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언론개혁인가?
박 영 자
연구원
1. 언론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언론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언론은 정치권력의 획득, 유지,
행사를 위한 실제적 수단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전체로서
권력투쟁이나 지배, 피지배라는 정치의 본질적 측면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론의 정치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오늘날 상업적 대중언론의 정치성 상업적인
대중언론일수록 노골적인 당파성이나 정치성을 거부한다. 그러한
제스처는 상업적으로 유리할 뿐만 아니라 내밀한 정치성의
달성을 위해서도 유용하다.
이다.
사회현상은 상호작용하여 중층적인 결정이 이루어지기에 정치가
다른 영역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것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정치와 별 상관없는 듯이 보이는 경제, 문화, 오락이나
스포츠와 관련된 것에도 언론의 정치성이 게재되어 있다. 더
나아가 언론에 취급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언론에 취급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 자체에도 정치성이 게재되어 있다.
또한 모든 언론은 당파적이다. 언론은 이론상 중립적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중립적이지 않고 당파적이다. 상업적인
대중언론들은 한결같이 중립성과 공정성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지배세력의 편에서 그들의 이익에 봉사한다. 이들은 금력과
권력을 가진 자에게 유리하며 기존질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편파적이다. 그러면서도 언론은 그런 당파성을 중립성이니
공정성이니 하는 말로 호도할 뿐이다. 그 결과로서 언론은
상업성을 침해받지 않으면서도 그런 당파성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효성, ꡔ정치언론ꡕ, 이론과 실천,
1992, p.5~7.
이러한 언론의 본질적인 성격에 기초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언론개혁에 대해 살펴보겠다.
2. 언론사 ‘세무조사’로 나타난 지배세력의 이전투구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주장한 이후,
중앙언론사에 대한 국세청의 법인세 조사와 공정거래위의 조사가
시작됐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1994년 이후 7년만이다. 국세청은
2월 8일부터 실시된 23개 중앙 언론사 세무조사에
단일업종으로는 최대인 400명의 조사인력을 투입했다. 10개 중앙
일간지와 3개 방송사를 대상으로 한 공정거래위의 1차 조사는
3월말까지 계속된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략의 소산” 「언론사,
세무조사 도마 위에 오른 까닭은?」,
ꡔ주간한국ꡕ, 2001.2.13.
이고 “명백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언론 길들이기 목적”,
“재집권을 위한 언론 재갈 물리기”라며 강력히 비난하였다.
「때아닌 언론사 세무조사에 정치권, ‘재집권 위한 언론
재갈 물리기’」, ꡔ주간조선ꡕ,
2001.2.22.
특히 국민의 정권 초기에 문제가 됐던 ‘언론장악 문건’의
시나리오를 인용하며 공격을 강화하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이 ‘언론과의 전쟁’을 외치며 차기
대권주자로써의 정치적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으며,
「인터뷰, ‘언론발언’ 파장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 ꡔ뉴스피플ꡕ, 2001.3.1.
김영삼 전대통령이 재임시 언론사 세무조사 비화를 공개하면서
논란에 한몫을 하였다.
관심의 초점은 앞으로 세무조사의 사후처리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이다. 특히 정부가 세무조사 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초미의 관심사이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나온
언론사의 ‘약점’을 무기로 언론을 통제할 가능성을 제기하며
「언론개혁이 임자를 만났다」,
ꡔ한겨레21ꡕ, 2001.2.22.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향후 대선과정 등에서 언론의 중요성을
감안, 본인이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여야 “국정조사” 同床異夢」,
ꡔ뉴스피플ꡕ, 2001.3.1.
차기 대선을 향한 지배계급의 이전투구가 정권의 획득과 유지에
핵심 수단인 언론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3. 김대중 정권은 진정 언론개혁을 준비하고 있는가?
언론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 관계자는 “우리 부처 안에서
언론개혁 방안은 만든 적도 없고 청와대 등으로부터 우리한테
언론개혁에 대한 작업을 요청하거나 협의해온 적도 없다”고
하며, 청와대 한 관계자도 “언론개혁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는 여론 동향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언론권력이 임자를 만났다」,
ꡔ한겨레21ꡕ, 2001.2.22.
언론개혁시민연대는 국회 언론발전위원회(이하 언발위) 설치를
통한 언론시장 수술을 제기하고 있으나 국회 운영위 관계자는
“언발위 구성은 여야 총무단을 포함해 23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운영위에서 정치적으로 합의되어야 할 성질”이라며
“문화관광위에 자문을 구하고 있을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를 양당이
정치쟁점화하면서 언발위 구성은 요원하다. 언론시민단체는
언론개혁의 돛이 결국은 여론의 풍향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언론 자유문제가 걸려있는 만큼 정치권 쪽도 여론에
떠밀려서 하는 형식으로 언론개혁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언론개혁이 보이는가!」,
ꡔ한겨레21ꡕ, 2001.2.22.
현 정권이 진정한 언론개혁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여기서 주목해 볼 만한 것은 현 정권과
시민세력이 말하고 있는 ‘언론개혁의 향방은 여론이다’라는
점이다.
4. 여론은 조작된 권력 엘리트의 의견이다
오늘날 여론이라고 말해지는 것의 대부분은 여론으로 조작된
권력 엘리트의 의견이다. 이것은 관료조직과 매스 미디어를 통해
다수에게 전파되어 의견조사 등에 의해 다수의 의견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허위의식이지 진정한 여론은
아니다. 진정한 여론은 관심있는 사람들의 자유롭고 활발한
의견교환으로 추출된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합의이다. 이효성,
위의 책, p.114.
그러한 과정이 없이 일방적인 상층 지배계급의 이전투구를
의도된 이데올로기에 기초하여 선전하거나 간접적이고, 교묘하게
조작하고 있는 것이 이것이 현 사회의 여론의 본질이다. 더욱이
자유로운 주장이라는 것도 이미 지배계급의 조작된 의견에
기초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치권력은 일반적으로 관료조직, 법 집행기구, 의회 등과 같은
국가기구를 통해 유지된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기구의 직접적인
활용을 통한 권력유지는 비용이 많이 들고 저항이 크며
불안하기에, 다른 한편으로 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게
된다. 이효성, 위의 책, p.145.
지배권력은 자신의 정책의 정당성과 향후의 안정적인
권력유지를 위해서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의식을
은밀하게 조작하는 것이다. 더욱이 지배계급들은 정권 장악을
위해 대중적 동의라는 외피를 이용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 수단이 여론이다. 하기에 지배 세력이 추구하는
여론은 조작된 권력 엘리트들의 의견이며 그 여론내의 대립은
지배계급 내의 대립을 근간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배계급들은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언론자본과 결탁하거나 그들을 견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우리는 익히 우리의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5. 맺음말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가 없는 권력들은 이 동의를 공개적인
정당한 방법을 통해 얻을 수 없으므로 비밀스런 부당한 방법을
이용한다. 이 비밀스런 부당한 방법이 의식조작이며 이것은 주로
방송과 신문이라는 대중언론을 통해 수행된다. 의식조작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권력은 언론을 탄압하고 매수한다.
말하자면 언론은 탄압과 매수를 통해 권력의 도구로
이용된다.
이러한 권력획득의 핵심도구인 언론을 개혁한다는 것은
지배계급에 더욱 매끄럽게 봉사할 수 있도록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하기에 언론개혁이라는 말도 지배계급내의 각 당파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 더욱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언론개혁은
차기 권력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여론조작용
기제일 뿐이며, 언론의 상대적 자율성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은
어떤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배계급의 사상은 어느 시대에나 지배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적인 계급의 물질적 힘은 동시에 지배적인 계급의 정신적인
힘이다. 물질적 생산수단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소유한
계급은 이어서 정신적 생산수단도 소유하게 되고, 따라서 정신적
생산수단이 부족한 사람들의 사상은 전체적으로 그것을 소유한
계급에 예속된다. 지배사상은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의 관념적
표현 즉 관념으로 파악된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한 계급을 지배계급으로 만드는 관계의 관념, 즉
그 계급의 지배관념이다. 지배계급을 구성하는 개인들은
무엇보다 의식을 소유하고 있고 따라서 사유한다. 그러므로 그
한 계급으로서 지배하고 한 역사적 시기의 범위와 방향을
결정하는 한 그들이 그것의 전 영역에서 그러리라는 것은
자명하고, 따라서 무엇보다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즉 사상의
생산자로서도 다스리고, 그리고 그 시대의 사상의 생산과 배포를
규제한다. 그래서 그들의 사상은 그 시대 지배사상이다.”
(맑스와 엥겔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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