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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메, 호떡집에 불났나붸

현장에서 미래를  제71호
채만수

추악한 부르주아 정치에 희망이 있을 수 없다
워~메, 호떡집에 불났나붸
권두언




채 만 수
부소장





둥근 등이 천장에 납작 붙어 있고 벽에는 “권력무상”이라고 쓰인 가로 액자가 커다랗게 붙어 있는 방안. 小山(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 洪깃털, 姜삼재, 佑(최형우)와 徐석재가 심각한 듯, 못마땅한 듯, 고소하다는 듯, 경악한 듯 여러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서석재가 홍깃털에게 “우리 때보다 더하지?” 하고 동의를 구하는데, 그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텔레비전 안에선 ‘동교동’과 ‘소장파’가 장도를 휘두르며 목숨을 건 “진검 대결”을 벌이고 있다.

최근 추악함과 살기를 더해가고 있는 새천년민주당의 내분을 그린, 11월 2일자 ꡔ중앙일보ꡕ의 만평이다. 실제로 그 대결의 와중에서 이인제가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내뱉었다는, “대통령 똑바로 모셔라”는 역정의 말은 21년 전 10월 26일 궁정동 최후의 만찬에서 김재규가 역사적 총질을 하기 직전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내뱉었다는 최후의 일갈, “각하 똑바로 모셔, 이 버러지 같은 놈아”를 연상케 하면서, 내부 파쟁의 적대성을 실감케 한다.

10․25 재보선의 완패를 계기로 크게 증폭된 민주당의 대혼란과 파쟁은, 말할 것도 없이, 4년 가까운 김대중 집권기간 동안의 전반적인 실정(失政)과 범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 파쟁과, 그것을 선도하고 있는 이른바 ‘정풍파’, ‘쇄신파’, ‘소장파’, ‘개혁파’ 등등으로 불리는 집단들 및 그 소두목들의 행태는 그 이중적 성격 때문에 참으로 추잡하다. 이 파쟁은 다름 아니라, 민주당이라는 거대한 선거․이권 조직, 더구나 그 당이 집권당이라는 사실이 그들 집단과 개개인에게 주는 유형․무형의, 그리고 합법․불법의 모든 이익은 챙기면서도, 김대중 정권 집권 중의 실정과 범죄에 대한 책임은 ‘동교동계’라는 특정 계파에 몰아 씌우려는 ‘개혁파’ 등의 음모․계략과 그에 대한 ‘동교동(구파)계’의 반발에서 발생,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정과 범죄의 공동기획자 및 동참자로서 실컷 단물을 빨아먹고, 또 앞으로도 그 조직적 경제적 장물은 계속 챙기려 하면서도 한 쪽을 가리키며 “정치적 책임은 네가 지고 죽으라”며 몰아 세우고 있으니, 추악한 ‘진검 대결’이 아니 벌어질 수 있겠는가?
파쟁의 한가운데에서 그것을 선도하고 있는 이른바 ‘정풍파’, ‘쇄신파’, ‘소장파’, ‘개혁파’ 등등.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이른바 ‘제도 정치권’이란 데가 범죄의 소굴이며 범죄의 소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또 그에 대한 경계의 소리를 충분히 들으면서도, 오로지 정치적 야망과 야욕에 불타서 스스로 민주당, 김대중 정권에 참여하고, 따라서 그 실정과 범죄에 동참하여 그 과실을 챙겨 왔던 자들이다. 그들 역시 그들이 지탄하는 ‘구정치인’ 혹은 ‘동교동계’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사실은 그들의 힘을 빌어, 애초부터 그렇게 범죄적으로 조성된 자금의 힘으로 선거를 치뤄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고, 그렇게 범죄적인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모아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그 상승을 꾀해온 자들이다.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롭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뇌물이나 청탁성 자금은 결코 받은 적이 없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왔던 이 가증스러운 대답을 우리는 이른바 ‘정풍파’, ‘쇄신파’, ‘소장파’, ‘개혁파’의 소두목들에게서 똑같이 듣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 마치 시대의 선지자인 양 ‘정풍’, ‘쇄신’, ‘개혁’을 외치고 있으니! 이들이야말로 참으로 가증스럽고 위험한 위선자, 기회주의자, 선동정치가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지난 1979년 가을에 박정희가 피살당하고 공화당이 좌초하게 되자 ‘정풍’을 부르짖었던, 그리하여 천박한 부르주아 언론의 각광을 받았던 박찬종이란 자가 어떤 X같은 정치적 행로를 걸었는가도 상기해 볼 만하다).

지난 10․25 재보선의 결과에서 드러난 것처럼, 김대중 정권의 실정과 범죄의 정치적 효과는 우선 신한국당, 혹은 그 이회창 총재의 반사적 이익이라고 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물론 대량 학살과 장기간의 군사 파시즘으로 점철된 근대 정치사 때문에 아직도 민중의 대다수가 정치적 보수 이데올로기의 포로로 잡혀 있다는 사정에서, 그리고 이른바 ‘조․중․동’, 즉 조선․중앙․동아 일보로 대표되는 파쇼․보수 언론의 대중조작력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정에서 기인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역사적 사정과 보수․파쇼 언론의 여론 조작으로 그렇게 보수 이데올로기의 포로로 잡혀 있으면서도, 대중은 자신들에게 강요되는 삶의 어려움, 삶의 파괴 때문에 정치적으로 무척 역동적이고, DJ와 DJ당이 싫어서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를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에게도 한나라당이 맥을 잇고 있는 파시즘적 전통에 대한 거부감이 잠재되어 있다. 말하자면, 한나라당이나 그 이회창 총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정치적 지지는, 물론 한편에서는 일부 대중에 구제 불능의 보수․파쇼 지향을 표현하고 있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 ‘현상 거부’, 즉 변화에의 대중의 열망이 굴절되어 표현된 것으로서 극히 취약한 성격의 것이다.
지금 여․야의 이른바 ‘개혁파’니 ‘소장파’니 하는 자들이 노리는 바는 한국 정치의 바로 이 점이다. 대중을 정치적 보수 이데올로기 속에 가두어 둠으로써 기존의 제반 경제․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기본 질서와 그 이해 관계를, 따라서 계급적 이해 관계를 온존시키면서도 대중의 변화 열망을 이용,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고 공고히 하려는 책략을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구호는 ‘개혁’이다. 그들은 오늘날 한국의 경제와 사회에, 따라서 또 노동자․민중에게 닥치고 있는 위기가 ‘개혁의 부진’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정치적 옹위(擁衛) 부대인 대부분의 이른바 ‘시민운동’단체들은 ‘개혁의 실종’이 오늘날의 혼란과 위기를 불러왔다고도 주장한다. 이를테면, 그들은 ‘변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개혁’이라는 구호 속에 수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개혁’이란 무엇인가? 혹은, 그들 스스로 “개혁이 혁명보다 훨씬 어렵다”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지껄이면서도 그들은 왜 ‘그 어려운(?) 개혁’에 그토록 매달리는 것일까?
이는 다름 아니라 그 ‘개혁’이란 것이 지배 계급 내부를, 지배․착취 기구를, 그리고 지배 관행을 합리화․효율화함으로써 기존의 계급적 지배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개혁’이야말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민중의 저항이 갈수록 거세지는 조건 속에서 기존의 지배 관계를 유지․강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 등을 통해서 노동자․민중의 힘이 성장하여 과거와 같은 군사파쇼체제의 노골적 폭력만으로는 지배의 유지․재생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배의 합리화․효율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김영삼이나 김대중 정권이라는 민간 정부에서 ‘개혁’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노동자․민중의 고통은 다름 아니라 자본주의적 착취․피착취 관계에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것이고, 오늘날 한국 경제에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경제 전반에 닥치고 있는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노동자․민중의 생활상의 위기, 전쟁 등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저들 ‘개혁파’․‘소장파’ 정치인들은, 일부는 무지 때문에, 그리고 일부는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모든 것이 특정 정치세력의 무능이나 우연적인 정책적 실패에서 연유하는 것처럼 선전하면서 ‘개혁’이라는 구호 하에 지배의 영속화․합리화를 꾀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개혁’이란 바로 그러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민중은 개혁의 지체나 실종․실패 때문이 아니라 바로 개혁 그 자체, 혹은 그 개혁의 진전과 성공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돼온 개혁의 하나인 이른바 ‘신노사관계’․‘신노사문화’란 것을 상기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이 추진한 개혁이란 것은 대부분이 그렇게 노동자․민중의 고통을 증대시키면서 독점자본의 이익과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다.
지난 총선이나 지방자치단체 선거 등에서 시민운동이 벌였던 이른바 ‘정치개혁’ 운동은 좀 다르지 않느냐고?
그것은, 현 조건에서 ‘제도 정치판’이란 다름 아닌 추악한 쓰레기장이며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따라서 거기에서는 노동자․민중의 어떤 희망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대신에 몇몇 인간만 바꿔치우면 희망이 있는 것처럼 대중을 오도하려 한 음험한 음모․책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운동은 정치란 것이 본질적으로 계급적 지배의 문제라는 것을 은폐하면서 그것이 마치 개인의 문제, 도덕성의 문제인 것처럼 대중을 오도하려 획책했다. 그리고 그 운동의 주도자들이 그 ‘개혁’에 상당한 성공을 자임한 그 정치판이 다름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바의 개판이요, 그 핵심에 그들이 ‘개혁 정치인’으로 내세운, 위선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선동 정치가로서의 이른바 ‘개혁파’, ‘소장파’ 의원들이 있는 것이다.

맨 앞에서 언급했던 ꡔ중앙일보ꡕ의 시사만평으로 돌아가 보면, 거기서 서석재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때보다 더하지?”

“우리 때보다 …” 주지하듯이, 김영삼 정권 때에도 그렇게 실정과 범죄로 얼룩지고, 그리하여 그 노략물의 분배와 책임을 둘러싸고 내부 항쟁이 심했다는 뜻이다. 그러면, 노태우 때, 전두환 때, 박정희 때, 이승만 때는? 그 간의 숱한 정치적 격동이 증명하는 것처럼, 물론 그 때도 더 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신한국당이 집권한 들 조금이라도 나아질 리가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
사실, 오늘날 무능과 부정 부패, 그리고 실정으로 지탄받고 있는 김대중 정권이야말로, 그에 대한 지지 여부나 호오(好惡)를 떠나서 말하자면, 한국의 부르주아 정치의 ‘최량(最良)의 현실태(現實態)’일 것이다. 스스로 ‘민주화 운동 세력’이라고 자임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들은 박정희 이래의 군사파쇼 세력과 예각을 이루면서 싸워왔고, 스스로 ‘중도 우파’임을 자임하듯이―실제로는 그만큼이나 좌에 있는지 의심이 들긴 하지만―한국의 부르주아 정치세력 중에서는 어쨌든 가장 좌측에 있는 정치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세력이 오늘날 파탄을 맞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부르주아 정치 전체, 따라서 한국의 제도권 정치 전체가 파탄을 맞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언론은 마치 무언가를 ‘개혁’하기만 하면, 대중이 정신 차려서 “표만 잘 찍으면” 무언가 희망이 있는 것처럼 대중을 오도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간 그렇게 오도해 오면서 독점자본의 지배를 유지․강화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다름 아니라 대중이, 따라서 노동자․민중이 그러한 미몽에 사로잡혀서 정치적으로 방황해야만 이 부정․불의한 체제․상황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나서지 않는 데가 없는 쁘띠부르주아 ‘시민운동’ 단체들 또한 그들의 ‘개혁’ 운동을 통해서 부르주아 언론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기능․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는 오로지 그들의 계급적 처지에 의해서 규정된 정치․사회 의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튼 오늘날 저 친구들, 끼리끼리 편을 짜서 이리 뛰고 저리 닫으며 좌충우돌․우왕좌왕․야단법석을 떠는 꼴을 좀 보게. “워~메, 호떡집에 불났나붸?!” 한/노/정/연

2001-11-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