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구조조정 및 민영화의 파도 속에서 |
현장에서 미래를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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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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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구조조정 및 민영화의 파도 속에서
최 석 현 /
한국고속철도노동조합 사무총장
1. 들어가는 말
지금 우리의 현실은 IMF관리체제 하에서 금융, 민간부문은
물론 공공부문에서조차 국제자본으로부터 구조조정의 가혹한
압력에 휩쓸려 있다. 그러나 정부나 언론에서 주장하는 그러한
구조조정이 과연 실행될 수 있을 것인지, 또한 IMF를 첨병으로
세운 국제자본의 구조조정 압력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냉정히 생각해 볼 시점이 아닌가 한다.
IMF의 구조조정 압력의 본질은 미국을 필두로 한 금융강국들이
자본이익의 극대화와 복합불황의 탈피를 위해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제국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반세기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분단체제 속에서 이에 편승한 독재정권과 자본의
억압과 착취에 고통받고 있는 이 땅의 민중들이 지금과
같은총체적 난국에서 과연 허리띠를 졸라매고, 실업대란을
감내하며, 고금리, 고물가 아래서 피땀 흘려 일한다고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진정 아니다!
거기에 더하여 정부와 언론은 낭비와 비효율을 걷어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공공부문도 구조조정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면서 '민영화'와 '통폐합'만이 그 해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인력감축을 주요 방편으로 하는 독점자본의 일방적인
경영합리화 및 구조조정으로 거리로 내몰린 실업자 무리에, 다시
공공부문 구조조정 및 민영화의 칼부림으로 목잘린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합류하게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2. 한국 경제의 현주소
1945년 일제 패망 후 남한에 진주한 미군정은 향후 냉전체제의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한반도의 분단을 계획하고, 그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남한의 친일파를 그 전위세력으로 활용하고자 당시
미군정에 귀속되어 있던 막대한 일제의 귀속재산을 이승만과
한민당 등 매판세력에게 헐값에 불하하였다. 그 결과 남한에서
집권한 이승만 세력과, 이후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
친위쿠데타 등을 통하여 장기 집권하던 박정희를 비롯하여,
12.12 군사쿠데타와 광주 민중의 억울한 피의 대가로 집권한
전두환, 노태우 및 3당 야합으로 집권한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남한의 정권들은 당초 미국의 의도대로 철저히
매판적이며 대미 예속적인 정권으로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봉사하였다.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정통성 없는
정권의 유지에 필요한 경제력 확보를 위해 재벌을 키워옴으로써
남한의 경제를 대외 종속적이며 자생력이 취약한 구조로 만들어
왔다. 그래서 남한의 경제는 미국, 일본 등 강대국 경기의
활황과 침체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여 왔다. 그로 인해 피땀 흘려
일해온 민중들의 성과물은 권력과 자본, 그리고 경제강국들에게
고스란히 빼앗기고 남은 것은 국가부도 위기라 하여
노동자․민중만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허리띠를
조르도록 강요당하는 비참한 현실뿐이게 되었다.
한국의 경제는 역대 정권의 대외 지향적이며 재벌위주
경제정책의 결과 급속한 발전을 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경제정책 하에서의 발전이란 내실 없는 외형성장 뿐이었다.
90년대 들어 경제강국들은 개도국을 영원히 자신들에게
종속시키고자 우루과이라운드, 그린라운드 등 다자간협정을
체결하고, 거기에 더하여 국제적으로 강대국 위주의 경쟁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WTO 체제까지 출범시켰다. 이렇게 본격화 된
개방의 물결 앞에 한국경제는 알몸으로 마주쳐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고, 이러한 국제적 조건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산업의
재편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정권의 보호 아래 아무런
경쟁력도 키워온 적이없던 재벌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60~70년대의 산업화 과정에서 이미 그 기반을 붕괴시켰던
농업경제의 소멸을 강요하는 정책을 시도하였고, 사실상
농촌사회를 완전히 해체시켰다. 또한 규제완화라는 미명하에
금리자유화정책을 필두로 종금사 무더기 인허가, 주식시장
육성정책을 펼쳐 통화량의 폭발적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천문학적 외채증가를 가져왔다. 게다가 독점재벌의 전횡과
과잉중복투자를 방기함은 물론, 거기에 기생하여 부패와 비리를
수단으로 정권유지에만 급급함으로써 현재의 경제위기상황을
초래한 채, 그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 농민과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 전가되는 현실에 이른 것이다. 돌이켜 보면
IMF관리체제에 들어오기 전에도 이미 한편으로는 총체적 위기
운운하며 "향후 5년간 노동자들의 임금동결"을 부르짖는
독점재벌과, 한편으로는OECD 가입을 무슨 선진국으로 이르는
보증수표인 양 흔들고 으스대며 노동법 개악을 통해 노동자들의
목을 조르는 정권이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노동생산성을 앞지르는 임금의 상승이 천지개벽이래 몇
번이나 있었다고 정권과 재벌은 입만 열면 고임금, 저효율
구조가 국제경쟁력 약화의 원인이라고 떠드는 것인가. 현재의
한국경제가 있기까지는 노동자들의 생존비용에도 못미치는
극심한 저임금과, 뿌리 뽑힌 농민들의 한숨과 피눈물이 있었다.
우리 노동자들을 언제까지 미래의 환상을 대가로 부려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들의 머리통이라도 때려 부숴 조사 좀 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대외 가격경쟁력에서 한계에
달한 한국 경제가 그나마 90년대의 내수경기를 바탕으로 성장해
온 것은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상승한 노동자 임금의
대가라는 것을 저들은 알아야 한다. 그런데 IMF관리체제 이후
노동자들의 대량실업과 임금동결 및 삭감으로 극심한 내수
침체를 겪어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저들은 다시 한번 언론
매체를 통하여 "건전한 소비"를 떠들고 있다.
김대중 정권은 구조조정의 결과로 발생한 실업자의 구제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힘없는 공무원의 임금을 일방적으로 삭감하여
재원을 조달하기로 이미 결정하고, 예산청의 '98 임금삭감
처리지침'을 통해 정부투자기관, 출연기관, 자기관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삭감을 획책하고 있다. 이는 대선을
전후하여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선전하던 김대중 정권이
'노사정협의안'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음은 물론, 헌법과
노동관계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단체협약 체결권'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볼 때, 현 정권의 실체와
향후 나아갈 방향이 한눈에 보이는 듯 하다.
3. 공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 논의에 대하여
해방 이후 한국의 공공부문은 민간부문의 대다수가 공정한
경쟁에 입각한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체
국민의 복지증진을 위한 기능을 일정 부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역대 정권은 공공부문을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인사 배출구와
정치자금의 조달창구로 이용하는 등 정치적 이해관계의 해소를
위해 활용해 왔다. 그 결과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표면적으로
돌출되는 부정적 요인, 즉 관치경영(비전문적인 경영진의 배치와
낙하산 인사, 형식적이고 비과학적인 예산편성과 경영평가)과
독점적 지위에 따른 공정경쟁의 저해, 행정규제를 기초로 한
민간에 대한 불필요한 개입, 중복투자 등으로 공기업 고유의
운영원리가 원칙적으로 지켜지지 않는 한계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래서 정권교체기 또는 격변기에는 예외 없이
공공부문의 대폭 정리 혹은 통폐합 등이 민주적 개혁의 이름으로
정치권, 언론, 정부 할 것 없이 여론몰이식으로 주장되어 왔다.
최근의 공기업 구조조정 및 민영화 등에 관한 신 정권 및 언론의
논의도 주로 단면적인 생산성과 효율성을 전제로 한 경쟁력
논의로 편향되고 있다.
당초 공기업이 존재하는 본래의 이유는 민간부문에서 달성하기
어려운 공적 서비스의 생산과 공급이다. 따라서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은 관치경영의 배제와 질적으로 향상된 서비스 제공을
위한 생산주체, 생산방식이나 생산방법 등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공공부문의 사회적 역할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근 IMF관리체제하에서 금융․외환시장의 파탄에
직면하고 있는 김대중 정권은 개혁과제로 노동시장의 구조조정,
재벌개혁, 정부조직 개편을 내세우고 있다. 그 속에서
공공부문 구조개편은 첫째, 공기업 민영화 혹은 위탁경영,둘째,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 특별기금의 통합운영․관리, 셋째,
정부출연기관의 통폐합, 넷째, 정부위탁(행정대행) 기능의
민간이양 등으로 전개되리라 예측된다.
이러한 김대중 정권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추진방향의 문제점은
먼저, 공공부문 구조개편 논의가 경제위기에 따른 세수부족과
외환문제의 단기적 해결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데에 있다.
국제화라는 미명아래 공기업을 외국에 팔아치우려는 의도 역시
공공부문이 미치는 국민 경제적 영향을 생각할 때 위험천만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언론의 공공부문
비효율성(비전문적 경영과 낙하산 인사, 형식적 경영평가와
불합리한 예산편성, 인건비와 복지비용의 편법․변칙 집행
등)에 대한 논의가 역대 정권이 정치적 이해관계의 해소를
위해 공공부문을 이용해 온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과,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개혁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의 구조개혁을 위해서는 경영진 인사에
대한 검증절차 마련, 노사동수의 경영위원회 구성, 책임성과
효율성이 보장되는 예산편성 및 합리적 경영평가 등 책임경영의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공공부문의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 없는 여론몰이식 구조조정
논의는 결과적으로 공공부문이 필수적으로 견지해야 할 공공성
확보와 사회복지 증진의 기능을 희생시킬 우려가 있다. IMF 사태
등 현재의 경제문제 해결에 급급하여 국내외 독점자본에게 알짜
공기업은 다 팔아 치우고 결과적으로 부실 공기업만 남길 경우
국가 부담의 엄청난 증가와, 과거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공기업을
민영화시킨 후 정책상의 필요에 의해 다시 공기업화 하면서
들어간 엄청난 사회적․재정적 비용을 상기해 보더라도,
섣부른 민영화 등은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또한 구조조정 차원에서 공기업을 민영화하더라도
절대로 독점재벌을 포함한 매판자본에게 넘겨서는 안된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과거에 활용된 바 있는 일괄입찰
방식이나 지분매각 방식은 재벌에게 경제를
집중․심화시킨다는 점에서, 국민주 모집 방식은
증권시장에의 공급물량 과다 확대에 따른 저소득층의
투자손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이미 문제점을 노출시킨 바
있으므로,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위한 대안은 민영화보다
관치경영의 배제를 통한 책임경영과 자율성 확보에서 그 해법을
아야 한다.
그리고 출연기관 등의 통폐합과 관련해서도 애초에 문제의
씨앗이 정치권과 관료집단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 정치권은
정치적 이해관계의 해소 수단으로 삼은 것, 관료집단은 부처
이기주의 및 기관장의 인사배분 등을 위한 위인설관식의 운영 -
그 책임은 정부 차원에서 져야 할 일이지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어서는 안된다.
결론적으로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의 효율성과 경쟁력은
정부가 공공부문에 대한 관치경영을 하루 빨리 해소하여 공기업
본래의 존재목적을 살리며, 공공부문의 책임경영과 자율경영을
보장하고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활성화시킬 때 자연히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4.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당면한 노동조합의 과제
현재의 상황에서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과제를 간단히 정리하면
첫째, 낙하산 인사, 특채제도 등의 폐지를 통한 인사제도의
개혁이다. 그러나 내부승진에 의해 경영진이 채워진다고 해서
낙하산 인사나 특채제도의 폐해가 해소될 수는 없다. 인사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함은 물론 인사청문회제도 등을 통하여
경영능력이 검증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둘째,
기존의 통제 일변도의 정부통제를 배제하고 경영의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은 노사동수의 경영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노사 쌍방의 경영에 대한 책임성을 담보해야 할
것이다. 셋째, 임금체계의 단순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공공부문 임금체계의 복잡성은 공공부문의 임금이 정상적인
노사합의에 의해 이루어지지 못하고, 정부의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에 의해 결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철폐시키고 노사가 자율적 교섭에 의해 임금을
결정할 수 있어야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가능하다. 넷째,
공공부문 노동자로서의 도덕성과 책임성을 통감하여야 한다.
민간부문처럼 기업이나 개인적 이윤을 목표로 조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공적․사회적 이익, 즉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공공부문임을 자각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공부문의 문제 해결은 이미 단위 노동조합의 차원에서 해결될
단계는 지나갔다. 전체 공공부문의 단결과 연대를 통해 우리의
진정한 싸움 상대는 정권과 독점자본이라는 인식을 확고히하여
궁극적으로 사회개혁과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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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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