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돕기운동과 이문열
류 현 영/연구원
우리는 이문열씨가 동아일보 칼럼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에서 보여준 근거도 없이 입맛에 맞게 결론을 내리는
비이성적 행태와 한 네티즌의 책 반납 의사 표시에 대한 오만한
답변, 책값 환불 취소 발언에서 드러나는 졸렬함, 그리고 추미애
의원과의 논쟁에서 보이는 교묘함 뒤에 가려진 무책임성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나 그 날 우리는 이문열씨의 행태와 그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 세상에서 좀더 공적으로 논의되고 검증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미예, “우리는 왜 이문열 돕기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나”, 인터넷 사이트 대자보.
‘이문열 돕기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들은 왜 이문열을
‘돕겠다’고 나선 것일까? 이문열 돕기운동을 처음으로 제안한
화덕헌씨는 “한국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이문열씨가
무책임한 신문 칼럼과 저질스러운 소설로 역사 앞에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행위를 더 이상 볼 수 없으며, 이 운동을 통해
이문열씨에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여기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난
해 7월 조선일보에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된 칼럼 “신문 없는
정부 원하나”와 동아일보에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라는
칼럼을 실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문열을 독자로서 더 이상
그냥 보아 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즉 이 운동은 독자들이
스스로 작가를 직접 비판하며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 것이기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문열 돕기운동본부’가 선택한 구체적인 실천의 방식은 바로
‘이문열 책 반납운동’이었다. 이들은 언론사 세무조사를 놓고
이문열과 ‘곡학아세 논쟁’을 벌였던 추미애 의원의 사이트인
‘추미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추사모’에 ‘이문열
돕기운동본부’ 사이트를 개설하고 게시판과 인터넷을 통해 “그
동안 이문열씨가 발표한 책들을 보내달라”는 글을 띄워 책
확보에 나섰다. 이를 보고 전국 각지에서 이들에게 약 733권
정도의 책을 보내 주었다. 이들은 그 책을 가지고 지난 해 11월
3일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에 있는 부악문원을 찾아갔다.
부악문원은 이문열이 집필과 후학 양성을 위해 건립한 곳이다.
이곳에서 이들은 직접 이문열씨에게 책을 반납하려 하였으나
문원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가져온 책들을 고물상에 가져가
단돈 10원을 받고 팔겠다고 하였다.
이 행사가 있고 나서 이른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에서는 이들에게 엄청난 공격을 퍼부어댔다.
특히 조선일보가 선두에 있었는데, 조선일보는 11월 5일자 신문
문화면에 “국민작가의 책을 독극물이라니 …”라는 제목의 글을
거의 한 지면이 꽉 차게 다루었으며, 11월 6일에도 “이문열
책의 ‘장례식’”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엊그제 작가
이문열씨의 경기도 이천 집 어귀에서 벌어진 ‘이문열 책 반환
장례식’은 작가의 책을 장례 치렀다기보다 우리 문단과 문인
전체의 붓과 펜을 장례 치른, 우리 문단의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이 행사를 왜곡하였다. 고태진,
“조선일보는 이문열의 홍위병인가?”, 오마이뉴스,
2001.11.6.
이문열과 조선일보와의 유착 관계야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문열씨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이전에도 이문열씨는
자신의 홍위병 발언에 분노를 느낀 한 시민이 책을 돌려줄
주소를 알려달라는 글을 이문열씨의 홈페이지에 올리자 “책값은
현행법상 최고이율을 붙여 반환하겠습니다. 아울러 부탁하는
바는 어디 가서 내 책을 읽었다고 하지 마십시오. 내가 직접
사람을 골라 가며 팔지 못하다보니 고객을 잘못 고른 것
같습니다”라는 답변을 하여 네티즌들의 항의가 빗발친 적이
있었다. 그는 ‘책 반납운동’에 대해서도 이와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여주었다. “책 반환운동이 표현방식과 의사소통상에
문제가 있고 악질적”이라고 하며 “현재 해야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앞으로 적어도 100일이 지난 후에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생각해보고 대응할 것” 최승현, “이문열씨, ‘100일 후 책
반환 논쟁에 대응’”, ꡔ조선일보ꡕ,
2001.11.7.
이라고 한 케이블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말했다고 한다. 이문열
돕기운동본부가 이문열씨에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겠다’라고 했던 의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들은 제2차 이문열 돕기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이문열씨가 “사태의 추이를 보아가며 100일 후
대응하겠다”고 말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씨의 발언에 격분한 한 네티즌이 인터넷 게시판에 “100일
뒤에 봅시다”며 이문열 책 반납운동의 재개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고, 이에 인물과 사상, 안티조선 우리모두, 대자보 등에서
다수의 네티즌들이 동조, 호응하면서 11월 9일 제2차 이문열
돕기운동이 물총닷컴을 중심으로 정식 출범하게 된 것이다.
문성, “이문열 책 반환운동, 3․1절에 마무리행사”,
오마이뉴스, 2001.2.28.
이들은 지난 3월 1일 옥천에서 이문열 책 풍장식을 가졌다.
이곳에서 날려보낸 이문열의 책 또한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이번에는 약 1,200여권의 책이
모였다고 한다. 이날 풍장식은 옥천 주민들로 구성된 풍물패의
길놀이와 무형문화재 처용무 이수자인 김용목(40)씨의
퍼포먼스로 이어졌고, 참석자들은 조선일보를 태워 이씨의
책표지들로 덮인 하얀 천에 불을 놓았다. 불길 속에서 금빛
철제로 만든 길이 6m의, 이씨의 소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
‘금시조’가 등장하는데, 이 새는 오른쪽 날개밖에 없는 불구의
새였다. 고명섭 기자, “‘제2차 이문열 돕기운동본부’가
마련한 소설가 이문열씨의 책 풍장식이 열려”,
ꡔ한겨레ꡕ, 2002.3.2.
이들이 ‘금시조’를 소재로 한 이유는 “금시조를 다시
읽어보면 문학적이든 사상적이든 한쪽 날개로만 난 새라고
생각되어, 금시조를 통해 거꾸로 ‘위대한 작가’라는
이문열씨의 추락의 원인을 조명해 보고자 한 것” 문성, 앞의
기사.
이라고 한다.
이문열씨는 이 행사가 있기 전, 이 행사에 대해 “현재 지나간
일은 더 문제삼지 않겠지만 그들이 지속적이고 반성 없는
범죄행위를 계속한다면 시효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때를 보아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성, 앞의
기사.
이문열이 보기에 이들의 행동은 ‘범죄행위’인 것이다. 여전히
이문열 자신은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니, 이들의
이문열 돕기는 계속될 것이라 한다.
이문열 돕기운동본부가 그토록 돕고자 하는 이문열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강준만은 이문열을 “문화특권을 이용하여 지식
폭력을 행사하는 정치적 문화권력” 강준만, ꡔ이문열과
김용옥 1ꡕ, 인물과 사상사, 2001.
이라고 정리한다. 이문열은 끊임없이 신문 지면을 통해 ‘언어
폭력’을 일삼아 왔다. 지난 해 가장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칼럼
“신문 없는 정부를 원하나”,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나
추미애와의 ‘곡학아세’ 논쟁이 그 시작은 아니었다. 그는
이전부터 꾸준히 주요한 시기 때마다 보수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치며 언어 폭력을 휘둘렀다. 그가 신문 지면을 이렇듯
자유롭게 이용하여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비중 있는 소설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강준만은 이문열이
‘조중동과의 유착을 매우 적극적으로 택한 지식인’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른 지식인들이 조중동의 입맛에 맞게 칼럼을 쓰려고 애쓰는
소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반면, 이문열은 자신이 조중동까지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사명감의 발휘는 이문열이 건재하다는 것을 그의 독자들에게
상기시키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므로 이문열은 일석이조인
셈이다. 그래서 그가 쓰는 칼럼은 대부분 ‘이데올로기 공세’
아니면 ‘정치 공세’용으로 일부러 논란을 만들어낸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강준만, 앞의 책.
이문열과 보수언론(특히 조선일보)은 서로 공생관계에 있는
것이다. 서로 성향도 비슷하기 때문에 형성된 관계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면에는 ‘문언유착의 역사’가 숨어있기도 하다.
일제시대 신문 지면은 작가들이 문학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가장 용이한 매체였다. 작가들은 신문에 소설을 써야만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으며, 이러한 흐름은 작가의 글쓰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문언유착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가장 잘
악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문열일 것이다. 비단 이문열뿐만
아니라 ‘일군의 문인들이 조선일보의 여론조작의 대리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명원, 「언론권력의 ‘용병’이 된
문인들의 위악: 악어와 악어새의 추악한 권력계약」,
ꡔ말ꡕ 2001년 8월호.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서 있는 자가 이문열이기도
하다. 이문열은 보수 언론, 수구 세력의 편에서 ‘이데올로기
공세’ 혹은 ‘정치 공세’를 마구 퍼부어대고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문인이라는 위치로 숨어버린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를 황석영씨는 ‘언론권력과 문학권력이 적극적으로 결합한
현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것을 내 나름대로 풀이하자면
조선일보를 포함한 냉전수구세력들은 일군의 문인들의 발언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이념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일군의 문인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신들의 문화적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계약관계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조선일보의 물량주의에 기반한 ‘영향력’이 한몫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이문열이라는 당대 최고의 ‘문화 권력’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이는 단면이
아닌 전면일 수도 있다. 이문열이라는 스펙트럼을 통해 보여진
문학과 언론의 패악적(悖惡的) 유착관계의 본질에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전략적 논쟁 메이커 이문열의 ‘문화특권’ 남용이
‘이문열 돕기운동’이라는 평범한 독자들의 운동을 불러
일으켰다면, 이들의 활동을 통해 우리는 이문열을 지탱해주고
있는 ‘언론과 문학의 권력 카르텔’ 이명원, 앞의 글.
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인들
스스로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독자들이 직접 작가를 비판하며
일종의 ‘문학 리콜’을 선언하고 나온 일련의 과정을 보면,
이문열에 대한 항의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진보진영의 문인단체마저도 침묵해 버리는 이러한 상황이 시인
노혜경의 말마따나 ‘이문열 돕기운동이 장차 한국문학인
돕기운동으로 발전’ 노혜경, “문학 리콜과 이문열의 착각”,
ꡔ한겨레ꡕ, 2001.10.26.
할 가능성을 만들지 않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그 책임을 어찌 다
감당하려 하는 것일까.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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