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지ˇ상ˇ강ˇ좌
본 지상강좌는 연구소가 노동자 교양경제학 강좌 이후의 두 번째
기획으로 지난 1월 29일부터 주 1회 9차례에 걸쳐 진행한 내용을
강사가 수정․보완하여 싣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자본축적의 위기를 돌파하고자하는 국가-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공세는 노동유연화를 기조로 하여 법,
제도적 개악과 현장까지 도입되어 왔습니다.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막론하고
전면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에 대해 민주노조운동진영은 구조조정 반대투쟁, 생존권
사수투쟁을 전개해 왔습니다. 또한 그 와중에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모색하면서 민주노동당과 제 정치조직이
건설되었습니다. 이제 현장의 노동자들, 활동가들은
노동조합운동을 넘어선 정치운동, 전국적 계급투쟁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자 정치운동을 역사적 맥락과
현황을 함께 살펴보고, 현시점에서 제기되는 올바른
정치세력화의 방향, 과제 등을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에 대해 한국과
유럽, 제3세계 등의 차원에서 역사와 현황을 살펴보고 우리의
현시기 과제를 모색해 보고자 정치학 교양강좌를 열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투쟁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동지들의 실천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지상강좌/노동자 교양정치학
제3세계 노조운동과 노동자 정치운동
남아공과 브라질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김 영 수
연구위원
1. 문제제기
개인적으로는 오랜 동안 남아공 노동자 정치운동을
추적해왔습니다만, 브라질의 노동자 정치운동에 대해서는 이번
강의를 준비하면서 몇 가지 글들을 정리하였다는 사실을 먼저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브라질과 남아공은 특수한 사례라는 것을 전제한 상태에서 다른
국가의 사례를 이해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이들 국가의 경험을
한국의 상황에 직접 이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의 노동자 정치운동은 다른 나라 노동운동의 역사적인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배우면서도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의
구체적인 현실, 즉 노동자 정치운동의 역사적인 발전과정과
주․객관적인 조건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하게 포착해야만 할 점은 어떠한 나라이든지 노동자
정치운동의 발전이 모순에 의한 저항이 격렬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각 나라들의 사례들은 노동운동을 발전시키고 정치적인 이해를
대변하고자 하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형식과 내용들을
규정해주고 있습니다. 남아공의 경우 적대적 모순이 분명하다
보니까, 남아공 ANC(아프리카민족회의) 등의 결성 자체부터가
흑인 노동자․민중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는
겁니다. 반면 브라질은 1945년 브라질 노동당이 결성되고 이를
중심으로 한 정권이 들어섰는데, 당명은 노동당이었지만 그리고
당시 진보적인 노선과 정책을 추진하였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노동자․민중들을 개량화시키는 데 크나큰 공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고려해야만 할 점은, 브라질은 1945년부터
포퓰리즘―민중주의, 대중주의―하에서 노동자들이 국가에 의한
동원체제에 포섭되어 왔었다는 겁니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그런
포퓰리즘 조차도 상당히 진보적인 노선이었을지라도,
노동조합운동의 성장 속에서 노동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역사적 과정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
상태에서 우리가 시사받고 한국적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점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특히 노동자․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논할 때는 더욱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도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논의해왔습니다.
1987년 이후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말이 보편화되었고 그것을
위한 투쟁을 전개해 왔지만, 한국의 진보진영, 또는 노동자
세력은 정치활동 주체들의 파워(영향력, 권위, 권력)를 보유하지
못하는가? 지금도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죽을 때까지 이 말만 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후손들에게 맡겨야만 할 과제인가? 이러한 진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남아공이나 브라질에서는 노동자 정치운동 주체들이 파워를
형성하고 유지해온 것에 대해 우리가 바라보기에는 남아공과
브라질이 적절하지 않다고도 봅니다. 왜냐하면 노동자 정치운동
주체들의 내부 긴장과 갈등에 불구하고, 남아공은 1990년 이후
흑인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력이 1994년 수립되고 ANC
중심의 권력이 유지되고 있고, 브라질은 PT당을 중심으로 1980년
이후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파워(영향력, 권위, 권력) 문제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규명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문제는 평생가도 어려운 문제일거라고 봅니다.
동지들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시고 강의에 참여했으면 합니다.
그런데 노동자 정치조직 주체들과 노조의 관계에 대해
역사적으로 이해함과 동시에 객관적으로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정치적 파워가 유지되는데 문제에 대해서는 남아공과
브라질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토대로 일반화시켜서 얘길 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한 국가 사례를 가지고 1년 내내 강의한다고
해도 시간이 모자라지만, 가능한 한 양 국가의 사실들을 노동자
정치운동의 문제로 일반화시켜서 강의하고자 합니다. 양
국가로부터 한국 노동운동진영이 시사받을 수 있는 점에
대해서는 동지들에게 책임을 지게 하겠습니다.
2. 남아공의 역사적 상황
남아공은 약 4천만 인구 중 노동자(통계상)는 약
1,000만명입니다. 흑인이 전체의 76%, 백인은 8~10%입니다. 그
사이에 유색인종, 인도인들이 있습니다. 남아공에서도
인도인들이 상업계통에서 발달하여 중산층을 차지합니다.
유색인종들은 흑인들에 비해서는 부유한 수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족으로는 11개 종족인데, 줄루족, 소토족, 코사르족, 그외
소종족들입니다. 줄루족은 전투적 종족이고, 소토족과
코사르족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착된
종족입니다. 그중 크와줄루나탈 지역의 일부 줄루종족들은
백인과 연합하여 흑인저항운동을 탄압한(학살한) 세력도
있습니다.
남아공의 대표적인 흑인 저항운동의 주체, 즉 노동자 정치운동
주체라고 하면 ANC, SACP(남아공공산당), 그리고 PAC(범
아프리카회의)입니다. ANC는 1910년대에, SACP는 1920년대에,
그리고 PAC도 1910년대에 결성되었습니다.
이 조직들은 흑인들로부터 대중적인 지지기반들이 확보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종적 착취와 계급적
착취가 심하고 백인들이 탄압이 우리나라 국가-자본의 노동자
탄압과 마찬가지입니다. 남아공도 파업 시 백인경찰들이 총으로
쏘아버리는 상황, 흑인 노동자들의 집단거주지역을 대도시
주변에 만들어 놓아 도시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도로를
통제하는 상황, 흑인들이 저항하면 백인들이 흑인들의
거주지역에 무장하고 들어가 소탕하고 나오는 상황 등이
그것입니다. 백인들은 무기를 가지고 흑인들을 살상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흑인 선진 활동가들은 흑인 인종해방을 갈구하는 선진
활동가들이 뭔가 조직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껴, 정치적
이해와 선전, 흑인 노동자 조직화를 목적으로 결성되기 시작한
것이 이러한 위의 세 가지 주체들이었습니다. 이들의 활동
결과가 1920년대 초반 랜드폭동(Rand Revolution)인데, 이것은
광산채굴 목적에서 해 왔던 백인들의 착취에 대해 흑인들이
최초로 저항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백인노동자들도
참여했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정치활동의 주체들이
1950~70년대에 대규모 흑인저항을 이끌었으며, 인종차별정책이
폐지된 1990년 이전까지 정치적 주체들을 조직하는 구심체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1963년 샤프빌 봉기는 백인들에 대한 흑인들의 저항이 무장투쟁
단계로 변화되는 계기였습니다. 1958년 광산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의 연속선상에서 발생한 봉기였습니다. 그리고 1976년
소웨토 봉기는 전민항쟁을 계승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투쟁을 정치적으로 전화시켜낸 주체들이 ANC와
SACP였다는 겁니다.
흑인 노동자․민중들이 백인들의 총칼 앞에서도 그러한
활동을 할 수밖에 없던 조건은, 1950년대 초반 흑인노동자들의
노조결성이 불가능했고, 백인이 만든 법률에 의해서는
노동자라는 지위 자체를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기본권조차도 누릴 수 없었던 것이죠.
그나마 흑인 노동조합의 결성이라는 기본권이 보장된 것은
1979년입니다. 1979년 이전까지는 남아공에서 비제도적인
변혁운동의 주도적 주체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3원의회 반대투쟁’과 ‘전인민전쟁
선포투쟁’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이 투쟁 역시 정치운동의
주체들이 주도하였습니다. 1980년을 전후로 하여 남아공에 대한
국제적인 경제제제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백인 자본진영은 자본축적의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인도인종과 유색인종들도 흑인 저항운동에 동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백인들은 흑인들을 제외한 유색인종도
국회로 끌어들이고자, 인도인종(17세기말 인도에서 넘어간
인도인들의 후손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과
유색인종들의 의회참여를 허용하는 법안을 1983년도에
제정하였습니다. 3원의회 구성의 의도 중 하나가 유색인종과
인도인이 흑인저항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자, 백인들이 위기를
타개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흑인들이 반대투쟁을 전개하는데, 이도 역시 ANC와
SACP가 주도하게 됩니다. 이들은 국외로 추방된 상태였지만,
국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비밀조직(활동가)을 토대로 하여
정치활동들이 지속되었던 겁니다. 또한 흑인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투쟁을 지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성된,
즉 1985년 11월에 결성된 남아공 노동조합회의(COSATU)가
변혁적인 노선에 가까운 대표적인 노동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사투 결성과정에서 남아공 정치활동주체들이,
우리나라의 전노협 결성 당시의 소그룹, 다양한 단체들의
역할처럼, 우리의 전노협 결성시의 활동가들의 역할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남아공 정치활동주체들의 역할이 상당했던
겁니다.
3원의회투쟁과 코사투 투쟁이 동시에 전개되었습니다.
대중조직인 노조 결성과정에서 그 동력이 되었던 것은 3원의회
반대투쟁의 전개과정 속에서, 즉 대중적 투쟁역량이 고양되는
과정에서 노조가 결성되었다는 겁니다.
3. 브라질의 역사적 상황
브라질의 역사적 상황을 계속해서 말씀드리면, 브라질에는
노동자당 말고도, 그 이전에 공산당도 존재했고 노동당도
존재했습니다. 또한 PT당 결성과정에 결합된 수많은 소규모
정파단체들이 존재했습니다. ‘중남미야말로 노선의
백화점이다’라고 하듯이 지금도 그렇습니다.
브라질 공산당은 1922년에 결성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공산당도 1925년에 결성되었듯이 러시아 혁명 이후 영향력,
민족해방투쟁의 연장선상에서 노선과 결합된 정치적 주체들이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 혼혈인들이 60~70%를 점하고 있습니다.
최상층 지배계급인 백인들이 10% 내외입니다. 브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고, 멕시코도
그렇습니다. 볼리비아도 마찬가지로 백인들은 토지를 거의 모두
소유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볼리비아 노동운동의 핵심적인
노선은 ‘토지개혁’(반제반봉건 노선에 입각한)입니다.
브라질도 1920년대부터 1945년까지 인민해방전선에 기초하는
혁명노선을 지향했습니다. 그런데 1930년부터 1945년도에
브라질의 바르가스 대통령이 포퓰리즘을 창시하였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국가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노동자
민중들에게 최대한의 당근을 주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이전에
누리지 못한 권리들을 보장해주는 거죠. 그러고 조건이
되면(생산성), 그에 상응하는 임금인상을 시켜줍니다. 대신에
‘국가정책상 너희들이 필요할 시 동원할테니, 동원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국가정책에 동조하는 세력으로서 역할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위로부터 강제된 국가 조합주의 체제가 이미 1945년부터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1945~1950년 사이에 포퓰리즘이
정착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브라질 공산당은, 세계 어느 국가나,
어느 공산당도 경험한 것이었지만, 민족자본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쟁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브라질 공산당은 민족
부르주아지와 연합하는 노선을 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군부쿠데타
이후에는 혁명적 노선을 지속적으로 고수하면서도 민족
부르주아지와의 연합노선, 제도권 야당과의 연합노선에
기초하였습니다. 그래서 브라질 공산당은 PT결성에 불참하게
됩니다.
노동자․민중입장에서 보면, 브라질 공산당의 노선이
혁명적임에도 불구하고 각 국면에서 적합한 노선을
채택했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던 겁니다. 군부집단, 중남미
지역의 군부들의 학살도 유명하지 않습니까? 아르헨티나의
경우이지만, 2000년 11월 9일 경에도 사업장에서 농성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백인들은 집단발포를 했고, 이로 인해 한 노동자가
사망함으로써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전개되었던 겁니다.
이렇게 단지 인종적인 문제로만이 아니라 그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성장한 백인, 그러한 백인들이 군부세력을 동원해
지배해온 것의 문제라는 겁니다. 브라질에서도 군부 폭압정치,
중남미 관련된 위로부터의 민주화과정, 자신들의 정당성에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스스로 퇴각함으로서 1985년도에
민간정권이 들어섭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조직적 퇴각을 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조직적 퇴각이 아니라, 그들이
물러난다 하더라도 다양한 지배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조건 속에서, 국내외의 다양한 압력세력의
위협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브라질에서 국가학살의 대표 중의 하나인 ‘실종사건’은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국가폭력으로 저항세력에 대한 의문의
실종을 만연시켰던 것입니다. 이 정도로 군부치하에서의 학살이
무서운, 저항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브라질 공산당은 혁명노선을 취했고, 그렇지만 실제로는
부르주아지 정권과 연합노선을 취했기 때문에
노동자․민중들은 그들의 정치적 기회주의를 확인하게 된
겁니다.
다른 한 주체가 브라질 노동당인데, 1945년 결성되면서,
포퓰리즘이 실현되는 매개적 주체로서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들이 지향했던 노선중 대표적인 것은,
혁명적, 변혁적 노선을 지향하지 않는다 해도, 포퓰리즘은
노동자 민중에게 상당한 떡고물을 던져주지 않느냐, 우리에게
보장되는 노동자 권리를 생각해봐라, 진보적이지 않느냐 라고
했던 겁니다.
우리도 생각해보면, 자신들의 현실적 어려움들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해결해주는 투쟁노선이 진행된다면 그에 반대하는
노동자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어떤 성과냐의 지점의
문제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과 그 자체에 매몰되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당근을 무는 대신, 채찍을 감수했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남미에서는 포퓰리즘, 아르헨테니의 페로니즘 등 국가별
조건과 추진 주체에 따라 다를 뿐이지만, 당근과 채찍이라는
성격이 결합되어 있어서, 노동자․민중들에게 당근의
효과가 매우 거대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풀리는 대신,
채찍을 감수하는데 있어서 브라질 노동당이 핵심 주체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반민중들이 당근을 주지 못하는 조건, 상황이
누적되어 가자, 이제 노동자․민중들의 의식 속에서 이건
이제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스스로 인식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투쟁역량으로 결성된 조직주체
남아공의 COSATU가 결성되는 주요 동력은 1983년 이후 전개된
흑인 노동자․민중들의 3원의회 반대투쟁과 코사투
결성투쟁이었습니다. 이 투쟁의 과정에서 수 만 명이 죽거나
부상당하는 상황이 발생하였지만, 남아공의 흑인
노동자․민중들은 1985년 11월에 코사투를 결성하였습니다.
ANC 및 SACP의 결성도 대중적인 투쟁역량을 토대로
결성되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1968, 1978~89년도 총파업이 전개되었습니다. 그
기본적 성격은 자생성에 기초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총파업투쟁 자체도 자생성에 기초하여 당근 없이 채찍만
있다보니 저항하는 과정에서 총파업투쟁이 벌어졌고, 그
투쟁역량을 토대로 브라질 노동자당(PT)이 출발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브라질의 노동자당은 1980년 2월 결성됩니다. 그런데
PT당 결성의 주요동력은 1978~79년 브라질 금속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이었습니다. 당시 전개된 총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는
5~60만 명 정도입니다. 브라질의 거대한 인구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은 수이지만, 노동자들이 ‘당근’이라는 아편에
중독되어 있었던 브라질 노동운동사에서는 역사적 쾌거라고 말할
정도로 거대한 파급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러한 총파업투쟁의
동력에 기반하여 브라질 노동자당이 결성된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이제 포퓰리즘에 대해 반대하고, 저항하면서
신노동조합운동노선을 채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신노조운동노선은 ‘전투성의 게임법칙’이라고도 합니다.
그전까지 포퓰리즘으로 전개된 노동조합운동에서 투쟁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제 전투성의 게임법칙을 노동운동 노선에
반영시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싸운만큼 성과가 나오더라는
것이지요. 이를 토대로 한 것이 신노조운동 노선이고,
브라질노조총연합(CUT)의 성격입니다. 투쟁을 통해 이익을
확보한다는 것, 정부와 자본을 근본적으로 불신한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의 브라질 노동운동의 노선에 비추어 볼 때, 이는 가히
혁명적인 노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부 자본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면서 노조운동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조합주의적인
정치―포퓰리즘적 정치―자체를 거부하는 겁니다.
멕시코의 경우, 페로니즘이나 포퓰리즘의 연장선상에서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체제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운동진영
내부에서 가장 변혁적인 노선이 국가와 자본에게서 자율성을
획득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남아공과 또 다른 상황입니다. 흑인 중심의 정치권력
장악―사회주의혁명 지향, 민족민주혁명 지속―일부는 자본과의
타협 속에서 국가 발전을 확보하는. 남아공의 한 학자는 그런
체제를 신조합주의적 대표적 모델이라고도 합니다. 당과
행정부와 코사투라는 대중조직이 3자연합한 권력구조를 가지고
자신들의 다양한 이해를 관철시키는 것이 신조합주의적
노선이라고 보는 겁니다. 아무튼 중남미에서의 신노조운동
노선에 대한 이해를 하면, 브라질 CUT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PT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양 국가의 상황을 보면, 코사투의 결성과 노동자당
결성은 곧, 노동자들의 파워를 강화시켜내는데 있어서 투쟁력이
기본적인 토대로 작용하였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이후 브라질 PT당이 5년마다 참여하거나 하는 선거과정에서
지지율이 계속 높아졌는데 이는 노동자당에 대한, 노선과
관계없이 노동자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가 강력하다는 점을
말해주는 겁니다. 그러할 수 있던 기본적 토대는 대중적인
투쟁동원력이었다는 점입니다.
5. 정치적 투쟁의 동원력과 현장 장악력
브라질이나 남아공에서 노동자 정치운동 주체들의 파워가 형성될
수 있는 기본 토대들은 대중조직이나 정치조직 건설이건 간에 그
과정에서 존재하는 정치적 투쟁 동원력이 실재했다는 점입니다.
두 번쨰로는 노선의 문제입니다. 브라질에서 나타난,
신노조운동노선, 남아공의 노조운동노선이 제3세계 국가 중 가장
변혁적이라고 말한 것처럼, 지금 현재 코사투의 핵심노선으로서
‘일국가일노조건설, 그리고 다인종체제에서 인종통일적
노동(백인들도 1999년 10월 남아공 공공부문 총파업 이후 코사투
가입이 증가하고 있습니다)운동,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것을
분명하게 표방한다는 지점’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코사투의 노선은 ‘체제변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브라질의 신노조운동 노선을 결합시켜 놓고 보면, 정치적 파워를
형성․유지 강화시켜낼 수 있는 어떠한 노선은 그 국가와
투쟁국면에 비추어 계급모순을 분명히 하고,
운동노선․투쟁노선이 정립되는 것이 정치적 영향력,
파워를 형성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일반화시켜보고자 하는 문제는 정치적
현장장악역량입니다. 브라질에는 카톨릭 종교공동체를 토대로 한
수많은 기초단위의 대중운동 단체들이 존재합니다. 중남미의
종교공동체의 운동주체들은 브라질 노동자당과 결합되면서
네트웤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브라질 노동자당의 급성장의
토대가 신세대 노동자들의 성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브라질
경제발전의 시기인 1964년 군부쿠데타 이후 1975년까지의 10년
간, 즉 브라질 경제기적 시기에 제조업의 급속한 발전과
수출드라이브 정책 등의 기간에 노동자로 진입한
신세대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입니다. 1968년이 구세대
노동자총파업투쟁이었다면 1978~79년의 총파업은 신세대들의
투쟁이었다는 겁니다. 그들이 노동현장의 활동가들이었다는
겁니다. 이들이 노동자당이 긴밀히 결합하면서 노동현장간의
정치적 네트웍, 조직적 네트웍을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한 정치적 현장장악역량이 없다면, 그들이 생활 현장자체를
장악하지 못한다면, 노동자 정치운동 주체들이
정치적-조직적으로 통일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노동현장, 생활현장과 긴밀히 결합된 속에서의
정치역량이었다는 점, 남아공의 흑인 노동자 정치운동은
집단거주지역화가 흑인들의 저항의식, 문화가 형성되는 터가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정치적 현장장악 조건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노동자 정치운동의 정체성이 시민과 노동자로서
괴리되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를 학문적으로는
‘외부로부터의 고립현상’이라 합니다만, 공동체로부터 떨어진
외부로 고립되는 순간 자신의 계급적 정치행위가 아닌, 계급적
의식을 탈각한 상황에서 비지 정치논리에 의해 정치행위를 하게
된다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고립현상이
적나라하게 나타난 것이 한국인데, 브라질, 남아공은 이러한
현장이 나타날 수가 없다는 거죠. 노동현장이나 거주지역으로
돌아오나 집단적으로 보존되고 더욱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현장 속에 남아공 노동운동 주체들이 활동했습니다.
6. 정치적 여론의 형성역량
정치적 여론을 조성할 수 있는 역량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여론을 조성할 수 있는 메카니즘은
‘언론’이라 전제에서 이 문제를 매우 어려워합니다. 그리고
항상 투쟁이 뉴스에 나와야 여론이 조성된다고 합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정치적 여론을 조성할 수 있는 역량이 없는 정치적
주체라고 하면, 그것은 있으나마나한 주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노선에 따라서 혁명노선일 수 있고, 개량노선을 가지거나
개량주의 노선일 수 있는데, 그들의 정치적 힘은 자신들의
정치적 여론조성역량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힘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브라질, 남아공은 따로 부르주아 언론매체를 통하지
않아도 그 조성역량이 이미 확보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의
경우 사안에 따라 수십 수백의 대책위가 꾸려집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선조직으로 꾸려진다면, 입소문이 무섭다고 하듯이
수백 개의 단체들이 참여한 부분만으로 하더라도 정치적 여론이
조성되고도 남는다고 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름뿐인
전선조직, 단체들이 수없이 많았지요.
그러나 남아공은, 83년 3원의회 반대투쟁, 코사투 결성투쟁에서
정치적 여론형성의 중심체는 UDF라는 ‘통일전선체’였습니다.
당시의 남아공 기초생활단위로부터 시작한 거의 모든
운동단체들이 다 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담으로 정치적
공동체의 문제를 남아공 에이즈 문제와 연관시켜 보겠습니다.
남아공의 에이즈문제가 심각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만, 2020년도 예상이 전국민의 1/4정도로 봅니다. 800만
명 정도의 에이즈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에이즈에 대한 본격 원인규명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여러 원인 중
하나로, 흑인들이 예전에 TV가 없어서 백인들의 식모살이 하는
집안에 한정되었는데, 이를 접하면서 흑인 성 의식의 변화,
백인문화를 접하면서 갖게 된 새로운 성 의식과의 괴리감으로
1990년 전후 범람하게 된 것이지요. 백인들의 성문화를 전혀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흑인들은 자체적인 공동체를 유지해
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지요. 그 정도로 흑인 자체 공동체적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었다는 거죠. 이는 UDF참가 조직들이 백인의
여론장치를 활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는 점이고, 이것이
정치적 여론형성의 동력이었다는 점이이죠.
7. 정치적 파워를 형성하기 위한 기타역량
대체권력의 한 주체로서의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해보겠습니다. 브라질 상황을 근거로 설명하기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남아공의 경우에는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입니다. 백인들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에서 추방되는
정치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정강정책, 지속적인 활동을 가져왔다는
겁니다. 인종해방과 사회주의혁명노선에 기초한 정강정책을
지속해왔다는 겁니다. 우리의 경우, 일반국민들이 의식 속에서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들을 대체권력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출세주의적 정치활동의 주체만으로 인식하게 되면,
노동자 계급정치의 역할이 사라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체권력의 역량 문제는 또한 전국적인 인물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동자 정치운동에서
항상 삐그덕 거리는 것은 정치지도자 문제와도 연관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로 브라질의 룰라의 경우, 금속노조 활동을 하다가 1978~79년
총파업을 주도하면서 정치적 지도자로서 부상하게 되고,
ABCD지역만이 아니라 파업이 확산되는 지도적 역할을 룰라가
담당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노동자당 결성에 핵심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브라질 사회주의 노동자당이라는 것이 한겨레신문에서
대서특필된 적이 있는데, 브라질 노총의 지도위원이 말하기를,
브라질에서는 아직도 룰라의 정치적 영향력이 대단하다고
표현합니다. 당의 유지는 정치적 지도력의 문제와 연관된다는
겁니다. 남아공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만델라인데 크리스
하니(Chris Hani)라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공산당
당수였고 1958년 공산당 합법활동 금지되면서 국외활동하면서
당수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1990년에 암살 당하는데,
1994년 남아공 총선포스터에 그 사람 얼굴만이 그려졌고, 총선의
이슈는 아주 작은 글씨가 적혀있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전국적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의미합니다. 이런 전국적 인물이 존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인물을 노동자․민중들이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그럴 정도의 인물이 노동자․민중운동의
지도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담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정치적 활동자금이 문제입니다. 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정치활동의 생명과 직결되는 관건인데, 이들
국가의 국제연대의 핵심이 돈 문제였던 겁니다. ANC와 SACP
주체들은 국외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변혁활동
단체들의 자금지원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국제연대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세계 만국의 노동자가 총파업을
하면 자본주의가 끝장난다 하지만 업종간의 연대투쟁도
현실적으로 힘든 상태입니다. 그런데 세계노동자들의 통일지점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정치적 국제연대가 정치활동의 자금문제만큼은 고민하여야
한다는 거죠.
그 다음이 정치적 조직주체의 형성역량입니다. 모든 정치활동은
이 문제를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겁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조직주체들이 역사적으로 정치적 선도투쟁을 전개하였다는
겁니다. 정치적 활동이 뭐냐라고 질문한다면 대답하기 쉬지
않지만, 정치적 선도투쟁의 관계가 노동자 정치운동과
노동조합운동간에 형성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정치적 조직동원의
관계, 정치적 역량은 동원이 이뤄져야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장 노동자 대중들이 정치적 동원에 불과하느냐라고
하면, 저는 거꾸로 정치적 동원 없이 어떻게 정치적 파워가
형성되느냐라고 물어보고 싶어요.
그럼 정치조직에서 대중적 동원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주체들이 동원된 것을 가지고 많은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적 대중동원이 필요할 때에는 동원해야 하는 것이죠.
모든 활동단체들이 말입니다. 이러한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 지난 역사를 검토해보면, 동원의 문제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있는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활동가들의 역사나,
노조조직과 정치운동 주체의 상호관계가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일상적인 정책동원의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도 이젠
그러한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길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대체권력의 한 주체로서는 그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량을 발휘할 공간에 대해서는 필요할
때만 활용하거나, 급할 경우에 찾는 관계들로만 누적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일상적인 관계는, 노조가 정책이 필요하다, 매달
조합비중 일부를 떼어서 정책생산주체에게 지원하라고 요구하고
싶습니다. 발등의 불이 떨어질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제 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현상은 정치운동주체와
노조운동 간의 상호관계가 정립되지 않아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선거동원의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브라질의
1994년 총선과 1999년 총선에서는 정치적 주체가
노동자․민중들을 목적의식적으로 동원하였습니다. 1980년
이후 지방의회 선거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권력위임의
절차를 노조 선거과정에서 이뤄가듯이, 어떤 선거냐를 떠나서,
선거라는 절차, 권력위임의 절차과정에 노동자 민중들을 선거에
동원할 수 있는 관계들이 노동자 정치운동과 노동조합운동간에
분명하게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정치체제가
유지되는 한, 선거절차를 거쳐 권력을 위임해야 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역량을 강화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권력위임의 절차가 의회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노동자 정치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해 이해갈등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자정치운동 주체들의 파워를 강화시키는 당파적
이해갈등이 아니라 정파적 갈등이라면, 노동자 계급의 파워
자체를 약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남아공과 브라질에서는 일정
기간일지라도, 노동자 계급정치 당파적 이해가 추진되었던
역사적 토대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현실화되는 국면도
존재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번 강의를 통해서, 한국 노동자 정치운동의
자존심을 지키자, 회복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즉 현
민주노총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노동자정치운동 주체들의
문제점을 극복하지 않는 한 노동자 정치운동의 파워가 형성되고
강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1. 남아공과 브라질 예를 드신 이유로 한국에의 시사점을
말씀하시는데, 선생님이 보는 시사점은 무엇인가요?
남아공과 브라질의 특수한 상황을 전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수한 조건 속에서 전개된 정치운동의 역사를 검토하고
한국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을 간추려 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외국사례들을 들먹이는 것이
근거가 될 수도 있지만, 한국상황에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도 사례분석의 의미로는 첫째, 브라질과 남아공은
모순구조가 착종된 사회입니다. 남아공은 4개인종과 11종족간
갈등과 계급갈등이 중첩적으로 구조화된 사회였다는 겁니다. 이
와중에 노동자 정치운동이 성장하고 1994년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대표적인 사례이구요, 브라질 역시 백인과 인디언간의
인종모순구조, 계급모순구조가 착종되어 있어요.
멕시코가 유사할 수 있는데, 인디언 비중이 30%인데, 인디언들이
가장 최저생활을 하구,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멕시코시티
주요지역에서 다양한 공연과 집회를 해갑니다. 인종적 모순과
계급적 모순구조를 보여주는 거죠. 브라질은 이런
모순착종구조에서 PT당이 개량화되고 대중들의 표만 확대하기
위한 전략들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급속하게 정치적 파워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 브라질의 특수한 지점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너무 낙관적이라 말할지 몰라도, 계급모순과
분단구조의 착종이 노동자정치운동의 성장과 파워를 제한하는
작용을 했는데, 이것이 계급적인 정치구조로 전화될 수 있는
동력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두 번째로는 대중조직은 노조총연맹이 결성되는 과정 자체가
대중투쟁을 토대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브라질에서는
반대현상이지요, 노조대중투쟁이 PT당 결성으로, 남아공은
거꾸로 한 조직화이고, 한국의 전노협결성투쟁 등이 투쟁력을
근간으로 하였다는 점이 있죠.
세 번째로는 부르주아 계급에 의한 노동자 정치운동, 노조운동
포섭전략과 정책들이 추진되어 왔다는 거죠. 포퓰리즘, 혹은
포섭정책들이 있었지만 현 체제에서 보면, 신조합주의적 정책이
나타나고 있거든요. 정치주체들이 다양한 노선 속에서 등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에서도 김영삼 정권 이후 급속하게 부르주아 정치권력에
순응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가 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조합주의노선, 타협주의적 노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남아공 3자동맹체제에 의한 국가운영시스템, 브라질
PT당의 노선변화에 대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토대로 본다면,
비록 실패한 노선에 불과하지만, 한국에서의 김대중 정권 하
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타협주의노선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들이 된다고 봅니다.
2. 정병기 선생 강의에서 생각할 부분이 현대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노자간 갈등, 인권과 환경의
문제 등이 유렵좌파정당활동의 주요고민들이라고 하던데,
남아공이나 제3세계에서는 유럽좌파정당활동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남아공의 경우는 유럽좌파정당을 1995년 이후 유럽의 파업투쟁에
대해서는 고무적으로 평가하고 있어요. 그리고 유럽의
신노선문제에 대해 초기에는 긍정적으로 봤구요. 한편,
유럽좌파의 개량주의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동구몰락 이후, 이데올로기적 대립투쟁의 변화와 맞물려서,
남아공공산당과 ANC에서 말하기를 소․동구 국가들의
몰락시점에서 국가사회주의의 다양한 모순들을 인정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체제 내에서의 민주주의 문제를
실현시켜나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유럽좌파정당들의
개량주의노선을 사회주의내의 민주주의 실현의 노선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말하고들 있습니다.
그래도 기존 소․동구 PT독재를 인정하는 대신, 권위주의
혹은 관료주의의 논쟁은 극복되어야 할 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체제의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체제 내에서의 가장 구체적인 수준의
민주주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브라질 공산당과 PT당 내의 계급운동, 분파활동
누클레오(세포조직)이 초창기에 광범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그
활동의 내용은 정치의식 자체를 제고시키는 활동, 그리고
조직화활동이었습니다. 그들은 노동현장에서 직접적인
활동가로서 활동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당의 중앙지침이
내려지면 기초조직에 의해 현장지침이 보급되고 정치적으로
조직화되는 활동이 이루어졌던 것이구요.
앙띠꿀라상(네트웤, 접합, 아티큘레이션)이 존재했는데,
접합 대상은 수많은 다양한 정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정치활동주체, 대중운동 전선체 역할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당중앙과 현장간의 접합이 이뤄지지 않는 조직 내적 한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겁니다. 당내의 다양한 정파들이 분파활동의
지침을 수행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양한 정파들이 여러 수준에서
있는데, 당론에 위배되는 활동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파적인
이해를 추구하기 위한 활동들,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PT당의
개량화를 방지하는 활동들을 현장과 긴밀히 연관된 상태에서
전개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반(SEMI)합법적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지향점과 현실노선간의 괴리가 상당히
크다는 겁니다.
많은 논쟁이 있나봐요. 나가라고 하기도 하고. 기층 조직활동에
의해 견인해 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신세대 활동가라고 했는데, 의외로 목적의식적으로 활동조직이
아니라, 브라질은 현장활동가들이 많이 산재해 있어서, 당과
정파 소속만이 아니라, 종교단체에 속해있어도, 노동현장에서는
현장활동가로 활동하는 거에요. 그래서 현장활동이 두텁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브라질 인구의 60%정도의
임금이 월200달러 미만이라고 합니다. 그 정도로 열악해서
활동가들이 움직이면 현장이 움직이는 상황이구요,
정파조직들간의 논쟁을 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권총으로
위협하기도 하고, ‘전투적’인 정파적 이해관계에 대해
통일성을 이뤄냈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PT당
내의 다양한 정파조직들이 논쟁을 둘러싼 전투성이 유지된다면
PT당의 개량화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1990년
후반 이후로 PT당의 노선이 변화된 것이 기초조직을 강화시키는
당활동 방침으로 변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4. 남아공 경영참가, 사회적 통제권 문제에 대해
경영참가는 양날의 칼이라고 봅니다. 경영참가를 통한 노조의
현장장악력이 강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반면 경영참가를 통해
현장자체가 포섭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경영조건을 알아보니까,
아무것도 없더라라고 할 수도 있다. 다른 조건을 양보시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남아공의 경영참가는 유럽의 경영참가와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고
봅니다. 남아공의 자본소유의 상당부분이 다 외국자본입니다.
1970년대 후반, 1980년대 초반부터 외자 점유율이 높아졌어요.
그리고 백인자본 비율까지 80~90%라는 거죠. 그래서 그들의
경영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그리고 경영조건에 참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투쟁의 성과일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조건은
정보공유권이라는 것이 전제됩니다.
노조가 정보를 요구하면 모든 정보를 자본은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말하는 경영참가와는 다른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치권력 자체는 흑인들의 권력이고
사회경제적 권력 자체는 백인들의 권력이기 때문에, 흑인들
정치권력이 백인들의 사회경제권력을 염두에 두어야만 하기
때문에, (1996년 백인들이 연합정권에서 탈퇴했는데,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거시경제정책인 기어전략(GEAR: 성장․고용
그리고 재분배 전략)을 채택한 이후에 탈퇴한 겁니다. 그 내용
중 하나가 노동자 경영참가를 인정하면서도 정보공유권도
인정하지만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기어전략 속에 확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영참가 문제도 남아공에서도 양날의 칼로 작용하고
있고, 현장에서는 정리해고 문제에 있어서는 노조의 동의가 없는
한 이뤄질 수 없는 것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수많은 절차를 거쳐서 해고가 가능할 정도로
보장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럽과 한국의 경영참가와는 다른
성격이라고 봅니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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