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개가 되어
이영민/ 철도 노동자
선배
선배가 한분 계신다. 그 선배께서 전화를 하셨다. 눈이 탈이
나서 신문이나 잡지를 볼 수 없다고 하신다. 수술을 하셔야
하는데 병원에서 자꾸 미룬다고 한다. 수술해봐야 성공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거, 요즘 어떻게 돌아가는 거요?” “별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민노총은 어떻게 되는 거요?”
“민주노총 일은 잘 모릅니다.” “허, 잘 모른다니. 거, 그쪽에
심어놓은 사람이 누구 없다는 말이요?” “....” 언제나 이런
식이다. 선배께서는 내가 무지하게 대단한 인물로 알고 계신다.
민주노총에 사람을 심기는커녕 내 한 몸 주체 못하는 작자를...
사람을 심는 것도 싫어할 뿐만 아니라 패를 짓는 일을
체질적으로 할 수 없는, 말하자면 한 마리 고립된 늑대 같은
인간이 아닌가. “내가 한번 올라가 봐야 할낀데.” “아이구,
건강하셔야죠.” “건강은 뭘, 이제 다 살았는데.” 선배께서
올라 오시는 게 늘 겁이 난다. 벌써 이년이 넘었다. 홀연히
올라오셔서 몇 만 원쯤 주고 가신 일도 있다. “거, 동지들하고
식사나 한끼 하시오.” “아이구, 저희들 이제는 돈이 궁하지
않습니다. 노동조합도 민주화되고 해서요.” 대놓고 먹는
식당에서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려고 하면 절대로 용납을 하지
않는다. 그런 식이면 부담스러워서 다시는 올라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으신다.
선배를 처음 만난 지 벌써 5년이 넘은 것 같다. 연구소에서 처음
뵙고 어찌어찌 하다가 뵙게 되었다. 전평 때 이십 세가 채 안된
나이로 대구지역의 철도파업 책임자로 일했다. 파업이 깨지고
검거선풍이 불어 닥칠 때 몸을 피했으니 해고자라 할 수 없다.
6.25때 간신히 목숨을 건졌고 대신 선친을 잃게 되었다.
운동은커녕 한목숨 부지하기도 힘든 세월을 견디셨다. 그러다가
쇠약해 질대로 쇠약해질 무렵에 후배들을 만나셨다. 선배가
생각하는 정세는 1946년도, 기백은 이십 세 청년시절 그대로,
그러니 만나기만 하면 혼나는 게 일이다. “하, 동지라면 할 수
있는 일인데....” “아니, 전에 그렇게 일러두었는데 아직도 못
알아들었다니, 이거 참.” 듣다가 못해 반항한 일도 있다.
“선배님, 그게 아니라니까요. 지금은 대중운동이 왕이라구요.
대중운동에서 큰 위원장들이 저 잘난 줄 알지, 절대로 활동가들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구요. 당이고 활동가 조직이고(선배는
활동가 조직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혁명가면 혁명가지
무슨 활동가란 말인가?) 싹 무시한다구요.”
선배는 또 학습을 강조하신다. “동지, 교육을 받지 못한 대중은
말이요, 그냥 막대기라고 생각하시오.” 말하자면 교육을
강조하시는 것이고 후진대중에 영합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피곤해서 눈을 껌벅거리고 있으면 대뜸 불호령이다. “동지,
어디 아픈데 있소?” “아니요, 요즘 좀 피곤해서...?” “동지,
자기 몸도 건사하지 못하는 건 혁명가가 아니오.(저는 원래
혁명가가 아닌데요. 이랬다가 당장 불벼락을 맞을 것이다.)
혁명가는 길바닥에서 쓰러져 죽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소.
그리고 제때 못 먹고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작자한테
일본말로 이렇게 이야기한다오.(불행히도 일본말은 잊어
먹었다.) 나가 뒈져라.” 이러니 선배가 올라오신다는 전화만
오면 나는 늘 전전긍긍이다. 아이구, 또 한 서너 시간은
죽었구나. 그냥 나죽었다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상수구나. 그런데
벌써 이년이 넘게 꼼짝을 못하시는 것이다. 올라간다. 올라간다.
전화로만 말씀하신 게 벌써 열 번은 넘는 것 같다. 끊을 때는 늘
“미안합니다.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이렇게 자책을
하신다. 그러면 나는 “아이구, 이 무심한 놈아, 전화라도 한통
드리지 않구.” 잠깐 후회를 할 뿐이다.
전에 선배께서 계시는 대구로 한번 찾아뵌 적이 있다. 그때
선배는 따님을 불러(나하고 동갑이었는데 무지하게 억세다는
인상을 받았다. 성질 시원시원하고 화통하고 동갑네인데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러면 뭘 하나.) 차에 태운 다음, 으리으리한
음식점에서 과분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때 기억만 하면
양심에 찔린다. 이런 인간을 후배라고 찾아오시고, 전화를
하시고.
하여간 우리 선배는 자존심 하나는 끝내 주신다. 내가 아무리
궁해도 후배에게 밥은 얻어먹지 않는다.(선배는 정말
가난하신데) 나는 언제나 후배는 야단치겠다.(솔직히 야단맞을
때마다 억울한 생각이 든다.) 선배는 칠십이 훨씬 넘었지만
하여간 운동을 하고 계신다.(니놈이 나한테 덤빌려면 그때까지
한다고 해 봐!)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어도. 심지어 믿는다고
하는 후배 놈까지 “선배님, 지금은 이천년대라구요, 선배께서
힘쓰던 1945년이나 1946년이 아니라구요.”하고 항변할지라도
말이다. 선배님은 하여간 기백하나는 아직도 이십대 청춘에
머물러 있다. 선배님은 하여간 스스로 생각하시는 원칙에 늘
충실하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선배님이 부럽다.
또 한분의 선배
또 한분의 선배를 알게 되었다. 이분은 무지하게 겸손하시다.
막내 아들 같은 나를 보고 언제나 “의장님, 제가....” 이런
식이다. 연세는 두 분이 비슷비슷, 언젠가 두 분이 만난 일도
있다. “그렇군요, 그 때....” “그렇죠, 그때는 조직이 완전히
무너져서...” 철도노조가 민주화되었을 때 선배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야, 이거 내가 오늘까지 산 보람이 있구나,
이런 날을 보려고 내가 이날까지 견디었구나.” 해서 감개가
무량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후배라는 작자들은 쓸 만한 인간들이 한 놈도 없는 것
같다. 제대로 기억하는 인간이 있기를 하나. 아니면 가끔가다
안부전화를 하기라도 하나. 내 나이 칠십이 되어 이런 선배들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갔으면 정말 좋겠다.
후배
요즘 후배들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간부들이 차례로
쓰러지고 있다. 싸운 지 벌써 한 달, 피로에 쓰러질 때가
되었다. “자도자도 안풀리네. 이틀간 쉰다고 쉬어도 피로가 안
풀려.” “5일 동안 쉬어도 안풀리는데 고작 이틀 동안 쉬었다고
풀려?” 때로는 열 명이서, 때로는 세 명이서, 어느 날은 한명이
근근이 버티고 있다. 안타깝다. 피로와 스트레스와 두려움에
지치며 나가고 있는 후배들을 보면 선배의 무력감을 절실히
느낀다. 일정은 자꾸 미뤄지고, 오늘 할 일을 또다시 뒤로 늦춰
초조하기만 한데 차를 탈 시간이 되어 출근을 해야만 한다. 한
달 넘게 싸우고 있는 KTX 여승무원 후배들이다.
정세
정세가 드럽다 보니 싸우는 사람들이 고생이다. 정작 힘을 쓸
조직이나 인간들은 현실과 더러운 타협을 한다.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온갖 적들에 둘러싸여 포위되어 있는 사람들은
몸부림치다 지쳐간다. 이런 정세를 만들어낸 인간들은 자신들
때문에 고생을 하는 투사들을 한번쯤이라도 생각해보는
것일까?
개가 되어
왕의 개가 된 자들이 있었다. 이런 자들 때문에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죽어갔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자본의 개가 된 자들이
있었다. 이런 자들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더 불행한 일은 자신도 노동자이면서 스스로 자본의 개가
된 것을 모르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도 이런 한심한
작자들이 널려 있다.
어떤 정치인
박통을 흉내 낸 정치인이 있었다. 그 한심한 작자는 머리모양도
박통 모양으로, 옷은 군복 모양으로 차려입어 코미디 프로에
등장한 일도 있다. DJ를 흉내 낸 노동운동가도 있다고 한다. 그
작자는 비리사건으로 물러나게 되었는데 “나는 차기 선거에
불출마하겠다.” 고 선언하여 빈축을 샀다고 한다. DJ가 정계
은퇴할 때는 그래도 수백만의 민중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더 한심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기자회견을 봉쇄당한 그
사람이 택시 안에서 손을 흔들며 비장한 모습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동료 간부들을 더 슬프게 하는 웃기지도 않는
희극이다.
하이에나
제도언론이 신이 났다. 사실상 사주가 수배가 되어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는 3대 일간지조차 마음 놓고 노동조합을 두들기고
있다. 제도언론은 원래 하이에나 속성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면
운동권 언론은 어떠한가. 그냥 말을 하지 말고 내 할 일이나
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겁
어떤 인간이 있었다. 줄타기의 명수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어 지지엄호를 부탁했더니 “본인들도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데 뭘.” 하고 뺀질거린다. 바로 그 현장 앞에서 집회를
하고 선전전을 하고, 함께 차를 타는 사람들이 누구나 싸우게
되었다. 이 인간이 “아니, 정규직하고 비정규직 임금을 이런
식으로 선전하다니, 그냥 두지 않겠다.”고 떠들었다 한다.
나한테 와서 따지겠다고 별렀다고도 한다. 이놈 봐라. 이게 정말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내 앞에서 그따위 소리를
하면 “야, 이 개 같은 X아, 인간쓰레기 같은 X아. 야, 이 씨X
놈아”하고 욕을 해주던지, 콧등을 한방 갈기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랬더니 이 인간이 꼬랑지를 싹 말아버렸다. 이런
X들은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이런 인간들 때문에 명대로
못 살 것만 같다.
실천과 이상의 차이
한다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비정규직 운동을 말하고 있다.
제도언론조차 비정규직 문제를 계속 떠들고 있다. 이쯤이라면
비정규직 투쟁이 들불처럼 일어나야 했다. 막상 비정규직 투쟁에
선전전을 하자고 했더니 “바빠서...” “다른 일정이
있어서....” 2만 5천 조합원 가운데 다섯 명도 찾을 수 없다.
에라, 이런 순….
합리화
인간은, 된 사람을 빼놓고는 누구나 자기 합리화를 할 줄 아는
것 같다. 뭐 그래봐야 저 한사람 망치고, 고작해야 가족이나
친구 몇 명을 망치면 그만이다. 조직은 훨씬 더 체계적으로
합리화를 한다. 즉 논리적으로, 정교하게, 이론을 세워
합리화하는 것이다. 거기에 조직의 자기 증식논리(조직은 자기
증식을 하지 못하면 소멸의 길을 간다고 한다.)까지 더하게 되면
자본의 논리와 별 다를 것이 없게 된다.
그 어떤 조직들은 자기 합리화를 최대한 막아내기 위해 계속
자기를 부정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조직들은 자기
증식논리에 따라 합리화를 하면서 스스로를 방어한다. 그 조직에
속한 개인들이 불쌍하다.
흐르는 물처럼
흐르는 물처럼 살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도 없이, 집착도 없이
그냥 흘러가고 싶은 곳으로 천천히, 때로는 격류처럼
호호탕탕하게 쓸려 가면 얼마나 좋을까. 고여서 썩고, 욕심으로
스스로를 망치고, 그릇에 갇혀 스스로를 틀 지우지 않는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살다 가면 정말 좋겠다. 오늘 매일노동뉴스에서
매수당했다가 잡혀간 사람하고, 한국노총에서 상근하다가
해고되어 자살한 어떤 불쌍한 사람을 보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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