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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석유노동자들의 파업의 실패와 교훈

현장에서 미래를  제1호
권기수


브라질 석유노동자들의 파업의 실패와  교훈


권 기 수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최근 제 3세계, 특히 중남미에서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파업의 물결이 드세게 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파업은 정부의 강경 대응,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5월, 30일 간에 걸쳐 벌어진 브라질 석유 노동자들의 파업도 까르도주 정부의 무력진압, 노동자의 생존권 위협 앞에서 무릅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최근 브라질 석유노동자들의 파업과정과 그 경험을 통한 의의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파업의 과정과 원인


지난 5월 3일 브라질 국영석유회사(Petrobras) 및 자회사들의 노동조합은 민영화 반대 및 12~18%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전체 노동자 5만명중 95%인 47,500명이 파업에 돌입하였다.

파업기간 중 한때 전국 10개 정유소 중 9개 정유소가 폐쇄되어 1일 산유량이 정상가동시의 40%, 정유량은 2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해 가솔린, 취사용 연료, 항공기용 연료 등의 공급부족이 극심했으며, 이로인해 연료 가격이 평상시보다 500%이상 앙등하여 국가경제를 마비시켰다.

5월 9일 고등노동법원(Tribunal Superior do Trabalho,TST)은 금번 석유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파업기간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내세웠으며, 10일 정오까지 직장에 복귀할 것을 명하고 이를 어기는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매일 10만 레알(Real, 약 10만 달러)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정부의 파업노동자 해고에 대해 노조측의 집단사직서 제출위협으로 맞서는 등 양측의 공방전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까르도주 대통령은 지난 5월 24일 공장으로 복귀한 노동자들과 공장시설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전국 10개의 정유소 중 상파울루주와 파라나주 소재 4개의 정유소에 약 1,200명의 군병력을 투입하였다.

이와 같은 정부의 강경대응에 대하여 노조는 정부의 무책임한 행위를 강도높게 비난하면서 동 조치가 석유노조의 의지를 꺾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 노동자들은 파업지속을 투표로 결의하였다. 한편 브라질 노동자당의 룰라 총재는 “파업현장에 군대를 출동시킨 것은 페루의 문민독재자 후지모리 대통령을 닮았기 때문”이라며 “지난 1988년 국영제철소에서 발생한 것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군대를 철수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30일간이나 계속된 양측의 팽팽한 시이소 게임은 6월 3일 브라질 석유노동자 연합의 대표들이 파업중지를 선언하면서 정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노조 의회는 정부가 5만 명의 노동자를 무더기 해고하겠다는 조치가 발표된 지 하루만에 파업철회를 선언, 노조의 모든 요구를 취소하고 무조건적인 작업장 복귀를 선언하였다.

금번 파업은 1차적으로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아르헨티나, 페루의 예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듯 정부의 민영화 정책은 결국 노동자의 대량 실업을 양산하기 마련이다.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노동자들의 확실한 생존권 보장도 대안도 없는 민영화는 결국 자본을 살찌우는 대신 노동자들의 생활을 피폐하게 할 뿐이다.

브라질 정부는 민간부문 육성을 통한 경제효율성의 제고와 공공부문 축소를 통한 공공재정 건전화를 목적으로 민영화계획을 수립, 1991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민영화를 추진해오고 있다. 1991년 10월이후 현재까지 약 3년에 걸쳐 국영 철광사 (Usiminas)를 비롯, 33개의 국영기업 및 정부보조금을 받아왔던 9개 자회사를 민영화하였으며, 총 매각대금은 118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금번에 민영화 방침이 확정된 브라질 국영석유회사(Petrobras)는 세계 15대 석유회사 가운데 하나로 브라질 정부가 1953년부터 42년간 독점 경영해 온 대기업이다. 브라질 경제전문가들은 동 사를 필두로 향후 가스-에너지 분야 등의 대형 국영기업들이 속속 민영화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파업의 실질적인 발단은 민영화 반대 이외도 무책임한 정부의 약속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1994년 11월 임기종료를 앞두고 있던 전임 프랑꾸 대통령은 대통령궁으로 CUT(Central Unica dos Trabalhadores, 통합노조, 노조원 1,100만 명)의 지도자 비쎈띠뇨(Vicente Paulo da Silva)와 석유노조 지도자 스삐스(Antonio Carlos Spis)를 초청, URV 경제정책, Bresser 경제정책으로 인한 임금 손실분 26% 보상, 꼴로르 대통령 시절에 실직한 2,000명의 해고 노동자 복직을 허용한다는 구두약속(Termo de Compromisso)을 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결코 동 약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으며, 고등 노동법원 역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상기 정부의 약속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노조는 이같은 무책임한 정부의 약속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 파업의 결과와 영향


금번 파업은 까르도주의 개혁정책 추진에 날개를 달아 준 대신, 파업을 주도한 CUT나 브라질 노동자당(PT)에게는 뼈아픈 교훈을 남겨 준 계기가 되었다. 까르도주 대통령은 임기후 첫 파업을 맞아 성공적(?)으로 대처하였다. 금번 파업은 까르도주 대통령이 그간 추진해왔던 인플레 퇴치정책에 커다란 위협요인을 안고 있었다. 즉 노조가 주장하는 12~18%의 임금인상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동 효과가 다른 산업부문의 노조에도 연쇄효과를 미쳐 까르도주 정부가 추진해 오던 인플레억제정책에 제동이 걸릴 소지가 많았다. 따라서 까르도주 정부는 향후 경제정책을 원활하게 끌어가기 위해서는 금번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강경하게 맞서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파업의 실패는 좌파에게는 커다란 타격이었다. 지난 5월 두번의 파업요청도 실패로 끝난 바 있었다. 좌파, 특히 브라질 노동자당은 이번 파업을 도모하면서 종속이론가이며 사회주의자였던 까르도주 대통령이 강경한 노조의 파업에 굴복할 것이라는 계산 아래 파업을 지속시켰다. 그러나 노동자당의 예상과는 반대로 까르도주 정부가 군대를 투입하는 등 강경한 자세로 나오면서 파업은 실패로 끝났다.

동 파업의 결과, 아이러니칼하게도 까르도주 정부의 시장지향적인 개혁정책에 반사이익을 안겨주어, 동 법안의 의회승인이 용이하게 이루어지는 빌미를 마련해 주었다. 브라질 정치학 연구소 소장이며 정치학자인 Walder de Goes에 따르면 파업이 국영석유회사의 민영화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배가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즉 동 파업은 국민들에게 석유산업과 같은 중요한 산업에 대한 국가독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론형성은 기존에 민영화를 반대하던 국회의원들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쳐, 6개월 전만해도 상상할 수도 없었던 국영석유회사의 민영화안이 찬성 366표, 반대 139표로 국회를 통과하게 되었다. 특히 그동안 인플레에 따른 노동자들의 임금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30년간 실시되어 오던 물가-임금 연동제를 폐지(desindexation)하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더 이상 저항할 전의를 상실해 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3.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노동계급의 대응과 그 한계


현재 중남미에서는 1974년 칠레를 필두로 하여 아르헨티나, 멕시코, 페루 등 전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구조주의적 전통이 강한 브라질 역시 1990년 꼴로르 정권이 등장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채택되어 프랑꾸 정권에 이어 현 까르도주 정권에서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브라질에서 실시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대표적인 유형이 바로 경제통합이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4국을 중심으로 한 남미남부공동시장(MERCOSUL) 경제통합은 기존의 통합의 보호주의적이며 폐쇄적인 움직임과는 달리 개방적이며 외부지향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즉 현재의 통합의 움직임은 최근의 신자유주의 이념을 근간으로 한 경제정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통합초기에 상대적으로 산업부르조아지들이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있었던 데 반해, 통합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노동자계급과 노조대표들은 통합과정에 배제된 상태에 있었다. 통합초기에 노조는 통합이 순전히 자본의 논리에 입각하여 진행되고 있다고 강력한 비판을 제기하였다. 통합에 대한 노조의 비판의 요지는 생활여건 및 임노동조건의 악화, 새로운 경제권 장악의 어려움, 노동계급의 보다 평등한 사회참여의 어려움,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에 따른 초국가적 축적모델이 노동계급의 입지를 약화시킨다는 점 등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부 노조세력의 통합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브라질 노조는 현재 통합의 움직임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에 서 있다. 통합이 진전되면서 노조의 최대 관심사는 통합과정에서 제기되는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협상테이블에 올리느냐였다. 실상 기존 브라질 노조들은 임투와 노동조건 개선 문제만을 중시해 온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기존의 협의의 이해에 급급한 노조전략을 가지고는 통합상에서 제기되는 제반문제를 효율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없다는 인식이 노조내에 팽배하였다. 결국 노조지도부는 다양한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포기하고 통합으로 야기되는 사회적 차원의 문제를 우선시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그 결과 통합기구내에 노동문제를 전담하는 제11 노동소그룹의 창설을 가져왔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이러한 유연한 대응전략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좌파진영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하는 정권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지 못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사실상 꼴로르 대통령이 초기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발표했을 당시, 브라질의 대표적인 좌파 진영인 PT와 PDT는 별다른 이론적 토대없이 꼴로르의 정책을 환영하였다. 모순적이게도 꼴로르 정권이 자신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노동계급의 대응을 무마시키기 위해 실시한 정책이 1989년 PT가 제안한 정책이었다는 사실이다. 선거유세기간 룰라는 브라질이 낮은 인플레를 유지하고 노동자들에게 보다 높은 임금을 줄 수 있는 대안으로 부문협약(Camaras Setoriais)을 제안하였다. 동 제안은 제2 꼴로르 정책의 골간으로 사용되어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국가, 자본, 노동간의 동 협약을 통해 노동자들은 보다 많은 임금과 일자리를 얻게 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정책이 실시되면서 그 허구성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자동차산업부문에서 나타난 결과를 살펴보면 그 심각성을 여실히 알 수 있다.


<표1> 부문협역이후 자동차산업부문의 변화

 

자동차 생산대수(1,000)

고용자수(1,000)

평균 임금액(레알)

1991

1992

1993

1994

       960

      1072

      1391

      1550

     108.8

     106.2

     107.1

     106.7

     1232

     1412

     1281

     1105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노동자 계급은 기존의 정부정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참여를 통한 자신의 이권화를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고 있다. 즉 이는 브라질에서 노동구조의 급진적 개혁과 진정으로 자율적인 노동운동의 활성화 없이는 브라질 노동계급이 민간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논리에 맞서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의 확실한 예가 바로 금번의 석유노동자들의 파업이었다.


4. 교훈 및 과제


금번 파업은 브라질 노조에게 많은 교훈을 안겨 주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파업의 양상은 노조측의 주장에 대해 정부측이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금번의 파업의 경우는 그 상황이 전도되어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정부와 노조간의 입장이 역전되어 나타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첫번째 요인은 노조의 전략적 대응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노조가 변화된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독재 시절에 파업은 항상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며 이러한 국민의 지지는 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민선정권이 들어선 상황에서 국민들은 더 이상 어느 특정 산업부문의 이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물며 국민 개개인에게 피해가 미치는 금번의 파업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일반적으로 민간부문에서 파업은 노동자들의 이익 수호를 위한 효율적 수단이다. 그러나 국영부문, 특히 석유산업과 같은 중요한 국가부문에서는 PT나 CUT가 인정했듯이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따라서 노조는 파업을 감행할 시에 변화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 금번 파업에서 문제점은 노조 지도부의 현 정권에 대한 믿음이 지나쳤다는데 있었다. 노조 지도부나 PT의 지도부는 파업을 강행하면서 정부가 군사력까지 동원하여 그렇게 강경하게 대응해 나오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즉 파업주체의 잘못된 판단 - 종속이론가였던 까르도주 대통령에 강한 환상-이 파업을 실패로 몰아갔다.

두번째로는 파업세력들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CUT측에서는 민영화에 반대하는 명백한 입장을 계속해서 강경하게 견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노동자당내에서는 민영화 반대에 대해 의견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즉 룰라를 중심으로 한 당 지도부에서는 반 민영화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었던 데 반해, 일부 주나 시에서 정권을 잡고 있던 PT의 지도세력은 민영화를 찬성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즉 그들의 입장에서 볼때 시 재정의 건전화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 기업의 매각을 통해 재정자금을 조달하기를 원했다. 이와 같은 PT내의 의견의 불일치가 금번 파업을 강경하게 지지하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다. 또한 PT는 국민 여론이 파업세력에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파업에 대해 강도 높은 지지를 하지 못한 채 관망자세로 일관하였다.

앞으로도 브라질에서는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앞세운 민영화 정책이 강도 높게 추진될 전망이다. 그러나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포로가 된 정부의 강력한 공세에 맞서 노동자들은 그 대응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강력한 자본의 논리에 대처하기 위해서 노조 및 좌파진영은 새롭게 변신할 필요가 있다. 지난날의 구태를 가지고는 더 이상 자신들의 입지확보는 고사하고 생존권마저 위협당할 소지가 많다. 따라서 노동자 세력이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어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대안모색과, 합치된 힘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이다.

1995-07-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