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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회주의? 생명윤리

현장에서 미래를  제69호
최형록



의료사회주의? 생명윤리



최 형 록

진보평론 편집위원




머리말

‘의사들아, 저질 진료를 해라!’1)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 격문. 이 위원회는 5개항을 거론하고 있는데 ‘부당청구, 부당청구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부당청구입니까?’라면서 교과서적 진료를 부당청구로 매도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급기야는 차라리 ‘의료 사회주의’를 하라고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이 무슨 ‘사철탕 끓이는 소리’인가?

과연 이런 주장이 남한 의사들 전체가 심사숙고한 바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민중은 이런 ‘의료 파시스트’적 폭언의 의미를 사회적 모순이 폭죽처럼 터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생명윤리기본법’의 입법과정과 그 내용 특히 인간배아의 연구와 활용문제를 어떻게 평가하며 대응해야할까? 아래에서는 이런 의문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1. 계급의 적이라는 거울

엄연히 드러난 병․의원의 부당청구를 부인하려는 이런 ‘의료 파시스트들’의 작태를 보면서 151년 전의 과학적 통찰이 생각난다.


“혁명적 진보의 길은 결코 희비극적인 직접적인 정복에 의해서 개척되는 것이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오직 치밀하고 강력한 반혁명이 솟구침으로써, 적이 나타나 그와 투쟁함으로써만 마침내 전복세력은 진정으로 변혁세력으로 될 수 있다.”2)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을 수반으로 한 ‘국민의 정부’는 민주노총에 대해서 ‘전면전’을 개시했다. 이런 공격적 태도는 이미 가깝게는 대우자동차 노조에 대한 경찰의 폭력에서 예행실습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롯데호텔 노조의 농성에 대한 폭력적 진압에서, 그리고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파시스트적 음모를 추진하고 있다. 정권의 폭력은 이른바 구조조정의 핵심이랄 수 있는, 노동자들을 무력화시키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적 투쟁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자행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노동자계급이 정신을 가다듬고 성찰해야 할 과제는 생존권 투쟁이 어떤 결실을 맺으려면 ‘변혁적 전망’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한의 자본가계급이 ‘계급투쟁적 전망’의 결의를 가지고 유신잔당을 용서(?)한 이 정권이 ‘유능한 정권’이 되도록 충동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말해온 이 정권의 수반은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규정했다. ‘빈대떡’이 빈대로 만든 떡이 아니듯이 자유민주주의가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세계자본주의의 대공황기에 뉴딜정책을 추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그와 친척인 시어도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본의 조선합병야욕을 승인한 태프트-가쓰라 밀약의 장본인이다―는 파시스트 무솔리니를 ‘경탄할만한 이탈리아 신사’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1937년 미 국무부는 파시즘은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 양립가능하며 파시즘이란 “러시아 혁명을 보면서 불만에 찬 대중이 좌경화될” 때 “부유층과 중간계급이 자기방어를 위한” 자연스런 반응이며 따라서 파시즘이 “성공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환멸을 느낀 중간계급에 의해서 세력이 강화된 대중이 다시 좌경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3) 이런 루즈벨트를 미국의 파시스트들은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던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에게 ‘의료 사회주의’를 하라고 광분하는 자들이 ‘의료 파시스트’인 것은 이런 역사적 선례에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박정희 기념관에 민중의 혈세를 낭비하려는 자(들), 일제의 징병․징용․정신대 강행의 진상규명과 배상을 도외시한 채 한일협정을 체결하려는 정권에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않았던 자(들)에게 ‘의료 사회주의’를 들먹이는 행동은 ‘파충류적 충동질’이 아니고 다른 무엇일까?

나아가 ‘의료 사회주의’ 운운하는 발광적 작태는 병원이라는 자본주의적 기업에 있어서 병원자본에 의한 간호원․간호보조원의 착취, 의료노동자의 일부인 의사에 대한 착취를 도외시하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요컨대 ‘파충류의 뇌’ 수준이 아니라 ‘대뇌신피질’(뇌의 이런 구조 덕분에 맹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지며 바하의 토카타와 푸거 D단조를 듣고 인간의 심연에서 나오는 박력을 느끼며 김소월의 ‘고락’에서 가혹한 일제치하에서의 끈질긴 그러면서 여백이 있는 삶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이다) 수준에 자신이 서 있음을 자각하는 의사라면 특히 레지던트, 인턴, 의대생이라면 자신의 ‘노동자계급적’ 지위를 직시하고 민중의 보건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2. ‘전문가’에의 맹신과 위원회 구성의 민주적 ‘인식틀’

이런 상황에서 생명윤리자문위원회는 “생명윤리기본법(가칭)”의 근본골격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지난 5월 22일 열었다.

“생명윤리기본법”은 ‘생명과학기술이 생명의 존엄성을 확보하고 신장시키면서 건전한 발전을 하도록 돕는 것을 근본목적으로 삼는다’고4) 기본골격안에서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생명과학기술이란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의 지적 성과를 지칭하는 것이다.5) 특히 지난 2월 인간게놈프로젝트(HGP) 공동연구단과 사설 연구기업인 셀레라 제노믹스가 공개한 인간게놈 정보는 현대 생명과학기술의 개가이자 새로운 ‘생물학과 의학 혁명’의 출발점이다. 문제는 ‘인류 공동의 유산’인 인간의 게놈(유전물질의 총체)이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의 새로운 식민지로 전락할 가능성 그리고 인간복제(클로닝)의 시도 등과 함께 윤리적 사고에 새로운 차원의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윤리’는 일종의 신조어로서 1971년 미국의 암연구자 반 렌슬라어 포터가 ꡔ생명윤리: 미래로의 다리ꡕ라는 저서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이것은 의학분야를 넘어 ‘생명과학들’을 포괄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생명윤리’라는 윤리의식의 새로운 확장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한 유태인에 대한 실험과 학살 그리고 일제의 731부대에 의한 중국인, 소련인, 조선인에 대한 가공할 생체실험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했다. ‘인간의 침해할 수 없는 존엄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20세기 후반부에 과학활동과 의료행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손상과 손상가능성에까지 확장되어온 것이다. 의사들과 과학자들의 ‘생명과학적 권력(biopouvoir)’에 의한 인간의 존엄성 침해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자. 1) 임신 중에 탈리도마이드(일종의 진정제, 수면제)를 처방함으로써 사지가 짤막한 아이들 수천명이 탄생해 온 경우. 2) 방어능력이 없는 노인에게 암세포를 주사한 브루클린 사건. 3) 정신지체아들에게 B형 간염 바이러스를 주사한 윌로우 브룩 사건. 4) 그들이 모르는 상황에서 매독환자를 처방치료한 환자집단과 처방치료를 하지 않은 환자집단으로 나누어 비교연구한 터스키기 사건.6) 이런 외국사례가 아니더라도 남한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세계 제1의 제왕절개 시술, 매년 증가세에 있는 불법적 낙태시술은 오만방자하고 이윤추구에 혈안이 된 남한 의사들에게는 비일비재한 일이 아닌가? 사회적 차원에서 남한 의사들의 ‘윤리적 동상(凍傷)’ 치료를 위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일이 ‘국가안보’를 위해서 절박한 일이 아닐까?

“생명윤리기본법” 근본골격안에서 우선 문제삼을 수 있는 것은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 대한 ‘인식의 틀’이다. 필자의 관점에서 모범적인 프랑스의 국가생명윤리자문위(1983년 창설)의 ‘인식의 틀’과 남한의 그것을 비교해 볼 때 근본골격안의 2조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있는 3항의 기본임무와 기능규정은 프랑스의 ‘인식틀’에 있어서 과학지식의 목적이나 용도(la destination)에 관한 것일 뿐이다. 즉 그런 목적과 용도와 불가분한 관계에 있는 과학지식의 기원의 장소와 생성의 조건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7) 이런 결여는 과학적 의문과 그 추구의 성격에 규정력을 지니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라는 지식생성의 근본조건에 대한 무지의 논리적 귀결이며 계급투쟁의 수준과 성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발전의 ‘제국주의 단계’의 초엽인 1907년 멘델의 법칙(특히 분리의 법칙을 실험을 통해서)을 ‘재발견’한 네덜란드의 위고 드 브리스는 위의 ‘인식의 틀’과 관련해서 이렇게 갈파했다. “이윤이 되는 것이 ‘과학적으로 진리’인 것에 영향을 미친다. 아니 심지어는 그것을 결정한다.”

이런 ‘인식의 틀’의 결함은 위원회 구성원리의 결함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위원에는 철학․윤리학․신학, 사회과학, 법학, 의학․보건학․생명과학 분야의 전문가가 1인 이상씩 포함되어야 한다’는 부분이다. 각 학문분과를 대변하는 이들이 대체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극복하려는 전망과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생명과학의 ‘상품화’를 얼마나 통제할 수 있을까? 2001년 4월 현재 위원회의 위원들 가운데 참여연대와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 소속 인사들이 있지만8) 얼마나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이에 비해서 프랑스의 자문기구에는 무엇보다도 카톨릭, 프로테스탄트,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고 맑시즘의 대표자 각 1명씩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런 구성원리가 다양한 사상조류간의 논쟁을 통한 과학의 민주주의적 통제에 더욱 부합할 것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런 구성원리에 따를 때 우리 문화와 사상의 역사에서 절대 지울 수 없는 불교계와 유교계 그리고 천도교계의 대표자 그리고 카톨릭계의 대표자를 반드시 위원 가운데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아마 현재의 위원회 구성은 일제시대 이래 압살되어 온 민족문화의 기억의 재생과 창조적 계승이 여전히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 그리고 영미문화에 대한 ‘단일경작(monoculture)적 정신’과 무관하지 않은 현상일 것이다.

이 시점에서 재확인해야 할 것은 ‘전문가에 대한 맹신’이다. ‘전문가’에 대한 강조는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전일화(專一化)와 심화 즉 ‘노동분업의 세분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오늘날 각 분야의 전문가인 석사․박사는 그 용어의 원래 뜻처럼 ‘많은 지식을 토대로 넓은 시야를 지닌 사람’과는 대체로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남한자본주의의 역사와 그 ‘반인간적 야수성’에 사회적 책임감과 정신노동자로서의 투쟁성을 발휘하는 진정한 ‘전문가’ 즉 ‘인텔리겐챠’가 많지 않다. 그런데 이런 ‘인텔리’가 적고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을 때 ‘우공역수(愚公逆水)’가 일어난다. 1996년의 ‘금강산 댐’에 대한 대응댐 건설과 남한국민의 우행이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전두환 군부파쇼세력의 휘모리장단에 남한민중이 한바탕 혼나간 행동을 하게 된 것은 군부파시즘에 저항하는 ‘건국대학교 항쟁’ 등 사회적 저항에 대한 국가안전기획부의 어처구니없는 ‘공포를 기조로 한 비과학적 시나리오’ 때문이었다. 이 악의적 지랄판에서 공학자들과 과학자들은 무엇을 하였던가? 이 집단적 히스테리는 심지어 금강산댐의 정확한 위치조차 모르면서 추진된 것이었다9)

‘전문가’가 진정 ‘인간다우려면’ 사회에 대한 총체적 전망을 지니고 민중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과 동일시하는 ‘인텔리’가 되어야 한다. ‘인텔리’는 민중이 무지에서 벗어나도록 ‘인식을 공유’하여야 한다. 이 인식의 공유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이 방송, 신문, 잡지와 같은 대중매체의 역할이다. 이런 점에서도 프랑스의 자문위원회 구성원리는 우리의 것보다 사려깊은 것이다. 대중매체에서 다뤄지고 따라서 여론과 공적 권력과 민감하게 관련되는 시사성있는 과학주제들은 빈번히 흥미위주로 혹은 선정적으로 다루어져 단편적이고 축소․왜곡된다. 이런 경향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 프랑스의 경우 위원에는 미디어 전공교수가 포함되어 있다.

나아가 남한의 경우 위원에 교육인적자원부,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에서 파견하는 3인의 공무원을 포함시키고 있는데 반해서 프랑스의 경우 국회의원과 전직장관, 기업가 그리고 간호원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 역시 유의할 만한 부분이다. 그리고 인적구성에 있어서 정신분석학자를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3. 금지해야 할 인간배아의 연구

“생명윤리기본법(가칭)” 근본골격안에서는 생명복제와 종(種)간 교잡행위, 인간배아의 연구와 활용, 유전자치료, 동물의 유전자 변형연구와 활용, 인간유전체(게놈의 번역어인 듯 함)정보연구와 활용 그리고 생명특허를 다루고 있다.10)

어느 것 하나 간단히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쟁점들이 결코 아니다. 이 짧은 글에서는 특히 인간게놈정보의 ‘상업적 이용’과 관련해서 인간배아의 연구에 대한 판단의 최소한의 정보를 소개하고자 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배아는 초기에 3단계의 성장과정 즉 포배기, 낭배(원장배)기 그리고 기관발생의 과정을 겪는다.11) 배아는 수정과 함께 발생하는데, ‘핵치환’에 의한 복제(클로닝)기술로 인간을 복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복잡한 ‘생명윤리’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은 아니더라도 복제연구를 허용해야 한다는 측은 무엇보다도 의학적 치료 즉 각종 유전성 질환을 비롯한 질병치료와 불임치료 그리고 유용한 약용물질의 생산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12)

인간배아의 복제를 가능케 한 복제기술은 복제양 돌리에서 처음 성공한 것이 아니다. 1944년 최초의 시험관 수정이 성공한 다음 1952년 올챙이 세포로부터 개구리를 복제해냈으며 나아가 1970년에는 쥐의 배아로부터 복제를 해냈다. 이런 진전에 일종의 제동을 건 사건이 1974년 아실로마르 학술회의였다. 이 회의에서는 DNA 재조합 관련 실험의 유예가 선포되었다. 하지만 그 다음해에 몇 가지 사전경계사항들과 규제사항들을 조건부로 그 유예를 해제했다. 미국 과학아카데미의 과학자들은 DNA 재조합기술의 위험성을 인식하여 실험실 이외로 이 새로운 기술이 전파될 가능성을 차단하려했던 것이다.13)

1980년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기술자 A. 샤크라바티의 ‘탄화수소를 청소하는 세균’에 대해서 연방대심원이 특허권을 인정하므로써 이후 생명체 관련 특허권 신청이 잇달았고 생명공학산업은 급속한 성장을 시작했던 것이다.

영국에서 치료를 목적으로 삼는 복제를 결정하면서 프랑스에서는 생명윤리논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즉 프랑스에서는 1994년 관련법에서 배아연구가 전면금지되었으나 과학자들은 규제완화를 바라고 있었다. 과학자들의 이런 소망은 생명윤리논쟁에 있어서 생명체의 수단화 거부라는 원칙과 의학의 진보에 따라 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게될 질환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조화시키냐라는 문제로 제기되었다.14) 1994년 생명윤리법 개정 초안은 2000년 11월 “잉여” 배아 (파괴하게 될 동결배아, 당시 6만~15만개로 추산됨)에 대한 연구를 허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 초안이 확정될 경우 치료를 목적으로 삼는 복제가 가능해진다.15) 이 복제는 체세포이식기술에 의존함으로써 이른바 “전능한” 배아간세포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배아간세포는 전문적인 체세포들(뇌신경세포, 간세포, 골수세포 등)로 분화될 수 있는데 성체세포를 다시 분화전능한 세포로 되돌리는 획기적 성취를 돌리는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명윤리자문위가 ‘체세포이식 방법으로 인간배아를 창출하는 행위는 금지’하면서 ‘인간의 성체간세포를 이용하는 연구’를 허용하는 것은 앞문은 걸어잠그고 뒷문을 열어놓는 것이 아닐까?

그런 한편 프랑스 대통령 쉬락은 그런 허용으로 말미암아 난자의 상거래라는 위험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를 분명히 했다. 이에 반해서 독일의 쉬뢰더 총리는 찬성을 하고 있는 한편 독일의 의사들은 배아연구를 반대하면서 특히 자궁착상 전 진단(DPI)관련 규정을 보다 분명히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16)

인간배아 연구금지의 과학적 근거와 관련해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모든 것이 유전자 안에 있지 않으므로 복제(le clonage)는 정말 똑같은 것 (la duplication)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과 관련해서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 아니다. 즉 돌리탄생의 혁명적 의의와 관련되는 사실로서 세포의 분화는 세포질―유전자가 있는 세포핵과 구별되는―의 속성들과 관련된 비유전자적 요인들에도 의존한다는 것이다.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배아연구는 당분간 금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치료의 이익을 넘어설 수도 있는 사회적 위험성 즉 인종주의를 비롯한 어떤 사상적 근거로부터든 초래될 수 있는 예측할 수 없는 우생학적 위험성, 새로운 노예제의 위험성에 대해 현재의 과학은 확실한 예방책을 제시할 수 있는 수준에 있지 않은 것 같다.18) 이와 동시에 인간의 전반적 윤리의식의 제고가 필요하며 이것은 사회체제의 변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단적으로 남한 의사들과 과학자들의 인식의 협량함, 사회적 책임감의 과부족을 생각할 때 인간배아연구는 당분간 금지해야 한다. 주의할 것은 한국 과학의 ‘국제경쟁력’ 이데올로기에 날카로운 비판의 눈길을 주어야 한다. 국제경쟁의 주체가 국가라고 할 때 그 국가의 계급적 성격에 비추어 경쟁력의 계급적 본질을 고려해야 한다.



4. 의료계 내 파시스트들과의 투쟁을 통해서 ‘민중의료’의 길로

노벨평화상이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간 ‘국경 없는 의사회’의 창립자인 베르나르 쿠히너에 따르면 프랑스의 일반의 중 73%가 그리고 암의학자 중 61%가 증세가 심각한 환자들의 고통에 대해서 교육받은대로 치료한 적이 없다고 한다. 더욱이 일반의 중 83%가 그리고 암의학자 중 93%가 자신들의 태도에 만족해한다고 한다.19) 그는 ‘의사들의 독재’와 관련해서 대화의 부재, 모든 것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 그들에게는 형벌면죄권이 있다는 생각을 지적하고 있다. 남한의 의사들의 태도, 사고방식, 윤리의식은 이들과 얼마나 다를까? 의사들의 일 역시 ‘중노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와 수면부족으로 의대생의 20~46%가 정신과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바로 그렇기에 마음씀씀이가 좁을런지도 모른다.20)

의사들은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사회병리학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병원의 노동조건에 대한 ‘임노동자적 접근’이 필요하며 환자의 고통을 생리-해부학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적’이며 ‘정신과학적’으로 접근해서 그의 고통이 바로 나 자신의 고통임을 자각해야 한다.

요컨대 특히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은 ‘병원내 자본가세력’, ‘의료 파시스트들’과 전면투쟁을 벌여야 한다. 도대체 현대판 ‘백골징포’인 의보수가의 허위청구, 세계 제 1의 제왕절개시술, 제약회사들의 랜딩비, 의료행위에 필수불가결한 요원들인 간호원들과 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백안시하는 자들이 어떻게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까?

몇 년 후부터는 의학전문대학원제도가 실시된다. 이때부터 아니 지금부터 ‘생명윤리’에 대한 교육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1976년이래 운영되고 있는 미국의 병원윤리위원회와 같은 제도의 도입도 실행해야 한다. 의사 노먼 베쑨은 ‘경제학과 병리학의 밀접한 관계’를 깨닫고 중국 민중의 혁명투쟁 속에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내게 있었던가?”라고 일기에 썼다.21)

자본주의 체제의 이론적 행상인, 앨빈 토플러는 세계사에 있어서 세 차례의 파도가 있었다고 설파한다. ‘제2의 파도’는 상승하는 자본가계급에게는 자진모리로 여겨졌을지언정 형성중인 산업노동자계급에게는 ‘제2의 해일’이 아니었을까? 이른바 정보기술혁명, 생명과학기술혁명, 뇌과학혁명의 결과는 노동자계급이 어떻게 투쟁하느냐에 따라서 ‘제3의 해일’이 될 수도 있다.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 역시 여타 노동자들과 함께 이 ‘제3의 해일’을 극복하는 투쟁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한/노/정/연


1) ꡔ한겨레신문ꡕ, 2001년 7월 2일, 14쪽의 1/4을 차지하는 광고문의 기치.


2) 칼 맑스, ꡔ프랑스의 계급투쟁ꡕ, 파리, 에디숑 소시알, 1984년, 80쪽.


3) 노엄 촘스키, ꡔ캐믈럿에 대한 반성ꡕ, 사우스엔드 프레스, 1993, 20쪽.


4) 「생명윤리기본법(가칭)」의 근본골격안, 1쪽.


5) 수정자본주의와 분자생물학에 대해서는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제37호, 1998년 10월호) 128~137쪽 참고. 그리고 유전공학에 대해서는 ꡔ진보평론ꡕ(통권 7호, 2001년 봄호) 226~228쪽 참고.


6) 생명윤리와 관련해서 라르스 폰 트리어 감독의 영화 ꡔ킹덤ꡕ(왕국, 의사들의 왕국?)을 보시오.


7) 쟝-피에르 샹저 감수, ꡔ만인을 위한 동일한 윤리?ꡕ, 파리, 오딜야콥, 1997년, 13쪽.


8) http://www.kbac.or.kr/committee.htm


9)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1년 7월 20일자 방영.


10) 생명복제와 게놈프로젝트와 윤리적 원칙들에 대해서는 앞의 ꡔ진보평론ꡕ 220~225쪽, 229~230쪽 참고.


11) 스티븐 J. 굴드 외, ꡔ생물학ꡕ, 캠프벨 출판사, 1993년, 956~979쪽 참조.


12) 이언 월무트(복제양 돌리를 생성시킨 연구팀의 한사람)의 「의학을 위한 복제」, ꡔ과학과 미국ꡕ, 1998년 12월호, 58면~63면.


13) 도미니크 르쿠르 감수, ꡔ과학사 및 과학철학사전ꡕ, 파리, 프랑스대학 출판사, 1999년, 123면, 181면.


14) ꡔ르몽드ꡕ지, 2000년 8월 25일자, 「동결된 인간배아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15) http://www.larecherche.fr 6월 15일자 최근소식.


16) http://www.larecherche.fr 5월 23일자 최근소식.


17) 앙리 아틀랑 외, ꡔ인간복제ꡕ, 파리, 쇠이유, 1999년, 22~23쪽, 53쪽.


18) 앙리 아틀랑의 결론은 이런 이유에서 반대이다. 앞의 책, 56쪽. 그는 의사이자 프랑스 생명윤리국가자문위원회의 위원이며 생물학에 있어서 “자기조직”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 베르나르 쿠히너, ꡔ의사들의 독재ꡕ, 파리, 로베르 라퐁, 1996년, 18쪽.


20) 멜빈 코너, ꡔ하버드 대학병원의 의사가 되기까지ꡕ, 명경, 이종찬 외 공역, 1996년, 497~506쪽.


21) 테드 알렌, 시드니 고든, ꡔ닥터 노먼 베쑨ꡕ, 실천문학사, 천희상 옮김, 1992년, 102~103쪽, 284~287쪽.


2001-08-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1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