것이다. 왜냐하면 지배계급내
갈등의 외화는 마치 그들이 전혀 다른 존재기반과 정치적 지향을
갖는 세력인 것처럼 보여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역으로 국민대중이 현실정치의 혁신과 개혁에 대한 끊임없는
기대와 희망을 갖도록 하는 기묘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3. 지배계급과 국가장치의 구조적 관계
‘안기부 정치자금’과 관련하여 일련의 부르주아 언론은
타당하지 않는 문제들을 제기한다. ‘국가 기구가 어찌 감히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가?’, ‘국민의 세금으로 모인
공적자금이 어찌 이런 용도로 쓰일 수 있단 말인가?’ 등등.
여기서 국가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제3의 실체로서 조명되고
전제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전제에서 제기될 수 있는
의문들이다. 과연 그러한가? 그러나 숨겨진 비밀은, 현상적
수준에서 국가가 공공성을 포기하는 것처럼 드러난다면 환상적
공동체로서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국가든 공공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튼튼한 장치들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배계급과 국가는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지배계급은 자본가이다. 자본가의 정치적
표현은 부르주아일 것이다. 지배계급은 경제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지배해야 한다. 부불노동이라는 경제적 착취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지배 없이는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정치적 지배라는 권력의 응집으로서
가장 중요한 실체가 ‘국가’인 것이다. 국가란 모름지기
지배계급의 집행위원회이다. 국가권력이란 집행위원회라고 말할
수 있는 국가장치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국가장치란
국가권력이라는 물리력을 담보하는 장소이다. 그 물리력은
행정권력과 공권력이다. 그 공권력의 구체적 표현은 군대, 경찰,
검찰, 안기부(국가정보원)와 같은 기구, 장치들이다. 그리고
행정적 업무는, 국가가 현상적으로 공무를 맡고 계급갈등을
조율하여 처리하는 공적인 성격으로 외화되는 바로 그곳이다. 또
하나의 측면에서 입법권력도 존재한다. 본질적으로는 국가권력은
행정권력과 공권력이라는 물리력에 기반하고 있지만, 의회공간은
이러한 것이 합법적으로 진행된다고 하는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영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지점은, 이
국가권력을 유지하는 물질적 힘이 ‘국민의 세금’, 조세 기능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권력의 물질적 기반인 조세에
관한 연구는 맑스주의 국가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주제인 것 같다. 이러한 국가와 세금 관계의 측면에서 맑스는
국채발행에 따른 금융자본에 대한 국가의 구조적 성격을
‘프랑스 혁명사 3부작’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민의 세금이란 개별 노동자들의 노동력의 대가로 획득된
임금의 부분들이다. 바로 국민의 세금은 국가의 유지를 위한
여타의 예산지출로서 ‘공적자금’으로 지불된다.
이러한 일련의 맑스주의 국가론의 이론적 설명들이 ‘안기부
정치자금 사태’와 관련하여 보여주는 핵심적 내용은,
공적자금이란 모름지기 피지배계급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지배를 위한 국가행사에 필요한 돈이지만,
그 돈은 소위 국민이 내어야 하는 신성한(?) 의무라는
이데올로기적 정당화 속에서 진행된 세금 수탈에 의한
계급지배의 유지를 위한 돈인 것이다. 이러한 결론이 모든
사건이나 사태에 대한 환원론적 설명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태나 사건이 그 자체로서 독립적이라는
인식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특정한 사태와 사건을
발생시키는 구조적인 힘과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 과학적
설명임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따라서 ‘공적
자금’이라는 단어가 허구적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허구적인
요소들이 유지되는 현상적 이면의 구조를 파악하여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공적자금’이란 애초 계급간 조화의
필요성에서라기보다는 계급간 갈등에서 발현된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지배계급의 유지와 현재 계급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국가의 지출인 것이다.
4. 정치적 위기로의 전화를 위하여
그람시는 일찍이 지배계급의 통치의 위기와 정치의 위기의
상관성을 논하고 있다. 정치의 위기라고 하는 것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계급적 대립․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국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치적 차원에서 지배계급내의 특정한 정치블럭들은 행정부를
수반하는 세력이 되고자 노력한다. 행정부를 수반하는
세력(여당)과 그렇지 않는 세력(야당) 사이의 대면관계는 정치적
주기―집권의 과정과 차기 선거 전후의 과정 등―에 따라 특징이
다르게 나타난다. 김대중 정권은 향후 2년 스스로 정권 재창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쓸 것이다. 이미 ‘강한
정부론’을 제기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한 방문을
통하여 대중적 정서를 자극하여 통일 논의로 ‘진보성’을
포획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도 부시
정권의 등장으로 인한 동북아 주변지역의 정세변화에 따른
어려움을 한 축으로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권이 수행한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 개혁의 결과로
나타난 정치․경제적 위기를 강하게 공격할 것이며 이러한
여세를 몰아, 차기 대권의 고삐를 바짝 당길 것으로 보인다.
현실 정치 차원에서 여당과 야당의 물고 물리는 관계를 예의주시
할 필요가 있다. 일시적이든 중기적이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정치적 위기라고 보았을 때, 이러한
정치적 위기의 가능성은 피지배계급의 대중적 저항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배계급의 약한 고리, 그리고 그
갈등이 전반적으로 통치의 위기로 전화하는 계기, 촉발의 측면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계기와 촉발들이
피지배계급의 대중적 저항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한국 정치사에서 혁명적 정세라고 하는 상황은
피지배계급의 강력한 저항을 수반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 또한 지배계급의 동화라는 측면도 있었음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재 여야간의 갈등은 지배계급의 통치 위기의 표현이
아니라 갈등이다. 이러한 갈등이 위기로 되는 것은 특정한
조건에서만 가능한 것이며, 대통령 선거시기에 반드시 갈등이
위기로 전화된다고 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1997년 정세는
집권당의 통치의 위기가 지배계급의 통치위기 일반으로 전화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역으로 이러한 위기 속에서
지배블럭은 본질적 정쟁을 중단한다. 왜냐하면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저항을 제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민중의
운동적 측면에서 역사적으로 극복해야 할 지점은 지배계급의
통치위기가 전방위적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주체적
조건에서 정치적 행동을 수행할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민중의 운동은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각성, 조직화하는 끊임없는 투쟁을
수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배계급의 움직임, 갈등, 정당성위기
등에 대한 분석 또한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으로 보인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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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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