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의 삶, 그 현재
배영희
노동의 불안정화와 민중복지 쟁취하기
윤애림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태와 요구
엄태근
장애인 노동자의 삶과 현실
전수경
산재노동자의 삶과 투쟁의 과제
유의선
대량실업, 잠복된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송수진
이주노동자의 상태와 투쟁과제
지난 10월 26~28일 3일간 “사각을 허물며: 너무 먼 복지,
이제는 우리 손으로”라는 구호 아래 “민중의 복지,
노동권․생활권 쟁취를 위한 연대한마당”이
진행되었습니다. 선언의 날, 연대의 날, 행동의 날 등을 통해
이제까지 소외된 공간에서 외롭게 투쟁하고 있던 장애노동자,
산재노동자,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노동자들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연대를 모색하는 자리였습니다. 지금
이들의 모습이 바로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몸을 살랐던 바로 그 모습의 현대판이 아닌가 합니다.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71호는 “연대한마당”의 첫날
진행되었던 “불안정 노동자의 권리선언: 노동유연화 반대,
노동권․생활권 쟁취” 공동토론회에서 발표되었던 글들의
축약본을 특집에 게재하여 서로 다른 공간에서 싸워왔던
동지들의 투쟁이 이후 보다 강고한 연대투쟁, 단결투쟁으로
나아가는 한 계기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민중복지 쟁취하기
배 영 희/민중복지연대 사무국장
특집: 전태일의 삶, 그 현재
노동의 불안정화와 민중복지 쟁취하기
1. 민중복지: 역사적, 계급적, 사회적 함의에 대하여
97년 경제위기 이후 김대중 정권의 등장은 5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의의(?)와 더불어 위기에 빠진 한국사회를
구원할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걸어 한국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조정’은 민영화, 자유화, 탈규제, 작은 정부라는
신자유주의적 전략과 프로그램의 궤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진행되었다. 김대중 정권의 등장이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발전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비춰졌듯이, 신자유주의적 전략과
프로그램은 한국사회의 전근대성과 불합리성을 치유하는
‘쓰지만 몸에 좋은 약’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리하여 김대중
정권이 등장하고 나서 노동자에게 제일 먼저 주어진 선물이
‘민주노총 합법화’와 더불어 ‘정리해고’ ‘변형근로’
‘파견근로’였듯이 이미 ‘불가피한 과정’으로서 이들 전략은
우리 사회에, 그리고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에게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과정에 저항하는 운동과 움직임은
‘불가피한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너무나 힘이 미약했으며,
그것의 첫 상징이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철폐투쟁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바이 코리아’의 신화로부터 시작하여,
노동하는 대중에게 삶의 질의 향상과 복지의 충족을 가져다주는
‘생산적 복지’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3년의 과정은 그것이
외쳤던 것처럼 경제 회복을 가져다 준 것도 아니요, 그리고 그
속에서 노동대중의 삶의 조건이 향상된 것도 아님을 보여주었다.
신자유주의는 그것을 받아먹는 나라들의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입에 쓰지만 몸에 좋은 약도 아니며, 더군다나 역사의
‘불가피한 과정이자 대세’도 아님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은 일부 특정 계급의 이해에 봉사하게 만들어진 한가지
프로젝트일 따름임을 한국사회 3년의 역사적 과정은 증명해
주었다.
그러나 ‘쓰지만 몸에 좋은 약’이라는 환상과 관념은 노동대중
뿐 아니라 운동진영 깊숙이 자리잡고 아직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정리해고’를 불가피하다고 여겨 일종의
양보를 강요했던 일련의 논리와 세력은 이제 와선, 그 뿌리를
근원에서 없애기보다는 단지 일하는데 있어 ‘동등한 조건
확보’만 이루어지면 된다고 강변하고 있다. 또한 복지제도의
‘형식적 완성’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으면서 김대중 정부시기
노동자․민중에게 향한 실질적 내용의 후퇴에 대해서는
단지 ‘시행과정상의 착오’이므로 이를 극복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고 하고 있다. 더군다나 ‘취지와 의도’의 훌륭함에
비추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세력의 결집’이 안 이루진 것이
그 동안의 과정이었으므로 이제 다시 한번 ‘세력의 결집’을
이루어 내는 정치적 과정이 필요하다는 ‘비판적 지지’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금융자본의 지배력은 더욱 커졌으며, 이에 대한 대내외 채무로
인해 금융 위기는 항상 잠복해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수없이 행해지는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생산력은 발전하기는커녕 지속 가능할지 조차 의문스럽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으로써 구조조정이 행해졌지만 그
구조조정의 결과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또한 생산에서
차지하는 노동의 비용을 낮추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해 노동은 강등․파편화되고 있으며
임시직․일용직․계약직․파견직 등의 확산으로
노동의 위상은 한없이 추락해 가고 있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사회정책의 구체화와 빈곤상황의 완화를 통하여 사회에
대한 빈곤층의 불만을 제거하고자 하는 등, 신자유주의 모델을
재구성하기 위한 정부의 수많은 노력도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파탄, 의약분업 사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파행 등이 그 예이다.
아울러 이러한 구조조정이 발생시킨 조건들은 부패와 실패라는
상황에 처해졌다. 이용호게이트, 정현준 사건 등이 그
예이다.
사회의 생산력을 증가시킬 능력은 소진되었으며, 경제적,
사회적 발전과정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조건도 창출이
불가능해져가고 있다. 즉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그 파괴력만큼이나 이제 더 이상 신자유주의는
대안이 아님을 알려주는 효과도 컸다. 스스로 천명한
자유화․세계화시대에 맞춰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라든지, 지구화된 세계시장에서 유일하게 현실적인
방안이라든지, 복지를 위한 민간의 ‘자기원조’ 활동을 위한
지역사업이 필요하다든지, 빈곤의 문제를 ‘노동의욕의
고취’라는 윤리적 차원 ‘도덕적 해이’라는 언명은 노동을
향한 자본의 공격의 무기가 된다.
에서 바라보려 하는 시도 등 모두가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으며,
그 실현효과도 거의 없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교육․고용․건강 등이 지역적 자선 프로그램으로는
해결될 수 없고, 그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며 국가의 개입과
세입․세출의 성격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이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빈곤과 고용의 불안정․실업의
문제는 장기적이고 대규모적이며, 광범위한 사회세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따라서 더 이상 그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임이 드러난 상황이다.
위와 같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총체적 실패는 그것의
실현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사회세력의 성장을
가져왔다. 이는 일반적으로 얘기되는 NGO운동-시민사회운동의
성장과는 맥락을 달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그 효과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다수 민중부문의 장기적이고 치열한 저항과
행동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객관적 투쟁의 존재에
근거한다. 이들 세력은 새로운 산업정책과 대안적 경제모델의
건설을 요구하기도 하고, 대우자동차 부도 및 그 이후 나타난
해외매각 관련 논쟁 및 투쟁의 과정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사례이다.
이를 정치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동원과 결집을 모색해 왔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의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운동체들은
연대를 형성해야 하며 진보세력간 광범위한 공동전선의 형성을
통해 제반 민중적 요구를 실현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물론
아직 이러한 연대의 요구는 실질적 유대로 진전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 투쟁에 있어 세력관계를 변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영역에서 진행된 끝도 없는 일련의
구조조정 정책은 매번 장밋빛 미래의 환상과 함께 실행되었으나
정책실현의 강도만큼이나 제반 중간계급까지도 그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그만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운동도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다종다양하고 상이한 신자유주의 반대운동과
민중들의 권리쟁취 투쟁을 대규모로 동원하고 그들의 행동을
조율하는 사회운동의 ‘저항적 동맹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민중적 요구―주거, 일자리, 건강, 교육, 문화,
정보, 민주주의 등―를 지속 가능한 사회적 대안으로 상승시켜
나가는 것이다. 위와 같은 두 가지 핵심지점을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기획으로 엮어내는 일은 문제자체가 정치적인 것처럼
‘정치적 운동’의 핵심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민중복지’는 신자유주의의 실패와 그것에 맞서는 운동의
맞닥뜨린 요구에 의해 규정받는 것이며 그것은 크게 세 가지
관점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역사적으로 민중운동이
걸어왔던 길 중 하나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는 불가피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또한 ‘쓰지만 몸에 좋은 약’이라는
관점이다. 이에 근거한 제반 운동전략이 결국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보족하거나,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렀다는 비판적
평가를 전제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맞선 민중의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운동으로 전화․성장시켜 나가야 함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론’에 기댄
운동전략과 요구는 이제 과감히 폐기처분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보다 광범위한 계급대중의 연대와 동맹의 실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중간계급까지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그 피해자와 저항하는 세력을
양산시켜 왔지만, 앞에서 지적했다시피 그러한 세력의 운동은
아직 충분히 유대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신자유주의 전략이 순차적, 계층적으로 차별성 있게 진행됨에
따라 고통받는 노동자를 포함한 민중의 저항도 개별적이고
분산적이며, 각 세력간의 연대를 가로막는 효과마저 낳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조건이 놓인 현실에 따라 분절화되고,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개별화되고 있다. 하지만 더욱 치열하고 장기성을
띠고 있는 기층운동 및 사회운동간의 실질적 연대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현실적 과제이다. 또한 이는 동요하고 점점
하향화되고 있는 중간계층까지 아우를 광범위한 공동전선의
구축까지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낳고 있는 문제가 광범위한
‘사회적’ 문제로 전화한 것처럼 우리의 운동도 충분히
‘사회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빈곤, 실업, 건강, 교육,
문화, 주거 등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 명백해졌고 그런 만큼 해결은 사회적이어야 하며, 민중의
공통된 요구로 자리잡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고용’의 문제는 중요하지만 그만큼 교육, 건강의
문제도 중요하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후인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민중의 공동의 ‘사회적 요구’로, 더 나아가
새로운 사회의 대안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을 전제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중복지’는 더 이상 국가로부터 주어지는
‘복지서비스’에 대한 요구와 권리 주장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전략에 맞선 민중운동의 역사적 과정에 대한
평가와 계급적 관점의 견지와 공동연대전선의 구축,
‘민중적․사회적 요구’의 정립과 이것을 경유하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우리 운동의
취해야 할 관점과 태도를 견지해야 함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2. 신자유주의와 김대중 정부의 복지
1) 생산적 복지
신자유주의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케인즈주의와 노사정합의주의에 기초한
복지국가․사회국가적인 발전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되어 각
나라 내부군살빼기에서 점차 지구적인 흐름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지만 오랜 역사적 과정 속에서
정비되었던 서구의 복지제도에 대한 공격과 노동유연화 전략은
우리나라에 와서는 IMF의 기치 하에 누구나 다 겪지 않으면 안
될 ‘쓰지만 몸에 좋은 약’으로서 구조조정이 단행되었고, 그
시점에 김대중 정부는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기초생활을
보장해주겠다는 생산적 복지-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국정과제로
천명하였다.
그렇지만 1960~70년대에 군사정권의 정당성 창출과 노동운동의
고양을 막기 위해 공무원 연금법, 생활보호법, 산재보상보험법,
의료보험법 등 사회복지관련 법률이 대량으로 도입된 이후로
87년이 되어서야 병원노련을 중심으로 민주노총의 의료보장과
교육관련 사회개혁투쟁 전개가 시발된 점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전의 복지제도는 노동자․민중에게 느껴지지 않는 미미한
존재였다. 노동자․민중은 자신의 노동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건강과 교육과 주택문제 등 삶을 위한 모든 문제는 그
안에서 개인이 책임지며 해결하고 있었다. 이때 생산적 복지는
“모든 국민이 인간적 존엄성과 자긍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생활을 보장함과 동시에 자립적이고 주체적으로
경제․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분배의
형평성을 제고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발전을
추구하는 국정이념” 청와대 삶의질향상기획단(1999)에 따르면
생산적 복지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통한 분배, 국가에 의한
재분배복지, 자활을 위한 사회적 투자를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기초생활충족의 원칙, 자립․자조․자활지원의 원칙,
복지제도의 민주적, 효율적 운영의 원칙의 3대원칙을 가지고
있다.
임을 사회적으로 선포하며, 더불어 이제 곧 4대보험의
전면확대로 국가가 의료와 고용 그리고 노후까지 책임질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음을 부지런히 홍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복지제도 안에서만 보아도 일정정도 기본수준의
복지시스템이 있는 서구에 비해 그것이 전무하다시피 한 국내의
상황에서 이제부터 시행하게 될 4대보험의 전면확대와 생산적
복지는 갑작스레 밀어닥치는 구조조정을 견디어 낼 만한 어떠한
완충역할도 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생산적 복지는 사회복지
영역과 시장경제 영역을 관통하는 노동연계복지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며, 이제 복지마저도 노동과 연관시켜 ‘개인’의 노력
없이는 ‘공짜’로 복지를 제공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모든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던
생산적 복지는 그야말로 복지제도가 최소의 완충망 역할을
해준다면 현재의 생산 체계 내에서의 유연화 전략에 따른 노동의
고통은 감수할 만한 것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근로유인을 통하여 복지혜택이 주어짐으로써 실제로 복지의
영역을 축소시켜 결국은 노동자․민중이 당장의 생존을
위해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형성하며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에 충실히 자기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산적 복지의 역할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시혜적 차원의 생활보호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복지정책으로는 간략히 공적부조와 사회보험으로
나뉠 수 있다. 사회보험은 다수의 기여로 사회적 위험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고, 공적부조는 기여를 할 수 없는
정해진 선 이하의 빈곤계층을 위하여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정책이다.
를 탈피해 국민이면 누구나 최저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가 최저생계보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소득층의
자립․자활을 책임진다고 하는 생산적 복지에 기초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이전의 생활보호법과 달라진 점은
노동을 할 수 없는 빈곤층―노인, 장애인, 아동 등―뿐만 아니라
노동을 할 수 있으나 일하지 못하는 자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생계를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행할 당시부터 수급자의
수가 생활보조시절보다 후퇴하면서 생계의 전부를 의존하고 있던
이전의 대상자가 자살하는 사례가 속출하였고, 이후에도 수시로
선정기준을 강화하며 불법수급자를 색출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더 어려운, 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의 이전을 강요하며 조건부
수급을 제시하는 것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복지의 확장일로를
걷기 위한 국가의 선심책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적은
예산과 노동유인을 통해 오히려 빈곤한 대중에 대한 통제, 관리
시스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노동연계복지라는 허울아래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노동시장 내로 진입하지 못하는 개인에게
그 책임을 돌리며 민중에게 끊임없이 더 열악한 구조 속으로
편제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2) 제도의 확장, 그러나 너무 먼 복지
4대보험 고용보험은 98년 10월부터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를
강제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산재보험의 경우는 2000년 7월부터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를 의무 적용하였다. 의료보험의 경우는
2001년 7월부터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가 직장가입자로 편입될
예정에 있다. 국민연금은 98년 3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를
포함한 전 국민에게 연금을 확대함으로써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도 국민연금에 강제 적용되게 되었다.
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적용범위가 5인 미만 사업장까지
법률적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사회보험의 가입률이 정규직
74~91%, 비정규직 22~25% 김유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비정규직과 노동운동』, 한국산업노동학회 쟁점토론회,
2001․5월, 1쪽.
임에서 볼 수 있듯이 ‘제도의 확장’이 불안정 노동화 되어가고
있는 노동자․민중에게 그대로 확장되어 다가온다고 볼
수는 없다.
첫 번째, 산재보험의 경우 노동자의 기여 없이 사업주의 기여로
보험적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산재적용을 받게 되었을 경우
치료비 일체를 근로복지공단에서 제공받게 되니 그야말로 더
이상 적용률이니 기여회피니 하는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완벽한 제도다. 그러나 정작 산재를 당해 당사자가 누워있는
동안 산재보험 판정을 받기 위한 요양신청서를 사업주가
작성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산재적용 판정을 받기가
어려울뿐더러 산재를 당하고 난 뒤 재취업의 기회가 적어
사회적으로 그냥 방치될 경우, 오히려 새로운 불안정 노동층을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연금은 온 국민의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 직장과
지역으로 강제가입을 시키고 있다. 그나마도 기여율이 적을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과연 먼 훗날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간다. 더구나 4대보험 중 가장
축적률이 높은 연금은 오로지 금융시장 또는 주식시장의 부양에
절대적으로 맞추어져 마구 주식투자에 오용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실상 온전한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기준이라는
측면에서는 원칙이 없다고까지 할 수 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
재정문제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연금재정의 문제는 멀지 않은
미래에 제기될 것이며 그나마 해결방법 또한 연금수급의 나이를
미루거나 보험료를 올리는 등 민중에게 전가하며 진행될
것이다.
세 번째, 국민건강보험이다. 건강보험재정이 바닥을 친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그러나 왜 건강보험재정이 바닥날 수밖에
없었는가? 예상되었던 대로 그것은 의료체계의 시장화에
있었으나 여전히 노동자․민중의 호주머니를 털어
의료자본을 살찌우고 있다. 그러나 불안정 노동과 열악한
노동환경 그로 인한 생활불안 등으로 훨씬 더 많은 건강문제에
노출되어 있는 불안정 노동층에게 건강권을 일상적으로 확보하는
문제는 현재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더 많은
공공적인 사회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러한 문제는 개인의 책임으로 취급되고 있고 병원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민중들은 그냥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넷째, 고용보험은 비정규직을 포함한 전 사업장으로
확대되었으며 실업급여를 제공하는 일수를 확장했다. 그러나
자발적 실업자에게만 제공하는 실업급여는 전체 실업자의 60%를
실업급여자격을 박탈했으며, 최근 IT나 3D업종에 대한 재취업을
2번 이상 거부하면 실업급여의 중단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현실적으로 불안정 노동자가 4대보험에
대한 접근이 원천, 봉쇄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첫 번째,
김대중 정부의 4대보험의 제도적 완성도를 높이 사고 있는
입장에서는 제도적으로 적용대상에 포함된 비정규직의
실제문제는 기여회피의 문제라고 보며 이것은 관리운영체계의
강화에서 극복되어진다고 보았다. 비정규직의 기여회피를
관리운영체계의 강화로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은 왜 비정규직
인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안이한 발상이다. 말하자면 그야말로
비정규적으로 불안정하게 일하고 있는 대상자의 소득수준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의 행정인프라를 갖추자는 말이다. 그러나
소득이 훨씬 높은 자영업자에 대한 기여율 획득에 난항을 걷는
것에서 보여주듯이 행정인프라의 구축으로 불안정한 노동자의
소득수준을 꿰어 강제로라도 보험에 기여하도록 하자는 말은
그야말로 맞지 않는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열 수 있다는 억지에
불과한 것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결국 4대보험은 비정규직을 위한 복지제도가
아니다. 걸러지지 않는 채를 들고 불안정 노동층을 사회적으로
보호하겠다는 것은 약간의 제스츄어를 통해 생색만 내고
걸러지지 않는 책임을 여전히 사회연대의식이 약한 기여회피자인
불안정 노동층에게 돌리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는
불안정 노동층의 빈곤함을 보지 않은 채 ‘기여회피’라는 명목
하에 가장 많은 사회적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이들을 못 본 채 하는 것이다. 현재 노동자․민중에게
불안정 노동의 확산은 가장을 거리로 내몰고, 여성에게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고, 가족간의 결속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자녀의 학업마저 포기하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복지제도는
여전히 노동자․민중에게 너무나 멀다. 앞서서 보았듯이
가장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계층은 가장 제도적으로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제도적인 지지마저 전무한
상황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야말로 현재 노동자․민중은
다수의 사각지대를 형성해 가고 있는 중이다.
사각을 허물자!
불안정 노동층을 점점 더 확산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프로젝트는 노동자 민중에게 있어 노동과 생활
모두를 파괴하며 흔들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노동을 정규․비정규, 여성과 남성, 장애와 비장애 등으로
분절화한다. 이에 대응하여 노동자들은 각개분투하며 열심히
투쟁하고 있지만, 때로는 산재노동자가 장애인노동자며
실업노동자이듯, 장애노동자가 실업노동자이며 비정규직
노동자이듯, 또한 정규직노동자가 비정규직노동자가 되고
산업재해 노동자가 될 수도 있으며 또한 장애노동자가 될 수
있듯이 같은 요구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분절화 된
영역을 넘어서는 투쟁은 아직도 부족한 상황이다. 오히려
노동내부에서 불안정한 노동현실을 조율하느라 첨예한 노-노
갈등을 겪고 있으며 이에 따른 노동의 무력화 시도에 적절히
대항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민중복지를 쟁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한가지 초석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모든 노동의 분리․차별철폐의
요구 속에서 진행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들이
일으키는 노-노 갈등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할 수 없을
것이며, 분절된 채로 갖가지 노동유연화를 위한 노동법 개악음모
역시 철폐하지 못할 것이다(비정규직, 여성, 장애, 이주 등 모든
부분에서 개악이 시도되고 있다). 또한 계속적인 노동의
불안정화 속에서는 쉴 권리가 보장되는 생활임금이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며, 건강과 주택과 교육문제 역시 사회화시키지 못한
채 여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남겨져 전체 노동층을 한층 더
불안정화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중요한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안정적 일자리를
빼앗고 자본을 위한 규칙으로 재편시킨다는 것은
노동자․민중의 삶 전체를 피폐화시키는 것이다.
민중복지를 쟁취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책적 내용을 제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노동자 운동과 함께 노동자․민중의
입장으로 사회화․실질화 시켜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의
7가지 슬로건―고용안정! 모든 이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권리보장! 자본을 위한 노동법 철폐, 있는 법은 제대로!
차별철폐! 노동계급의 모든 분리․차별 철폐! 나은 내일!
쉴 권리가 보장되는 생활임금! 건강! 개인의 부담에서 사회적
책임으로! 주택! 투기의 대상에서 삶의 공간으로! 교육!
교육시장화에서 공교육의 정상화로!―은 단지 나열된 구호가
아니다. 이는 노동자․민중의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요구사안이며, 새로운 투쟁으로의 첫 함성이다.
한/노/정/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