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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경제위기와 노동운동

현장에서 미래를  제6호
박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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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 제 ◦ 노 ◦ 동

멕시코 경제위기와 노동운동


박 병 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관계학과 박사과정)


1. 들어가는 말

중남미에서 80년대는 ‘잃어버린 10년’으로 표현된다. 그만큼 82년부터 시작된 경제적 침체 속에서 고통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제위기에 대해 중남미 각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탈출구를 모색하였다. 대다수 국가들이 채택한 방법이 소위 ‘워싱턴 콘센서스’라고 불리는 경제안정화와 무역자유화 정책이다.
멕시코도 예외는 아니다. 멕시코는 82년 엄청난 외채위기 속에서 지불중단 선언을 했었다. 그러나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관의 압박에 못이겨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공공부문의 민영화, 무역개방, 외국자본투자의 자유화 등의 조치가 그 뒤를 이어 취해졌다.
이와 함께 전통적인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입장도 변화되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민영화는 단순히 공기업의 민간기업으로의 전환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민영화의 기본입장은 국가의 경제영역 개입에 대한 혐오와 시장기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에 깔고 있다. 민영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논자들은 국가의 경제적 역할․개입이 확대되면서 재정지출이 확대되고, 그 결과 재정적자의 폭이 커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들의 처방은 자연스럽게 국가를 경제영역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에서 이들은 국가의 제반 규제조치도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저해하는 것이므로 규제완화를 통해 자본의 적극적 활동을 위한 장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주장의 내면을 보면 경제성장만을 절대적 가치로 상정하면서 부의 사회적 분배, 공기업은 공공의 재산이라는 성격 등에 대해서는 외면함을 알수 있다.
또한 경제위기 하에서 국가와 노동관계도 변화되었다. 다른 중남미 국가가 배제와 통제 일변도의 노동정책을 시행할 때 멕시코는 제도혁명당(PRI)에 노동진영을 포섭하면서 일정하게 ‘당근’을 제공하는 정책을 시행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노동진영에 주어지던 ‘당근’을 거두어 들이고 무조건적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멕시코의 경제적 위기상황과 타개책으로 추진된 민영화 과정, 그리고 국가와 노동관계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겠다.

2. 멕시코 경제의 위기상황

멕시코는 전통적으로 ‘수입대체산업화(ISI)’ 정책을 통해 경제 성장을 추진해 왔다. 이 정책은 보호주의, 국가개입 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60년대에는 이러한 정책의 성과로 ‘멕시코 기적’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70년대 세계 자본주의권의 경제위기 속에서 경기악화가 심화되었다. 특히 70년대 중반 로페스 포르티요 정권은 마침 집권하자마자 발견된 대규모 석유매장을 토대로 이른바 ‘1세계로’의 진입을 서둘렀다. 그는 당시 경제위기를 일시적 현상으로 인식하고 막대한 외자를 끌어와 석유개발에 투자하였다. 그러나 포르티요 정권의 외자를 통한 발전전략은 멕시코가 80년대 초반의 경제위기, 특히 82년의 석유가격의 급락과 국제금리의 급상승으로 인해 엄청난 외채 채무국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자본의 해외도피가 만연해지자 포르티요 정권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은행 국유화라는 극약 처방책을 사용하게 되었다.
포르티요 정권에게서 경제파탄이라는 유산을 상속받은 데 라 마드리드 정권은 취임직후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 기관이 권고한 경제안정화 정책을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데 라 마드리드 정권은 공공지출의 삭감, 공기업 민영화, 공무원 인원삭감, 국가보조금 삭제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그리고 무역자유화정책에 따라 수출허가 완화, 관세인하, 적극적 외자유입 등이 시행되었다. 특히 86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가입은 경제개방의 상징적 표현이었다. 데 라 마드리드에게서 정권을 인수한 살리나스 시기에도 전임자의 안정화와 무역자유화 정책은 더욱 더 강화되었다. 대대적인 민영화조치와 개방정책의 귀결점이 미국, 카나다와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었다.
데 라 마드리드와 살리나스 정권 시기의 구조조정을 통한 경제개혁으로 어느 정도 회생 가능성을 보이던 멕시코 경제는 94년 세디요 정권이 그 동안의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를 채택하자 페소화의 가치폭락으로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세디요 정권은 석유산업을 포함한 보다 과감한 민영화 조치와 임금동결, 물가억제 등을 포함한 일련의 경제위기 타개책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멕시코 경제는 회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 못하다.

3. 민영화 추진과정

멕시코에서 민영화는 순수한 의미에서 민영화와 재민영화 두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는 공기업의 형성과 관련되어 있다. 먼저 철도, 주요 자원, 상하수도 등 공익사업의 담당자로서 탄생된 공기업이 있다. 또 하나는 경영이 악화된 사기업을 인수하여 고용을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형성된 공기업이 있다. 따라서 전자의 민영화가 순수한 의미에서 민영화라면, 후자의 경우는 재민영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모두 민영화란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1983년부터 안정화 정책의 일환으로 민영화 조치가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민영화 초기에는 규모와 파급효과가 작은 기업이 그 대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민영화 대상기업의 규모도 확대되어 대기업이 민영화에 포함되면서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88년 아에로멕시코와 89년 멕시카나 등 두 항공회사의 민영화는 이러한 흐름의 상징이었다. 민영화의 원할한 진행을 위해 멕시코는 재무부산하에 ‘해산(매각)특별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이 위원회의 분석과 결정은 공공부문 매각에 중요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는 몇 개의 사례로 민영화 추진과정을 보기로 한다.
먼저 제당기업들에 대한 민영화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하여 경영해 온 기업들이다. 약 44개의 공장들이 7억 달러에 매각되었다. 이 가격은 아주 낮은 것이었지만, 그 동안 매년 3억 4,570만 달러 정도를 점하는 정부 지원금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는 Cananea 구리광산의 민영화이다. 민영화 이전 Cananea는 전 구리 생산의 35%를 점하는 대규모 광산이었지만 시설의 노후화로 인해 효율성이 아주 낮은 상태에 있었다.
세번째는 석유화학부문인 TEMEX 민영화이다. 70년대 석유화학 분야에 대한 정부투자의 확대 결과 주식의 50% 이상의 지분을 정부가 지니고 있었다. TEMEX는 상대적으로 생산의 효율성이 높고, 재정도 튼튼한 기업이다. 따라서 TEMEX는 매우 높은 가격으로 매각되었다.
네번째는 멕시코 전화통신회사(TELMEX)의 민영화이다. TELMEX에는 5만여 노동자가 고용되어 있는 중남미에서 가장 큰 전화회사이다. TELMEX 민영화는 3단계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단계는 90년 12월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기간에 정부의 보유주식 중 20.4%가 매각되었다. 주식을 매입한 구매자는 추가적으로 5.1%를 매입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도 4.4% 주식을 매입하였다. 2단계는 91년 5월에 있었고 16.5%의 주식매각이 있었다. 3단계는 92년 5월 4.7%의 주식매각이 진행되었다. 결국 정부는 보유하고 있던 TELMEX주식의 56% 중 51.5%를 매각하였다.
다섯째는 은행에 대한 민영화이다. 82년 국유화 조치되었던 은행은 90년 중반 정부의 민영화 발표와 함께 매각이 추진되었다. 원할한 민영화를 위해 재무부 차관을 중심으로 한 ‘은행해산(매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은행민영화 과정에서는 매각되는 은행의 소유권이 국내인에 의해 유지되어야 하는 점이 강조되었다.

3. 국가-노동관계의 변화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멕시코에서 노동진영은 집권당인 제도혁명당(PRI)의 한 분파로 편입되어 포섭되어 왔다. 이것이 다른 중남미 국가들의 노동진영에 비해 다른 점이다. 멕시코노동자연맹(CTM)을 중심으로 한 관변노조는 국가의 특혜수용과 정책에 대한 지지제공이라는 거래를 통해서 그들의 세력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이는 노동조합의 자율적 활동의 상실로 노조원들은 선거철에 집권당의 선거운동원이 되어야 했다.
이러한 관변노조의 국가 예속성을 비판하는 자유노조운동이 70년대 자동차, 전기, 섬유, 신발, 대학노조, 교사노조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관변노조의 세력을 견제한다는 의미에서 자주노조운동을 좌시하던(일정 정도는 고무시키도 함) 루이스 에체베리아 정권은 관변노조의 불만과 자본진영의 저항에 부딪혀 74년 이후 이들 노조에 대해 강력한 탄압을 선택했다. 이러한 정권의 탄압은 80년대 초 더욱 강해졌다. 이와 더불어 직장폐쇄, 해고 등으로 자주적인 노조운동세력은 점차 세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80년대는 멕시코 노동운동의 전면적 침체기로 인식되고 있다. 데 라 마드리드 정권에 의해 시행된 신 경제정책 속에서 노동진영은 실질임금 하락, 관변노조에 대한 지원감소, 실업의 증가 등 어려움에 노출되었다. 특히 민영화 조치는 사적자본의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대량감원, 노동강도의 강화 등 노동자에 대한 고통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국가의 이러한 정책변화는 관변노조 자체의 집중력 약화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즉 계속되는 경기침체는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반발을 강화시켜 노조의 통제가 일반 노조원에게 잘 수용되지 못하게 되었다. 대표적 사례가 88년 대통령 선거이다. 당시 관변노조원들의 지지는 곧바로 여당의 후보인 살리나스에게 연결되지 않고, 오히려 야당인 좌파연합의 카르데나스에게 주어졌음이 밝혀졌다. 이미 세력이 약화된 관변노조와 자주노조 모두는 정권의 반노동정책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였다. 결국 일반노동자들은 노조집행부에 대한 지지를 점차 철회하였다.
데 라 마드리드 정권은 그의 전임 정권들이 보여주던 노동정책에서 벗어나려 했다. 데 라 마드리드 정권은 기존 집권당의 중요부문이었던 노동진영을 배제시키려 하였다. 제도혁명당(PRI)은 전통적으로 농민부문과 노동부문, 그리고 민중부문 등 3개의 부문조직들을 기본 세력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데 라 마드리드 정권기에 오면 이미 제도혁명당(PRI)의 개편작업이 착수되어 각 부문을 대표하기 보다는 지역적 차원의 연대를 통한 세력화에 착수하였다. 이 과정에서도 정권은 고율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교육, 의료, 주택 등 기존 사회복지에 지출되던 재정을 삭감하면서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하였는데, 그 핵심이 임금과 물가의 인상 억제였다. 정권은 노동과 자본진영과 협정을 체결하여 이를 달성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협정은 임금을 억제시키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물가인상을 막는데는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건은 계속 악화되었는 데 그 정도는 아래 표와 같다.

데 라 마드리드의 뒤를 이은 살리나스 정권은 전임자의 노동세력 약화 조치를 더욱 강화시켰다. 살리나스는 특권적 지위를 누려온 일명 ‘차로’라고 불리는 관변노조의 지도자들을 제거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섬유노조와 교사노조의 구 지도부를 축출하고 친정부적인 인사를 앉힌 것이다. 자신들의 지도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에 대해 섬유노조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교사노조는 약간의 저항을 하였지만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노조의 전면적 퇴조속에서 생존과 새로운 노동운동 모델 창출을 주장하는 세력이 출현하였다. 이의 대표적 사례가 상품․서비스노조연맹(Fesebes)이다. 이 연맹은 90년 운수, 통신, 전기 부문의 6개 노조단체로 구성되었다. 상품․서비스노조연맹(Fesebes)의 결성 배후에는 멕시코노동자연맹(CTM)을 견제할 세력이 필요했던 살리나스 정권의 역할이 있었다는 평가에서도 보이듯이 상품․서비스노조연맹(Fesebes)는 또 하나의 관변노조연맹이다. 그럼에도 살리나스 정권은 상품․서비스노조연맹(Fesebes)의 법적 인정을 92년까지 연기했다. 왜냐하면 상품․서비스노조연맹(Fesebes)이 멕시코노동자연맹(CTM)의 견제세력 이상이 되는 것은 철저히 차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상품․서비스노조연맹(Fesebes)은 노동회의 내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전화노조(STRM)와 전기노조(SME)를 흡수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상품․서비스노조연맹(Fesebes)이 지향한 협상을 통한 노동권익 보호는 각 단위노조들의 개별적 협상과 그를 통한 특혜모색이라는 병폐를 낳기도 하였다. 따라서 상품․서비스노조연맹(Fesebes)의 등장은 국가-노동관계의 탈기구화의 확대된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측면은 협정이나 협약을 통해 노동자들이 전통적으로 참여해 온 공식적 기구들의 중요성이 감소되고, 노동자의 유연성과 전투성을 약화시키기 위한 노동법의 기만성 그리고 제도혁명당(PRI)에 참여하는 노동부문이 축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정권과 공식 노조와의 특혜와 정책지지라는 거래관계는 기본적으로 존재한다. 비록 국가가 시행하려는 경제개혁에 기존의 국가-노동간의 관계가 방해물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만 여전히 노동부문은 정부의 가장 큰 사회적 지지 기반이다. 마찬가지로 관변노동단체들도 아직은 자신들이 정권에게 필요한 구석이 있다고 믿고 있다.

5. 결론

세디요 정권의 각종 처방책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경제는 여전히 파탄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민영화로 대표되는 경제적 구조조정 속에서 대량 해고, 노동강도의 강화 등에 시달려 온 노동진영은 이제 파탄된 경제의 고통을 짊어지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요청에 노동조직은 대응논리를 개발하지 못하고 분열 속에서 세력이 약화되어 적절한 대응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멕시코노동자연맹(CTM)은 국가의 구조조정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국가에 의해 육성되었다는 그들의 전통적 특수성 때문에 공공연하게 반대하지 못하고 있다. 상품․서비스노조연맹(Fesebes)은 국가에 대해 어느 정도 자율성이 있지만 전반적인 구조개혁에 대해 찬동하면서 이를 수긍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노조는 단지 정부가 마련한 경제비상조치에 대안없는 찬성만을 행하고 있다. 한/노/정/연

1995-12-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