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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구조조정 투쟁의 선봉에 선 114분사철회투쟁

현장에서 미래를  제67호
우상희

공기업 구조조정 투쟁의 선봉에 선
114 분사철회투쟁


우 상 희/114 조합원





1. 114분사의 배경
한국통신은 98년 12월부터 구조조정을 시작하였다. 한국통신 구조조정의 핵심은 인원감축이었으며 명예퇴직, 희망퇴직 등으로 2000년까지 18,000여명이 정리해고되었다.
한국통신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의 인력감축이며 특히 여성노동자들에게 더욱 집중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작년 12월 시행된 강제명퇴 등으로 조합원의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어 12월 명동성당에 2만이 넘는 조합원의 파업을 이뤄냈으며 이제 더 이상 명퇴, 희퇴 등으로 인원감축이 어려워지자 분사 또는 소사장제 등의 다양한 형태를 통해 업무와 인력을 분리, 분사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는 신경영전략 프로그램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2003년까지 민영화를 완성하여 전화국을 폐지하고 시내시외전화사업까지 전부 매각하여 돈이 벌리는 지역은 사업화시키고, 이윤을 내지 못하는 지역의 통신요금을 상승시키려 한다.
한국통신의 구조조정의 하나인 민영화작업은 98년 12월 강제명퇴로 시작하여, 2000년까지 서너 차례의 강제명퇴, 희퇴 등을 통해 엄청난 인원감축을 진행하고 그 인원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여 오다가 2000년 12월 전화가설, 전화고장신고분야를 도급화하면서 한국통신 계약직 7,000여명을 대량해고하였다.
이후 16,000여명의 인원감축을 하겠다는 목표아래, 11개 분야의 적자사업을 한국통신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하여 진행하겠다는 신경영전략 프로그램을 계획하여 우선 가장 손쉽다고 판단한 114분야부터 분사를 시작하기로 계획, 작년 하반기부터 114사업이 적자이며, 단순반복작업인데 반해 고임금이라는 여론공작을 시작했다. 이러한 회사의 일방적인 여론작업과 114분야의 고립화작전에 한국통신 노동조합은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작년 파업 당시 한국통신 노동조합은 인력감축으로 모든 것이 초점이 되어 있는 구조조정에 대해 강력한 반대, 저지를 하지 않고, 계약직의 대량학살을 야기하는 도급과 분사 등을 인정하면서 이후 분사시에 노사간 충분한 합의를 한다는 반쪽짜리 합의서를 도출하였다. 구조조정시에 노사간 충분한 합의를 한다는 것은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조합의 개입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측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기에, 도급철폐를 외치며 파업중인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이나 분사화와 인력감축의 초점이 되어있는 114안내업무 조합원과 선로분야 조합원들은 엄청난 울분을 토했으나 실제 조합원 의견수렴 없는 합의서는 통과되어 버렸다.
결국 한국통신 노동조합은 반쪽짜리 합의서를 성공적인 합의서로 둔갑시켰으며, 합의서에는 파업에 대한 어떠한 불이익도 주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안도 없이 그저 구두로 합의했다고 발표하였다.
결국 파업 이후 조합원들에게 밀어닥친 감사와 징계, 금전적 불이익은 파업 이후 승리의 관점보다 패배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114분사는 조합원들로부터, 각 단체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한 여론작업부터 시작하여 적당한 합의를 통해 투쟁을 마무리지으려는 것으로 이어졌다.

2. 114분사의 문제점
한국통신은 번호안내사업을 지금처럼 자동응대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한 93년 7월부터 번호안내 유료화를 검토했으나 시민 단체와 노조가 반대해 왔다. 1997년 한통은 ‘수익자부담’이라는 측면보다는 ‘불필요한 통화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유료화를 추진했고. 이후 국민의 부담은 1,324억원에 달했다. 이것은 향후 번호안내 사업을 ‘보편적 서비스’에서 제외하고 궁극적으로 수익자부담이란 미명으로 번호안내 사업을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시킬 계획이었다.
번호안내사업에 소요되는 평균 인력은 4,000여명이다. 97년 이후 계속되는 한국통신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성중심의 강제명퇴가 대폭 이뤄지면서 정규직의 비율은 계속 줄어들어 현재 정규직과 계약직의 비율은 25:75이다.
결국 번호안내사업의 분사화의 목적은 정규직의 비정규직 화라는 사실과 여성노동자들의 우선적 감축, 국민부담 증가와 우리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그만큼 저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분사화는 최소 175%의 안내요금 인상을 가져오고, 2,000만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 현재 114 안내요금은 통화당 80원이지만, 회사측의 논리에 맞춰 원가 수준으로 요금을 현실화하면 통화당 220원 수준이 되어, 분사화되었을 경우 적어도 175% 이상의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다. 결국 한국통신은 적자사업 정리를 통한 수익성 증대란 이름 아래, 요금인상의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시키려는 것이다.
한국통신이 제시하는 114 분사 후 사업적자 해소방안으로 얘기하는 것이 고객데이타 임대사업이다. 한국통신은 현재 2,000만 가입자 정보를 관리하고 있는데, 수익성 증대를 위해 이 가입자 정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이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시대적 요구에 철저히 역행하는 것이다.


3. 114 분사화투쟁 진행과정: 구조조정특별위원회의 노사합의과정
2000년 12월 22일 총파업 관련 노사합의서 중 ‘회사업무 분할 및 분사시 구조조정특별위원회를 통해 노동조합과 충분한 협의를 하겠다’고 이상철 사장과 이동걸 노조위원장이 합의서를 작성하였다. 2001년 4월 제 4차 구조조정특위 실무소위에서 한국통신 사측이 114 안내와 체납관리분야 분사 전격 제의하였으나 노조에서 ⓛ 정년단축 ② 2001년 임금 및 단협 동결 ③ 1회에 한해 명퇴금 상향조정 후 명퇴 노사자율 시행을 제의을 하며 분사를 전면 백지화하자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5월 3일, 사측 구조조정 특위 정회 중 일방적으로 114번호안내 및 체납관리 분사화 전격 발표하였다.

분당에서의 농성시작
이에 분노한 분사대상 114조합원들은 분당본사로 집결하여 농성을 시작하였다. 농성 5일째인 5월 7일 한국통신 이사회에서 114안내 및 체납관리 분사화 날치기 통과하였다.
이사회 날치기 통과이후 울분한 700여명의 조합원들은 더욱 강경한 투쟁대오를 형성하여 114각 지부의 지부장들의 삭발과 위원장 및 상집간부들의 삭발을 단행하고 투쟁하여 왔다. 이후, 114 분사화 저지 투쟁은 이사회 통과 이후 분사화 철회투쟁이 되었으며, 강경하게 114 분사철회투쟁을 하고자 하는 조합원들은 대오 이탈 없이 투쟁을 하였다. 그러나 투쟁 10일째 이 동걸 집행부가 114분사철회투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하며 투쟁의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114조합원들의 궁극적 목표는 고용안정이라는 생존권투쟁이다. 이동걸 집행부는 114분사를 인정하고 한국통신에 계속 머물기를 원하는 114대상 조합원들에게 재배치를 통한 협상을 통해 투쟁을 마무리하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왔다. 그러나 114분사를 철회를 주장하는114조합원들은 왜 재배치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고 있다. 114분사는 일회성에 그치는 1,600명의 인원감축만이 아니라 이후 진행될 구조조정의 하나이며 이미 진행된 도급 및 분사 등으로 안정적인 재배치의 불가능함을 알고 있다. 회사에서 제시하는 재배치 분야는 ADSL개통, IT(정보통신분야), 인터넷데이타 등이다. ADSL을 제외하고는 전국에 분포되어 있지 않으며, ADSL개통 및 수리분야는 이미 도급이 시작된 업무이다.
실제로 회사는 이미 구조조정대상 분야를 확대하고 있으며, 때문에 집단적 재배치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분야, 또는 고용안정이 보장된 분야는 한국통신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114분사철회투쟁은 114조합원들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갈 수밖에 없는 길인 것이다.
이러한 114조합원들의 절박함을 뒤로한 채 이동걸 집행부의 10일간의 투쟁방침은 분당 본사 안에서 재배치의 협상력 만을 높여주는 수준의 투쟁으로 안에서 구호 외치고, 노동가요 부르고, 문화제를 하는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10일간의 이러한 투쟁에 의구심을 가진 조합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중앙간부들에 대한 비판의 물결이 일어나자 거리선전전, 정보통신부, 기획예산처 앞에서 집회를 하는 등의 장외투쟁으로 확대하여갔다.
이 과정에서도 이동걸 집행부는 무단결근일수와 징계문제를 거론하며 끊임없이 대오의 이탈을 종용하여 왔다. 분사철회투쟁은 현실성이 없는 투쟁이라며 적당한 협상으로 마무리하고자 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조합원들의 이동걸 집행부에 대한 반발은 더욱 강해졌다.
결국 114투쟁 대오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투쟁의 주체들이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투쟁의 분위기가 이뤄지자 이동걸 집행부는 단식 12일째 병원에 입원하면서 직무대행체제를 선임하였다. 직무대행체재의 새로운 중앙간부는 한국통신내 민주동지회라는 현장조직으로 이뤄졌으며 이때부터 투쟁은 자본을 직접 압박하는 현장순회투쟁으로 이어졌다.
각 지역의 안내국을 비롯한 현장순회투쟁은 한국통신 계약직노동조합의 지역거점투쟁일정과 결합하면서 계약직과 정규직의 연대투쟁의 장이 되었으며, 회사의 114분사철회투쟁의 대오의 회사안 진입을 방해함으로 자연스러운 출근저지투쟁으로 이어져 업무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었다.
114철회투쟁대오의 114계약직에 대한 선전과 선동등은 회사에 대한 엄청난 부담감으로 전개되었으며, 결국 5월31일 이동걸위원장은 114분사철회투쟁을 끝까지 책임져 달라며 직대를 임명하였던 처음의 사고를 바꾸고 갑작스럽게 복귀를 선언하였다. 복귀선언을 하며 전국의 지부장을 분당본사앞에 집결하게 하였다. 이날 114조합원들은 이동걸복귀를 온몸으로 막았다.
이동걸집행부에 대한 114조합원들의 거부에 대해 회사는 이를 민주동지회의 현장조직과 이동걸집행부의 노노갈등으로 몰고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은 생존권투쟁의 절박함속에서 이 투쟁을 함께 할 수 있는 동지들을 지도부로 인정하고 있었다.
114조합원들이 울며, 분노하면서 이동걸집행부를 거부하는 이유는 36일동안의 투쟁에서 보여준 이동걸집행부의 본질을 피부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걸위원장의 단식투쟁과정에서 진행된 지부장 결의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80%이상의 지부장들이 114분사철회투쟁을 그만하라고 해산명령을 내리며 이동걸위원장이 복귀선언을 한날은 회사가 대절해 준 관광버스를 타고 분당본사로 모여들었다. 모여든 지부장들의 구호는 ‘114는 해산하라’였다. 분당에서 30일째 농성중인 조합원들은 억누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하며 오열하였고 양심있으면 그냥 가라고 소리쳤다.
이와 동시에 분당본사안에서 청경들의 해산을 유도하는 폭행과 폭언, 농성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날 청경의 난동으로 20여명의 조합원이 병원에 실려갔다. 회사는 이날을 농성장 해산의 D-day로 정하고 밖에서는 어용지부장들을 구사대로 돌변시켜 대기시키고, 안에서는 청경의 난동으로 조합원들과의 내부 싸움을 유도하였고, 이로 인한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공권력을 투입하여 강제해산시키려는 계획이 있다는 사후 소문이 있다.
그러나 청경의 난동에는 냉정하게 대처하고, 구사대로 돌변한 어용지부장들의 진입은 강경하게 막아내면서 회사의 일방적인 난동과 폭행으로 끝나버리고 114파업대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이날 이동걸집행부는 파업대오에게 아무런 결과 없이, 대책없이 114파업대오의 해산명령문서를 노동조합홈페이지에 게시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해산하지 않았다.
회사와 이동걸집행부는 위원장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114파업대오와 직대체제의 민동회 중심의 조합간부들을 노노갈등으로 몰아가며 114분사철회투쟁을 회사내에서 고립시키고 있다. 노동조합홈페이지와 사내게시판등에 114투쟁의 홍보에 대해 긴장한 회사는 114투쟁관련글에 대해 삭제하고 오직 노노갈등으로 몰고가고 있다.

이동걸 복귀선언이후 회사의 노동조합사무실폐쇄, 단전단수 등으로 114투쟁 주체들을 고립시키고 형식적으로는 더 이상 직무대행체재의 조합간부들이 되지 못하는 어려움속에서도 투쟁의 결의를 다져나가며 6월4일 국회투쟁을 전개하였다. 6월 5일 이사회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의 소송이 승소함으로 파업대오의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러한 가운데 6월 9일 오전 10시30분 이동걸은 직권조인을 하였다. 이사회 효력정지 가처분정지신청의 승소에 따른 여론의 공기업구조조정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기사등으로 114분사철회투쟁에 힘을 더해주고 있었다. 아마도 여론과 여당의 114분사에 대한 관심의 확대와 주체들의 강한 결의 등에 엄청난 부담을 안고 있던 회사는 직권조인으로 회사에게 불리한 국면을 극복하려 했던 것 같다. 직권조인함으로 공기업의 구조조정과 114분사에 대한 여론의확대를 막고 농성대오의 자연스러운 이탈을 유도하였으나 파업38일째인 농성대오에게는 회사의 일방적 합의안의 내용은 파업대오의 동요나 이탈을 가져오지 않았다.
현재 114동지들은 직권조인 무효소송과 함께 끝까지 투쟁하여 114분사화를 철회하고 한국통신의 구조조정을 저지하자는 결의속에 이후 투쟁을 준비중이다.


4. 114분사투쟁은 구조조정투쟁의 선봉
이동걸집행부의 직권조인에도 불구하고 114분당의 농성대오가 더욱 결의를 높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선택할것이 없기 때문이다. 고용불안에 대한 생존권투쟁인 114분사철회투쟁은 구조조정분쇄투쟁이며 한국통신전조합원의 고용안정투쟁이다.
이동걸위원장의 직권조인으로 회사와 야합하는 노동조합을 거부하고 이 투쟁을 전 조합원의투쟁으로 확대해야 한다.
분당 114투쟁을 고립시키려는 회사와 자본에 맞서 이제 과감한 투쟁을 전개하여야 한다. 새로운 투쟁대책위를 구성하여 조직을 정비하고 이 투쟁을 확대하여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분당114의 투쟁은 고립되어선 안 된다.
구조조정 저지투쟁의 선봉에선 114분사철회투쟁을 전조합원의 투쟁으로 확대하여야 한다.
직권조인 무효소송과 함께 이동걸 집행부의 불신임을 이끌어내야 한다.
계약직과 공동대책위를 결성하여 공동투쟁을 공세적으로 전개하여야 한다.
114계약직의 파업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계약직과의 연대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야 한다.
결국 114분사철회투쟁을 전조합원의 투쟁으로 발전시키는 것과 계약직과의 연대를 통해 114계약직의 파업을 이끌어 내고 타사업장과의 활발한 연대투쟁으로 구조조정투쟁의 한가운데서 상층연맹과 민주노총의 실제적인 지원연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 114분사투쟁을 승리할 수 있는 데 한발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다.


5. 114 분사 철회투쟁은 이제 114 투쟁주체들 모두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114분사철회투쟁은 일방적인 합의안에 대한 전조합원의 분노로부터 시작되었으나 40일간의 투쟁을 전개하면서 조합원들은 노동자로서 각인되어가고 있다.
이동걸집행부가 114분사철회에 대한 직무대행을 선임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114조합원들의 투쟁속에서 얻어진것이며, 직권조인에도 불구하고 대오가 유지된 것은 갈곳이 없는 조합원들의 절박함과 40일간의 투쟁속에서 무엇을 얻어가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투쟁초기에는 협상으로 투쟁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와 철회투쟁을 끝까지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섞여 정확한 투쟁의 방향없이 농성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회사의 협상안을 보면서 114분사가 철회되지 않는한 고용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확인하였다.
이미 시작된 구조조정으로 인해 한국통신 곳곳에는 도급과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있고, 또한 회사는 114이후 다른 분야의 아웃소싱을 계획하고 있기에 114분사를 인정하고 재배치된다면 더 이상의 고용보장은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114분사철회투쟁을 통해 계약직 노동조합과 왜 연대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아가고 있으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투쟁이나 114분사철회투쟁이 같은 투쟁임을 알아가고 있다.
114농성대오는 이동걸위원장의 복귀선언이후 직권조인의 가능성이 있는 불안한 상황속에서도 자신들의 투쟁의 의지를 꺽지 않고 오히려 이동걸위원장이 직권조인하더라고 끝까지 투쟁하고 114분사철회투쟁이 승리할때까지 투쟁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함으로 의지를 표출하였다. 이러한 결의는 장기적인 투쟁속에서 이미 114파업대오들은 단련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하며 더 이상 물러설곳이 없는 투쟁인 것이다. 한/노/정/연

2001-06-07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0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