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조합운동의
특징과 변화
오 건 호 (회원, 서울대 박사과정, 사회학)
서구 국가 가운데 80년대 이후 가장 급격한 노사관계 변화를 겪고 있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영국이다. 영국은 70년대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이 성장했던 나라이다. 2차 대전 이후 보수당과 노동당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노동조합에 대해서 우호적인 정책이 행해졌고, 노동조합의 조직율도 50%를 상회하여 스웨덴, 덴마아크 등의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유럽에서 가장 높았다. 그러나 79년 대처 보수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17년 동안 신보수주의적 노동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면서 영국 노동조합운동은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이 글은 80년대 이후 전개되고 있는 영국 노동조합운동의 주요 변화를 살펴 볼 것이다.
자원주의(voluntarism)적 노사관계의 와해
영국 노사관계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노사관계가 정부의 커다란 개입없이 노사간 자율적인 단체협상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는 점이다. 영국은 자본주의가 일찌기 발달하여 사용자가 안정화되고 노동조합의 조직화가 활성화되면서 노사간 협상이 커다란 영향을 발휘해 왔으며, 상대적으로 정부는 ‘자유주의적’ 원칙에 따라 노사 당사자의 교섭에 개입하지 않았다. 이러한 전통은 2차대전 이후 케인즈주의적 사회경제원리에 입각한 보수당과 노동당의 ‘협조’가 무리없이 진행되면서 영국 노사관계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영국에는 단체교섭이 법적 강제사항이 아닌 노사간 자율적인 선택사항이며, 노사간 분쟁도 역시 노사간 당사자의 문제로서 정부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한정되었다. 노사는 노동관련법 없이도 자율적인 ‘신사협정’을 맺어 왔으며, 노사간의 상호인정과 관행이 사실상 ‘노동법’의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주의적 전통은 대처리즘으로 불리우는 신보수주의 정부의 노동정책에 의해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신보수주의 정부는 ‘시장의 탈규제’ 명목으로 고용안정을 침해하는 고용법을 입안하여 비정규 노동력 이용을 지원하고, 더욱 중요하게는 노동조합 활동을 가로막는 입법을 쉴새없이 추진하고 있다. 이제 영국 노사관계는 노동정책과 노동법을 통한 정부의 개입 없이는 이해하기 힘들게 되었다.
정부가 노동조합 활동을 억압하는 중요한 방식은 단체행동을 제한하는 법의 제정을 통해서이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할 때, 평화적인 피켓팅은 자유롭게 허용되어 왔다. 그러나 80년 법개정으로 피켓팅은 분쟁중인 작업장 안에만 한정되었고, 파업으로 인해 관련된 다른 기업에 피해를 주는 행위가 금지되었다. 또한 노동쟁의가 발생하였을 때, 노동조합에 부여하던 면책특권을 제한하여 불법분쟁(동정파업, 단체교섭 사안을 넘는 활동 등)시, 노동조합에게 민사‧형사법의 제재를 가하기로 하였다. 노동조합의 면책권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노동조합의 평화적인 피켓팅을 보호하고, 노동조합 활동에 면책권을 부여했던 1906년 노동법의 전통을 처음으로 무너뜨리는 정부의 조치였다.
또한 단체행동의 절차에 대해서도 정부는 강한 개입을 하고 있다. 84년 노동조합법은 단체행동을 위한 조합원의 비밀투표를 의무화했으며, 이 투표를 단체행동 4주전에 실시하도록 하였다. 93년 법개정을 통해 실제 단체행동 돌입하기 일주일 전에 사용자에게 단체행동의 범위와 기간을 통보하여 사용자가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기간을 공식화했으며, 94년 영국 고등법원은 사용자가 요구할 경우, 노조는 파업투표에 참가한 노동자의 이름과 주소를 제출해야 한다는 ‘치욕적인’ 판결까지 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90년대 들어 정부가 입안한 새로운 공격은 노조의 재정에 관한 것이다. 노조의 재정운영에 관한 정부기관의 ‘감사’를 공식화했으며, 임금으로 지급되기 전에 원천일괄납부(Check-Off System)되던 기존의 조합비 징수를 반드시 조합원 개개인의 위임권이 있어야만 가능하도록 하였고, 이것도 3년마다 재위임을 받도록 강제하여 노동조합 재정기반을 공격하고 있다.
단체교섭의 분권화 심화 : 거대 노총․약한 노총
영국은 서구에서 유일하게 하나의 노총으로 노동조합이 집결해 있다. 전체 조직노동자의 약 80%를 대표하는 영국노동조합협의회(TUC)는 주요 거대노조들을 모두 포괄하는 내셔널센터로서 기능하고 있다. TUC는 단체교섭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각종의 국가정책기구에 대표자를 파견하거나 노동당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폭넓은 정치활동을 추구해 왔다. TUC는 개별노조를 가입대상으로 하여 현재 67개 노조에 6,894,604명의 조합원을 가진 영국의 최대 사회조직이다.
그러나 TUC에 가입한 노동조합을 보면 매우 이질적이다. 조합원수로 보면 13명의 조합원을 가진 양털깍기노동자노동조합(SWSWU)을 비롯하여 52명, 60명으로 구성된 매우 작은 조합에서 140만 명에 육박하는 공공부문연합노조(UNISON), 90만 명을 넘는 운수‧일반노동자노조(TGWU)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표에 제시된 10만 명 이상의 조합원을 가진 14개 노조가 사실상 TUC 조합원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TUC를 주도하고 있다. TUC의 전국조직은 6개의 지구(region)와 317개의 지부(local)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6개 지구 외에 조직적으로는 독립되었지만 TUC와 긴ㅇ밀히 활동하는 두 개의 노조중앙조직이 있다(스코틀랜드노조협의회, 에이레노총 북아일랜드위원회). 영국 노동자들이 내는 조합비는 92년 평균 58파운드(약 9만원)였다.
TUC에 가입한 노동조합의 성격도 매우 다양하다. 노조의 조직방식이 일반노조(TGWU, GMB), 직업별노조(AEEU), 공공부문노조(NUCPS), 산업별노조(석탄노조) 등으로 다양하며, 각각의 성격이 혼재되어 있는 경우도 많으나, 대체로 직업별노조와 일반노조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초기 노동조합운동이 숙련노동자들에 의해 결성된 직업별 조합원리에 기초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19세기 후반부터 숙련노동자 중심의 직업별 노동조합과 별도로 반숙련/비숙련 노동자들에 의한 새로운 노동조합운동(New Unionism)이 전개되었는데 이 때 만들어진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은 일반조합으로 결성되었다. 이러한 노동조합들은 산업별 원리에 기초하지 않고 여러 개의 직업을 총괄하는 형태를 띠었다(예: 운수/일반노동자조합). 일반노조는 자신의 조직대상이 특정화되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성격을 갖는 다른 노조와 조합원 가입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되는데 TUC에 함께 가맹한 조합사이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다.
<표 1> TUC(영국노동조합협의회) 가입노조 현황(1995년 1월 기준)
노 동 조 합 |
남 자 |
여 자 |
총조합원 수 |
UNISON(공공부문연합노조) |
402,426 |
966,370 |
1,368,796 |
TGWU (운수/일반노동자노조)
Transport and General Worker's Union |
744,616 |
174,307 |
918,923 |
GMB(일반통합노조) |
503,718 |
285,954 |
789,672 |
AEEU (합동공학/전자노조)
Amalgamated Engineering and Electrical Union |
710,002 |
71,135 |
781,137 |
MSF (제조업/과학/금융노조)
Manufacture Science Finance |
341,097 |
140,903 |
482,000 |
USDAW (상업/유통노조)
Union of Shop, Distributive and Allied Workers |
117,745 |
165,071 |
282,816 |
CWU (우편/통신노조)
Communications Workers Union |
214,827 |
51,659 |
266,486 |
GPMU (인쇄/출판노조)
Graphical, Paper and Media Union |
172,030 |
36,428 |
208,458 |
NUT (교사노조)National Union of Teachers |
43,445 |
131,878 |
175,323 |
NASUWT (전국여성교원협의노조)
National Association of Schoolmasters Union of Women Teachers |
62,694 |
83,572 |
146,266 |
BIFU (은행/보험/금융노조)
Banking, Insurance and Finance Union |
56,562 |
77,450 |
134,012 |
CPSA (공공서비스노조)
Civil and Public Services Association |
34,258 |
91,543 |
125,801 |
NUCPS (공무원노조)
National Union of Civil and Public Servants |
66,044 |
44,032 |
110,076 |
UCATT (건설노조)
Union of Construction, Allies Traders and Technicians |
105,210 |
925 |
106,135 |
기타(53개 노조) |
721,930 |
277,368 |
998,703 |
총 67개 노동조합 |
4,296,604 |
2,598,595 |
6,894,604 |
TUC는 영국 노동조합의 내셔널센터로서 거대조직이지만 산하 노동조합에 대한 중앙의 통제권은 미약한 편이다. 이는 영국 노동조합의 분권화된 관행 때문인데, 단체교섭과 현장활동에서 직장위원의 권한이 큰 편이다. 이렇게 강력한 직장위원제도는 이미 1세기 전부터 형성된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몇몇 숙련조합들은 조합원의 가입과 유지를 관리하는 책임을 가진 작업장대표들을 두고 있었다. 이들은 성과급 임금체계가 도입되면서 점차 사용자들과의 협상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관행이 다른 노조들에게도 확산되었다. 특히 1차대전 전시내각 시기에 여성을 포함한 미숙련노동자들의 대체고용을 허용하는 노사합의가 기계공업에서 행해지자 이들은 이에 반발하면서 비공식파업(wild cat strike)을 주도하였고 ‘노동거부중앙위원회’라는 직장위원 연대조직을 결성하였다. 이러한 운동을 계기로 이들은 노조 임원의 지도력을 위협하는 존재로 성장하여 작업장 수준에서 단체교섭 주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교섭은 작업장 수준에서 개별기업과 직장위원 간에 임의적으로 시작되었고 이러한 관행은 영국의 자원주의적 노사관계의 토대로 발전하였다. 직장위원들은 1960대 후반과 71년에 보수당정부가 노사관계법의 제정으로 기존의 자원주의적 관행에 제한을 가하려 하자 광범위한 비공식파업을 전개하여 그 위력을 과시하였으며, 1974년 집권한 노동당 정부의 75-77년 ‘사회협약’ 정책이 임금억제 기제로만 기능하자 이에 대한 반항을 조직하여 결국 79년 노동당 정부 실각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영국 노동조합 중앙지도력의 허약은 단체교섭 구조도 상당히 분권화시켰다. 영국 노동조합이 대부분 일반조합으로 구성되어 있고 노동조합의 내적 동질성과 통합성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일찍이 오히려 하부수준의 단체교섭이 더욱 중요해지는 분권화 현상이 나타났다. 최근에 이르러 영국 단체교섭 구조의 분권화 경향은 훨씬 강해지고 있다. 정부나 자본이 기업의 유연화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사업장의 특정한 요구를 단체교섭에 반영하기 위하여 하위수준의 교섭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기존에 비해 복수사용자교섭(곧 중앙교섭)의 중요성이 더욱 쇠퇴하고 있고, 기업수준의 교섭에서도 기업일반교섭에서 각 공장‧부서교섭으로의 분권화가 생겨나고 있다. 더우기 노조의 현장간부인 직장위원과 독립적으로 기업 관리자와 노동자 집단간의 독자적인 교섭창구가 확대되고 노동자들의 개별계약이 행해지는 등 탈노조현상(Derecognition)도 보이고 있다. 공공부문의 경우에도 정부는 1994년 6월, “공공서비스부문의 변화를 위하여”라는 정부 백서를 통해 1996년까지 공공부문의 모든 임금교섭을 부서(agency/department) 수준으로 분산화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노동조합 조직율의 급속한 하락
영국은 총인구가 5,800만 명으로 이 가운데 경제활동인구는 약 2,500만 명에 달한다. 영국은 서구 나라 가운데 매우 조직율이 높은 나라로서 79년에는 53%로 정점에 달하였다. 이렇게 조직율이 높았던 이유는 산업화가 일찍이 진행되어 직업별, 산업별로 노동조합운동의 역사가 길며, 2차대전 이후 집권한 정부들이 노동조합활동을 크게 억제하지 않았고, 노사간 자율적인 파트너쉽이 지속되면서 노동조합 활동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 노조의 독특한 가입방식인 클로우즈숍 제도도 조직율을 높히는 데에 기여했으며, 특히 74년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노사간 ‘사회협약’이 맺어져 노동조합에 매우 우호적인 정책이 도입되면서 노조의 조직율은 크게 증가하여 53%(1,330만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79년 대처정부 집권 이후 정부의 노동조합 활동을 억제하려는 법제정과 노동정책이 계속되면서 노조 조직율은 93년 36%(900만 명)로 떨어졌으며, 이러한 하락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조직율 하락은 주로 거대노조에서 두드러진다. 92년 한 해에만 합동공학/전자노조(AEEU)에서 96,000명의 조합원이 감소했으며, 운수/일반노동자노조(TGWU)에서는 90,000명이 감소하였다. 이러한 조합원 감소는 정부의 강력한 反노동조합 정책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 급격한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도 조직율 하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전통적으로 조직율이 높은 제조업부문의 고용이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제조업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비율은 1979년의 31%에서 93년에 20%로 감소했는데, 이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가 없는 변화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조직화가 미약한 여성노동자, 파트타임노동자의 증가도 조직율 하락의 중요한 원인이다. 파트타임노동자가 1994년에 거의 6백만명으로 피고용인의 30%에 달하고 있으며, 시한부 임시계약노동자도 전체노동자의 5%에 이르고 있다.
*각부문별조직율(1991년 기준, %)
|
남자 |
여자 |
정규직 |
파트타임 |
육체노동자 |
비육체노동자 |
전체노동자 |
조직율 |
42 |
32 |
42 |
22 |
41 |
35 |
37 |
영국에서 조직율을 유지하고 있는 부문은 공공부문이다. 80년 이래 전반적인 조직율의 하락추세에도 불구하고 70%의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보수당 정부의 민영화정책에 따라 공공부문이 점차 축소하여 이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81년의 710만 명에서 93년의 560만 명(전체노동자의 약 23%)으로 감소하고 있다.
클로우즈숍제도의 폐지
영국 노동조합 조직원리의 특징은 서구 어느 나라보다도 클로우즈숍제도가 발전되어 있다는 점이다. 클로우즈숍은 ‘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모든 피고용인은 조합에 가입해야 한다.’는 유니온숍 규정에다 고용주가 ‘노동자를 고용할 때 반드시 노동조합에 이미 가입해 있는 조합원 중에서 선발해야 하는’ 규정이 더해진 것이다. 클로우즈숍제도 하에서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채용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의존이 증대하면서 노동조합의 힘은 강력해진다.
영국에서 클로우즈숍제도는 자본주의 초기에 숙련공 중심으로 스스로 우애조합을 통해 노동시장을 통제해 온 전통에서 연유한다. 특히 독일 등의 후발공업국과 달리 산업기반의 급격한 확대‧개편이 없었던 까닭에 반숙련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조직방식(산업별노조, 유니온/오픈숍)이 그리 강하지 않아 클로우즈숍제도는 20세기 이후에도 유지될 수 있었다. 1940년대 케인즈주의에 기초한 노사협력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클로우즈숍제도를 확대하려는 노동조합의 요구가 상당히 관철되었고, 70년대 후반 노동당의 친노동적인 노동정책에 힘입어 클로우즈숍은 더욱 확대되었다. 1978년에 조합원 중 클로우즈숍방식으로 조직된 노동자수가 520만 명에 달해 거의 조직노동자의 과반수에 해당하였다. 영국이 79년에 53%에 달하는 조직율을 보일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조직방식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79년 대처정부가 집권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영국 경제위기(소위, ‘영국병’)의 ‘주범’을 노동자로 설정한 대처는 노동조합을 공격하는 주요한 수단으로서 클로우즈숍제도를 폐지하려 하였다. 정부는 노동조합의 자율적 사항이었던 클로우즈숍제도를 제한하는 법을 입안하기 시작한다. 대처정부는 집권 직후인 80년 고용법 개정을 통해 ‘노동조합 민주화’라는 명분으로 클로우즈숍 제도로 인해 노동조합에서 제명된 노동자들에게 소송기회를 부여하고, 새로이 클로우즈숍을 채택하는 노조는 조합원 80% 이상의 찬성투표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법적 제한을 둠으로써 클로우즈숍제도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어 82년, 고용법 개정에서는 클로우즈숍으로 전환된지 5년 이하의 노조(즉 70년대 후반 노동당 정부하에서 클로우즈숍으로 전환한 다수의 노조)들은 클로우즈숍 비준투표를 통해 85%의 찬성을 얻어야만 이 제도가 계속 유효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클로우즈숍 노조들은 조합원들의 비준총회를 거쳤고 상당수 조합원들이 클로우즈숍에 반대함으로써 클로우즈숍에 속한 조합원 수는 84년 350만 명, 89년 280만 명으로 급속히 감소하였다. 이에 고무된 정부는 다시 88년 법개정을 통해 클로우즈숍 노조라도 이를 조합원에 강요할 수 없도록 하여 사실상 이 제도를 무력화시킨 후, 90년에는 아예 클로우즈숍은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조직선택권에 위배된다며 이 제도를 불법화하였다. 결국 영국 노동조합 조직의 중요한 특징으로서 70년대 후반 영국 조직노동자의 과반수를 차지하였던 클로우즈숍제도는 신보수주의 정부가 등장한 이후 12년만에 불법화되어 폐지되고 말았다.
노조의 대응: 새로운 변화?
79년 집권 이후 노동조합에 대한 대처정부의 공격은 2차대전 이후 45년간 지탱해 온 노사관계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전면적인 것이었다. 특히 이러한 공세는 대처리즘으로 불리울 만큼 영국 국민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이에 맞서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노동조합의 무기력은 다시 조합원들의 실망을 낳으면서 노동조합은 진퇴양난의 궁지에서 80년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TUC는 1993년에 개혁적인 활동가인 몽크(John Monk)가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총회에서 의결하였다. ‘변화를 위한 운동(campaigning for change)’으로 명명된 새로운 정책은 “완전고용 달성, 고용주의 신인사관리(능력주의적 관리방식)에 대한 대응, 단체교섭에서 노동조합의 대표권 강화”를 3대 목표로 설정하였다. 이것을 위해 TUC는 새로운 정책방향을 설정했는데 그 핵심은 ‘고용주와 노동조합간의 사회적 파트너쉽을 추구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TUC는 보수당과 중도정당인 자유민주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로 하였으며, 경영진의 새로운 경영전략에 대해서도 그것의 장점을 적극 수용하여 작업장에서의 능률을 향상시키는 데 협력하기로 하였다. 보수정당과 자본에 대한 TUC의 이러한 ‘타협과 협력의 제의’는 위기에 처한 영국 노동조합의 고육지책이긴 하지만 조합주의적 노선을 견지해 온 영국 노동조합운동의 성격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더불어 각 노동조합들은 조직통합을 추구하고 있다. 조합원 수가 계속 감소하여 작업장에서 노조조직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커지고, 정부의 조합비 징수에 대한 통제로 재정의 압박에 직면한 노조들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조직간의 통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84년에 TUC소속 노조 수가 98개였는데, 95년에는 67개로 줄어들었으며, 이러한 조직통합 경향은 90년대 말까지 계속되어 이후 TUC 소속 노조의 수는 약 45개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1) 노동조합들은 이후 실시될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여 정부의 노동정책이 바뀌길 기대하거나, 유럽연합의 사회헌장(노조에 우호적인 조항이 많음)을 유독 거부하고 있는 영국에 대해 유럽연합이 압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제활동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영국의 조직율이 이후 계속 하락할 것이며, 노조 재정의 악화라는 문제가 대두되면서 노동조합 활동은 더욱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는 함의
80년 이후 서구 대부분의 노동조합운동이 정부의 노동억압적인 정책과 자본의 유연화전략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유독 영국 노동조합운동이 급속히 쇠락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70년대까지 영국 노동조합운동은 스웨덴이나 독일 등에 비해서 강하지 않았지만, TUC를 중심으로 한 단일대표성, 정부정책에 대한 개입능력, 노동당의 빈번한 집권 등에서 확인되듯이 그렇게 약한 것은 아니었다. 쇠락의 이유를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정부의 노동억압정책(대처리즘), 경제의 취약성(가장 결함이 많은 포디즘체제), 강한 영국을 외치는 보수주의적 민족주의 등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적 환경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노동조합운동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문제를 부각시켜 강조하려 한다. 무엇보다도 영국의 노동조합운동은 노사간 자원주의적 전통 속에서 전개되어 왔기 때문에 노동조합운동의 집단적 권리가 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80년 이후 정부와 자본은 기존의 관행을 손쉽게 깰 수 있었다. 노동조합운동의 방어 시기에는 당시까지 획득해 온 권리가 제도화된 형태로 존재하는가의 여부가 이후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이는 비슷한 신보수주의적 정치상황에서 노동조합이 제도화된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독일과 비교할 때 명확해 진다. 제3자 개입 금지라는 하나의 법조항이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면, 노동조합운동이 쟁취하는 권리들은 노사간 ‘협의’에 의한 관행이 아니라 ‘법적 제도’로 정착시켜 놓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영국 노동조합운동은 비록 단일노총으로서 TUC가 있지만 전국적인 통일성이 약하다. 각 단위노조의 직업적 이해가 크게 작용하고, 작업장에서 직장위원들이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됨으로써 영국 노동조합운동의 중앙집중성은 취약했다. 이에 따라 80년대의 정부와 자본의 공세에 TUC가 힘있게 대처하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의 산업별 노조 건설운동이 긍극적으로는 전국적인 단일산별노조 건설과 민주노총의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별 단위노조운동의 전통과 관행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자본도 기업수준의 노사관계를 선호하는 전략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후 산업별노조의 유지‧발전을 위해서도 영국 노조가 겪고 있는 ‘분권화’의 문제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국 노동조합은 ‘노동력 이용의 유연화’로 요약되는 자본의 새로운 노선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광범위하게 도입되는 기술혁신과 생산조직 변화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 이 문제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는 유연화의 전개에 따라 노동자의 숙련을 향상시켜 생산현장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보다는[기능적 유연성의 제고], 노동시장에서의 비정규고용(파트타임, 임시노동, 파견노동 등)을 이용하는 방식[수량적 유연성의 확대]이 일반화되면서 노동시장의 조건이 더욱 노동조합에게 불리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정규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로 이분화될 위험성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정부와 자본의 유연화 공세가 ‘노동시장에서의 비정규적 노동력을 탄력적으로 이용하려는’ 수량적 유연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장기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1) UNISON (공공부문연합노조)은 1993년 7월 의료서비스노조(the Confederation of Health Service Employee), 공공종사자노조(the National Union of Public Employees), 정부종사자노조(the National and Local Government Officer's Association) 등 3개 공공부문노조가 통합하여 만들어진 영국 최대의 노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