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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한 투쟁만이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길임을
 2001년 노동자대회를 다녀와서

현장에서 미래를  제72호
심인호

단호한 투쟁만이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길임을
2001년 노동자대회를 다녀와서


심 인 호/대학생





노동자대회를 맞이하는 안타까움
‘전태일 열사 정신’은 현실에서의 단호한 ‘투쟁’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조직한 ‘바보회’의 정신이 가열찬 투쟁을 통해 건설된 지금의 민주노총과 각종 노동단체 및 계급적 정당으로 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절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김대중 정권 퇴진․반전평화 반미민족자주화’를 기치로 하는 2001년 노동자대회로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정녕 헛된 것이 아니었으며, 남한 노동자계급의 단호한 투쟁 속에 지금도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올해 전국노동자대회가 한 해 투쟁을 평가하고 이후 투쟁을 조직한다는 측면에서 그러한 정신이 온전히 살아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되돌아보면 2월 부평에서의 대우자동차, 한국통신 비정규직노동자들과 캐리어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정권과 자본의 무자비한 ‘테러’에도 불구하고 비타협적인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더욱이 울산에서의 ‘효성’투쟁은 민주버스와 화섬 3사를 주축으로 한 강력한 연대투쟁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강력하게 싸웠던 상반기 투쟁은 민주노총의 7월 5일 정치총파업 결의에도 불구하고 지도부와 투쟁사업장 만의 왜소한 투쟁으로 전락하여, 결국 단병호 위원장의 자진출두로 귀결되면서 하반기 투쟁을 올바르게 세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9월 노사정위원회에서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전략의 법제화를 위한 노동법 개악 음모가 발표되고, 10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는 국고보조금 수령을 동의하면서 노동자대회로 향하는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그러나 시그네틱스, 홍익매점, 대송텍, 린나이코리아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유연화 반대’,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을 노동자계급의 유일한 대안은 ‘투쟁’임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투쟁하는 노동자대회’를 다시금 기대하며 이번 노동자 대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투쟁하는 노동자대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주제마당들
오후 6시경 조금 늦게 도착한 숭실대 정문에서는, 민주노총 서울지부 문예패의 한바탕 흐드러진 풍물놀이가 반겨주고 있었다. 오늘의 노동자대회는 대회를 참석하기 위해 곤혹스러운 ‘뜀박질’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새내기 시절에 비하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노동자대회가 원천 봉쇄되던 때의 긴장감이 아니라 언제인가부터 의례적인 행사로만 다가온다는 느낌이다. 흐드러진 풍물가락은 투쟁 선봉대의 쇠파이프 긁는 소리와 어우러질 때, 그때가 제일 흥겨웠던 것 같다.
정문을 막 통과하자마자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동지들의 선전전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동지들은 노동자대회에서 노동자‘계급’이 아닌 ‘국민’을 상대로, 그리고 노동자대회의 의미를 ‘1인 2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쟁취’로 협소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그 옆에서 ‘부평공장 사수,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서명운동과 영상․사진전을 하고 있는 ‘대우자동차’ 동지들의 힘겨운 투쟁이 가슴에 와 닿았다.
정문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작은책’ 등의 ‘삶이 보이는 창’, ‘삶의 글’ 시화전이 이어지고 있었고, 반대편에는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영상선전과 함께 서명운동이 진행중이었다. 자본과 국가의 시혜마저 투쟁을 통해 쟁취하는 것임을, 장애인 동지들의 당당한 투쟁에서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뒤에서는 노동만화전과 시화전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85년 원풍노조의 ꡔ원풍회보ꡕ에서부터 올해 전교조 ꡔ서울교사신문ꡕ의 만평까지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한 컷의 만평 속에서 노동운동의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유쾌한 자리였고, 그 뒤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래마당에서는 노동자들의 삶을 담백하게 표현하는 노래들이 이어졌다. 이것이 노동자계급의 전정한 문화라고 생각해 본다.
정문 앞 사거리를 지나고 대운동장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당시 76일째 파업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민주버스노조의 주점과 특수고용직․파견용역직․계약직 등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입식선전물이 세워져있었다. 그 뒤로 인사이트코리아노조의 영상물에서는 노조원들의 가열찬 투쟁과 함께 그것을 탄압하는 경찰의 ‘테러’가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어떤 노동자의 뜨거워진 눈빛은 ‘단결’과 ‘연대’를 생명으로 하는 진정한 노동자의 모습으로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대운동장으로 가는 곳곳에 투쟁사업장들의 주점이 있었고, 동지들의 얼큰하게 술오른 모습도 더러 보였다. 대운동장 옆으로는 비정규직노동자마당과 이주노동자마당이 진행 중이었는데, 특히 이주노동자마당에서는 영상물과 이주노동자들의 결의발언이 잇따랐다. 어눌한 한국어였지만 몸으로 자신의 고통과 투쟁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발언 속에서, 그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어느 이주노동자의 마지막 구호가 내내 가슴에 남는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각종 사진전을 비롯한 통일마당이, 잔디밭에서는 풍물과 연극마당이, 그리고 사거리 앞에서는 숭실대 학우들의 문화공연이 숭실대 곳곳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이런 것을 다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대충 훑어보면서 유인물을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운동장 입구에 도착해보니 명월관, 린나이코리아, 대영루미나CC노조의 하루주점에서 ‘울랄라송’ 선전전이 한창이었고, 시그네틱스 동지들이 붉은 투쟁구호가 선명한 흰 가운을 입고 서명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흰 가운이 우리들의 수의가 될 때까지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 했다.


‘투쟁마당’에서의 흥겨움과 아쉬움, 그리고 희망들
시간이 얼추 된 것 같아서 8시쯤, 대운동장으로 내려가 보니 이미 영상물이 방영되고 있었고 남반구 외국인 동지들은 두꺼운 담요를 뒤집어쓰고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뒤로 ‘민영화 저지․생존권 사수․공공철도 건설’을 기치로 한 철도노조의 ‘철로역정’이 눈에 들어왔다. 카랑카랑한 경상도 사투리의 위트있는 대사와 함께, 간간이 이어지는 숙연한 몸짓공연이 묘하게 조화되어 ‘즐거운 감동’을 주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공연세트 왼쪽에서 척하니 펼쳐지는 투쟁구호가 적힌 깃발을 보면서 그만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전국 순회공연을 강행한 동지들의 노고가 몸으로 다가왔다.
잠시 후 자리를 잡고 보니, 형형색색의 ‘노조기’가 스탠드 난간 위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전태일 정신 계승하여 노동해방 쟁취하자’, ‘구조조정 박살내고 생존권을 사수하자’, ‘총단결 총투쟁으로 노동3권 쟁취하자’, ‘천만노동자 총단결로 비정규직 철폐하자’ 등의 구호가 적힌 선전물이 대운동장 곳곳에서 보였다. 비록 동지들이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 각양 각색의 노조 조끼를 입고 있지만, 노동자는 하나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투쟁마당에서는 ‘터울림’의 풍물공연을 시작으로 개막이 선언되고, 비정규직노동자 ‘투쟁선봉대’의 단호한 몸짓공연과 노보경연대회 시상식이 이어졌다. 한통계약직 동지들의 뜨거운 몸짓은 그들의 분노를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시그네틱스노조 가족대책위에서 전하는 ‘지금도 침탈에 대비해서 현장을 사수하고 있다’는 말은 잠시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공연 중간에 충북대병원노조의 100여 일에 걸친 파업투쟁이 승리로 정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건투의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함께 참여한 어린이들의 호기심에 찬 밝은 웃음과 외국인 동지들의 놀란 표정을 보면서 남한 노동자계급운동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울산 화섬 3사 동지들의 단호한 투쟁 발언은 상반기 연대투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대우자동차 해고자동지들의 ‘몸짓’공연을 통해 그들의 고통과 가열한 투쟁의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바로 다음 장기투쟁사업장동지들이 무대를 꽉 채우면서 투쟁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에 화답하듯 ‘이씨, 내가 시키는 대로 다할 줄 아냐’라는 노래와 ‘오늘도 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어떤 동지의 발언이 이어졌다.
2부 ‘투쟁마당’이 거의 정리되면서, 일행은 정문 앞으로 자리를 옮겨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 학생, 단체, 정치조직들의 ‘연대집회’에 참석했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지만 다시 힘을 내는 동지들의 모습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대회’를 쟁취하기 위한 동지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연대집회는 “정치는 단순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은 하나의 당위이며, 그래서 우리는 싸워야한다”라는 ‘노동자의 힘’ 대표의 투쟁발언으로 시작되어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삶과 서러움에 대한 토로 등으로 이어졌다. 장기투쟁사업장의 어떤 동지는 “30년 전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보고 현장으로 달려간 선배들처럼, 지금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이지 고민하자”라고 외쳐 분위기는 숙연해졌으며, 이주노동자동지의 투쟁발언과 사회당, 평등연대, 학생동지들의 발언이 계속되면서 차츰 고조되었다.
연대집회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만취한 동지들이 가끔 보였다. 전야제를 사수하기 위한 긴장감이 감돌던 과거와 달리, 회포를 푸는 자리로 노동자대회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지 않은지 되새겨 볼 만하다. 각종 문화공연과 술자리로 대표되는 전야제의 풍경은 흥겹긴 하지만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마도 나뿐이 아니라 이런 느낌을 갖게된 동지들이 많이 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투쟁 발언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노동자대회’가 되었으면
11일 일요일 아침 노동자대회 출정식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피로와 과음 때문인지 전야제 참가자들이 모두 참여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이후 연맹별로 간단한 결의대회와 각종 도심에서의 행진과 선전전이 진행되었다. 특히 신자유주의 전면적 공세에 대항하여 선봉에서 투쟁한 장기투쟁사업장이 중심이 된 선봉대의 거리선전전이 인상깊었다. 그런데 투쟁선봉대를 조직하는 것은 하나의 당위적인 것으로만 되어, 소수 활동가들을 중심으로만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노동자대회가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 상반기 투쟁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하반기와 내년 투쟁을 결의하는 ‘투쟁의 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들은 무엇일까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이후 연맹별 선전전을 마치고, 정오가 조금 넘으면서 공덕동에 대오들이 하나 둘씩 집합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전야제의 ‘흥청거림’으로 보지 못했던 다양한 투쟁구호들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전날의 주제별 마당에서 충분히 선전되었지만, 이제야 노동자대회에서 제기하는 ‘단병호 위원장 및 구속노동자 석방, 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5일근무 도입,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철폐,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사유화 중단, 교수 공무원노조 보장, 7차 교육과정 철폐와 교육재정 확보’ 등의 주요 요구를 느낄 수 있었다.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맑은 가을 하늘을 쳐다보면서 어제 밤의 쌀쌀한 날씨와는 달리 유난히 선선한 가을 내음이 싱그러웠다.
공덕동에서 시작된 행진은 천지인이나 꽃다지의 이동공연에도 불구하고 다소 힘 빠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대오를 보호하는 듯한 교통경찰의 비아냥거리는 모습에 솔직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올해 상반기에 보여준 경찰들의 폭력적 탄압을 성토하던 전야제에서의 투쟁결의가 무색하게 너무나 평온한 행진이 아닌가? 경찰은 무장을 하든 하지 않든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지 않을 때는 명백히 ‘국가의 폭력적 기구’일 뿐이다. 그들과 우리는 결코 화해할 수 없으며, 오늘의 투쟁일정이 노동자계급의 투쟁의지를 가로막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물론 마포대교를 들어서면서 시원한 강바람과 한강의 푸른 물줄기가 우리 대오를 맞이하면서, 그런 불쾌감은 조금 사라졌다. 역사를 거대한 물결이라고 말했던 이처럼, 우리의 오늘 투쟁은 거대한 물결이 되어 ‘노동해방’의 바다로 흘러 들어감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일까? 역사는 그 자체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뒤에서 밀어내는 것이리라. 그런 순간 대오중의 누가 갑자기 차선 하나를 더 점거해버렸다. 그것 때문에 얼마간의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경찰의 제지에도 대오는 바위처럼 꿈쩍도 않았다. 경찰들은 당연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며,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으로 쟁취해야만 하는 노동자계급의 현실을 느꼈다.
더구나 마포대교를 막 지나면서 경찰이 ‘노란선’을 치려는 순간 노동자들의 투쟁의지는 다시 살아나는 듯 보였다. ‘노란선’을 빼앗고 당당히 대로를 점검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결코 ‘노란선’으로 갇히지 않는 노동자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본 대오가 집회장소인 여의도광장에 거의 다 모였을 때, 우리 대오는 그 앞에서 학생선봉대 동지들과 함께 했다. 어느새 경찰은 무장을 하고 버티고 있었고, 사전 집회가 진행되는 순간 경찰들과 몸싸움이 벌여졌다.
학생동지들과 노동자들이 ‘맨 몸’으로 어깨를 걸고 본 대회를 사수하는 순간, 경찰들의 ‘방패’를 들고 응수해왔다. 격렬한 몸싸움이 진행되면서, 도로가 아닌 여의도광장까지 경찰들은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었고, 몇 명이 부상을 당하고 그중 한 명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 이런 와중에서도 ‘2001년 노동자대회’는 진행되고 있었고, 연단에서 쏟아지는 연사들의 발언과 대조를 이루는 대회 밖에서의 몸싸움은 격렬해져만 갔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대형 애드벌룬이 대오의 양 옆에 높게 올라가서 펄럭이고 있었고, 제도적인 개혁을 위한 대동한마당은 흥겹게 진행되었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본 대회에서 이소선 어머님 한 번 뵙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것일까? 노동자대회가 끝나고 ‘행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전반적인 일정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이러한 제한적인 일정 속에서 전태일 열사 정신을 계승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 김대중 정권 퇴진, 반전평화 반미민족자주화 쟁취’라는 구호는 과연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더 이상, 관념이 아닌 현실적인 실천으로
이미 우리는 현실과 괴리된 개량적인 ‘현실성’이 사실은 너무나 비현실적임을 몸으로 깨우치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서 진정한 ‘현실성’을 쟁취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죽음으로 자신의 단호한 관점을 관철하려 했던 전태일 열사는 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노동자대회가 맥없이 진행되고 난 후, ‘노동자의 힘’과 ‘반전(反轉)’ 등의 학생 대오는 동국대학교에 집결했다. 물론 노동자대회 이후의 학생단위 투쟁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 날 참가한 사람들의 정신만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며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뜨거운 가슴과 명확한 현실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더욱 냉정하고 뜨겁게 마지막 정리집회를 준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언제부터인가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제도적인 틀 내에서의 개혁으로만 인식되는 현실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서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며 현실 속에서 싸우려고 하는 동지들의 뜨거운 변혁 의지를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단호한 현장투쟁과 연대투쟁만이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임을 알고 있다. 견고한 시대의 벽은 창의적인 투쟁만으로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아름다운 죽음은 시대의 벽에 대한 정면도전이었고, 그것을 통해 남한 노동운동의 새로운 길을 열어젖힌 것이 아닌가? 이제 투쟁은 당위다. 투쟁만이 필요할 뿐이다! 한/노/정/연

2001-12-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214 ]