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구분해서는 안된다. 쟁점: 정규직과 비정규직(1) 기아차 화성공장 투쟁에서 |
현장에서 미래를 제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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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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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정규직과 비정규직(1)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투쟁에서
비정규직 - 구분해서는 안된다
김인식 / 한노정연 편집위원
비정규직 문제는 계급적 단결의 문제
비정규직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받기 위해서 때로는
하나뿐인 목숨마저도 요구받는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노동자들은 10일 넘게 목숨을 건 크레인 농성을
전개했다. 광주전남지역본부는 지역총파업을 통해 이 투쟁을
엄호했다. 그러나 그 투쟁의 성과로 노동조합을 인정한다는
확약서에 만족해야 했다. 금속연맹소속 비정규직노동조합은
대부분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존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하이스코의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비정규직노동조합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룹사 전체의 비정규직 관리를
위해 계열사 차원의 문제 해결방안을 봉쇄하며 통제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현대차그룹 소속의 기아차 비정규직지회가 11월
4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쟁취한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원청·정규직·비정규직 3자
특별교섭 쟁취, 현대하이스코의 노조인정 확약서,
기아비정규직지회의 단체협약 체결 등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에 비하면 미약하지만 일정한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요구인 노동3권 쟁취는
정규직화로 집약되어 있는 현재의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활동을
더 넓혀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민주노총 비대위는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악법 정기국회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 앞 농성투쟁을 결정했다. 11월 22일 저녁 7시
민주노총의 국회 앞 농성 결의대회는 불과 150여명의 조합원만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정부의 비정규직 확대 악법
강행처리라는 절박한 정세보다 현실은 너무나 냉혹했다. 또
냉혹한 것이 있다. 우리 조직 내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우리
내부의 단결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투쟁의 단결보다는 차이와 비판의 날을 더욱 더 세워왔다.
투쟁이 진행될수록 단결보다는 대립을, 성과보다는 문제점을,
자본의 총체적 공세를 막아내기 위한 고민보다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우선순위를 판단했다. 이런 현실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계급적 단결의 문제이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간격을 좁히고 노동자로 단결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지 보여줬다.
먼저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 투쟁 과정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자.
2005년
6월 4일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창립총회
7월 25일 비정규직지회 단체협약 요구안 조합원 총회에서 확정
7월 29일 1차 단체협약 요청(기아 원청사와 하청사장단 22개
업체)
8월 22일 조정기간 종료 통보(조정기간에 기아 원청과 하청업체
22개 업체 처음으로 얼굴 비침)
8월 26일 연맹 원하청 연대파업(기아 정규직 노조 주야 2시간
파업 찬반투표 총회, 비정규직지회 주,야 6시간 파업) -
비정규직지회 파업으로 화성공장 라인 정지
8월 29일 ~ 9월 14일 기아 정규직노조 임투 파업기간,
비정규직지회 공동파업 및 독자파업 진행, 8차 교섭까지 원하청
사측 교섭거부
9월 9일 10차 단체교섭에서 하청 19개 업체 참여
9월 15일 정규직노조 임투 찬반투표(75%로 가결)// 비정규직지회
주,야 6시간 독자파업
원청구사대 400여명 관광버스로 집단 이동, 물대포를
쏘며 파업대오로 차량돌진
9월 28일 비정규직지회 주,야 6시간 독자파업
오후 11시, 용역깡패 200명, 원청구사대 200명 조립
1공장 난입, 폭력난동 상집간부와 조합원 10여명 부상, 입원
9월 30일 정규직노조 10월 7일 노동탄압분쇄와 원하청공동투쟁
승리 파업 찬반투표 공고
10월 7일 쟁의찬반투표 찬성 8,833명, 반대 13,951명
투표인 대비 38.5%, 총원대비 32.5%로 부결
기아 원하청연대회의 성실교섭기간 설정, 12~14차 교섭
진행
10월 19일 비정규지회 주야 6시간 파업
10월 20일 기아차 신성물류 업체계약해지(10/31일자로) 공고
10월 25일 20시 30분 비정규직지회 기습파업 돌입, 조립 1,2라인
중단
10월 26일 신성물류 조합원, 비조합원 40여명 비정규직지회 천막
파손
기아차 본조, 화성지부, 비정규지회 투쟁방향 내부
토론
10월 27일 기아차노조 신성물류 계약연장 및 화성공장내 최대한
고용보장 약속 15시 30분 파업 유보
11월 4일 단체협약 체결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의 특성
기아자동차의 사례 이해를 위해 비정규직 문제의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차이를 먼저 정리한다.
첫째는 비정규직의 존재형태이다.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같이 섞여서 작업하고 있다. 노동부는 1만 명에 달하는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기아자동차는 조립, 장치운영
등 핵심라인은 정규직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비정규직은
간접부서나 지원부서를 중심으로 존재한다. 올 초 기아자동차
현투단을 중심으로 불법파견 진정을 넣지만 2,000명중 44명만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같은 시기 진행됐던 대우자동차
창원지부가 600명 가까이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분명히 차이가 존재한다. 기아자동차는 조립과 핵심라인은
정규직, 간접부서는 비정규직으로 나눴다. 현대차그룹은 같은
계열사이지만 현대차는 혼재된 형태로 기아자동차는
진성도급화시켜 비정규직을 운영해왔다.
기아자동차는 간접과 물류를 진성도급화시켰다. 그 결과
비정규직지회의 파업과 물류의 정지로 공장이 멈췄다.
현대자본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현대자본은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이 추진하는 진성도급화가 불법파견의 대안이 될 수 없고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 그 자체를 깨는 것이, 노동자의 단결을
깨는 것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노동자도 단결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두 번째는 기아비정규직지회 조합원 평균연령은 50대이다. 반면
현대자동차의 경우는 연령이 다양하고 상대적으로 젊다.
기아비정규직 지회의 경우 60세가 넘는 조합원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러한 나이 분포는 비정규직지회 단체협약 교섭
막판까지 쟁점이었다. 사내하청업체는 기아원청의 단협이 58세로
규정되었고 그 이상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자본의 요구에 따라
60세 이상까지 사용하다가 노동조합 건설과 단체협약을 내세워
조합원을 흔들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단협은 정년을 만58세로
정리했다. 단체협약의 적용에 있어서도 2, 3차 업체는 제외됐다.
초기 하청업체의 안에서는 2, 3차 업체라도 조합원이 있는
사업장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교섭이 진행되면서 삭제됐다.
같은 조합원이지만 하나의 단체협약을 적용받을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다.
세 번째는 노조건설과정이다. 기아비정규직지회는 2005년 6월
4일 창립총회 전부터 사내하청 활동가들과 정규직 활동가들의
공동투쟁이 진행되어 왔다. 하청업체의 문제를 놓고 비정규직
활동가와 정규직 현장활동가들이 공동투쟁을 전개한 경험은 노조
건설 이후 현장공동투쟁단이라는 조직적 성과로 수렴됐다.
기아차의 경우 현대차와 달리 정규직 활동가와 현장조직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공동투쟁체를 만들고 공동투쟁의 경험을
쌓아왔다는 차이가 있다. 기아차가 현장을 중심으로 연대하고
공동투쟁을 전개했다면 현대차는 원하청연대회의라는 공식적이고
노동조합 차원의 공동투쟁의 경험을 쌓아왔다.
네 번째는 요구의 차이이다. 존재의 차이로부터 현대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요구는 불법파견 정규직화로 정리할 수
있다. 기아차의 경우 원청과의 단협체결이었다.
투쟁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점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투쟁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점은
무엇인가?
첫째는 정규직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1만 명 불법파견 판정과 16.9%로 상징되는 현대자동차 현장의
정서는 어떨까? 최근 연맹에서 진행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정규직 조합원의 일자리 안정을 위해서 비정규직의 인원감축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50.4%로 절반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조합의 신뢰도는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조가입에는 66%가 찬성했다. 같은 노동자로서 하나의 조직에는
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규직화와 관련해서는 또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회사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에 대해서
물었다. 그 대답은 점진적 정규직화에 46.5%가 비정규직
처우개선에는 찬성하지만 정규직화는 반대에 20%가 선택했다.
시급히 정규직화 돼야 한다는 의견도 28.8%였다. 결국 3명 중
2명은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98년 구조조정의 경험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한 처우 개선에는 찬성하지만
정규직화에는 자신의 고용문제와 연결하여 안전판이라는 생각이
넓게 있다.
그럼 기아자동차는 어떨까?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와 달리
정리해고의 아픔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날을 세우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식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기아자동차의 한 현장활동가는 조합원들의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조합원들은 솔직히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큰 관심 없습니다.
총회결과가 말해주는 것 아닌가요? 9월 28일 회사에 고용된
용역깡패가 현장에 난입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노동조합이 서로 다른 사안을 하나로 묶어서 노동탄압 분쇄와
원청, 하청 연대파업이라고 파업 찬반투표를 붙이니까 조합원
38% 찬성으로 부결됐다. 저는 파업에 찬성한 8,800명에게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합원들도 비정규직이
파업해서 라인이 섰다는 것에는 놀랐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한다.
이 불똥이 신차투입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비정규직의
파업으로 자신이 하는 일 없이 현장에서 대기해야 하는 현실에
불안해한다.”
정규직노조도 마찬가지이다. “아직까지 비정규직 투쟁에서
승리한 사례가 없다”, “비정규직지회가 공동결정, 공동실천,
공동책임의 합의를 어기고 독자파업을 진행했으므로 지회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공동투쟁 파업 찬반투표가 부결났다.
그 결과를 수렴할 수밖에 없다.”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지회와
협상을 했다. 그 협상의 방향은 하나였다. 연대하기가
부담스럽다. 때로는 현장의 정서를 이유로, 때로는 독자파업을
이유로, 때로는 요구의 과함을 이유로 얘기했지만 그것은
연대투쟁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변명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정규직 노조도 인정한다. 그러기에 더 많은 열린 토론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 요구됐다.
두 번째는 자본의 공격에 대한 대응이다.
9월 15일 정규직노조의 임금협상이 조합원 총회에서 75%로
가결되면서 마무리됐다. 총회가 가결되자, 자본의 공격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용자성 문제>
비정규직지회의 초기 목표는 교섭장에 기아원청을 불러오는
것이었다. 사실상의 사용주인 기아 원청과 단협을 체결한다는
것은 어쩌면 정당한 요구이다. 1차 단체교섭 요청서를
기아자동차 원청 사측과 22개 하청사장단에 보냈다. 8월 26일
지회 독자파업으로 처음으로 화성공장을 세웠다. 임투
파업기간에 정규직노조와의 공동파업을 선포했다. 그러자
하청업체 사장단이 교섭장에 나왔다. 하청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기아원청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우리의 힘이 기아
원청을 불러낼 만큼 강하지 못했다. 이 문제는 연맹 내부의
현대차그룹 비정규직노조의 연대와 연맹차원의 공동투쟁이 있을
때 가능한 문제이다.
<계약해지 - 넘어야 할 벽 ->
비정규직 투쟁에서 가장 어려운 투쟁 중 하나가 계약해지
철회투쟁이다. 기아자동차에서 10월 20일 신성물류
업체계약해지(10월 31일자로)를 공고했다. 신성물류는 지회장을
포함한 다수의 간부들이 있는 핵심사업장이었다. 비정규직지회
파업으로 공장을 멈추게 한 힘에는 조립라인에 부품을 공급하는
신성물류가 멈췄기에 가능했다. 계약해지 공고는 단협 체결에서
고용승계 투쟁으로 변화시켜냈다. 조합원 내부에서 고용불안을
조장하고 내부의 단결을 방해했다. 10월 25일 비정규직지회가
기습파업에 돌입했다. 다음 날인 26일 오전 신성업체에서는
고용보장을 내세우며 가든에 불러 모았다. 술을 마신 채
신성물류 조합원, 비조합원 40여명이 오후 3시경 “낼 모래면
해지되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며 비정규직지회 천막을 칼로
찢고 발로 파손했다. 이 사건은 농성중인 조합원들을
위축시켰다. 계약해지가 쟁점으로 부각되었고 계약해지 철회에서
조합원 고용승계로 공장안 승계로 결국은 조합원 54명 공장 내
승계로 밀리면서 정리됐다. 지회의 핵심대오인 190명 업체인
신성물류가 1주일 사이에 파괴될 정도로 계약해지의 위력은
컸다. 반면에 충분히 예상됐던 자본의 공격에 대한 지회의
준비가 너무나 약했다는 것을 또한 보여줬다. 지회의
핵심사업장인 신성의 경우 불과 1주일 남짓에 노조탈퇴로
조합원의 2/3 이상이 떨어져 나갔다.
기아 원청과 업체의 노골적인 조합원 탈퇴 공작이 시작됐다.
25일부터 옥쇄파업으로 지도부와 간부들은 1라인 파업농성장에
집중되었고 현장과 간격이 멀어졌다. 노조탈퇴서가 내용증명으로
금속노조와 지역본부로 무더기로 발송됐다. 노조탈퇴서는
파업유보와 10월 31일 20차 단체교섭이 진행될 때까지 계속됐다.
<정규직과의 갈등>
이번 투쟁을 하면서 정규직과 혼재해서 일하는 부서의 경우
정규직과의 갈등이 문제로 남고 있다. 파업 전에는 부서 내에서
같이 공도 차고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파업이후 정규직과의
갈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대리교섭의 문제>
단체협약 교섭주체는 비정규직지회와 하청업체이다. 그러나
하청업체는 기아차 원청의 승인이 없이는 교섭에 나올 수 없는
상태였다. 비정규직지회 역시도 기아노조와의 공동 논의와
합의가 중요하게 되면서 교섭주체의 중심은 자연스레
정규직노조로 옮겨갔다. 조합원들 역시도 정규직 노조가
움직여주기를 바랬다.
10월 25일 비정규직지회와 현장공동투쟁단 활동가들은 1라인
기습 라인점거파업에 돌입했다. 26일 저녁부터 27일 오후
3시30분 기아차노조와의 공동논의를 바탕으로 한 파업 유보까지
시간은 기아 원청의 구사대 투입과 농성장 침탈이라는 압박
속에서 진행된 원청노조와 비정규직지회간의 교섭이었다. 결국
비정규직지회는 “신성물류 계약연장, 화성공장내로 최대한
고용보장 노력한다.”는 정규직노조의 약속을 받고 27일 파업을
유보했다.
계약해지와 관련한 교섭은 기아 원청과 정규직노조 간에
진행되었다. 교섭이 진행되면 될수록 비정규직지회가 교섭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과 내용은 제약됐다. 정규직노조에게 압력을
가해 교섭에서 원청에게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도록 하는 것
이상은 없었다. 기아 원청이 비정규직지회를 인정하지 않는
속에서 대리교섭의 문제는 계속적인 문제로 남는다.
이 과정에서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는 이미 파업대오가
급속하게 줄어들었고 25일 야간 농성인원인 180명에서 파업이
유보되는 선언시점에는 농성장을 지켰던 조합원들은 불과 수십
명에 불과했다.
그 동안 함께 사업했던 정규직 활동가들도 주변에서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지회의 논의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함께 논의하고 투쟁했지만 투쟁의 막바지로 가면서 정규직
활동가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비정규직지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것 이상을 넘지 못했다.
<2, 3차 업체의 문제>
2차 업체인 세우엔지니어링 조합원들이 동일적용을 요구하며
11월 17일 천막투쟁에 돌입했다. 단체협약이 1차 업체와만
체결되고 2, 3차 업체는 제외되면서 예상됐던 문제가 나왔다.
11월 17일 단체협약 동일적용 등의 요구를 내걸고 기존의 지회
천막 옆에 또 하나의 천막을 치고 투쟁에 돌입했다. 자본은
비정규직 내부도 1차와 2,3차로 또 구분하고 우리의 단결을
가로막는다.
단체협약 체결투쟁의 성과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단체협약 체결투쟁에서 중요한
성과를 살펴보자.
가장 큰 성과는 노동3권을 투쟁을 통해 하청업체를 교섭 틀로
끌어내고 쟁취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을 인정받고 노조활동을
보장받고 부분적이지만 고용승계를 쟁취했다. 노동3권 쟁취는
이후 투쟁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정규직과의 연대를
위해서도 비정규직 스스로 주체를 만들고 그 활동의 토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 시작이 노동3권 보장이다. 현대차그룹이
비정규직 노조를 인정 자체를 하지 않는데 그 파열구를 냄으로써
이후 타사업장 비정규직노조의 노동3권 확보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사용자성 인정을 위한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한 큰 투쟁의
시작이다.
두 번째는 비정규직지회와 현장조직이 현장공동투쟁단을
조직해서 투쟁의 시작부터 진행을 함께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의 핵심은 단결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
활동가들의 단결이다. 기아 화성공장 현장활동가들은 노조
건설이전부터 비정규직 활동가들과 연대해서 하청업체의
현장투쟁을 지원하고 연대해왔다. 그런 현장투쟁의 성과가
있었기에 공동투쟁은 가능했다.
셋째는 승리하는 투쟁을 만들어냈다. 비정규직 투쟁은 투쟁과
함께 장기화된다는 사례를 넘었다. 판단에 따라 투쟁이
패배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리의 모범을 만들고 확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아비정규직지회는 설립 당시 450명인 조합원을 석달만에
900명으로 조직했다. 이런 조직화는 지회의 활동을 바탕으로
했기에 의미가 크다. 또 하나는 공장을 멈출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장을 멈췄기에 자본은 협상의 장에
나온 것이다. 투쟁의 성패는 조직력과 투쟁력이라는 교훈을
증명했다.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은 원청노조가 부족하지만
적극 개입하고 함께 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청노조와
비정규직노조의 공동대응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사례로
평가되어야 한다.
비정규직도 대공장, 중소영세사업장이 구분되나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투쟁을 평가하면서 다른 얘기를 하나 하고
싶다. 지역의 중소사업장의 한 간부가 이런 말을 했다.
“주5일제 입법화로 중소영세사업장은 지금도 피해를 보고 있다.
대공장과 중소영세사업장이 확연히 구분되었다. 교섭력과
투쟁력이 있는 대공장은 법 이전에 쟁취해서 진행됐다. 03년
주5일제 법안이 통과되면서 미조직, 중소영세노동자들은 피해를
강요당했고 우리는 별 힘도 못쓰고 지켜만 봤다.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연맹 내 규모가 있는 사업장의
비정규직은 조직되고 투쟁을 한다. 그리고 몇 년간 정규직노조의
임금협상을 통해 임금도 많이 오르고 복지도 일정 개선됐다. 내
고향인 전북지역에 가니까 임금도 적고 취업도 어렵고 회사가
불안정하다보니 1차 희망이 현자 비정규직이고 2차가
중소업체라고 하더라. 855만 명 비정규직 문제를 접근함에 있어
조직도 투쟁할 힘도 없는 중소영세사업장을 중심에 놓고
사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비정규직 투쟁은 개별사업장 차원의 임금인상과 단체협약 투쟁과
다르다. 우리의 중심은 855만 비정규직 노동자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계급적 단결에 있어야 한다. 그런 투쟁을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비정규직 투쟁의 정형을 찾기 위해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을 살펴봤다. 비정규직 투쟁을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 그래야 현실을
직시하고 단결을 모색할 수 있다.
비정규직지회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대와 투쟁이
요구된다. 2, 3차 투쟁은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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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18: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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