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 날개짓을 할 수 있을까? 이정하의 세상이야기 |
현장에서 미래를 제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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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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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 날개 짓을 할 수 있을까?
이정하 / 노동자
중추절 단상
나는 고3 수험생을 둔 아버지다.
수능을 앞두고 움직일 수 없다는 아들, 그 아들을 두고 못
간다는 아내를 집에 두고, 덕분에 울산에서 살림한 이후
처음으로 명절에 혼자 고향집을 찾았다.
일곱 시간을 넘게 달려와 집에 도착하니, 처음으로
맞아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 늙어 보이신다. 아들을 못
데리고 찾아뵈니 죄송한 마음 먼저 그지없고…….
지난해 사다리에서 떨어지신 이후 더욱 기운 없어 보이셨는데
오늘따라 더욱 늙어 보이시는 것은 입고 계신 옷차림 때문일까?
아니면 지난 여름이 무척 더웠던 탓일까?
절을 올리고 술 두어 잔 따라드리고 나니 무슨 할 일이
그리 많으신지 곧바로 일어나 나가신다.
비는 구질구질 오는데 나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문득
아버지와 나 사이를 생각해 본다. 아버지와 나, 어머니는 같은
닭띠다. 어머니의 말을 빌리면 닭띠는 무엇이던 자꾸 파헤쳐서
잘 못산단다. 그래서 우리는 부자가 못 되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우리 아버지는 무지하게 고생을 많이 하셨다. 물론 그 시대 사신
분들 다 고생하셨지만……. 내가 알기론 아마 아버지 철들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일만 하시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명절도 없었다. 목수이신 아버지는 객지에
가있는 자식들 오기 전에 고쳐야 하는 마루나 대문이랑 온 동네
집수리 하시느라 날 새는 줄 모르셨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면사무소, 우체국, 지서는 물론이고 요즘은 마을
회관까지 아마 아버지의 손길이 안간 집이 거의 없을 정도니
바쁘기도 무척 바쁘게 살고 계시다.
덕분에 집안일은 다 어머니 차지이니 우리 집 농사일은 다른 집
보다 늘 늦곤 했다. 농사를 해보면 알겠지만 꼭 달리기와 같은
면이 있다. 앞에 가면 수월하고 잘 보이지만 며칠이라도 늦게
할라치면 무슨 일이 그리도 많고 힘이 드는지 모른다. 그러니
어머니의 허리가 다른 노인보다 더 휘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곳 울산에 와서 뼈 빠지게 일해서 받는 돈은 우리
아버지의 반 정도밖에 안됐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못
마시는 술에 안 피시는 고급 담배 한 갑 하루세끼 밥을 주고도
그리 대우를 잘 해주는 것은 아마도 아버지의 재주도 재주지만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하시는 성실함에 있지 않나 싶다.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에 감히 나를 비춰 본다.
24년 후에 나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할 일이 있을까?
나도 아버지처럼 무엇이던 일거리가 있을까?
아버지는 무슨 일인지 일거리가 있다. 죄송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24년 후에 아버지처럼 일을 할 수가 있을지
걱정도 된다. 또 한편으론 그때까지 일해야 하는가?
생각하며.
엊그제 현장에서 올해 정년퇴임하신 분들 중에 두 분이 하청에서
일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좀 쉬시지 벌써 일하러 나오셨어요?” 했더니
쓸쓸한 눈빛으로 이러신다.
“야! 그거 몇 달 쉬고 나니 좀이 쑤셔 못 살겠더라. 일 하는
놈은 일을 해야지 시간도 잘 가고…….”
말로는 그렇게 하시지만 오죽했으면 여기로 왔을까? 하지만
얼마나 더 다니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하다. 꼭
같이 같은 부서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날짜가, 시간이
바뀌었다고 신분이 틀리고 대우가 달라져야 하다니, 참 우스운
세상도 살고 있구나. 아니 서글픈 세상이구나. 하고 지났는데
오늘 또 아버지를 보면서 생각한다.
나도 그 사람들처럼 정년하고 갈 데가 없어 하청이나 제대로
다닐 수 있을까?
아마 그때는 요즘 같은 청년 실업이 아니라 노년실업이라는 말이
많이 나돌지 않을까?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나의 노년을 찾으려니 어렵기만 하다.
어렵고 고단한 역사를 격어오신 아버지를 따라가려 해서가
아니고 이놈의 세상이 앞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만 봐도 그렇다. 3년 연속 대한민국 최고 기업에
선정되었다고 온갖 자랑은 돈을 퍼부어서 하면서 우수한 경력
사원을 모집한다고 광고는 해대도 생산직의 정규직 채용은 몇
년째 안하고 있는지 모른다. 올해도 수백 명이 이 회사를 떠날
것이다. 하지만 작업현장에 꼭 필요한 인원모집 계획은 없다.
모두다 비정규직(하청)으로 채우려 하고 있으니 이놈의 세상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다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우리라도 정상으로 살아야지 하는 생각뿐이다.
올 가을엔 선거 좀 잘 해서 장기근속자 처우도 잘 해드리고
작업현장에 신입사원도 팍팍 밀어 넣어서 젊음이 넘치는 현장/
활기찬 현장/ 미래가 보이는 현장으로 / 하청이 없는 현장으로 /
만들어 봤으면............ 그리고 24년 후 아버지처럼
살았으면...........
선거, 활동가, 그리고
얼마 있으면 선거를 치르게 된다. (노동조합 임원선거)
그동안 많은 선거를 치러 왔지만 이번만큼 신경이 쓰이는 선거는
그리 많지가 않았다.
활동가다운 임원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고나 할까?
어느 동지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틀렸다. 조합원들의 손은
저들의 주문에 놀아나고 있다.” “선거를 하면 무엇 하나,
결과야 뻔하지. 이제는 조직원이나 단속하자.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활동가를 더 힘들게 하지말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또 열이 난다.
왜 활동가가 선거를 회피하느냐? 선거는 투쟁이다. 자본가와의
투쟁에서 활동가가 나서지 않으면 조합원들은 누굴 믿고
살아가느냐? 활동가는 조합원 앞에 있는 전위대이다.
조합원 앞에서 자본가와 어용에 맞서 우리가 꿋꿋이 서서
싸워나가야 한다.
조합원의 앞에서 무엇이 잘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조직원의 생각과 행동을 통일시켜 내기 위해서라도 선거는
필요한 것이다.
선거기간 조직원을 훈련하는 장으로 또는 토론하는 학습의
장으로 활용해야한다.
지금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려는 노사협조주의니 노사 상생의 신
노사문화니 하는 것의 허구성을 바로잡고 노동조합의 기본
설립취지에 맞는 노동조합 활동의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선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민주노조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조합원 대중에게 올바른 민주노조의 상을 각인시켜주기
위해서 우리는 나서야한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의 투쟁에서
많은 빚을 지고 왔다. 그 빚을 청산하는 투쟁의 현장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활동의 오류가 있다면 선거를 통해서
오류를 극복해야 할 것이고 자본가에게 진 빚이 있다면 그 빚을
갚아줄 토대를 선거를 통해서 확보해야 하지 않느냐?
만약 당선이 안 되더라도 조직 활동을 하는 동지가 팔구십
프로만이라도 한마음으로 움직여 준다면 이번 싸움은 우리가
이긴 싸움이라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을 텐데…….
과연 현장의 많은 힘 떨어진 동지들이 기지개를 펴고 힘찬 날개
짓을 할 수 있을까?
많은 현장 활동가들의 비상을 기대해 본다. 현장이 살아 숨 쉬는
그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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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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