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미콘 기사 노동자들의 함성 |
현장에서 미래를 제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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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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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콘 기사 노동자들의 함성
김 철 수/건설운송노동조합 조합원
들어가며
80년대 중반까지 레미콘 기사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건설노동자들이 그러하듯이
레미콘 기사 노동자들도 예외 없이 열악한 근무조건 속에서 일을
해왔다.
열악한 건설현장의 근무조건을 반영하듯 휴일에도 작업을 해야만
하였으며, 물량이 많으면 새벽 2~3시에 출근하여 작업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다. 이런 레미콘 기사 노동자들을 사용자들은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이 시작되었다. 레미콘 차량에
대해 강제 불하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물량 몰아주기 작전으로
떼돈을 벌 수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은 강제 불하를 거부하였으나 힘 없는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퇴직금을
정산하고 모자라는 돈은 회사에서 대출하거나, 은행 대출로
차량을 떠 안을 수밖에 없었다. 사용자들은 레미콘 기사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막대한 이윤을 착취할 수
있었다. 각종 수당, 퇴직금, 사회보험이 사라졌다. 또한 차량
관리를 개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면서 막대한 이윤이 추가로
발생하였다. 차량 고장 수리비, 유지관리비, 신차구입비,
노무비등 막대한 이윤이 창출되었다. 사용자들은 레미콘 기사
노동자들과 운반 도급계약서를 맺으면서 모든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전가하였다. 또한 이행 보증각서까지 만들어
공증을 요구하고 만약 회사의 지시를 어기면 오백만원에서
천만원까지 공증각서를 집행하여 꼼짝하지 못하도록 현대판 노비
문서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건물 안전도에 치명적인
불량레미콘을 운반 거부하면 회사의 지시 불이행으로 공증을
서준 천만원을 물어야 하고, 회사에서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IMF 사태 이후 사용자들은 한 술 더 떠서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기름 값은 천장부지로 치솟고, 물가, 교육비는
오르고 모든 것이 치솟는 상황에서 고통분담을 외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순박한 레미콘 기사 노동자들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사용자들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여 운반 도급 단가를
인하하였다. 하지만 사용자들의 요구는 고통분담이 아닌
고통전담의 서막에 불과하였다.
노동조합 결성
2000년 9월 22일 레미콘 기사 노동자들은 착취와 억압을 단호히
거부하고, 사용자들이 달아준 개별 사업주, 다시 말해 “사장이
아니라, 우리는 노동자이다”를 외치며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영등포구청으로부터 설립신고필증을 받았다. 창립 총회에 12명이
참석하였으나 불과 3개월만에 5개 지부, 1개 지회, 조합원
2,300명 가입이라는 놀라운 조직확대사업을 하였다. 전국에
2만명의 레미콘 기사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 중 10%가 불과
3개월만에 노동조합에 가입을 하였다. 수도권에 있는 레미콘
기사 노동자들의 75%가 노동조합에 가입을 하였다. 이는 다시
말해서 그동안 얼마만큼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고 있었는지
입증해 주는 생생한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합원들 대다수는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순간부터
사용자들에게 극심한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하는 중간관리자들의 회유와 협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조합원들에게는 장거리 배차를 시키고, 점심 식사제공 거부,
고속도로 통행료 미지급, 피복 지급거부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다. 이러한 방법이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자
마침내 대량 해고가 발생하였다. 유진 계열사는 조합원 350여명
전체가 해고되었고, 그밖에 다른 업체에서도 150여명이
해고되었다. 2001년 2월 18일 수도권에 사상 초유의 폭설이
내리던 날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쳐가며 레미콘 기사
노동자들은 투쟁의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투쟁의 불씨가 타오르다
조합원 평균나이 47세, 조직확대사업에 전념하다보니 조합원
가입원서 받기에 급급했고, 상근자 한 명이 모든 것들을
처리하다 보니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조직정비도 전혀
안 된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구호하나 외칠 수 있는 조합원이 없었다. 현실이 암담하다고
투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급하게 조직을 정비하고, 간부를
선임하고, 교육 및 회의가 수없이 시작되었다.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공장에서는
매일같이 집회투쟁이 시작되었고, 불법대체근로를 막기 위해
피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사용자들은 구사대 용역깡패를
동원해서 조합원들을 막무가내로 폭행하였다. 몽둥이는 물론
전기봉까지 동원해서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였다.
심지어 집회 장소에 차량을 돌진시켜 조합원이 차량에 받혀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사측의 무자비한 폭력에
경찰에 112 신고도 수없이 하였으나, 신고 접수조차 받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였고, 상주경찰 수백명의 눈앞에서 사측의
폭력이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는 극심해졌고, 불법대체근로, 부당해고 등 불법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노동부에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 100여건 이상
고소고발을 하였으나 노동부는 조사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였고,
경찰 역시도 구사대, 용역깡패의 폭력을 혐의 없음, 신원불명
등의 이유를 달아 이들을 비호하기에 급급했다. 구로동에 있는
제일레미콘의 경우, 조합원들이 기사 대기실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에 들이닥친 구사대, 용역깡패들에 의해 팬티만 입은 채
폭행당하고 8차선 대로변으로 끌려나왔으나 경찰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중에 심하게 항의하자 경찰 왈, “노동문제는 원래
그런거 아닙니까”라는 참으로 대단한 대한민국 경찰의 답변을
들을 수가 있었다.
사용자들은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에 단 한차례도 응하지
않았다. 2개 사업장의 사업주만이 전향적인 자세로 노동조합과
교섭을 해서 단체협상을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법을 지킨 이들
사업주들은 원자재인 시멘트가 공급이 되지 않아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확인해 본 결과
레미콘업체들이 노동조합과 단체협상을 체결한 업체에 시멘트를
공급할 경우 시멘트 생산 업체에 물량을 보이코트하겠다고
압박을 해서 물량을 공급받을 수 없어 공장 가동을 멈추고 있는
상황이다. 사용자들의 이러한 야만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부와 경찰은 사용자들의 불법에 대해 처벌은커녕
이들을 비호하기에 급급했고, 오히려 노동자들이 사용주의
불법에 항의하면 업무방해로 구속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공장을
중심으로 한 투쟁은 의미가 없었다.
마침내 5월 25일 전국건설운송노동조합 조합원들은 레미콘 및
차량을 이끌고 새벽에 마치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방법으로
여의도에 입성을 하였다. 43개 현장을 중심으로 한 거점투쟁을
마무리하고 마침내 정권과 자본에 총력투쟁을 선포하였다. 이후
한강 뗏목시위, 속옷만 입은 채 쌀푸대 뒤집어쓰고 시위,
차량시위, 노숙투쟁, 각종 집회 등 수 없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정권과 자본은 문제의 해결은커녕 노동자들에게 각종
출두요구, 구속․수배 등 노동자 탄압으로 일관하였다.
여의도 노숙투쟁장소를 침탈하겠다고 지속적으로 협박을
하였으나, 단 한 사람의 이탈자도 없었고, 강제진압의 소식이
전해지면 오히려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로 준비를 해 왔다.
이러한 이유로 강제진압이 세 차례나 연기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공권력을 동원한 김대중 정권의 폭력 앞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을 쓰고 도끼, 오함마, 빠루,
중망치를 휘두르는 그들은 공권력이 아니라 깡패집단에
불과했다. 대부분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색한 아버지뻘 되는 늙은
노동자들을 향해 광기어린 눈으로 도끼를 내리찍는 김대중
정권의 폭력성과 야만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늙은
노동자들은 평생 처음으로 닭장차에 실려 경찰서에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정권과 자본은 늙은 노동자들에게 폭력과
협박으로 일관하면서 대충 해산하겠지라는 판단을 하였지만 정말
큰 판단착오였다. 레미콘 기사 노동자들은 유치장에서
나오자마자 차량을 이끌고 여의도에 다시 집결하였다. 재집결
과정에서 도끼만행을 저지른 폭력경찰과 또다시 대치하였으나 두
번 다시 당하지 않는다는 각오로 싸워서 이들을 물리쳤다. 비록
이번 진압과정에서 위원장님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
조합원들은 파업투쟁을 반드시 승리한다는 각오로 장마비를 맞아
가면서 노숙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큰 형님뻘 되는 조합원이 씩 웃으며 한말이 귓가에 쟁쟁하다.
“마누라가 민주노총 조합원이 된 이후부터 세상을 보는 눈이
삐딱해졌다고 난리야. 아이들 교육상 안 좋다나. 그런데 내가
조근조근 얘기하면 옳다고 하거든. 삐딱해진 내가 정상이지.
맞지.”
네, 형님 말이 맞습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좋아라 웃으시는
조합원 동지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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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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