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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68호
조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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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권의 노동자 초토화시키기 공격에 이주노동자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현장은


김대중 정권의 노동자 초토화시키기 공격에 이주노동자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조 대 환/ 서울경인지역평등노동조합 이주노동자지부 사무국장





1. 김대중 정권의 노동자 죽이기와 죽어가는 이주노동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근래의 정세 속에서 노동자로서 이 땅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기까지도 하다. 이제 김대중 정권은 최소한의 합리적 기준조차 없이 노동자들의 투쟁이라면 무조건 폭력이란 폭력은 모조리 동원하여 탄압하고 노동자들을 죽이고 있다. 이전까지는 무소불위의 공권력이라 하여도, 비록 가면 쓴 모습일지라도 스스로가 창피해서 최소한의 공권력다운 형식은 보여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현재 보여지고 있는 모습은 도끼와 해머, 곡괭이로 차량을 파괴하고, 민주노총의 간부는 무조건 잡아 구속시키려 하고 있다는 등 형식조차도 없다. 경찰이 나서서 용역깡패 짓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은 마치 살아서는 안 되는 곳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혹은 ‘정권과 자본의 명령에 불복하는 자들은 용서하지 않겠다. 그도 아니면 이곳을 모조리 떠나라’라는 식으로 밖에 이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말 예를 들고 말로 하자면 하루 밤을 새서 이야기해도 모자라겠지만 지면의 성격상 많은 이야기는 뒤로 미루도록 하자.
그런데 김대중 정권의 이성을 잃은 노동자 죽이기는 이주노동자에게도 자행되고 있다. 2000년에는 노벨 평화상에 눈이 멀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보호에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겠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권을 부여하겠다’고 거짓을 늘어놓더니, 2001년에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간사냥과 같은 집중단속으로 강제추방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대중 정권은 노동자 죽이기에는 노동자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아마 김대중은 단단히 미쳐 노동자를 평등하게 대우하여야 한다는 것을 똑같은 탄압을 가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자본의 탄압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든 노동자들은 하나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체 노동운동 탄압과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이 가지는 연관성과 이주노동자 강제추방은 어떠한 의도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투쟁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2. 이주노동자 강제추방의 실상
한국 노동자들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곳에서 용역깡패, 폭력경찰의 입체적 공격을 받고 있을 때, 많은 노동조합 간부들의 공권력의 마수를 피해 수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이주노동자들은 출입국관리소의 추적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법무부에서는 지난 6월 18일부터 7월 17일까지를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자진출국기간과 함께 집중단속기간이라고 밝히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과 추방을 강화할 것임을 밝혔다. 그렇지만 자진출국기간을 설정한 것은 허울 좋은 눈가림일 뿐 실상은 단속과 강제추방이 그들의 목표인 것이다.
또한 이번 집중단속은 법무부의 출입국관리소 독자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 그리고 국정원까지 개입한 합동 단속이다. 그들은 마약사범이나 폭력조직까지 단속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의도가 불순하기 그지없으며 과연 이주노동자들의 범죄율과 마약관련 사안이 합동단속까지 갈 정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집중 단속은 결국 이주노동자들을 마치 인간사냥 하듯이 잡아 실어 나르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요즘 거리에 나갈 수 없다고들 말한다. 언제 출입국관리소에 잡혀 본국으로 추방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 역시 그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어떤 노동자는 집에서 잠을 자다가, 그리고 밥을 먹다가 들이닥친 출입국관리소의 직원과 경찰에 의해서 연행되고 있다. 그리고 어떤 노동자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공장으로 출퇴근 하다가 잡혀가고 있으며, 버스를 기다리다 잡혀가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어떤 지역에서는 이주노동자 밀집 공단에 출입국관리소가 버스를 대고 100명을 토끼몰이 식으로 잡아가기도 했으며, 전철역 앞에 버스를 대고 지나는 이주노동자를 모조리 연행하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질 수밖에 없다.
결국 어떤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은 마을 뒷산으로 식량을 싸들고 피신하여 토굴과 같은 곳에서 지내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공장 사업주가 아예 공장 문을 닫고 이주노동자에게 피신해 있으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연행된 이주노동자들은 보호소와 구치소에 수감되어 본국으로 송환될 날 만을 기다리고 있다.


3. 이주노동자 강제추방의 본질
그렇다면 이주노동자들 단속 실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첫째는 노동자 길들이기와 노동자들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이 땅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과 착취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과 함께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적 약점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권과 자본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요구에 일상적으로 불법체류자라는 현실적 신분을 들먹이며 권리를 포기할 것을 강요해 왔다.
불법체류자라는 족쇄와 언제 추방될지 모른다는 공포는 결과적으로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게 하고, 이주노동자들의 임금과 각종 권리를 착취하는데 유용한 무기였다.
자본과 정권의 입장에서 이렇게 유효한 무기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집중단속과 몰아치면 칠수록 이주노동자들을 공포로 각인할 것이며 아주 오랫동안 유효하게 작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서울경인지역 평등노동조합 이주노동자지부 등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건설과 가입 등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 찾기에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으로 볼 때 이번 집중 단속은 예사로운 문제는 아니다.

두 번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의 일환이다.
한국 정부와 자본은 이주노동자들의 유입을 묵인하여 부족한 중소영세업종의 노동력을 확보하여왔다. 그렇지만 틈만 나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용도폐기하는 기계처럼 내쫓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불안해 질수록 가장 먼저 탄압을 받는 것은 아마도 이주노동자일 것이다. 지난 IMF 시기에도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나온 것 역시 이주노동자였다.
정권과 자본은 사실은 아무런 경제적 근거와 이론적 뒷받침 없이 이주노동자의 숫자를 현재 30여만명 20여만명의 미등록 불법체류 노동자와 10여만명의 연수생.
으로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특히 미등록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20여만명 이하로 강력하게 조정하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이주노동자들이 18여만명을 넘어설 때부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각종 우려의 목소리가 퍼져 나오기 시작하고 단속이 보다 일상화되고 강화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정부와 자본은 다방면으로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필요화하면서도 미등록노동자가 등록노동자보다 월등하게 많은 현실은 골칫거리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등록노동자와 미등록노동자의 차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방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자신들의 전체 이익에 위배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것은 이주노동자 한 명이 덜 존재한다고 해서 자본이 그 한 명만큼의 일자리를 활용해서 한국인 노동자의 고용안정으로 가져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이번 집중단속과 강제추방의 세 번째 본질은 이주노동자 제도개악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2000년 김대중 정권은 이주노동자 인권 운운하면서 소위 고용허가제라는 것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고용허가제는 결론적으로 통과되지 않고 현재까지 답보상태로 오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아직까지도 그 폐지의 요구를 받고 있는 연수생제도를 대체하기 위한 제도로 제시되었다. 연수생제도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주노동자들을 ‘연수’라는 명목으로 받아들여 연수가 아닌 실제 노동을 시키고 임금이 아닌 최저생계비 그나마 최저생계비 이하로 연수수당을 받는 연수생들도 허다하게 존재하고 있다. 또한 노동시간에 비례한다면 턱없이 낮은 노동력의 대가인 것이다.
수준의 연수수당을 지급하였다. 또한 연월차 수당이나 상여금 미지급 등 전반적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이 되지 않았으며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기에 노동3권 또한 보장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으로 연수생으로 오는 과정에서 많은 송출비리 한국으로 연수생으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규정된 수수료 이상의 브로커 비용과 연수생을 송출하고 받아들이는 기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로비(?)로 인한 문제들.
가 존재하고 이것은 결국 연수생의 이탈로 인한 미등록 노동자 증가라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하는 등 연수생제도에 대한 수없이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런 문제로 연수생제도를 대신하는 고용허가제를 실시하려고 하였지만 당시 연수생제도로 인하여 막대한 이권을 가지고 있던 중소기업중앙회와 일부보수세력들이 강력하게 반발함으로써 이 제도는 중도 하차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 제도는 결국 전체 자본의 입장에서 미등록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의 비율을 줄이고 도무지 조직적 관리가 되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며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이라는 우스운 제도로 인한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합법적인 노동자로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단체행동권을 제약하여 근본적으로 노동자를 이빨 빠진 호랑이로 만들어 놓았으며 철저하게 사용자에 종속되도록 제도가 만들어져 있었다. 결국 연수생으로 이주노동자를 도입하던 이권을 다른 이름의 다른 방식으로 들어오면서 그 이권을 누가 가져가느냐가 작년 고용허가제 추진의 지배계급 내부의 논쟁이었지 이주노동자 노동권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었다.
그후 잠잠하던 이 문제가 최근 일각에서 연수생의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각종 언론기사가 나오는가 하면 이와 함께 연수생제도 자체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결국 이것은 그렇게 문제가 되어 왔던 연수생제도가 별반 달라질 것 없는 어떻게 보면 말로만 노동자성을 인정한다고 하는 기만적인.
고용허가제와의 절충을 통해서 이름만 바뀌거나 아니면 연수기간을 대폭 늘리는 방향으로 흘러가려고 하는 움직임의 사전 포석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전포석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이번 집중단속과 강제추방이다. 새로운 이주노동자 정책의 개악은 결국 효과적 비용으로, 그리고 완전한 통제방식으로, 등록화된 방식으로 이주노동자의 활용을 원한다. 따라서 제도를 새롭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미등록 노동자의 수를 조금씩 줄여가는 것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언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정부와 자본의 행각이 이주노동자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착취하고 통제하며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부여하지 않기 위한 술책이라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모습 바꾸기로 우리를 현혹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4. 다시 한번 이주노동자 노동권 완전쟁취 투쟁으로
이러한 정권과 자본의 지배전략을 무너뜨리고 노동자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이주노동자 노동권 완전쟁취라는 원칙을 움켜쥐는 것이 필요하다. 정권과 자본이 새로운 이주노동자 정책은 결국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착취하는 것이며 노동유연화와 노동차별화 전략의 계속선상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출입국관리소의 강제추방을 규탄하기 위한 투쟁에 수많은 동지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또한 많은 노동자들이 달려와 함께 투쟁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감을 얻고 승리를 확신한다.
얼마전까지도 한국사회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들에게조차도 같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번과 같은 불법체류 집중단속에 대해서도 많은 노동자들이 당연히 단속은 적법한 것이 아닌가 혹은 인권침해만 없으면 되지 않는가 하는 방식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좀 나은 시각이라고 해도 딱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확보를 위한 투쟁은 물론 강제추방 저지 투쟁 또한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문제, 그리고 전체 노동자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많은 노동자 동지들이 알아가고 있으며 실천으로 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성과이자 바로 우리 미래에 대한 승리의 확신이다. 따라서 앞으로 더욱더 굳건한 연대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와 강제추방을 저지하는 투쟁을 벌여낼 필요가 있다.
정권과 자본이 한국 노동자들에게는 고통분담과 회사 살리기를 역설하고, 산업역군이라는 칭호를 아끼지 않다가도 정리해고를 가리지 않고 파업에 대해서는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면서 폭력을 동원해서 짓밟는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불법체류를 묵인하고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 것을 격려하지만 수시로 그 사용가치가 다한 노동자들을 내다버리고 있다.
이렇게 자본과 정권이 철저하게 노동자 탄압에 대한 평등정책(?)은 노동자 내부의 평등전략과 연대의 전략으로 바꾸어 내야 할 것이다. 그곳에 바로 전체 노동자의 해방된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한/노/정/연

2001-07-07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