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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현장에서 미래를  제60호
이윤주



이주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이윤주

이주노동자 노동권 완전쟁취와 이주․취업의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본부 집행국장

지난 노동절 때, 한국노동자와의 연대를 희망하며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1. 이주노동의 본질을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1) 이주노동의 연원

이주노동의 원론을 추적하면 이주노동의 시작은 인류의 발생과 함께 한다. 먹을 것이 있는 곳을 찾아서, 얼어죽지 않을 기후를 찾아서, 힘센부족이 밀어내면 밀려서 남으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인류가 점진적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이주노동이다.

중세에는 봉건영주의 억압을 피해서 또는 수많은 전쟁의 와중에 떠밀리고 쫓겨서 국경을 넘어 난민으로 또는 최하층 빈민으로 떠돌던 이들도 역시 이주노동자라고 분류할 수 있다. 종교의 억압과 인종차별을 피해서 떠돌던 집시나 이후의 유태민족이 중세적 의미의 이주노동집단의 대표적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이주노동의 성격이 달라졌다. 엔클로우저로 불리는 농토를 빼앗긴 농민들이 도시의 최하층 노동자로 대 이동했던 것이 자본주의적 이주노동의 시작이 아닌가 한다. 엔클로우저 운동으로 인해 쫓겨난 그들이 도시로 밀려들면서 도시는 심각한 실업란과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게 되고 신대륙의 금광을 향한 유럽 초기자본의 열망이 이들을 신대륙(아메리카)의 광부로 강제이동시켰다.

16세기에 이렇게 시작된 이주노동은 21세기 초 현재까지의 이주노동 발생의 본질, 즉 산업, 과학, 유통 등 자본주의 발달로 인한 ‘초과이윤율 저하’의 위기를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해결하려는 자본의 노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초기 자본주의에서 현재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자본이 취하는 사회구성에 따라 이주노동의 형태와 수요가 그 양상만 달리했을 뿐, 본질적 성격은 자본이 보다 저렴한 임금으로 용이하게 노동을 착취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산업예비군1)을 확장하고 노동자를 분할지배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주노동은 실업, 비정규직, 노동자분열 및 통제와 함께 자본이 노동을 억압하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2) 자본주의 하에서의 이주노동

(1) 자본세력의 확장 1탄 - 미국자본주의 태동시기의 이주노동

자본주의 하의 이주노동 초기는 아메리카 개발을 위하여 장기간 진행되었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아프리카인에 대한 노예노동자 매매와 같이 천박한 자본주의의 단면을 극단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하여 19세기 초까지 유지되었던 것이다. 초기에 광산개발과 농장산업에 투입하였던 노예노동력을 먼저 산업화된 북동부도시로 이양하고(이 과정에서 노예해방 전쟁 발발), 19세기 중엽에는 다른 양상의 이민이 촉진된다. 이미 선진화된 선발 산업국가인 영국,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이 높은 실업과 도시의 팽창으로 인한 빈곤에 직면하여 미국으로의 이민을 장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주노동력을 활용하여 20세기 초반까지 테일러주의를 점진적으로 정착시키면서 노동생산성을 증폭시켜 한동안 안정 성장기를 누렸지만, 1920년대 말 30년대 초의 과잉생산으로 인해 대공황을 경험하면서 심각한 자본의 위기를 겪게되었다.

대규모(집단적)이며 강제적이었던 것이 이 시기 이주정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2) 이러한 성격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자본 확장의 거점을 마련하고자 식민지 노동력을 군국적으로 집단이주시켜 내던 시절까지 연장된다고 할 수 있겠다.


(2) 자본 세력의 확장 2탄

- 세계대전 이후 복구과제와 새로운 시장의 발견 시기의 이주노동

세계대전 이후 거의 손 안대고 코푼(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한) 미국을 제외하고 모든 선진 개발 국가들은 ‘전후 복구’의 난제에 직면하였다. 이 시기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주변 후진국가에서 대대적으로 이주노동 유치 정책을 펼쳤다.(먼 나라 한국에서도 광부와 간호사가 갔듯이) 수많은 이민자의 유입은 귀화를 촉진하였고 이에 따라 소수 언어와 문화에 대한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이것이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유럽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당시에는 아주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1945년에서 1980년대까지 실제 지지자가 적지 않게 있을 정도로 세력이 있었던 반인종주의 극우 정당은 이탈리아와 남부 유럽의 소규모 독재국가에만 잔존하였고 별 활동도 없었다(현재, 유럽의 반인종주의 극우정당과 사뭇 다른 상황이다).

미국과 폐허의 악몽에서 벗어난 선진개발국가들은 기존의 군사식민지를 자본으로 식민화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들은 앞다투어 남미와 중동, 아시아 지역에 신흥공업국가를 세워내기 위하여 투자를 강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후진 산업국가들이 급속히 자본화되었고, 그나마도 산업화가 덜 된 후진 개발국가들은 ‘노동력’을 수출하였다. 한국도 건설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산업화되던 과정에서 사우디에 대한 노동력 수출에 국가가 앞장섰으며, 남미의 경우도 그 내에서 이주노동의 송출과 유입이 복합적인 형태를 띄었으나 미국의 지원정도에 따라 국가간 서열이 생기게 되었다. 남미에 대한 의도적 개발을 반증하는 사건으로서 아옌데 정부를 몰락시킨 자본의 획책을 들 수 있겠다.

이 당시의 이주노동의 특징을 국가 대 국가의 이주노동의 급속한 확산, 국가에 의한 대규모(집단적) 노동력 매매로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은 자본의 이해가 강대국이라는 국가적 형태를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3) 현대 자본주의3)에서 이주노동의 특징

① 현대 자본주의와 이주노동자

1970년대, 또다시 맞은 자본의 위기상황4)에서 초국적 은행주도의 금융 축적에 실패한 신보수주의로부터5) 금융을 통해 타국(주로 제3세계)에 자유로운 직접투자를 강제하고 인수합병과 구조조정도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초국적 기업 주도의 금융자본이 형성되고 초국적 기업은 금융자본을 선발대로 하여 전 세계의 생산관계를 마음대로 조정하려 들고 있다.6)


그러므로 ‘자본의 세계화’로 특징지을 수 있는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이주노동은, 초국적 자본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현상적으로는 초국적 자본의 위협 즉 본국에서의 생존의 위기, 실업란을 피해 “경제적인 이유”로 “자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부수적인 현상으로서 유입국의 노동자와 심각한 마찰을 일으키며(예; 유럽의 극우 인종주의 부활) 진행되고 있다. 유입국이나 송출국이나 모두 초국적 자본의 영향력 하에 (자본의 초과이윤 증식을 위한)구조조정의 압박에 내몰리고 있고 이로 인해 실업과 비정규직화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초국적 자본은 해고 감원이 용이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생산라인, 외주나 하청의 확장, 노조운동 와해를 멀리서 통제할 수 있게됨으로써 실업자와 비정규직을 급속히 대량 배출하고 있다. 따라서 초국적 산업예비군을 형성하고, 초국적 노동통제를 해오고, 초국적 노동자 분할지배 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것은 굳이 이주노동자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② 이주노동자 상황

일국 내에서 초과이윤 착취에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는 자본의 위기에 직면하여 일국적으로는 복지비용삭감과 임금삭감, 구조조정을 통한 추가 산업예비군 확장을 감행하며 국제적으로는 자본의 국경을 허물어 내어 보다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고, 새로운 시장을 점령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잉여노동자의 수직적 이동이 가속화된다. 이를 계기로 현대적인 개념의 노동력 이동이 촉진되었다. 즉 국가자본의 이해와는 다소 밀접하지 않은 채 자본과 이주노동자 대중의 직접적인 임노동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고 본다. “경제적 이유”를 목적으로 한, 주로 “일자리”를 찾는 이주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개별적이고 자발적인 이주라고는 하나 이들의 이주는 자본주의 모순과 인과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노동력은 가지고 있지만 노동에 필요한 토지나 공장이나 기계를 갖고 있지 못한 노동자들은 자신을 고용할 수 있는 자본이 국내에 없다면 해외로라도 나가지 않을 수 없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디든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 소위 송출국엔 희망이 없다. 세계 자본의 이해를 위해 전략적 거점으로 형성된 ‘신흥공업 국가’ 특히, 남미와 아시아의 경우 세계 자본 특히 금융자본의 영향력에 옭아매어져 있기 때문에 부채와 극심한 실업률의 위기에서 헤어나올 길이 없다. 그들 국가의 산업예비군들이 새로운 희망을 찾아 선진개발 국가의 저임금 노동자가 되기 위하여 이주하고 있다. 이는 일국 자본(경제)은 세계 자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명제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며 자본의 운동이 이들을 초국적 잉여노동력, 즉 국제적인 산업예비군으로 내몰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농토를 빼앗긴 초기 산업혁명기의 영국 농민들이 신대륙으로 향하게 되던 원인과 일치한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본이 노동력을 활용하는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해당국가의 자본을 육성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면 노동력만을 사용하고자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저산업개발 국가로의 공장이전 및 고용창출로 나타나던 국제적 초국적 자본의 초과이윤 착취를 위한 행보가 신자유주의 이전과 핵심적으로 달라진 부분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즉 투자조건이 맞지 않는 국가에 대하여서는 노동력만을 추출하거나 제한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아무리 투자를 해도 1년에 한 번씩 대홍수가 덮쳐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전쟁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는 방글라데시에 대하여 눈독을 들이는 자본은 없다. 다만 방글라데시의 노동자를 유입하여 단순노동인력으로 활용하려는 국가와 자본은 많다. 한국도 방글라데시와 비자면제협정을 맺고 있는 나라이다. 한국인이나 방글라데시인이나 비자면제협정을 맺으면서까지 활발하게 서로 관광을 오갈 조건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방글라데시의 단순노동인력이 한국에 들어오기 쉽게 하려는 한국정부의 술책일 뿐이다. 인도의 예를 들자면, 오랜 식민지를 경험한 인도인은 선진자본국가에서 보면 고급스러운 단순인력이다. 영어도 잘하고 컴퓨터 공학도 발달하였다. 독일과 캐나다 등은 인도에 대한 기술이전이라는 투자를 하는 동시에 인도인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연 30,000명씩 유입하고 있고 점차 그 규모를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세계경영’을 표방하며 동유럽으로까지 뻗어나갔던 ‘대우’나 특히 중국, 베트남 등지로 진출하여 현지기업을 세우고 있는 한국 자본가들은 그 나라에 기술을 이전하고 국제협력을 강화하러 간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저임금을 이용하러 간 것 뿐이다.7)

제3세계에 자본을 투자해 그곳에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대신, 제3세계에 투자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불러와서 자국에서 착취하는 방식이 점차 확대되면서 제 3세계 국가에서는 이주노동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필리핀, 동유럽, 아프리카 등 자국의 산업기반이 워낙 열악한 나라에서 이주해 오는 노동자 역시 세계 자본의 이러한 음모에 의한 피해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개발 국가 출신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모순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으므로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 힘들다는 억측이나 그들의 이주의 원인이 무능력하고 이기적인 국가의 이해라고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동시에 ‘신자유주의 분쇄, 자본의 구조조정 반대’를 외치면서도 이주노동자와 연대할 필요성에 대하여 ‘동정’의 시선으로 ‘국제화 시대니까’라고 치부하는 것은 세계자본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지 못하는 것이며 초국적 자본에 맞선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의 의의를 왜곡하는 것이다. 즉 이주노동의 밑바탕에 있는 이런 자본의 이해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노동력의 국경을 넘는 이동이 현상적으로는 국가 대 국가로 드러나지만 일국의 정치경제적 위기가 세계 자본의 위기에 의한 것이고 나아가 ‘값싸고’, ‘통제가 용이하고’, ‘자국의 노동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초국적 노동의 유연화는 자본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으로서 그 현상을 증폭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배후에 있는 자본-노동의 대립관계를 바로 보지 않고서는 이주노동운동의 대안을 마련할 수 없다.

‘이주노동’의 개념에 대하여 논외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경제적인 이유로 이주로 국경을 넘어서 중장기적인 생활과 노동을 하는” 특징 이외에도 정치적 이유에서의 이주노동이나 초단기적 이주노동도 이주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본국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서 이주노동자의 길을 선택한 버마인들(예로 NLD)이나, 미국 농장의 수확기에 몇 개월만 이주하던지 또는 국경을 넘어 출퇴근하면서 노동하다가 수확이 끝나면 돌아오는 멕시코 노동자들과 같은 ‘계절 노동자, 월경 노동자’ 등도 ILO나 UN에서는 ‘이주노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2. 노동운동으로서의 이주노동운동

1) 이주노동자는 노동자에게 무엇인가라는 우문(愚問)으로부터

이주노동자와 함께 해야한다는 막연하고도 선량한 의식이 노동진영에 맴돌고 있다. 왜 이주노동자와 연대하여야 하는가.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해야 한다는 추상적 인식 때문인가? 아니면 소외된 노동형제에 대한 노동자적 애정과 지원은 따로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언가 거부할 수 없는 노동자의 도덕일 것 같기 때문인가? 이주노동운동을 얘기하면 웬만한 연맹의 노조활동가들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한다. “그렇죠. 우리도 이제 국제연대를 해야 하는데... 역량이 안돼서...”. 이주노동자가 타국 출신이라서 국제연대의 개념으로 사고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이주노동자를 막연히 동정하거나, 국제연대를 당위로만 사고하는 것을 넘어설 때가 됐다.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 아니 반드시 기쁘게 받아 안아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민주노동운동의 장강(長江)에 이주노동운동의 물줄기를 합류하여 한국 노동운동의 계급적 원칙을 확립하고 생동하는 건강성을 입증하자.


(1) 한국 노동운동을 올바르게 정립하기 위한 중요한 관건 - 이주노동운동

① 이주노동운동의 역사적 사회적 위치

노동의 비정규직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지배질서 하의 노동자 전략은 무엇인가라는 고민 속에서 한국 노동운동을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보다 3~5배까지 임금차별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을 하며 사회적 무시와 편견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대사업장, 조직, 남성노동자의 이해만을 대변하고 있다. 정부집계 상으로도 전체 노동자들의 53%가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을 방관하고 평등의 대의를 말하지만 여성노동자를 배신하고 있는 현재의 노조운동을 “계급적 지형”으로 재편하는 운동에 이주노동운동이 위치하고 있다. 스스로는 노동운동의 대의에 충실하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세력들이 ‘이주노동운동’이라는 문지방을 넘지 못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모두들 노동자들은 하나로 단결해야 하며, 노동자 안에서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에 대한 태도에서도 그렇지만, ‘이주 노동운동’에 대한 태도에서는 특히 그들이 말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 노동운동 진영의 관심의 부족, 이주노동자 운동의 취약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주노동운동이 노동운동으로서 자리매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주노동운동은 나락 끝에 서있었던 것이 현실이다.

한국 노동운동이 노-자간의 대립모순을 비판하고 극복하는 계급적 단결을 실현하도록 재정립하는 과정은, 이주노동운동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과 기존 민주노조운동이 서로 적극 지원하고 연대하며 서로 활발하게 상호교류하는 과정일 것이다.


② 노동자 연대를 가로막는 노사협조주의와 관료주의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비정규직노동자의 투쟁 국면에서,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어떠한 수준인가는 IMF 구제 금융의 위기를 거치면서 드러나게 되었다. 현장에서는 아래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게 되었지만 이들의 투쟁은 노조관료주의와 노사협조주의에 의해 좌절당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98년 현대 자동차 투쟁이다. 한국 노조운동의 선봉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현대자동차 노조는 노동자 민중의 전폭적 관심과 지지 아래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강위력하게 전개했지만,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를 묵인하고 식당 아주머니들을 해고하는 데 동의를 하면서 다수 정규직의 자리를 보존했다. 이미 노동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이후 정갑득 위원장은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청노동자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발언하였다. 이는 상대적 고용안정시 하청(비정규직)노동자까지 고용하여야 다시 발생할 수도 있는 고용위기 시 하청노동자를 우선 순위로 해고함으로써 정규직의 상대적 안정을 얻겠다는 발언이었다. 그리고 한국통신 노조는 현재의 계약직 노조를 의도적으로 배제하여왔다. 조합집행부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계약직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으면서, 계약직노동자들의 단독 노조설립을 막으려고 차라리 규약을 개정하라는 요구도 묵살되었었다. 95년의 가열찬 한통투쟁의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노조를 구성할 수 있도록 선진적으로 규약을 개정하였던 한통 노동자들이 고용위기라는 자본의 칼날 앞에서 분열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노조관료에 의한 전횡과 노동자 대중의 의식적 고양을 연대투쟁 속에서 성장시켜내지 못하는 노동운동의 질적 답보의 원인에는 노사협조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민주노총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론세력으로서 한노사연 김금수 씨의 경우 노동자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것이 현시기 노동운동의 강령이라고 유포함으로써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공격을 기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투쟁을 통한 강력한 탄압 저지와 노동자 권리 실현의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 투쟁의 관심을 사회복지 확장, 실업극복-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몇가지 법적 제도 개선으로 협소화시키고 있다.

경제투쟁으로 국한되는 경향은 이주노동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노동자로서의 일반적 요구와 투쟁으로 진전하지 못한 채 나타나고 있다. 이의 원인은 후술할 것이지만 잠깐 언급하자면, 진보적 노동운동 진영의 관심과 연대가 없었던 측면과 이주노동운동 진영의 내적 한계에 기인한다.


(2) 이주노동운동이 넘어서야 할 담론들

첫째,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 추상적으로 노동의 세계화를 주장하고 노동자가 국경을 넘는 자유를 막연히 주장하면서 이주노동운동이 국경의 의미를 최소화시켜내는 운동에 기여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자유로운 이주․취업’의 문제를 ‘출입국관리법’이나 무역협상에 유리한 조건들을 관철하는 것으로 국한하는 오류가 빚어진다. 개인의 선택이 존중되는 방식으로 이주노동의 조건을 유리하게 하고 이주국에서의 노동자적 권리를 향상시키는 것은 이주노동운동의 경제적 측면에 불과하다. 유럽쪽에서 많이 제기되는 논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논리가 적절치 않다는 논거는 통합유럽의 예에서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흐름 속에서 통합유럽을 건설한 EC내에서는 노동력의 이동과 거주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러나 EC국가들은 그 외 국가에서의 노동력 유입을 강력히 제한하고 있으며 구 국경 내에서의 자국민 즉 출신국 노동자와 유입 노동자간의 임금 및 사회보장에 현격한 차이를 두고 있다. 국경의 의미는 매우 삭감되었지만 자본의 분할 지배정책은 그대로 온존되고 있으며 EC내 이주노동자들은 ‘인종주의 및 외국인 혐오주의’의 득세로 이중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노동자들끼리 갈등하게 만드는 인종차별은 독일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우리도 모두 외국인이다’ 캠페인 식의 국민의식 개혁운동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인도적이고 지성적인 ‘평등한 인간’론은 자본의 필요에 의해 국경을 허물고 어디에서나 노동자를 통제하는 자본에 반대하는 소박한 심성을 보여줄 수는 있으나, 다른 한 측면으로는 자본의 분할지배 전략을 합리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국경철폐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제거하는 속에서만 가능하다. 즉 자본주의 모순의 지양 없이는 국경이 없어지더라도 노동자는 계급적 수탈을 피할 수 없다.


둘째, 이주노동의 계급적 측면을 간과하고 노동유연화라는 자본의 정책적 측면만을 바라볼 경우, “노동유연화 반대 그러므로 이주노동 반대(억제)”의 억지가 나올 수도 있다. 실로, 이주노동자가 한국 내로 유입되어와 저임금 노동군을 형성하여 한국 저임금 노동자의 실업률을 높이고 3D업종의 열악한 산업이 온존된다고 보고 이주노동자의 유입을 일정 선으로 국한하거나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나 합리적 운동노선을 표방하는 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또한 일국적 사고를 못 벗어나고 투쟁 전선을 민주 대 반민주에 협착시켰던 한국 노동운동의 과거 한 장면에서도 이러한 사고의 경향을 볼 수 있다. 즉 1990년 전노협이 광산업종에 ‘외국인’ 노동자 유입에 반대성명을 냈던 일인데, 신문기사로만 남아있는 당시 상황을 보면, 전노협지도부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았던 상태에서 당시 80년대 말 90년대 초 투쟁의 선봉에 서 있던 태백지역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옹호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이나 그 당시나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가 얼마나, 어디서 들어오는가보다는, 중요하게는 광산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대규모 폐광, 소규모 지원- 투쟁적 노조 와해, 노동자 해고, 태백지역 민중들의 생존권 악화)에 강력히 저항하는 투쟁을 더욱 강위력하게 전개해나갔어야 했을 것이다. 노동자의 단결을 가로막고 노동자 저임금 정책을 강화하려는 노태우 정권의 획책에 반대한다는 투쟁방향에 입각해 “이주노동자 유입반대”투쟁을 하기보다는, “이주노동자나 한국인노동자나 저임금, 열악한 노동환경 반대”, “민중생존권 보장, 광산노동자 해고 반대, 노조탄압 분쇄”를 외쳐야 했을 것이다. 결국 태백은, 광산지역 이주노동자 유입은 저지되었지만, 광산지역은 노태우 정권의 구조조정을 거쳐 김대중시대에 이르러 카지노촌이 되어가고 있다. 1차산업을 고부가가치 관광산업으로 전환하고 한반도를 세계자본 물류의 중간 기착지로 재편하려는 자본의 의도가 관철되고 있는 가운데, (이주노동자 유입반대 이전에 이미) 선봉적이었던 태백지역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이제 공허한 울림으로도 남아있지 않다.


탄압의 본질에 맞선 투쟁을 하자는 같은 맥락에서 두가지 경우를 살펴보자. 현재의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 중에서, 예를 들면 기아자동차를 포드가 인수하는가, 현대가 인수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본간의 거래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구조조정 시대에 흔히 들을 수 있었던 ‘강제적 인수 합병 반대’, ‘해외매각 반대’의 구호는 노동자적 요구가 아니다. 병든(또는 약한) 기업의 생명연장이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회사의 최대 주식보유자가 누가 되는가에 노동자의 운명을 맡기면 노동자는 계속 공격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장이 누가 됐든 투쟁을 통해 노동자가 주인됨을 선언하고 노동자의 생존권 사수를 제기해야 한다.

이와 반대되는 예가 오트론 동지들일 것이다. 투쟁의 선봉이었던 오트론 노조는 경영악화와 전투적 노조에 손든 일본계 업주에 대하여 “구조조정 반대, 노조탄압 반대”를 걸고 싸우다 한화라는 새 업주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강위력한 투쟁에 힘입어 “찍힌” 노조간부들을 제외하고 모두 고용승계되었고, 투쟁의 동력을 잃지 않고 아직도 가열차고 꾸준하게 한화 본사 앞에서 또는 공장 앞에서 싸움을 벌여내며 “구속동지 석방, 수배 해제”, “(나머지 노조간부들의) 고용승계보장”을 외치고 있다. 오트론 노동자들은 누가 사장이 되는가를 갖고 싸운 것이 아니라 생존권 사수, 노조승계, 고용승계와 같은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노동 유연화 반대”, “구조조정 반대”와 같은 구호의 추상성을 벗어나 노동자의 투쟁방향을 “정리해고 반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자 생존권 사수”를 걸고 싸워야 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의 문제에서도 “이주노동은 자본의 필요에 의한 강제적 이식이므로 즉 노동유연화의 일환이므로 반대하여야 한다”는 논리로 “세계화 반대”, “노동유연화 반대”라고 외치는 추상성을 벗어나 ‘전 세계 노동자의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쟁취해나가는 투쟁’, ‘국적을 불문하고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투쟁’, ‘공식노동자와 비공식노동자가 차별없이 단결력과 투쟁력을 확보해 나가는 투쟁’을 펼쳐가야 한다. 가깝게는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완전한 노동 3권 보장”, “노동조건 개선”, “이주노동자를 노조로 조직하는 투쟁”, “불법체류 미등록 노동자 전원사면 쟁취”를 통해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적 권리를 향상하는 것이 1차 과제일 것이다.


(3) 이주노동자 운동은 국제연대의 시금석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는 노동자 운동의 원칙을 실제로 지키고 있는가 아닌가의 척도로서 “이주노동자운동”이 있다. 전세계 노동운동이 많이 외쳤던 “피부색은 달라도 노동자는 하나”라는 말의 의미는 피부색은 달라도 자본에 의해 똑같이 억압받고 수탈당하고 있으므로 그 구조적 토대의 동질성이라는 측면에서 노동자는 하나이며 형제라는 의미이다. 국경에 의해 자본주의 모순이 은폐되는 것을 걷어내고 ‘민족주의’의 함정으로 인해 노동자의 단결이 저해되는 것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노동자적 국제연대일 것이다.

우리 가까이 있는 이주노동자를 한국 노동운동 진영 내로 인입시켜내는 것도 국제연대요, 98년 리버풀 부두노동자의 파업투쟁에 대한 지지로 하역을 거부한 호주 항만노동자들의 연대투쟁도 국제연대이다. 99년 영국의 한 체신노동자는 유럽의회 선거 중에 ‘인종적 증오를 자극했던’ 파시스트당인 영국 국민당의 우편홍보물 배달을 거부하였다. 이 체신노동자의 소신있는 행동은 노동당에 의해 “인종차별 방지 선거법”을 제정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종(민족)모순이 노동자-자본 간 모순을 잠재우고 있는 현 유럽에서는 이렇게 인종주의를 견제하는 것이 자본의 분할지배 전략에 제동을 거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8) 물론 유럽의 노동자들이 확실한 계급적 정립에 의해 반인종주의 운동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인도주의와 합리적 자유주의자들에게 많이 영향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유럽적 반인종주의 운동 또는 미국 및 기타 지역의 반인종주의 운동이 노동자 운동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하는 연대도 우리가 해야할 국제연대의 과제일 것이다.


3. 기간의 이주노동운동 평가

1) 이주노동자들의 한국 본격적 유입, 정착

1990년대 초반, 광산노동자의 유입은 좌절되었지만 이미 한국 사회에는 관광 또는 친지방문(92년 중국과 외교수립 이후 조선족동포의 방문 급증)등의 명목으로 이미 6만여명이 넘는 불법체류자가 형성되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3D업종에 미등록노동자로 흡수되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를 저임금 노동력으로 활용할 것에 대한 압박을 느낀 한국 정부는 91년 10월에 변칙적인 외국인력 도입제도인 ‘산업연수생’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고, 당시의 불법체류 미등록 노동자에 대하여 92년부터 3차에 걸쳐 단기비자를 발급하여 한시적인 자격 사면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유입과 노동은 사회화되지 않았었고 고작 언론에는 서울역이나 시청 앞에 장사진을 이룬 중국동포 보따리 약장사에 대한 호들갑 정도가 보도되었다. 한국 정부도 이 당시만 해도 이주노동자가 한국 산업구조에 자리잡게 될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단기적인 인력 순환을 통해 저임금을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연수생제도를 이용한 단기 로테이션 정책은 실패로 돌아가 불법체류 미등록노동자의 수는 점진적으로 증가되었고,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구조적 열악함에 처한 이들의 고통은 포화상태에 이르게된다.

94년 1월 9일부터 2월 7일까지의 네팔 노동자들이 경실련 강당에서 몇몇 종교단체의 힘을 얻어 농성을 한다. 이를 통해 산재와 악성 임금체불과 같은 전근대적 착취로 고통받는 이주노동자들의 존재가 한국 사회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 싸움의 결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관리에 관한 법규조차 마련해두지 못했던 한국 정부는 서둘러 입막음을 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에게 산재 전면적용을 약속하였다. 이주노동자를 통해 전근대적인 초과이윤 수탈방식을 유지하고 있던 3D업종의 갑작스런 와해 또는 정부의 투자를 통한 3D 업종의 구조조정보다는 산재보상보험을 들어주는 것이 훨씬 저렴하고 간단한 처방이었다.


2) 이주노예노동의 현대판 - 연수생

연수생은 자본주의 초기의 이주노예노동과 비슷한 점을 가진다. 대단위의 모집과 국가 대 국가의 이동(사설 브로커 업자들이 이동을 촉진한다고 하더라도 국가 간 계약과 조정에 의해 지배받는다)이라는 점, 비상식적인 불공적 노동계약(또는 노동조건)이라는 점이 그렇다. 임금은 100-200달러 수준이었으며 대부분 직접지불이 아닌 귀국 후 지불이라는 명목으로 극히 일부분만 손에 쥐어졌다. 노동시간은 12-16시간으로 잔업과 철야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제되었으며, 외출 외박은 물론 외부와의 연락-통신, 심지어 가족과의 서신왕래도 거의 두절되었고, 이탈 방지를 위해 여권은 사업주가 압류하였다. 가혹한 노동착취와 더불어 인간적 모멸감을 주는 악랄한 통제를 병행한 것이다.


3) 강위력한 투쟁의 경험 - 네팔노동자의 농성

95년 1월 9일, 13인 네팔 연수생이 온 몸에 쇠사슬을 걸고 명동성당에서 농성에 나선다. “우리는 동물이 아니다, 우리도 인간이다, 인간적인 대우를 하라.”, “둘째, 최저임금 보장하라.”, “강제근로 금지하라.”, “8시간 노동시간 준수하라.”, “여권을 본인에게 돌려달라.”, “외출, 외박, 서신왕래 보장하라.”, “임금을 본인에게 직접 지불하라.”라는 노동자 본연의 요구의 분출이자 단호한 권리선언이었다. 찬이슬을 맞으며 타국에서의 목숨을 건 싸움은 한국 정부가 모든 조건을 수용하겠다는 거짓 협상과 일본에서 날아온 네팔대사의 회유와 협박에 의해 농성을 풀게 된다. 당시 이들의 투쟁에 결합하고 강위력한 연대로 투쟁을 엄호하고 승리로 정리하여 계승하지 못한 것은 온전히 한국 노동운동의 질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13인의 네팔인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한국 이주노동자 투쟁역사의 깃발로 기억되고 있다.


4) 조직적 이주노동자 운동의 진전과 한계

95년 13인 네팔노동자 투쟁을 계기로 ‘이주노동자’가 한국사회에서 명실공히 사회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투쟁에 결합하였던 노동 사회단체와 민주노총, 이주노동자의 노동상담을 받던 상담소들이 공동대책위를 구성하였는데 이 투쟁 이후, ‘외노협’(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이라는 조직적 연대틀거리를 구성한다.

대다수 종교단체와 종교지도자를 근간으로 하는 상담소조직을 기본으로 한 외노협은 96년 ‘외국인노동자 보호법’ 입법청원운동을 펼치면서 이주노동운동의 양적 성장을 획득한다.


이주노동자 상담지원단체의 단일한 대오가 형성되어 지속적으로 이주노동자 이슈를 사회화시켜내려 노력한 측면은 이주노동운동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각 인권/노동 관련 홈페이지에 올라오고 있는 중학생들의 짧은 글들을 보면 그들도 이주노동자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고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10년 전에 비해서 보면 중학생들도 담담히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과 나름대로의 대안을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 이주노동자 이슈가 사회화되었다. 그리고 법제도적인 일련의 성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94년 산재보험 적용 발표, 98년 근로기준법 적용 발표, 출국벌금 사면 기간 연장 등 몇가지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에 보탬이 되는 조치들이 실효성은 아직 미진하지만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자본이나 정부와 싸워서 얻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에게 심각한 인권상황을 호소하고 설득해서 문제를 풀려고 했던 방식을 노정하여 왔다. 싸우지 않는 것의 문제점은 주체가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게되고 이주노동자들이 주체로 싸울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상화시키게 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문제였다.

또한, 이주노동운동을 전체 노동운동의 연장선에서 세워내지 못하고 이주노동자의 특수성만을 강조하여 한국 노조운동과 연대하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시킨 한계가 있다. 초기에는 노조와 시민단체들의 광범위한 참여로 구성되었던 외노협은 이주노동자 상담소들이 주도하고 기타 노동진영이 느슨한 연대를 하는 과정에서 상담소만의 조직으로 은연중에 재구성되었다. 결국 현재까지의 이주노동운동은 종교단체들의 인도주의적 인권담론에서 발전하지 못하였고, 민주노총을 필두로 노동운동진영 역시 외노협에 일임하려함으로써 이주노동운동을 조직하고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방치하고 방관하여 왔다.


(1) ‘외국인노동자보호법’ 제정투쟁

‘외노보호법’의 내용은 투명한(국가간 쌍무협정을 통한) 입국과정과 관리, 노동 3권 보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법적 자격이 ‘불법체류자’, ‘연수생’이므로 정당한 노동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근거였는데 이는 가장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는 유효한 측면이 있는 제도 개선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입법청원 운동의 과정에서 대학 대동제에 연대캠페인을 조직하고 대중적 서명과 선전전을 수행함으로써 이주노동자 이슈에 대한 대중적 파급력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이런 류의 입법청원운동은 투쟁을 통하여 양보할 수 없는 노동자적 권리를 쟁취하고 노동자의 단결, 조직화의 성과를 거두어 내는 투쟁방식이 아니다. 동시에 내용적으로도 한계를 노정하였는데, 법제화시켜 제출하는 입법청원운동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자본의 관리와 통제를 용이하게 하는 수준에서 제기되었다. 특히 노동자의 요구안이어야 할 법안의 내용에 대하여 당사자인 이주노동자 대중으로부터 수렴하고 교육하는 과정은 많은 부분 생략되었다.

(2) 당면 정부의 고용허가제 법안추진 상황

입법청원 운동이 이주노동자의 조직화와 지속적인 권리쟁취 투쟁으로 상승발전하지 못한 채 96년도에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2000년 15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끝나면서 한낱 휴지조각으로 생명을 다하고 말았다. 연수제도를 폐지한 후의 입법 대안으로 제기되었던 고용/노동허가제의 문제의식 역시 대중화되거나 깊이를 더하지 못한 채 답보하다가, 정부가 ‘외국인력 고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도입한다는 계획을 추진하자 재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고용허가안은 노동자의 측면에서 법적 권리를 규정할 수 있는 노동허가적 측면은 철저히 배제된 일방적인 고용법에 불과하다. 현 정부가 발표한 입법내용은 96년도에 제기되었던 ‘외국인노동자 보호법’이나 심지어 당시 여야당 각각 의원입법안으로 내었던 안보다 훨씬 후퇴한 법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 상담지원단체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이주노동운동의 대리세력들은 ‘연수제도’가 폐지되는 것에만 의의를 두고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이 유실된 정부의 입법계획이 성공하길 바라고 있다. 새로운 법안이 진정 노동자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보다는, 연수제도가 폐지되면 많은 기득권을 상실하게되므로 ‘연수제도를 유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중기협(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의 훼방작전을 저지하고 정부의 입법 계획이 잘 수행될 수 있도록 기원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 법이 통과될 경우 20만여명의 불법체류 미등록 노동자는 아무런 대책없이 강제추방에 내몰릴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외국인력 도입 정책을 수립하여 불법이 합법보다 훨씬 많이 존재하는 한국의 노동시장을 재편‘하면 ’이주노동자 권리에 대한 법적 보장이 확대될 수 있다‘는 단계론을 펼치고 있다. 이 단계의 진전을 위하여 현재의 불법체류 미등록 노동자의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현 정부 안과 같은 졸렬한 고용허가법안은 ’단계‘가 아니다. 현재의 노동자에 대하여 폭력적인 구조조정(추방)을 행하는 계획이며 이후에 들어 올 노동자에게 지금상황보다 더 심한 통제와 억압의 장치를 가지고 있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 보호법‘ 입법투쟁 이후 현재에 이르는 상황은 노동자 권리에 기반한 조직적 투쟁 없이 즉 노동자가 주체가 되지 못한 법제도투쟁의 귀결을 여실히 증명하고있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권리침해에 대하여 늘 ’대리‘하여 ’해결‘하는 수준을 뛰어넘지 못해왔던 현재까지의 이주노동운동의 지반의 한계이다.



4. 현시기 이주노동운동의 과제

       - 이주노동운동의 핵심적 극복과제 3가지를 중심으로


1) 방식과 요구에서부터 경제주의 투쟁을 극복하여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하여 사회권적인 인권의 개념 또는 노동자 일반적 권리의 측면으로 확대하지 못하고 협소한 자유․평등주의적 인권의 개념으로만 바라보고 인권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이를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방식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법제도 개선운동이다. 법제도 개선투쟁은 노동자의 권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이며 충분히 의의가 있다. 그러나 법제도 개선투쟁의 목적은 추상적인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산재보상을 잘 받을 수 있고 임금체불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이제까지 한국 노동자들이 투쟁해 오면서 자신의 투쟁을 몇 푼 더 받자고 한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고자 했던 것처럼 이주노동자 역시 “권리”와 “노동자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노동자에게 가하는 인권탄압과 착취에 대항하는 계급적 저항의식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정신이 없는 몇가지 제도개선은 이의 달성을 위한 로비와 타협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2) 대리투쟁을 극복하고 이주노동자 중심의 주체를 형성하여야 한다

한국 정부는 국내외적인 비난이 쏟아질 때 마치 선물상자처럼 ‘종합대책’을 내놓았었다. 94년도에 ‘불법취업 외국인 보호 종합대책’이 그러했고 최근의 ‘외국인력 고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 상자를 열어보면 아무 것도 없다. 필리핀 노동자들의 말에 의하면 정부의 대책은 “배고프다고 우는데 사탕을 주는 정책”이며 “우리 이주노동자들에게 개목걸이를 걸려는” 통제의 정책일 뿐이다. 이제까지는 이주노동자 당사자가 없는 이주노동운동이었기에 몇몇 선량한 단체들의 지원과 대리투쟁이 이주노동자의 삶을 결정지어왔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의 단결된 힘과 노동자적 연대의 힘일 뿐이다. 불법체류 미등록 노동자이고 연수생이라는 그들의 존재지반이 그들의 단결과 투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것이 여타 다른 한국 노동자보다 열악한 존재지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이 단결하고 투쟁할 때 그들에게 돌아 올 것은 해고와 구속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추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기에 이주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힘을 모으고 투쟁할 수 있도록 한국노동자들의 든든한 연대와 엄호가 필요하다.

한국 노동자 동지들이 이주노동자들을 이방인 취급하지 않고 같은 형제, 동료, 동지로 맞아준다면 이주노동자들도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지금 출국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이주노동자 동지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싸우다 잡히면 출국당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러한 투쟁의 과정에서 그들이 소박하게 일궈논 그들의 공동체(모임)이 붕괴될 것을 현실적으로 우려하고 있다. 95년 명동성당에서 농성투쟁을 전개한 네팔 노동자 13인은 이후의 강고한 연대와 뒷받침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 뿔뿔이 흩어져 있으며 그들의 공동체는 그 투쟁을 계기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심리적 패배감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한국 노동자동지들이 “동지여, 우리가 있다! 우리가 동지를 지켜주겠다. 함께 싸워서 동지들의 생존권, 노동권을 쟁취하자”고 얘기하자. 그러면 이주노동자들은 두려움 없이 싸울 것이며 자신들의 권리만이 아니라 한국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한 싸움에도 결합할 것이다. 국적은 달라도 노동자는 하나다! 이주노동자와 한국노동자의 단결! 투쟁!

미국에서는 올해 6월에 노총(AFL-CIO) 주도로 2만명이 모여 이민법 개정과 이주노동자들의 영주권 취득을 위해 싸웠다고 한다. 우리도 미국 노동자들처럼 할 수 있다. 전국의 노동자 동지들이 이주노동자 투쟁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해서 민주노총에 요구한다면 국적을 초월한 노동자연대의 새지평을 열 수 있다.


3) 기만적인 고용허가제에 대한 논평을 넘어서서 실천적 투쟁에 나서자

우리 이주노동자 투쟁본부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생존권이라는 정신으로 정부의 고용허가 법안에 대한 문제제기 수준이 아니라 맞서 싸울 것을 노동운동 진영에 호소하고 있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 쟁취, 계약제가 아닌 정규직 취업, 고용연장 및 고용중지 철회를 요구하는 쟁의행위 금지 조항 반대, 완전한 노동3권 쟁취, 의료․산재 등 사회보험 적용, 불법체류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원사면과 합법적 체류, 취업의 자유 보장 등의 요구를 수없이 반복해서 제기해왔다. 그러나 외노협 주류와 민주노총 중앙은 실천 투쟁 없이 정부의 안을 올해 안에 받아들이는 것을 골자로 하여 비판적 문제의식만 전달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구조조정에 노동자가 연대하여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함께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자본의 분할지배전략에 맞선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민족과 인종의 차이를 넘는 노동자 국제연대의 구체적 실현의 장이 바로 지금 한국 땅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왜 우리는 함께 싸울 수 밖에 없는 운명공동체인가?

세계 어느 정부나 마찬가지이지만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도입하는 것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기 싫어하는 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을 시키기 위해서다. 3D 일을 시키고도 아주 적은 임금만 줄 수 있고, 쟁의행위도 못하게 할 수 있다면 자본이나 정부로서는 더없이 좋을 것이다.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인노동자들을 비정규직과 정규직처럼 분할시켜놓고 서로 경쟁하게 만들면 임금을 낮추고 근로조건을 개악하면서도 노동자의 저항을 막을 수 있다. 이렇게 자본에게 큰 이익이 되는데,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주고 계약제가 아니라 정규직으로 고용안정까지 보장하면 경제위기 상황에서 짤라버리기가 어렵다. 이것을 자본은 어려운 말로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다.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못해 불안정하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자본은 “노동시장 안정”을 위해 비정규직을 확대해서 마음대로 썼다 버렸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이 700만명이나 되고 그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노동자는 얼마든지 희생되어도 좋다는 것이 자본의 논리다. 이 자본의 논리에 700만 비정규직만이 아니라 25만 이주노동자가 죽어나가고 있다. 노동자의 논리는 이윤을 위한 희생을 거부하고, 노동권과 생존권을 위해 단결해서 싸우는 것이다. 자본을 위한 “노동시장 안정” 논리를 인정하고 희생을 감수해선 안 되며, “노동자의 안정”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워야 한다. 그런데 외노협 주류와 민주노총 중앙 등은 “노동시장 안정”을 주장함으로써 자본이 이주노동자를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을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하고 있다. 나아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하는 것은 현실 불가능한 것으로 진단한다. 이런 논리접근은 기본적으로 자본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생존권 침해를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이주노동자 투본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생존권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은 이윤을 위해 희생하거나 양보할 수 없다고 분명히 주장한다. 사업장 이동 금지, 계약제, 고용관련 쟁의 금지, 미등록노동자 추방이란 억압적 제도와 탄압을 전체 노동자의 힘으로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와 자본은 이주노동자가 가장 손쉽게 억압할 수 있고 투쟁을 해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렇게 힘없는 노동자들, 이랜드 노조, 한성CC, 보험모집인 노조, 삼창플라자 노조,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등의 대오가 연대를 기반으로 힘을 갖지 못한다면 그 다음엔 700만 비정규직에게 날라올 칼날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주노동자 투쟁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인 것만은 아니다. 이 투쟁은 700만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확대강화하는 것이며, 관료화의 위험성이 커지고 있는 한국 노조운동을 계급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이주 노동자투쟁의 승리는 700만 비정규직 노동자투쟁의 승리이자 1300만 노동자들의 승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세계 노동자들의 값진 승리가 될 것이다. 우리 <이주노동자 투쟁본부>는 항상 투쟁전선에 동지들과 함께 서 있을 것을 결의한다! 

한/노/정/연


1) 산업예비군은 불황기와 평균적 번영기에는 현역 노동자군을 압박하고 과잉생산과 호황기에는 현역노동자군의 요구를 억제한다. 따라서 상대적 과잉인구는 노동력 수요-공급법칙이 작동하는 중심축이다. 상대적 과잉인구는 자본의 착취와 지배활동에 절대적으로 적합한 한계 내오 노동력 수요-공급법칙의 작동범위를 제한한다.(Marx, 1867 : 설동훈, 노동력의 국제이동에서 재인용)


2) “자본주의 역사는 … 前 자본주의적 경제를 시장의 힘 혹은 물리적 폭력으로 파괴하고 그 인구를 프롤레타리아트화 시킨 사례로 점철되어 있다. 맑스는 19세기 중반 영국이 아일랜드인 노동자를 충원한 것을 전형적인 사례로 제시한다. 영국자본은 아일랜드에 진출하여 수많은 농민들을 과잉인구로 만들어 영국으로 불러 들였고 , 또 신대륙의 식민지로 송출하였다.”(설동훈, 노동력의 국제이동)


3) 흔히 신자유주의와 현대자본주의는 혼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신자유주의란 ‘사회보장 정책’ 등을 폐기하고 노동자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는 현대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나 ‘정책’을 의미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이데올로기나 정책의 밑바탕에 있는 경제적 토대(자본주의 모순)를 간과하고, 정책만 바꿈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이 대중적으로 익숙한 것 같지만 현대자본주의라고 정확히 쓰고자 한다.


4) 역사적으로 볼 때 일단 서유럽과 일본의 산업적 장치들이 재건되고, 기술적 조직적으로 미국적 표준을 따를 정도로 되자,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거대한 팽창이 근거하고있던 자본축적의 주요 중심들 사이의 협력적 관계는 강도 높은 상호 경쟁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노동과 에너지의 투입가격 상승은 한편으로는 노동 생산성보다 빠른 임금 상승을 다른 한편으로는 오일쇼크 등으로 인한 1차 상품의 상승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윤율 저하와 수익성의 저하는 심화되고 그것을 만회하려는 이윤량의 확장전략도 일정한 한계에 부딪혔다. (사회진보연대,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위기)


5) 1982년, 멕시코 외채위기 및 외채 상황 유예선언으로 미국 은행들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6) ‘위기적 축적체제’ 설(說)이란 위기적 축적체제는 산업에 일정한 기반을 두고 있지만 금융에 의해 지배되는 특이한 형태의 축적체제이다. 이러한 축적체제에서는 산업과 금융이 주식시장을 매개로 결합되는데, 이 때문에 생산부문에서는 정리해고 등으로 표현되는 다운사이징이 추진되고 유연화와 린-생산 도입 등의 착취도 강화 및 자본의 비용 절감 노력이 진행되지만 그것의 목적은 생산의 팽창뿐만 아니라 이러한 경영혁신의 결과 예상되는 주가 상승에도 두어진다. (프랑스와 쉐네, ‘금융 지배적인 세계적 축적체제의 출현’)


7) 한국의 ‘현지법인 연수생제도’라는 것이 대표적인 노동력 추출 이용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현지에 기업을 세우고 현지인에 대한 기술교육이라는 명분으로 한국 공장으로 들어오게하여 현지 수준의 월급을 주며 노동하게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에 의해 96년도엔 월급 4만원짜리 이주 노동자가 있었으며 2000년도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월급 20만원짜리 노동자가 있다.


8) “ 외국인혐오적인 민중주의 운동은 사회적 지위와 일자리가 가장 위험에 처한 국민계층 사이에서 특히 눈부신(?) 성과를 얻고 있다. 프랑스의 상황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전선은 1997년 선거에서 몇몇 선거구에서 30%를 득표하였다. 또한 젊은층(오스트리아의 경우 30세 이하 가운데 35%)과 종교가 없는 이들, 투표 불참자들 가운데 이들 운동에 대한 뚜렷한 지지가 보이고 있다.  --(중략) ---  벨기에에서는 프랑드르 블록이 자신에 대한 지지의 대부분을 미숙련노동자 층에서 이끌어내었고 1999년 오스트리아 선거에서는 블루칼라 노동자의 48%가 자유당에 표를 던져 이 계층의 대변자로서 자유당을 다른 정당들에 앞서게 만들었다. 독일의 경우, 정치평론가 패트릭 모로는 1996년 지방선거에서 공화당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지를 17%로 잡고 있다. 그는 극단주의 운동에 대한 지지와 낮은 노동조합 가입률, 실업의 경험, 대가족, 사회복지에 대한 의존, 불충분한 교육 등이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극우파가 각각 9.8%와 15.3%를 득표하고 있는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경우 실업과의 가시적인 연계는 존재하지 낳는다. 이들 나라에서 극우파에 대한 지지는 자영 기업인과 점차적으로 노동자층에서 나오는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진보당들이 사회민주당을 앞질러 지도적인 노동자 정당이 되었다. 가능한 하나의 설명은 부르주아지 정부나 사회민주당 정부 모두에서 복지국가가 동등하게 잘 이루어진 나라들에서는 좌파에 대한 노동계급의 충성이 침식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전통의 일부의 권위주의적 요소가 가능한 유일의 출구로 새로운 우파로 전환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역설에 마주치게된다. 본질적으로 민중으로 구성된 선거민들이 어느 정도건 민족주의적,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채택하는 후기 산업주의적 극우 정당들에 투표를 하고 있다. 이들은 간략히 말해 자유무역주의자들이다.” (이브 카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PICIS 인터내셔날 뉴스 92호에서 재인용)


2000-11-19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4&no=9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