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출범과 정부의 노동정책 변화 |
현장에서 미래를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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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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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 세 ․ 초 ․ 점
민주노총 출범과
정부의 노동정책 변화
박 성 인 (정책사업위원장)
민주노총 출범과 전두환․노태우 구속
95년 마지막 두 달은 두가지 사건으로 인해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11월 1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이하
‘민주노총’)의 출범이 그 하나요, 비자금 폭로와 뒤이은
5.18특별법 제정에 따른 전두환․노태우의 구속이 또 다른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다. 민주노총 출범이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를 조직적으로 결집하면서
한국노총으로 대변되어 왔던 노자관계를 새롭게
민주적․계급적으로 재편해 나갈 주체의 형성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면, 김영삼정권에 의한 전두환․노태우의
구속은 87년 6월 민주화투쟁의 성과를 전두환․노태우의
6.29가 아닌 김영삼 정권의 성과로 이행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87년 6월 민주화투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의 성과는
8년이 지난 후, 전자는 김영삼 정권에 의한 과거청산과 그를
통한 소위 ‘개혁세력’의 결집으로, 후자는 민주노조운동의
전국 중앙조직인 ‘민주노총’의 건설로 귀결되고 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귀결되고 있다.
그런데 95년 마지막 두 달사이에 일어난 이 두가지 사건은
별개의 사건처럼 평행선을 그으면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전두환․노태우 구속’에 이은
과거청산정국이 전체 정세를 주도하면서 민주노총 출범이라는
사건을 묻어 버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당연히 언론은 온통
부르주아 정계개편의 전망과 추측과 가십으로 넘쳐흐른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출범을 둘러 싼 정부와 자본의 대응과
노동정책의 변화, 그리고 비자금, 5․18정국이 노자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 보면, 이 두가지 사건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동일한 현실의 두 측면임을 알 수 있다. 동일한 현실이란
바로 자본의 축적양식의 변화에 대한 노자관계의 새로운 재편을
둘러 싼 총노동진영과 총자본진영간의 대립의 출발을
의미한다.
역사와의 대화(?) : ‘표’와 ‘자본’과의 대화
불과 몇 달전까지만 해도 12․12와 5․18에 대해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고 하던 김영삼 정권이, ‘승리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으므로 공소권도 없다’고 결정했던
김영삼 정권이 왜 갑자기 태도를 바꿔 ‘역사적 평가’의 주체가
되고자 나섰는가? 물론 96년 총선을 앞두고 ‘표’를
계산해서이다. ‘안정 속의 개혁’이라는 구호 속에서 온건
개혁세력과 수구세력 사이를 동요하던 김영삼 정권은 5․18
공소권 없음을 결정한 이후에 교수, 학생, 종교인을 비롯한
광범위한 민중세력들의 항의와 투쟁으로 자신의 지지기반 이탈의
위협을 느꼈다. 위로부터 개혁의 지속적인 추진이냐
수구․보수세력과의 지속적인 동거냐의 갈림길에서 김영삼
정권은 소위 개혁 세력을 중심으로 정계를 개편하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해 나갈 때 96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여기에 6.27 지자체 이후 전두환, 노태우에 의해
은밀하게 추진되었던 5, 6공의 정치적 세력화가
수구․보수세력을 결집하면서 김영삼 정권의 후반기 정국
주도권을 위협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의 ‘과거 청산’과 ‘개혁’은 아래로부터의
광범한 대중투쟁의 성과를 가로채어 5, 6공 세력의 일부를
청산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5, 6공 시절에 노동자계급에
대해 가해졌던 법적, 제도적 억압의 역사적 청산에 이르러 그
과거청산과 개혁의 발걸음을 멈추어 버리는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비자금, 5․18청산 정국의 화려한 수사
이면에서 가해지는 노동자․민중세력에 대한 탄압은 김영삼
정권이 노동정책에 관한 한 5, 6공 군사정권의 유산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슴을 보여주고 있다. 5, 6공 시절에 만들어 진
노동악법이 철폐되기는 커녕, 그 악법에 의해 민주노조운동
지도부가 다수 구속되고,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맹위를 떨치면서
노동자․민중진영을 이적단체로 몰아
구속․수배하는가 하면, 이덕인 장애노점상의 죽음과
조수원 병역특례 해고자의 자살에서 보듯이 최소한의 생존권조차
짓밟는 모습을 볼 때, 김영삼 정권의 개혁이 진정한
역사의식에서부터 나온 개혁이라기보다 ‘정략적 판단’ 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비자금 정국의 현실적인 결과도 마찬가지이다.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아 법정에 서고, 뒤이어
재벌들이 ‘자정선언’까지 하면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과거의 검은 관행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만,
현실적인 결과는 오히려 재벌에게 면죄부만을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뇌물을 받친 재벌총수에 대한 구속기소는 커녕, 비자금
정국 이후 김영삼 정권은 재벌에 대한 근본적인 노선 변경을
추진하면서 재벌에 대한 개입과 통제를 줄이는 대재벌 유화책을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최근의 비자금 폭로를 통한 정경유착 고리의 단절과
5.18특별법 제정을 통한 5, 6공과의 단절은 오히려 독점자본의
입지 강화와 노동자에 대한 법적․제도적 억압의 강화로
표현되고 있다. 이 점에서 김영삼 정권의 ‘역사와의 대화’는
단지 과거와의 대화가 아니라 96년 총선에서 ‘표의 향방’을
묻는 대화이고, 독점자본과 유화를 모색하는 대화일 뿐이다.
민주노총 출범을 전후 한 노동정책의 변화
김영삼 정권의 ‘역사와의 대화’가 갖는 의미는 민주노총
출범을 전후한 노동정책의 변화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낸다.
민주노총 출범을 전후하여 김영삼 정권의 노동정책은 크게
두가지 기조를 가지고 전개되었다. 하나는 민주노총에 대한 법적
지위 불인정 및 초기 기선제압을 통한 사회적 영향력의
약화이고, 다른 하나는 중앙노사협의회의 재개, 10월~11월에
여섯차례에 걸친 노사관계발전 대토론회, 그리고 12월의
노사한마당 개최 등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노사협조주의세력을
새롭게 창출하고 결집해 나가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출범과 관련해서는 주목할 만한 것은 민주노총 출범
직전의 입장과 출범 이후의 태도의 미묘한(?) 변화이다. 출범
직전에는 이적단체, 불법과격단체 운운하며, 민주노총 건설
기금모금을 기부금법 위반이라 하여 압수수색하고, 민주노총
지도부를 수배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취하다가, 출범 이후에는
설립신고서의 반려, 법외단체 규정, 불법적 행위에 대한 엄중
처벌 등, 민주노총 불인정 수준에서 대응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90년 전노협 출범 때와는 달리
지배세력 내부가 분열되어 집중적이고 효과적인 탄압을 할 수
없는 상황과, 동시에 그 동안 민주노조운동 역량의 성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일방적인 탄압이
민주노조운동을 약화시키기는커녕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역량
강화로 이어졌던 과거의 경험에 대한 평가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에 대한 이러한 태도 변화는 95년 노사관계에
대한 노동부측의 평가와도 맞물려 있다.
“노사협력 분위기 확산 및 노사분규와 근로손실일수의 감소,
원만한 임금교섭의 타결로 전반적으로 ‘참여와 협력’의 새로운
노사관계 형성 가능성을 보여준 한 해였다.” (진념
노동부장관)
이러한 평가 위에서 노동부는 민주노총 출범 그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보다는 노조 전임자수 축소 등을 통해 민주노총의
물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조폐공사 공익사업장 지정 등에서 보는
것처럼 공공부문에 대한 공세를 통해 민주노조운동의 확산을
저지시켜 내며, 민주노총의 정치활동이나 사회개혁투쟁 등에
대해서는 법적, 제도적으로 탄압함으로서 민주노총의 사회적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동시에 95년 상반기에 추진되었던 노사협력선언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 그 성과의 연장선상에서 한편으로는 중앙단위
노사협의회를 재개하여 노사협조를 위한 토론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하고, 임금 연구회를 구성하여 우회적인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는가하면, 노무관리전담팀을 구성하여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 대한 노무관리서비스를 강화함으로서 현장으로부터
노사협조주의세력 양성을 통해 민주노총을 아래로부터의
고립시키고 그 영향력을 약화시켜 나가겠다는 전술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변화가 아직 구조화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노동정책의 변화를 어떻게, 어느 수준에서
이해하고 대응해 나갈 것인가가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방향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새로운 자본축적 양식에 맞는 새로운 노사관계의 창출(?)
김영삼 정권의 노동정책의 변화가 갖는 이러한 미묘한 (?)
변화를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청산되고 있지 않은 ‘과거의
유산’ 으로 바라 볼 것인가? 최근 ‘무노동 무임금’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나 조폐공사 공익사업장 지정, 근로자 파견법
제정 시도 등에서 보여 지듯이 더욱 보수화되어 가는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노사관계 창출을 위한 법적,
제도적 정비라는 차원에서 바라 볼 것인가?
김영삼 정권은 한편으로는 청산하지 못한, 당장 청산할 수 없는
‘과거의 유산’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자본축적 양식과 자본주의 질서 재편에 대응한 노동정책의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과도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세계화, 개방화의 진전과 함께
사회구조가 크게 변화하고 있으며, 국가간 경쟁이 심화되어
총체적인 국가경쟁체제가 도래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경제적
생산성을 극대화하여 기업발전과 ‘삶의 질’ 제고를 뒷받침할
수 있는 동반자관계 정착이 중요한 과제이다. 이를 위해
기업․국가 경쟁력의 핵심적인 요소로서 노사관계
변화노력을 적극 추구하고, 고용확대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며 사회적 통합기능으로서 노사관계를 인식해야
한다.”
(「국내외 노사관계 주요동향 및 정책방향」, 95.
10.12. 노동부)
노동부는 이러한 목표 아래 향후 노사관계정책 방향과 관련해서,
참여와 협력의 신노사관계와 합리적 임금교섭 방향을 모색하고,
공공부문 노사관계를 개선하는 한편, 협력적 노사관계 정착의
기반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현장 근로자 중심의 노동행정으로
전환해 나가겠다는 방향을 구체적으로 수립하고 있다.
즉 노동정책을 자본간 무한경쟁논리에 따른 생산성의 극대화에
종속시켜 나가되, 그 방법으로는 ‘협력적 노사관계의 구축’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위한 제반 법적, 제도적 정비를
모색하고 있다. 나아가 여섯 차례에 걸친 노사발전대토론회를
통해서는 노사동반성장을 위해 ‘성과배분제의 도입’을 중요한
정책방향으로 합의해 냈다.
김영삼 정권의 이러한 노동정책의 목표가 당장 현실화하는 것은
아니고, 노자간 역학의 변화에 따라 어떠한 형태로 귀결될 지는
아직 미지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노동정책이 정부의
주도아래서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과정이었다면, 이후는 최근
신경영전략을 통해 정비되고 있는 자본의 노무관리체계를 법적,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면서, 동시에 87년 이후 성장한
민주노조운동을 이러한 방향에서 제도화시켜 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최근 변형근로제 입법화 시도,
근로자파견법 제정 시도, 그리고 민주노총을 공식적인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나 간접적인 형태, 즉 합법연맹이나 단위노조와
대화와 교류를 모색하겠다는 진념 노동부 장관의 발언 등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노동법 개정과 관련하여, 장기적으로 노사관계제도와 관행의
새로운 틀을 구축해야지만, 지금은 개선방향과 내용에 대한
합의의 틀이 마련되지 않아 시간을 가지고 고쳐 나갈
것이다.”
(진념 노동부 장관, 95. 11. 22. ‘21세기 경영인 클럽
초청조찬회에서’)
이처럼 최근 김영삼 정권의 노동정책은 분명 새로운 노사관계
창출을 목표로 그 법적, 제도적 조건을 준비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김영삼 정권의 노동정책은 제3자개입금지,
복수노조 금지, 공무원의 단결권 제약,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의
규제 등의 법적․제도적 제약을 온존시키고, 동시에
공익사업장 노조 전임자수 축소, 근로자파견법 제정 시도,
변형근로제 도입 시도 등 자본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면서
‘참여적․협력적 노사관계’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김영삼 정권의 노동정책이 이렇게 모순적인만큼 96년에
노동자계급의 저항에 부딪힐 것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그 모순을
노동자계급 내부의 모순으로 전환시켜 나가려고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이다. 즉 ‘노동자를 통한 노동자 통제체제의
구축’, 협조적 노사관계의 구축을 통한 민주노조운동의 배제 및
포섭전략이 주요한 노동정책의 방향으로 모색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청산해야 할 것과 새롭게 대응해야 할 것
이에 대한 민주노조운동진영 인식과 대응은 어떠한가?
민주노총은 김영삼 정권의 이러한 정책변화를 민주노총에 대한
탄압으로 인식하고, 민주노총 출범과 동시에 민주노총 합법화
투쟁을 전개하였다. 90년 전노협 ‘사수’라는 구호와 비교하면
‘합법화’라는 표현은 너무 느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표현에 구애받지 말자. ‘사수’와 ‘합법화’의 차이는 일단
지난 5년간 민주노조운동 역량의 성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하자. 단위노동조합운동에서도 그렇듯이 ‘대표성’을
가지면 당연히 ‘합법성’도 쟁취해야 한다. 문제는 합법화의
경로와 방법이다. 물론 민주노총 역시 이러한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민주노총은 합법화의 문제를 현행
노동악법 철폐를 통한 합법화의 과제로 설정하고, 합법화 투쟁을
96년에 노동악법철폐투쟁과 결합하여 전개해 나갈 계획을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의 합법화를 위한 노동법개정투쟁은
과거를 청산하는 투쟁이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의 노동정책 변화와 관련하여 다음의 점에
주목하여 대응방안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95년 임단협, 노동법
개정과 사회개혁투쟁 등을 둘러 싼 96년 방침수립에서
민주노총은 최근 단위 현장 수준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자본 합리화 공세’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김영삼 정권의 노동정책이 바로 ‘자본의 합리화 공세’를
법적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나가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고, 또한
아래로부터의 노사협조주의 세력을 결집하여 민주노총을
밑으로부터 고립․무력화시켜 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단위
현장 수준에서 전개되는 ‘자본 합리화 공세’와 그 일환인
‘신경영전략’에 대해 민주노총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물론 95년 하반기 들어 대공장을 중심으로 한 선거에서
민주노조운동진영이 대부분 승리하여 민주노조운동이 여전히
확대되고 대세임을 보여주고 있으나, 그 승리는 과거와 달리
미소한 차이의 승리이고 따라서 불확실한 승리이다. 뿐만 아니라
단위 현장 내에서 민주와 어용의 구도에서는 민주세력이
승리하고 있지만, 그 민주의 내용을 둘러 싸서는 노선적인
분화가 가속화되고 있고, 자본측 역시 기업별 노조의 민주세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포섭하고 통제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조운동의 내용적인 심화와 상급
조직의 존재의미를 대중적으로 분명히 해 나갈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 시대에 전국적인 수준, 총자본의 수준에서
정치적․정책적인 대응의 문제만이 아니라, 개별 사업장
수준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는 이러한 자본의 공세 -
신기술과 팀작업의 도입, 능력주의적 임금체계와 신인사제도의
도입, 노동시장의 유연화 전략, 기업문화전략 등 - 에 총노동의
관점에서 대응해 나가지 못할 때, 민주노총은 거꾸로 ‘대표성을
상실한 합법성’만을 가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잔재를 청산함과 동시에, 새로운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양면의 과제를 떠맡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역사와의 대화’를
비자금, 5․18정국은 분명 노자관계의 전망과 관련하여
새로운 조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과거 청산 - 정경유착고리의
단절, 군사독재정권의 유산 청산 - 이 김영삼 정권의 정략적인
결단에 의해 위로부터 추진되면서, 그 성과는 오히려 자본의
입지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영삼 정권의 사정의
칼날은 한편으로는 과거를 향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를
향해 있다. 그 미래는 바로 자본의 질서 재편과 유연적
생산체계의 구축에 조응하는 새로운 노자관계로의 재편이다.
따라서 현실 정세의 주도권 장악이나 차기 총선에서의 승리,
나아가 정계재편을 통한 정권의 재창출 과정은 바로 새로운
자본축적 조건에 조응한 총자본진영의 재편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 출범과 ‘전두환․노태우
구속’에 이은 정계개편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맞닿아 있다.
‘전두환․노태우 구속’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의 근저에
드리워진 총자본진영의 대노동정책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부르조아 정계개편의 허상에만 메달려 이에 대한 대응을 소홀히
할 때, 민주노조운동은 미래의 역사를 선도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96년 노자관계의 전망을 둘러 싸서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자본측의 정세전망은 낙관적 분석이 기저를 이루고
있지만, 불안요인으로 민주노총의 출범과 총선, 그리고 물가불안
등을 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정세인식은 김영삼정권의
역사인식의 한계 - 노동운동의 성장을 역사의 발전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노사관계안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보는 낙후된
역사인식 - 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낙후된 역사인식의
이면에는 새로운 자본축적 전략에 대비한 새로운 노동정책의
모색 역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모색을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과소평가해서도 안된다.
특히 새로운 노자관계 - 참여적․협렵적 노사관계 - 의
모색이 노동자를 통한 노동자통제, 즉 노동자 내부의 차이 -
생산직 노동자와 사무전문직 노동자, 대공장과 중소기업, 정규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 상급노조단체와 단위현장간의 간극 -
라는 약점을 비집고 관철되어 갈 것이라는 점에서, 민주노총의
건설과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노동자계급내부의 차이를 극복하여
밑으로부터 계급적 통일을 앞당겨 나가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김영삼 정권의 ‘역사와의 대화’가
발걸음을 멈춘 지점에서 노동자계급의 ‘역사와의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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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2-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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