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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노사정위원회, 어디로 가고있나

현장에서 미래를  제48호
노중기



정/세/초/점

3기 노사정위원회, 어디로 가고 있나?
노 중 기
연구위원








최근 민주노총 지도부가 새로이 선출되었다. 새 지도부는 그 정책방향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빠지지 않고 제기되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바로 3기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참여 여부였다.
참여 여부에 대한 질문은 정부나 언론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조직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지난 해 말과 올해 2월 민주노총 위원장과 대의원들이 탈퇴를 결의한 이후, 그리고 4월과 5월의 총력투쟁이 진행된 이후 한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질문이 다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당분간 참여할 의사가 없다는 신임 위원장의 의사표명이 있었지만 질문은 계속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참가 여부가 새 지도부 운동노선의 시금석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또 더 나아가 이런 계속되는 질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를 종용하고 압박하는 의미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민주노총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다시금 노사정위 참가와 불참의 갈림길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은 다시금 자신의 운동노선을 ‘혁신’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할 수 없는 이유, 그 전략적 개입지점은 변화된 정세를 고려해서 다시 한번,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해 둘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3기 노사정위원회의 성격과 위상

먼저 DJ정부는 3기 노사정위원회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부여치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정부정책의 비중 면에서 그 중요성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 점에서 3기 위원회는 1기, 2기와 구별될 수 있다.
민주노총의 불참 이후에도 DJ정부는 3기 노사정위원회를 꾸준히 추진해왔다.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에 대한 공안 탄압이 계속되던 5월 3일, 국회에서는 날치기로 노사정위원회법이 통과되었다. 민주노총에 대한 참가 강제가 여의치 않자 항상 그랬듯이 정부는 한국노총을 압박하였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빌미로 약간의 거부 제스츄어를 취하던 한국노총은 6월 25일 노정합의 이후 정부의 의도대로 손쉽게 참가를 결정하였다. 물론 한국노총도 참가의 대가로 정부가 허용한 ‘공공부문 단체협약이행’ 등 35개 노정합의사항에 대해서는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한국노총은 노정합의 직후부터 그 이행을 촉구하고 이를 참가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으나 참가는 기정사실일 뿐이었다. 민주노총과의 합의도 이행치 않는 DJ정부와의 합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한국노총측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합의의 두 주체가 그 불이행을 공공연히 묵인하였던 이런 합의는 참가를 위한 일종의 의례조치였다. 한국노총은 작년 5월 14일에도 노정합의(‘공공부문 구조조정 사전합의’)를 한 적이 있으나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또 6.25합의의 핵심사항인 ‘공공부문 단체협약 이행’은 기획예산위에 의해 곧바로 거부되었다. 이와 같은 정부의 태도를 의식한 한국노총은 여러 가지로 조건을 달고 불참위협을 했으나 그것은 대외적 제스츄어에 불과한 것이다.

정부가 한국노총을 포섭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민주노총을 배제한 노사정위원회 구성은 시간문제였다. 그렇지만 3기 노사정위 구성은 빨리 진척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6월 이후 상당 기간동안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했던 조폐공사파업유도사건 탓도 있었다. 그러나 일정이 늦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가 위원회 구성을 서두르지 않았던 것에 있었다. 정부의 이런 태도로 말미암아 재계의 위원회 복귀와 노사정위원회법 시행령 제정, 위원장과 상임․공익위원의 인선, 사무처의 구성 등 단지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을 일들이 구성을 계속 지연시켰다. 결국 3기 노사정위는 출범 예정시기를 상당히 넘겨 9월 1일에야 비로소 공식화될 수 있었다. 출범 이후에도 사무처 구성, 운영세칙과 회의체계 개편 등을 이유로 해서 10월 현재까지 제대로 활동치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3기 노사정위의 구성 경과는 그 자체로서는 큰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1기와 2기 때 DJ정부가 보여준 태도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정부의 행보는 3기 노사정위원회의 변화한 위상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둘째로, 3기 노사정위는 보다 장기, 거시적인 노동정책방향인 ‘신노사문화’의 하위 정책으로 설정되어 있다. 작년 8월 15일 6대 국정지표의 하나로 발표되었던 ‘신노사문화’는 만 1년 만에 8․.15경축사를 통해 그 구체적인 내용이 공표되었다. 그동안 1기와 2기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비판들 중 하나가 ‘참여와 협력’의 중장기 플랜이 없다는 지적이었으므로 신노사문화의 발표는 이에 대한 정부의 공식답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노사문화는 진부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잘못된 노사관계 상황 진단(‘대립과 갈등의 낡은 노사문화 상존’), 독재정권 시절의 공장새마을운동을 연상시킬만큼 낡은 정책과제(‘대립과 갈등의 극복’, ‘경쟁력 강화’, ‘준법질서 정착’), 권위주의적 노사관계 개입과 노동운동 통제를 정당화하는 추진목표(‘합리적․생산적 신노동운동’, ‘생산적 교섭’, ‘창의․혁신적 근로윤리 확립’), 켐페인․의식개혁운동 위주의 중점추진과제 등 신노사문화(新勞使文化)에서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김금수, ‘‘신노사문화’가 딛고 선 자리’, 매일노동뉴스, 9월 7일자) 그것은 참여와 협력은 커녕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배제와 억압적 개입을 보다 공개적으로 정식화한 것에 다름아니었다.
요컨대 신노사문화가 노사정위의 활동과 의제들을 직접 규정하고 있으므로 3기 노사정위는 허구적인 합의기구로 전락할 객관적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셋째, 다룰 의제와 조직 운영에 있어서도 3기 노사정위원회의 미래는 어둡다. 노사정위원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포괄적이며 추상적인 협의의제들은 큰 의미가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와 노동 양측이 구체적으로 주고 받을 구체적인 의제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정부측의 관점에서 보면 작년 8월의 현대자동차에서 정리해고가 관철된 이후 노사정위원회에서 다룰 구체적 사안은 사라졌다. 구조조정 지침과 제도들은 노동측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미 상당정도 도입되었고 이제 제도화단계에 이르고 있다. 그런 만큼 노사정위의 정책적 유용성은 크지 않으며 긴급하지도 않다. 다만 쟁의를 봉쇄하는 이데올로기적 통제기능 만이 남아있을 따름이다. 정부는 ‘노사정위가 있어 나쁠 것이 없다’는 정도의 입장인 것이다. 작년의 ‘참여와 협력’, ‘민주주의와 개혁’으로부터 신노사문화의 ‘노사협조주의 강제’, 생산적 복지의 ‘복지축소’로 선회한 것도 그렇게 우연한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쟁점으로 남아있는 법정 노동시간 단축, 전임자 임금지급,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2차 금융구조조정 등의 의제들에 대해 정부는 현재까지 매우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문제들에 대한 정부의 복안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몇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본다면 가장 유력한 것은 노사정위의 논의를 전제로 문제해결을 하염없이 지연시키는 것이다. 1기와 2기 때의 부당노동행위, 구속․수배노동자 처리문제, 구조조정과정에의 참여문제와 같이 공약(空約)을 남발하는 것도 한 방안일 것이다. 또 재계의 반발을 이용해서 형식적인 수준에서 합의불가나 이행불가를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노사정위는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는’ 우스꽝스런 조직으로 존재할 것이다.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법정노동시간 단축, 전임자 임금지급문제를 적절한 선에서 합의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그 반대급부로 자본측이 요구하는 퇴직금제도 폐지, 노동측 부당노동행위조항의 신설 등 보다 강력한 노동통제장치를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 방안은 한국노총을 동원한 합의란 점에서 노동측에 대한 분할지배의 통제효과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어떤 시나리오이든 간에 현재 ‘참여와 협력’에 걸맞는 교환구도의 전망은 없다. 그것은 국가와 자본이 노동측에 어떤 양보를 하거나 그런 제스츄어라도 취해야만 할 정세적․구조적 조건이 거의 소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년의 노사정위원회에 비해서 보다 선명해진 것은 ‘노사협조주의’를 위로부터 강제하겠다는 DJ정부의 반노조주의전략이다.


노사정위원회는 어떠한 과제를 제기하고 있는가

그동안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이런 비관적 입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비판이 있었다. 비관적 인식은 때로 ‘참가론자’들에 의해 ‘서구의 신조합주의이론을 과도하게 일반화한 원칙론’ 혹은 ‘구조주의적 견해’로 비판받아 왔다. 그것은 코포라티즘의 합의를 가능케 할 조직의 중앙집중성, 사민주의적 계급정당, 그리고 국가․자본의 노동포섭적 양보조치 등을 ‘사회적 합의’의 필수적이고 결정론적인 전제조건으로 취급해왔다는 비판이었다. 이런 구조적 조건보다는 주체들의 전략적 태도, 그중에서도 특히 노동측의 적극적이고 참여지향적인 운동노선 선택이 (노동운동의 발전에)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비판적 입장이 추상적인 원칙에 매달림으로써 사회적 합의방식에 기초한 구조조정의 가능성을 배제하였다고 논박하였다. 이들은 합의방식으로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끝내고 경쟁력 제고를 달성한 이태리와 네덜란드사례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고 본다. 자세한 것은 최영기․이장원 편저, 『구조조정기의 국가와 노동』, 나무와 숲 참고.

그러나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비판이 결코 ‘서구모델에 한국을 대입해서 손쉽게 내놓은 결론’은 아닐 것이다. 서구 코포라티즘모델의 구조적 조건이나 이태리, 네덜란드모델의 전략선택은 모두 한국의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분석을 위한 준거점, 혹은 확인해야할 변수들에 불과하다. 그것은 한국의 노사정 주체들의 전략선택을 제약하는 구조적 조건들의 범위만을 설정해줄 뿐이며 그것도 고정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노사정위원회의 가능성은 한국사회 노동정치의 생생한 다이나믹스 속에서만 판단될 수 있을 뿐인 것이다. 거꾸로 필자는 ‘참가론자’들이야말로 서구모델을 추상적으로 대입하고 있다고 본다. 이태리, 네덜란드의 모델이 구조조정과정에서 3자합의에 ‘성공’한 사례이므로 한국사회에서도 합의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과도한 추상이거나 무리한 일반화일 뿐이다. 그 ‘성공’의 의미도 다시 평가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그나마 그런 ‘성공’의 가능성도 한국사회에서 거의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었다.

여기서 1기, 2기 노사정위원회의 경험, 그리고 3기 노사정위원회의 상황적․구조적 조건들은 다시 정리될 필요가 있다. 한국 노동정치의 지난 경험들이야 말로 선험적․추상적이지 않은 현실인식의 기초자료이기 때문이다. 1기와 2기의 교훈은 매우 단순․명료하게 요약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노사정 타협을 위한 구조적 조건은 부재했으며 주체들은 ‘참가’의 전략선택에도 불구하고 그 구조적 제약을 뛰어넘기 힘들었다’는 교훈이다.
중앙집중적 노조(사용자)조직이나 계급정당의 존재문제는 단순히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문제였다. 지난 2년 간 민주노조는 국가, 자본 간의 관계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노조 내부정치에서 커다란 위기를 경험하였다. 개별 단위사업장 노조이든 상급조직이든 모든 조직들이 내부 민주주의와 조직의 자주성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위기는 수세기국면에서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노사정위원회 노동정치가 그 위기를 확대․심화시킨 것도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민주노조측은 ‘노사정위 참가’로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의 속도와 깊이를 통제하고자 하였으나 그럴 여지와 능력은 거의 없었다. 반대로 국가․자본은 ‘명분없는 무조건적인 참가’를 강요했을 뿐 참가의 반대급부나 약속이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산별노조와 정당으로 대표되는 계급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의 참가의 ‘현실’은 ‘이론’적 예측과 꼭같이 포섭과 통제, 혹은 노조의 무기력화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비판자들의 주장처럼 문제는 이론적용 상의 오류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반대로 ‘결정론적․구조론적 인식’이 한국사회 노동정치에 너무 잘 들어맞은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정책참가의 ‘양날의 칼’이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 문제였다.

또 이런 계급역량의 부재는 국가․자본의 전략선택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었다. 물론 노동측 계급역량이 취약하다고 해서 국가․자본이 항상 노동배제적인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노동측이 주관적으로 기대한 이 방향의 전략선택이야말로 개혁의 이름에 걸맞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이 경쟁력제고, 시장지향적 구조조정에 두어진 만큼 노동정책의 방향은 충분히 예측될 수 있는 것이었다. DJ정부는 (IMF공황이라는) 주어진 정세에 따라 일시적으로 양보의 흉내나 형식적 참가기구를 만들 수 있을지언정 내실있는 ‘합의’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IMF국면이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새로 추진되는 3기 노사정위는 1기 2기와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앞서 보았듯이 노사정위는 ‘낡은 신노사문화’의 외피를 입고 있다. 그만큼 DJ정부로서는 더 이상 ‘참여와 협력’이라는 ‘포장’이 필요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민주노총에게 필요한 것은 노사정위 탈퇴나 불참, 혹은 무관심이 아니라 노사정위에 ‘대한’ 투쟁이다. 또 그와 연관되어 있는 노조운동의 자주성 확보, 내부민주주의의 확대, 무엇보다 산별건설-정치세력화의 내적 역량 강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한/노/정/연

1999-10-1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4&no=7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