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학생발언대 |
현장에서 미래를 제112호
|
|
조투
|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조투 / 학생사회주의정치연대 활동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참 친숙한 말이다. 동네 후배가 입시시험을 보고나서 한숨 섞인
목소리로 한탄할 때 자주 들었거나, 올림픽에 참여했던 수많은
선수들의 인터뷰에서 많이 들었던 말인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자주 듣는 말은, 결과보다는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으로
평가받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레파토리를 지난 9월 8일, 2005 현대자동차 임금단체교섭
잠정합의안을 도출하자마자 이상욱 위원장 동지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운동을 한참 배워가는 사람이다. 제일 처음에 몸과 머리로
체득한 것은 -투쟁가의 가사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듯이- 자본과
노동 사이에는 평화란 없다는 사실, 매 순간순간이 전쟁터라는
사실이었다. 아직 전쟁터로 진입하기 직전의 학생 신분이라
솔직히 삶의 순간순간이 전쟁인 노동자 선배동지들께 할 말도
있고, 못할 말도 있지만, 그리고 또 운동을 배우는 학생이라는
나의 신분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어 이렇게 글로 풀게 되었다. 내
골머리를 아프게 한 고민거리는 바로 ‘임단협 타결 나흘 전에
류기혁 열사가 자결한 상황에서, 원래 임단협 때 다루기로 했던
불법파견 문제는 한달 뒤에 다루기로 한 상황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이 과연 어울리는가’ 였다.
전국에 수많은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들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규모나 의미 면에서 매번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리전
양상을 나타낸다고 이목이 집중되었고 지금도 집중되고 있는
곳은 분명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의 불법파견 철폐
투쟁이다. 지난 3년여의 조직화 작업을 거치고 올해 초 1월
12일과 18일에 결의대회를 통해 잔업거부 투쟁에 돌입하였었다.
나도 부족하나마 단위의 학생들과 울산으로 순회투쟁을
다녀왔었다. 서울로 돌아가려던 날 운이 좋게도 전노투
울산위원회와 김태곤 수석부위원장 동지와의 간담회(?) 전에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금속
노동자 대오 3000명도 쉬이 뚫지 못한다는 현대자동차의 정문을
유유자적 걸어 들어간 것이다. 김태곤 수석부위원장과의 간담회
전에도 가지고 있었던 의문점은 왜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의 잔업거부 투쟁에 힘차게 함께 하지 않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 같은 학생도 불법파견 철폐 투쟁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있는데 설마 정규직 노조의 활동가가 노동운동
역사 속에서 이 투쟁의 승리 혹은 패배가 지닐 의미와 상징성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의미와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리가 만무하다. 그러한 말들이 실천적으로 증명이
되느냐로 언제나 문제의 핵심은 귀결되었다. 수석부위원장 동지
역시 투쟁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하셨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공동투쟁의 중요성도 역시 강조하셨다. 그렇다면, 왜
실천적으로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안 비춰지는 지에 대한 원인은
다음에 하신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비정규직노조가
정규직노조와의 상의도 없이 투쟁을 벌려 놓고 정규직노조에게
같이 책임을 지자고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1시간여 짧은 시간의 간담회였지만 그 자리에서는
“노동자는 하나”라는 말도, 노동자의 무기는 “단결과
연대”라는 원칙도 그저 구호에만 그칠 수밖에 없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활동 지역이 주로 서울인지라 그 이후 울산에 자주 찾아가보진
못했다. 그러나 필요한 순간에 계속적으로 연대를 진행해왔었고,
지인들을 통해 소식을 접하기도 하였다. 지난 2월
원하청연대회의가 구성되고 나서도 계속 들려왔던 소리는
한결같이 정규직 노조의 비정규직 투쟁 방기였다. 2월 투쟁에서
6월 투쟁으로, 6월 투쟁에서 8월 투쟁으로, 8월 투쟁에서 10월
투쟁으로 “미루자”라는 노조 집행부의 말뿐만이 불법파견 철폐
투쟁과 관련해서 뚜렷하게 들은 것일 정도이다. 그러던 와중
지난 8월에 며칠 울산에 머문 적이 있다. 사실, 그 전까지는
특별교섭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불법파견 문제를
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임단협에서 해결을 보겠노라고
언급했다고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어리석게도
특별교섭이란 것이 말 그대로 더욱 ‘특별’하게 다뤄지는
안건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임단협의 경과를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특별’하긴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특별’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별교섭은 본교섭과 다른 테이블이었던 것이다.
23차까지 진행되었던 본 교섭과 달리, 8차까지 진행되던
불법파견 특별교섭에서는 사측이 단 한번도 제대로 나온 적이
없고 그 기간 중 관리자들을 동원해서 농성장 침탈을 수차례
진행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특별교섭을 통해 1개월 이내에
불법파견 문제에 해결하려는 자신감은 어디에 기인하는지
궁금하다.
지난 1월 김태곤 수석부위원장 동지는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정규직 정서’를 운운하며 비정규직 투쟁에 말처럼 쉽게
나서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 이후 많은 노력을 통해 정규직의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다. 하지만 ‘정규직
정서’라는 것을 고착화시키는 큰 요인 중 하나는, 사측의
이데올로기도 있겠지만 ‘정규직 정서’를 이유로 투쟁을
관조적으로 인식하는 정규직 노조 집행부에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적을 두고 있는 학생운동은 쇠퇴기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다 저렇다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운동 하나할 것 없이 대중의 정서를 운운하며 요구되는
활동을 회피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 3월 이례적으로 수백 명의 학생들과 20여일의
대학본부 점거농성을 진행할 때에도 학내 운동진영의 곳곳에서는
대중의 정서 운운하며, 시기와 절차를 운운하며 당면 투쟁을
회피하거나 자신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결론적으로 투쟁에 훼방
놓던 세력들이 존재한다. 내가 속해 있는 단위의 현안 투쟁이란
것을 어찌보면 처음으로 가열차게 진행해본 터라, 당시의
투쟁에서 느낀 점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분명했던 것은 수개월,
수년 동안의 활동에 점을 하나 찍고 올라서야만 했으며, 그러한
시기의 가열찬 활동이 대중의 정서를 바꿔낸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월의 간담회에서도 물어봤던 말이지만,
문제분석이 정규직 정서라면 그것을 바꾸기 위해 도대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들어보고 싶다.
나는 이 글을 보는 다른 선배활동가들 보다 분명히 경험이
적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붓글씨를 전혀 쓸 줄 모르는
사람도 잘 쓴 글씨와 못 쓴 글씨를 구분할 수는 있다고 믿는다.
너무나 명백한 잘못은 가려낼 줄 아는 것이다. 물론 비정규직
노조 내부적으로도 지난 철탑농성에 대한 것을 비롯해서 각종
악선동이 난무하고 분열이 존재하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 노조 집행부는 스스로가 한 말을 지키는 것을 비롯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역할을 수행했어야만 하고, 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류투성이의 아마추어인 학생들도 서로의 관점이
다르다 할지라도 각자의 단위와 위치에서 공동의 과제로 선정한
것에 대해 수행해야할 기본적인 활동을 져버리지는 않는다.
힘겹게 싸우고 있는 전국의 선배동지들에겐 죄송하지만 대학
생활 4년, 운동 경험 4년 동안 나는 사실 요즘이 가장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뜻을 같이하고 힘차게 함께 활동하는 진짜
“동지”가 곁에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그날에 대한 언급은 잠시 미루더라도, 운동의 원칙들이 무너진
세상에서는 나의 기쁨은 결코 오래 가지도 않을뿐더러 진정한
기쁨도 아닐 것이다. 세계 역사의 유례가 없는 7년 동안의
정치파업이라는 현대중공업 투쟁과 더불어 남한 노동운동의
역사를 이끌고 있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게 후배로서,
학생으로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노동자는 분명히 하나이며, 단결과 연대가 유일한 무기라는
운동의 원칙을 다시 한 번 멋있게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
|
2005-09-28 00:00:0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