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노정연 > 현장에서 미래를 > 글읽기 ]

지상강좌/노동자 교양 정치학 국가와 계급정치

현장에서 미래를  제64호
김세균

두 번째 지ˇ상ˇ강ˇ좌




본 지상강좌는 연구소가 노동자 교양경제학 강좌 이후의 두 번째 기획으로 지난 1월 29일부터 주 1회 9차례에 걸쳐 진행한 내용을 강사가 수정․보완하여 싣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자본축적의 위기를 돌파하고자하는 국가-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공세는 노동유연화를 기조로 하여 법, 제도적 개악과 현장까지 도입되어 왔습니다.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막론하고 전면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에 대해 민주노조운동진영은 구조조정 반대투쟁, 생존권 사수투쟁을 전개해 왔습니다. 또한 그 와중에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모색하면서 민주노동당과 제 정치조직이 건설되었습니다. 이제 현장의 노동자들, 활동가들은 노동조합운동을 넘어선 정치운동, 전국적 계급투쟁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자 정치운동을 역사적 맥락과 현황을 함께 살펴보고, 현시점에서 제기되는 올바른 정치세력화의 방향, 과제 등을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에 대해 한국과 유럽, 제3세계 등의 차원에서 역사와 현황을 살펴보고 우리의 현시기 과제를 모색해 보고자 정치학 교양강좌를 열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투쟁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동지들의 실천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지상강좌/노동자 교양정치학



국가와 계급정치


김 세 균
소장





1. 정치란?
1) 광의의 정치
정치현상은 직접적으로는 인간들 간에 성립하는 '권력관계'와 관계된다. 그리고 권력관계란 곧 인간들 간에 성립하는 모든 사회적―정치적(이때의 정치란 좁은 의미의 정치를 가리킨다), 경제적, 이데올로기적―힘 관계를 가리킨다. 그래서 힘 관계가 대등하지 못할 경우 권력관계는 인간들 간에 지배-피지배관계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권력관계를 유지-재생산시키거나 변화-혁신시키려는 인간들 간의 투쟁을 ‘권력투쟁’(power struggle)이라고 부른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정치'란 광의의 의미에서는 권력투쟁을 통해 인간들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재생산시키거나 변화-혁신시키는 인간의 사회적 실천 일반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다.
모든 사회적 관계는 그것이 어떤 사회적 관계이든 그 자체로서 이미 권력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업주는 작업현장에서 종업원들에게 지시-명령을 내리고, 임금을 지불한 대신 생산된 물자를 자신의 것으로 할 권한, 즉 권력을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모든 사회적 관계는, 그리고 통상 ‘비정치적인 관계’라고 불리는 사회적 관계 역시 사실은 이미 정치적 관계의 성격을 많든 적든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권력관계’는 사회 속에 ‘편재’해 있는 것이다.
특정의 사회적 관계에 포함된 권력관계가 변화하면 그 사회적 관계 역시 많든 적든 변화하게 되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관계의 유지-변화는 그 관계가 지닌 권력관계의 유지-변화를 가져오고, 그 역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권력관계의 변화는 사회적 관계의 변화와 유지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권력관계의 유지나 변화를 목표로 하여 이루어지는 정치는 사회적 관계의 유지나 변화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 인간의 사회적 실천인 것이다.
어떤 사회적 관계 속에서도 그 사회적 관계가 지닌 권력관계를 유지-변화시키려는 인간들의 활동은 많든 적든 있게 마련이다. 이 점에서 모든 인간들은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권력관계의 유지-변화를 둘러싼 투쟁, 즉 권력투쟁에 이미 많든 적든 참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러한 권력투쟁에 무관심한 채 직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만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그 사람은 자신이 비정치적이라고 스스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행위는 실제로는 주어져 있는 직장 내부의 권력관계를 온전히 유지시키는 데에 기여한다. 이 점에서 그 사람의 이른바 비정치적 행위는 실제로는 명시적인 정치적 행위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권력관계가 사회에 편재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 역시 사회 속에 이미 '편재'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 협의의 정치와 국가
권력관계와 정치는 사회 속에 편재해 있다. 그런데 정치를 넓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좁은 의미에서 사용한다면, ‘정치’란 ‘강권’(physical coercion, Gewalt)의 행사에 의해 매개되는 사회적 권력관계를 유지-변화시키려는 인간들의 사회적 실천을 가리키는 개념이 된다. 그리고 타인을 지배하는 (넓은 의미의) 사회권력에는 주요하게는 (1) 강권의 행사에 기초하는 ‘국가 (내지 정치)권력’, (2) 경제과정에서 타인의 잉여노동을 전유할 수 있는 ‘경제권력’ 및 (3) 타인을 이데올로기적-문화적으로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적-문화적 권력’ 등이 있다. 그런데 강권의 행사에 의해 매개되는 (그 나름으로 대외적 독립성을 지닌) 한 사회의 권력관계는 국가적 권력관계를 중심으로 편재된다. 왜냐 하면 사회적 권력관계는 최종적으로는 국가적 권력관계로 집중되며, ‘국가’란 어떤 시대에서나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강권적’ 권력체였고, 더욱이 우리가 사는 근대사회에서 국가는 한 사회에서 강권행사의 ‘합법적 독점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가는 오늘날 강권 사용의 합법적 독점체인 동시에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권력체이기도 하다.
위의 규정과 관련하여 우리는 국가권력을 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력으로, 그리고 ‘국가를 둘러싼 정치’(국가적 정치 즉, ‘국가권력에 기초하여 행해지는 정치 및 국가에 대항하여 나타나는 정치’)를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정치형태로 부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국가적 권력관계란 사회적 권력관계 전체 속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즉 국가현상은 비록 그것이 사회의 정치현상 전체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여러 사회적 권력현상 중의 하나로 간주하거나 또는 그러한 권력현상 일반으로 해소시켜 파악해서는 안 되는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권력현상에 속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현상은 정치현상의 중심을 이루며, 정치는 주로 국가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하거나 획득하려는, 또는 국가권력의 행사에 영향을 미치거나 저항하는 인간들 간의 갈등과 타협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사회이다. 때문에, ‘경제권력’인 자본권력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권력’에 속한다. 그런데 국가현상을 비롯한 (좁은 의미의)정치현상은 다른 사회현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자기 고유의 영역과 (상대적)자율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자체 만으로서가 아니라 항상 다른 사회현상들과의 복잡한 연관 속에서 나타난다. 그런 만큼 사회의 특수한 권력현상으로서의 국가현상 역시 항상 그것이 맺고 있는 다른 사회현상들과의 연관을 포착하는 기초 위에서 탐구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국가권력과 가장 중요한 사회권력인 경제권력 내지 자본권력과의 관계는 자본주의사회를 이해함에 있어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이때 국가권력은 자본권력으로 모두 환원되지 않지만, 자본권력은 최종적으로 국가권력으로 집중되며, 또 그렇기 때문에 국가권력은 계급적 측면에서는 궁극적으로 자본권력으로 기능하게 된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다른 한편 특정의 이데올로기가 대다수 사회구성원의 의식을, 더 나아가 무의식을 지배할 때 그 이데올로기는 그 시기의 ‘지배이데올로기’가 된다. 그런데 모든 국가이데올로기가 지배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이데올로기가 아니고서는 지배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국가를 한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권력체라고 부를 수 있다. 나아가 교육기관이나 언론기관 및 종교기관 등도 오늘날에는 지배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사회구성원을 지배이데올로기에 포섭시키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권력체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권력체를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 부를 수 있다. 가족 역시 지배이데올로기의 유지-재생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장치로서 기능하는데, 가족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하에서 우리는 가족을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세포단위’로 규정할 수 있다.
우리는 국가권력이나 자본권력 등을 ‘거시권력’으로, 가족이나 소집단 의 내부에서 나타나는 권력을 ‘미시권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거시권력’과 ‘미시권력’과의 관계 역시 중요한 탐구대상에 속한다. 그런데 거시권력관계는 미시권력관계에 기초해 있지만, 미시권력관계 속에는 이미 거시권력관계가 포함되어있다. 이와 관련해 사회적 권력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미시권력관계를 변화시키는 데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거시권력관계를 변화시킴이 없이는 미시권력관계 역시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 미시권력관계의 전반적 변화―이를 다른 말로는 ‘문화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권력관계 변화의 최종적인 귀결로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국가권력과 자본권력 및 이데올로기적 권력 등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특정의 사회체제가 지닌 ‘구조적 권력관계’와 관련된다. 이와는 달리, 사회의 권력관계를 행위하는 인간이나 인간집단들 사이에 나타나는 권력관계를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권력관계에 있어 일차적 중요성을 지닌 것은 행위하는 주체들의 능력보다는 그들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이기 때문에 권력관계의 파악은 구조적 권력관계의 파악에 기초하여 행위적 차원의 권력관계의 파악으로 나아가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울러 행위적 차원의 권력관계가 어떻게 구조적 차원의 권력관계를 변화시키는가 도 탐구해야 할 것이다.


2. 계급정치
1) 계급정치
사회적 관계를 그 물질적 기초와 관련시켜 보면 사회적 관계는 그 관계가 지닌 권력관계가 국가적 권력관계로 집중하는 가운데 사회의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편재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자본주의사회를 자본이 생산관계에서 맺는 노자관계에 기초하여 사회구성원의 사회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이자, 계급갈등 속에서도 자본 지배를 관철시키는 ‘넓은 의미의 자본권력’, 즉 ‘자본의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문화적 권력’에 기초하여 유지-재생산되는 사회로 규정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자본의 경제적 권력’을 ‘좁은 의미의 자본권력’으로, 그리고 ‘넓은 의미의 자본권력’을 ‘부르주아권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점에서, 우리는 자본권력 개념을 좁은 의미로 사용할 때에도, 우리는 넓은 의미의 자본권력 내지 부르주아권력이 단지 자본의 경제적 권력 내지 자본가들의 경제적 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사회질서를 주도적으로 유지-재생산시켜 나가는 모든 사회적 힘들의 총체를 가리키는 개념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 점에서 예를 들어 노동자 집안 출신의 학자일지라도 그가 자본주의적 관계의 목적의식적인 옹호자로서 기능하면, 그는 부르주아권력의 단순한 지지자가 아니라 자본주의사회의 지배층인 부르주아지배블록 내지 지배연합의 일원이 된다.
자본주의사회의 지배블록은, 그 계급적 성격과 관련시켜 본다면, 일차적으로 ‘부르주아적 지배블록’ (내지 지배연합)으로 규정될 수 있다. 그런데 독점자본주의 시대에는 중소자본가들을 지배블록의 하층을 형성하거나 지배블록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독점자본주의사회의 지배블록은 기본적으로 ‘독점부르주아적 지배블록’의 성격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성립된 정권을 장악한 집권세력이 중심이 되는 ‘통치블록’은 지배블록의 구심점을 형성한다. 이와 관련해 지배블록은 성립된 정권의 정치적 성격에 따라 ‘혁신자유주의적 지배블록’, ‘사민주의적 지배블록’, ‘신자유주의적 지배블록’, ‘파시즘적 지배블록’ 등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민주적 자본주의체제 하에서는 대체로 자유부르주아세력이나 사민주의세력이 지배블록의 핵심분파를 이루지만, 파시즘체제 하에서는 자유부르주아세력도 지배블록에서 배제된다. 현 시기 한국의 지배블록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지배블록’의 성격을 지닌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적 대립은 부르주아적 지배블록 대 피지배대중―노동자-민중―과의 대립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때 노자대립은 지배블록 대 피지배대중과의 대립의 중핵을 이룬다. 다른 한편 피지배대중이 단지 지배를 당하는 단순한 사회‘층’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배블록으로 자신을 상승시킬 수 있는 저항적 피지배‘블록’을 형성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피지배대중의 저항운동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 문제이다. 다른 한편, 우리는 지배블록 내부의 제분파들 간의 대립에 대해 그것이 지배블록 대 피지배대중과의 대립에 어떤 효과를 미치는가를 파악하는 관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피지배대중간의 균열과 대립 역시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계급정치란 사회의 생산관계에서, 그리고 생산관계와 관련하여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의 계급관계의 유지-재생산과 변화-혁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인간들의 사회적 실천 일반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부르주아권력이 추구하는 정치를 ‘(넓은 의미의) 자본의 정치’ 내지 ‘부르주아정치’로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유지-재생산을 추구하는 ‘자본의 정치’ 내지 ‘부르주아정치’의 대당 개념으로 ‘(넓은 의미의) 노동의 정치 또는 노동자정치’ 내지 ‘프롤레타리아정치’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나아가 노동자정치를 포함한 피지배대중의 정치를 ‘민중정치’ 또는 ‘노동자-민중정치’로 부를 수 있고, 크게 보면 부르주아정치의 한 부분을 구성하지만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중간층이 중심이 되어 전개하는 정치를 ‘쁘띠부르주아정치’ 또는 현 시기에 나타나는 그 주요 형태와 관련시켜 본다면 ‘시민정치’ 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2) 자본의 정치 내지 부르주아정치
부르주아정치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부르주아권력이 추구하는 정치이다. 그런데 자본의 경제적 권력 내지 좁은 의미의 자본권력은 궁극적으로는 (노동이 생산한 잉여노동의 자본주의적 형태인) ‘잉여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전유할 수 있는 힘(권력, 권리)에 근거하고 있다. 이 힘은 생산자들로부터 생산수단의 분리와 분리된 생산수단의 자본으로의 집중, 이로 인한 노동력의 상품화 내지 생산자들의 임노동자화 및 노동과정에서 임노동을 지휘-통제해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권한―노동과정에서의 자본의 현장권력―에 기초하고 있다.
나아가 자본주의적 생산은 상품-화폐관계 내지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의해 매개되고 있기 때문에 화폐유통과정은 화폐유통과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본의 자기증식운동의 일환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이 점에서 사회구성원의 경제적 생활을 전면적으로 매개하는 화폐가 발휘하는 힘인 ‘화폐권력’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권력이 지니는 중요한 경제적 힘이다. 그런데 사회적 관계의 ‘상품화’ 내지 사회적 관계의 시장경제 메커니즘에로의 종속이 진척되면 될수록 화폐권력은 그 만큼 강화되며, 화폐권력이 강화되면 될수록 자본권력 역시 강화된다. 나아가 잉여가치 생산은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과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자본에 의한 잉여가치의 전유가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보다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에 더 많이 의존하면 할수록 자본의 물질적-경제적 힘은 더욱 증대하게 된다(노동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포섭 능력의 증대) 그런데 잉여가치생산을 증대하기 위한 자본의 모든 시도는 결국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으로 규정될 수 있다.
자본권력은 ‘자본가들이 발휘하는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을 가리키는 개념으로도 사용되고 있다.(예를 들어 전경련이 발휘하는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 등) 그러나 자본가들이 발휘하는 이러한 유의 영향력이란 자본이 지닌 경제적 권력의 외화형태이며, (계급갈등 속에서도 자본지배가 관철됨으로써) 자본주의사회가 유지-재생산되는 가운데 이미 ‘구조화된’ 힘으로 된 자본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이데올로기적 권력에 비한다면 매우 부차적인 것이다. 그런데 부르주아정치 전개의 구조화된 측면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지적될 수 있다.

(1) 자본에 의한 잉여가치의 전유는 그것이 지닌 적대성으로 말미암아 단지 자본의 경제적 권력에 의거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고, 자본의 이데올로기적 권력 및 사회의 강권적 권력체인 국가권력에 의해 보장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사회의 국가권력은 궁극적으로는 자본권력의 정치적 형태로서 기능한다. 계급투쟁과 관련하여 우리는 자본주의사회의 국가를 ‘자본의 계급지배를 관철시키는 권력체이자 그 속에서 그리고 그것에 대항하여 투쟁을 전개하는 계급투쟁의 집중지’로서 규정할 수 있다. (이 규정을 기존의 다른 국가규정들과 비교해 볼 것)

(2) 국가권력이 궁극적으로 자본권력의 정치적 형태로 기능하는 가운데에서도 국가권력은 사회구성원 모두로부터 분리되어 그들 모두를 포괄하는 ‘사회의 곁/위에 세워진 (초계급적인) 공적 권력체’라는 형태를 취한다. 자본주의국가가 지닌 형태성은 동시에 정치와 경제의 형태적 분리―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의 분리, 경제과정과 정치과정의 형태적 분리―등을 만들어 내는데, 이러한 분리는 부르주아권력을 헤게모니적 권력으로 만드는 가장 일차적인 기초이다.

(4) 정치와 경제의 형태적 분리에 기초하여 인간의 사회적 실천영역은 ‘국가-시민사회’ 또는 ‘국가-시민사회-경제사회 내지 시장경제’ 또는 ‘국가-정치사회(제도정치권)-시민사회-경제사회 내지 시장경제’로 구분된다. 그런데 인간의 사회적 실천이 그러한 영역적 분할에 갇히면 갇힐수록 그러한 분할을 넘어서는 계급적-비계급적 사회적 대립의 분할선은 감추어지는데, 이 점에서 그러한 영역적 분할은 ‘자본주의사회의 헤게모니적 재생산양식’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5) 부르주아정치는 자본주의사회의 안정적 재생산에 기여하기 위해 정치가 기본적으로 제도정치권 내에서 이루어지게 만들고, 그런 가운데 제도권정치를 주도해 나간다. 부르주아정치는 노동자-민중세력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저지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는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정치가 자본주의 극복을 지향하는 대안적 정치로 성장-발전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제도권정치, 의회정치의 형태로 전개되도록 유도한다.

(6) 시민사회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역시 부르주아정치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보장하는 사회적 영역과 장치로서 기능한다.

3) 노동의 정치 내지 프롤레타리아정치
착취와 지배(억압)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의 형태로 전개되는 노동의 정치는 노동자대중의 생존권 확보와 구체적인 삶의 문제의 해결을 추구하는 정치로서 출발하여 경향적으로 (1) 착취의 폐기 내지 ‘잉여가치의 재전유’를 추구하는 정치 및 (2) 지배(억압)의 폐기와 ‘정치의 재전유’를 추구하는 정치로 발전해 나간다. 이와 관련해 노동의 정치는, 그 정치가 지닌 잠재력을 올곧게 발현되어 나간다면―현실에서는 그러나 노동의 정치가 자신이 지닌 고유한 발전 잠재력에 따라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그 지향성에서 다음과 같은 정치의 성격을 지닌다.

(1) 착취와 지배(억압)의 폐기를 추구하는 정치, 잉여가치와 정치의 재전유를 추구하는 정치,

(2) 모든 형태의 적대와 차별의 폐기를 추구하는 정치,

(3) ‘무한히 자신을 확산시켜 나가는 저항의 정치’이자 ‘새로운 구성의 정치’,

(4) 노동과 정치의 재결합, 노동과 경제/문화와의 재결합을 추구하는 정치,

(5) ‘비제도적 운동정치’ 내지 ‘대중정치’로 출발하여 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경제사회의 분할을 재생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분할을 소멸시켜 나가는 정치’,

(6) ‘대중권력의 확대-강화를 통한 국가권력의 장악과 국가권력의 대중권력으로의 전화 및 인민의 전면적인 자기통치체제의 수립을 지향하는 정치’

노동의 정치가 지닌 그러한 잠재력이 무한히 발현되어 간다면 노동의 정치는 다음과 같은 발전논리를 표시하게 된다.
(1) 일반적으로 생존권의 확보, 근로조건의 개선 등을 위한 경제투쟁으로 출발, 한편으로는 단위사업장투쟁에서 (지역적 단결을 보조 축으로 하는) 산별적 투쟁과 전국적 투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결합시키는 투쟁으로 발전한다.

(2) 비제도적이고 비국가적인 운동정치/대중정치를 기본으로 하면서 제도권정치와 국가적 정치로 자신을 확산시킨다.

(3) 민중적 연대를 추구하는 정치로 발전한다. 중간층과의 동맹이 아니라 타 기층민중과의 동맹을 추구하는 정치, 타근로대중이 지닌 프롤레타리성과 부르주아성 및 진보성과 보수성 중 전자와 결합하는 정치로 발전한다.

(3) 직접적인 계급문제의 해결을 추구하면서 생활상에서 제기되는 간접적인 계급문제의 해결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운동의 영역을 넓혀 나간다. 반착취-반억압을 연대의 기본고리로 삼으면서 비계급적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다른 투쟁들과 적극 연대하는 정치로 발전한다.

(4) ‘국가로 전화하는 (당이 아니라) 대중’. 국가권력의 대중권력화 및 노동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전면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정치로 발전한다.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노력이 사회구성원 전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적 관계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된다.

노동의 정치에 내재해 있는 이러한 발전논리는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그대로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1) 노동운동이 ‘피착취-피지배계급으로서의 노동자’운동이 아니라 ‘노동력상품판매자로서의 노동자계급’운동으로 왜소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2)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자기조직인 노조가 ‘노동자권익을 신장시키는 대중조직’으로서의 역할과 ‘자본과 국가권력의 대노동자통제의 대행기구’로서의 역할이라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후자의 경향이 강해질수록 노조가 황색노조 및 어용노조로서 기능한다.

(3) 노동자정치조직의 의회주의정당화가 나타난다. 의회주의정당을 통해 노동의 정치를 구현하려는 것은 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 등의 분할을 극복해 나가기 보다 그 분할을 완벽하게 재생산시키며, 노동자대중에 의한 정치의 직접적인 전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4) 노동자 정치조적 내지 노동자정당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이익을 옹호하는 정치조직으로서의 역할과 노동자대중을 국가로 통합시키는 기구로서의 역할이라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후자의 역할이 강화될수록 정당은 노동자대중을 부르주아국가에 통합시키는 정치적 기제로서 기능한다.

(5) 기층민중과의 연대보다는 중간층과의 연대를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타근로대중의 보수성 등에 영합하는 경향성이 대두한다.

(6) ‘노사협조주의적-계급타협주의적 산별노조체제’의 확립과 ‘체제내적 개혁을 우선시하는 의회주의적 정치조직’으로의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는 노동의 정치가 ‘노동력상품 판매자로서의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 이상으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는 내부의 완벽한 제도적 장치가 된다.


4) 쁘띠부르주아정치 내지 시민정치
쁘띠부르주아 정치 내지 오늘날의 신중간층 중심의 시민정치는 일반적으로 자신을 부르주아정치와 프롤레타리아정치와 구분되는 제3의 정치로 규정하지만, 그 지향하는 정치적-계급적 성격과 관련시켜 보면 독자적 범주의 정치이기보다는 부르주아정치적 요소와 프롤레타리아정치적 요소의 혼합물로, 그리고 이들 양대 정치 범주의 종속변수로서 나타난다.
과거의 쁘띠부르주아 정치운동은 급진민주주의운동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또는 그 반대로 정치체제의 반동적-파시즘적 개편의 사회적 기반으로 기능했다. 이와는 달리 신중간층이 중심이 되어 전개하는 오늘날의 시민정치는 파시즘의 사회적 기반이 될 가능성은 적다. 그런데 시민정치는 대체로 부르주아정치와 노동자-민중정치의 중간에서 자신의 독자적 입지를 구축하려 하고 ‘사회의 모든 계급-계층을 아우리는 초계급적인 공동선’의 추구를 내세운다. 그러나 시민운동은 지배블록과의 협력이나 정책적 건의 등을 중시하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시민운동’과 노동자-민중과의 연대를 중시하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시민운동’으로 대별될 수 있다.
시민사회이론가들은 대체로 시민정치 (내지 ‘시민사회 정치’)가 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경제사회의 구분을 전제로 하는 가운데 ‘제시민운동의 수평적 연대’와 ‘자기제한적인 영향의 정치’―자신을 국가적 정치나 정치사회의 정치로 전화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국가적 정치나 정치사회의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로 자신을 제한하는 정치―를 통해 ‘국가의 민주화’와 ‘경제 및 사회의 민주화’라는 이중의 민주화를 이루어 나가야 하며, 이를 통해 ‘사회주의적 시민사회’의 수립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적 정치와 정치사회의 정치가 정치를 지배하고 경제사회가 자본권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조건 속에서 ‘자기제한적인 영향의 정치’ 내지 ‘시민사회운동의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국가적 정치와 정치사회의 정치를 통제하고, 자본권력을 제한하거나 폐기하는 데에는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정치는 결국 국가적 정치나 정치사회의 정치 및 자본권력의 행사가 보다 탄력성 있고 대중통합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에 기여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에서 시민운동이 전개하는 시민정치는 대체로 지배블록이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정치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사회운동으로 기능하고 있다. 반면 쁘띠부르주아의 급진적 부분은 오늘날 대체로 반제적 민족주의 통일운동세력으로 출현하고 있다. 민족주의세력은 계급, 인민(민중)을 민족에 속하는 사회층으로 보면서 민족을 계급, 인민을 포괄하는 보편적인 것으로 보는 반면, 계급적 관점에서 민족은 인류의 민족적 분할을 전제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종별적-부분적인 것인 반면 민족적 분할을 넘어서는 계급과 인민(민중)이 민족보다 보편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사회적 격변기에는 중간층의 대대적인 급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중간층이 지배블록의 사회적 기반이 되는 것을 막고 이들이 대안적 정치질서를 추구하는 노동자-민중운동과 연대-제휴하도록 만드는 일은 노동의 정치의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이다.


3. 비계급 정치
모든 사회적 문제들은 '중층결정'에 의해 이미 처음부터 뗄 레야 뗄 수 없게 상호반영과 상호침투의 관계 속에 있다. 이 점에서 사회 속에서는 오직 순수하게 계급문제로서만 나타나는 계급문제란 없으며, 계급문제와 연관을 맺지 않고 있는 비계급적 문제 역시 없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비계급적 문제란 이미 처음부터 계급문제와 뒤얽혀있지만 계급문제로 모두 환원될 수 없는 문제 발생의 본래적 기원 및 문제해결의 고유한 지점에서 계급문제와 차이를 지닌 문제들을 가리킨다.
비계급적 문제들은 문제 발생의 본래적 기원 및 문제해결의 고유한 지점에서 계급문제와 차이를 지니다. 그러나 현실사회에서는 그러한 문제들은 이미 처음부터 계급문제와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지향하는 이념과 운동노선 등에 특정한 계급적 입장이 표시되어 나온다.
예를 들어 환경문제의 해결을 추구하는 운동이념에는 (1) 시장개량주의 입장, (2) 반산업문명주의 입장, (3) 반자본주의적 환경운동의 입장 등이 제시되고 있는데, (1)의 입장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부르주아적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2)의 입장은 급진주의적인 신중간층적 환경운동관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성문제와 관련해서는 (1) 남녀간의 형식적인 평등을 중시하는 부르주아적 여성운동관, (2) 가부장적 질서의 극복만을 특권화하거나 ‘여성계급론’을 제창하면서 ‘자매애’에 기초한 모든 여성들의 대동단결을 주장하는 ‘여성주의적’ 입장―급진주의적인 신중간층적 여성운동이념― , (3) 자본주의에 의한 성차별 및 가부장적 질서의 활용을 중시하는 입장 등이 제시되고 있다. 한편 통일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에서는 수구적 부르주아세력이 ‘대북강경책’을,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세력이 시장주의적-자유주의적 대북통일정책의 다른 이름인 대북 '햇볕론'을 주창하고 있고 , 급진적 쁘띠부르주아세력은 반제적 민족주의 입장에서 통일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반면, 시민운동세력은 대체로 햇볕론을 지지하는 사회세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지배층의 핵심분파는 대북햇볕론을 추구하고 있는 반면, 노동자-민중진영의 통일운동은 대체로 반제적 민족주의세력의 통일운동에 포섭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반면 여성운동, 환경운동은 오늘날 대체로 계급적-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넘어 하나의 운동진영으로의 단결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그런 가운데 부르주아적 입장과 부르주아적 접근의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는 중간층적 입장이 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정치는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차별의 폐기를 지향하는 정치이므로 비계급적 정치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비계급적 정치에 노동자-민중성을 각인시키고, 그러한 정치가 ‘반자본’을 지향하는 정치의 성격을 갖도록 아울러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1970-01-01 04:58:58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