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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한발 또다시 전진이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27호
육화선


육 화 선 / 아남산업화양동공장 노동조합 위원장
현장통신 1
한발 한발, 또다시 전진이다





아남산업노동조합은 법인은 같은데 화양동공장, 부천공장이 88년 각각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부평공장이 91년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그래서 아남산업에는 화양동, 부천, 부평공장 이렇게 3개의 노동조합이 있다. 노동조건과 임금조건이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92년까지 임금교섭을 각 공장별로 진행해서 한 사업장의 타결여부에 따라 투쟁이 정리되어 많은 문제가 발생했었다. 이에 93년부터는 공동테이블을 요구하고 공동요구, 공동투쟁을 진행해왔다. 교섭테이블이 같지는 않지만 아남정공과도 공동요구와, 공동투쟁을 전개해 왔다.
초기에는 많은 조합원이 있었지만 신경영전략의 도입과 자본의 탄압을 막아내지 못함으로 인해 현재는 아남4사 8,000여명의 노동자 중 조합원이 350여명뿐이다. 극소수의 조직된 노동자들과, 노동법개정투쟁에 대한 패배감으로 투쟁을 기피하는 조합원들과 97년 임단투를 치러내는 것은 처음부터 힘겨웠지만 무리하게 요구를 잡지 않고, 소수의 조합원이라도 투쟁을 통해서 의식과 역량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97년 임단협을 시작했다. ‘노동조합 사수’, ‘격주휴무제’, ‘78,488원 인상’을 주요 슬로건으로 시작한 임단협은 회사측의 100여 개가 넘는 개악안 제출과 노조사수투쟁으로 4개월에 걸쳐 진행되었다. 특히 올해의 임단협은 노조사수의 절실한 요망으로 금속연맹에 교섭권을 위임하고 금속연맹과 아남4사가 공동교섭을 진행하였다. 자체교섭 9차, 공동교섭 13차로 8월 19일 협상은 마무리되었고, 아직 전체적으로 평가가 끝나지 않았지만 부족하나마 97임단협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화양동 공장 상집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본다.


목표는 소박하게, 투쟁은 결사적으로

처음부터 무지막지하게 치고 들어온 회사측의 공세는 우리를 더욱 강하게 하였고, 뭉치게 하였다. 노동법개정투쟁의 후유증을 씻어내기도 전에 부담스러운 단체협약개악안을 물리쳐야만 했던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이번 투쟁에서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욕심을 내지 말자, 그러나 싸움 앞에 몸 사리지는 말자’는 굳은 결의를 갖고 죽기살기로 시작하였다.

97임단투의 목표는 첫째, 조합원확대 강화 둘째, 상집역량 강화를 통한 97임단투승리 = 힘있는 5대 집행부 출범이었다. 상황이 어려워 활동의지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간부들이 모범적으로 투쟁을 준비해 나가기로 결의하였다. 조합원 확대강화는 ‘조직강화특별위원회’, ‘라인대표 회의체계운영’, ‘실천단운영’을 통해, 상집역량강화는 학습, 선전선동 훈련과 임단투에서의 실천투쟁을 통해 이룬다는 것이 올해 우리의 목표였고 계획이었다.
상집역량강화를 위한 학습은 1단계 철학, 2단계 경제학, 3단계 정치학 (정치세력화에 대한 내용으로)으로 잡고, 간부 모두 하루의 반은 일과 활동으로 반은 학습으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 서로를 확인해 갔다. 그러나 임단투가 어려워지면서 잦은 긴급회의와 발빠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 되자 불가피하게 학습을 할 수 없는 조건이 되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코 학습시간은 침범하지 않기로 결의한 바 있으나 하반기를 기약하며 학습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다. 점검을 통해 사업의 지속과 중단, 마무리를 결정하는 것은 이후 활동을 보다 계획적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해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라인대표 회의체계운영
라인대표의 운영과 내용은 첫째, 학습, 둘째, 조직화를 위한 실천적 고민과 방안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라인대표회의는 현장을 연결하는 중요한 조직체계임에도 불구하고 운영이 잘 되지 않고 있다.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는 회의가 진행되지 않는 것은 구성원의 상태에 대해 꾸준히 점검하지 못한 점과 프로그램이 현실과 잘 결합되지 않은 데에 있다. 그로 인해 점차 흥미를 잃어 참여율이 저조해지고 회의를 포기하는 상태까지 되었다. 물론 현재의 조직수로 라인대표를 운영하기에는 균형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라인대표로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조합원들이 있기 때문에 라인대표회의와 상집회의를 통해 라인대표체계 자체에 대한 평가와 한계를 점검하고 존속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실천단 구성
임단투 과정에서 가장 투쟁의 분위기를 높이고, 모범적인 실천투쟁을 조직해가야 할 실철단 구성은 준비기 처음부터 힘을 싣지 못했다. 그것은 지난 겨울 힘겹게 싸운 노동법개정 투쟁이 조합원들에게는 패배의 쓰라림으로 자리잡혀 있고, 그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임단투를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상집간부들은 96년 실천위원회의 운영에서 미흡했던 쉬프트 ― 아남산업화양동공장은 3교대제로 각 교대조를 쉬프트라고 한다 ― 간의 연결, 상집과 실천위원회, 실천위원회와 조합원들과의 결합을 평가하고 보완하는 측면에서 구성을 논의하였다. 보완책으로는 실천단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내용을 생산해 내는 정책국을 운영하기로 하였다. 정책국에는 교섭위원들과 각 쉬프트장을 구성원으로 하여 내용을 만들고, 만들어진 내용을 실천단이 쉽고, 똑같이 이해할 수 있도록 위원장과 쉬프트장이 쉬프트회의에서 진행해야 할 내용을 점검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각 쉬프트별로 조합원들이 고루 분포되어 있지 못하고 소수의 조합원만 있는 쉬프트가 있어서 회의를 운영하지 못한 어쩔 수 없는 한계도 보였다. 게다가 회의가 가능한 쉬프트에 대해서도 내용적 담보가 이루어지지 않아 열심히 토론한 실천단운영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몇몇 쉬프트는 항상 함께 활동함으로써 실천위 운영의 모범을 보여 주었고, 어려운 임단투 상황을 극복하는 데에 훌륭한 역할을 하였다.

조직강화특별위원회
노동조합이 내부적인 문제를 안고 활동한지 어언 1년 반이 되었다. 이제는 분열로 상처받고 활동을 중단했던 조합원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상집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조강위를 구성하고 조합원의 고민을 조직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불신과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면서 임단투에 결합할 수 있는 계기를 차츰 늘려나가게 되었다. 조강위의 구성원들은 비록 작지만 성과가 확인되면서 더욱 의욕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단결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소수의 인원으로 임단투를 진행하는 바쁜 와중에 어느 순간 조강위의 진행이 멈춰버렸다. 책임단위의 꾸준한 점검과 단계별 계획이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중요한 사업이 방치되고 말았던 것이다. 조강위는 앞으로 재정비를 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다양한 투쟁은 진행되었다

홍보
올해의 특징은 아남4사 노동조합과 회사가 홍보에 주력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예년과 다르게 홍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승부를 걸다시피 하였다. 회사는 교섭결과와 눈에 띠는 주제설정으로 발빠르게 논리를 펴나갔다. 사원들에게 꽤 먹히는 부분도 많았고, 간부들조차 수긍하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의 홍보물은 노동조합의 현장장악력이 없는 속에서 그 영향력을 더욱 발휘하였다. 비조합원들을 겨냥한 홍보투쟁은 팽팽했다. 홍보의 홍수 속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대자보, 소자보, 임단투소식지 단협소개 등 홍보에 많은 역량과 시간을 쏟았다. 그러나 교섭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면서 교섭내용을 중심에 둔 우리는 다양한 임단투의 내용을 활용하지 못해 비슷비슷한 홍보물이라는 지적도 있었고, 특별하게 비조합원들의 관심을 꾸준히 만들어 내기가 역부족이다 보니 홍보물을 적대시하는 사원들이 늘어나 버리거나 쌓아놓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그러나 어려운 조건에서도 지속적인 홍보로 활동하는 조합원들에게 많은 힘을 준 점에 대해서는 모두들 동의하였다.

공동교섭
단협개악안을 철폐시키지 못하고 교섭이 난항을 거듭하던 상황에서 새롭게 제기된 공동교섭 전술은 지도부에게 희망과 부담을 동시에 안겨주는 내용이었다. 연맹과 단위노조가 함께 회사를 상대로 교섭을 한다는 것은 힘이 되는 사실이 아닐 수 없었고, 놀라운 사실이기도 하였다. 상급연맹에서 2명의 교섭위원과 사업장에서 1인의 교섭위원이 교섭단으로 꾸려져 공동교섭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아남4사 노동조합은 현재의 역량으로는 단협개악안을 철폐하기 힘든 조건임을 공유하고, 공동교섭을 통해 새로운 투쟁의 전환점을 만들고 기필코 승리하자는 굳은 결의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보고대회, 입체적인 홍보(사진전, 교섭위원소개 등), 공동교섭지지 서명 등으로 공동교섭에 대한 관심을 높여 나갔다. 공동교섭은 아남 내의 조합원, 비조합원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교섭을 주목하게 하였다.
그러나 아남노동자에게 대단한 기대와 희망으로 다가왔던 공동교섭은 처음의 희망처럼 좋기만 하지는 않았다. 공동교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간부들은 연맹이 모든 것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은연중에 갖고 있었고, 조합원들은 무엇을 함께 해야 하는지 다양한 내용을 전달받지 못한 채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불만은 ‘연맹과 간부들이 임단투 다한다’는 목소리로 조금씩 표출되었다. 더구나 대책회의나 기획단 회의는 간부들과 조합원들에게는 너무도 높아만 보이는 새로운 벽이었다. 논의내용이 너무 수준 높게 진행되면서 조합원과 간부들은 전달받기만 해야했기 때문에 거리감은 더욱 컸고, 결정사항에 따른 실천을 하기에만 바빴다. 단위사업장에서 조합원들과 임단투를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그 상황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달렸는데 우리는 내용을 만들어 내는 데 미숙함을 보였다. 또한 공동교섭을 통해 산별의식을 높여 나간다는 당초의 목표도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단위사업장의 교섭력을 높이는 수단으로만 공동교섭을 바라보는 경향이 드러났다. 그러나 공동교섭을 진행하면서 배치한 연대집회는 다른 사업장의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연대의 힘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었다.

선전선동교육
임단투시기 상집역량강화 사업으로 배치한 선전선동교육은 간부들이 올 임투에서 얼마나 많은 역량을 발휘할 것인 지의 의지를 굳건히 하는 것과도 맞물리는 사업이었다. 상집의 굳은 의지와 훈련을 통한 자신감으로 다소의 차이를 보이기는 하였지만 예년에는 교섭위원들 몇 명이 하던 선전선동을 간부 10명이 모두 하였고, 그에 자신감이 붙은 조합원들도 함께 하여 선동역량을 강화시켰다. 하지만 조합원의 투쟁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의식교육은 ‘임단투 정세’와 ‘단협개악안 비교설명회’ 뿐이었다.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그때그때 필요한 내용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공동교섭은 단위사업장의 투쟁력을 배가시키기 위한 전술이라는 측면 외에도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역사적인 투쟁이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도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

현장집회
앰프를 구입해서 사용한 덕분에 출퇴근 투쟁이나 식당 보고대회시 선동의 내용을 좀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고, 관심을 모아나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문화패가 없어서 시선을 집중하는 프로그램을 배치하지 못해 예년과 같은 집중을 유도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단식농성장 앞에서 퇴근시 ‘5분 집회’는 효과적인 배치였다. 위원장과 사무장의 단식투쟁으로 간부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더욱 헌신적으로 투쟁에 임해 단식하고 있는 위원장과 사무장이 오히려 간부들의 모습을 보고 힘을 얻을 정도였다. 조합원들은 조합원 아사투쟁을 마음속으로 준비할 정도로 결연히 투쟁에 임했고, 단식농성장을 중심으로 비조합원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갔다. 그것이 ‘5분 집회’였고, 간부들과 조합원들이 돌아가며 선전선동을 하는 모습은 조합원들에게 큰 힘이 아닐 수 없었다. 첫날은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삼일 후 150여명의 비조합원이 투쟁에 동참하는 쾌거를 만들어내 조합원들에게 하면 된다는 새로운 의지를 되새기게 했다. 그러나 참여하는 비조합원들에게 가해지는 개별적 탄압에 대해 노동조합이 대응하지 못하면서 조직적 결합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보고대회도 꾸준히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날, 그 주의 분위기에 따라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특히 예전에는 ‘조합가입의 날’에 신규가입자가 있었지만 올해는 준비를 제대로 못해 신규가입자가 한 명도 없자 상집과 조합원의 의욕이 떨어져 ‘조합가입의 날’ 이후 보고대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상황이나 상태에 따라 보고대회를 했다, 안했다 하는 것은 비조합원에게 신뢰를 줄 수 없는 행동이고, 임단협 마무리보고대회도 교대조에 맞게 3회를 해야 하는데 1회밖에 하지 않은 것도 책임 있는 노동조합의 자세는 아니라고 평가한 뒤 앞으로는 절대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기로 결의하였다.

투쟁전술
투쟁전술은 점차적으로 상승할 수 있도록 잘 배치되었다. 조직력이 확대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합원의 투쟁이 축소되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하였는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조합원들이 투쟁방침에 따라 라인에서 싸운 것이 대단하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라인싸움을 조직적으로 배치한 것에서부터 무진복에 몸벽보 하기, 라인에 대자보 플랭카드 붙이기, 비조합원과 함께 라인에서 대자보 꾸미기, 기계에 깃발 꽂기, 단식투쟁 등 순차적으로 다 싸웠다. 물론 이러한 전술은 SOIC 라인을 중심으로 한 투쟁이어서 조합원이 소수인 라인은 함께 하기 힘들고, 외롭게 싸워야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투쟁형태를 경험한 조합원들은 어떻게 싸워야할 지를 알기 때문에 이후 자신의 라인에 맞는 투쟁을 스스로 결정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준법투쟁의 경우, 다양한 내용을 해보려는 노력이 없었다. 작년과 똑같이 붙이고, 꽂고, 쓰고, 비조합원의 참여를 이끌어내기에만 급급해서 과감한 시도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지 못했다. 준법투쟁이 비조합원이 쉽게 동참할 수 있는 낮은 수위의 전술만이 아니라 투쟁의 분위기와 수위를 높이는 전술로 활용될 수 있기 위해서는 준법투쟁의 상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간부순회 파업
간부순회파업은 작년에 열심히 해서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배치되었지만 준비를 하지 않은 티를 벗을 수는 없었다. 물론 노란 모자, 노란 우비를 모두 착용하여 일치감과 단결력을 과시하면서 이미지를 변신한 것은 예상 밖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주요 간부들의 선도투쟁이라는 의지를 담아내기에는 너무도 허술하였다. 간부순회파업시 제일 바빠야 할 간부들의 입에서조차 시간이 너무 여유로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선도적인 간부투쟁은 보고대회, 출․퇴근투쟁, 복도순회 이외에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간부들의 순회 파업시 그에 걸맞는 조합원의 투쟁이 배치된다면 그 의미를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부천에서처럼 ‘같이 퇴근하기’와 같은 전술은 간부들의 지도력과 헌신성을 발휘할 수 있고,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전에 배치되는 전술은 아니지만 투쟁과정에서 불시에 생긴 탄압이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확산시키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때 선도적인 간부의 활동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남정공의 폭행건은 여성사업장에서의 폭력행위에 대해 심각성을 부각시키고, 이러한 폭력을 생산현장에서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는 하나의 힘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지만 아남4사 공동투쟁의 중요한 매개가 되었다. 그러나 아남4사 노동조합 간부들 간의 유대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이 없어 결속을 다지는데 소홀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너무 많은 한계,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평가과정에서 한계로 지적된 것은 조합원이 전혀 없는 라인을 조직할 방법이 막연했던 점 ― 조합원 가입대상은 현재 8,000여명인데 화양동 공장의 조합원은 60여명뿐이다 ―, 노동법개정투쟁 이후 계속되는 라인에서의 탄압과 패배의식을 변화시키지 못한 점, 과거에는 비조합원도 투쟁에 동참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올해의 경우는 조합가입과 투쟁에 동참하기 위한 준비가 부족했던 이유로 비조합원을 적극적으로 조직할 수 없었던 점, 따라서 동참하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비조합원의 사고를 전환시키지 못한 점 ― 지금은 개별적인 관리가 심해져 조합에 가입하거나 함께 하고자 하는 엄두는 더욱 낼 수도 없는 조건이 되고 있다 ―, 비조합원을 조직하여 어렵게 투쟁에 동참하면 바로 불이익을 당하는데도 노동조합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점, 계획된 사업이 항상 점검을 하지 않아 매번 실종되는 점, 목표에 맞는 구체적인 사업방침이 없는 점, 평상시에는 조직이 열세여도 투쟁의 시기에는 분위기가 살아났었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구체적 노력을 하지 못한 점은 상집의 역량문제로 나타났다.

총파업 노동법개정투쟁의 패배의식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우리는 어려운 임금인상과, 현재의 역량으로는 한발 앞으로 나가기도 힘든데 100개의 항목이 넘는 사측의 단협개악안을 받아들며, 어려운 출발을 해야 했다. ‘노동조합 사수하자’는 구호는 투쟁의 전면에서 언제나 입버릇처럼 불려졌지만 올해는 더욱 목놓아 불러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공동교섭을 통해 아남4사 노동조합이 진정 공동투쟁이라는 것을 해보았고, 지역과 함께 정문진입투쟁과 연대투쟁도 해보았고, 목숨건 현장진입투쟁도 해보았다. 공동교섭단, 간부들, 조합원들이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수많은 위기를 지혜롭게 넘겨나간 과정은 이번 투쟁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처해진 조건을 변화시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더욱 뚜렷이 조합원들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은 것이 있다. 아남노동자 전체에게 중요한 문제인 임단협을 진행하는 시점에서 예년에는 보기 어려웠던 냉정하리 만큼 큰 무관심과, 행동으로 표출된 노노싸움은 가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리더나 기사, 공고남학생까지는 예상했지만 작업자로 함께 일한 아직 사회 초년생 티도 벗지 않은 생산직 여사원들이 조합원 앞에 구사대로, 적으로 한 몫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조합원들은 삶의 혼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조합원들은 아직도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남노조에서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던 노노싸움이 새롭게 등장한 이상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남노동조합은 아직 힘이 약하다.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회사의 끊임없는 협박과 회유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노동조합을 진단하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는 가운데 발전을 꾀할 것이다. 한/노/정/연

1997-11-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5&no=4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