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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열풍과 일본의 우경화

현장에서 미래를  제69호
강창일

고이즈미 열풍과 일본의 우경화


강 창 일
배제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사 전공





1. 왜 고이즈미 열풍이 일어나는가
요즘 일본의 정계는 가히 고이즈미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떠들썩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지난 4월 26일 수상으로 취임하고 나서 지지율은 계속 치솟아 6월 10일경의 여론조사에서는 무려 85%에 달했다고 한다. 사상유례 없는 수치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6월 24일 실시된 도쿄도의회 선거에서는 ‘고이즈미 효과’가 유감 없이 발휘되어 55명의 후보를 내어 53명이 당선되었다. 7월말에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이 참패할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을 깨어 오히려 압승하여 참의원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울러 한시적인 수상이었던 그가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재차 자민당 총재로 선출되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집권이 가능하게 되기도 하였다.
그의 수상 선출과정은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극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냈다. 일본은 내각책임제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달리 국민이 직접 수상을 뽑는 것이 아니라 여당에서 뽑힌 자가 국회의 선출과정을 거쳐 취임하게 된다. 때문에 종래 자민당 독주체제 하에서는 자민당내의 파벌간에 밀실야합을 통하여 국정을 책임지는 수상이 선출되는 것이 관례였다.
이러한 관행 아래서 고이즈미가 수상후보로 뛰어든 것은 그것 자체가 파격이었다. 그는 자민당 내에서 중견이지만 소수에 머무르는, 하나의 ‘괴짜’ 정치인에 지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소수의 상황에 처하여 일종의 도박을 하였다. 자민당 내의 선거임에도 국민에게 직접 물어보는 대국민 여론몰이 정치를 하였고 그것이 자민당의 부정부패와 밀실야합적인 정치에 등을 돌리고 있던 지방당원의 지지를 압도적으로 이끌어내어, 다수파의 후보로 당선이 확실시되던 하시모토 전 수상을 명예퇴진시키고 선출된 것이다. 전무후무한 사건이기도 하다.
일명 ‘괴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관행을 깨거나 무시하는 돌출행동을 일삼는 고이즈미가 “성역 없는 개혁”을 기치를 내걸어 기존의 자민당 정치에 식상하고 염증을 느끼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충분하다. 이러한 지지를 가지고 그는 소신대로 자기의 정치의 뜻을 펼쳐나갈 것이다.


2. 고이즈미는 어떤 사람인가
고이즈미(1942년생)는 3대 정치가로서 귀족적 집안에서 성장한 자이다. 그의 조부(小泉又次郞)는 제국주의 시대 체신상을 지냈고 태평양 전쟁기에는 익찬정치회 고문, 내각고문, 귀족원 칙선 의원을 지내다가 패망하고 나서는 공직 추방당한 자이다. 그의 부친(小泉純也)은 패전 후 중의원 의원으로 활약하면서 1969년에는 방위청 장관을 지내기도 하였다.
고이즈미는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런던에 유학하고 있던 중, 부친이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귀국하여 정계의 실력자 후쿠다 다케오의 비서를 거쳐 1972년 가나가와(神奈川)현 2구에서 첫 당선된 이래 줄곧 10선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1983년 신참 의원이면서도 당시 최대파벌이자 일본 정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던 다나카 전 수상의 당 지배체제 타파를 선언하여 물의를 일으켜, 용기있고 참신한 정치인으로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중의원의 대장성 상임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재정통으로 활약하였고, 다케시다 내각과 우노 내각에서 우정상과 후생상을 지내면서 자민당의 당론과는 배치되는 우정사업의 민영화와 연금법을 개정하여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59세로 혼자 사는 그는 결혼하는 것보다 이혼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말을 하면서 결혼 4년만에 이혼한 후 재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 일본 정치인 중 처음으로 머리를 파마하여 화제가 되는가 하면 그의 베토벤형 머리 스타일은 최근 유행이 되고 있다고도 한다. 재산이 많지 않은 청렴결백한 정치인상을 국민에게 각인시켰고 혼자서 지하철 타고 음악회에 간다거나 클래식을 즐기는 등 기존의 정치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줘 참신한 이미지를 심어놓기도 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연기에 능한 대중정치인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자민당이 붕괴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당원들 사이에서 팽배한 가운데 그는 무엇인가 변화를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총재선거에 나온 자들이 대부분 파벌의 정치논리에 의해 움직이는데 그는 ‘기인’, ‘괴짜’답게, 독불장군처럼 그러한 논리를 거부하였다. 그것은 정치에 식상한 대중의 지지를 얻어내는데 충분하였다. 그가 수상이 되고 난 후 그 과정을 보면서 대통령형 수상이라고 하는 평가도 파벌간의 밀실정치를 통한 수상임명이라는 구태의연한 정치관행과 관례를 깨부수고 국민의 직접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수상에 임명되었고 그 권위를 가지고 정치를 하는 것을 가지고 하는 말이다.


3. 고이즈미의 정치노선은 무엇인가
그는 개혁을 내세웠다. 작게는 자민당의 체질개선과 정계의 정화에서부터 국내문제와 대외문제에 거쳐 폭넓게 개혁을 외쳤다.
자민당 체질개선의 문제는 그가 수상으로 선출되는 사건에서 자명하게 드러나듯이 밀실야합적인 자민당의 체질을 탈각하여 국민에게 직접 묻는 정치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1955년 보수세력이 총집결하여 거대 여당 자민당의 일당 지배체제로 일관하여 오는 과정 속에서 생긴 밀실정치와 정치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 이것 자체가 정치에 식상하여 있는 국민을 정치에 관심 돌리게 하고 지지를 얻는데 충분하였다.
그는 경제구조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여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막기 위해 신규 국채를 연 30조엔으로 억제하고 666조엔에 달하는 부실채권을 정리하여 재정재건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전통적인 종신고용제, 연공서열제를 개혁하여 서구식 계약제를 도입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경쟁의 시장원리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단식 재벌 경영적인 경제구조를 개혁하겠다고도 한다.
그는 주변 나라의 반발에도 개의치 않고 전쟁범죄자들의 영령을 모시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주변나라의 비판과 반발을 내정간섭이라고 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조부가 전범으로 공직 추방당한 집안내력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헌법을 개정하거나 재해석하여 집단적 자위권을 갖겠다고 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다름이 이니라 종전의 평화헌법에서 오로지 일본이 직접적으로 적의 공격받았을 때에만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전수방위체제를 바꿔 동맹국이나 주변국가가 공격을 받았을 때에도 군사적으로 참여할 수가 있다는 주장으로 군사재무장과 군사대국화의 공개적 선언이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역사왜곡 작태와 문부과학성의 검인정 통과 문제에 대하여 그 정당성을 주장하고 주변 나라의 비판과 반발에 대하여 내정간섭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현재 많은 국민에게 기대와 희망을 안겨주고 있고 그러한 분위기가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나고 더 나아가 ‘고이즈미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개혁론이 향후 실제로 실현될 까는 매우 불투명하다. 우선은 자민당 내에서 일정한 논의를 거쳐 당론으로 결정된 사안이기 때문에 과연 자민당 내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느냐하는 문제이다. 한 예로 국채억제정책은 긴축재정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 복지정책의 후퇴로 나타나며 고용문제를 야기한다. 이때 그의 버팀목인 국민의 지지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조직형 정치가가 아니라 ‘홀로형’ 정치가이며 인기영합적인 정치성향 때문에 어느 정도 장기적 대책으로 개혁에 임할지 매우 의심스럽고 자민당내의 허약한 지지기반으로 과연 밀어붙일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어쩌면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날 소지도 있다.
그의 정치적 입장과 성향을 분석하여 보면 요컨대, 경제적 신자유주의와 정치적 신보수주의라고 할 수가 있다. 경제적 신자유주의란 철저히 시장의 원리에 맡겨 경제구조를 개혁하겠다는 입장이다. 국가의 경제에의 간섭을 가능한 한 줄여 나가겠다는 것이고 그런 입장이 곧 민영화와 국채발행 억제책으로 나타난다. 정치적 신보수주의란 자주외교노선이고 군사대국화․정치대국화를 노린다. 이러한 입장은 종래 일본을 이끌어 온 보수주의가 친미반공의 노선 하에서 비무장화와 일본의 경제대국화를 이룩하였다면, 신보수주의에서는 미국에 대하여 ‘노’라고 할 수 있는 자주노선을 강조한다. 전형적인 신보수주의자라고 평해지는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와 일정 부분 입장을 같이 한다고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차후에 이시하라로 하여금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다음 정권을 맡긴다는 밀약이 있었다는 소문이 날 정도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는 ‘근대’라는 시대의 가치를 추종하는 전형적인 근대주의자이다. 근대는 이성과 과학을 맹신하는 시대이고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을 추구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강한 자에게는 희망의 시대였으나 약한 자에게는 암흑의 시대였다. 안으로는 민주주의와 자유, 평등을 추구하는 국민국가의 시대였으나 밖으로는 침략과 전쟁을 정의로 생각하는 식민주의 시대였다. 그래서 결국 제국주의 전쟁인 제2차 대전으로까지 치달았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서 근대적인 질서와 가치가 해체되는 줄 알았으나 그 후 외형적인 의사적인 해체작업이 있었을 뿐 제국주의 강국의 힘은 그대로 온존 발전하였고 심지어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까지도 오래 지나지 않아 또다시 그 대열에 합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이즈미는 이제 근대의 가치와 질서를 재확인하고 그것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일본의 외적 대국화와 내적 민주화라는 정치주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근대의 화신이라고 할 만하다.


4. 향후,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는 수상이 되고 나서 교과서 문제가 터져 나오자 검정통과는 법적 근거에 의해 취해진 합법적이고 정당한 것이라고 하여 한국이나 중국 등 이웃나라의 비판과 재검토 요구를 무시하였다. 그리고 전범들을 모셔 추앙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총리 자격으로 공식 참배하겠다고 공언하여 오다가 드디어 주변 나라의 우려와 비판을 무시하고 지난 8월 13일 참배하였다. 그러면서 전쟁에 대한 반성도 하는 제스처를 취하였다. 병 주고 약 주는 해괴한 작태를 서슴지 않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비굴할 정도로 굽실거리면서 아시아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오만불손한 언행을 거리낌 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 문제나 야스쿠니 참배 등에서 그는 전형적인 대국주의적․전체주의적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에 입각하여 개혁을 표방하면서 국민들의 애국주의를 선동하여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획책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그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기존의 식상한 정치행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그를 생각하면서 맹목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있다. 가히 선동정치가라고 할 만하다.
그는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본래 갖고 있던 자기의 소리를 크게 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종래 침략전쟁을 못하게 만든 이른바 ‘평화헌법’의 개정이다. 현재의 ‘평화헌법’은 전쟁과 군대보유를 금지하고 있고, ‘전수방위’만을 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헌법을 개정하여 군대를 보유하고 군사무장하며 주변국이나 동맹국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일본이 이에 참전할 수 있도록 하는 집단자위권을 헌법에 삽입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고이즈미라는 대중선동가를 등에 업고 바야흐로 재무장하여 군사대국으로 비상하려 하고 있다. 곧 군국주의의 부활이라고 규정하여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군국주의라는 것은 다름아니라 대내적으로는 군사최고주의이고 대외적으로는 군사패권주의이다. 일본의 군사력은 곧 그 대상이 중국이고 한반도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특히 우선은 한반도이고 길게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종래 경제력을 가지고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였으나 이제는 군사력에 의거하여 아시아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도 한몫하고 있다. 21세기에 중국을 가상 주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미국이 일본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이를 견제하겠다는 정책이 곧 일본의 무장화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21세기는 19세기 말에 아시아의 패권장악을 위하여 침략전쟁을 일삼았던 과거의 역사가 재현되는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아시아의 장래가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5. 일본은 어디로 가는가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패전하고 나서도 동서냉전체제의 기류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으로 자신에 대한 ‘과거청산’ 없이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우물쭈물하면서 지나쳐버렸다. 뿐만 아니라 제1전범인 천황이 비록 상징적이기는 하나 국가원수로 버젓이 군림하고 군국주의시대의 황국신민관료들이 다시 관계와 정계를 장악하여 현대 일본을 이끌어 왔다.
처음에 그들은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친미주의와 경제 제일주의를 내걸어 경제부흥에 힘쓰다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고도성장기를 맞이하고 드디어 80년대 이후는 경제대국으로 일어설 수가 있었다. 그 동안 수면아래서 추진되던 우경화 프로젝트는 망언이나 망동을 통하여 돌출적으로 노출되다가 전후 50주년을 맞이하면서부터는 공개적으로 노골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이번에 역사교과서 문제로 그리고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그것은 천황제의 주술, 경제적 풍요로움이 배태한 정신적 황폐화, 세계화에 대한 민족적․국가적 정체성의 위기감,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견제와 일본의 대리인화 전략, 등등이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고이즈미라는, 종래의 정치가 스타일과는 다른 참신하게 보이는 대중정치가가 수상이 되었다. 구태의연한 밀실야합적인 정치행태와 정경유착, 부정부패를 타파하는 정치개혁, 신자유주의에 의한 경제개혁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유도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국민의 애국주의에 호소하면서 대국 일본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다. 다름아니라 군사대국으로서의 일본상이다.
그는 전형적인 전체주의자로서 가히 신파시스트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군국주의자들하고는 다르다. 그의 등장과 정치행위는 그 자체가 일본국민을 군국주의로 정신무장시키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실로 우려스러운 상황의 전개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이즈미는 현대 일본의 됨됨이를 적나라하게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제 아시아 주변국의 저항과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국주의화의 길을 걸으려고 할 것이다. 물론 국제정세나 내부의 정황 등에 영향 받으면서 많은 궤도 수정이 있긴 하겠지만.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우리는 균질화된 사회와 상생공영의 지구공동체를 형성하여 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이러한 소망과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반동적인 흐름이 특히 일본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동아시아는 우리가 기대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공생공영의 지역권이 구축되지가 않을 것이다. 요즘의 정세를 보면 오히려 중국과 일본을 축으로 패권경쟁이 심화될 조짐이 엿보인다. 글로벌 화의 추세 속에서 정체성의 위기가 몰아쳐 반동적이고 퇴영적인 국가주의적인 보수화․우경화가 촉진되는가 하면 군비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사태가 도래한다고 하면 동아시아는 공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설령 구조와 체제가 그렇다고 하여도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를 막아내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꿀 수가 있다. 한․일 양 민족을 비롯하여 아시아인들은 과거를 직시하고 그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 속에서 상생공영의 지혜를 짜내어 평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구축해야 한다. 도도한 역사의 진운에 동참하고 생존을 위해서이다. 한/노/정/연

2001-08-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1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