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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르토 퇴진 이후 인도네시아의 노동운동

현장에서 미래를  제69호
전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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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



수하르토 퇴진 이후 인도네시아의 노동운동



전 제 성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 수하르토의 32년 장기집권이 종식되고 민주화가 이루어진지 3년이 지났다. 그 동안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가 주어지고 복수노조가 허용되었다. 민주화를 계기로 위약한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노동운동의 부흥과 동시에 극심한 분열 혹은 복잡화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이성을 필자는 노동정책이 변화하는 양상과 그것이 노동운동에 준 영향을 다루면서 보여줄 것이다.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복잡화는 일종의 ‘거품’과 같다. 실제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알려면 거품을 거둬내야 한다. 거품의 제거는 지방의 노동운동과 단위사업장의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가능하다. 그래서 필자는 동부 자바의 수라바야와 그 주변 산업벨트에서 발생하는 지방노동운동과 단위사업장 노조의 변화를 서술할 것이다. 중요한 데이터들 대부분은 수라바야와 그 주변지역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단지 전국데이터들이 부실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수라바야 및 동부 자바가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산업지대이고 바닥으로부터의 노동운동이 가장 왕성하게 발흥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라바야는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구 4백만)이며, 100여년전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항구였다. 수라바야와 그 일대의 산업벨트는 델타지역이므로 토지가 비옥하여 일찍이 식민시대부터 플랜테이션과 농산물가공산업이 발전했다. 현재 담배, 금속, 플라스틱, 의류, 제화 등의 산업이 발전한 수라바야와 그 외각의 시도아르조, 모저꺼르또, 그레식, 빠수루한, 말랑 등의 산업도시들은 자카르타 주변의 자보타벡 산업벨트와 함께 자바, 나아가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산업지대이다. 그 곳에서 필자는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위약성과 노동자투쟁의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인도네시아의 노동정책은 급진적인 극단을 보여주었다. 수하르토 시대의 노동정책이 사회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여 발전주의에 복속시키려는 ‘고속 근대화주의’(high modernism)를 외화시킨 것이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사회의 자유화와 국가의 퇴각을 통해 조속히 민주주의를 달성한다는 ‘고속 탈근대주의’(high post-modernism)를 과시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

수하르토로부터 권력을 승계받은 하비비는 차기 대통령이 되려면 국제인권운동의 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권력을 잡은 지 며칠만에 정치범 석방을 단행하고 정당 결성의 자유를 부여함과 동시에, 노동조합 결성을 자유화했다. 노동자 이익대표가 국가의 후견을 받는 단 하나의 노동조합(FSPSI)에 의해 대표되던 국가조합주의(state corporatism)를 철폐시킨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민선 와히드 정권 시기에도 지속적으로 보장되었으며 신노동조합법으로 법제화되었다.

노동조합법과 노동부의 신규노조 등록접수 과정을 볼 때,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는 거의 무제한적인 자유라 할 만큼 파격적인 것이었다. 복수노조의 설립은 전국연맹 수준뿐만 아니라 단위사업장 수준에서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표 1>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조합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표 1> 민주화 이후 노조의 증가: 동부자바지역 전체와 주요 산업도시의 경우(1998~2001년 4월)

 

동부자바전체

수라바야

시도아르조

말랑(시)

1998

-

219

158

-

1999

1,042

316

226

80

2000

2,127

425

287

100

2001

2,238

-

326

123

출처: 동부 자바주 인력부, 수라바야시 인력부분소, 시도아르조시 인력부분소, 말랑시 인력부분소.

주의: 인도네시아 인력부는 단위노조의 증가를 제대로 반영한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인도네시아 전국적으로 노조가 몇 개인가를 아는 사람은 인도네시아에 단 한 명도 없으며, 누군가 몇 개라고 이야기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따라서 노조 수의 증가를 알아내려면 단위노조가 직접 등록하는 지방의 인력부분소 자료를 전부 모아서 보아야 한다.



노동조합연맹의 경쟁적 설립

노동조합결성의 자유는 노동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었으며 동시에 복잡하게 만들었다. 3년동안 서른 여덟개의 전국노조연맹이 인력부에 등록하였다. 기존 어용노조였던 전국근로자조합연맹(FSPSI)이 노조등록을 신청했고, 아직까지도 인도네시아 최대의 노조로 남아있다. 수하르토 정부에 공개적으로 대항하여 국제적으로 유명한 두개의 비합법 독립노조―묵타르 팍파한(Muchtar Pakpahan)이 이끄는 복지노조(SBSI)와 디타 사리(Dita Indah Sari)가 이끄는 인도네시아노동자투쟁전선(FNPBI, 전신은 민중민주당산하 노동자투쟁본부, PPBI-PRD)―도 신규등록에 참가했다. 나머지 35개 전국노조는 어떤 노조들인가?

전국노조의 수가 3개가 아니라 38개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기존 어용노조의 개혁적인 간부들이 빠르게 변신했다. 기존의 유일 노조(FSPSI)에서 개혁적인 간부들이 개혁적 전국근로자조합(SPSI-Reformasi)을 만들어 독립하였고, 그 내부의 업종노조들이 제각기 독립하여 독자적인 노조연맹을 만들었다. (2) 정당과 종교 등 노동운동 외적 요소가 개입해 들어왔다. 195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정당-노조 연계를 구축하면서 정당에 연결된 노조들이 결성되었으며(예: KBKI), 그중 일부는 이슬람정당과 연계된 이슬람 노조들이다(예: Sarbumusi). (3) 구체제의 잔존물인 정부산하조직이 노조로 변신하자 이에 반대하여 독립노조가 만들어졌다(예: 교원노조). (4) 국제노동운동단체의 개입으로 인해 분열이 발생하거나(예: 금융노조의 양분, FOKUBA와 ASPEK) 노조가 신설되었다(국제식품노조IUF에 가입한 노조의 연맹). (5) 신생노조의 운영절차, 재정 투명성, 선거 공정성에 불만이 있는 간부가 새로운 신생노조를 건설하기도 했다.

복잡한 듯이 보이지만 이런 연맹노조들은 대체로 닮은꼴이다. 대다수의 연맹 지도부들은 공장노동경험이 없는 고학력 엘리트들로 구성되어있다. 이들은 정부에 대해 타협적이고 정당에 대한 로비를 즐기고 노사간 협조를 강조한다. 지속적으로 전투적인 연맹노조는 SBSI와 FNPBI 뿐이었다. 전국연맹노조들은 자카르타에 본부 깃발을 세운 다음에 지방으로 진격하는 양상으로 조직작업을 전개한다. 그래서 전국노조연맹 상당수가 단위사업장 기반이 약해서 심하게 말하자면 중앙만 있는 노조연맹이라고 말할 수 있다. <표 2>에서 알 수 있듯이, 동부자바에서 지금까지 단위사업장지부를 하나라도 확보한 전국노조연맹은 38개중에서 8개뿐이었다. 인도네시아의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연맹노조에 대해 냉소적인 이유가 이러한 연맹노조의 실태 때문이다. 그래서 어떠한 상급단위노조에도 가입하지 않은 ‘무소속노조’가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다.



노동운동단체의 각개약진으로서 지역노조설립

인도네시아의 노동운동을 국제적으로 알려진 SBSI와 FNPBI만의 정보를 가지고 이해하려는 이들이 많은데, 이것은 잘못된 관행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소그룹 형태로 노동자를 조직하여 노동자와 실질적으로 접촉하고 노동자 권익옹호와 교육을 강조하면서 노동운동을 전개해온 노동운동단체들이 많다. SBSI나 FNPBI가 중앙조직의 건설과 선도투쟁에 치중했었다면 이 단체들은 느슨하고 덜 가시적인 조직형태를 갖추고 선진노동자와 조직을 보호하는데 역점을 두었었다.

이들 단체의 간부들을 비롯한 노동운동가 200여명이 수하르토가 물러난 뒤 석달만에 한 곳에 모여 기존의 노조와 다른 사회운동 친화적인 독립노조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러나 준비 미숙과 진솔한 토론의 결핍으로 인해 각 지역에서 기반을 더 다지고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말자는 데 합의하고는 해산되었다. 이후 노동운동단체들은 지역별 노조를 건설하게 되었다. NGO형 노조 혹은 사회운동노조라고도 할 수 있다.

그 결과 네 개의 지역에 국한된 노조가 자카르타 지역에는 3개, 동부자바에서는 9개 노조가 등록했다(<표 2>). 그 밖의 지역에도 여러 개의 지역노조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지역노조들은 전국노조와 달리 대외연대(모금)활동이나 조급한 조직통합과 중앙조직건설보다 각 단체별로 지역의 노동자기반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위원장은 공장노동자 출신이거나 현직 단위사업장 위원장이고 토론과 조직 내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지속적인 노동권 및 문화교육을 통해 노동자리더쉽 형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조직간 연대활동도 활발하며 지역자원동원력도 좋다. 이들은 민주화 이후에 SBSI, FNPBI와 함께 연대하여 국제노동절 행사를 부활시켰으며, 두 차례의 노동법 개정투쟁을 성사시켰다. 이 연대운동의 주도세력은 SBSI나 FNPBI가 아니라 지역에 기반을 둔 노조들이었다.


<표 2> 각 노조별 지부확보 현황, 수라바야, 시도아르조, 말랑시의 경우

 

수라바야

시도아르조*

말랑(시)*

계

FSPSI

263

160

57

480

비 FSPSI

164

169

66

399

비 FSPSI 노조들의 지부 현황

(무소속노조: SPTP)

79

6

23

108

(전국노조)

SBSI

33

30+

25

88

Sarbumusi

19

20+

1

40

TSK

16

60+

-

76

PPMI

4

10+

-

14

FNPBI

3

-

-

3

KBKI

2

25

-

27

Farkes Reformasi

-

10

-

10

(지역노조)

SBK

6

-

-

6

SBPD

1

1

-

2

SBGM

1

-

-

1

SP.Metal

-

5

-

5

SBS(Srikandi)

-

1

-

1

SPI(Independen)

-

1

-

1

APSM

-

-

13

13

SBKM

-

-

4

4

SBR

-

-

-

-

출처: 동부자바주 인력부, 수라바야시 인력부분소, 시도아르조시 인력부분소, 말랑시 인력부분소.

주의: 시도아르조와 말랑의 경우, 노동부담당자와의 인터뷰에 근거한 것이다. 즉 문서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담당자의 구술에 근거함.



사회운동형 지역노조들의 수공업성

지역노조들의 헌신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표 3>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노조들의 단위사업장지부 확보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고, 메이데이나 노동법개정투쟁같은 연대시위에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이 수라바야의 경우에 최대 1,000여명 정도이고 자카르타의 경우는 더 적다.

지역으로 각개약진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지역노조협의회를 구성하지 못했다. 지역노조들은 아래로부터의 조직건설을 강조하면서 전국적 센터를 건설하길 꺼리며, 자유/민주를 강조하면서 조직의 효율성이나 전국적 영향력을 높이는 과제는 미루어두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전국조직보다 지역노조협의회를 먼저 결성하는 것이 현실적인 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지역노조들은 포럼형태의 연대를 선호한다. 포럼형태의 연대란 안정적인 시스템과 상설공간에 바탕을 둔 ‘지역노조협의회’의 형태라기보다는 사안별로 행동통일을 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기능하는 일종의 ‘지역투쟁위원회’ 형태로 추진된다. 참여조직간에 높고 낮음이 없고 책임성이 약해서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고 자금모금도 사안별로 그 때 그 때 하며 상근 책임자도 대표도 없고 포럼 자체도 언제든지 해체할 수 있다. 좀더 안정적인 연대조직을 구축하지 못하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조직간 이기주의와 불신, NGO의 노조장악, NGO의 보스주의, NGO마다 상이한 국제적 네트웍을 이유로 말하고 있다.

좀더 장기적 전망을 갖는 연대조직을 건설하려면 현재의 유연한 포럼을 통한 연대 수준을 넘어서 노조간 조직통합이 필요하다. 통합을 위해서는 통합 시스템 구축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운동권의 토론을 듣고 있다보면, 노동법과 노동자권리에 관한 토론은 과잉되어 있고 전략과 조직에 관한 토론은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인도네시아 실정상 이러한 토론자리가 어떤 한 노조로부터 마련되기 어렵다. 노동운동 NGO들도 노조들을 각기 결성했기 때문에, 자기 NGO-노조 일에 바쁘다. 조직간 통합을 위해 일하는 활동가도 조직도 아직까지는 없다. 그래서 조직간 통합을 위한 정기적인 토론이나 노조운동의 상을 모색하기 위한 세미나, 지역노조협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기금조성이 전혀 시도된 바 없다.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 뜻이 맞는 지역 노조간 긴밀한 접촉을 하고 있지만 이로부터 전국노조를 건설할 계획은 아직까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어떠한 조직도 더 큰 조직적 전망을 위해 자기 조직을 촉매제로 사용한다기 보다는 자기 세력 불리기에 더 관심이 많다.

지역노조들과 가까운 전국노조라 할 수 있는 SBSI 및 FNPBI와 경향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심하다. 지역노조의 입장에서 볼 때, SBSI는 국제적 지원(특히 미국노조)을 받아서 몸집을 불린 불공정한 집단이고 조직이 커진 다음에는 자족적이고 동료 단체들에게 폐쇄적인 것처럼 보인다. FNPBI는 노동운동경험 없는 애송이 학생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노선에 노동자의 이름을 즉자적으로 끼워맞추는 집단으로 여겨진다. 물론 SBSI나 FNPBI의 시각에서 보면 지역노조들은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낡은 운동방식을 고수하는 답답한 집단들이다. 이리하여 노동운동의 획기적인 변혁은 전국노조와 지역노조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노조에 대한 자본의 공격과 국가의 방치

노동조직의 현격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노동조직에 대한 자본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표 3>에서 알수 있듯이, 복지노조(SBSI)가 공격당한 사례만 해도 1999년 53건, 2000년 45건이나 되었다. 표 3에 의하면, 행정당국과 군-경에 의한 침해사례는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사업장 내에서 기업주가 어용노조를 결성하거나 기존노조와 협력하면서 비타협적인 노조를 차별하고 괴멸시키려는 공작이 자행되고 있고, 기업주에 의해 사주를 받은 해결사(preman)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표 3> 복지노조(SBSI)가 경험한 노동조직결성의 자유침해사례, 1999-2000년 (단위: 건)

연도

침해세력

정부

경찰/군

경영자

FSPSI노조

해결사

합계

1999

4

10

30

5

4

53

2000

2

1

30

0

12

45

출처: SBSI, 2001, Annual Record of Violations of Trade Union Rights, Jakarta: SBSI.


이러한 탄압은 SBSI노조만 겪은 게 아니다. 기업주가 두 달 넘게 폐업하면서 제2노조 회원 200여명을 해고한 샹그릴라 호텔의 경우나, 기업주가 500여명의 깡패들을 동원하여 파업노동자들을 공격한 자동차부품업체 까데라 사례가 대표적인데, 이 과정에서 한 명의 파업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기업주의 부당노동행위와 해결사들의 폭력에 대해 정부의 철저한 감독과 징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극단적으로 분열된 노조들 역시 이러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지 못하다. 노동운동가들은 정부가 “손을 씻었다”(cuci tangan)고 비판했고 노동부는 노동조합의 난립을 비웃었다. 노동권의 보장은 ‘종이장 위의 권리’라 할 수 있다. 노동권은 노동법이나 국제노동기구(ILO)의 헌장에 근거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법을 관철시키는 국가의 활동과 그렇게 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노동조합운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사회방치국가라고 할 수 있는 요즘의 인도네시아 정부가 법치를 담보하리라고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따라서 그 과제는 해당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몫인데, 역시 신통치 못한 경우가 많다.

극단적인 예가 인도네시아 최대기업 구당가람(담배공장)의 시도아르조 라인의 경우이다. 2,0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이 라인에는 노조가 다섯개 설립되었다. 그 중에 덩치가 큰 세 개의 노조는 친기업노조들이고 나머지 두개의 노조가 전투적인 노조들이다. 두 전투적인 노조는 각각 20여명의 노조원만 확보하고 있을 뿐이어서, 노사협상에서 주변화되고 있으며, 그 중 FNPBI 소속 노조위원장이 해고당했다. 노조탄압이었지만 다른 노조들은 조용히 구경만 했다고 한다.

복수노조 시대라서 손쉬운 길만 찾은 결과였다. 기존의 노조를 민주화시키기 보다는 독립노조를 결성하는게 더 쉽다. 10명의 회원만 확보하면 노조설립이 가능하다. 전국연맹노조들은 각기 지부 확장을 경쟁적으로 시도하고 있어서 노조가 없는 사업장보다는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 제2, 제3의 노조를 결성하는데 더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보겠지만, 조직대상자의 수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조직의 수가 늘어남으로 각 노조는 재정난에 직면하게 된다. 게다가 일단 노조를 결성하면 노동자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기 노조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게 되고 이는 종종 기업 측에 이용된다.

전국적인 수준에서도 각 노조연맹이 각기 다른 이해관계에 근거하여 로비를 전개하고 노-사-정회의는 노조연맹간 대결의 장이 되기도 한다. 정책입안자들과 법률작성자들은 현재의 노조시스템 속에서는 무엇이 노동조합 일반의 요구인지 알 수 없다는 핑계로 자신들의 고유업무를 사보타지할 수 있다. 1997년부터 일정에 잡힌 노동법 개정은 노동조합법만 작년에 간신히 통과시켰을 뿐이고 나머지 법안들은 3년째 개정이 지연되고 있다. 단위기업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정부정책에 노동자의 이익을 반영하는 영향력을 높이는데 현재의 노조시스템이 긍정적인지는 실로 의문이다.



노동자의 투쟁: 동부자바의 단위사업장 노조사례

<표 4>의 동부자바지역의 노동자파업통계를 보면,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노동자파업이 상당수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부분적인 개방을 추구한 수하르또 말기 노동정책의 결과였다. 또한 노동자파업은 한편으로는 지역노동운동단체들의 노동자조직화의 성과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무관한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 투쟁의 성과이기도 했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민주화(1998년) 이후 노동자파업의 폭발적인 증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신정권의 ‘자유화’ 노동정책이 아직까지는 성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이 아직 재정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위사업장노조의 경우에 두드러지게 발전하고 있는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표 4> 동부자바의 노동자파업, 1991~1999년

 

동부자바 전체

수라바야

시도아르조

그레식

말랑

그밖의 지역

1991 1~10월

59

 

 

 

 

 

1992

120

 

 

 

 

 

1993

153

 

 

 

 

 

1994

314

 

 

 

 

 

1995

135

61

35

6

14

19

1996

127

62

28

15

8

13

1997

142

55

40

11

6

30

1998

193

103

45

13

15

19

1999

205

 

 

 

 

 

출처: 수라바야 법률구조재단(LBH Surabaya), ꡔ동부자바의 인권상황ꡕ(Sketsa Hak Asasi Manusia Jawa Timur), 1991년, 1993~1999년 각호.

주의: 인도네시아 인력부의 파업통계는 물론이고 지방인력분소의 파업통계도 믿을 수 없다. 이들 통계는 파업의 수를 지나치게 줄여 말한다. 이에 반해 법률구조재단은 각 지방지에 나타난 파업보도와 노동자법률상담을 기반으로 파업의 수를 기록하므로 더 사실에 가깝다.


수라바야를 대표하는 단위사업장 노조는 마스피온(Maspion)노조이다. 마스피온은 가정용파이프에서 알루미늄, 선풍기, 냉장고에 이르기까지 200여종을 생산하는 재벌형 화교기업으로 2만 5천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수기안또(Sugianto)를 비롯한 마스피온 노동자들은 수하르토가 물러난 직후 폭발적인 기습파업을 통해 수라바야 일대를 마비시켰으며, 노조간부의 민주적 교체에 성공한다. 이후 4차례의 파업과 수차례의 연대시위를 통해 동부자바에서 가장 전투적인 노조가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과거 어용노조였던 FSPSI에 계속 잔류함으로써 SBSI, FNPBI, Sarbumusi 등 다른 독립노조들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6월에 치러진 간부 선거에서 수기안또 위원장이 연임됨으로써 노조리더쉽이 더욱 확고한 기반 위로 올라섰다.

마스피온노조가 가장 전투적인 노조라 한다면 가장 알뜰하게 노조를 관리하는 노조는 빅토리(Victory) 노조이다. 빅토리는 대만인과 인도네시아화교의 합작기업으로서 리복 스포츠화를 주로 생산하는 신발공장이다. 로이카(Roika)를 비롯한 3천여명의 노동자 대부분이 여성노동자이다. 이 노조 역시 수하르토 말기에 기습적인 두차례 파업을 통해 노조를 결성하였으며, 개혁근로자조합연맹(SPSI-Reformasi)계열의 의류신발가죽노조연맹(TSK)에 소속되어 있다. 사무실 관리, 문서보관, 노조자금운영 면에서 상당히 알뜰하다. 그래서인지 제2노조의 침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위 두 노조 사례는 작업장으로부터 부상하는 노동자의 투쟁방식을 잘 보여준다. 이들이 예전 어용노조나 그로부터 떨어져나온 타협적인 노조연맹에 가입되어 있다고 해서 이들의 비중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이들은 사회운동경향의 지역노조 연대포럼에 참가하고 있으며 자기 소속 노조연맹의 방침에 어긋나는 메이데이, 노동법개정투쟁등의 연대시위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이는 단위사업장노조가 소속노조연맹의 일사불난한 지휘체계에 있다기 보다는 자율적이고 느슨한 지휘를 받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빅토리 노조는 100여명의 노조원을 이끌고 4차례 공장밖 연대시위에 참가하였으며, 연대시위 참가 단위노조가운데 가장 선도적인 태도로 임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마스피온 노조와 빅토리 노조가 수라바야 법률구조재단(LBH Surabaya)의 노동법관련자문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수라바야 지역 노동운동단체간 연대에 중개자로서 역할하고 있는 법률구조재단의 노동분과는 단지 법률자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설립 및 운영과 파업에 관해서도 자문하고 있다. 그래서 마스피온과 빅토리 노조는 법률구조재단을 벗 삼게 되었고 법률구조재단의 권유에 따라 연대활동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중간계급과 노동계급 연대의 단초가 이렇게 마련되곤 한다.

그러나 올해 메이데이를 깃점으로 그 연대에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간단히 줄여말하자면 필자의 눈에 수라바야 메이데이 행사는 중간계급의 잔치처럼 보였다. 여기에 120여명의 노조원을 이끌고 참가한 빅토리 노조는 노동자의 서글픈 실상을 절절하게 담은 시를 자발적으로 준비해와서 낭독함으로써 참가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노동운동단체들에 대한 노동자의 자기 선언인 것처럼 보였다. 마스피온 노조는 법률구조재단의 초청장을 무시하고 150여명의 노조원을 두 대의 트럭에 분승시켜 수라바야와 시도아르조를 돌면서 거의 독자적인 메이데이행사를 치렀다. 자기들의 희구를 담아내기에는 지역노조들의 메이데이행사가 너무 부실하고 작다는 듯이...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과제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노동자 파업의 비등은 수하르토의 발전주의가 낳은 악영향을 여실하게 드러냄으로써 수하르토 정권의 정당성을 퇴색시키는데 기여했다. 직접적이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인 형태로 노동자의 투쟁은 수하르토 독재정권의 붕괴를 가속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노동자투쟁이 더욱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민주화 이후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공고화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공장 문앞에서 멈추어서는 안된다. 그 기관차가 바로 노동운동인 것이고 인도네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인도네시아의 힘없는 대중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폭동에 의존하곤 했다. 폭동은 정치군부엘리트의 권력투쟁에 이용되거나 대중들의 단기적인 이해를 충족시킬 뿐이었다. 폭동이 대중들에게 조직적 성과를 안겨준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노동대중에게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주어졌다. 노조를 통해서 노동자들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으며, 조직을 강화하고 연대를 형성함으로써 노동대중의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민주화가 노동자에게 주는 한가지 가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을 적극 활용하는 노동자의 투쟁을 마스피온 노조와 빅토리 노조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진영은 이러한 가능성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마스피온노조와 빅토리노조가 전국적이고 장기적으로 노동운동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단위사업장을 넘어서는 좀 더 큰 틀이 필요한데, 노동운동진영은 그러한 틀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수라바야의 메이데이 폐막식에서 사회자는 “각자의 조직 깃발은 달라도 노동자는 하나”라면서 노동연대를 호소했다. 보수적인 노조연맹을 주변화시키고 노동자의 권익향상과 사회적 비전의 제시를 위한 진보적인 노동조직의 총연대야 말로 현시기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최대과제라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에 대한 국제연대 역시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분열상과 조직간 불신을 염두에 두고 가급적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연대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다. 

한/노/정/연

2001-08-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1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