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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철도 6대 선거투쟁 평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71호
선지현

끝나지 않은 민주노조 건설투쟁,

이제 본격적으로 닻을 올려야 할 때!

도시철도 6대 선거투쟁 평가



선 지 현/교육기획실, 공공부문노동운동연구팀





1. 들어가며

2001년 공공부문 노동자투쟁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바로 발전, 철도, 도시철도로 이어지는 민주노조 건설투쟁이었다. 특히, 민영화와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민주노조 건설투쟁은 구조조정 저지투쟁과 결합되었고 해당 민주세력에게 ‘민주노조 건설’과 ‘구조조정(민영화) 저지’는 선후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가 하나의 투쟁이었다.

한편, 이러한 흐름 속에서 노동운동 내부에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수용하는 흐름이 이론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주체의 등장과 조직화가 시도되고 있고, 나아가 전체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지각변동까지도 예고하고 있다. ‘합리적 민영화론’, ‘구조조정 불가피론’, ‘노사정위 복귀’ 등을 주장하면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넘나드는 연대모색은 투쟁의 국면에서뿐만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전망문제에서도 제기되고 있는데 단위노동조합에까지 일정부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7~9월 진행된 공공부문 단위사업장 선거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공공부문 연대 확장’1)으로 표현되기도 했는데 이후 논의는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부문 주요 대공장의 민주노조 건설투쟁과 더불어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둘러싼 이론적 ‘쟁점’들과 노동운동 대응방안의 ‘차이’ 등은 분명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발전을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특히 주요 대공장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용’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민주노조 건설과 동시에 ‘공무원’ 내지는 ‘준공무원’적 규정(?)에서 노동자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더 나아가 구조조정을 둘러싼 이론적, 실천적 쟁점들은 전체민주노조운동 발전전망에 대한 노선적 정립과 민주적․계급적 주체형성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도시철도 선거 역시 바로 이러한 현실지형을 반영하는 것이며 따라서 도시철도민주세력은 ‘민주노조 건설’투쟁을 통해 구조조정의 실리주의적․노사협조적 태도를 보여 온 어용세력들과의 전면전, 동시에 구조조정 저지투쟁의 실천동력을 확보하는 것으로써 선거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앞서 제기한 ‘민주노조 건설투쟁’의 의미 속에서 지난 9월 치뤄졌던 도시철도 선거를 조심스럽게 평가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평가는 도시철도 노동자들의 투쟁을 전체 민주노조운동진영과 함께 공유하고 노조민주화 투쟁, 구조조정 저지투쟁을 힘있게 전개하기 위한 실천적 과제를 함께 모색해보고자 함이다.



2. 투쟁 개괄

6대 총선거가 실시되기 전, 도시철도공사는 선거를 앞두고 인사권의 악용, 부당인사가 자행되면서 도시철도 민주활동가들은 투쟁에 돌입했다. 3개월 간 진행된 이 투쟁은 선거와 결합되면서 선거준비, 진행, 결과 등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내용이기에 개괄 정리해 본다.


1) 공사 출범과 시작된 공사의 현장통제, 그리고 민주세력의 등장

94년에 건설된 도시철도공사는 이미 총자본의 신경영전략이 구체적으로 현장에 관철되고 있는 시기에, 동종업종인 서울지하철공사와의 비교검토 속에서 출범했다. 그 결과 도시철도 노동자들은 서울지하철과의 비교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대신 정원산정에 있어서 일방적인 정원축소, 이로 인한 절대적 인원부족 그리고 휴무축소, 변형근로제 도입을 통한 실질노동시간 증가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이게 된다. 또한, 공사출범과 동시에 지금까지 현장 주도력을 공사 경영진과 중간관리자들이 쥐면서 강도 높은 현장통제가 지속적으로 추진2)되었고, 노동조합은 중간관리자들을 중심으로 채워지면서 노동조합집행부는 현장통제로 인한 조합원들의 불만을 희석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은 조합원들로 하여금 노동조합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되며 이 속에서 99년 도시철도 선거를 계기로 ‘민주노조 건설’은 구조조정 저지 요구와 함께 대중의 요구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것은 선거시기 민주세력의 등장으로 구체화되었다.


2) 민투위에 대한 탄압으로 민주노조 건설을 막으려는 공사와 어용집행부

2001년 행자부 지침을 핵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관철되면서 민주세력의 대응은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이것은 직권조인으로 구조조정을 관철한 현 집행부 불신임 투쟁에서 과반수를 넘는 것으로 대중의 불만과 분노는 표면화되었다. 이러한 대중의 변화는 한편에서 차기 집행부 재집권을 노리는 기존노조집행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마음이 떠났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경영진의 공세를 더욱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민주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나타났는데 지난 5월 ‘도시철도 생존권사수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투쟁위원회(이하 민투위)’소속인 김남식 동지에 대한 부당인사가 바로 신호탄이었다.

공사는 인사권을 악용해 현장에 있던 김남식 동지를 조합원 자격이 박탈되는 종합사령실로 발령을 내면서 선거를 앞두고 본질을 드러냈다. 이후 공사의 계획 속에는 이미 김남식 동지 외에 다른 민투위 회원들까지 부당인사(주로 조합원 자격이 박탈되는 본사업무)가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는 등 공사는 선거를 앞두고 민주세력의 탄압을 통해 민주노조 건설의 흐름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3) 3달 간 계속된 민투위의 ‘노조활동탄압, 부당인사 철회’투쟁

천막농성을 거점으로 3달 여간 계속된 민투위의 부당인사 철회투쟁은 어용노조의 관행 유지를 통해 구조조정을 원활히 관철하려는 공사의 의도를 폭로해내는 과정이었으며, 동시에 광범위하게 진행된 현장통제에 맞서 현장투쟁을 벌여내면서 ‘민주노조 건설’로 투쟁을 모아내는 중요한 계기였다.

하기에 민투위는 투쟁과제와 목표를 부당인사철회, 구조조정 저지, 현장통제 분쇄로 잡고 부당인사투쟁을 알려내는 것과 동시에 진행된 ‘용역안’으로 표현되는 인력산정 및 조직개편에 대한 문제, 6시그마운동 등 도시철도 공사의 구조조정 계획과 본질을 폭로해 들어갔다. 또한 휴무확보, 노동시간단축 등 현안에 걸린 사안에 대한 민투위 입장을 제출하고 선전함으로써 천막농성투쟁을 부당인사철회의 요구만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전체 구조조정과 연계하면서 투쟁을 협소화시키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8월, 선거가 시작되면서 천막농성투쟁은 선거투쟁으로 전환되게 된다.



3. 6대 총선의 의미

1) 통제에 짓눌린 현장을 민주노조 건설로 되찾기

민투위의 천막농성투쟁이 전개되면서 공사의 현장통제는 극에 달하게 되는데 집회에 참여하거나 지지방문을 오는 조합원들을 CCTV로 촬영하여 사업소에 전달, 개별면담을 통해 집회 참여와 지지방문을 막고 심지어 사업소장들이 직접 찾아와 조합원들을 데려가기도 했다.

또한,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해 신청만 하면 되는 월차사용을 금지하면서 무결처리를 하고 한 번이라도 집회에 참여하면 감사실에서 출두 요구를 하는 등 조합원들과 천막농성투쟁이 결합되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시켰다.

현장에서는 사업소장의 조합원 개별면담이 진행되면서 조합원들은 위축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현장분위기를 민투위 활동가들이 바꾸어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것은 도시철도 현장통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도시철도노동자들에게 노조 민주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6대 선거는 바로 현장통제의 고리를 끊어내고 노조와 현장을 함께 민주화시켜내는 중요한 계기였던 것이다.

2) 구조조정 저지와 생존권 사수를 위한 노사협조주의 세력과의 대격돌

99년 2월 4대 집행부의 일방적인 정원감축 도입 및 변형근로제 도입 합의를 시작으로 계속되는 노조집행부의 구조조정 수용은 이른바 ‘구조조정 불가피론’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졌다. 이어 계속되는 행자부 지침에 대한 김만화 집행부의 입장은 언제나 ‘최선이 아니 차선’, ‘명분보다는 조합원의 실리’를 앞세우며 직권조인을 합리화하면서 노조 관료화를 심화시켰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행보를 거듭했다.

노조집행부의 이러한 행보는 구조조정 수용을 둘러싼 조합원들의 반발을 ‘명분 對 실리’로 왜곡시키고 민주세력을 ‘노동조합을 혁명기지로 만들려는 소수 극단세력’으로 몰아붙이면서 조합 내 최소한의 민주주의조차도 확보되지 않는 노동조합 활동으로 일관했다. 이것은 노조집행부가 조합원들을 억압․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또한 노동조합 활동을 ‘노사협조에 기반한 실리주의’로 가두어 버렸다.

이 속에서 현 노조집행부에 계속되는 노조장악은 사실상 구조조정으로 관철로 인한 노동조건의 개악, 현장통제의 강화, 고용불안정 확대 등, 신자유주의 첨병으로써 노조가 기능할 것이 자명하다는 인식의 공유는 활동가들을 결집하게 했으며 6대 선거에서 민주對어용(노사협조주의)의 구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4. 대중의 상태

1) 노동조건 개선에 대한 분명한 요구

완전개통으로 인한 절대적 인원부족을 감내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가장 큰 요구는 인원과 휴무확보의 문제였다. 또한 동종업종과의 비교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높았고 이로 인한 노동조건 개선의 요구는 추상적 수준에서 주장되는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방식으로 인력충원(각 본부별로는 필요한 인원까지 이미 제출된 상태)과 휴무확보(1일․노동시간단축시 2~3일), 근무형태 개선(역무의 경우 21일주기로 근무형태 개선 등) 등의 요구가 핵심적으로 제기되고 있었다.


2) 노동조합활동의 변화에 대한 갈망

95년 노동조합 출범이후 지금까지 노동조합집행부는 주로 현장의 중간관리자들에 의해 운영되어왔기 때문에 현장에서 노동조합간부는 직장의 선배이자, 노조간부이자, 관리자의 모습으로 중첩되면서 공사는 현장의 주도력을 보다 용이하게 유지․강화시켜낼 수 있었고 다수의 노조간부들은 공사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관료화의 길을 걷고 있었다.

노조집행부≒중간관리자들의 횡포(?)는 조합원들에게 변화의 요구를 갖게 했지만 동시에 대중의 힘을 무력화시켜내는 것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민주연합선본에서 제기한 ‘승진에 있어서 조합간부의 특혜 거부’, ‘인사 및 승진에 대한 노동조합의 개입을 통해 공개성, 투명성, 공정성 확보’등의 공약이 조합원들에게 호응을 받았는데 이것은 바로 조합원의 상태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3) 구조조정 저지투쟁의 상과 요구의 미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철도공사가 출범이후 호선을 계속 확장하면서 인원충원이 이루어지고 완전개통이 얼마되지 않은 시점으로 당장의 고용위협(정리해고)은 크지 않았는데 이러한 상대적 안정감은 조합원들에게 직접적인 고용불안으로 인한 위기의식보다는 현재의 노동조건의 열악함이 훨씬 큰 사안으로 다가왔으며, 조합원들에게 용역도입확대, 민간위탁, 1․2기 통합에 따른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고용조정의 문제는 구체적인 투쟁요구로 다가가지 못했다.

이것은 조합원들이 ‘구조조정 저지투쟁’을 동의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실리주의’에 눈을 돌리는 양면성을 갖는 조건을 형성하기도 한다.



5. 과정

1) 공사의 징계(해고)를 앞둔 시점에서 민투위의 후보 논의

민투위는 천막농성투쟁을 대중적으로 평가하고, 조합원들의 ‘구조조정 저지,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민주노조를 건설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선거참여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징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징계자를 후보로 내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는 ‘민투위가 천막농성투쟁을 굳건히 지켜냈던 김남식 동지를 후보로 냄으로써 투쟁에 대한 대중적 평가를 받고, 천막농성투쟁에서 목표로 제출했던 부당인사 철회, 구조조정 저지, 현장통제 분쇄, 노조 민주화에 대한 대중투쟁 계기로써 선거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해고자 신분’에 대한 어려움을 간과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상충되면서 민투위는 여러 번에 걸친 논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내부 경선을 통해 김남식 동지를 민투위 후보로 결정했다.


2) 공대위 구성과 민주연합 선본 출범

민투위는 각 직능별로 활동하고 있는 민주기관사 모임, 열린기술위원회 등에 ‘민주활동가대회’를 제안하고 8월 10일 활동가 대회를 개최, 위원장 후보논의를 비롯한 선거운동본부 구성 등의 논의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도 역시 예상되는 해고자 신분이라는 점이 후보추대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천막농성투쟁의 의의를 공유하면서 이를 선거투쟁으로 발전시켜내는 것에 동의하고 김남식 동지를 후보로 최종 결의하였다. 또한 각 직능별 본부장후보, 지부장 후보를 포함하는 민주연합선거운동본부를 구성키로 합의하고 6대 핵심공약3)을 통과시켰다.

선거공고를 일주일 앞두고 예상대로 공사는 김남식 동지에게 파면을 통보했다. 민투위를 비롯한 민주세력은 ‘부당노동행위 분쇄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공동대책위’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선거투쟁에 돌입했으며 김남식 동지는 단식농성에 들어가게 되었다.

8월 27일, ‘이제는 바꾸자’를 슬로건으로 민주연합선거운동본부가 출범하고 김남식 위원장후보를 비롯한 4개 직능본부 후보, 21개 지부장후보를 추대하면서 6대 총선거 승리를 다짐하게 된다.


3) 1차 투표까지

3명의 위원장 후보가 나왔지만 구도는 민주 對 어용(노사협조주의)이었다. 공사와 상대후보들은 민주연합후보의 (당선될 경우)대표성 시비를 제기하면서 능력과 경험을 강조했고 선거구도를 민주對어용이 아닌 민투위 對 반민투위 구도로 몰아갔다. 반민투위를 주장하는 것은 천막농성기간 동안 공사와 김만화 집행부는 민투위를 ‘외부세력에 사주를 받은 과격집단’으로 몰면서 이데올로기 공세를 취해왔기 때문에 경력자들을 중심으로 반민투위 정서를 확산시켜내고자 하는 의도였다.

이에 민주연합은 ‘민주노조 건설’과 ‘구조조정 분쇄’를 위한 ‘범민주세력의 결집체로써 민주연합’을 강조하면서, 상대후보가 제기하는 대표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대표성은 공사가 규정하는 것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민주성과 자주성의 문제로 법적으로도 전혀 하자가 없음을, 또한 6대 총선거는 본격화 될 구조조정에 맞서 힘있게 투쟁할 민주노조를 세워내는 것”으로 ‘투쟁할 수 있는 민주집행부 구성’과 ‘어용세력의 심판’을 주장했다.

1차 투표결과, 김남식후보는 42.30%로 1위, 역무를 제외한 전직능에서 고른 득표율을 보였다.


 

김남일

김남식

나영섭

득표율

차량

     194

     442

     213

52.06%

승무

     220

     471

     257

49.68%

역무

      66

     496

     926

33.33%

기술

     919

     802

     129

43.35%

본사

      50

      49

      37

36.03%

총계

    1,449

   2,261

    1,562

42.30%


역무에서 예상보다 부진한 득표율을 보인 것은 역무출신의 나영섭후보가 ‘역무위원장’을 제기하면서 “역무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무출신 위원장이 당선되어야 한다“는 폈고, 그것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불만이 누적되어 있는 역무조합원들의 정서를 파고들었다. 이것은 기술본부장 출신의 김남일후보가 기술직능에서 919표를 득표한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였다. 그 결과, 나영섭후보는 역무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하면서 3개 직능의 열세를 만회하고 결선에 오르게 되었다.

4개 직능본부 및 지부장 선거에 있어서는 ‘4개 본부 민주연합 당선’이라는 성과를 쟁취했지만 21개 지부선거는 9개 지부 당선과 3개 지부 결선이라는 예상 밖의 부진한 결과가 나왔다.


4) 결선투표

결선에 오르자 공사는 대대적인 선거개입을 시작했다. 단위노조 사업장에서조차 지역주의가 일어나고 직능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났다. 여기에 상대후보진영은 각 역사 및 현업사무소 팩스를 이용, 불법 선전물을 뿌렸고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현장에는 출처불명의 괴유인물이 나돌고, 나영섭후보측은 허가받지 않은 선전물을 제작해 민주연합선본 내부를 분열시키는 허위주장을 하기도 했다. 민주연합선본이 이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제기했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고 어떤 제재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선거는 혼탁해지기 시작했고 민주연합은 전면적 대응이 어려운 조건에서 불법투표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과 상대후보가 벌이고 있는 불법적 선거운동에 대해 조합원들의 ‘투표로 심판해 줄 것’을 호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2차 투표 결과, 민주연합 김남식후보는 46.55%에 그쳐 결국 당선에 실패했다. 득표율로 보면 민주연합은 기술직능에서 큰 표차이를 내었지만 1차에서 드러났던 역무 열세를 2차까지 극복하지 못했고, 어용(노사협조주의)세력은 현 기득권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김남식

나영섭

득표률

차량

474

369

55.69%

승무

420

538

43.52%

역무

461

1,015

30.85%

기술

1,080

704

57.93%

총계(본사포함)

2,473

2,721

46.55%

6.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몇 가지 쟁점

1) 대표성 시비

선거기간 내내 민주연합선본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는 당선이후 대표성의 문제였다. 어용세력은 “당선되도 공사가 교섭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전해댔고 조합원들은 위원장후보와 선거운동원들에게 “당선되면 문제없는가”를 끊임없이 확인했다.

민주연합선본은 이미 후보등록과정에서부터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정면돌파’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공사가 교섭대표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로 노동조합 선거가 역규정당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노동조합의 자주성, 민주성을 강조했고, 타사업장의 사례를 모아 조합원들에게 알려내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연합선본 모든 운동원들이 이에 대한 공유가 확고한 것은 아니었다. 더 나아가 수세적 대응, 예를 들어 ‘1차에서는 지부와 본부에 집중하고 위원장은 2차에서 집중하자’는 것으로 이 쟁점을 피해가려 하는 것도 없지 않았다. 그만큼 민주연합의 내부통합력이 강고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투표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는데 바로 역무직능의 부진한 득표율이었다. 실제 선거 결과(표 참조)에서 위원장후보는 역무를 제외하고 고른 득표율을 보였으며, 승무와 차량에서는 50%를 상회하는 득표율을 보였다. 어용세력의 장악력이 높다는 기술직능에서는 2차에서 60%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오히려 저조한 득표가 된 역무직능의 경우, 대표성 시비보다 더 큰 쟁점은 바로 ‘역무 출신 위원장이 열악한 역무조합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해 줄 것’이라는 점으로 이에 대해 민주연합선본에서는 이를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에 반해 당선된 4개 본부는 50%를 조금 넘는 득표율을 보였고 지부는 21개 중 9개 당선에 그쳤다. 특히, 자격시비에 휘말렸던 위원장후보보다도 저조한 득표율을 낸 지부들이 차량과 승무를 중심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실제 위원장 후보 수준에서는 민주 對 어용(노사협조주의)의 구도가 그대로 전선을 유지하면서 조합원들의 선택이 이루어졌다면 지부차원의 기초 현장은 이러한 구도가 바로 조합원의 선택으로 현실화되지 못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은 도시철도민주활동가들의 현장조직력에 대한 취약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향후 중요한 실천적 과제가 될 것이다.


2) 민주對어용이냐 민투위對반민투위냐

상대후보들은 민주연합선본에 대해 천막농성투쟁을 비판하면서 ‘민투위는 투쟁위주의 급진세력으로 조합원의 실리보다는 명분이 우선시 하는 집단’이라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폈다. 그리고 경력직을 중심으로 반민투위 정서를 확산시켜내고자 했다. 이에 반해 민주연합은 김만화집행부의 직권조인과 숨막히는 현장통제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민주노조 건설’로 모아내고 민주활동가들의 결집으로 ‘민주 대 어용의 구도를 형성시켰고 이것이 ’이제는 바꾸자‘는 슬로건으로 표현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선거는 민주냐 어용(노사협조주의)이냐의 선택이었다. 이는 투표결과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4개 직능본부장후보 모두가 민투위 성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당선되었으며 실제 선거과정에서도 민투위냐 아니냐가 큰 쟁점으로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7. 성과와 향후 과제

비록 지부, 본부, 본조 전체를 당선시키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민주연합은 6대 선거를 통해 조합원들에게 대안세력으로 인정되었고, 또한 민주세력의 제결집을 통한 조직적 대응이라는 소중한 성과를 쟁취하였다. 이것은 향후 도시철도 민주노조 건설과 구조조정 분쇄를 위한 폭발적인 대중투쟁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또한, 어용세력의 노사협조주의 태도에 맞서 구조조정의 문제와 민주적 노동조합운영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도철연맹 탈퇴로 보여지는 것처럼 ‘단결과 연대’방안에 대한 공세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미약하나마 도시철도민주노조운동의 전망을 제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후 공공부문 내 존재하는 구조조정 불가피론, 합리적 민영화론 등 친자본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민주노조운동의 입장과 노선을 정립하고, 민주적․계급적 운동주체를 세워내는 기본토대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당인사 철회투쟁과 선거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도시철도 노동자들은 비록 공사와 어용세력을 압도하는 변화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역시 도시철도노동자들에게는 관념 속의 변화요구가 현실에서 구체화되었다는 점에서 도시철도 민주노조운동은 진일보한 것이다.


이제 도시철도민주노조운동은 부당인사철회투쟁과 선거를 통해 과제를 갖게 되었다.

첫째, 민주세력만의 실천활동을 넘어서는 대중투쟁을 조직화하기 위해서 취약한 현장조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가올 구조조정 저지투쟁과 더욱 노골화될 노사협조주의에 맞선 민주노조 건설투쟁은 강고한 현장조직력을 확보하면서 대중투쟁을 조직할 때 비로소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4개 본부를 중심으로 한 민주지부활동을 어떻게 함께 조직해낼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한편에서 지부와 본부에 중심을 두면서도 민주지부간의 내용적, 실천적 통합력을 확보하는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귀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셋째, 민주연합으로 모여진 활동가들이 향후 내용적․실천적 강화를 꾀하는 문제이다. 민주세력들의 조직적 결집을 이루어내는 문제이다. 이는 민주세력의 중심이었던 민투위가 실천적으로 강화되면서도 동시에 발전전망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2002년을 준비하는 것 속에서, 제직능민주모임들 역시 동일한 문제의식 하에 전망모색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를 두고 도시철도노동자들은 많은 아쉬움이 남을 수 있겠다. 하지만 변화의 요구는 현장에 생생히 살아있고 그 잠재력은 무궁하다. 이제야 말로 도시철도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건설과 구조조정 분쇄’, 이 미완의 투쟁은 이제 본격적인 닻을 올려야 할 때이다. 

한/노/정/연


1) 전력노조, 서울지하철노조, 도시철도노조, 정투노련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전국 공공부문노조 연대(준)은 공식적인 발족이전에도 공동활동을 전개해 왔는데, 특히 ‘공공부문 발전을 위한 공동토론회’ 개최하면서 연대모색을 본격화하였으며 지난 9월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선거에서는 배일도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2) 정부의 경영혁신 평가에서 도시철도는 초기 출범연도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가등급을 받아왔으며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3) 민주연합은 1.민주노조 건설, 직권조인 철폐 2.구조조정 분쇄, 평생직장 건설 3.노동강도 완화 위한 인원확보 4.임금체계, 근무형태 개혁 5.도철연맹 탈퇴, 조합원총투표로 상급단체 결정 6. 부당노동행위 근절, 현장민주화 쟁취를 6대 핵심공약을 결정하였다.


2001-11-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1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