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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바뀐다.
 제2기 운수노동자학교

현장에서 미래를  제28호
이가정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바뀐다
- 제2기 운수노동자학교 -
참관기 1


이가정 / 교육기획실 연구원





11월 1일, 꼬불꼬불 속리산 자락을 넘어 서당골에 도착한 시간은 운수노동자학교 입교식을 2시간 남짓 남긴 시간이었다. 서당골 마당에는 영남권에서, 호남권에서, 수도권에서 차를 대절하여 미리 도착한 운수노동자들이 평소 그들의 작업장인 진한 매연으로 가득찬 도로와 지하공간 속에서의 모처럼의 ‘해방’을 기념이라도 하듯 삼삼오오 모여 사진도 찍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각 조직의 교육담당자들로 구성되어 이번 교육을 기획하고 준비해 온 진행팀들만이 무전기를 들고 이리저리 각 조직의 접수현황을 점검하고 교육 시작을 위한 마무리 준비에 분주하다.


운수노동자학교 개설의 배경

운수노동자학교는 올해로 2기를 맞이한다. 운수노동자학교는 95년 11월, 당시의 전지협이 주관이 되어 8강좌를 8주(다양한 근무조건을 감안하여 1주 2회 반복 교육)에 걸쳐 진행하는 것으로 그 1기를 시작하였다. 당시의 조건에서는 전지협을 제외한 버스나 택시, 화물운송, 항공 등의 경우가 아직 조직적으로 노동조합이나 연맹을 세워내지 못한 준비위나 노민추 형식의 준비단계에 있었고, 운수노동자학교는 막연하게 ‘운수산별노조 건설’이라는 전망을 가지고 운수노동자 모두를 대상으로 열어놓고 시작한 것이다.
그에 앞서 운수노동자학교의 뿌리를 쫓아가 보면, 거기에는 94년 당시 궤도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이었던 철도,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공동투쟁은 외형적으로 100여명이 넘는 지도부의 구속과 해고, 2,000여명에 달하는 전출 및 부당징계 등으로 이어져 이후 현장 활동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왔지만, 이를 극복하고 이제 그 결실이 운수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로 새롭게 맺어진 것이다. 당시 철도, 지하철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전국의 열차를 모두 정지시키고, 출퇴근 “시민의 발을 묶어” 버리기에 충분하였다. 언론에서는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한 노동자들의 ‘집단이기주의’를 비난하고, 노동자들을 ‘국가경제를 위기’로 몰아넣는 전복세력으로 매도하기에 급급했다.
한편에서의 정부와 자본의 강경한 대응은 궤도 노동자들의 힘찬 투쟁을 교란시키는 요인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에서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을 실어 나르고, 철도를 대신하여 물류수송을 위해 ‘동원된’ 택시와 버스, 화물 노동자들은 마음속으로의 지지와는 별개로 이들의 투쟁을 무기력하게 하는 또다른 한 면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운수노동자들의 만남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보다 통큰 단결을 희망하면서 출발하였고, 현재 운수산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가운데 이번 제 2기 운수노동자학교는 1기를 진행할 당시와 비교하여, 항공과 철도를 제외한 각 조직이 연맹이나 단일노조 출범 등 조직적 진전을 이루어냈고, 그렇게 건설한 운수산별 추진위 주관의 학교로 발전하였다. 2기 운수노동자학교는 이러한 조건에서 운수노동자들의 이론적 기초를 다지는 학습의 장임과 동시에, 운수노동자들의 연대의 장, 운수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등 비대해진 노동조합운동의 현실적 과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결의의 장으로서 자리매김되어 있다. 4개 연맹 ―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 전국민주택시노조연맹, 전국민주철도지하철노조연맹, 전국화물운송노조연맹 ― 으로 구성된 운수산별추진위 주관으로 이루어진 이번 교육에는 각 연맹의 간부, 조합원 등 200여명이 참여하였다.
운수노동자학교의 3일간의 교육과정

2박 3일간의 교육과정은 매우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8개의 강의와 발제, 사례교육, 분반토론 등으로 짜여진 교육과정은 정말 “숨막힐 지경”이었다. 강의실 벽면 가득히 각 연맹과 지부들의 깃발, 구호를 담은 플랭카드들이 걸려지고 상기된 표정으로 교육생들이 자리하였다.
첫째 날, 예정된 오후 3시를 조금 넘겨 전국에서 달려와 짐도 풀지 못한 채, 숨돌릴 틈도 없이 진행된 입학식 이후, 민주택시연맹 교육부장의 진행으로,
○ 철학 : 노동자의 올바른 사상과 실천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
○ 경제 : 자본주의와 노동자 (채만수/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 정치 :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위하여 (오세철/정치연대공동대표)
3개의 강의가 이어지고, 권영길 대선후보와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12월 18일, 권영길에 대한 표는 파업 찬반투표의 의미”임을 강조하고, 힘찬 대선투쟁의 결의를 당부하는 간단한 발제 이후, 교육생들의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는데, 현장활동가들의 진한 고민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현장활동가들은 “우리는 국민후보 내지는 권영길 개인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후보로서 권영길을 지지”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노동현장의 아래로부터의 조직과 연대를 공고히 해나갈 것을 역으로 당부하였다.
각 방으로 돌아가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대선투쟁의 의미’라는 주제의 분반토론을 통해 서로간의 차이점과 동일성을 확인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구체적인 현장활동에서의 경험을 근거로 논의하고, 실천 과제를 정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하여 첫날의 피곤한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둘째 날, 정확하게 새벽 7시, 진행자들이 각방을 두드리며 아직 잠이 덜 깬 교육생들을 깨워 운동장에 모였다. 구호와 노래소리가 서당골 골짜기를 울리면서 둘째 날의 교육일정이 시작되었다.
이날은 민주버스노동조합 조직부장의 사회로,
○ 자본과 노동 : 자본의 총공세와 노동운동의 대응(김진순/민주노총)
○ 일본노동운동 : 일본노동운동의 위기, 무엇을 교훈으로 삼을 것인가 (JREU 부위원장)
오전의 강의가 진행되었고, 이 운수노동자학교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일본 JR(Japan Rail) 東노조에 대한 교육생들의 관심이 높다. 일본 국철 민영화과정에서 노동조합의 대응과 관련한 원칙적인 문제제기와 비판, 시간단축투쟁의 전개과정, 승무원의 다이아와 검수원들의 교번 문제 등에 대한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공세의 대표주자인 일본의 나까소네 정권의 정책과 그 공격의 1차적 대상이었던 일본국철의 민영화 공세와 그에 대한 노동조합운동의 대응 사례가, 현재 그 물결에 편승하여 노동법 개악과 현장에서의 신경영전략 등 자본의 공세가 총체적으로 들어오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주는 시사점은 매우 큰 것이었다. 결국 못다한 이야기를 오후 등반대회 시간에 소규모 토론을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마무리하였다.
시간에 밀려 순식간에 점심식사를 하고 담배 하나 피우고, 커피 한잔 마시고, 다시 강의실로 모여 오후 일정이 시작되었다. 강의실 맨 앞 양편으로 대문짝 만하게 붙어있는 “강의 10분전 입실”, “지각은 죽음이다”는 구호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인지, 교육생들은 매우 규율 있게 움직인다.
○ 산별노조 1 : 독일의 산별노조 (강수돌/고려대, 노기연)
○ 역사 : 근현대 민중운동사와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박준성/역사학연구소)
민영화, 탈규제화, 개방화, 합리화의 양상으로 표현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격에 맞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최근의 노동운동이 안고 있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노동자의 힘과 파괴력이 필요하다. 산별노조 건설의 필요성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조직 변화의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부단한 싸움의 과정 속에서 좌절과 성공의 교차를 경험하면서, 그 속에서 또 다른 차원의 싸움과 조직의 과정을 배우고, 그 결과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게 된다”는 사실을 서구의 산별노조건설운동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자유와 평등이 확대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향한 과정, ‘파괴’와 ‘창조’, 투쟁과 노동이 서로 맞물려 가면서 변화․발전해 온 역사발전의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미래를 열기 위한 힘은 현재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 속에 내재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원칙과 방향을 확인하였고, 이제 구체적인 현장에서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 산별노조 2 : 한국노동운동과 산별노조 (김석준/부산대, 영남노동운동연구소)
○ [발제] 운수산별 : 운수산별건설의 전망과 과제 (김종인/화물운송연맹)
노동자들의 현실의 삶이 치열하고, 특히 참여한 교육생들이 누구보다 앞서 현실의 변화를 주동시켜야 하는 현장의 주체들인 만큼 현실의 과제를 주제로 하는 교육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87년 이후 성장한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현재적 수준과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현단계 ― 막연한 당위성을 넘어서서 구체적인 현실적 과제로서 산별노조 건설의 상을 그려내야 한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경험과 주체와 조건 등의 많은 한계와 자기 노동조합 중심주의를 대중적 결의로서 극복해 내고, 공동사업과 공동투쟁을 통한 산별노조 건설! 운수산별 건설은 바로 그 자리에 있는 교육생들의 온전한 몫으로 남겨진 과제이다.


운수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을 위하여

딱딱한 강의실 의자에서 ‘탈출’하여 운동장에서 캠프파이어 등 운수노동자의 단결의 밤 시간이 되었다. 교육생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단결과 결의의 시간이다. 물론 이 시간은 단순히 먹고 노는 자리가 아니라, 교육의 연장으로 교육생과 학교측, 각 조직의 임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인간적 만남이 이루어지는 자리이다. ‘운․수․산․별․건․설’이라는 구호가 활활 타오르고, 택시노동자의 낭독으로 「운수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위한 특별결의문」이 읽혀지는 동안, 교육생들은 다소 상기되는 듯 하다.
“자본의 이윤과 착취의 효율성을 위해서만 굴러가던 교육 물류의 네 바퀴가 운수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으로 멈춰서면 그 때부터 새로운 노동자 중심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 돌이켜 보면 우리들은 다른 업종의 운수동지들이 투쟁할 때 함께 싸울 수 없는 답답한 조건 속에서 발을 구르고 가슴을 친 적인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용노조의 반노동성, 기업별노조의 한계에 갇혀 각자 따로 투쟁해 오면서도 함께 공감했던 이야기가 있다. 전국의 바퀴를 모두 함께 세워보자! 그렇다! 바로 이 소망을 이루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함께 했다”

막걸리와 간단한 안주를 앞에 두고 현장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다른 사업장 현황에 대한 소개와 교육시간동안 못 다한 문제제기와 토론들은 밤이 새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셋째 날, 하나의 강의와 졸업식만 마치면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제 밤새 마신 술과 수면부족, 앞서 이틀간의 긴장으로 교육생이고 진행팀이고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이탈자 없이 거의 모두가 강의실에 모였다. 화물운송노련 동지의 사회로 마지막 날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 현장활동론 : 현장활동, 어떻게 할 것인가 (이재인/현대자동차 민투위)
‘늘 처음처럼, 현장에서 미래를’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7대 위원장 선거투쟁에서 승리한 현대자동차 민투위의 87년 노동조합 결성 이후 전개해온 현장활동 사례는, 아직은 현장내에 ‘자본과 권력의 탄압에 맞선 대응’을 둘러싸고 활동가들간의 정치적 분화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운수 사업장의 활동가들에게 매우 진지하게 다가오는 듯 하다. 현대자동차 활동의 큰 추진력이자 동력이 되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목적의식적인 학습소모임 결성과 운영, 양봉수 열사 분신투쟁의 원인이 되었던 콘베이어 라인을 중심으로 한 현장 곳곳에서의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은 비단 현대자동차의 조건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후 ‘현장으로 돌아가 당장 무엇을 할 것인지, 실천계획을 세워보자’는 평가서의 내용에서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과 선전의 강화, 현장의 조직력 강화를 위한 소모임 조직화, 자본의 크고 작은 변화를 정확히 포착하여 일상적인 대응 투쟁의 조직 등 강의내용을 반영한 많은 계획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직활동에는 왕도가 없다. 각각의 처한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여 그 조건을 변화시켜낼 수 있는 방법, 그것이 가장 올바른 조직활동일 것이다.


이제 실천의 현장으로!

졸업식이 진행되었다. 학교장 인사말과 운수산별추진위 대표의 격려사, 각 조직별로 수료증이 수여되고, 진행팀들이 교육과정 내내 열심히 체크한 교육생들의 자세와 태도를 반영하여 우등상, 모범상, 조직상, 학교장상 등이 수여되었다. 기념촬영도 있었다. 이러한 의례적인 행사는 교육생들의 마음가짐을 정돈하는 것임과 동시에, 교육을 통해 묶여진 공동체의식을 확인하고, 교육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부여의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멈추어서 세상한번 바꿔봅시다!” 힘든 교육과정이었지만, 모두 마치고 실천의 현장으로 하산(?)하는 운수노동자들의 한결같은 결의 속에서 결코 어둡지 않은 운수노동자들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었다. 2박 3일간의 일정에서 정든 분반의 동지들과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만큼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곧 있을 전국노동자대회(식전행사로 운수노동자결의대회)에서의 만남을 기약하였다.


운수노동자학교의 의의

운수노동자학교는 구체적인 것에서부터 포괄적인 내용까지 매우 광범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운수노동자학교는 앞으로 매년 “상설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1) 과학적․체계적 교육을 통해 건강한 노동자의식을 갖는 산별노조 현장 간부 양성 2) 현장활동가 양성을 통해 운수노조의 민주화 및 산별 건설과 민주노총 강화의 조직적 토대 마련 3)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대응하여 노동운동의 장기적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정치세력화를 위한 활동가 양성” 등을 목표로 하고 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목표에 준거하여, 구체적인 교육 진행 과정에 대한 관찰, 교육생들의 평가서의 내용과 기획팀의 평가 내용 등을 바탕으로 운수노동자학교의 의의, 교육의 성과와 부분적인 한계를 짚어보고자 한다.

최근의 자본의 경영합리화운동은, 과거의 유연화전략 뿐 아니라, 문화적 통제기법을 동원하는 기업문화전략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합리화운동은 노동과정은 물론, 노동자들의 일상적 생활 영역까지를 포괄하여 노동자들에 대한 전인격적 관리의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하고 세련된 방식의 자본의 공격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의 고유한 문화적 지형을 형성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그 가운데 특히 노동자들의 계급적 정체성 형성을 위한 주요한 매개로서 노동자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막상 노동조합이나 교육단체 등의 교육담당자들은 최근 현실에서의 교육활동이 가진 어려움과 고충을 다양하게 토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안정적인 교육시간의 제한과 인력․재정의 한계 등 조건의 문제가 있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실제 교육을 받아야 할 노동자들이 교육에 대한 참여와 관심이 떨어져 “교육을 받지 않으려 한다”는 지적이다.


운수노동자학교의 성과

그렇다면, 근무조건의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4개 연맹의 노동조합 간부와 현장활동가 200여명이 참석한 이번 운수노동자학교의 동원력은 무엇일까? 왜 노동자들이 교육을 받지 않으려 하고, 현 시점에서 현장의 활동가들이 무엇을 가장 큰 질곡으로 느끼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함을 느낀다. 이번 학교에 참여한 교육생들은 한편에서는 최근 보다 확장된 노동운동 지형에서 요구되는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막중한 과제와 다른 한편에서는 좀더 미시적인 차원에서 현장 조직력 강화라는 이중적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그 양자의 불균형으로 인한 인식의 혼란, 실천적 매개를 발견해 내기 어려움 등이 그들이 처한 현실이고,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던 과제에 대한 구체성의 획득과 실천내용을 수립하고자 하는 기대가 바로 이번 운수노동자학교에 참여한 교육생들의 주된 개별적 동기가 될 것이다.

“그동안 막연하게 느끼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만, 남의 얘기로만 알았던 산별노조의 필연적 건설 목표와 산별노조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인지한 것이 이번 교육의 가장 뚜렷한 성과라 생각합니다”

“현장활동가로서 정말 머리가 아프고 골치 아팠다. 그러나 이번 교육을 받으면서 복잡하던 머리가 맑아지고 무언가 잡히는 듯 하다”

한편 운수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의미, 그 자체가 이번 교육에 참여를 촉발하는 매우 중요한 집단적 동기가 된다. 바퀴 달린 운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처음 마주 대하는 얼굴들이지만, 오랫동안 고대하던 만남이 이루어진 듯 상호간의 동질성을 확인하였고, 교통물류의 네 바퀴가 단결과 투쟁으로 멈춰서는 날에 대한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운수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물론 이제까지 오는 것이 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지만, 진작에 이런 자리가 만들어 졌어야 하고, 앞으로도 이런 교육이 자주 있었으면 합니다”

“운수산별노조를 건설한다는 것이 단순히 조직의 체계를 세우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단위의 주체를 강화하는 속에서, 그리고 투쟁을 통해서 건설한다는 원칙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두 명이 모여서 두 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열 명을 만드는 것…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한편 우리가 운수산별을 건설해 나가는 과정이 나의 조직을 아래로부터 강화시켜 가는 과정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진행될 운수노동자학교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점

노동자교육과 관련하여, 최근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하나의 양상이 교육방법론적 측면에서의 접근이다. 강의식 교육을 지양하고, 교육생들이 보다 자발적으로 교육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대화․토론식 교육 기법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고, 그러한 교육은 실제 많은 실험을 거쳐 효과를 산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운수노동자학교는 여전히 고전적인 방식으로 강의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졌다. 아직은 운수노동자학교 교육의 효과를 평가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교육방법의 새로운 방식의 시도라는 방법론적 접근보다는, 교육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이전 전사와 삶의 조건, 집단적 조건 등을 고려하고, 그것을 어떻게 교육 과정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적 관심이 우선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싶고 그러한 측면에서의 평가가 일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운수노동자학교는 그 형식이 강의식이냐, 참여식이냐의 문제를 떠나, 일반적으로 짜여진 내용속으로 교육생들을 동원해 내고자 하는 내용적 한계를 갖는다. 현장의 간부와 활동가들이 노동과정에서,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겪는 제반 경험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그에 근거한 정책개발의 내용을 수렴해 내는 교육 기획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교육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교육의 궁극적 목표인 노동자로서의 계급적 주체형성과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부딪히는 실천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매개로서의 교육, 즉 교육과 실천, 혹은 교육과 현실의 통합으로서의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교육생들을 주체적인 참여자로 조직해 내지 못한 이번 교육의 한계는 이후 운수노동자학교의 상설화 과정에서 극복되어야 할 과제가 아닌 듯 싶다. 교육생들의 평가내용에도 분반별 소규모 토론 등 교육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기제의 부족이 문제점으로 많이 지적되어 나왔다.

“토론시간이 너무 부족해 아쉬움이 있습니다. 주입식보다는 능동적, 자발적 참여를 만들어 내지 못한 점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실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권위적인 진행보다 자발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교육진행이 되었으면 합니다”


운수산별 건설․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경로와 함께 하는 운수노동자학교

1990년대 초부터 노동자교육은 ‘체계화, 전문화, 과학화’의 기치 아래 새로운 교육내용과 방법 등을 모색해 왔지만, 극히 제한적인 교육효과만을 거두고 있을 뿐 총체적인 자본의 공세에 맞선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자교육은 노동운동의 맥락 안에서, 노동운동의 한계와 가능성,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적 실천을 규정하는 조건과 형태, 그 효과에 의해 부단히 규정되는 동시에 영향을 주면서 발전해 왔다.
이번 운수노동자학교는 ‘이론적 학습’이라는 측면과 함께 운수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4개 연맹 간부들간의 교감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 교육에 임한 각 연맹 조직들 간의 조직적․실천적 차이, 교육생 각각의 인식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는 별도의 과제로 남겨두고라도, 이번 운수노동자학교는 그 자체로 이후의 많은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교육을 마친 교육생들은, “지금까지의 안일한 생각”을 깨고, “원칙을 다시 한번 각인하고, 당당하게” 이후 활동을 펴나가기 위한 지속적인 학습과 교육․훈련의 필요성, 조합원들에게 “단 1명이라도 좋으니, 배운 것을 알려” 내기 위한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활동의 필요성, 활동가로서 “현장을 책임지는 자세”와 “현장 소모임 조직” 등 활동가의 역량강화와 현장 조직화를 위한 활동방식 모색의 필요성 등과 함께 이후 새로운 조직 건설의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조직내부의 민주주의 원칙 등을 확인하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교육생들의 평가를 반영하여, 운수노동자학교 측은 이후 보다 치밀한 교육기획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이와는 별개로라도, 조합원의 상태와 요구를 반영하는 조합원 대상의 교육과정 및 운수노동자학교 수료자들에 대한 보다 전문화되고 구체적인 실천을 매개하는 교육과정 개발을 고민하여야 하고, 이러한 교육이 지속되고, 일상화되어 진행될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이러한 모색을 통해 당장의 조직화와 당면한 투쟁 중심으로 한정되어 진행되어 온 기존의 교육활동의 지평을 넓혀 내는 것이야말로, 조직과 투쟁을 올바르게 이끄는 방법이 될 것이다. 한/노/정/연

1997-12-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4&no=4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