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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선거평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70호
함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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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선거평가



함 소 희/공공부문노동운동연구팀





한국발전산업노조(이하 발전노조)의 깃발이 올랐다. ‘민영화 저지, 민주노총 가입’ 등을 내건 이호동 후보가 7월 19일 발전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되어 현재 민주노총에 가입을 완료한 상태다. 그런데 한국전력에서 화력발전 부분이 분리된 이후, 5,600여 발전산업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구심체를 세워내기 위한 이번 선거 투쟁은 위원장을 뽑기 위한 선거만은 아니었다. 이후 전력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민영화 저지 싸움에 있어서 하나의 교두보를 세워내느냐 못하느냐의 의미도 있었다. 즉, 이번 발전노조의 선거는 어용의 역사를 청산하고 민주노조를 건설했다는 의의와 더불어, 가속화될 공공부문 민영화에 대항하여 투쟁할 수 있는 세력을 일정 부분 형성하였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선거에 대한 평가, 민주노조1기로서 발전노조가 부여받고 있는 과제의 설정 등은 이러한 큰 전제하에 다루어져야 한다. 이 글에서도 최대한 그렇게 하고자 노력은 했으나 여러 가지 한계로 불충분하다. 그래서 소박하게나마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발전노조의 선거 투쟁이 이 글을 통해 전국의 현장활동가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상호연대를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라는 데에 의의를 두고 약평을 하고자 한다.

1. 선거돌입까지의 과정

발전노조는 초대노조이지만 노동조합 활동 경험이 없는 미조직 사업장에서의 노조 건설은 아니다. 사업체가 분리되는 것과 동시에, 한국노총 산하 전국전력노동조합(이하 전력노조)에서 탈퇴하여 건설되었다. 따라서 우선 그 과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되, 전력노조 전체에 대한 역사를 훑기보다는 발전노조가 결성될 수 있었던 직접적 배경이 되는 시기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 시기는, 2000년 12월 3일 총파업 철회에서부터 ‘전력산업구조개편안’1)이 통과되어 발전산업이 분사화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 그리고 단일노조로 노동조합의 형태를 결정할 때까지이다.


<주요사건 일지>

2000년 12월 3일 전력산업구조개편 저지를 위한 총파업→위원장(오경호)의 직권조인으로 철회

12월 23일 ‘전력산업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 공포 등 하위법령 개정 

          예정된 이사회를 노조의 투쟁으로 저지

12월 24일 이사회 속결 처리

2001년 1월 5일 오경호 집행부 불신임을 막기 위해 교섭권을 위임받아 전적조건을 위한 ‘교섭단’ 구성

2월 18일 전력노조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전력노조 특별지부 잔류’결의

3월 16일 주주총회→한전에서 발전부문 분리 결정

3월 21일 감원(정리해고)를 비롯한 사측안을 그대로 수용한 ‘단체협정서’ 제출

3월 26일 ‘단체협정서’ 찬반투표 찬성 42.42%로 부결

3월 30일 태안화력 김동성 위원장 해고 등 지부위원장 징계 단행

3월 ‘전민투련’에서 민주노조 건설의 경로로 ‘발전자회사별 노조 설립’주장

4월 2일 서부발전노조 설립 신고서 노동부에 접수. 이후 복수노조 시비로 반려

4월 7일 서부발전노조 설립신고자 엄경식, 이석정, 이재백 부당 전출

4월 ‘정추위’를 비롯한 오경호 집행부 ‘전력노조 특별지부 잔류’에서 ‘발전단일노조 설립’으로 입장 선회

4월 26~27일 ‘발전지부 연대회의’에서 조직형태 선택투표 실시

             1. 전력노조 잔류 또는 신설노조 설립에 대한 안건에서 전력노조 잔류 547표, 신설노조 설립 6,968표. 2. 조직형태에 대한 투표에서 기력․수원자력 종합 9,287명, 투표자수 7,733명, 개표결과 기업별 4,506표, 산별 2,983표, 무효 203표로 자회사 노조로 결정. 전력노조탈퇴결정

4월 29일 발전지부장을 비롯한 중앙파견대의원 합동회의에서 각 자회사별 조합원 선택 결과에 따른 조직형태 선택 합의. 각 자회사별 중앙파견대의원을 포함한 노조설립추진위 구성(5월25일 투표결과 중부, 서부, 남동은 발전자회사 노조로, 남부는 3개 이상이 될 경우만 단일노조 추진, 동서는 발전단일노조 추진으로 확인)

5월 29일 전력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수․원자력 자회사 노조’, ‘화력발전단일산별노조’로 분할

5월 31일 발전노조 설립준비위 구성

6월 16일 발전단일 노조 설립 준비위에서 규약(안)과 선거 일정 확정

6월 26일 수원자력 선거 - 김병기 위원장 당선

6월 28일 규약찬반투표

7월 19일 산별/본부/지부 위원장 선거

7월 28일 노조설립필증 쟁취

8월 9~10일 상급단체 선택 총투표 실시→민주노총 가입 결정


총파업 철회이후 선거돌입까지의 흐름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이 된다.


1) 1시기 : 12․3 총파업 철회 이후 ~ 3월 26일 잠정합의안 부결까지

       발전사 분사 결정으로 인한 생존권의 위기감 고조와 어용노조에 대한 분노 증폭


2000년 12월 3일 전력산업 구조개편안을 저지하기 위한 전력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노동조합 집행부(위원장 오경호)의 직권조인으로 철회되었다. 정권과 자본은 그동안 끊임없이 강화시켰던 노동강도와 현장통제에 덧붙여, 법안까지 통과시킴으로써 전력산업 구조조정의 밑그림을 완성했다. 그러나 전국에서 결집한 발전 노동자들은 파업을 시작도 못해보고 자신의 집행부에 의해  자신의 생존권이 짓밟히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는 노동자들이 어용노조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기폭제의 역할을 하였다. 직권조인 직후 전민투련2)에 의해 주도된 오경호 불신임 서명운동은 5,0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참여하였고 이로써 조합원들이 민주노조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3월 16일 주주총회에서 발전사 분리가 최종 결정되는 과정에서 노조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조합원들은 어용노조의 한계를 절실하게 체감하게 된다. 또한 3월 21일 잠정합의안3)에서의 정리해고 인정과 전적동의는 조합원들이 오경호 집행부에 대한 불신을 넘어 교섭위원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전민투련을 중심으로 부결투쟁을 전개하였으며, 그 결과 3월 26일 잠정합의안 찬반투표에서 과반수 미만으로 부결되었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분사화 과정에서 생존권에 대한 위기감이 극대화되고 있다는 점과 동시에 상층 관료화된 어용노조에 대한 분노가 직접적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총파업이 철회된 이후 분사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생존권과 고용에 대한 위기감은 극대화되었다. 그러나 사측이 개별 조합원에게 요구했던 전적동의서에 대해서 쓰지 않고 버텼던 조합원들은 3월 21일 합의서가 작성된 이후 80~90% 정도가 전적동의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이는 결집된 조직력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존권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이 표출된 것으로서, 단체교섭안에 대해 부결투쟁을 전개하고 있었지만 노조 집행부가 바뀌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는 회의 역시 크게 자리잡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이후 300만원을 받으면서 전적이 되는 과정은 조합원들에게 큰 모멸감으로 다가섰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동안의 투쟁이 돈 300만원을 받기 위한 것이었던가 하는 회의와 함께 어용노조에 대한 불만은 갈수록 짙게 깔려갔다.

자본과 정권은 노동조합 상층과의 노사합의라는 모양새로 구조조정을 감행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였으며, 동시에 개별 노동자들에게는 전적동의서를 매개로 회유와 협박을 진행하였다. 이에 편승한 상층 집행부는 자본의 파트너로서의 자기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해 조합원들은 자본과 정권의 구조조정에 대한 분노와 함께 어용노조에게 자신의 생존권을 유린당했다는 억울함이 극에 달했다. 동시에 거꾸로 민주노조 건설에 대한 욕망 역시 크게 확대되었다.


2) 2시기 : 4월~5월 29일 대의원대회까지

       조직형태에 대한 논쟁과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


3월 30일 그동안 관례적으로 인정되었던 노동조합 활동을 근거로 지부위원장 7명에 대한 징계가 내려졌다. 이 징계는 서부발전노조 설립의 흐름이 가시화되고 현장에서의 동의가 높아가자 이를 잠재우기 위한 노동탄압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발전연대회의4)에서는 이 부당징계에 대한 철회투쟁을 전면화시키지 못하고, 서부발전노조의 설립에 대한 대응만을 논의하게 된다.

서부발전노조는 4월 2일 전민투련 소속의 김동성 외 3인이 설립신고서를 제출하였으나 복수노조 시비로 반려되었다. 그러나 서부발전노조의 설립 신고로 인해 조합원들의 조직형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으며, 이후 조직형태를 ‘특별지부’로 할 것인가, ‘단일 산별노조’로할 것인가, 아니면 ‘자회사별 기업별노조’로 건설할 것인가가 논쟁이 중심이 되는 계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4월 26~27일 발전지부연대회의 주관하에 양일간 진행된 투표에서 우선, 전력노조 잔류 281표, 신설노조 설립 4,363표로 전력노조 탈퇴가 압도적으로 결정되었고, 뒤이어 진행된 조직형태 선택투표에서는 기업별 4,506표, 산별 2,983표, 무효 203표로 자회사별 기업별노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5월 29일 전력노조 대의원대회에서 규약에 근거해 노조 분할에 대한 안건이 상정되었다. 조합원이 스스로 탈퇴를 결정하고 난 뒤였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한 처리방식만 논의되었어야 했으나, 오경호 집행부는 이미 결정된 조직형태까지 안건으로 상정하였다. 이날 대의원대회에서 발전부분 소속 대의원들은 “왜 전력노조에서 분리되어 나가는 발전조합원들의 조직형태를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 하는가? 분할만 결정하라.”는 요구를 주장했으나 오경호 집행부는 “기업별로 따로 분리하는 것은 역사에 부끄럽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일로 가지 않으면 분할해 주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결국 번안으로 상정되었던 자회사별 기업별노조안은 총 232명중 찬성 143명, 반대 88명으로 의결정족수인 152표를 얻지 못해 부결되었다. 이후 원안으로 상정되었던 발전 산별노조에 대한 투표에서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률로 산별노조안이 통과되었다.


논란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어용이라고 비판받아왔던 오경호 집행부가 산별노조를 주장하고, 노조민주화를 위해 투쟁해 왔던 세력이 기업별노조를 주장하는 상황이 언뜻 보기에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었다.

다시 정리하자면, 조직형태에 대한 논쟁은 오경호를 비롯한 집행부가 주장한 안(초기, 전력노조 산하 특별지부형태 후기, 발전산별노조)과 전민투련을 중심으로 한 민주파가 주장한 안(자회사별 기업별노조)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조직형태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전력노조로 대표되는 어용노조와의 관계청산이냐 유지냐의 문제였다.

특별지부와 발전산별노조의 형태로 가야한다는 안은 모두 전력노조와의 관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특히 특별지부의 형태는 2월 18일 전력노조 중앙집행위에서 결정한 사항으로 이는 새로운 조직이 전력노조 내에 잔존해야 한다는 견해였다. 그러나 전력노조와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특별지부’가 조합원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자, 4월에 단일산별노조 형태로 선회한 것이다. 물론 표면적인 근거는 전체 노동운동의 흐름이 산별로 가는 추세에 구시대적인 기업별노조로 시작한다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기업별노조로 되었을 경우, 2~3개 노조라도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사업장이 생기면 그 여파가 나머지 노조들에게도 미칠 것이라는 판단하에 단일산별로 묶어서 전력노조와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전력노조는 한국노총 산하인데 분리되는 노조가 민주노총 가입을 결정하게 된다면 더 이상의 조직적 관계는 힘들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측에서도 산별로 조직형태가 결정되기를 원했는데, 사측은 과거 한국전력노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상층을 관료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던 것 같다.

반면, 자회사별 노조를 주장했던 전민투련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전력노조와의 관계를 철저히 단절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비록 소수일지라도 민주파가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사업장별로 투쟁을 확고히 하면서 그 힘을 바탕으로 연대투쟁을 통해 산별을 건설해야만 올바른 산별이 건설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따라서, 구 전력노조의 영향력을 최대한 벗어나서 민주노조를 건설하 수 있는 형태는 자회사별 노조가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던 것 같다.


이 시기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전력노조 탈퇴와 관련된 총투표 결과이다. 총투표 결과는 압도적인 차이로 전력노조 탈퇴를 결정하였다. 이는 기간 어용노조의 배신행위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평가를 의미한다. 54년 어용의 역사를 반쪽이라도 민주화시켜야 된다는 조합원들의 열망이 표로 확인되는 시기였다.

둘째, 조직형태를 산별노조로 결정한 것에 대한 이해이다. 끊임없이 논쟁이 되었던 자회사별 기업별노조냐 산별노조냐의 공방이 대의원대회에서 산별노조로 결정되었다는 점 때문에, 자칫 더 많은 조합원들이 산별노조를 원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이미 4월 26~27일 총투표에서 조합원들이 자회사노조를 선택하였고, 대의원 232명 중 반 이상인 143명이 자회사별 기업별노조에 찬성을 하였던 것을 볼 때, 산별노조에 대한 결정을 곧바로 조합원들이 산별노조를 열망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기에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 조합원들에게는 기업별노조냐, 산별노조냐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어떤 조직형태가 최대한 기존노조와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데에 유리할 것이냐가 관건이었다.



2. 선거결과와 평가

1) 노동조합에서 선거의 의미5)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시민으로서의 1인 1표라는 대의제를 통해 대중이 마치 힘있는 정치행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한다. 또한, 소환권이 부여되지 않은 대의제 투표이기 때문에 능동적 주체로의 참여를 배제하면서도 민주적 절차를 밟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렇다면 노동자 계급에게 있어 선거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

노동자 계급에 있어 선거는 첫째, 자유로운 정치토론의 장이어야 한다. 선거시기에는 이전의 집행부에 대한 평가가 공론화되고 각 선거본부에서 제출하는 정책과 노선에 대한 조합원들의 광범위한 토론이 전개되어야 한다. 선거에 출마한 자들만의 논쟁, 상층중심의 논쟁이 아닌, 전 조합원의 활발한 논쟁으로 자신이 속한 노동조합의 향후 발전방향에 대해 스스로 진단하고 계획의 단초를 찾아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의식과 판단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활용되어야 한다.

둘째, 노동자 계급의 선거는 노동자 계급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부르주아 선거에서처럼 다 차려논 밥상에서 거수기 노릇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상을 차리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정치적 주체로 나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선거방식 뿐만 아니라, 조합원이 느끼는 현장에서의 불만과 이후 노조의 요구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분위기를 형성함으로써 일상적으로 관리자들에게 억눌린 현장 분위기를 일신시켜 선거가 노동자의 현장장악력을 제고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발전시켜야 한다.

셋째, 발전노조를 포함한 모든 노조의 선거는 직접 민주주의 장이어야 한다. 그동안 전력노조는 3중간선제라는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의 의견은 선거를 통해 전혀 반영될 수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선거제도가 어용의 역사를 합법적으로 재생산하는 장치에 불과했다. 물론 99년 8월에 직선제가 도입되어, 현재 전력노조 집행부인 오경호를 선출하던 때에 직선선출을 했었으나, 그때도 선거의 참다운 의미를 살리지는 못했었다. 단독후보로 치루어진 선거에서 선거운동이란 전혀 없었으며 조합원들은 그저 거수기의 역할만을 했을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발전선거는 3명의 후보가 나와서 서로의 정책과 공약을 제출하고, 선거운동이 진행되었으며, 조합원들이 직접 투표를 진행하였던 점에서 직접민주주의를 되찾은 선거라 할 수 있겠다.


2) 선거에 대한 평가

(1) 산별위원장 선거 쟁점

발전노조의 선거는 산별위원장 후보로 3명이 출마했고, 5개 본부와 37개 지부가 모두 경선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7월 19일 동시에 투표가 이루어졌다.

산별위원장 후보로는 기호1번 이명훈-김두찬-김성철(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처장), 기호2번은 이준상-조광제-최용환, 기호3번은 이호동-김순섭-김인이 출마를 하였다.

2000년 12․3 파업 철회 이후 오경호 위원장 불신임 운동을 전개했던 전민투련 소속 이호동 후보는 ‘민영화 저지, 고용안정 쟁취, 실질임금 쟁취, 열사추모사업 및 해고자 복직, 민주노총 가입 추진’을 5대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호동 후보는 전민투련 회원으로 지난 3월 울산화력지부장에 당선된 바 있으며, 전민투련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이호동 후보진영은 「민영화 저지와 고용안정 쟁취를 위한 민주후보 이호동 선본」(민주선본)을 구성하여, 3명의 본부장 후보와 9명의 지부장 후보들이 행보를 함께 하였다.

이준상 후보는 ‘김시자 열사 추모사업회’(고문 오경호) 산하 ‘노조발전추진위원회’에서 추대를 받아 출마를 했고, ‘전력노조, 수력원자력노조, 한전기공노조 등 발전산업 관련 노조연맹 추진과 조합원 투표 후 상급단체 결정’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준상 후보는 여수화력지부 위원장으로 발전분사 관련 3.21 교섭단 간사 등을 역임했다.

7월 9일 오후 마지막으로 등록을 마친 이명훈 후보는 ‘분열에서 통합으로, 고용안정 복지증진’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전력노조 최태일 집행부6)에서 기획국장을 역임한 바 있다.


<표 1> 각 위원장 후보 슬로건

기호1번 이명훈

기호2번 이준상

기호3번 이호동

분할에서 통합으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고용안정 복리증진!

실천하는, 투쟁하는 신념의 운동가!

발전산업 분할, 매각 저지!

민영화 저지!

고용안정 쟁취!

배신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다!


발전노조가 처해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민영화는 가장 핵심적인 화두이다. 민영화 저지투쟁은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공동 투쟁과제로서 자본의 신자유주의 질서재편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이며, 조합원들의 고용과 생존권을 사수하는 투쟁이다. 또한 이를 통해서만이 아래로부터의 현장의 힘을 강화하고, 현장통제를 분쇄할 수 있다. 그러나 각 후보가 제시하고 있는 민영화 저지투쟁은 기본적인 관점에서부터 투쟁의 방향과 연대의 단위에 대한 상이함이 존재한다. 

기호 1번 이명훈 후보의 민영화 저지투쟁 방향은 조직내 “민영화 저지 투쟁본부”를 구성하고, 시민단체, 학자․교수들과 함께 대외적 연대투쟁의 조직을 결성하고, 언론노조와의 연대투쟁․정치권 협조체제를 구축하여 대선을 이용한 정치적 이슈화에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상급단체는 규약에 의거해 총투표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훈 후보는 민영화 저지투쟁을 정치적 압박을 통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현장투쟁에 바탕을 두지 않은 그 어떤 투쟁도 부차적이라는 지적 외에, 최근 시민단체나 학자 내에 ‘합리적 민영화’를 주장하고 있는 논자가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 결과가 민영화 저지로 나타날 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민영화저지 투쟁으로 인해 놓칠 수 있는 복리부분에 대해서도 ‘뛰어난 협상력’으로 반드시 증진시키겠다”는 입장을 제출했는데, 이 역시 협상력은 투쟁력에서 나온다는 점을 상대적으로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을 할 수 있겠다. 나아가 이미 무수히 경험하고 있듯이 조합원의 투쟁열기를 협상의 도구로 전락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기호 2번은 발전산업 매각과 민영화를 저지하겠다는 공약을 제출하였고, 산별노조를 LG파워노조, 수원자력노조, 한전기공노조, 한전기술노조, 파워콤노조, 한전산업노조 등 발전부분 노조를 통합하거나, 연맹체로 구성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겠다고 주장했다. 또한 상급단체 결정과 관련하여 양대 노총에게 홍보물을 요구하여 조합원에게 제출하고 총투표를 통해 가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준상 후보의 경우는 민영화 투쟁에 대한 세부적인 방향은 제출하지 않았고, 이명훈 후보와 마찬가지로 다년간에 걸쳐 실무협상을 진행했었기 때문에 사측과 정부를 만나 어떻게 협상하는지를 알고 있다는 식으로 협상능력을 강조했다. 이는 3.21잠정합의서의 교섭단을 역임했던 경력에 비추어 볼 때, 그 내용을 짐작케 한다. 특히 상급단체에 대한 선택은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중 조합원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듯이 제출하고 있지만, 동시에 양대 노총 공공부분을 아우르는 또 다른 산별노조을 만들겠다는 안을 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제3노총과 같은 흐름으로 해석될 여지를 담고 있다.

기호 3번은 “민영화 저지, 고용안정쟁취투쟁위원회”를 건설하여 민영화를 저지할 것이며, 상급단체로 민주노총 가입을 적극 추진하고 공공부문노조와 연대투쟁을 강화하여 민영화를 막아내고, 고용안정을 쟁취하겠다는 주장을 했다. 또한 성과급제, 연봉제를 저지하고 조합원의 총투표로 다시는 직권조인 없는 노사협약을 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호동 후보의 경우는 민영화 저지투쟁을 현장 중심으로 세워낼 수 있도록 각 본부-지부를 포함하는 투쟁체계를 구성하겠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연대세력으로 공공연맹과 민주노총을 적시함으로써 다른 후보와 달리 상급단체에 대한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후보들간에 논쟁이 되었던 쟁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상급단체 가입에 대한 문제이다.

이호동 후보를 제외한 후보들은 특정 상급단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단지 양대 노총에 홍보물을 요구하여 조합원들에게 나눠주고 조합원 총투표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 대해 애매한 판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조합원의 선택권을 빌미로 후보의 입장을 정치적으로 제출하지 않음으로써, 의도하든 않든 민주노조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토론을 차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를 정책선거로 만들어가는 데에는 관심이 없거나,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2001년 단체교섭에서 합의된 ‘인력교류위원회’에 대한 논쟁이다.

지난 3월 21일 발전지부연대회의 교섭단(교섭위원 조광제, 신동호, 김선재, 박성식, 이근만, 이준상)이 회사측과 잠정합의한 ‘단체교섭협정서’(이하 협정서) 12항이 이번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12항은 ‘회사와 발전회사간 또는 발전회사 상호간에 전적, 파견 등 인력교류와 특정회사의 부득이한 감원으로 고용안정이 필요한 경우 또는 직군간의 불균형을 해소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회사, 발전회사 및 노동조합 대표로 구성되는 인력교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되어있다.  

이호동 민주선본에서는 협정서 12항에 대해 ‘부득이한 감원’과 ‘직군간 불균형 해소’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노동조합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이는 정리해고를 인정하는 것이며, 인력재배치를 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반면, 교섭단의 간사였던 이준상 후보는 서인천화력지부 유세에서 “인력교류위원회가 본 뜻과 달리 왜곡되어 비판되고 있다. 인력교류위원회는 이탈리아에서 도입된 선진적인 형태의 근로자 재배치(교육)”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탈리아가 갑자기 본받아야 할 모델로 된 배경을 알 길은 없지만, 현재 이탈리아는 고실업 속에서 93년부터 노동시장을 유연화 하기 위한 여러 제도들을 도입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전력 역시 민영화를 전제로 고용 구조조정에 돌입해 있는 상황이라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이탈리아 역시 신자유주의적 정책에서 그다지 벗어나 있지 않다. 한국전력에서 ‘인력교류위원회’ 제도가 도입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리해고 이후 남은 노동자에 대한 전환배치를 핵심으로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셋째, 고 김시자 열사정신 계승을 둘러싼 논쟁이다. 95년 말 한일병원 대의원이었던 고 김시자 열사는 전력노조가 ‘민주노조’로 다시 건설되어야 한다는 열망으로 분신을 하였다. 이번 선거에서는 고 김시자 열사의 정신과 민주노조건설에 대한 열망을 현실에서 어떻게 계승해야 하는가에 대한 각 선본의 입장차이가 쟁점이 되었다. 이준상 후보는 ‘고 김시자 열사 추모사업회’에서 추대되었다. 2000년 1월 15일 창립된 추모사업회는 오경호 전력노조 위원장이 고문으로 있다. 추모사업회는 기간 열사정신을 받들기 위해 흉상제막이나 추모가 제정 등의 사업을 통해 열사 추모사업을 진행해 왔다. 이준상 후보측에서는 이호동 선본이 추모사업회 사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열사정신을 계승하지 않았으면서 선거시기에 열사를 팔아먹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호동 민주선본에서는 김시자 열사의 뜻을 받들고 명예를 지키는 것은 ‘노조 민주화’를 쟁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정으로 열사의 뜻을 받드는 것은 열사추모사업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진행될 민영화저지와 고용안정을 쟁취하고, 결코 조합원을 배신하지 않는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그동안 열사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조민주화투쟁’을 전개해 왔다고 밝혔다.


(2) 선거 결과 분석

지금까지 선거상황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았다. 다음은 선거결과에 대한 분석을 간략하게 진행해보고자 한다.


첫째, 민주노조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확인할 수 있다.

<표 2>에서 보이듯이 96.4%라는 투표율과 이호동 후보에 대한 61%라는 득표율은 조합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조합원들은 투쟁하고자 하는 지도부를 원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선택은 비단 선거과정에서 제출된 정책공약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라 전력노조 시절부터의 실천에 대한 세밀한 평가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호동 선본의 경우는 전력노조 시절부터 오경호 불신임 운동을 주도하면서 어용노조와의 단절을 주장했었고, 이준상 후보는 3.21 단체교섭의 교섭위원이었다는 점이 이미 조합원들로 하여금 판단의 기준을 갖도록 만들었던 것같다. 전력노조 집행부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과 여론전과 교섭을 중심으로 추진해 온 민영화저지투쟁의 실패, 점점 가중되는 일자리에 대한 불안 등이 투쟁하겠다는 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은 민주선본에서 본부후보를 내지 못했던 지역 역시 이호동 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보낸 것을 통해서도 확인된다(표3 참조). ‘민주후보 이호동 선본’의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남동발전본부와 중부발전본부의 득표율을 보면, 이호동 후보에 대한 지지가 인물이나 인맥, 지연에 따라 선택되었다기보다 ‘민주’를 내건 후보에 대한 대중적 지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 2> 산별위원장 투표결과

전체 조합원

이명훈

이준상

이호동

무효, 기권

계

5660명(100%)

624표

(11.4%)

1,422표

(26.0%)

3,333표

(61.1%)

80

(1.5%)

5,459명

(96.4%)


<표 3> 본부별 산별위원장 투표결과

본부

이명훈

이준상

이호동

동서발전본부

83표

359표

671표

서부발전본부

163표

192표

539표

남부발전본부

69표

340표

525표

남동발전본부

102표

202표

642표

중부발전본부

154표

155표

874표


<표 4> 본부 투표결과

본부

조합원

투표인원

득표율

동서발전본부

1,179명

1,136(96.4%)

김영배 466(41.0%)

정윤지* 657(57.8%)

서부발전본부

1,020명

  959(94%)

문택근 437(45.6%)

엄경식* 506(52.8%)

중부발전본부

1,307명

1,263(96.6%)

서성석 877(69.4%)

박왕수 363(28.7%)

남동발전본부

1,029명

1,016(98.7%)

김종남

노변학

남부발전본부

1,125명

1,085(96.4%)

양재부 436(40.2%)

박노균* 637(58.7%)

* 민주후보선대본 소속


둘째, 지부에서는 여전히 인적관계에 의한 선거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인적관계가 변수로 작용하게 된 이유는 무수히 많겠지만 그 중에서 대략 세 가지 정도를 주요한 원인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우선, 비록 전민투련 회원이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활동력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자주 접했던 사람을 중심으로 투표하게 되는 일반적인 상황이 반영되었을 경우이다. 민주후보 이호동 선거운동본부와 함께 했던 9개의 지부 중에 6개의 지부는 당선되었고, 3개 지부는 낙선되었다. 보다 구체적인 분석이 되어야겠지만, 낙선된 3개의 지부 중에 2개의 지부는 01년 초반기에 전출된 후보들이었으므로 지부 내에서의 활동력이 확인되지 못했을 것이고, 그동안 투쟁해온 사람이었다고 하나 지부 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력노조 시절 부당전출이나 해고를 당한 사람들은 전민투련 회원들뿐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3개 지부의 낙선은 전민투련에 대한 조합원의 판단이 매우 현실적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다음으로, 지부는 관리자와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공간이라는 점이 소신 투표를 방해했을 가능성이다. 민주선본 홈페이지에 조합원들이 올린 글들을 보면 일상적으로 관리자의 현장통제가 얼마나 숨통을 조여오는 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선거운동 초기에는 사업장내에서의 선전활동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러나 굳이 이러한 사실을 적시하지 않더라도 지부는 조합원 개인이 관리자와 1:1로 대면하는 장소이다. 일거수일투족이 인사고과의 대상이 되고, 투표함을 집결해서 개표하는 제도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소규모 지부의 경우 누가 누구를 찍었는지도 알 수 있는 곳이다. 과거 철도노조가 오랫동안 사용했던 부정투표 방법 중의 하나도 이것 아니던가. 관리자의 감시와 눈총은 항상 있지만 거꾸로 그 억압을 맞받아 칠 수 있는 힘은 조직보다는 개인에게 일임되어 있는 경우가 더욱 많은 것이 전국 규모 거대노조의 현실이다. 특히, 전국적 규모의 노조일 경우, 모이면 그 힘은 크지만 충분한 전임자와 활동가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상적인 현장활동이나 조직관리는 만만치 않다.

마지막으로, 산별위원장 자리보다 지부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인지상정 투표를 했을 경우이다. 산별노조의 경우 지부장의 권한은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과거처럼 3중간선제라면 지부장의 권한이 꽤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없어진 상태에서는 일자리까지 위협받으면서 투쟁해온 동료를 찍기보다 적당히 바른말하고, 적당히 경력도 있는 사람이 직장생활을 편하게 하는데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표 5> 지부 선거결과

소속본부

지부명

당선자

비고

남동발전본부

남동발전본사지부

오기근

 

삼천포화력

서대로

 

여수화력

이희구

 

영동화력

윤종원

 

분당복합화력

안재준

 

무주양수

손길엽

 

영흥건설

박병철

 

중부발전본부

중부발전본사지부

윤재윤

 

보령화력

신남균

 

서천화력

이복하

 

서울화력

민삼식

 

인천화력

서강용

민주후보선본

제주화력

부관우

 

양양양수

정현수

민주후보선본

서부발전본부

서부발전본사지부

백웅기

 

태안화력

한남복

민주후보선본

평택화력

이주웅

 

군산화력

신동호

 

서인천복합화력

임승주

민주후보선본

삼랑진양수

이건희

 

청송양수

박재복

 

남부발전본부

남부발전본사지부

 

 

하동화력

최성기

 

부산화력

정정고

 

영남화력

공정배

 

영월화력

신세윤

 

신인천복합화력

오승수

민주후보선본

남제주화력

김상섭

 

한림복합화력

박영국

 

청평양수

유영상

 

동서발전본부

동서발전본사지부

박승도

 

당진화력

김주헌

 

울산화력

이영우

민주후보선본

호남화력

서호석

 

일산복합화력

서차교

 

동해화력

윤명남

 

산청양수

김명수

 


그러나 지부 선거에 대한 평가는 매우 한정되어서 내려져야 한다. 다른 후보의 경우, 본부후보나 지부후보가 함께 선대본을 구성하지도 않았고, 전민투련 역시 소속 노동자가 소수였기 때문에 민주선본 후보가 1/3도 나가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민주선본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들에 대해서는 소속도 없이 개인이 출마한 것이어서 누구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사람이 더 많았다. 그만큼 지부의 현실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적은 역량으로 대규모 조직선거에 대응하기 위해 민주선본이 선택한 전술은 위에서부터 채우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별위원장, 본부장, 지부장 순서로 역량이 배치된 결과 지부는 소수의 후보자만 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장의 일상활동은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지부선거에 대한 평가는 좀더 세밀히 되어야 한다. 민주선본의 후보가 나온 곳이 적어서 오히려 민주, 어용의 대립구도를 넘어 조합원들의 일반적인 성향과 요구를 확인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분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부선거 평가는 곧 지부에서의 활동방식을 결정하는 가늠자가 될 수도 있다.


(3) 선거운동 전반에 대한 평가

첫째, 실질적으로 직선제다운 선거운동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전력노조는 3중 간선제에 의한 선거방식을 극복하면서 직선제를 쟁취했다. 2000년 직선제로 최초의 선거를 진행하였고, 당시 단독으로 입후보한 오경호 집행부가 당선이 되었었다. 단독으로 입후보한 오경호 집행부의 선거운동시기와 이번 발전노조 선거운동은 매우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앞서 지적한 대로 2000년에는 선거운동을 전혀 진행하지 않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각 후보마다 출사표만이 아닌 정책과 공약,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선전물이 제출되었다.

특히 이호동 선본의 경우는 선전물과 자료집을 배포하면서, 핵심적인 정책과 공약 그리고 노조운동에 대한 자기 대안을 명확히 주장하였다. 게다가 하나의 선전물로 그치기보다는 조합원 대중에게 일일이 배포될 수 있는 체계와 작동방식을 갖고자 노력하였으며, 조합원이 소외되는 선거를 진행하지 않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후보의 유세일정에 맞추어 근처 지부 운동원들은 휴가를 내고 유세일정을 사수하는 등 매우 짜임새 있고, 조직적인 선거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긍정적인 의의에도 불구하고 공동유세나 정책토론회 등이 배치되지 못하고, 현장에서의 정치토론이 활발히 진행되지 못한 것은 한계로 남는다. 각 선본의 정책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이 진행되고 조합원들과의 토론과 논쟁, 그리고 이를 통한 조합원들의 의견 수렴 등은 향후 발전노조에서 만들어내야 할 과제로 넘겨졌다.


둘째, 사측과 투쟁하면서 전개한 선거운동이었다.

사측은 선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선거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갖은 탄압을 자행하였다. 7월 4,5,7,11일에 걸쳐 회사의 지침을 각 지부로 하달했으며, 이를 통해 정당한 노조활동에 개입하고자 하였다. 특히, 11일 지침에서는 ‘노사협력위원회’라는 불법기구를 구성하여 노조지부의 동향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각종 대책을 수립하도록 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지침은, 선거운동을 하기 전에 해당 사업소장의 승인을 받을 것, 회사와 상대후보를 비방할 경우 선거활동 중단, CUG폐쇄, 머리띠․어깨띠․조끼 착용 금지, 치밀한 근태관리, 상급단체 선택에 대한 개입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실제 선거운동 과정에서 후보팀이 유세를 하기 위해 사업소에 들어가려는 것을 저지하여 몸싸움이 벌어지기 일쑤였고, 조합원들의 홍보활동을 불허하고 간담회를 금지시키는 등 합법적인 선거운동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였다.

이러한 사측의 탄압에 맞서 이호동 선본은 성명서를 내고, 현장에서 몸싸움 등 진입투쟁을 전개하면서 선거운동을 진행하였다. 이들이 사측과의 투쟁을 통해 선거운동을 사수하고, 조합원들을 만나려고 했던 것은 이후 투쟁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사측과 마찰이 있을 때, 어떤 태도를 보여 주었는가는 그 자체가 가장 확실한 선거운동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노동조합 선거라는 정당하고도 합법적인 활동에 대해서조차 노골적인 탄압을 자행할 수 있을 정도로 현장에서의 힘관계가 노동자에게 불리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현장에서의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일상투쟁과 조직운영, 조직방식 등이 과제로 남겨졌다.


셋째, 실리주의 노동조합 노선과의 전선을 분명히 설치했다.

발전선거는 전력노조에서 분할되었기에 전력노조 시절 어용세력과 민주세력의 대결이 불가피하였다. 과거 전력노조에서 조합원을 기만하고 직권조인을 했던 자들이 다시 출마를 하였고, 민영화 등 현안에 대해서도 선본의 정책을 통해 각자의 노선과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발전선거는 ‘민주 대 어용’이라는 전선에 ‘실리주의적 조합주의와 계급적․전투적 조합운동의 노선대립’이 겹쳐서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단적인 예로, 실리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들의 주장에 “내가 곧 짤릴 판에 생존권 사수투쟁이 아닌 복지 혜택이 무슨 소용이냐”는 조합원들의 일갈이 있을 정도였다.



3. 발전노조 선거의 의의와 향후과제

50년이 넘게 어용의 굴레에서 속박당했던 발전노조 노동자들은 이제 당당하게 민주노조의 주체로서 다시 서기 시작하였다. 이번 발전노조의 선거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이번 선거는 민영화 저지, 구조조정 분쇄 투쟁의 시작이다.

발전 노동자들은 생존권과 고용에 대한 불안이 매우 크다. 특히 전력산업에서 발전부분이 먼저 민영화된다는 정부의 발표로 인해 발전부분 노동자들의 분노와 위기의식이 훨씬 더 강하다. 이에 대해 선거시기 이전부터 민영화 저지 투쟁의 입장과 방향이 논의되었으며, 그러한 시발점으로 선거투쟁이 놓여있었다. 정권의 구조조정이 현재처럼 가시화되지 않았다면 이토록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이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정권의 구조조정이 노동자의 생존권을 압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고, 노동자를 배신하는 노조 집행부에 대해서도 신물날 정도로 경험한 바이다.

그러나 구조조정 분쇄․민영화 저지 투쟁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현장투쟁을 복원하고 현장권력을 쟁취해야 한다는 과제가 확인되었다. 선거시기 각 지부, 본부 별 체계를 가동해서 조합원에게 선거운동을 했던 경험은 건설된 민주노조의 민영화 저지투쟁의 과정에서도 충분히 발휘되어 투쟁을 담당하는 체계로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어용의 역사를 청산하고 민주노조를 쟁취했다.

그러나 어용의 역사를 청산한 것과 노조의 자주성, 민주성, 연대성, 계급성을 확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민주노조 1기에 놓여져 있는 발전노조는 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과거 어용노조의 특징은 투쟁계획을 제출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계획은 그럴듯하게 제출해 놓고 스스로 어기고, 철회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민주노조는 약속한 바에 대해 철저하게 집행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약으로 제출했던 민주노총 가입을 추진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다.7) 민주노총 가입에 대한 사측의 탄압으로 노조 사무실도 주지 않고, 근무 협조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상급단체 선택투표를 조직했던 것은 민주노조 진영에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셋째, 공공부문노조의 민주화와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에 기여했다.

01년 5월 철도노조의 민주화에 이어 수․원자력 노조, 그리고 발전노조로 이어지는 선거의 흐름은 공공부문에서 서서히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87년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깃발 아래 활동했던 노조가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있을 때, 공공부문에서의 노조민주화는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선거과정에서의 연대가 이후 안정적 조직 관계에서도 지속될 수 있다면 상층 중심의 연대가 만들어온 거품을 제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 공공연맹의 가입이 곧 발전노조의 민주성을 상징하고 있다면, 발전노조의 가입은 민주노총, 공공연맹의 혁신을 실질화시키는 계기여야 한다. 

한/노/정/연


1) 1999년 11월 22일 정부는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에관한법률안」, 「전기사업법개정법률안」 및 「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관한법률중개정법률안」 등 3개 제․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 법률안은 2000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고 12월 23일자로 공포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우선 단기적 방안으로, 한국전력공사의 발전부문을 수 개의 발전회사로 분할하여 내부 경쟁체계를 구축하고 대폭적인 인원감축과 노동강도 강화를 통해 발전원가를 절감한 뒤, 각각의 발전자회사는 단계적으로 국내외 독점 자본에게 사유화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 원자력 발전과 송전, 배전부문은 국가 소유 하에서 한국전력공사로 유지한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전력산업의 장기적 방안으로 배전부문도 수 개의 배전회사로 나누어 전력 도․소매 부문에까지 본격적인 경쟁을 도입하고 송전망을 개방하여 국내의 발전산업의 독점업체도 전국적인 송전망을 자유로이 이용하는, 이른바 ‘전력산업의 전면적인 민영화와 경쟁체계’를 의도하고 있다.


2) 전력노조민주화투쟁연대(전민투련)는 2001년 1월 13일 김동성을 대표로 결성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이호동 민주선본의 후보 대부분이 전민투련 소속이며, 그동안 직선제 쟁취를 위한 서명운동, 오경호 불신임 서명운동 등을 주도하면서 노조 민주화 투쟁을 전개해 왔다.


3) 단체교섭협정서는 3월 21일 체결되었다. 분사 이후 전적에 대한 동의를 중심으로 단체교섭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오경호 집행부는 총파업 철회에 대한 부담감으로 발전지부 연대회의에 교섭권을 위임했으며, 조광제, 이준상 등 6명이 교섭위원으로 교섭에 참가하였다. 이 단체교섭협정서는 정리해고를 인정하는 것과 사측이 개인에게 전적동의서를 받는 것을 확정한 것을 핵심내용으로 한다.  


4) 발전지부연대회의는 전력노조 내에 화력, 원자력 등 26개 지부로 구성된 연대체이다. 정례적인 회의를 전개하지는 않았고, 사업별 연대의 필요성에 따라 개최되었다. 12․3 총파업 철회 직후 ‘오경호 불신임을 위한 임시 총회소집 요구 및 합의안 찬반투표 실시안’이 논의안건으로 상정되었으나 6명의 찬성을 얻는데 그쳤고, ‘합의안 찬반투표 요구를 무기한 단식농성으로 압박’하자는 안은 1명의 찬성을 얻는데 그쳤다. 결국 1월 5일 ‘교섭권을 확보해 분할 민영화에 대비한다’는 안에 24명중 14명이 찬성함으로 교섭권을 위임받게 된다. 투표과정에 결과에 무조건 따른다는 전제에 반발해, 김동성 태안지부장 등 3명의 지부장은 기권을 하였으며, 김순섭(현 산별노조 사무처장 당선자) 인천 화력지부장 등 8명의 지부장은 회의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신임 서명운동을 계속 전개하겠다고 밝혔었다.


5) 최경희, 「민주노조 선거분석: 정치적, 정책적 전망의 격전장, 그 정치적 함의」,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2001년 1월호 참조.


6) 90년 4월부터 96년 3월까지의 집행부이다. 이 집행부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94년에 있었다. 1994년 1월 14일 전국에서 최초로 임금 억제선인 3%에 임금인상을 합의하고, 당일 오후에는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최태일을 비롯한 특정인 13인에 대한 정년 연장이 조건부(단 1회에 한해서)로 합의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조합원들이 ‘특정인 정년연장 무효화 투쟁위원회’를 구성하자 위기를 느낀 집행부가 돌연, 퇴직금누진제 환원투쟁을 들고 나오자 조합원들은 총투표를 통해 98%의 찬성으로 투쟁을 결의했으나 결국 최태일 집행부는 투쟁을 철회하였다.


7) 8월 9~10일 양일간 진행된 상급단체 선택 투표는 조합원수 5,645명 중 4,593명(81.4%)이 투표, 기권 1,052명(18.6%)로 민주노총 3,494표(76.1%), 한국노총 893표(19.4%), 무효 206표(4.5%)로 민주노총 가입이 결정되었다.


2001-10-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1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